영국 맨체스터 공간분업과 울산의 그것이 유사하다
- 도린 매시, 공간, 장소, 젠더

근대 방직 산업과 기계 산업의 메카였던 영국 맨체스터 지역에는 원래 공장과 설계실이 함께 있었다. 하지만 본사와 설계실이 20세기 중반을 거치면서 금융과 정치의 중심인 런던으로 향하고 노동자가 일하는 생산공장은 맨체스터에 남았다. 

1970~1980년대의 불황과 마거릿 대처 시절의 강경한 대회 노조 정책 앞에서 산업도시 맨체스터의 공장은 점차 쇠퇴했다. 제조 업체 본사에서는 생산 거점을 인건비가 싼 아시아나 아프리카, 인도 등으로 옮긴다고 선언했다. 글로벌 도시 런던에서 근무하는 엔지니어는 전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오직 최적의 이윤과 전사적으로 설정하는 ‘지속가능한 경영‘만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구상을 세웠다. 모공장인 맨체스터 공장은 그들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 엔지니어가 생산 현장 노동자의 관점을 크게 고려하지 않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 P98

중화학 공업화 이후 좀 더 멀게는 울산공업센터지정 이후 50년간 한국은 공간분업의 확대와 전환이라는 과정을 겪고 있다. ‘공간 분업‘은 구상과 실행의 분리를 지리적으로 확장한 개념이다. 영국의 경제지리학자 도린 매시Doreen Massey는 영국의 사례 연구를 통해 공간분업 개념을 보여 주며 스타가 됐다. 매시는 설계사무실과 공장의 구분을 좀 더 넓게 봐서 구상 기능을 하는 지역과 생산 지역이 분리된다고 말했다.  - P97

16 피터 메익신스 외, 《현대 엔지니어와 산업자본주의》, 이내주 외 옮김, 에코리브르, 2017,
172.3.5.7.
Doreen Massey, Spatial Divisions of Labour, Red Globe Press, 1995; 도린 매시, 《공간,
장소, 젠더》, 정현주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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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직과 엔지니어의 관계
- 독일-일본 방식과 미국-영국 방식의 차이
-한국의 경우 작업장 엔지니어 체제에서 랩 엔지니어 체제로의 전환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일본과도 다르고 미국이나 영국, 독일과도 다른 ‘한국식 생산방식‘을 따른다. 좌표를 그린다면 일본-독일과 미국-영국 사이에 위치한다. 

미국은 엔지니어를 생산직과 완전히 분리해서 회사의 경영 방침을 현장에 실현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자동화, 로봇의 설치, 동선 설계 등 생산방식 실험을 엔지니어가 독립적으로 수행한다. 따라서 대졸 엔지니어가 하는 일과 고졸 생산직이 하는 일이 겹치지 않는다. 

독일은 엔지니어의 경우에도 생산직처럼 도제과정을 통해 육성된 비중이 적지 않다. 또 생산직 중에도 대학에 진학해 공학을 공부하고 엔지니어가 되는 경우도 많다. 결국 서로 현장 경험과 공학 지식을 공유하는 일이 적지 않고, 많은 일이 협의로 진행되는 경우가 흔하다. 

일본과 독일이 생산직 노동자와 엔지니어의 괴리감을 줄이기 위한 제도와 정치가 발달한 편이라면, 미국이 반대편에 서 있는 셈이다. 

한국식 생산방식은 일본이나 독일과 유사하게 애초 고졸엔지니어도 많았고, 생산직과 엔지니어의 협업이 많았던 작업장의 역사가 있다. 하지만 1987년 이후 노사관계가 적대적으로 변함에 따라 사측이 미국식 경영 방식을 적용해 오고 있다. 자동화와 로봇 도입을 밀어붙이고 생산 현장에서 가능하면 노동자의 숙련에 기반을 둔 개입을 줄이는 방향으로 애썼다. 

물론 산업에 따라 일정한 차이는 있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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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 대기업이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고 생태계 안의 중소기업이 고도화될 것이라는 그림은 현실적인가?

이러한 제조 대기업의 그림도 여러 측면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일단 생산 공정을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제품에 대한 지식과 신기술뿐 아니라 현장을 잘 아는 엔지니어가 필요하다. 그런데 고학력의 엔지니어는 현장이 있는 비수도권의 지방공장근무를 기피한다. 또 현장을 잘 아는 엔지니어를 지방 공장에 배치한다 하더라도 현장의 미세한 상황은 결국 숙련 노동자의 손길이 있어야 통제할 수 있다. 심지어 자신들의 현장 문제를 풀어서 고부가가치 제품을 최종 조립 단계로 생산해 낼 수 있다 하더라도, 앞서 언급한 지자체의 산단 지정 경쟁이 불러오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는다. 애초 제조 대기업의 모공장mother factory 만 개선될 뿐 몇 단계를 거친 하도급 기업의 환경이나 임금 수준이 좋아지기는 어렵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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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성장기의 인력 수급의 약사
- 60년대 젊은 여성 노동력
- 70년대 공고 졸업자 수요 증가
- 직업훈련원을 통한 저학력 공급 충족
- 저학력 고숙련 생산직 노동자의 양산 전략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 수립 이후 많은 경우 제조업 노동정책과 기업 전략은 저학력 고숙련의 생산직 노동자의 자리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노동자를 제대로 훈련시키는 것이 기업의 관심사를 넘어 국가적 의제였다. 생산성을 높이고 품질을 향상시키는 주체로서 생산직 노동자의 숙련이 매우 중요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제조대기업에 ‘직업훈련소‘를 짓게 만들고 노동자들에게 기술 교육을 시켰다. 동시에 적당한 학력의 사무직을 뽑아 생산관리를 하고 경영지원업무를 수행해 기업이 운영될 수 있었다.(86)



1960년대의 수입대체 산업화와 초기 수출주도 성장 전략이 경공업 인력을 필요로 하여 영남권의 경우 부산과 마산을 근거로 젊은 여성노동력을 필요로 했다면, 

1970년대부터 진행된 중화학 공업화는 젊고 당장 기술을 익힐 수 있는 ‘기능‘ 남성 노동자를 호출하기 시작했다. 일감은 늘어나는데 그 일을 할 사람이 부족했던 것이다. 일단 공업고등학교 졸업자가 현장에 투입됐고, 

그래도 인력난이 해결되지 않자 초등학교를 채 마치지 않았더라도 기업이 설치하고 정부가 보조하는 직업훈련원을 통해 용접이나 도장 등 기술을 배우고 취업을 할 수 있었다. 

당시 과학기술처의 추산에 따르면 기능직 인력은 매년 최소 2만~3만 명씩 부족한 것으로 보고됐다. 그다음 기술자(대출)와 기술공(초대졸, 공고 설계직 등)도 크게 부족하기 시작했다. 

1950~1960년대에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포함하여 다양한 학교의 공대를 졸업한 청년의 실업난이 사회적 쟁점이 될 정도로 공학 인력에 대한 노동시장의 수요가 없었다. 하지만 1970년대 중화학 공업화를 시작하면서부터 설계를 하고 산업 현장을 관리할 수 있는 기술 인력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1980년대 내내 십수만 명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 P36

강기천, 공업 없는 공학 - 1950-60년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지향과 현실, <사회와 역사>, 제119권, 41-73 2018. - P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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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중반 조선업 구조조정 이후 조선업 인력구조의 문제 상황
- 생산직 숙련에 대한 경시, 무관심, 무지



그러나 조선소의 고용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경기는 좋아졌는데 이번엔 인력을 구하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2015년 기준 조선업 종사자는 20만 명에 육박했지만 2023년 기준으로는 10만 명을 간신히 넘겼다. 낮은 임금과 좋지 않은 처우로 인해 조선 업계를 떠났던 사내 하청 노동자, 즉 물량팀으로 대표되는 최말단의 노동자가 여전히조선 산업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어서다.

하지만 업계는 처우 개선과 임금 상승 대신 이주 노동자를 광범위하게 활용하기로 했다. 조선산업의 외국인 비율을 20퍼센트에서 30퍼센트로 늘리며 미래 대신 현재를 선택한 것이다.  - P21


요컨대 지자체와 제조 대기업, 두 렌즈를 통해 도출되는 해법은 제조업 국가 대한민국에서 급한 대로 임시변통의 저임금 일자리는 만들어낼 수 있고 이미 만들고 있다. 또 제조 대기업의 경쟁력을 일정 부분 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지자체와 제조 대기업의 논의에서 빠진 핵심고리가 있다. 바로 노동자의 숙련도다. 지금까지 산업도시가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숙련 노동자가 좋은 대우를 받았던 상황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자체나 제조 대기업은 이 문제를 회피하거나 오히려 거꾸로 가는 상황이다 - P85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 수립 이후 많은 경우 제조업 노동정책과 기업 전략은 저학력 고숙련의 생산직 노동자의 자리를 만드는데 초점을 맞췄다. 노동자를 제대로 훈련시키는 것이 기업의 관심사를 넘어 국가적 의제였다. 생산성을 높이고 품질을 향상시키는 주체로서 생산직 노동자의 숙련이 매우 중요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제조대기업에 ‘직업훈련소‘를 짓게 만들고 노동자들에게 기술 교육을 시켰다. 동시에 적당한 학력의 사무직을 뽑아 생산관리를 하고 경영지원업무를 수행해 기업이 운영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상황은 제조 대기업이 생산직 노동자의 숙련을 우회하거나 배제하는 방향으로 재편하고있다. 생산직 노동자들 대신 고학력의 대졸 엔지니어를 많이 뽑아 그들의 숙련도를 높이는 것이 제조대기업의 관심사다. 저학력이지만 고숙련 공정을 담당했던 정규 생산직노동자의 자리가 자동화와 로봇에 의해서나 혹은 비정규직 노동자나저임금 저숙련 하청 노동자로 대체됐다. 중숙련 업무인 사무직 자리는 신규 채용 대신 ‘경력직 같은 신입‘이나 경력직을 통해 충원되거나,
전직을 바라는 엔지니어에게 돌아간다. 특히 산업도시에서는 사무직을 정규직으로 뽑지 않으려는 경향마저 있다.
결국 숙련을 우회하는 지자체와 제조 대기업의 논의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방향으로 겉도는중이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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