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갑자기 생각이 나 미셸 푸코의 영어판 선집(전3권)을 주문하고 푸코의 책을 더 찾아보다가 <임상의학의 탄생>이 절판된 사실을 알았다. 악명 높은 번역서였기에 절판된 것 자체가 아쉬울 건 전혀 없지만(그럼에도 고가의 중고본들이 돌아다닌다. 오역서의 희귀한 교본이라도 되는 걸까?) 개정된 번역본이 아직 나오지 않은 건 미스터리하면서 유감스럽다.

 

근대 의학 담론을 탐구, 19세기 의학이 임상의학으로 변화하기까지의 역사를 추적한 미셸 푸코의 주저 중 하나이다. 푸코 특유의 방법론인 고고학과 계보학을 적용해 근대 의학이 태동한 이후로 권력이 인간의 신체에 어떻게 작용했는지의 과정을 재구성하고, 임상의학과 국가와 제도, 사회와 담론의 관계를 분석한다.

 

<임상의학의 탄생>은 1963년작이며, <정신병과 심리학>(1954)까지 포함하면 푸코의 세번째 책이다. 두번째 책이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광기의 역사>(1961)이고 그 뒤로는 <말과 사물>(1966)이 이어진다(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레이몽 루셀>이 <임상의학의 탄생>과 같은 해에 나왔다). <정신병과 심리학>도 현재 절판된 상태. <광기의 역사>나 <말과 사물>처럼 개정판 번역들이 나오면 좋겠다. 푸코에게 영향을 준 조르주 캉길렘의 <정상과 병리>(한길사, 1996), 혹은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인간사랑, 1996)도 마찬가지. 그래야 '초기 푸코'에 해당하는 1960년대 저작들이라도 구색이 맞춰진다.

 

 

호기심이 발동해 의학의 역사를 다룬 책을 검색해봤더니 생각보다는 많이 나와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정신의학의 역사>(바다출판사, 2009)를 제외하더라도 재컬린 더피의 <의학의 역사>(사이언스북스, 2006), 로이 포터의 <의학: 놀라운 치유의 역사>(네모북스, 2010), 그리고 제임스 르 파누의 <현대의학의 역사>(아침이슬, 2005) 등이 눈에 띈다.

 

 

앤 르니의 <의학 오디세이>(돋을새김, 2014)나 이재담의 <서양의학의 역사>(살림, 2007)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 그러고 보면 이 분야에서도 놀랄 만한 책, 압도적인 책이 더 나와도 좋겠다 싶다. 의학사 백과사전 같은... 아무려나 요점은 <임상의학의 탄생>이 다시 나오길 바란다는 것이다... 

 

15. 01. 24.

 

 

P.S. 참고로 어제 주문한 푸코 선집이다(펭귄에서도 똑같이 나와 있는데, 알라딘에는 3권이 빠졌다). 하드카바가 나왔을 때 가격 때문에 구입하지 못했는데, 어느새 소프트카바가 나온 지도 십수 년이나 됐다. 그간에 다시 찾아보지 않은 게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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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세 보이는데, 두 권의 책 제목이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로베르 뮈샹블레의 <쾌락의 역사>(지만지, 2008)와 호주의 정치학자이자 동성애 인권 운동가 데니스 알트먼의 <글로벌 섹스>(이소출판사, 2003). '사라진 책들'로 분류한 것은 <글로벌 섹스>가 절판된 지 오래 됐기 때문이다(국내 독자들은 '섹스'란 제목이 들어간 책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사드 전집까지 예고돼 있어서 같은 카테고리의 책들을 검색하다가 장바구니에 넣었다(<쾌락의 역사>는 구면인 책인데, 구매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관심도서였지만 구입은 보류했던 것인지, 착오인지 알 수 없다).

 

 

뮈샹블레의 책으론 <악마 천년의 역사>(박영률출판사, 2006)와 <잔혹한 열정>(북프렌즈, 2007)까지 세 권이 번역됐는데, <잔혹한 열정>은 절판된 상태. 남은 두 권은 모두 관심도서로 분류할 만한 책이다.

 

 

<쾌락의 역사>의 원제는 <오르가슴>이다(<악마의 역사>와 함께 영어본이 나와 있다. <폭력의 역사>도 눈길을 끄는 타이틀). 어떤 책인가.

저자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성적 충동의 승화가 유럽의 특성을 형성하는 기초가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인간관계를 총체적으로 다루는 좀 더 폭넓은 해석을 제안한다. 저자는 연구의 범위를 성(性)에 국한시키며,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에서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은 부분들에 초점을 맞춘다. 이 책의 주제는 성적(性的)인 쾌락의 역사, 즉 학술적인 이론과 구체적인 인식을 통해 나타난 육체에 대한 질문과, 성적인 쾌락에 대해 거의 절대적인 금기와 경멸의 시대였던 16∼17세기부터 나르시시즘이 승리한 현재까지의 인간 주체에 대한 질문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들이 없진 않지만 나름대로 의의가 인정되는 책인 듯하다. 일독해봄직한 것. <악마의 역사>와 함께.

 

 

생각보다 오래 전에 나온 <글로벌 섹스>는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섹스야말로 현대 자본주의와 가장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있는 분야임을 증명하는 책"이라는 소개다.

글로벌 경제 시대에 몸의 쾌락이 어떻게 구성되고 상업화.상품화되는지를 살펴보면서,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불분명해졌는지, 그에 따른 결과가 어떤 것인지 조명한다. 이 책은 또한 사이버 섹스의 급속한 확산을 둘러싼 여타의 사실에서 성의 상품화가 사회적 최약자들(섹스 비즈니스 포섭된 가난한 여자들이나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억압적 금욕주의가 경제 세계화의 결과 또는 그것에 대한 반동이라는 주장이 구체적 조사와 분석에 의해 뒷받침된다.

초판이 2001년에 나왔으니 '업뎃'이 필요해보이지만, 여하튼 이 분야의 책으론 기본서인 듯싶다. 동성애 문제 전문가로 보이는 저자의 신간으론 <동성애는 끝났는가?)(2013)가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사드 전집'은 <사드 전집1: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워크룸프레스, 2014)을 염두에 둔 것이다. 책은 예판으로만 떠 있어서 예정된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관심을 끄는 시리즈인 것만은 틀림없다(사실 사드의 책들도 국내에서는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다수가 절판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와 함께 박홍순의 <욕망할 자유>(사우, 2014)도 같은 카테고리로 묶을 만한 책. 욕망을 죄악시하는 세상에 도전했던 네 사람의 삶과 사상을 조명하고 있는데, 디오니소스, 보카치오, 사드, 그리고 푸코가 그 네 명이다. 법학자 김두식 교수의 <욕망해도 괜찮아>(창비, 2012)와 짝이 될 만하다...

 

14.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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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은 홍상수의 영화 <생활의 발견>(2002) 덕분에 다시 상기된 문구이지만 나 같은 세대에게는 임어당(린위탕)의 수필집 제목으로 더 친숙하다. 몇년전에 다시 생각이 나 <생활의 발견>(범우사, 1999)을 다시 구입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나 대학 초년생 시절에 읽었던 듯한데, 그때 읽은 것도 범우사판이 아니었나 싶다. 다시 찾으니 문예출판사판도 있어서 구해볼까 싶다.

 

 

갑자기 <생활의 발견>에까지 생각이 미친 것은 김진섭의 수필집 <생활인의 철학>이 생각나(우연히 펼쳐본 <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평전>(아롬미디어, 2009) 뒷표지에 실린 발행예정도서 가운데 <생활인의 철학>이 들어 있어서다) 찾으려고 했기 때문이다(아마도 독자들에겐 '생활'이란 단어가 들어간 가장 유명한 두 책이 아닐까 한다). 수필의 대명사 격인 저자의 대표작이건만, 아쉽게도 같은 제목의 책은 구할 수 없는 듯하다(e-북으로만 나와 있다). 그래도 그의 수필은 <김진섭 선집>(현대문학, 2011), <인생예찬>(문지사, 2006), <백설부>(기파랑, 2012) 등의 판본으로 읽어볼 수 있다.

 

 

<한국현대문학대사전>을 참고하니 김진섭은 1903년생으로 1920년 양정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27년에 호세이대학 독문과를 졸업했다. 귀국 이후에 해외문학 소개와 극예술운동에도 관여하다가 1930년대 중반부터는 "예지와 인생의 사색, 철학을 담은 중후한 수필을 본격적으로 창작하였다." 광복 후 첫 수필집 <인생예찬>(1947)을 펴냈고, 이듬해 낸 두번째 수필집이 바로 <생활인의 철학>(1948)이다. 개인적으로는 고등학생 때 문고본 수필집을 꽤 많이 읽었는데, 피천득을 비롯해 이양하, 계용묵, 오상순, 전숙희 등과 함께 김진섭도 읽은 기억이 있다. 30년만에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들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망각 속에서 다시 되찾게 될 시간들이 궁금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자주 실감하는 독서의 용도다...

 

14.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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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에 갑자기 생각이 나서 찾은 책은 리처드 로티(1931-2007)의 <철학 그리고 자연의 거울>(까치, 1998)이다. 절판된 지 오래이고, 중고판은 가장 싼 게 35000원(최상급은 45000원이다). 20000원대라면 다시 주문할 뻔했지만, 소장도서를 그리 살 수는 없어서 가까운 도서관을 검색해봤다. 가까이에는 없고 발품을 좀 팔아야 대출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발품을 팔거라면 서고를 한번 더 뒤져보는 게 낫겠다 싶다(서고로 쓰는 공간은 집에서 차로 15분은 가야 되는 거리에 있다).

 

 

원 책이 절판됐으니 해설서도 멋쩍겠는데, 그럼에도 다시 읽어볼 욕심을 낸 것은 2009년에 30주년 기념판이 나왔기 때문이다. <철학과 자연의 거울>(<철학 그리고 자연의 거울>은 학계에서 통용되지 않는 제목이다)이 1979년에 나왔기 때문에 2009년이 30주년이 되는 해였다(정확하게는 2008년말에 출간된 듯하다). 2007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그를 추모하는 의미도 겸했겠다.

 

 

국내에서 출간된 로티 관련서를 모두 갖고 있었지만(상당수를 읽었고) 최근 몇년간은 소원했다. 그는 내게 지젝 이전의 철학자여서다. 그래봐야 그 사이에 나온 책은 <로티의 철학과 아이러니>(아카넷, 2014) 한권밖에 없고, 모두 1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입문서로 가장 평이한 건 이유선의 <리처드 로티>(이룸, 2003)이고, 좀더 자세한 책으론 김동식의 <로티의 신실용주의>(철학과현실사, 1994)가 있다(놀랍게도 아직 절판되지 않았다). <철학과 자연의 거울> 외에 주저에 해당하는 <실용주의의 결과>(민음사, 1996)나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민음사, 1996) 등은 모두 절판된 상태. 그러고 보니 대학원 시절에 가장 애독했던 철학자의 한 명이 로티였다(아마도 한나 아렌트가 거기에 추가될 듯싶다).

 

독자에게 어떤 저자나 책은 자기만의 연대를 갖는다. 내게 로티는 주로 1996년과 1998년 사이에 놓여 있으며 그맘때를 상기하게 해주는 철학자다. 아니 분석철학의 기린아로 프린스턴대학 철학과에서 강의하다가 뛰쳐나와(쫓겨나서?) 버지니아대학의 인문학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겼다가 다시 스탠포드대학 비교문학과에 재직하던 중에 세상을 떠났으니 그의 경력을 '철학자'로만 한정할 수도 없겠지만, '로티의 철학'을 다시금 더듬어보고 싶다. 이번 겨울엔 내 나름의 '로티 컬렉션'을 재정비해봐야겠다. 아무튼 <철학 그리고 자연의 거울>도 사라진 책에 속한다는 걸 확인하게 돼 간단히 적는다. 다시 나오면 좋겠다. 제목은 바꿔 달고서...

 

14. 12. 22.

 

 

P.S. 로티의 독자라면 탐을 낼 만한 것이 철학논문집인데, 나는 두 권까지 구입했지만 이후에 두 권이 더 나온 것 같다(올해 초기논문집이 따로 나왔으니 다섯 권인 셈인가?). '콜렉션'은 정비하게 되면 구색을 갖춰놓는 것도 고려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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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예 12년>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영화를 계기로 한꺼번에 5종의 번역서가 나옴으로써 미국의 노예제에 다시금 관심을 갖게 됐는데, 관련서가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그중 가장 중량감 있는 책이 에드먼드 모건의 <미국의 노예제도와 미국의 자유>(비봉출판사, 1997)인데, 이미 절판된 책이라 '사라진 책들'에 넣어둔다. 책은 두 주 전에 헌책방에 주문해서 구했다(2008년에 쓴 페이퍼에서도 한번 다뤘지만 확인해보니 그때는 구입하지 않았었다).

 

 

거기에 보탠다면 디스커버리 총서의 <흑인노예와 노예상인>(시공사, 1998)도 유익한 참고도서다. 디스커버리 총서가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펴내는 총서인데, 역시나 갈리마르에서 나온 '인물 역사 발자취' 시리즈의 <노예>(종이비행기, 2006)도 나왔었다. 지금은 절판된 상태(이 시리즈는 전 20권 가운데 <알라딘>만 살아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걸까?) 

 

다시 <미국의 노예제도와 미국의 자유>로 돌아오면 "미국 초창기 신대륙 식민지의 생생한 이야기. 미국 역사의 가장 큰 모순은 노예제도와 자유가 동시에 발전했다는 사실. 초창기 버지니아 식민지를 중심으로 탐험가, 인디언, 식민지 지사, 대농장주 등을 통해 노예제를 기반으로 건설된 미국의 모순을 파헤쳤다."

 

 

 

새삼 미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드는데, 바로 노예제도와 민주주의의 병행발전이다(그리스 민주정과 비교해보고픈 생각이 들지 않는지). 저자인 에드먼드 모건은 예일대의 미국사 교수로 재직했으며 식민지 시기와 미국혁명이 전공 분야다. 특히 18세기 버지니아인들에 관한 연구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미국의 노예제도와 미국의 자유>는 바로 그 연구를 집약하고 있다. 역자는 이렇게 소개한다.

미국역사에서 가장 모순된 점은 바로 노예제도와 민주주의가 병행하여 발전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 모순을 이해하려면 모건의 버지니아 식민지에 관한 연구를 이해해야만 한다. 미국혁명에서 자유와 평등을 가장 힘차게 주장한 사람들이 바로 버지니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억압에 항거하여 싸운 조지 워싱턴과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이 버지니아 출신이었고, 헌법에 권리장전을 처음 첨부한 주도 버지니아였다. 그리고 신생공화국 초기 36년 중에서 32년 동안 버지니아 출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그들 모두가 노예를 소유한 농장주들이었다. 따라서 노예제도와 자유의 기이한 결합을 이해하는 첫걸음은 바로 버지니아 식민지의 이해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모건의 저서 <미국의 노예제도와 미국의 자유>는 바로 이러한 기이한 결합에 관한 이야기이다.

 

 

흠, <노예12년>만 앞다투어 낼 게 아니라 이런 기본적인 역사서라도 다시 내면 좋겠다. 원서는 1975년에 나온 것이니 거의 40년 전 책이다. 그 사이에 나온 역저들이 분명 없지 않을 것이다.

 

  

 

아쉬운 대로 마조리 간, 재닛 월렛의 <끝나지 않은 노예의 역사>(스마트주니어, 2012)도 구입했는데, 이건 청소년용으로 노예제도 5쳔년의 역사를 개관한 책이다. 간략한 서술과 화보로 구성돼 있는데, 전체를 일람하는 데 요긴하다...

 

14. 03.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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