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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그대를 꽃에 비하리
전민정 지음 / 창조문예사 / 2009년 11월
평점 :
폴 발레리가 시인(詩人)을 표현하길, “정신이 살짝 엿본 데 불과한 것을 그들의 말로 사로잡는 일” 이라고 했다. 혹자는 “시(詩)는 소중한 삶의 노래며, 자연의 신비에 대한 찬미, 또한 우리가 꿈꾸는 세계의 아름다운 표상이다”라고 표현했다.
전민정 시인의 시는 참 맑고 깨끗하다. 탁하지가 않다. 시를 읽다보면 그대로 그림이 그려진다. 시를 따라가다가 발에 툭하고 걸리는 걸림돌이 없다.
“문득 둘러본 세상이 / 시로 가득 합니다 / 서둘러 가을 낙엽을 밟으며 / 산길을 걷노라면 / 발등에 스스로 떨어지는 이름들이 / 내 안에서 길을 만듭니다.” (시집 ‘서두’에서..부분)
시인의 눈에는 모두가 시의 재료요, 향기이다. 때론 발밑에 만들어진 길보다, 내 안에서 만들어진 길이 더욱 길고, 깊다. 우린 그 안에서 모두 길가는 벗이자, 나그네이다.
“아직은 작은 그릇 / 투박하기 그지없는 상념들..”이라고 표현했지만, 그 상념의 편린들은 시인이 걸어온 삶의 여정과 걸어가고 싶은 길들을 밝게 비춰주고 있다.
“위로 위로 솟아서 / 하늘과 가까운 너 / 나는 너에게 귀 기울여 / 천상의 소리를 듣는다 //
긴 겨울 모질게 견딘 후 / 두 손 모으고 솟아오른 겸손의 기도 //
그러나 어찌하랴 / 삶의 빈 공간 채우지 못하고 / 마디로 남겨진 내 상처들 //
변치 않는 푸르름의 길을 따라 / 사색의 깊은 숲에 이르면 //
댓잎소리에 잠시 멈춘 발길 / 나는 긴 호흡을 한다” (‘대나무 숲으로 간다’ - 전문)
왜 아니랴, 누군들 마디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마디 덕분에 다시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산등성이와 어깨를 마주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 빈 공간이 시인은 내내 아쉽다. 그래서 이렇게 시를 쓰면서 그 공간을 채우고 싶은 모양이다.
“생각만 해도 / 왜 이토록 간절해질까 / 네 뒷모습을 보며 / 기도하는 나날 //
고열에 들떠 응급실에 실려 갈 때 / 달려가는 맨발 / 하늘은 온통 노란 절망 이었다 /
그런 나를 책망하시던 음성 / 주님은 늘 너와 함께하셨다 //
이제는 까치발을 올려도 닿지 않을 만큼 /
훌쩍 커버린 아들아 //
숱한 세월이 지나가도 / 네가 손을 뻗으면 /
나는 항상 그 곳에 있다.” (‘나는 항상 그곳에 있다’ - 전문)
시인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응급실에 실려 가던 아들을 염려하던 엄마의 마음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주님의 마음이다. ‘숱한 세월이 지나가도 / 네가 손을 뻗으면 / 나는 항상 그 곳에 있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위안을 받는다. 아들이 엄마의 사랑을 의심 안하듯 시인 역시 어떤 위기상황과 절망적인 여건에서도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 또한 시인의 손을 굳게 잡아 주시리라는 것을 믿고 있다.
“친구가 그리운 날에는 / 남한산성에 오릅니다 /
높게 쌓은 돌탑위에 / 내 마음도 하나 얹어 두고 옵니다 /
계곡의 젖은 흙내음 맡으며 / 우리가 함께 걸었던 길은 /
오늘도 그대로입니다//
길가에 흘러내린 돌 하나 /
무너지는 내 마음인양 눈에 밟혀 /
슬며시 집어 다시 올려놓습니다 /
어디서 무얼 하며 사는지 /
안부 전하듯 //
슬프게 내려앉은 산 그림자 기척에 /
너무 오래 무심했던 속내 들킨 듯 /
쭈뼛쭈뼛 산을 내려옵니다.” (‘너 그리운 날이면’ - 전문)
살아가며 누군가 문득 그리운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삶은 퍽이나 건조하리라. 그것은 아직도 지나친 자기애와 아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른 시인의 시집에서 보았던 시가 한 편 그려진다. 시인이 지하철역에서 20여년 만에 반가운 얼굴을 마주쳤다. 그러나 어쩌랴..서로 손 한번 맞잡아보곤, 언제 다시 만나자는 약속도 없이 그리 스치고 지나갔단다. 이젠 다시 만날 기회와 시간이 정말 얼마 안 남았는데 하는 마음과 함께..
‘슬프게 내려앉은 산 그림자 기척’..석양이 지는 모습은 슬프다. 발길도 빨라진다. 어두워지는 것은 잠깐이기 때문이다.
“봄날은 / 햇살을 안고 / 내게로 다가오는 / 아픈 사랑이다 //
움 돋는 기다림으로 삭은 / 나를 날려버리고 //
시샘하는 바람 다독여 / 햇살을 부른다 //
목련이 흔들리는 어느 날 / 모든 것 다 잃는다 해도 /
지금 내 봄날은 / 행복한 오후다.” (‘지금 내 봄날은’ - 전문)
봄은 누구에게나 희망이 될 수 있다. 겨우내 움츠렸던 대지도 기지개를 펴며, 숨을 고르는데 난들 그리 못할 이유가 없다. 봄은 무엇인가 기대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 느낌을 꽃이 먼저 전해준다. 지금 내가 가진 것, 내가 사랑했던 존재들이 사라져간다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현재라는 시간이다. ‘내 봄날은 간다.’가 아닌, 내 봄날은 행복한 오후라고 이름 붙이는 순간. 행복은 나와 함께 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 마주서면 / 내가 가진 것은 검불뿐 / 안다고 믿었던 것들은 /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 목발 딛고 일어서서 걸으려하면 /
세상이 수없이 태클을 걸어오고 / 내 절망은 거친 바람 소리 같았습니다. //
마주치는 수많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 이유도 계산도 조건도 없이 /
오로지 듣기만 하는 귀가 되도록 / 높은 곳을 향해 두 손을 모았습니다.//
살아가면서 눈뜨는 지혜 / 굳게 닫았던 마음의 문고리 / 이제야 조금씩 열어봅니다.
(‘이제야 조금씩’ - 전문)
때로 우리 몸이 아파서 환자가 될 때 배울 것은 겸손이다. 그렇지 못하고 몸 뻣뻣 마음 뻣뻣한 채로 살아간다면, 참으로 딱한 일이다. 시인은 ‘죽음의 문턱에서..검불하나 밖에 가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모든 것을 비우고 내려놓는다. 검불하나가 나의 삶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한발 한발 내딛는 것이 목숨을 걸어야할 만큼 힘든 걸음을 걷던 낙타의 등위로 새 한 마리 지나가며 떨어뜨린 깃털하나가 그를 무릎 꿇게 한다는 말이 있다. 검불하나의 위력이 그렇게 나타날 때도 있지만, 그 실체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하찮은 존재. 결국 내가 소중하게 생각되었던 것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시인은 깨닫는다.
‘말을 하는 것이 지식의 영역이라면, 듣는 것은 지혜의 특권이다.’ 라는 말이 있다. 어둠의 터널을 지나며 ‘오로지 듣기만 하는 귀’가 나의 주체가 되는 삶을 계획한다. 그리고 그동안 닫았던 마음의 문고리를 조심스럽게 열어본다.
글쓴이의 심상(心想)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장르는 시(詩)라고 생각한다. 전민정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시인의 기억 속 편린들과 삶을 바라보는 겸허함, 믿음, 내려놓음 등을 느낄 수 있다. 좋은 시를 읽는 것은 우리 마음 자락, 감성지대를 개척하는 길이기도 하다.
시인의 다음 시집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