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에서 명성을 떨치는 한국 학자들의 얘기가 가끔씩 들려오는데, 인류학자 권헌익 교수가 케임브리지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교수로 임용됐다는 소식이다. 생소한 이름이지만, 언젠가 우석훈 소장이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뛰어난 학자로 이미 손꼽은 바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시강강사 생활만 하다가 영국으로 건너가버렸다고. 한국 대학사회에 얼마나 대단한 교수들이 많이 포진해 있는지 말해주는 반증이다. 관련기사들을 스크랩해놓는다. 아직 한권도 번역되지 않은 권 교수의 책들이 소개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그래서 아직 '세계의 책'이다).   

한겨레(11. 05. 18) “내 학문 화두는 전쟁이 파괴한 삶의 회복” 

영국 최고의 칼리지로 알려진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에 한국인 인류학자인 권헌익(49·사진) 런던정경대(LSE) 교수가 임용됐다. 케임브리지의 31개 칼리지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꼽히는 트리니티 칼리지에 한국인 교수가 임용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권 교수는 10월 새 학기부터 트리니티 칼리지의 선임 연구 정교수로 일한다. 선임 연구 정교수는 정교수에 준하는 대우를 받으면서 연구나 강의를 자유롭게 선택해서 할 수 있는, 정교수 가운데서도 특별한 자리다. 영국에서 선임 연구 정교수는 보통 정년퇴임을 몇 년 앞둔 정교수들에게 주는 자리로 알려져 있다. 



권 교수는 17일 “모교에 돌아오게 돼 기쁘다”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요청한 대로 앞으로 좋은 책을 써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때 일어난 마을, 가족 등 공동체에 대한 학살행위를 연구한 저서 <학살 이후>, <베트남의 전쟁 유령들>로 인류학계의 권위있는 ‘기어츠상’(2007년)과 아시아학계의 ‘조지 카힌상’(2009년)을 받아 학계에 널리 알려졌다.

그는 6·25가 내전과 국제전의 두 가지 양상뿐 아니라, 민간인에 대한 전쟁이라는 성격도 띠고 있다고 봤다. 따라서 이제는 조국해방전쟁이냐, 침략전쟁이냐 하는 이념 구도에 집착하지 말고 남쪽과 북쪽의 민간인들, 참전했던 미국인과 중국인들에게 이 전쟁은 무엇이었냐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냉전의 시작을 알린 열전이었던 이 전쟁이 한반도뿐 아니라 20세기 후반 세계 역사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도 그의 관심사다. 그는 “한국전쟁을 겪은 미국이 자본주의 진영을 강화할 목적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분리차별) 정책까지 지지했다”고 설명했다.

우석훈 2.1연구소장은 지난해 11월18일 <한겨레> 칼럼에서 “장하준 다음의 질문은 권헌익의 질문이 됐으면 좋겠다”고 썼다. 이 이야기에 대해 그는 “우 선생을 알지만 그런 좋은 이야기를 해준 줄 몰랐다”면서도 “공동체의 삶이 회복될 수 있는지 여부가 내 공부의 주제이자 질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또 다른 냉전>을 써낸 데 이어, 연말엔 <북한-냉전의 극장 국가>를 펴낼 예정이다.

서울대 철학과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권 교수는 케임브리지대학 인류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 영국 맨체스터대, 에든버러대 교수를 거쳐 2009년부터 런던정경대에서 교수로 일해왔다. 트리니티 칼리지는 1546년 영국의 양대 명문 칼리지인 옥스퍼드대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와 함께 헨리 8세에 의해 설립됐다. 노벨상 수상자 32명을 비롯해. 아이작 뉴턴, 프랜시스 베이컨, 바이런, 버트런드 러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자와할랄 네루 등을 배출했다.(김규원 기자)   

한겨레(10. 11. 18) 장하준 사건의 교훈

내가 한국의 학자들이나 경제학자들을 다 만나본 것은 아니다. 어쨌든 내가 만난 한국 학자 중에서 “정말 이렇게 공부 잘하는 사람이 다 있나” 싶게 입 딱 벌어졌던 사람이 세 명 있다. 세상의 평가는 어떨지 모르지만, 그중에 제일은 권헌익 교수였고, 그다음이 장하준 교수와 이제 슬슬 은퇴를 준비하시는 서울대 경제학과의 이지순 교수였다.

물론 이지순 교수는 한국의 많은 경제학자들이 그렇듯이 아직은 그를 대표할 책이 없어서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그렇지만 한국의 경제학자들 중에서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지순 교수였던 셈이다. 어떻게 보면 <88만원 세대>를 시작으로 지금 진행중인 12권의 대장정 시리즈를 쓸 용기를 냈던 것이 이지순 교수식 발상의 전환 덕분이다. 마음속으로는 그를 진짜 은사라고 생각하고, 내가 발간한 책들을 전부 보내드리는 분이기도 하다. 그가 나에게 질문했다. “만약에 박정희가 산업화할 때, 유신 방식 대신 요즘 식으로 말하는 생태적 경제를 전개했다면 우리가 지금보다 못살았을까?” 언젠가 나는 그의 질문에 답을 하고 싶은데, 아직은 그럴 수준과 형편이 못 된다. 

장하준이 수년 전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과연 모든 경제적 제도를 다 없애고 시장 하나만을 단일 기구로 숭배한다면 ‘경제 발전’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이 질문은 독일 역사학파인 리스트의 오래된 ‘사다리 걷어차기’의 질문이기도 하고, 스웨덴식 복지경제의 틀을 만들어낸 군나르 뮈르달의 질문이기도 하다. 대체적으로 한국의 주류 경제학계나 정치인들 혹은 재계의 경제인들은 “그딴 질문 필요 없다”고 지난 10년 동안 장하준을 영국 사람 취급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함께 아주 혼동스러우면서도 너저분한 시대를 보낸 지금, 장하준이 던진 질문 혹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서 마이클 샌델이 던진 질문에 한국 국민들은 격렬하게 반응하였다. 2000년 김용옥이 <노자와 21세기>라는 인문서적으로 세웠던 모든 기록을 마이클 샌델이 올해 전부 갈아치웠는데, 그 기록을 이제 장하준이 모두 갈아치울 형국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난 10년, 먹고사느라고 너무 바빴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국 혹은 한국 경제를 둘러싼 근본적인 질문을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소소한 몇 가지 정책 논쟁을 ‘의제 설정’이니 어쩌구 하면서 기술적 논의만 조금 했지, 정의, 도덕, 제도, 시장과 같은 근본에 해당하는 질문들을 빼먹고 간 것 같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이런 논의들이 대학과 계간지 같은 것을 통해서 일상화되고, 국민들도 ‘시민토론’ 등의 형태로 계속 토론을 하고, 이런 것들이 정치권을 통해서 대표되는 그런 상황으로 가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린 그렇게 안 했고, “돈이면 최고다”라는 경제근본주의의 시절을 보냈다. 학자라는 게, 원래 남는 시간이 많아서 남들 다 아는 것 같은 근본적인 얘기를 다시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장하준은 좋은 학자이다.

지난 수년 동안 내가 본 가장 안타까운 사건은 권헌익 같은 좋은 학자가 한동안 시간강사를 하다가 런던의 정경대학(LSE) 교수로 가버린 일이다. 만약 그가 계속 한국에 있었다면, 많은 대학원생들이나 박사과정생에게 정말 좋은 스승이 되었을 것 같다. 그가 한 얘기는 더 간단하다. “고전으로 돌아가자.” 그 얘기를 한국은 못 알아들었고, 영국은 알아들었다.

장하준 다음의 질문은 권헌익의 질문이 되면 좋겠다. 정치권이 알아먹든 못 알아먹든, 장하준과 함께 한국 국민들은 이미 선진국 국민이 된 것, 그게 장하준 사건의 교훈 아닌가? 이런 국민과 독자들이 너무 자랑스럽다.(우석훈 2.1연구소 소장) 

11. 05. 18.  

P.S.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고 하니까 생각나는 학자는 어네스트 겔너(1925-1995)이다. 최근에 그의 전기를 구입한 때문인데, 이력을 다시 살펴보니 런던 정경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고 케임브리지대학에선 사회인류학 교수를 역임했다. 말년엔 체코의 민족주의연구소 소장을 지낸 걸출한 학자다.   

겔너의 책으론 <민족과 민족주의>(한반도국제대학원대학교, 2009)가 번역돼 있다. 민족주의론의 고전에 속한다고. 존 홀의 전기 <어네스트 겔너>(2010)는 이미지가 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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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1-05-19 09:48   좋아요 0 | URL
우석훈 소장의 글을 보며 권헌익 교수가 누군가 했는데, 저 분이셨군요?

한국에선 제 대접을 못 받다가 타국에선 인정받는 모습을 보니 씁쓸하군요...

로쟈 2011-05-19 20:48   좋아요 0 | URL
덕분에 학자로선 더 큰 명성을 얻은지도 모르죠...

노이에자이트 2011-05-19 22:48   좋아요 0 | URL
90년대 초에 앤더슨<상상의 공동체>와 겔너 <민족과 민족주의>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번역된 게 기억납니다.민족주의론의 초창기 거장인 한스 콘도 체코 출신인데 그 지역이 워낙 강대국의 각축장이라서 민족주의 연구가들이 관심을 두는 대상이죠.

로쟈 2011-05-21 15:50   좋아요 0 | URL
네, 겔너의 책도 한번 나왔더군요. 한스 콘의 책도 예전에 몇 권 나왔었는데 지금은 자취가 없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5-19 22:53   좋아요 0 | URL
권헌익 씨가 한국전쟁 이후 냉전정책의 확장에 관심이 많으니 한국전쟁과 독일 재무장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을 것 같군요.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게도 독일이 전후에 과거사 반성을 진정으로 했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은데 사실은 일본과 함께 냉전정책의 혜택을 제일 많이 입은 사람들이 독일 우익들이죠.공산주의와 싸우기 위해서라며 나치청산이 흐지부지 되어버리고....거기에 미국과 서방진영들이 지지하고...아파르헤이트를 가장 강력히 지지한 나라 중 하나가 옛 서독입니다.

로쟈 2011-05-21 15:51   좋아요 0 | URL
전쟁 연구서들은 제법 되지만, '전쟁 이후'에 관한 책이 새삼 드물다는 생각이 전 들었습니다...

雨香 2011-05-20 08:53   좋아요 0 | URL
한국사회의 부끄러운 속살이군요. 세계적인 학자가 시간강사가 되는.
로쟈님 블로그에서 석학 한분 또 알게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로쟈 2011-05-21 15:51   좋아요 0 | URL
한국에서 인정받기가 더 어려운 듯해요.^^;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무바라크 일가가 권력을 남용해 축적한 부를 폭로하는 기사가 나와 흥미를 끈다. 700억 달러면 이건희 삼성회장의 10배 규모다. 부패한 권력의 최후를 곧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기사에서 언급된 <최후의 파라오: 오바마 시대의 무바라크와 불확실한 이집트 미래>도 관심도서로 올려놓는다. '세계의 책'이다.   

경향신문(11. 02. 07) 가디언, "무바라크 일가 재산 700억 달러 달할수도"

반정부 시위대의 거센 사임 요구에 직면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일가의 재산이 700억 달러(한화 78조1900억원 상당)에 이를 수 있다고 영국 가디언이 4일 보도했다. 가디언은 중동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무바라크 일가가 영국과 스위스 은행의 비밀 계좌 예금, 런던·뉴욕·로스앤젤레스의 부동산, 홍해 해안의 고가 지역 등에 투자해 거대한 부를 쌓았다며 이같이 전했다.

무바라크는 30년간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군 고위 관리로 일하면서 수억 파운드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투자 협상에 관여했고 이 과정에서 얻은 수입 중 상당 부분을 외국으로 보내거나 은행 비밀 계좌에 입금했으며 고급 주택, 호텔에 투자했다고 가디언은 설명했다. 아랍계 신문 알 카바르도 무바라크 대통령이 뉴욕 맨해튼과 베벌리 힐스 로데오거리의 부동산도 소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아들 가말과 알라 역시 억만장자로 알려졌다. 런던 벨그라비아에 있는 가말의 호화 저택은 서구의 전형적인 ‘기념비적 자산’에 대한 무바라크 일가의 탐욕을 보여주고 있다. 프린스턴 대학 정치학과의 아마네이 자말 교수는 "400억~700억 달러에 달하는 무바라크 일가의 재산은 다른 걸프국가 지도자들의 재산에 필적한다"고 말했다. 자말 교수는 ABC 뉴스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이) 군과 정부에서 일하면서 얻은 사업 기회를 통해 개인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면서 "중동의 다른 독재자들 사례처럼 이 과정에서 많은 부패가 있었다"고 밝혔다. 알 카바르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자신의 재산 중 상당 부분을 스위스의 UBS 은행과 스코틀랜드 은행, 로이드뱅킹그룹 등을 통해 외국에서 보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무마라크 일가의 부가 정확하게 어디서 창출되고 최종 목적지가 어느 곳인지에 대해서는 일부만 알려졌다. 더럼 대학의 중동정치학과 크리스토퍼 데이비드슨 교수는 "무바라크 대통령의 부인과 두 아들도 무바라크 대통령이 군대 등 기업부패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자리에 있을 때부터 외국 투자자들과의 협력 사업을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데이비드슨 교수는 대부분의 걸프 국가들은 새 기업을 설립할 때 외국 투자자들에게 자국 내 파트너에게 51%의 지분을 주도록 요구하고 있다며 이집트는 이 수치가 20%에 가깝지만, 여전히 정치인이나 군부의 가까운 협력자들에게 거대한 이윤을 지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후의 파라오:오바마 시대의 무바라크와 불확실한 이집트 미래’의 저자 알라딘 엘라아사르는 무바라크 일가가 이집트에도 주택을 소유하고 있고 이중 일부는 전직 대통령과 군주들로부터 물려받았다고 말했다. 무라바크 대통령 일가는 샤름-엘 셰이크 휴양지 근처에 갖고 있는 호텔들과 땅을 통해서도 부를 쌓아왔다. 

11. 02. 06.  

P.S. 영미쪽에선 '무바라크 이후'로 전략적 관심을 옮겨갈 모양이다. 무바라크 시대를 정리하고 그 이후를 엿보는 책들도 근간으로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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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2-07 21:09   좋아요 0 | URL
흠 부패한 권력은 결국 부패한 부를 낳는군요.이집트의 경우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데 무바라크 대통령 일가의 재산이 700억불이상일수도 있다니 국민들이 분노할만 하군요.

로쟈 2011-02-08 22:13   좋아요 0 | URL
미국의 행보가 관심거리인데, 중국과 러시아는 무바라크 편이더군요...
 

프랑스에서 60만부가 넘게 팔려나가며 화제가 되고 있다는 스테판 에셀의 정치 팸플릿 <분노하라!>(2010)와 관련된 기사와 칼럼을 몇 개 모아놓는다. 그리고 '세계의 책'으로 분류한다. 본문 13쪽의 전체 30쪽짜리 책이라는데, 우리의 경우라면 300쪽은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일종의 분노의 시대, 분노를 부추기는 시대에 부치는 '격문'이다.   

한겨레(11. 01. 06) '분노하라!’ 프랑스 뒤흔든 ‘30쪽의 외침’

30쪽짜리 작은 책 하나가 프랑스 사회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앵디녜 부!>(Indignez vous!). 우리말로 ‘분노하라’는 제목의 소책자다. 지은이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레지스탕스 대원으로 독일 나치에 맞섰던 스테판 에셀(93·왼쪽)이다.

지난해 10월 초판 8000부가 출간된 이 책은 석달 새 무려 60만권이 팔려나갔고, 크리스마스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데 힘입어 새로 20만권을 증쇄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3일 전했다. 100살을 바라보는 레지스탕스 영웅은 이 책에서 프랑스인과 다른 모든 세계인들에게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의 정신을 되찾아, 돈과 시장의 무례하고 이기적인 힘을 거부하고 근대 민주주의의 사회적 가치를 수호하자”고 촉구한다. 광고문구와 주석을 뺀 본문은 13쪽에 불과해, 책이라기보다 격정적인 정치 팸플릿(레드북)에 가깝다.

다분히 선동적인 이 책이 판매부수 2위의 소설책보다 8배나 많이 팔릴 만큼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는 것은 단지 3유로(약 4500원)라는 저렴한 책값과 읽기에 부담 없는 분량 덕에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높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독창적이거나 깊이 있는 분석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근대적 시민사회의 가치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시장에 대한 맹신과 자본의 폭력에 ‘분노’하라는 칼칼한 외침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은이와 출판사는 “시장독재와 은행가들의 보너스와 재정위기가 전후 복지국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시대에 국가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민감한 신경을 정면으로 타격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분노 신드롬’이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해석되는 이유다.

에셀은 신년 메시지에서 자신의 책이 성공한 데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자신이) 1940년대에 나치즘에 맞섰던 것처럼 오늘날 젊은이들도 정치·경제·금융 권력의 공모에 맞서, 2세기에 걸쳐 이룩한 민주적 권리를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노하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프랑스에선 미묘한 정치적 파장까지 일고 있다. 지은이가 일깨운 프랑스적 가치인 ‘레지스탕스’(저항)가 2012년 프랑스 대선에서 니콜라 사르코지의 보수파 정권에 저항해 사회당을 지지하자는 뜻으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책의 한 대목은 이렇다. “분노할 이유를 발견하는 것은 귀중한 선물이며, 분노할 것에 분노할 때 당신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의 일부가 된다. 그 흐름이 우리를 더 많은 정의와 자유로 이끈다. 그 자유는 여우가 닭장 속에서나 맘껏 누리는 자유가 아니다.”(조일준 기자)    

한겨레(11. 01. 10) [한겨레 프리즘] 분노의 시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신드롬이 되는 문화엔 그 사회의 당대 정신이 녹아 있다. 지금 세계를 휩쓰는 코드는 ‘불안’과 ‘분노’다. 미국이라면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중인 록뮤지컬 <아메리칸 이디엇>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펑크록 밴드 그린데이의 동명 앨범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2009년 초연 땐 작은 뮤지컬에 불과했지만, 미국의 깊은 불안을 드러낸 “아메리칸 레퀴엠”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화제가 되고 있다. 음악을 하다 마약에 빠진 젊은이와 9·11 이후 애국심에 떠났던 이라크 전장에서 한 다리를 잃은 또다른 젊은이, 그리고 우울증에 빠져 집에서 꼼짝 않는 또다른 친구. 1950년대 미국의 비트 제너레이션이라면 마약과 섹스에서라도 구원을 찾겠지만, 21세기 이들 세대에겐 출구가 없다. 싸울 줄도 분노할 줄도 모르고 하강하기만 하는 이들 청춘은 한국 영화 <마이 제너레이션>의 절망을 닮았다.

프랑스에선 이런 절망감에 놀랍게도 올해 93살의 레지스탕스 출신 노인이 분노의 불을 붙였다. 스테판 에셀의 13쪽짜리 본문의 소책자 <분노하라>(Indignez-vous)는 지난해 10월 영세출판사에서 8000부를 찍은 데서 시작해 현재 80만부 가까이 팔려나갔다.

새로운 시대의 ‘선언문’이 되기엔 독창성도, 깊이있는 분석이나 날카로움도 부족하다고 지적되는 이 책의 폭발적인 인기 배경엔 극적 에피소드들이 작용했을 수 있다. 유대인 출신 작가 아버지와 자유로운 정신의 화가인 어머니가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영화 <줄 앤 짐> 원작의 모델이었다거나, 에셀 자신이 1944년 나치 수용소에서 처형 직전 숨진 프랑스인과 신분증을 바꿔 가까스로 탈출했고 1948년 세계인권선언문 작성에 참여한 인물이란 점 등이 그렇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금융위기 이후 사람들의 절망에 대해 전세계 좌파들이 무능하게 대응할 때 “자신의 내러티브를 가진 ‘찬사받는’ 좌파인물의 등장은 울림이 크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의 삶과 말이 지금의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실제 이제 프랑스는 ‘인생은 아름다워’를 모토로 하던 그 나라가 아니다. 최근 53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에서 프랑스는 응답자의 61% 이상이 2011년 경제를 어둡게 전망해 가장 ‘비관적인 국가’로 꼽혔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야만적인 이민자 정책, 복지 축소 등에 프랑스를 프랑스로 존재 가능케 했던 ‘평등’과 같은 가치가 사라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각국 언론들은 이 책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서구사회에 번져가는 대중적인 불안과 분노의 정서를 건드렸다고 말한다. 독일 출신의 철학자 안젤름 야페는 <죽을 때까지 빚진: 자본주의의 해체>에서 “2008년 붕괴는 단순히 재정위기가 아니라 문명의 위기”라고 지적했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신드롬을 일으켰던 대한민국은 어떤가. 독주와 불통은 임계치를 넘고 모든 복지 주장은 이성적인 논의도 해보기 전에 포퓰리즘 딱지부터 붙는다. 전세금을 1억원씩 올려달라는 요구에 고민하는 사람들 얘기가 주변에선 끊이지 않는데, ‘전세보증금 증액 상한제’를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2004년 이후 번번이 국회에서 무산되고 있다.

어떻게 선진국과 비교하냐고? 1970년대 이후 수십년간 이런 논리는 반복돼왔다. 하지만 복지는 부유할 때 나눠주는 ‘자선’이라는 사고가 박혀 있는 한, 언제까지나 복지는 자본의 팽창 욕망을 따라잡을 수 없다. 다시 에셀을 읽는다. “그들은 감히 우리에게 국가가 더 이상 시민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제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감히’라고 국가에 당당히 일갈하고 분노하라고.(김영희 국제뉴스팀장)   

경향신문(11. 01. 15) [목수정의 파리통신] 분노하고 행동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2011년이 열리고 나서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말은 <분노하라(Indignez Vous!)>다. 가장 많이 지면에 등장한 인물은 이 책의 저자 스테판 에셀이다. 올해 그는 한국 나이로 95세에 이른다. 레지스탕스 영웅으로, 전후에는 외교관으로, 말짱한 정신과 몸을 가지고 한 세기를 살아온 이 다복한 남자는 단 13페이지의 짧은 책을 써서 3개월 만에 60만부를 팔아 치운 경이로운 사회 현상의 한가운데 서 있다.

연말,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서점에 들러 책을 뒤적이던 30여분 남짓, <분노하라>를 급히 사가는 사람들의 긴 행렬을 목격하면서 범상치 않은 사건이 프랑스 사회에 조용히 번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신년 들어 프랑스의 모든 언론들이 <분노하라> 특집을 앞다투어 다루면서 바야흐로 2011년은 분노의 시대로 정의되고 있었다. 

이 책에 대한 폭발적 반응은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입속에 삼키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프랑스적 현실에서 찾을 수 있다. 연금파괴 정책에 반대하는 다수의 프랑스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이를 관철시킨 사르코지 정부, 사회 모든 영역에서 지난 시대에 자신들이 건설해 온 사회체제를 망치로 때려 부수는 소리가 쟁쟁하게 울려 퍼지는 지금의 프랑스 사회를 관통하는 감정은 바로 ‘분노’다.

그러나 차마 사람들이 그것을 감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던 그 때,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 어린 아이가 그의 벗은 몸을 거침없이 비웃던 것처럼, 한 세기를 살아낸,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는 이 당당한 노인이 거리낌없이 말했던 것이다. 바로 지금이 당신들의 분노를 끄집어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프랑스를 구해낼 때라고.

스테판 에셀은 말한다. 국민연금과 사회보장제도, 무상의료, 무상교육의 사회체제는 전후 프랑스 사회를 이끌어간 레지스탕스 정신의 산물이라고. 우리 모두 자랑스러운 사회를 지켜야 하며 이민자를 축출하고, 불법 체류자들을 차별하며, 언론은 한 줌 권력집단에 장악당해 있는 이런 사회는 우리가 자랑스러워했던 그 사회가 아니라고. 과거 그가 나치에 저항했던 것과 같이, 우리가 지켜야 할 모든 사회적 덕목들을 훼손시키는 돈과 시장의 무례하고 이기적인 힘을 거부하고 더 많은 정의와 자유를 향해 나아갈 것을 촉구한다.

프랑스 지성의 산실 에콜노말에 입학했던 1939년, 2차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레지스탕스에 가담하고, 독일군에게 잡혀있다가 탈출한다. 전후에는 세계인권선언의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외교관의 안락한 삶은 그를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보수적인 삶으로 주저앉히지 않았다. 그는 아프리카 노동자 교육협회를 창설하고, 인권자문위원회에 참여하며, 교회를 점거한 이주노동자와의 협상중재에 나서는 등 끊임없이 그를 분노케 하고, 열정을 부추기는 사건에 동참하면서 역사의 한 흐름을 지켜왔다.

우리에게도 점령당했던 역사와 그 치욕에 항거하여 몸을 불사른 용맹스러운 레지스탕스(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해방과 함께 역사의 주역이 되지 못했고, 그들의 진취적인 정신은 해방공간을 차지하는 시대정신이 될 수 없었다. 이승만이 집권한 해방 후 이 땅에서 권력을 장악한 것은 친일세력들이었기 때문이다.

1960년. 이들이 벌여놓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3·15 부정선거는 청년들의 분노를 샀고, 이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거리로 나섰다. 경무대로 찾아가 이승만을 마주한 청년들은, 눈 멀고 귀 먹은 이 식물 대통령에게 이 나라에서 벌어진 참혹한 민주주의 말살 행위를 고한다. 이 때 이승만은 “나라에 이런 부정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청년들이 들고 일어서지 않으면 나라는 망한다”고 말하며 그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선언했다.

해방 이후 잘못 끼워진 단추의 비극은 지금까지 우리를 불행한 역사의 질곡에 붙들어 매고 있지만, 거기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분노하고, 행동하는 청년들의 열정이었다. 그 분노와 행동은 눈먼 자에게도 한줄기 정의를 일깨울 수 있는 힘을 가졌던 것이다. 분노할 일은 넘치고, 행동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 2011년의 초입이다. 

11. 01. 16.  

P.S. 지젝의 <폭력이란 무엇인가>(난장이, 2011) 6장에서도 분노의 문제가 다뤄지는데, 슬로터다이크의 <본노와 시간>에 대한 논평을 겸하면서 지젝은 '분노 자본'의 축적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문제는 간단히 말해서 분노 자본이 한번도 충분했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 민족적 분노이건 문화적 분노이건 다른 분노를 더 끌어오거나 결합시켜야 하는 이유다." 역사적으로 그랬다. 때문에 필요한 것은 분노의 국지적, 간헐적 표출보다는 '분노의 전지구적 은행'이라고 말한다. 분노의 시간은 분노의 축적과 폭발이란 두 계기를 포착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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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분노가 세상을 바꾼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6-06 15:04 
    프랑스의 노(老) 레지스탕스 스테판 에셀의 소책자<분노하라>(돌베개, 2011)가 번역돼 나왔다. 원저가 20여쪽 분량이라고 하니까 '책'으로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제목에 80%는 들어가 있는 '전언'이다. '부당한' 대학 등록금에 대한 대학생들의 분노가 마침 촛불로 번져가고 있는 즈음에 '분노하라!'는 전언은 더없이 강한 울림을 갖는다.경향신문(11. 06. 06) 분노하라, 전세계 뒤흔든 외침“젊은이들이여, 주위를 조금만 둘
 
 
자꾸때리다 2011-01-16 19:36   좋아요 0 | URL
그런데 프랑스에서 학생 시위는 흐지부지 끝난 모양이네요.

로쟈 2011-01-16 20:19   좋아요 0 | URL
겨울은 시위하기에 좋은 계절이 아니죠. 방학도 있고...
 

경향신문에서 '목수정의 파리통신'을 읽다가, 이게 또 책 얘기라서 '세계의 책'으로 분류해놓는다. 프랑스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는 <카를라 브루니의 은밀한 사생활>과 <부자들의 대통령> 얘기다. 책의 두 가지 용도를 보여주는 듯싶다...  

  

경향신문(10. 09. 25) 브루니의 사생활 VS 부자들의 대통령 

2주 전, <카를라 브루니의 은밀한 사생활>을 파헤치는 책의 출간 소식이 요란하게 외신을 탔다. 집시들을 추방한 프랑스가 유럽의회에 의해 제소되고 거친 비난의 소리들이 프랑스를 향해 쏟아지던 바로 그 순간에. 우리나라에서 정치적으로 난감한 일들이 발생하면, 때마침 연예인 커플들이 이혼을 하거나 결혼을 하듯. 엘리제궁이 이 책의 출간을 방해하려다 실패하였다는 소문마저, 실은 출판사와 엘리제궁이 짜고 치는 장난으로 보일 만큼, 상황은 매우 절묘했다. 사실 이 책의 등장이 사르코지에게 해가 될 것은 거의 없다. 카를라 브루니의 역할은 등장 초부터 그러했다. 정치적 갈등으로부터 시선을 끝없이 분산시키는, 대통령 옆을 공식적으로 차지한 화려한 바비인형. 연애와 정치가 뒤섞일 때, 사람들의 호기심은 최대치로 치솟는 것을 우린 익히 경험한 바 있다. 사르코지는 정치 지면에서 연예계 기사를 읽는 듯한 즐거움(!)을 국민들에게 선사하는 수법을 능란하게 구사하면서 집권 3년을 헤쳐왔다.

전 부인 세실리아가 임기 중,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찾아 사르코지를 떠난 후, 헤어진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만난 브루니와 전격 결혼하면서, 사르코지가 언론에 전한 첫눈에 반한 이유는, “세실리아와 똑 닮은 외모”였다. 그가 브루니에게 선사한 결혼반지가, 세실리아에게 준 것과 같은 것이라는 사실이 사진과 함께 신문에 보도될 만큼, 대통령의 연애는 그의 정치보다 흥미진진한 기삿거리들을 제공해 주었다.

참한 동네 서점에 들러 책을 보고 있는데, 한 사람이 문제의 이 책을 사간다. 이 책을 사는 사람이 정말 있구나 싶어, 집에 와서 아마존 순위를 검색해 보았다. 31위. 생각보다 선전이다. 카를라 혹은 사르코지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시아버지의 여자친구였던 카를라가 어느날 남편과 연인이 되고, 아이까지 낳는 걸 겪었던 소설가 쥐스틴 레비는 이 이야기를 소설을 통해 토로해냈다. 그 밖에도 “카를라 브루니에 대한 진짜 스토리” “브루니와 야심가들” “사르코지와 그의 여자들”… 더 파헤칠 것도 없는 그들의 사생활은 이미 재탕 삼탕으로 우려먹은 지 오래다. 커버스토리로 다뤄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미 일부일처제의 지루함에 대해, 사랑은 오래가지만 열정은 2~3주면 사라지므로, 일부다처 혹은 일처다부의 방식을 선호한다는 견해를 피력한 터이다. 그녀는 사생활을 굳이 숨긴 적도 없고, 그것을 부끄러워한 적은 더더욱 없기 때문에, 이미 알려진 그녀의 사생활을 애써 “폭로”하는 책들은 그 누구의 정치적, 사회적 생명도 위협하지 않는다. 정치를 가리는 현란한 가십으로서의 효력을 계속 이어나갈 뿐이다. 



같은 시간 아마존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책은, 거의 같은 시기에 출간된 <부자들의 대통령>이다. 미셸 뱅송, 모리크 뱅송 샤를로, 두 사회학자가 저술한 이 책은 사르코지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의 이해를 위해 권력을 남용하고, 부를 축적하며, 그들끼리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국가조직을 이용하는지를 낱낱이 밝히고 있다. 금융방패, 세금감면, 처벌대상에서 제외 등은 돈으로 만들어진 신흥귀족들을 위한 계급투쟁의 최전방에 선 사르코지가 구사하는 일부 가시적 전술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가면 뒤에는 오로지 특정 계급만을 위한 정부가 작동하고 있음을 이 책은 신랄하게 폭로하고 있다. 출간 3주 만에 아마존 책 종합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맹랑한 책의 선전에 대해서는, 그 어떤 외신도, 혹은 프랑스 일간지들도 곱게 입을 다물고 있다. 아무렴. 그럴 테지. 

10. 09. 25. 

 

P.S. 국내에 몇권 나와 있는 사르코지-브루니 관련서는 대개 '가십'이나 '처세술' 쪽으로 분류될 만한 책들이다. <부자들의 대통령> 같은 책이 소개되길 기대해본다. 더 바람직한 건 한국의 사회학자들이 그런 책을 써주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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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x3 2010-09-25 18:30   좋아요 0 | URL
역시, 책을 사랑하시는 분이세요^^ 저는 아침에 이 칼럼 읽고 책과 연관시키질 못했는데.. (안녕하세요. <책을 읽을 자유> 잘 읽고 있습니다^^)

로쟈 2010-09-26 10:20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주로 하는 일이죠.^^; 제 책은 내놓고 나니 들고다니기 좀 무거운 책이더군요.^^
 

이번주 지구촌 최고의 화제작은 스티븐 호킹의 <거대한 설계>가 될 전망이다. 무신론을 함축한 '자발적 창조론'을 주장하여 영국에서는 이미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데, 국내 언론도 관련기사들을 내보내고 있다. <시간의 역사>(삼성이데아, 1989)가 물리학 책으로는 드물게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전력이 있는 만큼 <거대한 설계>도 곧 한국어본이 출간되지 않을까 싶다. 그 사이에 20년도 더 되는 시간이 지나가버렸군... 

한국일보(10. 09. 06) [지평선/9월 6일] 호킹의 우주 

다음 주말을 전 세계 많은 이들이 열광 속에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천재물리학자로 불리는 스티븐 호킹 박사의 책 <거대한 설계(Grand Design)>의 출간이 예고된 때문이다. 대중을 위해 알기 쉽게 우주의 기원과 구조, 팽창과정 등을 설명한 책이라곤 하지만, 앞선 <시간의 역사>나 <호두껍질 속의 우주>처럼 초끈이론, M-이론 등 난해한 현대물리학에 대한 기본이해 없이는 도전하기가 쉽지 않은 내용일 것이다. 그의 책은 매번 엄청나게 팔렸지만, 마르크스의 <자본론>처럼 '가장 읽히지 않는 베스트셀러' 소리를 듣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어쨌든 <거대한 설계>는 서점에 풀리기도 전에 이미 거대한 논쟁에 휩싸였다. 영국언론은 지난 주 책 내용을 발췌 소개하면서 '신은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는 도발적 제목을 달았다. 우주의 기원이 된 대폭발(Big Bang)은 물리학 법칙의 필연적 결과라는 그의 '자발적 창조론'을 압축한 표현이다. 더욱이 호킹은 "(창조를 설명하려) 종이에 불을 붙여 우주를 폭발시키는 신을 부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단다. 이 냉소적 비유는 기독교신앙에 바탕한 창조론자, 다른 말로 '지적 설계론자'들로서는 가히 선전포고로 받아들일 만한 것이다.

■ 10년 전 책에서도 신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던 그에게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신에게 선택된 지구'의 자긍심을 무너뜨릴 만한 또 다른 태양계의 발견이 첫 계기였다고 하지만, 보도내용으로 미루어 우주의 현상을 완벽하고 통일되게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 도달한 것이 결정적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정말 그런 이론 구축이 현실화한다면 창조론의 입지는 크게 좁아질 것이다. 우주와 생명, 인간의 기원과 발전과정에서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거나, 입증되지 않는 바로 그 지점이 지금까지 신이 머물러온 자리인 때문이다.

■ 모든 인간이 숙명적으로 갖고 있는 세계와 삶의 본질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이 조금씩 답을 얻어가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기꺼운 일이다. 그러나 또한 한편으론 두렵고 허망하다. 과학 발전에 따라 정신작용도, 사랑의 감정을 포함한 복잡미묘한 마음까지도 내분비계 화학적 성분의 조합으로 규명돼간다. 모든 것이 물리법칙과 화학반응으로 설명 가능한 세계 속에서 우리는 과연 후련해서 행복할까?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인간의 존엄성이나 존재의미는 그럼 뭘까?…가을 문턱에서 호킹의 신작 소식에 접해 문득 어지러운 상념에 잠긴다.(이준희 논설위원) 

10. 09. 06. 

 

P.S. 책은 <위대한 설계>(까치글방, 2010)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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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주 탄생에 대한 스티븐 호킹의 대답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10-06 08:22 
    영어권에서는 지난달에 출간돼 화제를 모은 <위대한 설계>(까치, 2010)의 번역본이 나왔다(관련기사들에서 '거대한 설계(The Grand Design)'로 옮겼었는데, 번역본 제목은 '위대한 설계'가 됐다). 교양과학서로는 이번주에 가장 크게 다뤄질 만한 책이다. 간단한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알라딘에서도 이미 예약주문을 받고 있는 책인데, 나도 주문을 넣어야겠다...    
 
 
마일즈 2010-09-06 17:58   좋아요 0 | URL
그런 지적에 이견은 없습니다만, 과학에 관련된 글쓰기에 항상 따르는 운명같습니다. 특히 보편청중을 청자로 삼는 과학에서 가장 신경쓰는 부분이 어떤 과학현상을 새로운 문제의식을 갖고 기존과 다른 입장에서 재구성하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수식전개는 일반독자보다는 보편청중을 설득하는 수단으로 의미가 있는거 같습니다.

현대물리학의 섬세한 성과를 비유적으로 차용한 문학글쓰기와도 과학글쓰기는 다른 거 같습니다. 그리고 생각나는 한 경향으로 스티븐 핑커의 글쓰기가 있습니다. 그의 글도 언어학에 관련된 여러 분야를 아우른 일종의 언어과학글쓰기로 보이는데, 맨 처음에 접했을 때 인상과는 달리 그가 전달하려고 했던 내용이 관련된 분야 책을 읽을수록 크지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 약간의 당혹감이 듭니다.

거의 보편청중을 염두에 둔 과학을 일반독자에게 전달하는 과학글쓰기는 또 다르게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로쟈 2010-09-07 09:04   좋아요 0 | URL
그런 글쓰기가 아쉽게도 국내에선 드문 것 같습니다. 그런 책을 쓸 수 있는 과학자뿐아니라 전문 저널리스트들이 더 나왔으면 하는데, 그럴 여건은 아직 못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