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하건대, 분명 좋아질 거예요
나태주 지음 / 더블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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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복 많으신 분이구나‘ 했다가, ‘아, 이분의 눈에는 세상이 이렇게 보이는구나‘를 점차 깨닫게 되었다. 매사 고맙고 감사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니, 이렇게 고운 사람이 주변에 넘쳐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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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밍이네 어린 정원
고현경.이재호 지음 / 티나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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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밍이네 어린 정원'은 제목부터 예쁘다. 단밍이, 어린, 정원. 하나하나 예쁜 단어들이고 이들이 모여 더 예쁜 '이름'을 만들고 있다. 그런데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예쁘다.

책 표지에는 파스텔 톤의 여러 꽃들이 가득 피어 있다. 꽃집에서 보는 깔끔하게 정리된 꽃도 아니고, 놀이동산에 가면 볼 수 있는 탐스러운 꽃도 아니다. 제각기 방향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고 색도 다르지만 한데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정원'을 본 적이 있었던가 하며 아무리 기억을 곱씹어 봐도 기억에 없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보는 꽃들이 생각보다 한정적이다. 어린 시절 길에서 봤던 민들레, 코스모스, 맨드라미조차 보기 귀해졌으니까.

마음을 사로잡는 예쁜 표지를 넘겨보니 단밍이네 네 식구 소개와 함께 '동화같이 아름다운 나만의 셀프 정원 만들기'를 함께 시작한다. 그렇게 한 페이지씩 넘기다 보면 어느덧 책의 첫 표지의 꽃들이 만개하는 모습까지 마주할 수 있다.

이 책은 때로는 백과사전 같기도 하고, 때로는 예쁜 에세이 집 같기도 하다. 식물을 키우는 방법을 설명할 때는 전문가 다운 면모가 보이지만, 식물을 키운 경험을 이야기할 때는 넉넉한 농부를 보는 것 같다.

<단밍이네 어린 정원>을 읽다 보니 자연주의 삶을 실천했던 헨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 부부의 저서들이 떠오른다. 그중 <조화로운 삶>, <조화로운 사람의 지속>은 손수 집을 만들고, 농사를 짓고, 추운 겨울을 나는 과정에 대해 상세히 알려줄 뿐 아니라 이들 부부의 삶의 철학을 들을 수 있었는데, 마치 청량한 산속 공기를 함께 마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을 부부가 직접 모든 것을 하는 모습에서 힘들겠다기 보다 나도 한 번쯤 동참해 보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한 이유는 아마도 자연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일 것이다. 아주 어릴 때 '이다음에 할머니 되면 시골에서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했으니까. 지금까지 시골의 '시'도 잘 모르고 살아왔으나 나무, 풀, 꽃을 보면 유독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보면 어린 시절의 로망이라기 보다 나의 태생은 식물과 동물을 좋아했나 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인 내용을 꼽아보라고 하면, '흙'이다.

'동화같이 아름다운 나만의 셀프 정원 만들기'니까 꽃의 종류, 특징, 가꾸는 법에 대한 설명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내용은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 즉 흙에 대한 이야기였다.

정원의 토양은 '도화지'와 같아서 도화지가 하얗고 깨끗할수록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가 있다. 그래서 단밍이네 가족이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이 토양, 흙인 것 같다. 이렇게 정성이 가득하도록 흙을 일구어 화단을 만드니 그 위에 자라게 될 꽃들이 눈부시게 피어날 것은 당연하다.

어릴 때 우리 집에는 화분이 많았다. 부모님이 물만 주는 것 같은데 죽거나 상하는 일 없이 식물들이 잘도 자랐다. 그때 선인장도 꽤 많았고 난도 있었던 것 같다. 예쁘지도 않고 가시만 잔뜩 난 선인장은 왜 키우며, 키우기 까다롭다는 난은 왜 키우는지 영 이해가 가지 않아서 아빠에게 여쭈어보았더니 선인장 꽃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며, 난의 향기가 세상에서 그리 그윽할 수 없다고 하셨다.

'도대체 선인장 꽃이 얼마나 예쁘길래' 싶어서 선인장에게서 꽃이 필 때까지 기다렸더니 어느 날 동그란 선인장만한 꽃줄기가 위로 쭉 뻗더니 화려하고 커다란 꽃이 활짝 핀다. 생긴 건 마치 백합인데 붉은색에 길죽한 검은 점들이 어찌나선명하던지. 내 눈에는 도저히 '아름답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치 시선을 확 끄려는 빨간 캉캉 드레스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난에서 꽃을 구경하기란 더 어려웠다. 어느 해 드디어 꽃대가 나오고 귀하게 꽃을 피웠나 싶더니 그윽하다는 향을 제대로 즐기기 전에 빨리도 져버렸다. 까탈스럽기도 해라.

결혼하고 내 집을 꾸미면서 나도 집에 식물을 키워보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예쁜 꽃이 피는 화분을 두고 싶었으나 일 때문에 물을 제대로 안 줘서 죽일 것 같아서 물을 덜 줘도 되는 식물들인 다육이, 선인장, 공기정화식물들을 키워보기로 했다.

한 달에 물을 한 번 정도만 줘도 되는 아이부터 빛을 받지 않아도 잘 자란다는 아이들인데 어쩌면 이렇게 시간이 갈수록 힘이 없어지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냥 둬도 잘 자란다서 해서 데리고 왔는데 점점 비실거렸다.

어릴 때 분명히 부모님이 크게 신경 쓰는 법 없이 물만 준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나중에야 알았다. 물만 줘서는 안되고 식물들에게도 '관심'을 줘야 한다는 것을. 이삼일에 한 번 물을 주면 된다는 지침이 그저 기계적으로 그때마다 물을 주라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습도와 밝기, 그리고 흙과 식물의 상태에 따라 잘 관찰해가며 물을 줘야 했던 것이었다. 그제야 식물들에게 미안했다. 비명을 지를 줄 몰라서 그렇지 많이 아팠을 것이다. 그 이후로는 식물을 함부로 사지 않았다.

지금은 길가, 정원이나 공원에 핀 여린 꽃들이 여간 기특한 것이 아니었으며 이 아이들을 키우고 관리하시는 분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표지의 그 예쁜 꽃들이 그냥 씨를 뿌리고 물을 준다고 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흙부터 가꿔서 깨끗한 도화지를 만든 다음, 꽃들의 키, 색, 발화 시기 등 모든 것이 서로 어울리도록 고심하고 고심해서 그렇게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단밍이네 정원'과 같은 꽃밭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정성을 과연 누가 쏟을 수 있을까. 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한 해, 두 해를 인내하며 정성을 쏟기란 어렵다.

비록 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자주 보는 꽃 이외에 이름을 잘 모른다. 우연히 예쁜 꽃을 만나면 눈길을 주고 미소를 짓지, 이름이 궁금하지는 않았다. 이 책 6장에는 단밍이네 정원의 꽃들 소개가 나온다. 한 페이지씩 예쁜 꽃들을 보며 비로소 이름을 알게 된 아이들도 있고, 처음 보는 꽃들도 많았다. 이 사랑스러운 꽃들이 단밍이네 정원에서는 매 계절마다 앞다투어 고개를 빼꼼히 내민다니 부럽기도 하다.

앞으로도 단밍이네 정원이 앞으로도 행복한 정원이 되었으면 한다.

ps. 미니 정원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도움이 많이 될 책으로 보인다. 미니 정원이 아니라도 나처럼 별생각 없이 화분 몇 개 키우는 경우도 몰랐던 사실을 많이 배웠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그렇지만, 식물이건, 반려견, 반려묘이건 무언가를 돌본다는 것은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나의 기준'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으로 생각해야 제대로 키워낼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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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물건 - 물건들 사이로 엄마와 떠난 시간 여행
심혜진 지음, 이입분 구술 / 한빛비즈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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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물건>에 등장하는 과거의 물건들은 ‘역사‘에 더 가깝다. 그 역사란 제품의 역사일 수도 있지만, ‘가사노동의 역사‘이자,‘ 여성들이 가사노동에서 해방되어 가는 역사‘, ‘가사일을 바라보는 사회 인식의 변화‘ 라고 볼 수도 있다. 책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도록 도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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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물건 - 물건들 사이로 엄마와 떠난 시간 여행
심혜진 지음, 이입분 구술 / 한빛비즈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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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시리즈'가 안방극장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많겠지만 그중 우리의 향수와 추억을 자극할 만한 그 시절의 가구, 물건, 옷, 신발 들도 크게 한 몫했다. 도대체 어디서 구했을까 싶을 정도로 과거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해 내서 신통방통하게 생각했다. 다이얼식 전화기만 해도 추억 돋는데 그 아래 깔려 있는 손뜨게 레이스. TV위에 어김없이 놓여 있는 못난이 인형 삼형제. 이런 소소한 소품들을 보면서 어린시절을 떠올려 보곤 했다.

<엄마와 물건>을 읽으면서도 아주 어린시절을 떠 올리게 하는 물건들이 있었다. 그 첫번째가 이태리 타월이다. 어릴 때 나도 이태리 타월을 써서 때를 벗겼다. 그러다 이태리 타월로 때를 미는 것이 피부에 자극이 크다고 들은 후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되어 이제는 그 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태리 타월 부터 시작해서 손톱깍이, 우산, 진공청소기, 다리미, 가스보일러, 고무장갑 등 스물한가지 물건들에 대한 변천을 어머니의 입을 빌려 알려준다. 따라서 이 책의 저자는 심혜진 작가님이지만, 책의 표지에 있듯 어머니의 구술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어머니의 옛이야기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신문기사들을 통해서 스물한가지 물건들이 그 이후 어떻게 성장하게 되었는지까지 함께 알려주어 흥미로웠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봤던 과거의 물건은 '추억'에 가깝다면 <엄마와 물건>에 등장하는 과거의 물건들은 '역사'에 더 가깝다. 그 역사란 제품의 역사일 수도 있지만, '가사노동의 역사'이자,' 여성들이 가사노동에서 해방되어 가는 역사', '가사일을 바라보는 사회 인식의 변화' 라고 볼 수도 있다.

오래전 <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은 중세부터 시작해서 20세기까지 그림에 등장한 인테리어의 변천을 통해 가사노동의 변화를 알려주었다. 긴 세월 동안 '가사노동에서 해방되어 가는 여성의 역사'를 따라가 보았을 뿐 아니라, 남을 위해 일해야 했던 평민과 노예 및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살아야 했던 왕족과 귀족으로 살아야 했던 시절에서 '나를 위한 삶'으로 바뀌어 가는 인류의 역사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가사일을 도와 주는 제품이 개발될 때마다 여성입장에서는 노동에서 좀 더 편리해졌고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인식도 바뀌었다. 그런데 마냥 쉽게 핑크빛으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사회적인 인식은 '남성중심' 이었기 때문에 가사일을 도와주는 기계들, 제품이 생길 때마다 이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남성'기준이었다. 고무장갑의 대한 기사만 해도 손 시림과 살이 트는 고통을 덜기 위해서라기 보다, '고운 손'을 가꾸는 것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여성에게 유독 '아름다움'을 강요하면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면 '사치와 허영'이라고 비난하는 이중 잣대는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이런 시선은 은밀히 남아 있는데 과거에는 더 했기 때문에 고무장갑을 쉬이 살 수 없었다고 했다.

세탁기, 전기밥솥, 냉장고, 다리미기와 같은 제품들은 확실히 가사일을 편리하게 도와 주었다. 하지만 '바깥일'하는 남자들로 하여금 '집안일'은 도깨비 방망이가 뚝딱 하면 되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밥은 전기밥솥이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알아서 하는 것이지, 빨래가 되고 나면 탈탈 털어 빨랫줄에 널고 마르면 차곡차곡 게고, 몇 옷은 다림질을 해야 하는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은 직접 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생리대와 브레지어의 변천도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다른 제품의 눈부신 발전과 마찬가지로 생리대도 엄청난 발전을 거듭했다. 돌이켜 보면 생리대 품질 향상만큼 변한것은 생리에 대한 인식의 변화같다. 어릴 때 엄마 심부름으로 생리대를 사러 가면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줬던 기억이 있다. 생리대는 숨겨야 했던 물건이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TV에 광고를 시작하고, 마트에서 다른 물건과 함께 내어놓고 계산을 하고, 회사에서 생리휴가를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브레지어는 아직 모르겠다. 제품 자체야 눈부신 발전을 했다. 와이어가 옥죄던 제품에서 무봉제에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무더운 여름날 남자들은 이제 넥타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로 많이 바뀐 반면, 여성들의 브레지어 착용은 여전히 의무이자 책임이다. 여름날 에어콘이 신통찮을 때 남자들이 넥타이 때문에 덥다고 말할 때 여자들은 속으로 '우리도 브레지어 때문에 더워 죽겠어요.' 삼킨다.

스스로 생을 버린 한 어리고 고운 여배우가 살아생전 브레지어를 하지 않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가 악플에 시달렸던 사실은 여전히 가슴 한 켯을 답답하게 짓누른다. 평생 착용한 것이기 때문에 하지 않으면 더 허전한 것이 브레지어다. 평생 목줄을 차고 있는 개처럼 풀어놔도 도망갈 줄 모른다.

오래전, 명절 날 고향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다가 젖을 물리는 젊은 엄마를 보고 기차에서도 수유공간이 필요하다는 기사에 달린 여성비하 댓글에 분노했던 적도 있었다.

이 책에 스마트폰이나 헤드셋, 인바디를 잴 수 있는 체중계, 전자담배 같은 제품을 함께 언급했다면 '편리함'에 비중을 두고 읽었을 것 같다. 하지만 저자가 뽑은 물건들은 여가나 취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집에서 '맨 손'으로 했던 일을 도와주는 것들이고 우리 어머니의 살림살이 이야기다보니 단순히 '편리함'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나, 그리도 나의 다름 세대로 연결되는 여성의 지위가 더 눈에 들어왔다.

점차 집안일에 대한 가치가 존중되고, 집안일을 남녀가리지 않게 하고, 남성에게서 지나친 남성상을, 여성에게서 지나친 여성상을 바라지 않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훗날 저자의 자녀가 저자에게 이야기를 듣고 <엄마와 물건2>를 쓰게 된다면, 그때는 여성의 가사노동과 지위 변화를 논할 의미가 없는 그런 세상이 되어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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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위험한 과학책 위험한 과학책
랜들 먼로 지음, 이강환 옮김 / 시공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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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책에서 손을 떼게 해 주지 않는다. 정말 기발하고 유쾌한 책이다.

책에서는 자신이 웹툰 작가라고 겸손하게 말하는데 저자 랜들 먼로는 NASA에서 로봇공학자로 일했다.

그가 활동하는 곳은 미국 사이언스 웹툰 xkcd 이다. 막대인간(이전에 졸라맨이라고 불렀던) 으로 간단한 그림을 그리면서 내용는 수과학이며 표현은 유머와 풍자다. what if 는 <위험한 과학책>으로, How to는 <더 위험한 과학책>으로 출간했고 이번 책은 그 후속작 <아주 위험한 과학책>이다. (다음 책은 얼마만큼 위험한 제목이 붙으려나)

그러고 보니 이 책 어디선가 본 적 있다 싶었더니, 우리집 서재에 <위험한 과학책>이 꽂혀 있다. 처음 출간될 때 사놓고 읽지 않았나 보다. 이 책도 마저 읽어야 겠다.

국제천문연맹에서 한 소행성에 먼로의 이름을 붙여서 '4942먼로'라고 할 정도이니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랜들 먼로에 대해 찾아보니 그림책에 깨알같이 등장해서 웃음과 재미를 주는 캐릭터들의 정보가 있다. 특히 남녀 주인공 두 명의 이름은 각각 큐볼(cueball)과 매건(Megan)으로 왠지 랜들 먼로와 그의 아내같은 느낌이다.

검은 모자 (Black hat)은 비관적인 성격이며 남을 곤경에 빠뜨리곤 하는데 이번 책에서는 딱히 등장하지 않은 것 같고 <위험한 과학책>에서 달에 레이저를 쏘았다고 한다. 흰 모자(White hat)은 바뚤어진 사상을 가졌는데 이번 책에서는 종종 나타나 잔소리를 한다. 베레모 남자(Beret guy)ㄷ는 낙천적이며 순진한 성격으로 이번 책에도 등장한다.

<아주 위험한 과학책>에서는 63개 질문에 대한 착실한 답변과 5가지 짧은 대답으로 구성되어있다.

위험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실제로는 발생가능성이 적으나 실현된다면 인류나 지구, 우주가 사라질 정도의 결과를 초래할 호기심들이 질문이어서다.


그런데 그 질문이 인류멸망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 첫번째 질문 처럼 아멜리아 어린이의 '수프로 태양계를 채운다면' 과 같은 어린아이다운 상상력을 발휘하는 질문이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이런 질문하면 '쓰읍, 쓸데없는 질문하지 말고 공부나 해' 라고 했을 텐데 랜들 먼로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재미있게 설명해 준다.


책 맨 뒤의 <감사의 글>을 보면 질문에 도움을 준 분들을 언급한다. 책의 내용만 귀여운 것이 아니라 감사의 글도 정이 넘친다.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나쁜일이라고 말해주었지만 '더 재미있을 것 같으니' 익명으로 해 달라고 한 연방 검사에게도 감사드립니다.'라니. 마지막 페이지까지 유머가 넘친다.


책 자체도 재미있지만 질문을 한 사람들의 패턴도 보인다.

일단 아이들. 자유로운 상상력이 넘치는 아이들 덕분에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질문을 접하면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덩달아 과학상식도 올라가는 덤을 얻었다.


다음으로 알쓸신잡에 나올법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전 세계에 있는 모든 바나나를 전 세계에 있는 모든 교회 안에 넣을 수 있을까요? 제 친구들은 이걸로 10년 넘게 논쟁하고 있어요.' - 조너스 -

10년 넘에 이런 논쟁을 하는 친구들이라면 평생 지기로 삼아도 좋을 듯 싶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데다 성향도 같아 보여서다. 참고로 정답은 '네'이다. 통계조사와 수식으로 계산한 결과 1년 동안 재배되는 바나나는 사람의 발목 정도 채울 수 있다.

아, 나도 궁금했던 질문이 있다. '일생동안 다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영어) 책이 너무 많아진 것은 인류 역사의 어느 지점인가요?' - 그레고리 월모트 -

내가 어릴 때도 책은 많긴 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TV에는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는데 서점에 가면 책이 넘쳐난다. 거기다 책을 내는 사람도 일반인으로 확대되었다. 평생 읽어도 다 못 읽을 책이 매일 쏟아져 나온다.

질문의 답을 추론하는 과정은 작가들이 1분에 몇 단어를 쓰는지 계산해 내는지에서 시작해서 결론은 '활동하는 작가가 수배명이 되기 전 어느 때'라고 했고 잡지 <시드>는 전체 저자의 수가 1500년 근처에 이 지점에 도달했으며 그 이후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이 질문도 기발하다. '한쪽 눈을 뽑아 다른 쪽 눈을 들여다보게 하면 나는 무엇을 보게 될가요? (신경과 혈관은 상하지 않는다고 가정합니다.)' - 렌카, 체코 공화국

답은 눈을 보게 된다고 한다. 다반 눈은 흐릿한 이중상에 둘러싸이고 방을 배경으로 겹쳐진 얼굴과 손을 보게 된다.


어릴 때 부터 궁금했던 질문이 있는데 혹시나 여기 있을까 하고 찾아봤는데 없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있는가?' 이다. 빠른 속도로 추락할 때 어떤 장치로 그 속에 있는 사람이 무중력 상태처럼 붕 뜨게 만들면 엘리베이터가 바닥에 부딪칠 때 충격을 덜 받게 만을 방법이 있지 않을까?하고 꼬맹이 때 궁금해 했던 적이 있다.

나도 랜드 먼로에게 질문해볼까하고 생각했다가 혹시나 하고 찾아보니, 나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MIT공대 연구원이 알려준 방법은 바닥에 드러누워 팔과 다리를 최대한 뻗어야 충격이 완화된다고 한다. 몸무게를 신체 모든 면적에 분산시키는 것인데 사람이 많으면 기마자세로 무릎과 허리를 구부리면 관절을 최대한 보호할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아이의 눈높이이를 맞춰주는 부모들이다.

'저의 일곱 살 아들 오웬의 질문이에요. 전 세계를 1.8미터 높이의 눈으로 덮으려면 얼마나 많은 눈송이가 있어야 할까요? 왜 1.8미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물었어요.' -제드 스콧-

이 질문의 핵심은 눈송이보다 '왜 1.8미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물었어요'다. 세상에 이리 다정한 부모님이라니. 오웬은 보지 않아도 함박 웃음 띈 행복한 아이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과학을 싫어하는 사람도, 성인도 정말 재미있게 읽을 책이다. 무엇보다 과학책을 읽으면서 이리 입꼬리가 올라가는 경우가 또 있나 싶다. 괜히 밀리언셀러에 오른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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