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 - 인생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명상록 읽기
기시미 이치로 지음, 김지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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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한 사조인 스토아학파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창시자인 키티움 출신의 제논을 비롯하여 키케로, 세네카, 에픽테토스 등이 있다. 그런데 요즘 출판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로마의 황제이기도 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같다. 그가 남긴 『명상록』에 대한 설명이나 재해석을 콘셉트로 한 신간들이 꾸준히 보이기 때문이다. 니체와 쇼펜하우어와 함께 대중을 위한 실용적인 철학 안내서 유행의 주요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저자는 꽤 유명하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베스트셀러로 잘 알려진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 씨다. 저자는 젊은 시절 어머니의 투병 기간 중 『명상록』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은 그 이후로 저자가 꾸준히 연구해온 아우렐리우스의 철학에 대한 정리이자 견해의 요약본이라고 할 수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가 약 200년 동안 누리던 평화와 번영의 마지막 시기에 통치했던 인물이다. 전성기를 지나 쇠퇴기로 향하던 로마 제국의 현실 가운데서, 내부와 외부의 악재에 현명하게 대처하며 오늘날 철인황제 또는 현제(賢帝)로 알려져 있으면서 동시에 스토아학파의 주요 철학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


그의 기록들이 특별한 이유는 주로 전쟁 중에 쓰인 것들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쓴 글들이기 때문이다.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 가운데서도 내면의 풍경을 관찰하고 성찰을 꾸준히 하면서 그의 철학은 살아 있는 지혜로서의 의미가 더해졌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기에 더욱 저자의 속마음을 날것 그대로 살펴볼 수 있다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

특히 그의 철학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인간의 존재 이유, 방식에 대한 정의인데, 이것은 스토아 철학 전반의 맥락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평정심, 지혜, 용기, 절제 등의 미덕을 강조하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삶을 추구하는데, 이것이 온갖 음모와 술수가 횡행했던 궁중에서,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할 수밖에 없었던 전쟁터에서도 여전히 그 의미와 가치가 고수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스토아 철학에 대한 독자로 하여금 특별한 관심을 갖게 한다.


비록 현실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본질적으로 인간은 서로 협력하며 살 수밖에 없다는 점을 거듭 반복하면서,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개개인에게 있어서는 선과 악으로, 희망과 비극으로 차별적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우주적 선을 이루는 것이라는 초월적인 관점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여러 의견으로 나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인간관계의 문제에 있어서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해법은 요즘 숏폼 영상들에서 볼 수 있는 처세술 관련 내용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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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나는 심리학 수업 - 유쾌하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심리학 필수 지식 드디어 시리즈 1
폴 클라인먼 지음, 문희경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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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사람들을 위해 기획된 심리학 입문 서적들은 이미 수없이 나와 있다. 그리고 몇몇 특정 철학자들이 유행처럼 소재가 되어, 여러 저자와 출판사들에 의해 소환되고 있는 것이 요즘 트렌드인 것 같다. 이 책의 원서는 2012년에 나왔다. 이 분야의 고전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이다. 꽤 오랜 시간을 거쳐 우리나라에 번역본이 나온 것인데, 심리학에 막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독자라면 이 책을 선택하는 것이 무난해 보인다.


목차를 보면 이 책의 구성이 아주 체계적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내면을 이해하는 심리학이라는 주제로 시작한다. 심리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단연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이어서 카를 융이 소개된다. 이 둘은 정신분석과 자아,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심리학의 대표적 개념으로 정착시킨 사람들이다. 이 둘을 시작으로 심리학은 어엿한 학문으로 자리 잡았다.


이어서 저자는 관계를 이해하는 심리학이라는 주제로 관련 학자들과 이론들을 소개한다. 여기서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조건반사 실험, 다시 말해 파블로프의 개 실험으로 유명한 이반 파블로프다. 이 실험이 중요하게 보였던 이유는 무조건반사와 조건반사의 개념을 통해 시대를 거슬러 현재 우리 사회에서 대중이 특정 이해집단의 여론몰이에 어떤 식으로 선동당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해주는 지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 번째 주제는 세상을 이해하는 심리학이다. 여기서는 심리학 역사에서 널리 알려진 실험이나 주요 개념들을 인물과 연구 중심으로 소개한다.


책의 전반적인 구성은 개인에서 시작해 대인관계, 사회적 심리 현상이라는 흐름으로 확장되면서 심리학이 인간 개인의 단위에서 사회적 현상과 본질에 이르기까지 인간 사회 전반을 이해하는 도구로서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입문을 도우는 책들의 성격이 그렇듯이 이 책은 몇몇 생소한 개념들을 이해하는 데 약간 애를 먹는 것 말고는 전반적인 내용을 파악하기에 큰 어려움을 주지 않는다. 적절한 사진과 도표 자료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추천사를 쓴 심리학자 김경일 님의 코멘트는 약간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어쨌든 꼭 필요한 심리학 기초 지식을 전달한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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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의 세계 - 인체의 지식을 향한 위대한 5000년 여정
콜린 솔터 지음, 조은영 옮김 / 해나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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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생명체, 또는 살아 있던 동물에 대한 최초의 해부의 이미지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생물시간에 행했던 개구리 해부의 이미지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의대생들이 처음 해부 실습을 할 때 적응이 안 된 학생 하나가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어떤 드라마나 영화의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의학이나 의료 차원에서의 해부라는 개념은 대중에게 낯설지는 않지만, 실제로 더 구체적인 상황에서 맞닥뜨리는 경우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해부라는 개념이 대중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의학이나 의료 현장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유럽의 역사에서 인간에 대한 묘사가 과학적인 측면에서도 많이 연구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중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 해부학 지식의 발전과 관련이 있었고, 이런 예술을 접한 사람들에게 인체에 대한 지식은 단지 의학의 영역에만 머물 수 없었을 것이다.

기원전 3000년부터 기원후 1300년에 이르는 고대 시기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인물은 1~2세기에 활동한 갈레노스라는 로마제국 시대의 의학자이자 철학자이다. 갈레노스는 이전 시대의 의학 지식을 집대성하며 자신의 이론을 완성했으며, 이는 이후 1300년 동안 해부학을 비롯한 의과학의 대부분의 활동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갈레노스 이후 1700년대 계몽 시대에 이르기까지 아주 점진적으로 갈레노스의 절대적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오늘날과 같이 과학과 철학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과학적 방법론이 정립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관점과 접근이 해부학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수의 천재적인 의사들의 관찰과 직관에 의해 갈레노스의 인체 지식에 대한 철학적 관점으로 빚어진 오류가 조금씩 수정되긴 했으나, 본격적인 과학 발전의 시대인 17세기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변혁이 이루어지긴 힘들었다. 하지만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전환 이론에서 볼 수 있듯이, 해부학에서도 온전히 과학적인 관점으로 발전을 이룰 수밖에 없는 사회문화적 압박이 일어났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종교와 철학의 거품을 걷어낸 해부학은, 과학 지식과 도구, 연구 방법의 발전에 힘입어 계몽시대 이후 엄청난 진전을 이루었으며, 특히 회화 및 조각 예술 영역에서의 향상된 표현 기술은 시각적 정보화를 통해 해부학 지식을 더욱 체계화하였다. 최근에는 전자현미경을 비롯한 미시세계의 관찰 기술의 발달이 해부학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전달력 높은 문장과 구성, 다양한 이미지 자료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해부학 역사의 눈부신 발전을 흥미롭게 접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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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경제학 나쁜 경제학 - 노벨상 경제학자가 바라본 미국, 그리고 기회와 불평등
앵거스 디턴 지음, 안현실.정성철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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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만 보면 경제학이 잘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비교 분석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대부분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그리고 경제학이 거기에 그다지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지적하는 내용이다. 원서의 제목을 보면 더 분명하다. ‘미국의 경제학 : 한 이민자가 탐구하는 불평등의 땅’.


이 책은 먼저 기존 경제학의 통념을 벗어나게 한 시도로서 실증적 연구방법을 소개한다. 이 방법은 데이터와 경험을 근거로 한 과학적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문화 특유의 반지성주의와 각종 이해관계의 역학으로 인해, 이 새로운 시도가 옳고 그름을 떠나 제대로 그 가능성과 역할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어서 이 책은 미국의 의료시스템과 해외원조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의료시스템의 경우 효율적인 의료보험 제도의 운영을 통해 재정을 건전하게 운영하면서 최대한 많은 미국 국민의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험회사나 그 보험회사의 로비를 받는 정치인들의 이해관계, 즉 그들의 이익 때문에 터무니없는 방식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한다.

해외원조 문제는 우리나라의 국민지원금 논란을 떠올리게 하는데, 쉽게 말해 기준을 일관적으로 적용하여 재정을 쓰는가, 아니면 각 나라의 상황에 맞게 선별해서 지원하는가의 문제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해외원조를 하는 나라보다 미국 내에서 경제적으로 더 극심한 빈곤에 처해 있는 지역도 있는데, 오히려 그런 곳이 도움을 받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이 역시 재정의 효율적 집행보다 당파적, 정치적 입장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성격이 있어 실제 재정을 집행하는 목적의 중요성이 간과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이어서 소득의 불평등에서 시작해 이것이 인종 및 민족 차별과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는지 탐구한다. 그리고 불평등의 문제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을 비롯한 기회의 불평등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밝힌다. 아울러 연금 문제에 관련해서 현 세대와 미래 세대 간의 불평등이라는 문제까지 이어져 불평등이라는 이슈의 스펙트럼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볼 수 있는 일관된 문제의식은, 가진 자들이 그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점점 더 폐쇄적인 시스템을 강화해 간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폐쇄성은 장기적으로 부자나 빈자, 중산층 모두를 괴롭게 하는 악수가 될 수밖에 없음을 상기시킨다. 돈은 원활하게 돌아야 하고, 사람의 형편은 누구나 더 좋은 쪽으로 바뀔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경제 시스템은 그런 가능성을 아예 막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경제학으로는 그 답이 나올 수 없음을, 그래서 말미에 저자가 한때 경제학이 품고 있던 철학적, 윤리적 영역의 회복을 피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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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이진민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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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외의 다른 나라의 언어, 즉 외국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이점이 있다. 우선 사고의 깊이와 넓이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 교류할 수 있는 사람들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 다시 말해 더 넓은 세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면 자연스럽게 타인과 타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그만큼 성숙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다른 나라의 말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정서를 익힌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어떤 표현을 우리말로 직역했을 때 그 뜻을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외국어 학습은 나와 전혀 다른 기준이나 생각도 살아가는 방식으로 채택될 수 있음을 확인하는 귀한 경험의 기회도 되는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모든 단어에는 의미가 있다』는 여기에 단어를 통한 인문학적 성찰이라는 외국어 학습의 또 하나의 유익한 도구적 가능성을 확인시켜 준다. 단어의 어원을 탐구하고 성찰하는 방식으로 얻은 깨달음을 풀어내는 내용의 책은 이미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그런데 이 책이 가진 또 다른 특징 혹은 장점이 이 책을 시중의 다른 책들과 차별화한다. 그것은 저자의 따뜻한 성품이 녹아든 친절한 문장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선택한 단어들도 우리 사회에서 지금은 다소 낯설어진 가치관을 다시 상기시키는 내용들을 불러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계속 지속되기 위해서 필요한, 잃어버린 정서와 미덕들은 무엇이었나를 돌아보게 한다.


독일의 문화와 역사는 아주 매력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우리보다 낫다거나 본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독일 역시 나름의 문제들을 겪고 있고, 갈등과 분열이 있다. 하지만 언어의 특성을 통해 알 수 있듯, 이들이 추구하는 기본적인 가치관은 결국 독일이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독일다움을 다시 회복하거나 더 성숙하게 하는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언어이며, 그것을 구성하는 단어 하나하나에 깃든 그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동력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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