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ward Coley Burne Jones
19세기의 영국의 화가·장식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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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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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Coley Burne-Jones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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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
활동분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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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
출생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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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밍엄 |
주요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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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과 니무에》(1858~1859) 《피그말리온과 조각상》(1875~1878) 《부활의 아침》(1882) 《코페투아 왕과 거지 소녀》(1884) | |
본명은 에드워드 콜리 번 존스(Edward Coley Burne Jones)이다. 1833년 버밍엄에서 출생하였다. 옥스퍼드의 엑시터대학에서 공부하였으며 그곳에서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를 만났다. 1856년 라파엘 전파의 화가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를 만남으로써 삶의 전기를 맞이한 뒤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채 옥스퍼드를 떠났다. 그후 런던에 정착하여 로세티의 지도 아래 작업을 진행하였다.
로세티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그는, 형태와 표현 양식의 순수성, 그리고 중세 미술의 고양된 도덕성을 미술에서 회복하고자 하였다. 주제를 성서나 고금의 문학작품에서 취하고, 유려한 선묘(線描), 단정한 구도, 풍요한 색채로 신비적이고 낭만적인 작품을 만들었는데, 장식적인 경향이 강했다.
작품으로 《창조의 날들 Days of Creation》 《비너스의 거울 The Mirror of Venus》 《멀린과 니무에 Merlin and Nimue》(1858~1959) 《코페투아 왕과 거지 소녀 King Cophetua and the Beggar Maid》(1884) 등이 있는데, 이러한 작품은 중세와 고전주의 시대의 작품들, 그리고 성서에 바탕을 둔 주제 의식에서 주요한 영감을 얻은 것들로서 풍부한 감정과 낭만적인 스타일이 두드러진 것들이며 일반적으로 라파엘 전파의 화가들 작품 가운데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 시절의 친구인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모리스와 함께 중세 응용 미술을 부활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모리스가 경영하는 상점에서 스테인드글라스와 모자이크, 태피스트리 등을 직접 디자인했던 것이다. 그가 디자인한 창문은 옥스퍼드에 있는 그리스도 교회나 버밍엄 성당을 포함해서 영국의 많은 교회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윌리엄 모리스의 켈름스코트 출판사에서 일러스트 작업도 하였다. 1894년 준남작 작위를 받았다.
The Sleeping Princess
우수에 잠긴 아름답고 매혹적인 소녀...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화가 에드워드 번 존스의 그림을 기억하시나요?
그의 이런 아름다운 그림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 잠바코!!
The Lament, 1866
Spring, 1869-70
런던의 부유한 그리스계 사업가의 딸로 태어나
그리스계 의사 데메트리우스 잠바코와 결혼해 '잠바코'라는 성을 얻은 그녀...
두 아이를 가졌으나 그들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어요.
파리에서 살던 잠바코는 1866년 남편과 헤어져 런던으로 돌아왔고
예술가들과 친교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잠바코는 미술을 애호하는 집안에서 자란 덕에 미술적인 감각도 남달랐죠...
잠바코는 어머니를 통해 자연스레 번 존스를 알게 되었는데요
이미 결혼한 몸이었지만, 번 존스는 잠바코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죠.
그리스와 로마의 미술을 동경해 온 번 존스에게
그리스 혈통의 아름다운 잠바코는 최고의 미인일 수밖에 없었어요
Portrait of Maria Zambaco, 1870
위의 그림 아래에 있는 큐피트 화살에 묶여 있는 쪽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고 해요.
"26세의 마리아, 1870년 8월7일 EBJ-에드워드 번 존스-가 그림)"
이 그림에서 그는 잠바코를 사랑의 여신으로 표현했어요.
잠바코의 어머니도 둘의 사랑을 엮어보려 했는지
번 존스에게 자신의 딸을 모델로 한 그림을 그리도록 부탁하죠.
하지만, 번 존스에게는 헌신적인 아내 조지아나가 있었어요.
번 존스는 아내에게 알리지 않으려고 숨겨 왔으나
친구의 비밀 누설로 인해 아내 조지아나와 잠바코는 일대일 대면을 하게 됩니다.
그것도 번 존스 없는 집에서 말이죠.
이 장면을 뒤늦게 목격하게 된 번 존스...
번 존스는 쓰러지며 벽난로에 머리를 부딪치기까지 했다고 해요
그 일이 있은 후... 둘은 어떻게 했을까요?
Phyllis and Demophoon, 1870
잠바코와 번 존스는 수로에 몸을 함께 던져 이승을 등지기로 하죠.
이 둘은 정신없이 수로로 달려갑니다...
이들은 사랑밖에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죠.
수로로 가보니 물은 생각보다 정말 차가웠어요.
그 물에 몸을 던질 수가 없었죠.
이들은 결국 투신을 포기하고 돌아오고 맙니다.
"정욕은 나를 놀라게 하고 위협한다.
정욕은 한마디로 그릴 수 없는 절망이다.
모든 행복의 포기이며,
갈수록 퇴보된 상태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다."
Portrait of Maria Zambaco, 1871
번 존스는 갑자기 로마로 떠나버립니다.
이것을 뒤늦게 안 잠바코는 미친 듯이 그를 찾아 헤매였죠.
번 존스는 로마로 가던 도중 큰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아내 조지아나의 품으로 되돌아옵니다.
아내의 넓은 마음으로 인해 번 존스는
잠바코와의 관계를 1870년 초 완전히 청산했어요.
하지만 번 존스가 그녀를 잊은 것은 아니었죠.
그 이후로도 번 존스는 그녀를 모델로 하여
계속 그림을 그려나갑니다.
Temperantia, 1872
The Beguiling of Merlin, 1874
위 그림은 잠바코와 헤어지고 얼마되지 않아 그리기 시작한 그림이라고 해요.
한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번 존스는 이렇게 썼답니다.
"매년 산사나무에서 싹이 돋아날 때 그것은
이 세상에 다시 돌아와 무언가 말하려는 멀린의 영혼이다.
그는 너무나 많은 것을 말하지 못한 채 떠나갔으니까..."
그는 아직도 그녀에게 말 못한 이야기가 많은 듯 합니다...
너무나 사랑했지만
결코 연인이 될 수 없었던 이들의 사랑 이야기..
The Annunciation, 1879
Love Among the Ruins, 1894
존스와 헤어진 잠바코는 파리로 가서 조각을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오랫동안 노력한 그녀는 유명한 조각가 로댕의 제자가 되었죠.
그리고 다시는 결혼하지 않고 파리의 예술 속에 심취하여 살았다고 하네요.
이렇게 해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은 또 다시 예술로 피어납니다.
출처블로그 : 네이버 로지가 살고 있는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