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만큼 확실하게 관련서가 출간되는 기념일도 드물 것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닌데, 단연 돋보이는 것은 노마 히데키의 <한글의 탄생>(돌베개, 2011). 책 표지만 보고 주문해서 주중엔가 받은 책인데, 잠깐 펴본 바로는 상당히 학구적인 책이다. 일본의 한국어학 수준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만만찮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서울신문(11. 10. 08) 동북아 지적 대혁명, 한글 창제

“한글의 탄생과 성장은 지(知)의 혁명이며 문화의 혁명이다.” ‘한글의 탄생: 문자라는 기적’(돌베개 펴냄)은 한글 원리와 탄생 배경, 성장 과정을 ‘언어란 무엇이고, 문자란 무엇인가?’라는 보편적인 질문을 통해 통찰하고 풀어냈다.

그 과정에서 ‘소리가 글자가 되는’ 놀라운 구조를 확인하고, 하나의 글자 체계를 뛰어넘은, ‘말과 소리와 글자’가 함께하는 보편적인 모습인 한글을 그려냈다. 귓가에 들려오는 말소리로부터 ‘음’의 단위를 추출해 내고, 이들을 각각 ‘자모’로 형상화해 설계해 내는 ‘훈민정음’의 탄생 과정을 경이롭게 펼쳐냈다.

일본인 한국어학자 노마 히데키는 한글 탄생이 단순한 문자 발명을 넘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지(知)’의 판도를 뒤흔들어 놓은 지적 혁명의 과정이라고 지적한다. 한글 창제 이전부터 있어 왔던 수천 년 동안의 문자 생활 및 환경을 꼼꼼이 짚었다. 한자·한문만으로 글을 써왔던 15세기 이전의 한반도와 일본에서, 말과 다른 글을 표현하기 위한 갖가지 방법을 소개하면서 언어와 문자 관계를 살펴보게 이끈다.

저자는 훈민정음의 창제를 ‘알파벳 로드(road)’, ‘자음문잣길’의 종언이라고 단호하게 정의한다. “아시아를 가로지른 ‘자음자모 로드’의 종착지에서, 어슴푸레한 모음에 단호히 게슈탈트(형태)를 부여한 것이 훈민정음”이라고 강조한다. “훈민정음은 라틴문자처럼 모음자모와 자음자모가 직선상에 병렬된 2차원적인 배열 시스템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입체적 배치 시스템, 동적인 시스템을 확립했다.”고 밝혀낸다.

이런 분석으로 “훈민정음의 성립을 한국어사 및 동아시아 문화사라는 한정된 범위를 넘어 언어학, 문자론 등 다각적인 방면에서 고찰해 보편적인 의의와 가치를 찾아내려고 했다.”는 평도 받았다. 이 책은 훈민정음 창제이후 한글로 쓰여진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세종의 ‘에크리튀르(쓰여진 것과 쓰는 것) 혁명’이 어떻게 내용을 이뤄나가고, 한글의 내용을 담게됐는지를 동국정운, 석보상절, 천자문 언해, 두시 언해 등의 내용을 들어가며 설명했다.

저자는 현대일본미술전 가작상을 수상한 미술작가이기도 하다. 일본어로 쓰여진 같은 제목의 저서를 번역한 것으로 2010년도 아시아태평양상 대상을 받았다. 한국인들에게 이 책은 한국어와 한글을 외국학자의 낯선 눈을 통해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계기를 준다. 저자는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의지와 실천이 없었다면, 한글은 어쩌면 로마자 같은 문자로 쓰여졌을 수도 있겠다.”는 말로 훈민정음 창제의 무게를 요약하기도 했다.(이석우 편집위원) 

11. 10.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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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매경이코노미(1626호)에 실은 서평은 옮겨놓는다. 마감 전날까지 고심하다가 와타나베 쇼이치의 <지적생활의 발견>(위즈덤하우스, 2011)을 서평감으로 골랐다. 서평엔 요점만 간추렸지만 중반 이후로 흥미로운 내용들이 나와 읽을 만했다. 책 자체는 1976년에 나왔으니 '올드'한 책이고 한국어판도 예전에 나온 적이 있다. 저자에게 집필 동기를 제공한 책은 필립 길버트 해머튼의 <지적생활>(1873)인데, 현재 구할 수 있는 판본으론 <지적 즐거움>(베이직북스, 2008)으로 소개돼 있다.   

  

매경이코노미(11. 10. 12) 서재 없는 당신, '지적생활' 포기하시오

‘지적(知的)’이라는 평판을 들어서 기분 나빠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럼 ‘지적생활’은 어떨까? 아예 ‘지적생활자’로 나서는 것 말이다. 궁금하다면 일본의 평론가이자 영문학자 와타나베 쇼이치의 <지적생활의 발견>(위즈덤하우스)을 펼쳐보시는 게 좋겠다. 모든 사람이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건 아닐 테니 모두를 위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혹 지적인 사람이 되고 싶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지적생활을 영위하는 게 인생의 목표라면, ‘지적생활의 ABC’에 대해서 간명하면서도 요긴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지적생활의 핵심은 일단 책이다. “지적생활이란 꾸준히 책을 사들이는 삶”이라는 정의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수입이 적으면 적은대로 형편에 맞게 책을 지속적으로 사는 것이 지적생활자의 기본 자세다. 물론 그렇게 사들이자니 부수적으로, 아니 필수적으로 따라붙는 게 보관장소의 확보 문제다. 저자의 냉엄한 경고에 따르면 “이 공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지적생활의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사실은 그 자신의 경험담이기도 한데 대학시절에 헌책방에서 일본의 교육자 도쿠토미 소호의 <근세일본국민사> 50권을 발견했다고 한다. 아주 탐나는 책이었고 책값도 3000엔으로 무척 쌌지만 2인 1실의 기숙사방에는 들여놓을 공간이 없었다. 룸메이트의 동의도 구하지 못해 결국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이 일로 그는 자신의 처지가 뼈에 사무치게 한스러웠다. ‘책을 쌓아둘 만한 공간’, 간단히 말해 서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지적생활자에게 서재는 보통 방 한 칸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적생산으로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장서가 자료로 필요하고 서재는 자연스레 ‘도서관’의 규모를 갖게 된다. 영어로는 서재와 도서관을 통칭해서 ‘라이브러리(library)’라고 부르므로 지적생활을 위해서는 ‘나만의 라이브러리’가 필요하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이 라이브러리가 영문학자인 저자가 <독일 참모본부>란 책까지 쓸 수 있었던 비결이다. 독일 유학시절에 우연히 독일 육군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서양전쟁사에 관한 책을 한권씩 모았고 어느새 방 한가득 채우게 됐다. 역대 참모총장에 관한 기본문헌부터 평전까지 섭렵하다 보니 독일 근대사 분야의 전문가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독일 군부에 대해서는 정통하게 됐다. 그렇게 오랜 기간 수집해온 자료가 있었기에 실제 집필은 아주 단기간에 끝낼 수 있었다. 지적생활이란,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방대한 장서를 갖춘 서재와 지적생산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갖춘다는 건 물론 소망스러운 일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독립(independency)’이 필요하다. 이때 독립은 ‘불로소득(不勞所得)’을 가리킨다. “나는 인디펜던트다”라고 말하면 굳이 월급에 의지하지 않아도 경제력이 있다는 뜻이라 한다. 애초에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최대한 일찍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 안정적인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학문 혹은 지적생활에 매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생활고에 시달렸던 영국의 수필가 찰스 램은 이렇게까지 말했다. “부는 우리에게 시간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선이라고 할 수 있다. 부자를 보면 질투심으로 가슴이 쓰린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물려받은 유산이 많지 않았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23세에 학문에만 몰두하겠다고 결심하고 경제적 독립을 이루기 위해 결혼도 포기했다. 그러고는 37세에 비로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가 일대일대의 작업으로 최초의 영국통사라 평가받는 8권짜리 <영국사>를 완성한 것은 그런 결심과 노력 덕분이었다.  

“지적생활을 하는 데 가장 장애가 되는 요소는 중병을 제외하고는 가족이다”라거나 여성의 경우 “아이를 두 명 이상 낳아 키워야 한다면 지적생활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는 저자의 충고를 접하면 혹 지적생활에 대한 꿈을 접을 사람도 있겠다. 지적생산에는 기계적으로 일하는 습관까지 필요하다고 하면 두 손을 들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책은 분수에 맞지 않게 지적생활을 꿈꾼 이들이 마음을 접는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을 듯싶다. 

11. 10.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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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린의 생각
    from ptec's me2day 2011-10-05 09:48 
    나에게 지적생활은 쓸데없는 사치일까? 우선 이책을 읽어보고 판단해 봐야 겠다.
 
 
yamoo 2011-10-04 20:53   좋아요 0 | URL
지적 생활~ 하면, P.G. 해머턴 아닐까요? 이 분야의 독보적인 고전 중 한 권 같습니다만..골라 주신 책들도 찾아 봐야 겠는 걸요~^^

로쟈 2011-10-05 07:42   좋아요 0 | URL
네 <지적 즐거움>이 같은 책입니다. '지적생활'이란 말의 원조더군요.^^

gangmina 2011-10-05 10:21   좋아요 0 | URL
지적생활의 방법이 새책의 구간인가요? 앞선 책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다른 건지 궁금하네요~~ ㅎ

로쟈 2011-10-05 18:19   좋아요 0 | URL
역자가 같은 걸로 보아 내용은 별 차이가 없을 듯해요...
 

지난 여름 연세대 국학연구원의 인문한국사업단에서 첫 성과로 두 권의 책을 펴냈고 나도 바로 구입을 했는데, 어쩐 일인지 언론홍보는 꽤 늦게 이루어진 모양이다. 지난주에야 관련기사들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백영서 원장의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사회인문학'이란 취지에 걸맞은 책들이 연말까지 몇권 더 출간되면 의미를 짚어볼 수 있을 듯싶다.   

한국일보(11. 10. 01) "인간다움을 갈구하는 사회… 대중과 소통하는 학파 만들 것"

"그다지 딱딱하지 않은 인문사회과학 책도 요즘은 2,000~3,000부 나가는 게 고작이다. 10년 전에는 5,000부는 팔렸다.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책은 참 안 팔리는데 왠지 인문학 강의는 호황이다. 노숙자나 재소자를 위한 강의에도, 최고경영자(CEO)를 모은 강연에도 '인문학'이라는 간판을 달 때가 흔하다. 인문학은 과연 위기인가.

29일 연세대 국학연구원장실에서 만난 백영서 교수는 "사람들이 인문학 강의를 찾는 것은 그런 강의를 들으면 뿌듯해지고 인간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 같고 이제 내가 부속품이 아니라는 느낌을 갖게 되는 이를 테면 종교적인 욕구나 인간다움에 대한 갈구 같은 게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인문학 책은 갈수록 안 팔리는 것은 결국 출판이 그런 수요를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근본적으로 한국의 인문학 연구 방향이나 태도가 고립화를 자초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2008년 11월부터 국학연구원이 시작한 사업이 있다. '사회인문학 프로젝트'다.

"사회과학은 정책적 학문이고 현상 분석이 강한데 인문학은 가치 판단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게 사회과학이라면 인문학은 왜 그러는지, 대안이 정말 필요한지 가치를 논의하는 거다. 그러다 보면 고담준론에 빠지고 현실장악력이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둘을 결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문학은 사회화하고 사회는 인문성을 회복하는 '21세기 실학'을 모색하자는 거다."

물론 국내 학계에 이런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이끄는 '통섭원'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묶으려 하고, 임지현 한양대 교수가 이끄는 '비교역사연구소'는 탈민족주의를 화두로 역사, 문학, 철학을 섞는다. 사회인문학 프로젝트 역시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서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좀더 차별화한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분과를 넘어선 연구를 통해 인문학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사회적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10년 기획으로 추진하는 이 프로젝트의 1단계 사업이 최근 끝나 그 성과 일부가 한길사에서 <사회인문학이란 무엇인가?> <한국 인문학의 형성>이란 책으로 출간됐다. <사회인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사회인문학의 정의와 구상을, <한국 인문학의 형성>에서는 근대 이후 국내 인문학의 역사를 통해 최근 인문학 위기의 본질을 살폈다.

백 교수는 첫 책에서 근대 학문 정립시기에 요구됐던 '세분화될수록 학문은 더욱 정교해진다'는 생각은 수정해야 한다며 사회인문학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문사철'로 요약되는 인문학 텍스트 읽기 훈련에 자족해서는 인문학의 본래 이념인 인간다운 삶의 고양을 충실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동집필자의 면면을 보면 이 프로젝트의 전체 상(象)이 짐작된다. 박명림 교수를 비롯해 나종석, 소영현, 이경란 등 연세대 출신 교수ㆍ연구교수가 중심이고, 김재현(경남대) 박광현(동국대) 교수 등 중도진보 성향의 학자들이 참여했다. 연말까지 국학연구원 교수들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공동집필한 <사회인문학과 소통>, 백영서 교수의 <제도/운동으로서의 사회인문학>, 박명림 교수의 <사회인문학의 창안> 등이 총서 시리즈로 더 나온다.(이윤주기자) 


국립박물관 인문학 강좌에 모인 시민들. 대학 인문학의 위기 속에서도 인문학을 소재로 한 대중강좌·출판물의 활황이 공존하는 기이한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일보(11. 09. 29) 인문학·사회학 소통을 논하다 

대학 인문학과의 붕괴 위기에도 대학 밖에서는 인문학이 대중강좌와 출판물 시장의 인기 아이템이 됐다. 점점 더 고립되고 자폐화하고 있는 대학 인문학의 사회성 회복이 시급해 보이지만 출판과 언론이 주도하는 대중적·상업적 인문성을 인문학 본연의 사회성으로 정의할 수도 없다. 이에 다양한 분야의 인문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이 만나 공동연구를 수행하며 새로운 통합학문을 향한 학문체계를 제안하고 나섰다. 연세대 국학연구원에서 ‘사회인문학’이란 이름 아래 진행해온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사회인문학이란 기존 분과 학문들의 단순한 결합을 넘어서 진정한 학제 간 연구를 통해 인문학 본연의 성찰성·공공성·비판성을 회복하고 사회적 소통을 강화하려는 시도다. 연세대 국학연구원과 한길사가 공동기획해 최근 출간된 ‘사회인문학 총서’의 첫 권인 ‘사회인문학이란 무엇인가’는 이들의 사회인문학 구상과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먼저 백영서 교수(동아시아 현대사)는 대학 강단의 인문학에 대한 요구, 즉 근대 학문 정립시기에 요구됐던 ‘세분화될수록 학문은 더욱 정교해진다’는 관념은 수정돼야 한다면서 사회인문학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는 “문학·철학·역사 텍스트에 정통하는 훈련에 자족해서는 인문학의 본래 이념인 인간다운 삶의 고양을 충실히 할 수 없다”면서 작금의 고전을 연구하고 배우는 태도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인문학에서 고전의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고전에 담긴 인문정신을 되살리면 현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듯 주장하는 ‘인문 권위주의’로 미끄러질 수 있으며, 인식적 깨달음에 따르는 기쁨을 강조하다 보면 ‘인문 엘리트주의’에 빠질 위험도 있다”고 경계한다. 그는 현재에 대한 비평적 개입이 인문정신의 본질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해 사회인문학을 구현할 수 있는 사례로 ‘공공성의 역사학’을 제안한다.

한국 인문학의 위기는 한국 학문과 사회 위기의 일부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세계 현실을 ‘허둥대는 공동체, 불안한 개인’으로 바라본 박명림 교수(한국정치)는 “사회의 인문성 회복과 학문의 사회성 회복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설명한다. 즉 박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오늘의 세계에서 사회인문학을 1980년대의 사회과학과 현재의 시장학문을 극복할 수 있는 비판적 학문 패러다임으로 제안한다.

그에 따르면 순수 인문학과 상업인문학의 간극이 점점 넓어지고 있지만 대중인문학은 인문적 호기심을 높일 뿐 대중의 참여성과 사회의 인문성 제고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제도적 대안으로 그가 주장하는 것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현재 구분을 폐지하고 사회인문학으로 재배열할 것, 대학편제에서 문과와 이과의 구분을 철폐하고 기초학문을 통합한 문리(과)대학을 부활시키자는 것이다. 제도로서의 문과와 이과의 분리는 전체로서의 자연과 사회, 인간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데 장애를 초래하는 동시에 입시교육 체제로서의 중고등학교 교육을 결정적으로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또 분과학문과 지역연구, 개별국가연구의 결합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덧붙인다.

사회인문학의 다양한 실천양식도 논의된다. ‘글쓰기의 사회인문학’에서 최기숙 교수(한국문학)는 “오늘날처럼 학술논문이라는 제도화된 글쓰기 양식을 통해서는, 직관의 수사로 점철된 니체나 논(論) 설(說) 전(傳)에서부터 소품문과 소설에 이르기까지 제도적 글쓰기와 문제적 글쓰기를 아우른 연암 박지원 같은 학자가 나오기 어렵다”면서 감성과 직관을 배제하지 않는 사회인문학적 글쓰기 방식을 제안한다.

소영현 교수(근현대문학)는 ‘비평의 장소와 비평(가)의 임무’를 통해 삶의 비평으로서의 문학비평에는 타인의 시선을 내 안에 품는 망명자의 질문법과 타인과의 정서적 공감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인문학자의 사회적 실천’이란 장에서 이경란 교수(근현대 농업사연구)는 마을공동체 운동과 인문학의 선순환적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마을인문학’을 사회인문학적 실천의 구체적 모델로 제안한다.

이와 함께 대학 인문교육의 제도화 과정과 이념에 대한 연구 속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살펴보는 두번째 총서 ‘한국 인문학의 형성’도 출간됐다. 이어 ‘사회인문학과 소통’ ‘제도/운동으로서의 사회인문학의 길’ ‘사회인문학의 창안:개념·범주·지향·적용’ 등이 사회인문학 총서 시리즈로 출간될 예정이다.(김은진기자) 

11. 10.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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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TAS 2011-10-02 22:11   좋아요 0 | URL
한국인문학의 역사를 보면서 거룩한 계보를 읽는듯한 느낌을 받았네요 ^^

로쟈 2011-10-03 08:04   좋아요 0 | URL
인문학 전공이신가 봅니다...

얼그레이효과 2011-10-04 08:48   좋아요 0 | URL
저는 개인적으로 좀 심심(?)했네요.^^;;

로쟈 2011-10-04 20:55   좋아요 0 | URL
형식 자체는 문제의식만큼 파격적이지 않지요.^^;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란 선택의 문제가 책중독자뿐 아니라 뇌과학자에게도 관심거리라는 걸 알려주는 책이 출간됐다. 리드 몬터규의 <선택의 과학>(사이언스북스, 2011). 저자는 버지니아 공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저명한 신경과학자라 한다. 책소개에는 "의사결정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리드 몬터규가 소개하는 fMRI(기능성 자기공명 영상장치) 연구의 최전선"이라고 돼 있다. 이런 의사결정의 문제를 다루는 신경과학을 특별히 신경경제학이라고 부른다고 하며 저자는 그 창시자 중 한 사람이다. 사실 번역서의 제목보다는 원제 '왜 이 책을 선택했는가(Why choose this book?)'가 더 와닿는다. 하루에도 몇번씩 장바구니에 책을 담고 거기서 몇권씩 골라 '자동적으로' 주문하곤 했는데, 하루 주문을 쉰 김에(배송은 거르지 않았다) <선택의 과학>과 더불어 한번 자문해봐야겠다. 왜 이 책을 선택했는지...     

한국일보(11. 09. 24) 최선의 판단을 하려는 뇌, 가끔은 실수도 한다

1975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콜라업계 2인자 펩시콜라가 도발적인 실험을 했다. 상표를 가린 채 사람들에게 펩시콜라와 코카콜라를 마셔보게 하고 뭐가 더 맛있지 물었다. 소비자의 52%가 펩시콜라를 택했다. 펩시는 이 모습을 담아 TV에 광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댈러스에서 펩시콜라의 시장점유율은 6%에서 14%로 크게 올랐다. 의기양양해진 펩시는 펩시 챌린지(Pepsi Challenge) 캠페인을 전국으로 넓혔다. 1979년 미국에서 펩시콜라의 판매량은 역사상 처음으로 코카콜라를 앞섰다. 도전은 성공으로 끝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영광의 날은 한때였다. 코카콜라 판매량은 다시 펩시콜라를 추월했다. 펩시 챌린지가 계속 성공할 수 없었던 이유는 뭘까.

미국 버지니아공대 물리학과 교수인 리드 몬터규가 쓴 <선택의 과학>은 펩시가 '맛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탄산음료에서 시원함과 청량함을 기대한다. 맛은 더 좋을지 몰라도 펩시콜라는 이런 이미지가 약했다. 이는 상표를 붙이고 시음한 사람들 대부분이 코카콜라가 더 낫다고 답한 또 다른 실험에서 잘 드러난다. 저자는 미각뿐 아니라 기대, 보상 등 뇌의 활동이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연인들이 음식점에 갈 때 분위기 좋은 집을 택하는 것도 괜한 게 아니란 얘기다.

일상은 선택의 연속이다. 인간은 하루에 150번 넘게 크고 작은 선택을 한다고 한다. 몇 시에 일어날까, 차를 갖고 회사에 출근할까, 점심 메뉴로 뭐가 좋을까, 퇴근하고선 뭘 할까 등. 그러나 저자는 주장한다. 선택의 가장 큰 비밀은 선택이 없단 사실이며, 인간의 모든 행위는 뇌의 가치판단에 근거한다고. 가치판단은 어떤 행위를 할 때 드는 비용과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보상을 따지는 행위다.

가치판단에 관여하는 부위는 중뇌와 전전두피질. 뇌의 중간에 있다 하여 중뇌라 불리는 이곳엔 도파민 신경세포 1만5,000~2만5,000개가 몰려 있다. 이 세포는 특정 행위에 대한 보상을 담당한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실 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도파민 신경세포가 호르몬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뇌의 앞부분에 위치한 전전두피질은 여러 행위를 저울질해 우선순위를 정한다. 뇌의 각 부위는 최선의 가치판단을 하려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보상을 누리기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다.

최후통첩게임이란 게 있다. A에게 일정 금액을 주고 그 중 얼마를 B와 나누라고 한다. B가 A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A, B 모두 돈을 갖는다. B가 거부하면 둘 다 돈을 얻지 못한다. A가 100달러를 받아 그 중 5달러를 B에게 줬다고 해보자. B 입장에선 A가 1달러를 준다 해도 공짜 이익이 생기는 거니 넙죽 받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뇌가 느끼는 이득의 가치가 현저히 차이나기 때문이다.

이득의 가치는 '내 이득_계수×(남의 이득-내 이득)'이란 공식으로 계산한다. 계수는 전체 액수 분의 내 이득. 위 상황을 여기에 대입하면 '5달러-5/100×(95달러-5달러)'로, 내 이득의 가치는 0.5달러란 계산이 나온다. 5달러를 받아도 뇌의 신경계는 그것의 가치를 0.5달러로 판단해 B는 A가 주는 금액을 거부하게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1997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주택에선 유사 종교인 헤븐스 게이트(천국의 문) 교단의 남녀 39명이 집단 자살을 했다. 이들은 헤일 밥 혜성의 꼬리 너머에 자신들을 '다음 단계'로 데려갈 우주선이 있다고 믿어 집단으로 목숨을 끊었다.

저자는 재배치란 뇌과학의 개념을 끌어 이 기이한 현상을 설명한다. 약물 중독자의 신경계는 마약물질로 교란되고, 거기에 적응하도록 변화한다. 이 경우처럼 다음 단계로 간다는 생각 역시 신경계를 변화시키고, 죽음을 오히려 보상받는 행위로 인식하게 했다는 것이다.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는 추천사에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자연스러웠던 선택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고 선택의 순간마다 왕성하게 신호를 주고받는 뇌 활동이 비로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 때쯤이면 <왜 이 책을 선택했는가(Why choose this book?)>란 책의 원제에 관한 답을 찾게 될지 모른다.(변태섭기자) 

11. 09. 24.  

 

P.S. 안 그래도 오늘 오후 의정부도서관에 강의를 나가면서 가방에 넣고 간 책의 하나는 석영중의 <뇌를 훔친 소설가>(예담, 2011)였다. 부제대로 '문학이 공감을 주는 과학적 이유', 구체적으론 뇌과학적 이유를 현단계 뇌과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설명하는 책이다. 알라딘에는 뇌과학 카테고리가 따로 설정돼 있는데, 이 분야의 책으론 폴 새가드의 <뇌와 삶의 의미>(필로소픽, 2011)과 김종성의 <뇌과학 여행자>(사이언스북스, 2011)가 신간이다. 과거 천문학처럼 뇌과학도 이젠 '교양' 범주에 속하므로 이런 정도의 책들은 읽어줘야겠다...   

 

한편, 책의 추천사를 쓴 정재승 교수에 따르면 신경경제학 분야에서 리드 몬터규와 자웅을 겨루는 학자는 에모리대학교의 정신과 의사 그레고리 번스이다. 그의 책으론 <만족>(북섬, 2006)과 <상식 파괴자>(비즈니스맵, 2010)가 있다. <아이코노클라스트>는 <상식 파괴자>와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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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1-09-28 08:27   좋아요 0 | URL
며칠전 서유헌의 <엄마표 뇌교육>이라는 책을 주문하면서 '뇌과학'에 좀 흥미가 생기던 차에 읽게 된 책소개입니다. 저에게 유용한 정보네요. 감사합니다. 리드 몬터규, 그레고리 번스 노트해두고 갑니다.

로쟈 2011-09-29 22:11   좋아요 0 | URL
뇌과학은 알라딘에도 따로 분류항목이 있습니다...
 

이번주 출간된 학술교양서 가운데 가장 관심이 가는 책은 중국현대사의 지식인들에 관한 책 <20세기 중국 지식인을 말하다>(길, 2011)이다. 주섬주섬 모으고 있는 분야의 책이기 때문이다. 진작에 주문했지만 배송은 내주에 된다고 하는데, 내주쯤엔 리스트라도 만들어놓을 참이다. 참고로 국내 연구자들이 쓴 <중국 근대지식체계의 성립과 사회변화>(길, 2011)도 같이 출간됐다.   

  

경향신문(11. 09. 24) 단절된 중국사회 속에서 지식인들의 길 찾기

중국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시기 찬밥 신세였던 지식인이 개혁개방 이후 재등장한 것은 지식인과 현대화 과정과의 긴밀성에서 비롯한다. 지식(인)에 대한 담론은 주관적 호불호의 차원 이전에 중국사회의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기에 반드시 대면해야 하는 이슈다. 이 책의 출판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중국에서 지식인 문제의 최고 전문가인 쉬지린(許記霖, 화동사대 교수)이 엮은 방대한 역작을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 사업단이 번역해 내놓았다. 목차를 펼쳐보면 현재 중국의 지식지형을 좌지우지하는 지식인들, 황핑(黃平), 위잉스(余英時), 두웨이밍(杜維明), 천핑위엔(陳平原,) 첸리췬(錢理群), 장칭(章淸), 쎄융(謝泳), 첸무(錢穆) 등 화려한 집필진으로 이뤄져 있다. 중국 대륙만이 아니라 대만, 홍콩, 미국 등에서 활동하는 범중화권 지식인들이 망라돼 있다. 이들의 지식(인)론을 통해 현재 중국의 주요 지식인들이 국가와 사회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전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아있는 고민의 결을 느낄 수 있다.

쉬지린 교수는 서문에서 20세기 이후 ‘단절된 사회’ 속의 지식인의 불안한 위치가 지금도 이어진다고 진단한다. 그는 단절을 세가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과거제도가 폐지되고 사대부의 중추적 기능이 상실되면서 국가와 사회가 단절된 것이 그 하나다. 그럼으로써 서로 다른 계층 사이에 공통의 가치관과 제도가 결핍돼 공통의 지향이 상실됐다는 것이 그 둘째다. 마지막으로 지식인들이 주변화되면서 그 내부에서조차 단절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20세기 대표 지식인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루쉰(1881~1936), 차이위안페이(1868~1940), 후스(1891~1962), 쑨원(1866~1925), 량치차오(1873~1929), 옌푸(1853~1921).

이런 현재적 문제의식을 머금은 이 책은 여러 학자들의 것을 엮어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지식(인)에 대한 계보학적 성찰’이라는 저변을 관통하는 단서가 미리 마련돼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책에서 다루는 시기는 고대부터 현재까지를 대상으로 한다. 편의적으로 나누면 크게 네 시기다.

첫째, 춘추 전국시기에 형성돼 1905년 과거제가 폐지되기까지 사대부 문화가 지배한 시기. 둘째, 서양과의 충돌 이후 신지식인 집단이 출현하고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겪게 되는 시기. 셋째, 사회주의 건설 이후 지식의 자율성이 상실된 시기. 넷째, 개혁개방 이후 지식이 재건되고 지식인이 재출현하면서 지식인 논의가 무성해지는 시기이다.

내용적으로는 인물뿐 아니라 인물을 둘러싼 지식인 사회의 인프라구조인 매체, 사단, 학회 등 지식사회의 권력 네트워크가 논의의 주제와 소재로 다뤄진다. 방법론에서 필자들은 사회사적, 사상사적 접근을 동원하면서 지식의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고루 추적하고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첸리췬이 쓴 ‘베이징 대학 교수의 다른 선택’이라는 글이다. 이 글은 강사였던 루쉰과 유력한 교수였던 후스가 학내의 같은 사건에 대해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권력과 개인의식 및 타자의식의 차이에 따라 어떻게 다른 반응을 보여주는가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중국의 근대에도 지식인의 주의주장을 ‘지식장의 권력관계’라는 요소와 분리해서 볼 경우 언제든 엉뚱하고도 허구적인 해석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중국 지식인 문제에서 간과해선 안되는 것은 인구의 70~80%가 농민으로 구성돼 있는 특수 상황으로부터 나오는 여러 사회적 문제로부터 발생한 요청들에 의해 변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다. 즉, 여전히 제국적 규모의 국가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관료와 지식인이라는 사대부의 이중적 신분의 전통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계승·변형해갈 것인가 하는 부분이 여전히 중요하게 고민돼야 하는 지점이다.

한국인이 중국 지식인 사회에 대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의 하나인 체제내 지식인과 반체제 지식인의 구분 기준도 이 문제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 이 문제는 중국의 전통적 지식인의 원형, 농민인구 문제 그리고 사회주의 경험 등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와 함께 왜 그럴까를 질문해야 한다고 본다. 중국의 내재적 메커니즘을 살피고 인정하면서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바로 이런 문제들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이 책이 유용하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중후반 자본주의 강화 정책에 따라, 전 사회가 시장화하면서 공공영역이 상업화되는 보편적 현실 속에서, 그리고 인터넷에 의해 지식인이 또 다시 주변화되는 시대에, 지식인이 어떤 위상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격적 분석이 빠져 있다는 것이 아쉽다.(조경란 | 연세대 국학연구원 HK 연구교수) 

11. 09. 24.  

P.S. 기사의 필자인 조경란 교수의 책으로 <중국 근현대 사상의 탐색>(삼인, 2003)도 이 분야의 가이드가 될 만한 책이다. 일단 분량이 단출하다. <현대 중국사상과 동아시아>(태학사, 2008)과 번역서 <중국 민족주의 신화>(지식의풍경, 2006)도 관심도서인데, 그래도 이 분야에서 길잡이가 될 만한 전공학자가 있다는 게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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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세기 중국의 지식지형과 지식인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10-09 12:06 
    '10월의 읽을 만한 책'의 카테고리로 '중국의 지식인'을 만들어놓고 <20세기 중국의 지식인을 말하다>등을 올려놓았었는데,마침 관련서평이 눈에 띄기에 한번 더 옮겨놓는다.개인적으로 지식인 문제는 관심을 갖고 있는 아이템 가운데 하나이다.그간에 서구 지성사에 가려져왔던 '중국의 지식인' 문제가 지식인 문제 일반을 다룰 때도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으리란 생각을 해본다. '한국의 지식인' 문제와 견주어볼 수도 있겠고...교수신문(11. 10. 04
 
 
Daniel 2011-09-24 13:36   좋아요 0 | URL
선생님의 폭넓은 독서 분야를 보면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드러커는 주기적으로 분야를 바꿔가며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다고 하는데 선생님께서도 인생계획(?)을 세우시고 몇살때부터는 이런 부분을 읽으리라 하시나요.
아니면 그야말로 책 하나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계속 관심을 넓히시는지요.
제 생각엔 둘다이실 것 같은데^^;;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로쟈 2011-09-24 23:00   좋아요 0 | URL
거창한 계획을 세워두고 읽진 않습니다.^^ 관심있는 주제나 분야의 책들을 꾸준히 사모으고 기회가 될 때 몰아서 읽는 편입니다. 나이를 먹으며 관심분야가 더 넓어지고 있어서 애를 먹고는 있습니다.^^;

Daniel 2011-09-26 06:4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관심분야가 넓어지실수록 다음 책들이 다루는 영역도 더 풍성해지겠네요. 물론 기존 책에서 다루신 것들만 해도 저같은 일반독자에겐 차고 넘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