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는 민주주의 사회의 개념이다. 특정 계층이나 세력에 기반한 정당 혹은 개인이 국민 다수의 선택을 받으면 일정 기간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권리를 위임받는 시스템 말이다. 한국의 대통령은 전 세계 어느 나라 위정자보다 절대적인 권력을 갖지만, 임시직 고위 공무원이다. 약속한 기간이 끝나면, 때로는 위임받는 기간 안에라도 신뢰가 깨질 정도의 잘못이 드러나면 계약은 종결된다. - <러시아는 왜 그럴까?>, 벨랴코프 일리야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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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인기는 지지가 아니라 충성에 기반한다. 러시아에서 대통령은 절대 권력의 최고 수반, 황제 이미지에 가깝다. 러시아 사회는 권력자에게 관대하다.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나 러시아 특유의 서열문화가 원인으로 꼽힌다. 황제가 있는 제국, 위아래가 뚜렷한 공산주의 시스템에 익숙한 사회 문화 탓에 권력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대 - <러시아는 왜 그럴까?>, 벨랴코프 일리야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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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은 지도자에게 있다고 믿는 사고방식, 국민은 지도자의 뜻을 따르는 거지, 뭐라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 <러시아는 왜 그럴까?>, 벨랴코프 일리야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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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4일에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침공했다.

러시아 관영 언론은 전쟁 결정에 환호했다. 전 세계가 원시시대로 몰락한 상황에서 러시아만이 ‘올바른’ 민족이고 유일한 ‘전통 가치’를 지키는 국가라고 주문처럼 반복재생했다. 북한의 ‘남조선은 미국의 꼭두각시’와 대동소이한 말이다. ‘러시아가 다시 세계 악과 싸우고 있는 시대가 왔다’는 프레임이 탄생했다. 위대한 러시아가 부활했다며, 약했을 때 우리를 괴롭힌 세력을 깨끗하게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줄을 이었다.

러시아 정치 전문가를 비롯해 많은 전문가가 현재 러시아가 전형적인 원한(resentment)의 사례라고 평가한다. 바이마르 독일과 비슷한 모습이다. 과거 굴욕적이고 치욕스러운 경험을 한 국가는 이를 반성하고 분석하지 않으면 원한이나 격노로 전환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 <러시아는 왜 그럴까?>, 벨랴코프 일리야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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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카테리나(Екатерина)’는 러시아 여성의 공식적인 이름이다. 여권이나 정부가 발급하는 서류에는 이렇게 이름을 적는다. 하지만 일상에서 이렇게 원래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없다. 원래 이름으로 부르면 딱딱하게 느껴져서다. 대부분은 그녀를 ‘까쨔(Катя)’라고 부를 것이다. 친구들끼리 혹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편한 자리에 이런 식으로 부른다.

만약 예카테리나가 내 여자 친구라고 해 보자. 그녀와 단 둘이 집에 있을 때, 그녀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 로맨틱한 분위기일 때, 나라면 그녀를 ‘까츄샤(Катюша)’로 부를 것이다. 내 친구에게 여자 친구 이야기를 한다면 “어제 ‘까테리나(Катерина)’와 밥을 먹었어”라는 식으로 말한다. 유치원생끼리 서로를 부른다면 ‘까찌까(Катька)’다. 이 호칭은 아이들끼리 서로 놀려먹는 듯한 뉘앙스다. 어른들은 거의 쓰지 않는다. 한국에서 ‘민수’라는 이름을 ‘만수’라고 부르는 식이다. 할머니가 손녀를 부를 때는 ‘까쩨니까(Катенька)’라고 한다. ‘우리 예쁜 똥강아지’ 같은 어감을 담고 있다.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중에서


한국 문화에서는 사람을 부를 때 상대방의 사회적 신분과 역할, 친척 관계나 친근감을 나타내는 호칭 시스템이 매우 발달되어 있고, 일상에서 널리 사용된다. 굳이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부를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사람을 이름으로 부르는 게 실례일 경우가 많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이런 호칭 관계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러시아에서는 이름으로 부르면 되지만 한국에서는 이름이 아니라 직책 같은 사회적 지위를 붙이는 경우가 많아서였다. 회사에서 만난 ‘이 대리님’은 밖에서도 ‘이 대리님’이다. 승진하면 직책도 바꿔 불러야 한다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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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한국 문화가 가부장적이라고 하지만 러시아와는 비교할 수 없다. ‘미투’ 확산에 대한 반응이 그 증거다. 권력을 가진 남성이 여성 비서나 부하 직원에게 부적절한 제안을 하거나 성적으로 착취하는 일은 법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남녀 관계에서 있을 수 있는 일. 이렇게 수용한다. 오히려 이런 사건이 공개되면 여성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비서로 취직했을 때 뭘 기대했나? 비서가 그런 거지 뭐.”, “어린아이도 아니고 남자 상사가 그럴 몰랐나?”, “이런 게 싫었으면 남자가 없는 직장에 들어가든가.”, “거부를 제대로 안 했으니까 그렇지.” 이게 러시아 사회의 분위기다.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 때도 반응이 똑같았다. “클린턴, 그래도 남자구만.” 이 정도였다. 이런 일로 대통령을 탄핵한다면서 미국을 비웃었다.

여성들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에서는 성 상품화에 대한 인식이 약하다. 남자가 권력을 이용해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한다는 인식이 별로 없다. 스캔들이 터지면 둘이 눈이 맞아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이니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된 ‘미투 운동’은 러시아에서 보면 그냥 해프닝 정도에 불과하다. “이상한 나라에서 이상한 짓거리하고 있네.” 이런 평가를 내린다. 그들을 조롱하면서 ‘쟤네들보다는 우리가 더 좋은 나라’라고 정신 승리를 한다.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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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소련은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가혹했다. 아니 여성에게 오히려 더 가혹했다고 하는 게 맞다. 사회주의 혁명으로 시스템은 바뀌었다. 문화적으로 가부장제는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올라갔고, 정치적 권리도 보장받았다. 그러나 이 시스템에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전혀 녹아 있지 않았다. 소련 시절 여성들은 국가에서 원하는 노동을 수행해야 했다. 남녀의 신체적 차이는 상관없었다. 남자와 똑같이 공장에서, 건설현장에서 일해야 했다. 남자들도 힘들다고 꺼리는 일을 똑같은 할당량을 받아 몸을 갈아가며 해치우고 집에 와서는 또 집안일을 해야 했다. 여성들의 권리를 보장해 준다는 사회적 배려가 실제로는 배려가 아니었다. 가부장제 문화는 그대로 둔 채 바뀐 시스템에서 여성들의 부담은 오히려 배가됐다. 당시 여성들 입장에서는 차라리 집에서 가사일과 육아를 전담하는 게 보다 인간다운 삶을 사는 방법이었다.

이런 이유로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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