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대로 ‘빅토르 위고와 함께하는 여름‘을 보내는 중이다(발자크와, 프루스트와도 그렇긴 하다). ‘위대한‘이란 수식이 부끄럽지 않은 작가라면 단연 위고다. 옮긴이도 위고와 만나는 일을 ‘위대함을 만나는 일‘이라고 적었다. 좀스런 인간들이 권력이랍시고 설치는 시절이어서 새삼 돋보인다. 위대함과 여름을 함께하련다...

위고를 읽는 건 하나의 약속이다. 프랑스 역사에서가장 요동친 세기 중 하나를 가로지르는 약속이고, 숭고함을 스치고 무한을 경험하게 해주는 약속이다. 우연이 구해낸 고아들을 만나게 해주는 약속이고, 절름발이들이 사랑을 만나는 걸 보게 해주는 약속이다. 그리고 정치적 용기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약속이다. 위고를 읽는 것은 문학 속으로 들어서는 일이다.  - P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드거 앨런 포 강의에서 ‘변덕이라는 심술쟁이‘(1845)를 중요하게 다룬다. 교재로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판 대신에 쏜살문고판을 쓰는 이유가 이 단편이 전집판에는 들어 있지 않아서다. 한데 시공사판 에드거 앨런 포 전집과 비교해보니 마지막 단락이 누락되었다(시공사판 <모르그 가의 살인>에는 ‘심술의 악령‘이란 제목으로 들어가 있다). 아래 단락이 쏜살문고판 25쪽에서 빠진 부분이다...

재판에서 온전히 유죄판결을 받는 데 필요한 모든 이야기를 마친뒤,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이제 이야기를 더 할 이유가 있을까? 오늘 나는 이렇게 족쇄를 차고 이곳에 있다! 내일이 되면 이 족쇄는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어디일까? - P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국 최고 단편작가의 한 사람이라는(하지만 국내에 소개된 단편집은 절판되었다) 조지 손더스의 창작수업은 놀랍게도 러시아 단편소설들로 채워져 있다. 단편작가 이전에(나는 그의 장편 <바르도의 링컨>만 읽었다) 매우 훌륭한 러시아문학 전도사를 만나게 돼 반갑다...

젊은 작가가 19세기 러시아 단편 소설을 읽는 것은 젊은 작곡가가 바흐를 공부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형식의 기반이 되는 원리 모두가 담겨 있다.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감동적이다. 우리는 이야기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 이야기들은 도전하고 맞서고격분시키려고 쓴 것이다. 그리고 복잡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위로하려고.

대부분 조용하고 가정적이고 비정치적인 이야기들로, 따라서 이이야기들을 실제로 읽어나가면 이런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것은 저항문학이다. 억압적인 문화 속에서, 항상적인 검열의 위협하에서, 작가가 정치적 입장 때문에 추방이나 투옥이나 처형을 당할 수도 있는 시기에 진보적 개혁가들이 쓴 것이다. 이야기속의 저항은 조용하고 완곡하지만 아마도 가장 급진적인 생각에서 나왔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주목할 가치가 있고, 우주의 선한 능력과 악한 능력의 기원은 단 한 명의 인간, 심지어 아주 보잘것없는 인간과 그의 정신 안에 놓인 갈림길들만 관찰해도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 P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은 환경소설이자 독서소설이다. 자신이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 안토니오 볼리바르의 인생이 바뀐다. 책에 대한 갈망과 함께. 공기만큼이나 많은 책이 있지만 독서에 대한 갈망이 없다면 아마존 오지의 고독 속에 있는 것이나 같다는 걸 ‘연애소설 읽는 노인‘은 깨닫게 해준다...

나는 글을 읽을 줄 알아.
그것은 그의 평생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었다. 그는 글을 읽을 줄 알았다. 그는 늙음이라는 무서운 독에 대항하는 해독제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읽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읽을 것이 없었다. - P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잔차기스의 고향 크레타섬은 미노스문명(혹은 미노아문명)의 본산이다. 지중해문학기행을 앞두고 이런저런 고대사 책을 들춰보는데, 중국 역사학자 쑨룽지의 <신세계사1>(전3권 가운데 2권까지 번역됐다)에도 관런한 내용이 있다. ‘뱀을 쥐고 있는 여신‘에 대해서 궁금했는데 짧게 기술돼 있다(‘뱀의 여신‘상은 복식사에서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미노스문명의 여신숭배에 대해선 더 전문적인 책을 알아봐야겠다...


크노소스 유적지에서 출토된 양날 도끼 역시 소의 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인 듯하다. 소에 대한 이러한 숭배가, 당시 그리스반도 사람들이 보기엔 나쁜 신인 소머리 괴물 미노타우로스에 대한 숭배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에서는 여신 하토르가 소뿔을 머리에 쓰고 있었으며, 신성한 소 아피스에 대한 숭배 역시 이집트에서 내내 지속되었다. 미노스 문명에도 여신 숭배가 있었다. 양손에 각각 뱀을 쥐고 있는 여신의 상은, 허리가 꽉 조이는 긴 치마를 걸치고 가슴을 드러낸 모습이다. 캉캉 스타일의 치마는 마치 19세기 파리 여성의 패션 같다. - P3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