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3분의 1일 지점에 이를 즈음 비로소 모비 딕의 존재가 드러난다. 선장이 잃은 다리와 모비 딕의 관계가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당신의 다리를 앗아간 것이 그 모비 딕이냐는 선원의 물음에 대답하는 선장의 감정은 흥분 상태가 된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무너뜨린, 그 빌어먹을 고래! 자신의 삶이 불쌍한 절름발이 신세가 되게 만든, 그 고래를 향해 급격한 감정의 변화가 담긴 저주가 소용돌이치듯 갑판 위를 채운다. 모비 딕을 잡아 죽이는 것, 그 흰 고래의 최후를 목격하는 것이 이 배의 존재 목적이라는 취지의 선언은 모든 선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
에이해브 선장에게 있어 거대한 흰 고래 모비딕의 의미는 주인공 이슈메일에게도 가볍지 않다. 그에게 모비 딕은 근원적인 공포를 의미한다. 그것은 압도적인 크기와 함께 그 거대함이 흰색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온갖 흰색들, 그리고 인간의 종교 역사에서 흰색이 지닌 신성함과 권능 등 흰색과 연결된 갖가지 심오한 감각이 연결된 고래는 공포의 본질처럼 이슈메일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출항 후 처음으로 발견한 고래잡이는 실패로 돌아간다. 날아간 작살은 고래에게 찰과상만 입혔을 뿐이다. 며칠이 지난 뒤, 포경 밧줄에 묶인 삶과도 같은 인간의 운명을 떠올리던 어느 날 다시 고래가 나타난다. 수증기 가득한 물보라를 뿜으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고래의 등장에 선원들은 다시 흥분한다. 이윽고 잡히고 죽임 당한 고래. 그날 저녁 그 기름은 등불이 되고, 몸통이 가늘어지는 특정 부위는 스테이크 요리가 된다.
고래의 해체 작업 과정은 기름기가 온몸을 휘감듯 끈끈한 느낌을 준다. 고래의 지방은 껍질을 벗겨내듯 한 바퀴 돌려 뜯어야 한다. 소설에 묘사된 바에 따르면 거의 기름을 분리시키는 데 거의 모든 역량이 투입되는 것 같다. 고래의 지방층은 거의 가죽을 방불케 한다. 이런 해체 작업을 묘사하는 과정은 오히려 죽은 고래로부터 강인한 생명력과 고래 특유의 강점을 오히려 더 부각시키는 특이한 효과를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