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은 창백한 손으로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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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인 연우가 새해 첫날부터 선양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급파된다. 에덴 종합병원 차요한 원장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인가. 시간은 15년 전 사건과 지금 일어난 사건을 교차하며 추악한 사실을 고발한다. 마치 필로멜라가 베를 짜서 테레우스의 만행을 고발한 것처럼. 그렇게 시간이 엮은 태피스트리는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줄까.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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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킹 호러 - 19세기 영국 고전괴기소설 13선 빅토리안 호러 컬렉션 1
찰스 디킨스 외 지음, 임명익 옮김 / 크로노텍스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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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1837~1901)에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처음 출판된 단편 괴기 소설들을 모아둔 책이라고 해서 냉큼 샀다. 산업혁명과 식민지 약탈로 거대한 부를 이룬 이 시기의 영국은 인쇄술도 발달해서 값싼 인쇄물이 많았다고 한다. 당연히 많은 장르의 소설들이 출판되었고, 그 중에 괴기 소설도 포함되었는데 제법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알지 못해서 괴이한 현상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과학의 발달로 그런 현상들이 설명 가능해지자 점점 괴이한 현상이나 심령 현상 등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잘난 체 하는 상류층이나 중산층 남자들에게서 그런 경향이 보인다. 그런데 웃긴 건 그런 심령 현상에 등장하는 것도 남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17세기부터 법이 지나치게 엄중하여 판사들이 교수형을 자주 선고했는데, 이렇게 교수형을 남발하는 판사를 '교수형광 판사'라고 불렀다. 이 '교수형광 판사'류의 괴담이 조셉 세리든 르파뉴의 <에인저 거리에서 일어난 기묘한 소동에 관한 기술>과 브램 스토커의 <판사의 집>이다. 이런 괴담의 유래는 17세기 실존 인물인 '조지 제프리스'로 추정된다고 한다. 보다보면 <스위니 토드>가 생각나는데, 이 이야기 역시 '교수형광 판사' 괴담류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보면 그 판사들은 모두 기이한 죽음을 당하는데, 죽은 뒤에도 어째서 다른 이들을 괴롭히는지... 아마도 남은 사람들의 뇌리에 끔찍한 그들의 행각이 남아 두렵게 하는 것은 아닐까.


찰스 디킨스의 <황혼 무렵에 읽을 것>은 여행 시중꾼들들이 풀어놓는 이야기이면서, 그 이야기를 들은 화자인 '나' 역시 비슷한 일을 겪는다. 영국 새신부 이야기 하나, 영국 신사 제임스 이야기 하나 이렇게 둘이지만 결은 같다. 새신부는 꿈에서 본 남자 때문에 겁 먹고, 제임스는 동생이 죽기 전 동생의 영혼을 보면서 겁 먹는다. 그나저나 이야기가 끝난 후 다섯 명의 시중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렇게 인간이 아니거나 있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인간을 보거나 하는 등의 이야기는 많다. 그 중에 강렬했던 것은 헨리 제임스의 <식>이었는데, 귀신과의 로맨스인지 아니면 질투에 사로잡힌 여자의 집착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렸을 터. 나는 귀신과의 로맨스에 한 표를 던졌지만, 아마 다르게 읽으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다. 


그 당시 유산을 물려받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 중엔 여자가 많았다. 유산 상속 1순위는 직계 남자였고, 직계 여자는 친척 남자보다도 순위가 낮았으니. 게다가 교육도 여자에겐 사치였다. 메리 엘리자베스 브래든의 <귀퉁이 그림자>를 보면 그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만약 이야기 속 마리아가 부친의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다면 베스컴네에서 그렇게 살지 않았을테다. 그리고 스케그 영감이 그 방에서 지내보지 그랬나. 적당한 관심과 적당한 무관심이 섞여 비극적 결말로 끝나버린 이야기라 가슴 아팠다. 


싸게 나오거나 흉가로 소문난 집은 예나 지금이나 존재한다. 신기하게도 그런 소문은 끊이지를 않는다. 로다 브로턴의 <19세기 런던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나 샬롯 리델의 <열린 문>이나 이디스 네즈빗의 <등신대의 대리석상>이나 허버트 조지 웰스의 <붉은 방>이 그런 류의 이야기이다. 각각은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붉은 방>은 귀신이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존재가 범인이라는 것이 달랐다. 하지만 촛불이 계속 꺼지는 건, 이유가 있겠지. 어쨌거나 저렴한 집은 이유가 있었고,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고, 늘 그렇듯 희생자가 있었다. <등신대의 대리석상>은 좀 안타웠던 게 소문을 믿지 않더라도 아내와 함께 있어야지 어째서 그 교회까지 혼자 걸어갔느냐 하는 것이다. 홀린 것일까, 객기일까. 어릴 때 초등학교에 하나씩 있던 괴담과 비슷한 이야기였다.


죄 지은 자가 결국은 벌을 받게 되는 건 좋지만, 그 과정이 으스스하기 때문에 괴담이 되기도 한다. 벌을 주는 이가 인간이 아니거나, 벌을 주는 방식이 저주이거나 하니까. 거트루드 베이컨의 <교령회장>에서는 인간말종이 어떻게 몰락하는 가를 볼 수 있다. 그것도 자신이 저지른 방식으로. 로사 멀홀랜드의 <헐리벌리 저택의 신들린 오르간 연주자>에서는 방탕한 나쁜 사람이 장례식장에서 저지른 일 때문에 저주 받아 오르간을 떠날 수 없는 이야기이다. <밸런트레이 귀공자>도 생각나는 이 이야기는 나쁜 놈이 지 혼자 안 죽고 새로운 희생자를 찾았다는 점에서 그 놈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알 수 있다. 그 놈이 망친 인생이 한 둘이 아니다. 아멜리아 에드워즈의 <착각이었을까>도 희생자가 가해자를 따라다니면서 그를 고발하는 내용이다. 


거트루드 베이컨의 <고르곤의 머리>는 우리가 익히 아는 메두사 이야기를 가져왔는데, 이야기를 하다 말고 끊어서 뒷 이야기가 궁금한 게 괴이한 것인지, 메두사 머리가 괴이한 것인지 아리송하다. 그래서 누가 살아나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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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12-26 1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책이 있었네요. 호러는 딱히 좋아하진 않는데 필진을 보니 왠지 땡기네요. 나중에 함 읽어보겠습니다.^^

꼬마요정 2023-12-26 17:44   좋아요 1 | URL
저는 호러를 좋아해서 샀는데, 필진이 좋더라구요. 이야기들이 짤막짤막해도 시대상을 엿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이한 이야기들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구요. 즐겁게 읽으시면 좋겠어요^^
 

모짜가 자꾸 남집사 이불에 테러를 합니다. 분명히 중성화 수술을 했는데 왜 영역표시를 하는 걸까요???? 그것도 꼭 남집사 이불에만 ㅋㅋㅋㅋㅋㅋ 그래서 '키'를 준비했습니다. 친하게 지내는 분이 양산에서 까페를 하는데, 거기서 얻어왔어요 ㅋㅋㅋ 


양산 <소소서원>



'키'가 너무 작네요 ㅋㅋㅋ 모짜 뭔가 모자 쓴 느낌 ㅋㅋㅋㅋ 어디로 보내면 소금 받아올 수 있을까요 ㅋㅋㅋㅋㅋㅋㅋ 


모짜만 씌우면 심심하니까 카프도 씌워봤어요 ㅋㅋㅋ 역시 뭘 씌우면 싫어하는 냥이들 ㅋㅋㅋ


하는 김에 레이도 한 번 ㅋㅋ 레이한테도 '키'가 작군요 ㅋㅋㅋ 


샤미는 씌웠는데 금세 벗어던져서 사진이 엉망진창인... 크으... 그래서 그냥 이쁜 사진으로 ㅋㅋ


다른 집사님들은 크리스마스라고 이쁘게 꾸며서 올리는데, 나는 오줌싸개 냥이라고 동네방네 소문 내는 중 ㅋㅋㅋ 모짜야, 그러니 꼭 화장실에서 볼일 보렴!!!! 카프랑 레이는 이불에 오줌 안 싸지만 그냥 씌워서 미안 ㅋㅋㅋ


맥주는 집사가 마셨는데, 왜 꼬미가 술 취한 냥 누워 자는 걸까요 ㅋㅋㅋㅋ 다행히 여기서 자면 입은 안 돌아가니 다행이지요 ㅋㅋㅋ


카..카프야 거기서 왜 그래??????


요즘도 여전히 개그감을 뿜뿜하는 카프입니다. 참 웃기고 귀엽지요 ㅋㅋㅋ


마지막은 작년에 딱 한 번 해 본 크리스마스 트리 놀이 입니다. 이 트리는 올해 주짓수 도장에 기증했습니다. 냥이들이 온 난리를 쳐서 집에 둘 수가 없더라구요 ㅋㅋㅋㅋ



모두 따뜻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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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12-25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악 너무 귀엽습니다 ㅋㅋㅋㅋ 꼬마요정님 오늘 성탄절 즐겁게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잘 보고 갑니다!!!

꼬마요정 2023-12-25 19:24   좋아요 1 | URL
귀엽죠? ㅋㅋㅋ 저도 너무 예뻐서 뽀뽀 해줬습니다. ㅋㅋㅋㅋ
서곡 님도 성탄절 즐겁게 보내세요^^

서곡 2023-12-25 15: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그에 오줌싸개 키 소금 ㅎㅎㅎ 냥님 이름도 다 ~~~ 나아쁜 집사

꼬마요정 2023-12-25 19:25   좋아요 1 | URL
ㅋㅋㅋ 사실인걸요 ㅋㅋㅋ 모짜만 오줌싸개입니다. ㅋㅋ 박제 해 놔야죠 ㅋㅋ 모짜의 만행!!
전 나아쁜 집사 ㅋㅋㅋ 그래도 이쁘네요 ㅋㅋㅋ

서니데이 2023-12-25 15: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메리크리스마스, 가족과 고양이들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3-12-25 19:26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 님!! 즐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추운데 감기 조심하시구요!!!!

잠자냥 2023-12-25 18: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키 좀 빌려주세요…. 우리 3호 씌우게….
근데 저는 키 직접 써 본 적 있어요. ㅋㅋㅋㅋ

꼬마요정 2023-12-25 19:27   좋아요 1 | URL
그 댁 3호도 말썽쟁이군요 ㅋㅋㅋ 어딜 가나 오줌싸개 한 마리 정도는 다 있군요.
근데 키가 너무 작지 않나요? 사람용으로 사야 하나? 그 생각 중입니다만...
잠자냥 님이 써 보셨다구요? 아이쿠, 소금은 많이 받으셨나요? ㅋㅋ
전 쫓겨난 적 있어요 ㅋㅋㅋㅋ

페넬로페 2023-12-25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키라고 해서 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넘 귀여워요 ㅎㅎ
효과가 있는지 궁금한데요!
역시나 귀염둥이 카프네요~~

꼬마요정 2023-12-26 00:05   좋아요 1 | URL
키가 그 키였어요 ㅋㅋ 좀 더 컸어야 했는데 ㅋㅋㅋ 그래도 넘 귀여워서 신났습니다. 효과는 없어요. 오늘도 저녁에 방심한 틈을 타 이불에… 크으 ㅠㅠ
카프는 여전합니다 ㅎㅎㅎ

희선 2023-12-26 0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키 쓴 모짜 귀엽네요 다른 아이들한테도 키를 씌우다니, 그래도 귀엽습니다 고양이는 뭘 해도 귀엽군요 귀여운 아이들과 사는 꼬마요정 님은 늘 즐겁겠네요 고양이들 새해에도 건강하게 지내기를 바랍니다 꼬마요정 님도 늘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꼬마요정 2023-12-26 10:52   좋아요 2 | URL
모짜에 비해 키가 너무 작아서 귀엽지요? 정말 말씀처럼 고양이는 뭘 해도 귀여운 듯 합니다. ㅎㅎㅎㅎ 가끔 냥이들이 사고를 치면, 예를 들면 이불에 오줌을 싼다든지, 전자렌지 위에 있는 물건들 죄다 떨어트린다든지, 비닐 껍데기 물고 뛰어가서 물그릇에 빠트린다든지 할 땐 안 즐거워요. 그런데 사고 치고 난 뒤에 똥그란 눈을 보면 너무 귀여워서 즐겁죠... 그러다가 사고 친 거 치우면서 한숨이 나구요 ㅋㅋ 네 그렇습니다.

고양이들도 저도 고맙습니다. 희선 님도 지금도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12-26 1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귀여운 냥이들이 왜케 많나요ㅎㅎㅎ

꼬마요정님! 즐거운 연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꼬마요정 2023-12-26 11:55   좋아요 2 | URL
귀엽죠!! ㅎㅎㅎ 저는 팔불출 집사입니다. 어찌나 귀여운지요 ㅎㅎㅎ

고양이라디오 님도 즐겁고 행복한 연말 보내세요^^
 
삼개주막 기담회 4 케이팩션
오윤희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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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삼개주막 기담회도 4권이 나왔다. 3권에서 연암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 온 선노미는 그 곳에서 겪은 끔찍한 사건 때문에 조선으로 돌아왔어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정당방위였다고는 하나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에 선뜻 삼개주막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선노미는 정처없이 헤매는데, 헤매는 와중에도 기이한 일들은 일어났다.


우생 스님의 도움으로 암자에 머물게 된 선노미는 그 곳에서 <지옥도>를 본다. 앞서 나왔던 배우자를 보지도 않고 그릴 수 있었던 화가의 아버지가 그린 것 같았다. 박현은 자신이 그린 그림이 실제로 일어나게 되자 그림을 그리지 않으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세상은 악인들이 가득한 곳인가, 사람들이 겉은 온화한 미소로 위장한 채 속은 시커먼 짐승이 되어 한 소녀를 유린하는 것을 알게 된 박현은 <지옥도>를 그린다. 그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들이 벌을 받을수만 있다면 말이다. 이 기이한 이야기 속에서 선노미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죄책감과 반성. 이미 저지른 일은 돌이킬 수 없다. 그렇다고 털고 갈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암자를 떠난 선노미는 밤에 추위를 피해 서낭당에 들었다가 사당패를 만났다. 그 곳에서 덕임과 길상을 알게 되고, 그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듣는다. 여전히 기이한 이야기 속에서 선노미는 뜻밖에도 세진을 보게 된다. 세진은 선노미가 삼개주막에 있을 때 만났는데, 자신의 아버지가 사실은 진짜 아버지를 배신하고 자신을 키웠다는 과거를 마주하자 과거 속에 갇혀 버린 도령이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지만 길상도 세진도 선노미도 여전히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렇게 현재를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세진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선노미는 사당패를 떠난다.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으로 가기 위해. 아직은 못 간다 하더라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했으니까.


그렇게 돌아갈 듯 못 돌아가면서 떠도는 선노미는 '보름달 마귀'를 만나게 된다. 앞서 나왔던 추악한 내면을 드러내 실행하게 만드는 '가면'을 만난 것이다. 지금 봤으면 싸이코패스라고 진단받았을 놈이 '가면'을 만났으니 얼마나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을까. 범죄가 일어난 산을 지나다가 범인으로 몰릴 뻔한 선노미는 오작인인 병오를 만나고 같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면서 다시금 삶과 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추악한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다만 그것이 잘못된 것을 알기에 더 이상의 생각을 멈추고 실행하지 않을 뿐이다. 


다시금 길을 떠나게 된 선노미는 어느 주막에 들렀다가 반월댁의 눈에 든다. 아들을 잃었다는 그녀는 선노미에게 일을 주고 주막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역시 주막에는 여러 사람들이 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기이한 사건들도 함께 나타났다. 무용은 사람들의 능력을 사고 파는 신기한 장사치이다. 혹시나 여러분도 이런 사람을 만난다면 함부로 자신의 능력을 팔거나, 다른 이의 능력을 사지 않길 바란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가장 소중하니까. 만기는 남들보다 냄새를 잘 맡는 능력이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난 삼아 그 능력을 팔았다가 죽을 뻔 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되돌리려고 했다가 끔찍한 능력을 사고 만다. 이 이야기의 말미에 배우자의 그림을 그려주는 노인이 나온다. 그 노인의 선택은...


선노미의 고뇌와 방황을 이해해 준 반월댁은 선노미에게 집으로 갈 것을 권한다. 그리하여 선노미는 다시 방랑길에 오르는데, 때는 겨울이라 오돌오돌 떨던 선노미는 우연히 기방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 곳에서 앞서 만났던 사당패를 만나게 되고, 기생 연홍과 친분을 쌓는다. 가장 인기가 많은 기생인 연홍에게도 사연이 있었고, 그 기방에서 겨우 살아가는 퇴기인 홍매에게도 사연이 있었다. 물론 당연히 인간의 탐욕과 추악함이 빠지지 않는다. 역시 사연은 누군가의 욕심이 누군가의 삶을 짓밟는 것이고, 누군가의 눈물로 만들어진 누군가의 웃음인 것이다. 다 불타버렸으면. 홍매가 강도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풀면서 선노미와 덕임은 다시금 생에의 의지를 다진다. 아, 이 이야기에서는 타내를 만나다. 선노미의 첫사랑이자 엄마인 분이의 정인 말이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 버렸지만, 선노미의 고백에 중요한 말을 남겼다. 네 인생을 살아, 마음의 어둠을 몰아내렴.


기방을 떠난 선노미는 어느 마을에서 종훈을 만난다. 선노미에게 언문을 가르쳤던 그는 그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곳에서 잠시 지낼 수 있게 된 선노미는 차돌이를 알게 된다. 하지만 가정사에 개입하기 어려웠던 그는 전전긍긍 계속 주변만 맴돌았는데... 그 때 이랬더라면, 이렇게 했더라면 이라는 말은 부질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에 계속 매여있다면 앞으로 갈 수 없으니까. 그 때 하지 못한 일을 지금이라도 하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나마 죄 지은 자가 합당한 벌을 받게 되면 그나마 한이 풀리지 않을까. 그러면서 차돌이 남긴 낙서, 그림들을 통해 이야기로 위로 받았던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선노미 역시 위로 받는다. 이제 돌아가야지.


인연은 그렇게 돌고돌아 선노미에게 돌아왔다. 앞서 만난 이야기들이 그를 사람들이 사는 세상 속으로 끌어냈고, 청나라를 다녀오게 했다면, 이번에 만난 이야기들은 방황의 끝에서 그를 잡아 줄 이야기들일지도 몰랐다. 결국 소중한 것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일테니. 

"무서운 건 귀신이나 마귀가 아니다. 인간이 제일 무서워"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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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2-25 0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미야베 미유키 소설 미시마야 변조괴담이 생각나게 하기도 하네요 여러 사람 이야기를 듣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상한 일을 겪기도 하는가 봅니다 앞으로 이 시리즈 또 나올 것 같네요 자기한테 있는 게 소중하죠 사람은 거의 그걸 모르고 다른 걸 생각하기도 하는군요

꼬마요정 님 성탄절 마음 따듯하게 보내세요


희선

꼬마요정 2023-12-25 14:07   좋아요 1 | URL
네 5권도 나올 것 같아요. 선노미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서 겪는 일들이거나, 집에 돌아가서 겪는 일들이겠죠? 이런 이야기는 시리즈로 드라마로 나오거나 애니메이션으로 나오면 좋겠어요. 일본도 기이한 이야기들 많아서 재미있을 것 같아요.

희선 님 성탄절 따뜻하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고독사 워크숍 오늘의 젊은 작가 36
박지영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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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람은 혼자 죽는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더라도 죽음의 순간, 죽음이 찾아 온 순간은 오롯이 혼자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모든 사람은 '고독사' 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책은 어떻게 하면 '고독사'를 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죽음을 잘 맞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어떻게든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로 바뀌게 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으나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한 때 존경했던 선배와 연락이 끊어진 건 오래되고, 여동생의 눈치를 보느라 집을 나와야 하고, 공무원 시험에 실패하고 취업에 실패해서 부모님 눈치를 봐야 하고, 자식의 죽음 때문에 죄책감을 가슴에 끌어안고 사느라 기억이 오락가락하게 되고, 돼지를 구하려다 죽음을 맞이하는 등의 사연을 보면 사람들은 섬 같았다. 지나치게 연결되면 불편하고 지나치게 고립되면 쓸쓸해지는 그런 섬들... 사실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 지를 몰라 서투르게 다가가서 상처 받고, 상처 받기 싫어 아예 벽을 만들어버리고, 외로워서 벽을 부수고 싶지만 부수는 방법을 모르게 되어버린 것 같은 그런 섬들 말이다. 어쩌면 어린 시절, 단 한 순간의 경험이 왜곡되어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들었을 수도 있고, 어른이 되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상처 받고 배신 당해서 쓸쓸해졌을 수도 있고, 그 순간에 정의롭게 행동하지 못해서 두고두고 마음의 짐을 안고 살게 되었을 수도 있다. 


내가 아니라 다행이다를 중얼거리는 마음도, 누군가를 찌를까 걱정되어 연필을 뭉툭하게 깎는 마음도, 우는 판다 인형탈을 뒤집어 써야지만 울 수 있는 마음도 모두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고독사 워크숍이 도움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만난 QR코드를 통해 '심야코인세탁소'에 접속한다. 그리고 그들은 고독사 워크숍에 참가하면서 채널을 받게 되고, 각자만의 방식으로 채널을 꾸며간다. 누군가는 의자를 뛰어넘고, 누군가는 연필로 스케치를 하고, 누군가는 철봉에 오래 매달리기를 한다. 누군가는 사연을 상상하여 부고를 써 주기도 하고, 서툰 솜씨로 어려운 곡들만 피아노로 연주하기도 했다. 그렇게 '별 것 아닌 것' 같은 일들을 꾸준히 해내면서, 각자의 고통을 '농담'으로 승화하면서 회복탄력성을 길러가는 이들... 예전에 받지 못한 관심을 받고, 스스로 그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게 되고, 정의롭지 못했던 자신을 용서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불안을 안고 있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삶의 의지를 잃어버릴 만큼 끔찍한 상실을 경험할 수도 있고, 사람에게 상처 받아 좌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찾아오는 위안에 위로받을 수도 있고, 희망을 가질 수도 있다. 여기 고독사 워크숍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고장난 듯한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들이다. 


'우는 판다'와 '라이프가드'의 사연이 가장 가슴에 남았는데, 어쩌면 나에게 가장 소설처럼 다가오는 이야기라서 그런 걸까.

할머니, 나 계속 이렇게 형편없이 살아도 될까?
할머니는 말했다.
당연하지. 세상이 왜 이렇게 형편없는 줄 알아? 형편없는 사람들만 살아남았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너도 형편없이 살아. 그러다가 가끔 근사한 일 한 번씩만 하면 돼. 계속 형편없는 일만 하면 자신에게도 형편없이 굴게 되니까. 근사한 일 한 번에 형편없는 일 아홉 개, 그 정도면 충분해. 살아 있는 거 자체가 죽여주게 근사한 거니까, 근사한 일은 그걸로 충분히 했으니까 나머지는 형편없는 일로 수두룩 빽빽하게 채워도 괜찮다고. -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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