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배송받은 책 가운데 하나는 미셸-롤프 트루요의 <과거 침묵시키기>(그린비, 2012)다. 저자는 아이티 출신의 인류학자로 현재는 시카고대학의 명예교수로 재직중이고 카리브지역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중심으로 한 미국사회가 주요 연구관심사라 한다. '권력과 역사의 생산'이란 부제의 이번 책은 그의 역사론 내지는 역사철학을 담고 있다.

 

 

한겨레(12. 01. 07) 역사는 왜 보들레르의 연인 잔 뒤발을 지웠나

 

잔 뒤발은 <악의 꽃>의 시인 보들레르에겐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그녀는 아이티 출신의 무용수로 시인과 폭풍과 같은 사랑을 나눴고, 시인은 그녀를 “블랙 비너스”, “여인 중의 여인”이라 불렀다. 하지만 14년 전 에마뉘엘 리숑의 전기물이 나오기까지 누구도 그녀가 보들레르 시학에 미친 결정적인 영향력을 이야기하길 꺼렸다. 흑인 피가 섞인 여인에겐 연기자보다는 창녀의 이미지가 제격이었다. 흑인성은 이국적 풍물로 넘쳐나는 파리에서 결코 ‘선한 야만’의 지위도 얻지 못했다. 당연히 그녀는 전기작가들에게 점잖게 무시당했다.

그랬다. 프랑스혁명의 인권선언은 “모든 인간이 자유롭게 태어났다”고 적었지만, 여성이나 흑인은 아직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여성의 시민권을 외쳤던 올랭프 드 구주는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국사범이 아니라 잡범으로 처단되었다. 혁명은 철저하게 “형제들의 계약”이었다. 잔 뒤발과 올랭프 드 구주는 뒤늦게 망각과 침묵을 깨고 재해석되고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도 어처구니없는 죄명에서 해방되었다. 역사 기술자들은 늘 권력자들로부터 특정한 의제만 서술할 것을 강요당한다. 권력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진실은 침잠한다.

시카고대학 인류학 교수인 미셸롤프 트루요가 쓴 <과거 침묵시키기: 권력과 역사의 생산>(1995)은 역사기술이 얼마나 권력 지향적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역사철학서이다. 이 책은 두개의 아이티 사건, 그리고 콜럼버스 영웅 만들기에 얽힌 불편한 진실을 예화로 서사와 서사 만들기 과정을 분석한다. 일어났던 과거는 결코 그대로 기록되지 않는다. 역사로 기록되려면 적어도 네 차례의 침묵 만들기 과정을 통과해야만 한다.

첫째, 사실생산(소스 만들기)의 순간. 모든 것이 기록되거나 기억되지 않는다. 둘째, 사실 취합의 순간(아카이브 만들기)에도 침묵과 선택이 이뤄진다. 셋째, 사실추출의 순간(서사 만들기)에도 내레이터의 가치관에 따른 취사선택이 이뤄진다. 넷째, 역사 만들기. 모든 서사가 표준적인 역사적 서사로 수용되지 않는다. 이 가운데 극히 일부만 ‘역사’란 이름으로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러한 ‘침묵’의 과정을 트루요는 세개의 사례로 살펴본다. 첫째는 상수시 궁전 이야기이다. 상수시 궁전은 아이티 독립운동 지도자로 나중에 앙리 1세가 된 앙리 크리스토프가 지었다. 독일의 포츠담에도 프리드리히 대제가 묻혀 있는 상수시 궁전이 있다. 미국인 의사 출신 조너선 브라운은 크리스토프가 죽은 지 10년 뒤 이렇게 썼다. “크리스토프 왕은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매혹되었고, 상수시 궁전의 이름을 포츠담 궁전에서 따왔다.” 이 진술은 후대 영미권 작가들이 두고두고 인용할 원자료가 된다.

하지만 상수시는 아이티 독립혁명 당시 비타협적인 무장투쟁을 이끌었던 대령의 이름이기도 했다. 상수시는 루베르튀르, 데살린, 크리스토프, 페티옹과 같은 흑인 크레올 장군들이 무장혁명을 이끌 때 부하로 가담했고, 이들이 1802년에 프랑스군에 투항했을 때, 무기를 내리지 않고 게릴라 전투를 벌여 프랑스군과 크레올 장군들을 곤경에 빠뜨렸다. 앙리 크리스토프는 과거에 자신의 부하였던 그를 매복해서 살해했다. 조너선 브라운이 상수시 궁전을 포츠담의 상수시와 연결지으면서, 그럴듯한 서사가 완성되었고, 비타협적 무장투쟁의 상수시 대령은 역사에서 지워졌다.

둘째 사례는 아이티 노예들의 독립혁명에 대한 프랑스의 반응이었다. 흑인들의 반란이 백인 프랑스를 무찌르고 독립을 쟁취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황열병이나, 백인들 내부의 갈등 또는 통제에서 벗어난 물라토들이 봉기를 일으킨 것으로 이해하려고 했다. 당대 프랑스인들의 인종주의 인식 틀이 얼마나 사실을 왜곡해서 받아들였는지 트루요는 잘 보여준다.

셋째 사례는 이미 잘 알려진 콜럼버스 영웅 만들기이다. 1492년 콜럼버스의 바하마 섬에 대한 ‘침입’ 스토리가 미국의 팽창 과정에서 얼마나 과대포장 되었는지, 소위 ‘발견’ 400돌 기념식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

 


트루요의 주장은 <글로벌 변환: 인류학과 북대서양>(2003)과 겹쳐 읽으면, 좀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근대화나 세계화와 관련된 북대서양의 지배적 서사들도 세계사에 대한 거대한 침묵을 강요한다. 따라서 발전, 진보, 민주주의, 국민국가의 개념들도 모두 비서구 지역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그는 서구중심의 서사 해체를 통해 복수로만 존재하는 근대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엔리케 두셀의 <1492: 타자의 은닉>이 탈서구주의 역사철학의 일단을 보여주었다면, 트루요의 이 책은 좀더 내밀하게 역사 생산과정이 갖는 권력 현상에 주목한다. 역사물에 탐닉하는 독자들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예방접종과 같은 책이다.(이성형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 교수)

 

12. 01. 08.

 

 

 

P.S. 아이티혁명에 관한 책으론 시 엘 아르 제임스의 <블랙 자코뱅>(필맥, 2007)이 있다. 아이티혁명과 역사철학에 대해서는 수잔 벅-모스의 <헤겔, 아이티, 보편사>가 번역돼 나온다고 들었다. 올해의 기대작 가운데 하나다. 탈식민주의 역사철학이란 점에서 라나자트 구하의 <역사 없는 사람들>(삼천리, 2011)과 같이 읽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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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주문한 책 가운데 하나는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의 <2013년 이후>(백산서당, 2012)이다. 이전에 그의 칼럼을 몇 차례 옮겨온 바 있어서 관심은 갖고 있었지만 책을 읽은 적은 없다. 인터뷰기사에서 "한국 진보가 2,000만 취약계층의 희망이 되어 집권을 넘보려면 그 고용노동 비전은 '정리해고ㆍ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아니라 '정리해고가 있어도 비정규직이어도 그런 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눈길이 가서 '아주 후진' 책 모양새에도 불구하고 읽어보기로 했다(정책자료집이나 쓰일 법한 표지다. '사회디자인'과 '책디자인'은 무관한 것인가). '문제는 일자리와 공평이다'가 저자의 핵심주장이다.

 

 

한국일보(12. 01. 07) "진보가 2000만 취약계층 희망되려면 비정규직이어도 살만한 세상 만들어야"

 

'좌충우돌'이라는 말이 어울릴 거 같다. 5년여 전 공공정책컨설팅 회사로 출범했다가 사단법인으로 바뀌어 사회정책 싱크탱크가 된 사회디자인연구소의 김대호(49) 소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신간 <2013년 이후>(백산서당 발행)에서 올해 총선, 대선이 위기에 처한 한국사회를 구할 전기라며 보수는 물론 진보를 향해 마치 기관총 속사라도 하듯 비판을 쏟아 붓는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으로 감옥살이까지 했던 그는 전형적인 '운동권 386세대'다. 1990년대 중반 '공생공영'을 기치로 내걸고 대우그룹이 '386세대'를 대거 입사시켰을 때 서울 구로공단에서 벌이던 노동상담 활동을 접고 대우 행을 택했지만, 시대정신의 세례를 받은 그의 영혼까지 다락에 올려놓지는 못했다. 거칠게 말해 '한국사회 개조론'을 담은 책을 이미 서너 권 냈다. 보수에 대한 쓴소리 못지않게 지난해만도 '희망버스' 비판 등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한국의 진보와 보수는 '실체조차 의심스러운 마녀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마녀사냥을 획책하고 있'으며 그 '마녀의 이름은 보수에게는 좌파정권과 친북좌파이고, 진보에게는 신자유주의와 한미 FTA'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새 책 이야기를 6일 들었다.

 



-보수가, 진보가 뭐가 문제인가.

"보수와 진보, 그리고 관료집단에 의해 한국사회의 '공공'이 뒤틀려 있다는 게 문제다. 공공은 '정의' '원칙' '상식'과 동의어인데, 이런 것들이 뒤틀려 있다. 한국 사회의 모순은 진보가 말하듯 시장 논리 과잉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시장 원리가 통하지 않아서 잘못된 곳이 대단히 많다. 보수든 진보든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 원리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산업생태계가 대단히 피폐해 있다. 한국의 IT계를 두고 안철수가 '삼성ㆍLG동물원'이라고 한 것처럼 대기업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시장 구조, 고용ㆍ임금체계가 노동의 양과 질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수익성과 조직력에 비례하는 것이 문제다. 스웨덴은 볼보자동차 직원과 하청업체의 처우 수준이 비슷하다. 우리 진보에 이런 개념이 있는가. 한국의 진보는 양극화를 더욱 심화한다. 보수의 그늘 못지않게 진보의 그늘도 크다."

-진보가 집권하면 문제가 해결 될까.

"진보의 한국 사회 진단의 핵심은 신자유주의의 과도한 수용이라는 한심한 것이다. 시장 원리를 시장을 통해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이 짓이기는 게 한국 사회다. 공정한 경쟁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뒤집어 엎는다. 이런 상태로 진보가 집권하면 1년도 안 돼 '박살'이 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위기 상황이다. 보수도 진보도 혁신 경쟁을 해야 하고 환골탈태 해야 한다. 진보는 특히 반대만을 비전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는 책에서 한국 사회의 물질적 재생산구조의 핵심을 '고단한 산업구조'와 '양반ㆍ상놈으로 나누어진 고용구조'라며 이것이 '양극화ㆍ민생불안, 절망과 불신 등을 확대재생산하는 핵심구조'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리해고ㆍ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비전을 타도해야 할 '지적 앙시앵 레짐'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한국 진보가 2,000만 취약계층의 희망이 되어 집권을 넘보려면 그 고용노동 비전은 '정리해고ㆍ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아니라 '정리해고가 있어도 비정규직이어도 그런 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복지 논쟁이 뜨겁다.

"보편ㆍ선별주의라는 이슈가 한심할 따름이다. 복지 정책은 (복지의)두께, 대상, 프로그램의 우선 순위 등 3가지 차원이 있다. 보편ㆍ선별 논쟁은 대상의 문제이다.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거의 대다수가 10년 안에 국민총생산(GDP)의 20%를 복지에 지출하자고 한다. 이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다. 하지만 한국은 연금을 안 부은 노인들과 기타 사각지대도 적지 않다. 여기서 뭉텅이로 예산이 떨어져 나가고 나면 보편주의를 하더라도 OECD 평균보다 적은 돈으로 복지시스템을 돌려야 한다. 고용률이나 임금근로자 비율이 낮고 자영업자가 많은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는 그러면 (복지의)두께가 얇아질 수밖에 없다. 두께, 대상, 프로그램 우선순위의 문제를 종합해서 어떤 것은 보편주의, 어떤 것은 두꺼운 선별주의 하는 식으로 다양하게 조정해야 한다."

-'2013 체제'는 무엇인가.

"민주화의 열망이 녹아 형성된 '87 체제'라는 지금까지 가치의 총체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남북관계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겠지만 중요한 것은 강하고 유능한 정치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헌법과 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 5년 대통령 단임제, 소선거구제는 독재 방지를 위해 정치를 무능하게 만들어 놓은 모양새다. 그래서 연임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바꾸고, 국회의원을 500명으로 늘려 정치가 관료 집단을 끌어나가야 한다." (김범수기자)

 

12. 0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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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예상할 수 있지만 올해는 정치와 정치인, 정치이념을 주제로 한 책들이 다수 출간될 전망이다. 스타트를 끊은 책 가운데, 국내 정치학자들이 자유주의와 대의민주주의에 대해 논한 책들이 눈에 띈다. <자유주의는 진보적일 수 있는가>(폴리테이아, 2011)와 <왜 대의민주주의인가>(이학사, 2011)가 그것이다. 일단은 <자유주의는 진보적일 수 있는가>에 대한 소개기사만 올라왔기에 옮겨놓는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문지영의 <지배와 저항 - 한국 자유주의의 두 얼굴>(후마니타스, 2011)과 같이 읽어봄직하다(질문에 대한 답도 얼추 들어 있지 않나 싶다).

 

 

 

한겨레(12. 01. 04) '자유주의’ 진보 대안이념 가능할까

 

‘자유주의를 진보적 이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나온 가장 논쟁적인 문제 제기 가운데 하나다. 그동안 자유주의는 냉전·분단체제 속에서 반공주의로 받아들여지거나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경제적 자유주의로만 인식되는 등 제 뜻과 달리 왜곡됐다는 분석이 많았다. 그렇다면 이런 왜곡을 바로잡는 데에서 더 나아가 자유주의를 진보의 대안이념으로 삼는 것도 가능할까?

한림대 정치경영연구소가 그동안 펼쳐왔던 자유주의에 대한 포럼에서 논의된 내용들을 묶은 책 <자유주의는 진보적일 수 있는가>(폴리테이아 펴냄)는 이런 물음을 본격적으로 던진다. 최태욱 한림대 교수(정치학), 이근식 서울시립대 교수(경제학),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 박동천 전북대 교수(정치학) 등 대부분의 지은이들은 자유주의는 본래 진보적이거나 또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에 속한다.

특히 최태욱 교수는 서문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진보적 자유주의의 현실적 가능성을 간명하게 따져봤다. 최 교수는 진보적 자유주의 주장에 대해 충분히 예상되는 반론은 ‘왜 사회민주주의가 아니고 진보적 자유주의냐’는 물음일 거라 봤다. 평등의 확대를 진보라 한다면 사회민주주의가 더 분명한 진보적 대안이 아니냐는 것.

이에 대해 최 교수는 “평등의 확대를 목적으로 삼고 계급을 넘어 일반 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광범위한 복지 세력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진보적 자유주의는 사회민주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여기에 더해, 방법론적 유연성을 장점으로 내세운 진보적 자유주의는 대중 친화성과 중도성에서 사회민주주의보다 강점을 가진다고 봤다. 한국적 맥락에서 볼 때 현실 속에서의 실천력이 더 뛰어나다는 주장이다.

각각의 지은이들은 자신만의 논의를 거쳐 자유주의가 우리 사회에서 진보적 이념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조건들을 따져봤다. 민주적 시장경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합의주의의 구축이 필요하며, 제도적으로는 비례대표제, 온건다당제, 연립정부 등이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가장 비판적인 시각으로 자유주의를 검토한 고세훈 고려대 교수는 “자본주의에 의해 사회적 연대, 공동체적 유대가 깨졌다면 사회경제적 약자를 타깃으로 한 계급 정치는 불가피하다”며 자유주의가 진보적 이념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오히려 계급정치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최원형 기자)

 

12. 01. 04.

 

 

P.S. <왜 대의민주주의인가>는 이학사에서 펴내는 '정치사상총서'의 두번째 책인데, 첫번째 책은 <인권의 정치사상>(이학사, 2010)이었다. 이번에 나온 책은 "심의와 참여, 대표와 대리, 대의성 등 대의민주주의의 철학적 의의, 역사적 기원, 대의제 정치사상 등을 살펴봄으로써 SNS 정치 시대의 대의민주주의의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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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관심도서의 하나는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병철 교수의 <권력이란 무엇인가>(문학과지성사, 2011)이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독일어로 20여 권의 책을 출간한 철학자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학자로는 송두율 교수 이후로 처음(최소한 드물게) 소개되지 않나 싶다.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11. 12. 28) “절대권력은 자발적 복종서 기인… 폭력 쓸 필요 없어”

 

“권력은 폭력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반적으로 권력을 생각하면 군홧발과 폭력, 짓밟힘과 억눌림, 민중의 봉기와 저항 등을 떠올린다. 이런 통념에서 보면 독일 카를스루에대학 한병철 교수(사진)의 논의는 색다르다.

 



한 교수는 국내에 처음으로 내놓는 자신의 저서 <권력이란 무엇인가>(문학과지성사)에서 “결코 총구에서 나오지 않는 것, 그것이 권력이다”라는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인용한다. 그에게 권력이란 무엇인가를 억압해 자신의 의지에 따라오게 만드는 강제적 수단만은 아니다. 권력자의 의지가 복종하는 자의 내면으로 스며드는 것이며, 곧 “타자 안에서 자아의 연속성을 창출해내려는 의지”다.

 

따라서 한 교수는 “절대적 권력은 폭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데 그것은 자유로운 복종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같은 논의를 전개하면 ‘카다피의 42년 철권통치’라는 말도 다시 보게 된다. 42년간 통치가 가능했던 것은 폭력적 억압 때문만이 아니라 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힘으로부터도 나왔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는 대중들의 자발적 참여로 독재가 만들어진다는 ‘대중독재론’ 등과도 비슷해 보인다. 다만 한 교수는 “우리 시대에 권력이라는 하나의 목소리는 다수의 목소리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는 측면에서 과거의 대중독재가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즉 “권력을 통해 걸러지지 않는 모호한 영향력들과 복잡한 상호작용들이 넘쳐나는 시대에서 수많은 목소리들이 불협화음으로 이어져 행위와 결정을 마비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권력의 다양한 표현 양태를 다시 상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폭력적인 식민 지배와 그 뒤를 이어 지속된 독재의 역사는 한국인들이 권력을 억압이자 부자유로, 맞서 싸워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했다”며 협소한 권력개념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독일에서 20권 이상의 책을 펴낸 한 교수는 한국보다 독일에서 더 유명한 학자다. 내년 초 번역 출간 예정인 <피로사회>는 2011년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철학서로 꼽혔다. 한국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건너간 독특한 이력을 지닌 그는 철학과 미디어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황경상 기자)

 

11. 12. 28.

 

 

 

P.S. 기사에서 언급된 아렌트의 폭력론은 <폭력의 세기>(이후, 1999)에 나오며, <공화국의 위기>(한길사, 2011)에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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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KTX 민영화를 추진한다는 기사(하단 참조)를 읽고 떠올린 책은 폴 버카일의 <정부를 팝니다>(시대의창, 2011)이다. 지난달에 구입해놓고는 잊고 있었는데, 다시금 책상맡에 갖다놓아야겠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에게 정말 많은 책을 읽게 한다...

 

 

아시아투데이(11. 11. 15) “무책임한 정부는 모든 것을 민영화한다”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수도, 전기, 철도 등 공공시설의 민영화에 이어 국방, 교도소, 치안 등 그야말로 정부 고유의 기능까지 민간 기업에 넘겨지고 있다. 정부가 서비스하는 영역을 민간에 넘기는 것, 민영화란 정부가 전체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주권을 일부 시민(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에게 넘기는 것이다.


<정부를 팝니다>(폴버카일 지음·김영배 옮김·시대의창)의 원제는 '주권 아웃소싱(Outsourcing Soverignty)'으로 미국의 공법학자인 저자가 정부 기능의 민영화를 냉철하게 파헤친 책이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유행한 지난 30여년 동안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국가의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는 조치들이 단행됐다. 미국 레이건 행정부에서 불거진 이란-콘트라 사건, 민간인 전쟁용병 블랙워터, 유럽의 공항안보 민영화 등 미국 안팎의 다양한 민영화 사례를 제시한다.

 

 

한 예로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이 이라크에 최고 행정관으로 파견한 폴 브레머를 호위한 것은 미국군대가 아니라 ‘블랙워터’라는 회사였다. 이 회사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동부를 강타했을 때 뉴올리언스의 치안을 담당하기도 했다.

저자는 “정부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민간에 넘겨줬을 때 이들은 정부를 위해 무엇을 하는가. 정부는 주권을 아웃소싱할 권한이 있느냐”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는 “민영화는 주권을 ‘아웃소싱’하는 것이다. 민영화의 실체는 헌법과 시민주권을 시장에 넘기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저자는 "효율성이라는 가치보다 헌법과 시민 주권의 가치가 더 우위에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기본 관점이 반(反)민영화는 아니다”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아웃소싱을 결함투성이 방안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이를 공법의 체계 내에서만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경계를 정확히 설정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 체제가 올바로 작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홍규 영남대 교수는 추천사에서 “이 책은 이미 정부 민영화가 시작되고 있는 위험한 우리 현실에 경종을 울리고 이를 막는 방벽 구축의 지혜를 주고 있다”고 밝혔다.(주진기자)

 

11. 12. 27.

 

P.S. 관련기사를 자료로 스크랩해놓는다.  

 

노컷뉴스(11. 12. 26) "KTX 민영화"…정부, 또 대기업 퍼주기 

 

4대강 사업과 인천공항 민영화에 이어 정부가 이번에는 철도 부분에서 '알짜'로 통하는 KTX 민영화를 강하게 밀어부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26일 복수의 정치권 인사에 따르면 국토해양부는 27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KTX 경쟁체제 도입'을 골자로 업무보고를 할 예정이다.

정부는 사실상 국가 독점체제인 철도 운영에서 경쟁체제를 도입할 경우 경영효율화, 서비스 향상, 안전 강화 등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이유로 일부 노선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는 우선 오는 2015년 수도권 고속철도(수서~평택)가 개통되면 수서발(發) 경부, 호남선 400km를 민간사업자에 맡길 예정이다. 이를 위해 내년 상반기 중에 사업자를 선정하고 2015년부터 시행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KTX가 민영화할 경우 철도 운영의 다원화로 인한 안전 시스템의 인터페이스 붕괴, 공유노선에 대한 소통 및 조정의 난항, 선로나 열차고장 등 비상 상황 시 대응의 어려움 등 철도 안전이 위협 받을 것이라고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민주통합당 김진애 의원과 통합진보당 강기갑 의원은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민간자본의 수익성 추구 경영으로 철도의 기반인 차량 및 시설유지보수를 소홀히 함으로써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며 "이는 영국 등 철도선진국의 민영화 이후 사고발생, 요금인상 등의 경험과 재공공화 추진으로 이미 확인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경영효율화라는 명목 하에 구조조정이 이뤄진 이후 KTX와 관련해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또 일부 민간에서 운영하는 고속도로 요금이 일반 고속도로보다 훨씬 높게 책정된 사례가 민영 KTX에서도 그대로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는 걱정도 많다. 국토부도 철도 민영화로 요금이 내려갈 것이라고는 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외국에서도 대부분 철도를 경쟁체제로 운영하고 있으며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 않다”며 “그렇다고 요금이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철도부분에서 KTX는 영업이익률이 30%에 달해 적지 않은 대기업들이 탐을 내고 있지만 민영화 이후 수익성 추구에 매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 의원은 "임기가 1년도 안 남은 상황에서 민간 대기업에 새로운 돈벌이의 장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며 "우리는 국민의 세금과 호주머니를 털어 민간대기업의 배만 불리는 특혜"라고 지적했다. 특히 국토부가 이런 정책 수립과정에서 임명된 지 10개월 밖에 안 된 철도정책관에 대해 인사를 내면서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지난 20일 인사에서 A정책관이 새로 전보됐고 기존에 철도정책을 총괄했던 B 전 정책관은 대기 중이다. 당시 인사에서는 A 정책관 외에 과장급 1명이 전보됐을 뿐이었다. 민영화를 강하게 밀어붙이기 위해 B 전 정책관을 앉혔다는 얘기가 도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측은 "최 전 정책관은 내년에 인사낼 때 한꺼번에 내려고 해서 대기 근무 중"이라며 "KTX민영화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정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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