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해방철학자 엔리케 두셀의 <1492년, 타자의 은폐>(그린비, 2011)가 출간됐다. 부제는 '근대성 신화의 기원을 찾아서'. 당초엔 2009년에 출간도서로 예고돼 있었는데, 다소 늦어졌다. <공동체 윤리>(분도출판사, 1990)란 책이 오래전에 나온 바 있으므로 국내에 소개되는 첫 저작은 아니지만 본격적인 의미에서는 '처음'이란 인상을 받는다. 관심도서를 올려놓으면서 한겨레의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시리즈 가운데 '엔리케 두셀' 편을 자료로 옮겨놓는다.    

한겨레(10. 02. 27) 식민성의 세계화…해방철학은 ‘진행형’ 

엔리케 두셀은 1934년 아르헨티나 멘도사에서 태어나 철학을 공부했다. 스페인 콤플루텐세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프랑스 소르본대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대학에서 인류학과 윤리학을 가르치던 중 1973년 극우집단의 살해 위협을 받고 멕시코로 망명했다. 윤리학, 정치철학, 라틴아메리카사상사 분야의 저술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지금도 건축중인 해방철학의 기본 골격을 마련했다. 카를 오토 아펠, 잔니 바티모, 위르겐 하버마스, 리처드 로티, 에마뉘엘 레비나스 등과 지속적으로 철학적 대화를 나누었으며 50여권의 저서와 400편이 넘는 글을 발표했다. 대표적인 저술로는 <해방철학>(1977), <말년의 마르크스(1863~1882)>(1990), <타자의 은닉>(1992), <철학을 넘어서-역사, 마르크시즘, 해방신학>(2003), <정치학에 관한 20개의 명제>(2006), <해방정치학- 비판적 세계사>(2007) 등이 있다.  

혁명 사상에 치명상을 입힌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뒤 인류는 혁명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음을 깨닫고 있지만, 그 후 20년이 채 안 된 시점에서 발생한 월가의 파산은 혁명 이후를 생각하기에도 너무 성급한 시점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포스트­’(post­)라는 접두어의 범람은 옛것은 사라지는데 새로운 것은 나타나지 않는 시대적 불안을 보여주는 뚜렷한 징표다. 마르크스에게 혁명이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면, 베냐민에게 혁명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역사를 멈추게 하는 제동장치였다. 세계 도처에서 목격되는 사회적 불의와 생태계의 파괴는 좌우를 불문하고 패러다임의 전환이라 부를 만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마르크스와 ‘더불어’, 마르크스를 ‘비판했던’ 베냐민의 새로운 혁명 개념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새로운 혁명 개념은 1960년대 말 서구 근대성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서구 근대성의 본산인 유럽에서는 탈근대적 비판이, 서구 바깥에서는 라나지트 구하를 중심으로 포스트식민주의운동이 태동했고,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두셀을 중심으로 해방철학이 등장했다. 해방철학 연구자들의 글을 모아 놓은 첫번째 책(1973)에는 다음과 같은 선언문 형식의 글이 실려 있다. “해방철학은 ‘에고’(ego)로부터, ‘나는 정복한다’, ‘나는 생각한다’ 혹은 ‘권력의지로서의 나’로부터 사유하지 않는다.… 해방철학은 억압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주변화된 사람의 처지에서, 가난한 사람의 관점에서, 종속국가의 위치에서 사유한다.… 해방철학은 타자의 외부성으로부터 사유하고자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해방철학은 레비나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근대적 주체와 가치, 진리와 형이상학을 붕괴시키기 위해 고투했던 니체와 현존재(Dasein)를 통해 주체의 주체성을 비판했던 하이데거가 완고한 내부성의 철학의 외부를 탐색하는 지점에 머물러 있었다면, 레비나스는 이성의 외부가 타자임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레비나스는 외부를 근대적 범주(예컨대 이성의 외부로서의 광기)로 한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푸코의 타자와도 달랐다. 그러나 해방철학은 레비나스가 유럽 내부에서 사유하고 타자에 대한 순수한 윤리적 책임만을 요구하는 지점에서 레비나스와 갈라진다.

두셀은 해방철학이 객관적이고 탈정치적 입장에 머물지 않고 체계의 희생자, 가부장주의에 의해 억압받는 여성, 황폐화된 지구를 상속받을 미래의 세대 등 가능한 모든 부류의 타자성을 위해 투쟁할 책임을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해방철학은 자기비판적 자세로 주변부에, 서발턴(하위주체)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두셀의 주장에는 비판철학자로서의 결기가 드러난다. “체계 안에서, 체계 앞에 서 있는 타자를 위한 책임은 모든 우선성보다 앞서는 우선성이다. 그것은 수동적인 것처럼 보이는 형이상학적 능동성이다. 그것은 세상의 시작보다 앞선 시작이고, 세상을 있게 한 시작이며, 세상의 선험적 실재이기 때문이다. 해방의 영웅은 체계의 반(反)영웅이고 위험에 자신의 삶을 던진다. 따라서 (억압받는 타자에 대한) 책임은 최상의 용기이고, 부패하지 않는 요새며, 총체성의 구조를 드러내는 진정한 통찰력이자 지혜다.”

해방철학의 비판적 범주가 근대적 주체성을 겨냥한다면, 비판의 구체적 실천은 역사적 접근으로부터 얻는다. 역사적 접근이란 ‘장기 16세기’에 시작된 세계체제(world-system)를 뜻한다. 해방철학을 (푸코, 데리다, 바티모, 레비나스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세계체제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데카르트가 1637년에 암스테르담에서 ‘나는 생각한다’를 말하기 훨씬 이전에, 스페인 국왕이 서류에 서명할 때 사용했던 ‘나’는, 코르테스가 1521년에 ‘나는 정복한다’라고 말했을 때 사용했던 ‘나’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프랑스 ‘고전 시대’의 인식론을 탐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지난 500년 동안 근대성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깨닫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세계체제 분석은 근대성, 식민주의, 세계체제, 자본주의, 아메리카의 발견·정복이 동시적이고 상호구성적 사건임을 말해준다. 따라서 계몽주의 근대성은 15세기 말 식민주의와 함께 시작된 근대성을 은폐하는 근대성의 신화다. 이런 맥락에서 두셀은 근대성의 신화가 독자적인 체제를 이루고 있었던 유럽에 대한 서술이 아니라 유럽을 마치 세계의 중심인 것처럼 서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메리카의 발견·정복으로 시작된 근대·식민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근대성 신화의 토대이면서 동시에 전지구적인 중심-주변 구도의 출발이었다. 아메리카 정복 초기에 ‘인디오 전쟁의 정당한 명분’을 주장했던 세풀베다가 최초의 옥시덴탈리즘 이데올로그였다면, 원주민의 인권을 옹호했던 라스 카사스는 중심-주변의 구도에서 근대성에 대한 대항담론을 설파했던 최초의 인물이었다. 또한 현재 진행중인 세계화가 근대·식민 자본주의의 정점이라는 점에서 볼 때, 식민주의가 종식된 이후에도 ‘권력의 식민성’은 여전히 견고하게 지속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해방철학이 단지 라틴아메리카사상의 한 가지 양상에 국한되지 않는 것은 근대적 이성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면서 동시에 근대·식민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착취 구조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두셀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유럽중심적 ‘거대서사’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체계 외부의 타자들은 자신들을 대변하기 위해 단지 작은 이야기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리고베르타 멘추, 사파티스타, 아메리카의 흑인, 미국에 거주하는 라티노, 페미니스트, 주변인, 전지구화된 초국적 자본주의의 노동계급 역시 그들의 기억을 재건하고 그들의 ‘인정 투쟁’을 정당화하는 역사적 서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서 두셀이 경계하는 것은 피상적이고 환원론적인 방식으로 적용되는 이원론(중심-주변, 발전-저개발, 종속-해방, 총체성-외부성 등)이다. 다시 말해, 근대성에 대한 비판은 전통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전근대로 회귀하는 것도 아니고, 보수주의자, 포퓰리스트, 파시스트 집단이 추구하는 반근대적 지향도 아니며, 파편화된 순수한 차이만을 긍정하는 탈근대적 비판도 아니라는 점이다. 두셀은 해방철학을 트랜스모던(transmodern)적 기획, 즉 근대성에 내재된 합리적 해방의 특성을 실재적으로 포섭하는 것이며 근대성이 저질렀던 희생제의적·신화적 특성을 부정함으로써 은폐되었던 타자성을 포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복음화→문명화→근대화→세계화’라는 근대성의 신화와 수사학에 가려진 근대·식민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폭력과 불의를 비판할 수 있을 때 칸트가 설파했던 계몽의 이성은 비로소 해방의 원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계몽적 이성을 앞세운 유럽중심주의와 발전주의의 오류가 드러날 때 추상적 보편주의에 가려져 있는 현실의 다채로운 풍경이 온전하게 드러날 수 있다. 두셀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완의 기획은 근대성이 아니라 탈식민성이다.(김은중/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11. 05. 25.  

 

P.S. 두셀의 책은 대학원 시절에 <근대성의 이면>을 구해서 갖고 있었는데, 지금은 행방을 알지 못한다. <철학을 넘어서>나 <정치학에 관한 20개의 명제> 같은 책도 눈길을 끄는데, 후자는 번역중이라고 들은 듯싶다. 조만간 읽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참여민주주의와 해방철학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6-08 08:04 
    방한중인 남미의 해방철학자 엔리케 두셀의 인터뷰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라틴아메리카 참여민주주의의 현주소와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 그리고 필요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정보기술 발전에 따른 전자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눈길을 끈다. 경향신문(11. 06. 07) "남미 참여민주주의는 세계 정치의 새 경험”우리 사회의 문제를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 미국과 유럽 등 서구 학문이 중심이 돼 왔다. 마찬가지로 지난 10년 동안 중도좌파 정권이 들어

부산대 점필재연구소와 한겨레출판이 공동기획한 '한겨레역사인물평전'이 출간됐다. 무려 100권이 나올 예정이라는데, 첫 세 권으로 <안중근 평전>(황재문 지음), <이완용 평전>(김윤희 지음), <최남선 평전>(류시현 지음)이 이번주에 선보였다. 출생년도로 치자면 이완용이 가장 앞서야 되겠지만, 시리즈의 순서는 안중근이 먼저 오게 해놓았다. 우리가 다 알 만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앞으로도 윤선도, 조광조, 남효온, 서거정 등 조선의 인물과 신채호, 고종, 명성황후 등 근대 인물, 지소태후, 이매창, 황진이 등 역사 속 여성 등을 다룬 평전이 추가로 출간될 예정이라 한다.   

 

이번 1차분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건 물론 <이완용 평전>이다. 안중근 관련서는 그간에 다수 출간됐고 최남선의 경우에도 전기와 연구서들이 좀 나와 있는 편이다. 이완용의 경우엔 윤덕한의 <이완용 평전>(중심, 1999)이 거의 유일한 단행본이 아닌가 싶다(지금은 절판된 듯하다). 개인적으론 최학주의 <나의 할아버지 육당 최남선>(나남, 2011)이 얼마전에 들여다본 책이다(완독하진 않았지만). 안중근의 경우에는 김삼웅의 <안중근 평전>(시대의창, 2009)이 정본 역할을 하지 않나 싶은데, 어린이용으론 조정래의 <안중근>(문학동네어린이, 2007)도 나와 있다.  

이완용에 대한 평가는 책을 통독해봐야 알겠지만 책갈피의 소개를 참고하면, '합리적인 근대인'이라는 게 저자의 '재평가'로 보인다. 이렇게 돼 있다.  

이완용은 기존의 평가처럼 탐욕스러운 인물도, 근대적인 주권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한 관료도 아니었다. '매국노' 이완용은 오히려 합리적인 근대인이었다. 제국주의의 폭력에 분노하기보다는 자신을 포함한 다수의 혜택을 위해 절대로 분노하지 않는 이성적 인간, 위기 앞에서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기보다는 국가와 민족의 가치를 미래로 밀어내고 현재를 껴안으려 했던 현실적 인간이었다.  

짐작에 이완용의 행적에 대한 독서는 '우리 안의 이완용'과 대면하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11. 05. 25.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로틱번뇌보이 2011-05-26 16:32   좋아요 0 | URL
이완용에 대한 평가는 박지향 교수가 <윤치호의 협력일기>에서 윤치호를 근대인의 전형이라 평가한 것과 유사한 시각이군요~흥미로울 듯 합니다~

로쟈 2011-05-27 08:34   좋아요 0 | URL
근대, 근대성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같이 생각해보게 될 듯해요...

Daniel 2011-05-28 04:34   좋아요 0 | URL
윤덕한 선생님 책 본 게 오래전이라 가물가물합니다만 이완용에 대한 기존의 매국노 정도의 인식에만 있던 제겐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결국 대세를 쫓아서 그리되었다고 윤선생님께선 평하신걸로 기억합니다만...

로쟈 2011-05-28 07:39   좋아요 0 | URL
'대세'주의라면 요즘도 대세인데요...
 

세계사와 세계경제사로 분류되는 책 두 권도 지난주 관심도서인데, 하나는 어제 배송받은 기디언 래치먼의 <불안의 시대>(아카이브, 2011)이고, 다른 하나는 장바구니에 넣어둔 대니얼 앨트먼의 <10년후 미래>(청림출판, 2011)이다. 저자들은 각각 파이낸셜타인스의 칼럼니스트와 뉴욕타임스의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오피니언 리더'들이 지난 30년과 앞으로 10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참고해볼 수 있겠다.    

한국일보(11. 05. 21) 경쟁과 분열의 제로섬 시대 윈윈의 시대로 돌아가려면…

2008년 9월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국제 질서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외교 문제 칼럼니스트 기디언 래치먼은 <불안의 시대>에서 금융위기를 계기로 세계가 국가 간 협력을 강조하는 윈윈 게임에서 경쟁과 분열이 지배하는 제로섬 게임의 시대로 들어섰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지난 30년간의 세계 역사를 전환의 시대(1978~91년), 낙관의 시대(91~2008년), 불안의 시대(2008~현재)로 나누어 살펴보면서 자신의 논리를 전개한다. 78년부터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것은 그해 12월 덩샤오핑(鄧小平)이 결정한 중국의 개혁개방을 강대국들의 세계화의 출발점으로 보기 때문이다.

전환의 시대에는 자유시장과 민주화를 향한 움직임이 세계적 추세였다. 중국의 개방뿐만 아니라 레이건과 대처가 주도한 미국과 영국의 급진적 경제 개혁, 유럽의 단일시장 출범, 라틴아메리카의 개방, 인도의 개혁 등이 이 시대에 일어났다. 또 80년대에는 라틴아메리카와 한국, 동유럽 공산권 등 16개국에서 민주화 바람이 불었다. 91년 겨울 구 소련이 사라지고 미국이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 남으면서 전환의 시대는 끝났다.

낙관의 시대는 세계 어느 국가도 미국에 맞설 수 없을 정도로 미국의 힘이 강력했던 시기다. 주요 강대국들이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이라는 비전을 공유해 국제 갈등의 가능성이 줄어든 윈윈의 시대였다. 저자는 프랜시스 후쿠야마, 앨런 그린스펀 등의 인물들을 통해 이 시대의 사상을 보여 준다. 또 미국이 아시아, 유럽 국가들과 민주주의, 시장, 민주적 평화, 기술력에 대한 믿음 등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었는가를 설명함으로써 주요 강대국이 왜 세계화를 수용했는지, 그리고 윈윈 시대가 어떻게 창출됐는지를 설명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는 국제정치가 위험하고 불안정해진 불안의 시대다. 이 시대에 제로섬 논리가 횡행하게 된 것은 낙관의 시대를 지탱했던 민주주의 자유시장 기술혁명 등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국제 질서를 개편하는 새로운 요인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특히 중국과 미국 간의 새로운 라이벌 관계로 인해 세계가 한 나라의 이익이 다른 나라의 손실을 의미하는 제로섬 논리에 빠져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불안의 시대에 등장한 기후변화 경제불균형 같은 새로운 글로벌 문제의 특징, 이러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 주요20개국(G20) 유엔 기후회담 등을 무대로 나타난 글로벌 거버넌스 추진 움직임, 미국과 중국 간의 군사적 경제적 경쟁 심화가 세계 문제 해결이 걸림돌이 되는 이유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제로섬 논리를 극복하고 윈윈의 세계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낙관의 시대의 특징들을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미국의 입장에 치우친 감이 있지만 지난 30년간 시대별로 주요 사건과 인물들을 잘 포착해 세계 정치, 경제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남경욱기자)   

한국경제(11. 05. 21) "EU가 붕괴된다고"…세계가 직면하게 될 12가지 경제변화

중국은 다시 가난한 나라로 돌아간다. 유럽연합(EU)은 붕괴한다. 뉴욕타임스 최연소 논설위원인 대니얼 앨트먼 뉴욕대 교수는 이러한 일들이 불과 10년 후에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10년 후 미래》에서 세계가 앞으로 직면하게 될 12가지 경제변화를 분석한다. 앨트먼 교수는 "세계 경제의 운명은 단기적 시장 변화가 아니라 보다 심층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지정학적 위치,정치제도,인구 등 '딥 팩터'들을 고려해야 경제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딥 팩터 분석을 통해 중국의 경제 전성기가 머지않아 막을 내릴 것이라 전망한다. 중앙집권적 정부체제와 유교문화는 중국 경제를 경직시키는 대표적 요인이다. 강력한 정부 통제는 산업을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지만 그만큼 기업 활동의 자유를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은행이 조사한 '기업 환경평가보고서'에서 중국은 183개 국가 중 151위를 기록했다. 기업하기 힘든 나라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하기란 어렵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중국이 빠르게 늙어가는 국가라는 점도 근거로 든다. 1979년 이후 시행한 '한 자녀 정책'의 영향으로 노동할 수 있는 젊은 인구의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일본과 유럽 등 선진국들 또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지만 미국의 취업연령 인구는 비교적 적게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근로자의 낮은 생산성과 법제도의 불투명성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따라서 인구 증가율과 생산성이 더 높은 미국에 세계 최대 경제대국의 타이틀이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는 "세계경제사에서 중국의 시대는 강력하지만 짧게 기록될 것"이라고 말한다.

EU의 미래에 대해서도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서로 다른 경제성장의 한계 때문에 재정위기를 계기로 이미 회원국 사이에 분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저자는 미국 남북전쟁을 예로 들어 "정치 · 경제제도의 통합은 쉽지 않은 일"이라며 "EU는 결국 불가피하게 다시 분열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는 독일 네덜란드 등 북서유럽 국가들끼리 금융과 상업적 연대가 강화되는 반면 다른 국가들은 점차 소외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은 지금 외부 세계에 경제를 개방할 것인지 아니면 폐쇄적인 상태로 남아있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시기"라며 "한국은 중국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예고편이기 때문에 세계가 주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일본경제의 몰락을 예로 들며 인구 감소를 감안해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젊은 인재들이 아이디어와 혁신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도록 경직된 위계질서를 타파하라고 조언한다.(최만수기자) 

11. 05. 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주 경제분야의 관심도서는 성장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은 책들이다. 마인하르트 미겔의 <성장의 광기>(뜨인돌, 2011)와 클라이브 해밀턴의 <성장숭배>(바오, 2011). 미겔의 책은 <성장의 종말>(에코리브르, 2006)도 이미 출간돼 있다.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성장 패러다임에 대한 반성의 한 계기가 될 수 있을까.  

 

경향신문(11. 05. 21) 또 다른 ‘성장’의 조건   

경제현상을 바라보는 최근 시각은 ‘숫자’ 너머를 향한다. 숫자 너머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들의 움직임이 있다. 물론 여전히 숫자 이상을 보지 않으려는 매우 강력한 관성이 존재한다. 숫자는 사람들과 그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등장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사람들의 움직임을 때로 숫자가 은폐해 현실과 유리된 경제현상을 전달하기도 한다. 



경제성장률은 이러한 은폐의 대표격이다. 경제성장률은 해당 기간에 국내총생산(GDP)이 얼마나 늘어났는지를 보는 지표이다. 기존 GDP 측정 방식에 대한 반성이 있고 대안적인 측정방법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GDP는 여전히 성장의 척도이다. 대안적인 측정방법을 모색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성장주의’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성장 자체를 거부할 의의, 그리고 의지와 능력이 있을까. <성장의 광기>(뜨인돌)의 저자 마인하르트 미겔과 <성장숭배>(바오) 저자 클라이브 해밀턴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일단 숫자상으로 인류는 엄청나게 성장했다. 산업화가 경제성장을 이끌기 시작한 1800년경 이후 세계 GDP는 인구 1인당 약 11배로 늘었다. 그 사이 세계 인구가 9억명에서 69억명으로 7.7배로 커졌으니, 세계 GDP 총량은 200년 전과 비교해 거의 80배로 늘어난 셈이다. 숫자상으로 인류는 200년 전과 비교해 훨씬 더 행복해져 있어야 하고 삶도 풍요로워야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소득 수준에 도달하면 그 이후 인간의 행복도는 소득증가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이스털린 역설’이 입증했듯 적어도 산업사회에 속한 국민들의 삶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원인이 무엇이든 성장옹호론자들은 문제해결에 성장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편다. 이들은 서구 사회의 삶에 대한 만족감과 효율성을 유지하는 데만 장기적으로 연 평균 1인당 최소 2% 성장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지난 200년의 1인당 평균 성장률의 2배만큼 성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빈국과 부국 사이의 간격을 메우기 위해서, 서구사회가 매년 1인당 2% 성장하는 동안 세계 전체로는 4% 성장해야 한다고 세계은행은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현재 61조달러인 세계 GDP는 21세기 후반 약 2000조달러가 된다.

앞으로 이런 정도의 성장이 가능한지는 차치하고, 그렇다면 현재 시점에서 그동안의 성장 전략으로 사람들의 복지가 향상됐을까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성장의 광기>에서 미겔은 “많은 가계의 구매력은 오래 전부터 정체 상태에 머물고 있으며 적지 않은 가계가 부채로 고통받고 있다. 성장과 물질적 복지의 증진은 적지 않은 시민들에게 아직도 빈말에 불과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사람들의 위와 옷장은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삶이 여전히 피폐하거나 혹은 더 피폐해졌다면 산업화 이후 성장을 기치로 내건 인류의 발전전략은 잘못된 것이라고 미겔은 역설한다. 나아가 성장옹호론자들이 제시하는 장밋빛 전망은 상식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간단하게 인구 측면에서만 봐도 급격한 노령화로 세금 낼 사람이 줄고 연금 받을 사람이 느는데 과거 같은 역동적인 성장이 가능할까. 더 본질적으로는 자연과의 적대관계를 축으로 한 기존 성장은 성장비용을 숫자 속에다 숨겨 놓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성장이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 세대가 계산하지 못하고 내버려둔 금액을 지불하고 있으며, 우리 후세들은 우리 대신에 또 지불하게 될 것이다. 지불하는 액수가 항상 동일하다면 그렇게 긴장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액수는 몇년 전부터 점점 가파르게 증가하여 머지않아 지불할 수 없을 정도의 액수가 될 전망이다.”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이전에 출간된 <성장숭배>도 같은 관점을 유지한다. 선진국 자본주의가 산업자본주의에서 소비자본주의로 변이하면서 폭주기관차가 됐다고 진단한다. 현대 사회를 ‘마케팅 사회(marketing society)’로 규정하는 저자는 진보주의자들도 이른바 전통적인 ‘빈곤모델’에 사로잡혀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장주의자의 관점에 빠져든다고 비판한다.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성장을 포기하자는 논리는 아니다. 요는 어떤 성장을 어떻게 이루느냐이다. 답은 나와 있다. 지구와 우리 문명이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성장 혹은 수축하며, 물신을 숭배하는 대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존중하는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방향이다. 해답이 식상하다고? 모든 해답은 단순하지만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에 해답인 것이다. 성장을 사회설계나 정책의 전제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오랜 선입관을 깰 수 있다면 인간은 또 다른 ‘성장’을 가능케 할 수 있다.(안치용| 지속가능사회를위한경제연구소장) 

11. 05. 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낮에 외출하면서 우편함에서 꺼내든 게 이번주 <한겨레21>인데, 출판면에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다룬 그래픽 노블 <메즈 예게른>(미메시스, 2011) 리뷰기사를 읽었다. 생소한 단어인 '메즈 예게른'은 아르메니아어로 '대재앙'을 뜻한다고. 책은 귀가길에 서점에 들러 바로 구했다. 생각보다는 얇은 책이지만 참혹한 학살의 진실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낮에 읽은 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21(11. 05. 23) “세상의 모든 죽음이 그곳에 있었다” 

“‘어떤 사람들’을 추방하는 목적은 미래를 위해서, 우리의 조국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어디에라도 살아 있다면 절대 선동적인 생각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수를 가능하면 줄여야 한다. 부모들이 어떤 고문을 당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고아들만 수용하고 보호하도록 하라. 다른 고아들은 추방 행렬과 함께 보내라.”

1915년 당시 터키의 내무부 장관이던 메흐메트 탈라트 파샤가 시장들에게 보낸 전보다. 이탈리아 작가 파울로 코시가 그린 그래픽 노블 <메즈 예게른>(미메시스 펴냄)은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떤 사람들은 아르메니아인을 뜻한다.  

20세기 최초의 대학살
탈라트가 전보에 글을 휘갈기는 그 순간에도 수천 명의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생을 놓고 쓰러져갔다. 죽음의 방식은 여러 가지였다. 총칼에 찔리거나, 목을 매달리거나, 목적지도 없이 시리아나 메소포타미아 사막을 헤매는 추방 행렬에 합류하거나. 터키 군인들은 가족 앞에서 딸을 윤간하고 어린 아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의 이를 뽑아 이마에 쑤셔 박았다. 작가의 말마따나 “지구상의 모든 죽음이, 온 역사를 통틀어 존재하는 모든 죽음이” 그곳에 있었다.

죽음의 공포가 극에 달한 아르메니아인들은 미쳐갔다. 어미는 어린 자식을 우물에 던져버렸고, 임신부는 노래하며 유프라테스강에 몸을 던쳤다. 허기와 두려움으로 정신을 잃은 이는 자신의 배설물을 먹기도 했다. <메즈 예게른>이 사진집이나 디테일한 묘사의 역사서가 아니란 점이 독자 처지에서는 다행이다. 건조한 내레이션과 흑백의 그림은 독자가 끔찍함의 수위를 조절할 수 있게 도왔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사진보다 선명하지만 눈을 질끈 감고 빠르게 다음 장으로 넘긴다면 잔인한 역사의 현장에서 황급히 벗어날 수 있었다.  

아르메니아인은 자신들의 슬픈 역사를 ‘메즈 예게른’이라 부른다. ‘대재앙’이라는 뜻이다. 역사적으로는 1915~16년 터키 당국이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희생자는 15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20세기 최초의 대학살이었다.

징후가 있었다. 1895~97년 오스만제국의 술탄 압둘 하미드는 아르메니아인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때 죽임을 당한 아르메니아인은 30만 명에 달한다. 배경은 이렇다.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제국의 영토에 거주하던 소수민족 아르메니아인은 기독교를 믿었다. 이들이 기독교를 믿기 시작한 것은 4세기 초로, 오스만제국 영토 안에서 아르메니아인과 무슬림은 십수 세기 동안 별다른 적개심 없이 어울려 지냈다. 그러나 19세기 말 제국들이 어깨를 겯고 서로의 욕망에 따라 손을 잡거나 충돌하기 시작하자 불똥이 엉뚱한 민족에게 튀었다. 1877년 러시아-투르크 전쟁으로 러시아가 아르메니아인의 거주 지역인 터키 북동부를 점령하게 되는데, 러시아가 그곳 사람들에게 권리 향상을 위한 개혁이라는 달콤한 사탕을 건넨다. 이를 계기로 아르메니아인 사이에서 민족운동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한다. 무슬림과 충돌하는 일이 잦아졌고, 오스만 정부는 잔인한 대응을 한다. 이런 대응이 이어지다 폭발한 게 1차 학살이었다

1908년 청년투르크당에 쿠데타가 일어나고 정치인 3명이 독재적인 권력을 가진다. 이들은 1909년 술탄 하미드 2세를 폐위하고 1911년 비밀 회의를 열어 아르메니아인 절멸에 골몰한다. 계획은 3단계였다. 첫째 군대와 행정부 내 아르메니아인들을 추방할 것, 둘째 지역 저명 인사, 아르메니아 당의 당원, 군에 들어갈 수 있는 성인 남자를 추방하고 제거할 것, 셋째 남아 있는 시민들을 없앨 것. 남자는 보이는 대로 죽이고, 죽음의 공포가 눈에 서린 여자와 아이들은 사막으로 내몰았다. 이들은 허기와 피로, 폭력에 남은 생을 짓이기다 죽어갔다.

터키에서 메즈 예게른은 금기시되는 단어다. 터키 정부는 이 대재앙을 강제 이주에 따른 희생이었다고 주장한다. 2006년 <내 이름은 빨강>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터키의 소설가 오르한 파묵은 2005년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터키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이 살해당했다. 그러나 터키는 지금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그 사건에 대해 공개 언급이나 토론을 금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발끈했다. “파묵은 터키의 정체성과 터키 군대, 나아가 터키 전체를 적대시하는 근거 없는 주장을 퍼뜨렸다.” 터키 정부는 파묵을 기소했다. 터키에서 아르메니아인 학살의 역사는 흐르지 못한 채 고여 있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는 아직까지 메흐메트 탈라트 파샤의 이름이 붙은 대로가 있다. 그의 무덤은 이스탄불 ‘순교자의 언덕’에 있다.  

글보다 더 세게 이야기하는 흑백의 선
역사의 굵직굵직한 순간을 백 마디 말 대신 그림으로 대신 말하는 그래픽 노블들이 있었다. 이슬람혁명기를 다룬 <페르세폴리스>(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보스니아 내전을 다룬 <안전지대 고라즈데>(조 사코 지음), <9/11 테러 리포트: 그래픽 어댑테이션>(시드 제이콥슨·어니 콜론 지음) 등이다.

<메즈 예게른>의 파울로 코시도 터키 정부가 끝내 지우려는 역사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했다. 사실을 근거로 하되, 픽션을 가미했다. ‘피해자’라는 보통명사를 뒤집어쓴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문학적 숨결을 불어넣어 가상의 고유명사로 되살려놨다. 지은이는 이야기 자체로도 충분히 강렬하기 때문에 최대한 단순한 선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밝혔다. 때로 그림은 글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신소윤 기자)  

11. 05. 19. 

 

P.S. 아르메니아 대학살과 관련한 책이 더 있나 찾아봤는데, 엘리프 샤팍의 소설 <이스탄불의 사생아>(생각의나무, 2009) 정도만 눈에 띈다. 책소개의 일부는 이렇다. 

세계의 절반이 넘는 영토를 다스렸던 광대한 오스만 제국은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서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뒤섞이는 신세계를 열었다. 여러 민족과 국가가 이슬람이라는 깃발 아래 뭉쳐지면서 다수와 소수의 관계는 아르메니아 민족의 대학살이라는 비틀어진 모습으로 드러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은 터키에 살고 있던 아르메니아인들의 약 3분의 2를 학살했다고 한다. 정확한 추산은 어렵지만 백만 명 이상이 학살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거나 망각하려는 평범한 아르메니아인들과 터키인들이다. 단순히 현대 터키 공화국의 오늘을 살펴보는 데 그치지 않고 내부의 모순과 위선을, 국가와 민족의 비틀린 상처를 두 가정의 두 여성이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에서 용감하게 드러낸 작가의 역량이 대단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진실을 대면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작가가 택한 탄탄한 맥락의 스토리텔링은 이 소설이 가진 특별한 매력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11-05-21 16:23   좋아요 0 | URL
엘리프 샤팍은 터키에 살고 있군요.파묵은 아직도 조국에 못오고 있는데...

아르메니아 계 미국인으로 윌리엄 서로얀이 생각납니다.그래도 아르메니아에 대해 한국인들이 조금이라도 안다면 서로얀의 소설을 통해서겠죠.

로쟈 2011-05-22 10:12   좋아요 0 | URL
사로얀이 아르메니아계였군요. 읽은 지가 너무 오래 돼 기억에 없는데, 요즘 독자들은 더 모를 듯싶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