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이듬해에 죽었다
그런 문장을 읽을 때 이건 소설이지만
소설밖으로 걸어나오는 문장을 읽을 때

그녀는 언젠가 만났어야 하는 여자이고
만났던 여자이고 만나려던 여자이고 만나지
말았어야 했던 여자이고 만나지 못했던 여자이지만
그녀가 이듬해에 죽었다니

그녀는 이듬해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여자이고
죽기 전 마지막 몇 달은 우리가 그랬듯이
우리가 그러하게 될 것이지만
매우 불행하게 지냈을 것임에 틀림없고

이것은 마치 인생의 법칙
그녀의 모든 친구들이 이듬해에 죽었거나
이듬해에 죽을 것이고 
이것은 기록의 확신이니

당신의 운명 또한 그러할 것이고
최후의 누군가 남아 있는 한
모두의 운명이 그러할 것이다
당신이 내게 말하거나 내가 당신에게 말하거나

그는 이듬해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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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도블록과 대화하지 않는다
미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보도블록이라니 블록이라니
난 보도블록을 블록한다
나는 보도블록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블록들은 원래 딱딱하지 게다가
모난 녀석들이야 나는 어릴 때부터
보도블록과 어울려 다니지 않았다
보도블록은 어디에나 깔려 있었지
세상은 보도블록이 지배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침울하다 타협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다
보도블록 사이에 비져나온 잡초들과도
말을 섞지 않는다 나는 일관성이 있다
내가 보도블록을 사랑했다는 건 무고다
누군가 나를 중상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매일같이 보도블록을 밟고 지나다닌 건 맞다
보도블록을 내려다보기도 했다
그건 중력 탓이지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나대로의 원칙이 있다
나는 아무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게다가 보도블록은 얼마나 과묵한가
나는 보도블록이 대꾸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어젯밤에도 걸음을 멈추고 들어보았다
보도블록은 보도블록일 뿐이다
나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보도블록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보도블록에 관한 시를 쓰지 않는다
나는 보도블록이 아니다
나는 보도블록을 부러워한다
보도블록은 보도블록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
보도블록은 일관성이 있다
나는 보도블록에 주저앉는다
그건 중력 탓이지 내 잘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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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맑음 2019-07-23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글이네요~^^

로쟈 2019-07-23 23:06   좋아요 0 | URL
^^

손글 2019-07-23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오네스크 작가의 글과 약간 비슷한 느낌이 들어요.

로쟈 2019-07-23 23:07   좋아요 0 | URL
부조리한가요?^^

로제트50 2019-07-23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읽은 소설 <올가>.
가닿을 수 없는 연인에게 보낸
먹먹한 기다림이 담긴 편지들...
픽션이지만 얼마나 맘이 저렸던지!

흐린 날 쌤의 보도블록은
먹먹한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철통같은 수비에도 가끔 스며드는
먹먹함들을 조심해야지요^^

로쟈 2019-07-23 23:07   좋아요 0 | URL
네, 블록들을 조심해야.~

동글이 2019-07-24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하세요.
이 시대.. 독특한 유형의 전사이신 듯.

로쟈 2019-07-25 18:07   좋아요 0 | URL
블록과 싸우는?^^
 

햄릿이 말했다 죽음보다 
두려운 건 죽음에서 깨어나는 일
마치 꿈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죽음이 끝이 아니고 고뇌도 끝나지 않는다면
헛되고 헛된 죽음이라
헛된 삶조차도 구제 못할 죽음이라니
삶보다도 못한 죽음이라니
햄릿은 탄식했다 죽음은 
고작 삶이 꾸는 꿈
무덤 속에서도 유골이 꾸는 꿈
그리고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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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les 2019-07-02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멋진 시인데요! 게다가 짤이! 컴버비치가 연기한 ntlive 햄릿!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로쟈 2019-07-03 23:21   좋아요 0 | URL
햄릿이 쓴 거죠.~

2019-07-02 0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3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막국수를 먹으며
씻을 수 없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막국수는 육전막국수
소고기육전이 들어가서 육전막국수
그래도 막국수인데 씻을 수가 없다니
무언가로 보상할 수 없고
회복할 수 없고 씻을 수 없는 일들이
나는 막국수를 먹으며
필연코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인지
씻을 수 없는 일은 끝내 씻을 수 
없는 일이어서 사무라이는 할복을 하고
아이아스는 칼끝에 몸을 던지지
씻을 수 없는 일은 그렇게 씻기는 것일까
그럼에도 씻을 수없는 일일까
막국수처럼 돼버린 일들을
생각하다가 나는
냅킨으로 입을 닦는다
입을 닦는 일이 전부다
아 씻을 수 없는 일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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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간을 빼놓고 나왔어
우산은 챙기면서 말이야
간은 소중하니까 때로는
냉장고에 보관하기도 하고
때로는 바닥에 떨어진 걸 보기도 해
간 떨어진 걸 본 거야!
간은 소중하니까 들고다녀야 
하지만 어디에 넣는다는 거야?
갈비뼈 안쪽에 잡히게끔
간은 그런 거야?
간이 안 좋아서 안색이 안 좋은 것인가
간이 부어서 안 좋은 것인가
하지만 언제부터 간 생각을 했다고
간은 그냥 거기 어딘가에 있는 거지
빼놓고 나와도 지갑을 놓고 온 것만 못해
간이 계산을 하겠어 전철을 태워주겠어
간이 없다면 안색들이 말이 아니겠지만
아침 지하철에서 관리된 표정들만 봐도
간은 문제없어 빼놓고 다녀도 
간은 간대로 자기 볼 일을 보는 거지
문제는 간이 아닌 거지
간보다 간절한 것은 따로 있는 거지
정작 빼놓지 못해서 마음이 아파
맞아 심장이야
심장은 내가 앉아 있어도 뛰고
내가 자는 동안에도 뛰어
내가 대신 뛰어주려고 해도 막무가내지
언제 심장을 쉬게 해주어야 하는 거야?
언제 심장은 빼놓을 수 있는 거야?
더는 뛰지 않게 너를 보고도
더는 뛰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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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9-06-27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하지 마세요~ㅎㅎ

로쟈 2019-06-27 23:12   좋아요 0 | URL
ㅎㅎ

이파리 2019-07-05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운,과 각운, 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