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스가 더블린을 떠날 때
노라와 야반도주를 했던가
새벽녘 호텔을 빠져나와 
리피 강도 숨죽인 
더블린의 야경을 옆구리에 끼고
더블린을 떠난다
지금이라면 조이스도 비행기를 탔을 테지
어둠에 잠긴 더블린 항은 깨울 필요가 없을 테지
톨게이트를 지나며 버스가 속도를 낸다
더블린을 떠나며 조이스는
다시 올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노라와 함께 떠나며 
조이스는 아버지를 떠나고
조이스는 아일랜드를 떠난다
조이스는 낯선 땅에서
조이스는 아버지가 되고
조이스는 더블린 사람들을 완성하겠지
더블린 사람들을 트렁크에 넣고
더블린을 떠난다
더블린 사람들을 읽고서
조이스를 만나러 더블린에 왔었지
다시 조이스와 함께 더블린을 떠난다
더블린은 떠나기 위해 찾는 도시
더블린은 떠날 수밖에 없는 도시
수레를 미는 몰리 말론에게
작별인사를 하지 못했다
몰리의 수레 굳은 생선들에게도
너희는 마비된 생선들이지
조이스가 진저리치며 더블린을 떠날 때
새벽녘 바람이 차가웠던가
공항의 불빛이 마중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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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266 2019-09-28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의 부지런한 문학기행중계뉴스 잘 보고 있습니다~

로쟈 2019-10-01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예이츠를 읽는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암스테르담에 들른 적이 없을 테지만
예이츠의 더블린으로 가기 위해
나는 암스테르담으로 왔다
그리고 그의 묘비명을 읽는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여기에 묻혔다고 적는 대신에
예이츠는 말탄 자를 불러냈지
말탄 자여, 지나가라
삶과 죽음을 향해 무심한 시선을 던지고
거침없이 지나가라
나도 그렇게 암스테르담을 지나간다
암스테르담의 아침을 뒤로 하고
예이츠의 더블린을 향해 
날개 돋친 말을 탄 듯이 날아가리
이곳은 오래 머물 곳이 아니기에
삶과 죽음이란 오래 마음에 둘 것이 아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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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어째서 나는 죽지 않았을까요
차라리 그러는 편이 좋았을 것을
안나가 눈물을 흘리며 브론스키에게 말했다
안나는 산욕열로 죽을 수도 있었다
안나는 남편 카레닌에게 용서를 구했다
안나는 죽음의 병상에서 되살아났다
안나의 사랑도 되살아났다
안나는 다시금 브론스키를 만났다
아아, 어째서 나는 죽지 않았을까요
안나는 브론스키와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다
안나에게는 아직 많은 날들이 있었다
안나에게는 식지 않은 사랑이 있었다
안나가 기차에 몸을 던지기 전이었다
차라리 안나가 죽음을 선택하기 전이었다
차라리 그러는 편이 좋았을 것을
지금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있다

아아, 어째서 안나는 살지 않았을까요
차라리 그러는 편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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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9-09-13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어째서 안나는 살지 않았을까요

아직 많은 날들이 있었다
식지 않을 사랑이 아닌
(아직)식지 않은 사랑이 있을뿐 이었다

로쟈 2019-09-14 12:28   좋아요 0 | URL
톨스토이는 영원히 타는 촛불은 없다고 했죠.

모맘 2019-09-18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면서도 계속 타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음으로 사는 ㅠㅠ
 

스페인의 비는 주로 들에 내린다
스페인의 비를 생각한다
돈키호테가 비를 맞은 것도 들이었지
스페인 들판에 내리는 비
비도 내리면서 자기 생각을 하는가
주로 들에 내리기로 작정하는가
비를 맞으며 돈키호테는 생각하지
스페인은 돈키호테의 나라
돈키호테는 둘시네아를 생각하지
비를 맞으며 돈키호테는 하염없지
스페인에 내리는 비가 하염없듯이
스페인의 비를 맞으며 생각에 잠기려네
스페인의 비를 맞으러 스페인에 가려네
스페인의 비는 주로 들에 내린다네
스페인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으려네
생각에 잠긴 돈키호테가 지나갈 때까지
들판을 지나가는 돈키호테가 아득해질 때까지
그대 생각이 아득해 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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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9-09-18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키호테와 비와 들과 문학이론???
 

예정된 시간
예정된 장소에 자리잡고 앉아
커피를 마신다 물컵도 옆에
바람 불고 나부끼기로 한 것들
리허설하듯 나부끼고
모든 것이 준비된 카페에
주연만 빠졌다
들이치기로 한 빗방울
창문을 세차게 들이받기로 한 빗방울
주르륵 흘러내리기로 한 빗방울
사정없이 흐느끼기로 한 빗방울
주머니엔 손수건도 있건만
나는 커피만 마신다
막이 오르기도 전에 끝난 연극
나만을 위한 연극
언제나
주연만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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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9-09-07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좋네요^^
낭만적인 날씨~
이런 날엔 커피 세 잔도 가능하겠죠^^*

로쟈 2019-09-10 16:3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lea266 2019-09-10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보러 가야하는데 비가 너무 내려서 베란다에 앉아 비그치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며 이 시를 읽으니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시란 생각이 드네요 들이치기로 한, 창문을 들이받기로 한, 주르륵 흘러내리기로 한, 흐느끼기로 한...... 그 빗방울들 여기도 내립니다 빗줄기들이 추락하는 깊고 아득한 세상 ... 시의 세상도 참 아득하니 아름답다

로쟈 2019-09-10 16:36   좋아요 0 | URL
네 오늘은 펑크를내지 않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