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만 되면 산골은 시끄럽다. 바야흐로는 세상이 어떤 일로 들썩일 때 쓰는 말, 선거철 같은. 바야흐로 버섯철이다. 선거철보다 더 시끄럽고 사납고 몸을 들썩이게 하는 계절이다. 버섯채취 자격을 두고 한바탕 설전이 난무하고, 서로 견제하고, 다가올 새벽을 기다리며 잠을 설치고, 버섯과의 조우에 가슴을 설레고, 드디어 상품으로써 도매업자에게 넘어가게 되면 그간의 노고에 대한 보상으로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한마디로 산골 마을이 팔팔하게 살아있는 기간이다.


이곳 산세는 말 그대로 험난하다. 한때 산을 잘 탔다고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 아니다.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상체가 하체보다 긴 사람들이 등산을 잘 한다고 설명하면서 맨 앞자리에 있던 나를 눈으로 지목하던 생물선생님. 그래그런지 나는 산을 잘 탔다. 지리산 등산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덕유산 정상을 밟고도 끄덕없었고, 한라산, 백두산, 계룡산, 속리산 등등 산에 간다면 정상을 올라야 직성이 풀렸다. 그랬으나... 길도 없고 몹시 가파른 이곳 산에 비하면 등산로가 버젓한 산들은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라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나는 버섯을 채취하는 사람이 못 되었다. 늘어난 무릎 인대가 완전히 낫지 않았다는 핑계를 댈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도시문명에 길들여진 비루한 몸뚱이에 엄살대왕.


다음에 올리는 사진 속 버섯은 남편이 며칠에 걸쳐 조금씩 채취한 보석들이다.



송이버섯 다음으로 알아주는 능이버섯이다. 독특한 향과 맛은 비교불가. 주로 닭백숙에 넣어 먹는다.




싸리버섯. 싸리버섯은 종류가 다양한데 노랑색과 붉은색이 나는 것은 독버섯이라고 한다. 전통시장에서 판매하는 싸리버섯 중에는 간혹 붉은색, 노랑색이 섞여 있으니 조심해야 할 듯. 데쳐서 2~3일 물에 담갔다가 먹는데 손이 많이 간다.





까치버섯, 일명 먹버섯. 소금물에 살짝 데쳐서 기름장에 찍어 먹으면 고기맛이 난다. 끓인 물을 음료수로 마시면 좋다는 것을 처음엔 몰랐다.




노루궁뎅이버섯. 끓는 물에 몇 초 담갔다가 바로 꺼내서 기름장이나 된장을 찍어 먹는다. 전골에 넣기도 한다. 맛은 깊은 산 속 나무 냄새. 공기 중의 방사능 물질을 흡수하는 버섯으로 표고버섯과 노루궁뎅이버섯이 있다는 것을 몇년 전 탈핵강의에서 들은 적이 있다.




가장 부담없는 만가닥버섯이다. 왜 부담이 없냐면, 데칠 필요도 없고, 저장하기도 마뜩찮아 그냥 볶아 먹거나 찌게에 넣어 먹기 때문. 개성이 좀 약한 편.


십인십색이듯 버섯 또한 그렇다. 알고보면 만만치 않다.


왕 중의 왕, 송이버섯은? 100만 원(2022년도 기준)이나 되는 참가 신청금을 내야 채취할 수 있는 귀족 버섯이라 감히 평민은 접할 수 없다. 몰래 따면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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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9-30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섯, 식탁에서 자주 만나지만 그 지식엔 매우 미흡한 나에게 유익한 공부시간이었어요.

nama 2023-09-30 13:1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잘 몰라요. 하나씩 배워가고 있어요.

얄라알라 2023-09-30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이유로 20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표고버섯을 먹지 않습니다. 심지어 표고 육수도 먹지 않는^^;;;

nama 2023-10-01 12:17   좋아요 1 | URL
명태류도 같은 이유로 멀리하는게 좋은 것 같은데, 재밌는 것은 50대 이후의 남자들은 상관이 없다고 하네요. 황태를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저는 가리지 않고 먹어요. 흠...시절따라 살아야지, 하고요.
 

인파로 북적이는 절.

이해관계로 얽히고 설킨, 사찰 내 찻집과 신도들의 갈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저잣거리 같은 풍경. 갈등 해결은 신도들의 몫인가 스님들의 몫인가. 방문객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음료수는 예전 선거 때 돌리는 고무신 같은 것. 자기편 만들기. 똘똘 뭉친 신도들과 맞서는 찻집 주인의 담대한 대응. 정치판 같은 광경.

방문객의 눈길을 끄는 펼침막의 경구들. 누구를 향한 것인지 묻고 싶다. 제발 그만 싸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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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가사 도우미 제도를 생각하다가 2012년 알라딘 서재에 쓴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뭐 배울거라고 '이런 나쁜 사례를 베끼려고 하는지'...앞이 뻔히 보인다. 

옮겨본다. 


<홍콩의 한인 민박>

https://blog.aladin.co.kr/nama/5400963


어쩌다 홍콩에 여러 번 가게 되었다. 딸아이의 말이, 부산보다 홍콩을 더 자주 가게 되는 것 같단다. 일부러 홍콩에 간 것은 단 한번. 인도 여행 끝이나 말레이시아 여행 끝에 잠깐 들르다보니 홍콩에 자주 가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홍콩은 무엇보다도 공항에서 시내까지의 접근이 무척 단순하고 옥토퍼스라는 교통카드의 사용이 편리할 뿐더러 넓지 않은 지역에 재미있는 여행 요소가 많아서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홍콩에 가게 되면 편리함 때문에 그냥 별 생각없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을 이용하게 된다. 빌딩의 한 부분을 임대해서 여러 개의 방으로 개조하여 여행자 숙소로 만든 곳이다. 내가 그간 묵었던 곳은 세 곳이었는데 공통점은 아침밥이 제공된다는 것, 방이 비좁다는 것, 실내에서 빨래를 건조한다는 것, 외국인 여성을 가정부로 두고 있다는 것 등이다.

 

이번에 묵었던 민박은 유달리 정갈한 곳이었다. 다른 두 곳은 청소도 대충이었고 음식도 그저 그랬는데 이번 민박은 청소, 음식이 모두 만족스러웠다. 이틀째 되는 날은 솔직히 청소는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다른 곳처럼 대강하거나 내버려두겠지 싶어서 입던 옷도 그냥 침대에 걸쳐놓고 양말도 침대 머리맡에 널어놓고 가방도 구겨진대로 방치해 놓고 외출했다. 그런데 돌아와보니 너무나 말끔히 정돈되어 있어서 놀랍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이럴줄 알았으면 정리해놓고 나가는 거였는데, 싶었다.

 

다음 날 아침, 아침밥을 먹고나서였다. 어젯밤부터 눈물을 글썽거리던 필리핀 출신의 가정부 아주머니가 나를 보더니 울먹거리는데 눈에는 눈물이 그득 고였다. 왜 우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간밤에 한국인 주인이 와서 혼을 내고 갔다고 한단다. 누군가 홈페이지에 그녀가 손님에게 소리를 질렀다는 불평을 했다고 한다. 그녀의 서러운 호소를 들어주었다.

 

그녀가 보여준 그녀의 작은 방에는 침대가 없었다. 침대 자체가 들어갈 방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공간에 단지 얇은 매트 한장 깔고 자는 방이었고, 그 방마저 누군가에게 주고나면 그녀의 잠자리는 빨래를 널어 말리는 구석진 곳 바닥이라고 한다. 천정에는 빨래 건조대가 걸려있고 바닥에는 냄새 제거를 위해 선풍기 따위가 널려 있는 아주 협소한 공간이다. '그게 네 방이다'라는 소리를 듣는다며 6년간 일한 곳에서 그런 대접을 받고 있다며 그녀는 다시 울먹거린다. 

 

잠깐만 보아도 민박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열 개 가까운 방을 운영하고 있는데 관리하는 사람은 그 필리핀 여성 혼자였다. 아침 밥 준비부터 청소, 손님 체크인, 체크아웃 등 모든 일을 혼자서 감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혼자 운영하는 곳 치고는 정말 완벽하게 깨끗한 곳이었다. 웬만한 호텔 수준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빨아널은 양말은 건조대에 걸려 있었고 화장실 바닥은 물기가 닦여져 있었고 소지품 등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민박에서 이런 대접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당황스러웠고 미안했다.

 

아직 싱글인 이 필리핀 여성은, 하루 중 자기 시간이라고는 잠잘 때 뿐이라며 하루 종일 일, 일, 일, 일 뿐이며 휴일도 없다고 한다. 마치 노예의 하루 같았다. 한국인 주인이 꼬박 챙기는 것은 손님의 숙박 요금이라며 아마도 철저하게 챙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손님 대부분이 한국인인데도 한국말을 가르쳐주지는 않고 그냥 영어만 사용하란다며 그 부분에도 불만이 쌓여 있었다. 6년간의 분노와 슬픔과 피곤으로 얼굴의 표정이 몹시 상해있었고 아마도 우울증에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아마 내가 그 입장이라도 그랬으리라. 더하면 더했을 터.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작은 민박이었지만 일거리는 상당했다. 살림하는 사람이라면 그 일거리의 정도가 금방 파악이 된다. 하루종일 종종거리며 일을 하지 않으면 그렇게 깨끗하게 유지될 수가 없다. 그래서 미안하고 창피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 하루종일 종종거리며 일을 한 덕분에 누군가는 하루종일 밖에서 맛있는 것 먹고 룰루랄라 놀다 들어와서는 깨끗하고 깔끔하게 치워놓은 방을 보고 콧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을, 그걸 당연한 대우라고 여겼다는 사실을 곰곰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한 돈을 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저렇게 뒤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보고는 그게 당연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게 먹는 아침 밥과 만족스러운 방 청소 뒤에는 보이지 않는 한숨과 눈물이 숨어 있는데 그걸 몇 푼의 돈으로 맞바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여행이 징그러워지기 시작했다.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고, 그 고통을 무시하며 자기 이익만을 노리는 한국인 주인과 내가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웠다.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하루종일 빨래를 했다. 빨래를 건조대에 널면 몇시간 동안은 세제냄새가 온집안에 가라앉아있어 냄새를 견뎌야한다. 냄새가 싫어 헹굼을 여러번해도 냄새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빨래 냄새를 맡으니 다시 그 필리핀 여성의 눈물 범벅 얼굴이 떠올랐다.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그 가녀린 몸매와 큰 눈망울이 내내 떠올랐다.



이 글에 달린 누군가의 댓글도 옮긴다.



참 공감가는글이네요.

그 아줌마는 대단하네요.

저도 얼마전에 셩완에 민박을 오픈+테스트운영 중인데, 루이아줌마는 위에서 소개하신 분 정반대로 보시면 됩니다.
민박을 새로시작한건 아니구요, 그동안 임대하는 집여러 곳중 일부를 한인관광객들에게 오픈했는데, 다녀가신 분들의 입소문으로 일이 많아지면서 아줌마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울 아줌마는 인도 사람인데요, 마음씨착하고, 정직한편이고, 일은 못하나 음식은 잘하는편. 허나 민박한다는이유로 월급을 두달치요구를 해서 지금은 다른 아줌마를 물색해서 데려오는 중예요.
방청소를 해도 제가 다시해야하고, 제가 검사 안하면, 보이는데만 잘해놓고,그렇다고 저희 집이 더럽거나그롷진 않아요
인태리어가 무지 밝게 되어서 조그만 머리카락도 다보이는 그런 집이예요.
울 아줌마는 혼자서는 방 6개짜리 집을 혼자 청소 못해요. 우리는 조식포함이 아니라서
일도 적어요, 우리식구 밥도 저녁한끼만 채려주면되는데,하루 종일 꿈지락, 그리고 전화 통화..또 통화..또 통화...그러고도 월급 두배.아줌마침대는 손님들침대와 동격인 질좋고 깨끗한 침대.
방이 모자라면, 아둠마는 방의 침대에서, 나는 바닥잠....우린 이래요.

다 위에 소개한 아줌마 같지 않아요. 홍콩엔 노동법이란게 있구요, 그아줌마도 특별 페이를받으면서 불평을 할것이예요. 물론 힘든일이죠. 그 아줌마도 월급 많이 더 받을껍니다.보통월급에 그렇게 많은 일해야한다면, 벌써 노동청에 일러서 다른집에 갔을껄요..
물론 돈만 더준다고 고용인들이 행복해하고 고마워 하진 않습니다.
인격대접을 원하는데, 어떤 가정부들은 인격대우해주면, 주인을 괴롭힙니다.

모든게 양면이 있지만, 그 아줌마는 특히 맘이좋고,일도 열심히 하고, 참을성도 많고 그런 사람 같네요.

그민박집도 딱하네요. 빨래건조기하나면,일이 훨 수월할텐데...
그래서 우리집에 오시는 분들이 그러셨군요.

홍콩원룸텔 잠자리가 뽀솔뽀송하다구요,
이상입니다.다음엔 홍콩섬쪽 민박도 체험해보세요.



위 글은 고용주의 입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이다. 과연 홍콩의 노동법이 제대로 구실을 할까 의문스럽다. 다음은 오늘 한겨레 신문에서 읽은 글이다.


홍콩의 아시아 가사노동자 노조연맹은 이주 가사노동자의 35.8%가 여권, 근로계약서를 고용주에게 빼앗긴 채로 일하고, 상한 음식이나 고용주 가족이 먹다 버린 음식을 제공받은 경우가 46.3%에 달한다고 2018년 1월 국제노동기구회의에서 밝혔다. 언어, 신체, 정신적 학대를 경험했다는 응답도 55.2%였다. 지친 몸을 누일 취침 공간에서는 사생활이 전혀 보장되지 않고, 전체 노동자의 4분의 1은 거실이나 부엌, 발코니, 계단 아래 공간, 화장실 같은 곳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한겨레 신문 '홍명교의 이상동몽 - 외국인 가사 도우미 제도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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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어떤 분은 나보다 13살 연상의 할머니인데 전직이 목사이시다. 오늘은 밥을 사주신다고 해서 아파트 현관에서 만났다. 만나자마자 갓 파마를 한 내 머리를 보고는 염색 좀 하라고 하신다. 벌써 몇번째인지 모르겠다. 그때마다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하는데도 변함없이 지적하신다. 순간 밥을 먹으러 가야 하나 고민이 스친다.


"제 나이가 60이 넘었어요. 이 나이에 머리 염색하라는 말을 계속 들어야 하나요?" 얼굴이 예쁜 것보다 말씨가 예쁜 사람을 좋아한다는데 나는 죽다 깨어나도 (둘 다) 안되겠구나 싶었지만 이미 뱉은 말. 사실 나는 벼르고 있었다. 한번만 더 염색 어쩌구 하시면 한방 먹여야지 하고. 


염색 권하는 사회에 대해서. 젊어보여야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사회에 대해서. 젊음을 동경하는 사회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분명 기 - 승 - 전 - 하나님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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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컴한 새벽. 늙은 개는 늙은 인간처럼 새벽잠이 없는지 머리맡에서 끙끙대는 통에 잠을 이을 수가 없다. 더듬더듬 목줄 채우고, 배변봉투 챙기고, 눈 비비며 흐느적 흐느적 걷다가 오늘은 그만 빗물이 질펀한 화단가의 진흙을 밟고 말았다. 오른쪽 무릎이 땅에 부딪히면서 양쪽 다리가 꺾여 거꾸로 된 w 자가 되었다. 당장 아프기도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는 오른쪽 무릎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설상가상이다.




이 녀석을 하루에 두 번씩 숙제하듯 꼬박꼬박 산책을 시키며 수발을 들어준다. 나의 원래 지론은 이랬다. '개는 개답게 키워라.' 즉 개는 실외에서 줄에 묶은 채 키우는 게 맞다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딸내미의 '전도'로 유기견을 키우게 되면서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게 되었다. 


처음과는 달리 해가 지날수록 배변 실수가 잦아지는데 아마도 나이 탓이겠거니 여기다가도 짜증이 나는 건 나 또한 늙어가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딸이 어렸을 적에 이렇게 정성스럽게 딸이 누는 똥을 닦아줬던가. 부모가 늙고 병들었을 때 내 손으로 똥오줌 받아본 적이 있던가. 직장에 다닌다고 어린 딸을 시어머니께 맡기고 주말과 방학 때 잠깐씩 봐준 게 전부. 딸의 유아시절을 오롯이 함께 보내지 못했다. 정신차리고 보니 딸은 부모의 이상한 교육열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어린 딸의 똥오줌을 제대로 봐주지 못한 죄값이 컸다. 부모한테는 더 가혹했다. 역시 직장 핑계로 모든 돌봄에서 벗어나 있었는데 지나고보니 당장의 안일을 추구했을 뿐 생각과 행동이 한없이 가벼웠었다.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는 엄마의 똥오줌을 한번도 내 손으로 봐드린 적이 없었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부모한테 받는 것을 당연하게만 여겼다. 


그간 부모와 자식에게 못한 정성을 개에게 기울이면서 때늦은 감상에 젖는다. 어리석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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