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시대와 분노 신드롬

프랑스의 노(老) 레지스탕스 스테판 에셀의 소책자 <분노하라>(돌베개, 2011)가 번역돼 나왔다. 원저가 20여쪽 분량이라고 하니까 '책'으로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제목에 80%는 들어가 있는 '전언'이다. '부당한' 대학 등록금에 대한 대학생들의 분노가 마침 촛불로 번져가고 있는 즈음에 '분노하라!'는 전언은 더없이 강한 울림을 갖는다.    

경향신문(11. 06. 06) 분노하라, 전세계 뒤흔든 외침

“젊은이들이여,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면 참지 말아야 하는 게 어떤 것인지 곧 알게 된다.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내가 뭘 하겠어? 내 일이나 잘해야지…’라는 태도다. 그러면 인간을 이루는 기본요소의 하나인 분노의 힘을 잃게 된다. ‘참여’의 기회도 영원히 놓치는 것이다.”

세계 제2차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대원으로 활약했던 94세 노인 스테판 에셀은 20여쪽짜리 소책자(팸플릿)에서 젊은이들에게 노골적으로 ‘분노하라’고 말한다. 책 제목도 분노하라는 뜻의 <앵디녜 부!(Indignez-vous!)>이다. 지난해 10월 직원 2명의 작은 출판사에서 초판 6000권으로 시작한 이 책은 현재 프랑스에서만 200만부 가까이 팔렸고 영국,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분노 신드롬’을 일으켰다. 미국, 일본, 브라질 등에 이어 곧 한국어로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에셀의 메시지는 간결하다. 각자 분노의 동기를 찾되 폭력을 거부하자는 제안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뭔가에 분노할 때 투사가 되어 역사에 합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더 많은 정의와 자유가 생긴다는 믿음이기도 하다. “다양한 문화가 서로 화해하는 시대”에 폭력을 멈추게 하는 확실한 수단은 ‘비폭력’ 평화적 봉기라고 그는 말한다. 

‘분노하라’는 메시지 외에 깊이 있는 분석도, 새로운 내용도, 구체적인 행동계획도 들어 있지 않다. 그런데도 세계는 왜 이 책에 열광하는 것일까. 영국 일간 가디언은 에셀의 책이 니콜라 사르코지 우파 정권에서 발생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강한 분노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영국 번역판의 편집자 찰스 글래스는 미국 주간지 더 네이션에 “사르코지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왔고 그 정신은 미국, 영국의 청년들도 다를 것이 없다”고 진단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2008년의 위기는 단순한 금융위기가 아니라 문명의 위기”라고 지적하면서 시장제도에 대한 광범위한 분노가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에셀이 꼽은 분노의 첫 번째 대상은 빈부격차다. 그는 “서구의 생산 집착적인 사고가 세계를 위기로 이끌었다”고 지적했다. 또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 프로그램과 독립된 언론, 차별 없는 교육 등 과거 레지스탕스가 얻은 사회적 성과가 대부분 위협받고 있다고 말한다.

둘째는 전 지구적으로 보편적 인권이 무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 초안 작성에 참여했던 에셀은 인권가치의 퇴보에 분노할 것을 촉구했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5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이 책은 94세의 노 혁명투사가 젊은이들에게 잘못된 현대사에 대해 고뇌하고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역량을 키우라고 던지는 메시지”라며 “프랑스보다 분노할 게 더 많은 한국 젊은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 스테판 에셀… 나치에 저항한 인권활동가

<앵디녜 부> 열풍의 가장 큰 배경은 저자인 스테판 에셀 자신이다. ‘분노하라’는 메시지와 어울리는 영화 같은 삶 자체로 울림을 준다는 평가다. 1917년 독일 베를린 태생의 에셀은 유대계 독일인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한 여인과 그 여인을 사랑하는 두 남자의 동침을 다룬 앙리 피에르 로셰의 53년 소설 <쥴과 짐>은 실제 에셀의 부모님을 모티브로 했다.

24년 가족은 파리로 이민했다. 1937년 파리 고등보통학교(ENS)에 입학한 그는 <구토> <존재와 무> 등을 읽으며 장 폴 사르트르를 사숙했다. 개인의 책임과 참여 의지를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41년 드골 장군의 런던 ‘자유 프랑스’에 합류했고 3년 뒤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던 중 게슈타포에게 체포돼 고문을 당한다. 사형 집행 하루 전 다른 수용소로 옮겨지는 동안 다른 수감자와 신분을 바꿔 탈출에 성공한다.

전후에는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 유엔 인권위원회 프랑스 대표 등을 역임했다. 48년 유엔 비서로서 세계 인권선언문의 초안 작성에 참여했다. 레바논 침공과 가자지구 공격 등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인권에 대한 범죄라고 규탄해왔다.(이지선기자) 

11. 06. 06. 

 

P.S. 프랑스 얘기가 나온 김에 '왜 프랑스는 문화정치를 발명했는가?'란 부제를 단 장 미셸 지앙의 <문화는 정치다>(동녘, 2011)도 참고해볼 만하다. 역자는 <이제는 문화대통령이다>란 책을 준비중이라는 목수정 씨. 영어권의 '문화정치'와 비교해서 읽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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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독자들에겐 <폭력의 철학>(산눈, 2007)을 통해 인상적인 데뷔를 한 일본의 사회학자 사카이 다카시의 새로운 책이 출간됐다. <통치성과 자유: 신자유주의 권력의 계보학>(그린비, 2011). 사회사상사를 전공한 저자는 지젝의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의 일어판 역자이기도 하다. 이번에 나온 <통치성과 자유>는 미셸 푸코의 권력론 혹은 통치성론을 참조하여 자유의 문제를 재해석하고 있는 책이다. 원제는 <자유론: 현재성의 계보학>이다.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지난주부터 책상맡에 놓고 있는 책인데, 리뷰기사를 일단 챙겨놓는다.  

  

경향신문(11. 06. 04) 신자유주의가 잉태한 ‘배제사회’

이 책에서 저자 사카이 다카시가 그리는, 통상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우리 시대의 초상은 그가 ‘포스트 누아르’라고 명명한 과도하게 밝은 얼굴을 하고 있다. 누아르 영화가 흘러넘치는 폭력을 그린다면, 포스트 누아르는 포스트-폭력을, 폭력을 사라지게 하는 폭력을 그린다. 저자에 따르면, 빔 벤더스의 영화 <폭력의 종말>이 딱 그렇다. 영화 프로듀서인 주인공은 2인의 남성에게 납치돼 살해당하려던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의해 목숨을 건진다. 사건이 미연에 방지된 것이다. 폭력을 사전에 제거하는 이 장치를 불안해 하던 위성감시센터의 책임자가 그것을 고발하려던 순간, 그 역시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맞아 죽는다.

폭력을 제거하는 폭력. 그것은 빛과 어둠을 선명하게 대비시키면서 빛을 잠식해가는 어둠의 힘을 음울하게 그려내는 누아르 영화와 달리, 빛과 어둠의 대비를, 혹은 어둠을 전면적으로 몰아내는 거대한 빛으로 정화된 세계를 만들어낸다. 공공장소를 모든 어둠에서 지켜내는 지나친 밝음, 폭력과 범죄로부터 공공을 해방시키는 이 거대한 폭력, 그것은 문자 그대로 폭력에서 ‘벗어남’을 뜻하는 동시에 폭력 ‘이후’의 폭력을 뜻한다는 점에서 포스트-폭력이다. 

1982년 발표된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의 ‘깨진 유리창’이란 논문은 범죄심리학에서뿐 아니라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글이다. 가장 중심적인 내용은 “만약 어떤 건물에 유리창이 하나 깨진 채 방치돼 있다면, 머지않아 그 건물의 유리창은 모두 깨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얘기다. 그 건물이 방치된다면, 일대의 건물 또한 모두 유리창이 깨지게 될 것이다. 방치된 무질서는 또 다른 무질서를 낳고 이는 결국 범죄를 양산한다는 것이 요지다. 이를 방지하려면 노숙자, 매춘부, 주정꾼 등을 처벌해야 하며, 무질서를 조장하는 행위에 대해 관용을 베풀어선 안된다는 것이 그 논문의 결론이었다. 이른바 ‘제로 톨러런스 정책’이 그 결과로 출현한다.

줄리아니 시장 밑에서 뉴욕 경찰본부장에 취임한 윌리엄 브래튼은 이 ‘깨진 유리창 이론’을 가장 강력하게 실행했던 사람이었다. 지하철에서 노숙자들을 쫓아내고 체포해 지하철을 ‘탈환’했고, 교차로에 정차 중인 자동차의 유리창을 닦아 팁을 받는 아이들을 단속했다. 맨해튼 다리 밑의 판잣집을 철거하고 성매매와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단속도 강화했다. 이런 치안정책의 요체는 이른바 ‘언더클래스’라고 불리는 하층민들에게 “전쟁 분위기를 전달하는 일”이었다. 그 결과 1994~97년에 살인은 60% 감소했고, 총범죄수도 43% 감소했다고 한다. 놀라운 성과였다!

그러나 동시에 경찰의 만행에 대한 불만도 늘었다. 그것은 줄리아니가 취임한 94년 전반기에 46%나 증가했다. 또 경찰에 의한 소수민족과 유색인종에 대한 살해도 급격히 증가했다. 범죄와 폭력을 제거하는 일종의 포스트-폭력이 ‘경찰에 의한 테러’로 귀착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누아르에서 포스트 누아르로의 이행은 범죄자에서 경찰로 폭력의 주체가 이동하는 현상을 뜻한다고도 해야 할 것 같다.

폭력으로 폭력을 제거하려는 이러한 정책은 뉴욕경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실업자나 주변적 직업을 갖는 ‘언더클래스’의 사람들에 대한 엄벌주의, 범죄자에 대한 가혹한 처벌 등을 통해 소수자나 빈민, 약자들에 대한 강력한 배제주의적 노선이 사법과 행정에 광범위하게 도입된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였다. 경쟁에서 열패한 자들에게 강력한 손해를 감수하게 하여, 경쟁에 목숨을 걸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의 공격적 시장주의는 이러한 ‘배제주의 정책’의 경제학적 버전이었을 것이다. 이른바 ‘징벌적 등록금’으로 표상되는, 삽시간에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았던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이 정확히 이와 동일한 것임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사회학자 조크 영은 이를 ‘배제사회’라고 명명한다.

반대로 있는 자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이른바 ‘시큐리티’가 급격히 강화되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을 죽음의 땅으로, 목을 매단 경쟁체제로 몰아넣는 배제주의 정책과 표리의 짝을 이룬다. 왜냐하면 이러한 배제정책은 빈민들의 저항을 야기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저항에 대해 가령 로스앤젤레스 같은 도시는 ‘게이티드(gated) 커뮤니티’를 확대하거나 경찰과 방범장비들로 둘러싸인 요새도시를 만들어낸다. 부자들의 요새지역과 경찰과 범죄자가 대결하는 공포지역으로 분할되는 ‘도시의 재구조화’는 마크 데이비스의 말대로 ‘내전의 재구조화’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얘기를 읽는 독자들이, 한국 부자들의 거주지를 뜻하는 ‘강남’에서 방범용 감시카메라를 앞장서 설치하려는 것이 기억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에서도 ‘사회적 양극화’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거론된 것은 오래 전이지만, ‘기업 프랜들리’를 내건 CEO 출신 대통령이나 부자감세를 무슨 대단한 일인 것처럼 자랑하는 태도, 아이들의 급식비용을 대주자는 것을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관료들의 뻔뻔스러운 행동은 이런 사태가 그저 남의 얘기가 아님을 알려준다.

복지국가 형태로 계급적 적대를 완화하거나 은폐하고자 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선 1980년대 이후, 우리에게는 아마도 1997년 이후 ‘적대’가 전면화된 시대로 넘어갔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중산층이 확대되고 있다고 과장하며 선전했던 시대에서, 양극화를 피할 수 없으니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경쟁력을 강화하고 스펙을 쌓으라고 강요하는 시대로 넘어온 것이다.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욕망하고, 그것을 위해 탐식하듯 자기개발서를 독파하면서 수집광처럼 자격증을 모으고, 오직 경쟁의 한길로, 돈을 버는 것을 향해 매진하는 것을 ‘자유’라고 착각하는 시대,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신자유주의 시대일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시대를 떠받치고 있는 것들을, 푸코가 “권력의 테크놀로지”라고 불렀던 다양한 기술과 전술, 혹은 전략들을, 그 실행의 양상을 매우 치밀하게 그린다. 물론 그것으로 회수되지 않는 대중의 저항도 잊지 않는다. ‘미성숙’이란 “이성을 사용해야 할 상황에서 어떤 권위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칸트의 정의를, “통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바꾸어 정의하면서, 통치당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새로운 권리의 정박점으로 삼으려고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 책에서 그려지는 현재의 형상은 무겁고 어둡다. 그것은 이 책이 쓰여진 시기가 1997~2001년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2008~2009년의 경제위기로 인해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이제 퇴물이 됐지만, 아직도 기승을 부리며 자신의 시대라고 착각한 채 위협적인 언사를 내뱉고 있는 지금의 한국에서는 결코 지난 얘기로 밀어놓을 수 없을 것이다.(이진경 |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연구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11. 06. 03.   

P.S. 사카이 다카시의 <자유론>(<통치성과 자유>)에 대해서 알게 된 건 사이토 준이치의 <자유란 무엇인가>(한울, 2011)를 통해서이다. 말미에 실린 기본문헌 안내에 "특히 '법과 질서'에 대한 관심의 상승이라는 시점에서 현대의 권력관계에서의 자유의 변용을 날카롭게 분석한" 책으로 <자유론: 현재성의 계보학>을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내용이 궁금하던 차였기에 <통치성과 자유> 출간이 반갑다. 정치사상사 전공인 사이토 준이치의 책으론 <민주적 공공성>(이음, 2009)도 나와 있는데, 푸코와 하버마스, 그리고 아렌트 등이 주요 참조대상이다. 공공성이란 주제와 관련해서는 야마와키 나오시의 <공공철학이란 무엇인가>(이학사, 2011)도 참고할 만하다. 공공철학이 대학 안팎에서 유행이라는 이웃나라와 비교하면 우리의 경우는 거의 적조한 수준이 아닌가 싶다. 역시나 '먼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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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11-06-06 00:57 
    신자유주의 권력의 계보학 - 포스트폭력 — “‘깨진 유리창 이론’을 가장 강력하게 실행…이런 치안정책의 요체는 이른바 ‘언더클래스’라고 불리는 하층민들에게 “전쟁 분위기를 전달하는 일”…그러나 동시에 경찰의 만행에 대한 불만도 늘었다.”
  2. 자유는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6-08 20:33 
    기획회의(297호)에 실은리뷰를 옮겨놓는다. 사이토 준이치의 <자유란 무엇인가>(한울, 2011)를 만지작거리다가 아예 그의 <민주적 공공성>(이음, 2009)과 같이 다루게 됐다. 저자의 문제의식 정도를 간추렸다.기획회의(11. 06. 05) 자유는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인문서의 한 갈래가 ‘인문서를 읽기 위한 인문서’라면 사이토 준이치의 <자유란 무엇인가>(한울, 2011)는 그쪽으로 분류할 수 있는 책이다. 자유론의
 
 
2011-06-04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04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일어를 모르는 독자라면 '다미가요 제창'이란 제목에서 연상되는 게 별로 없을 것이다. '군주(君)의 노래'를 뜻하는 ‘기미가요’의 상대어로 '백성(民)의 노래'를 뜻한다고 한다. 원래 쓰는 말인지 신조어인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다미가요 제창>(삼인, 2011)이란 책이 지난주에 나왔는데, 저자 정혜영은 재일 조선인 사회학자이고, 역자 후지이 다케시는 한국현대사를 전공한 일본인 역사학자이다(알고보니, 사카이 나오키의 <번역과 주체>(이산, 2005)를 우리말로 옮긴 바 있다). 무심코 지나치려 했는데, 역자 후지이 박사가 언젠가 한 학술대회에서 본 적이 있는 연구자다(성실하고 명석한 학자란 인상을 받았다). 역자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다중국적을 갖도록 하자는 저자의 제안과 함께 '뉴라이트'에 대한 역자의 평가가 인상적이다.    

<民が代>斉唱-アイデンティティ・国民国家・ジェンダー-

한겨레(11. 05. 25) “다중국적, 국민 아닌 민중 되기 위한 생존 전략”

분명 우리말 책인데 “정영혜가 쓰고 후지이 다케시가 옮겼다”고 한다. 지은이와 옮긴이가 뒤바뀐 것 아닌가? 최근 출간된 <다미가요 제창>(삼인 펴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지은이와 옮긴이를 주목해야 한다. 이 책은 재일조선인 사회학자 정영혜씨가 일본어로 쓰고, 한국에서 한국현대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일본인 역사학자 후지이 다케시가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일본을 소재로 근대국민국가를 비판하면서 그 경계선을 둘러싼 정치를 사유하는 책의 내용과도 어울리는 절묘한 조합이다. 23일 서울 계동 역사문제연구소에서 만난 후지이 다케시(사진) 박사는 책을 옮긴 이유에 대해 “일본에서 일본인이라는 ‘다수자’로 살아온 내게, 정영혜는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일조선인이자 여성이라는 이름의 ‘소수자’로서 지은이는 일본이 근대국민국가로 나아가며 만들어낸 ‘국민’이라는 정체성과 그 속에 담긴 차별의 문제를 연구했다. 그의 비판은 민중을 다수자와 소수자로 분단해 억압하고 착취하는 근대국민국가의 구조에 모아진다. 패전 뒤 일본은 1952년 4월2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에 맞춰 옛 식민지 출신자들의 일본 국적을 일방적으로 박탈했다. 그리고 이틀 뒤 ‘일본 국적을 가진 자’라는 국적 조항을 적용 대상으로 명시한 ‘전상병자 전몰자 유족 등 원호법’을 공포했다. 지은이는 이것이 식민지배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임과 동시에 국적이라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주민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체제의 구축이었다고 지적한다.

재일조선인 등 소수자의 비판을 소중히 여긴다는 일본 사회의 ‘양식 있는 지식인들’의 존재는, 오히려 이 체제가 얼마나 단단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들은 ‘소수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몰랐던 비판을 할 수 있고, 더 나은 사회로 가려면 이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은이는 이런 생각이 결국은 소수자를 타자화하는 구도를 더욱 고착화하고 있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 지적은 단일민족주의, 단일문화주의뿐 아니라 다문화주의 역시 차별과 배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비판과도 연결된다. 다양한 문화를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미리 분류된 소수자들에게 정체성을 가지라고 강요하고, 다시 다수자가 이를 공인해주는 구조란 것이다.

이에 대해 후지이 박사는 “소수자를 타자화하지 않고선 자기 정체성을 찾을 수 없는 다수자의 환상을 산산이 깨뜨린다”고 평가했다. 정씨의 논의는 소수자에 의한 다수자 비판에 머물지 않고 권력구조 자체를 다시 검토해 대안을 찾도록 이끈다는 것이다. 정주 외국인은 왜 시민권 획득이 불가능한가? ‘흑인’ 페미니스트와 ‘백인’ 중산층 페미니스트들의 간극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전쟁 때 국외로 강제징용된 일본인과 일본으로 강제징용된 조선인 사이엔 소통 지점이 없을까? 이와 같은 다양한 물음은 일본뿐 아니라 근대국민국가 체제 자체를 되짚어보게 만든다.

대안은 무엇인가? 지은이는 국민국가나 국적과 같은 경계에 얽매이는 대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시민권’과 같이 거주 사실에 의거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자고 한다. 국가가 쥐여주는 정체성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정체성으로서 ‘다중국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지은이는 자신의 딸을 3중 국적으로 만들기도 했다. 후지이 박사는 “다중국적은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국민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는 ‘민’(民)으로서의 생존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군주(君)의 노래인 ‘기미가요’를 백성(民)의 노래인 ‘다미가요’로 바꾼 책 제목에는 이런 실천적 뜻이 담겼다. 후지이 박사는 “국민으로 환원될 수 없는 민중이란 존재가 있다는 것이 정영혜 주장의 핵심”이라며 “일본 못지않게 국가주의, 단일민족 인식이 강한 한국에서도 이런 논의가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최원형 기자) 

■ 후지이 박사가 본 ‘뉴라이트’

“신자유주의 내세우며 민족주의는 깨려 해”
후지이 다케시(39) 박사는 지난해 ‘족청(조선민족청년단)·족청계의 이념과 활동’이라는 논문으로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현대사, 특히 1950년대가 그의 연구 주제다. 논문에서 그는 ‘반공민족주의’ 성격을 강하게 드러냈던 족청의 이념적 좌표와 50년대 족청계 인사들의 활동을 파헤쳤다. 구도만 보자면 최근 한국현대사학회에서 주목했던 ‘반제반공’의 역사와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구체적인 역사 과정에 대한 분석이 빠져 있는 ‘이념적’ 관점과 다르게 당시 반공주의의 파시즘적 성격과 세계사적 위치, 이승만 정권의 동맹자로 활약하다가 어떻게 미국의 이해와 충돌해 몰락했는지 등을 세세하게 풀어냈다. 남한의 ‘친미반공’이 정부 수립 직후부터 당위적인 조건처럼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이들 반제반공 세력이 제거되면서 주류가 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후지이 박사는 한국현대사학회 출범 등 역사 분야에 대한 뉴라이트의 활동에 대해 “역사적 사실에 대한 대중의 이해가 높아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방어적인 행위에 나서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방어적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로 말하기보다는 현실에 역사를 끼워맞추는 결과론적 접근을 하게 되고, 결국 제대로 된 역사 콘텐츠를 갖출 수 없다는 비판이다. 대안 교과서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던 배경도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한국 뉴라이트 세력의 특징은 신자유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점이라고 했다.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들은 전형적인 민족·국가주의인데,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한 세력은 자유시장경제를 지상과제로 내세우면서 그 걸림돌이 되는 민족주의는 깨려고 드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대신 “정치를 없애고 강한 행정 기능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의 특성” 때문에 국가주의에 대한 강조는 더욱 두드러진다고 한다. 후지이 박사는 “그러나 역사는 ‘그때 당시’가 기준이 되어야지, ‘지금의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삼아서는 곤란하다”며 역사학의 기본적인 원칙을 되새겼다.(최원형 기자) 

11. 0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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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30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30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31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곧 여름방학이 되면 미술관 순례를 위해 유럽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적잖다. 한번도 그런 마음을 품어본 적은 없지만 서점이나 도서관 순례라면 한번 더 생각해볼 것 같다. 유럽의 명문서점을 안내하는 책, 라이너 모리츠의 <유럽의 명문서점>(프로네시스, 2011)을 우선은 읽어본 다음에... 

 

한겨레(11. 05. 21) 박물관·미술관 뺨치는 개성만점 ‘명문’ 서점들

“정말 멋진 서점들은 무자비한 도시계획에 밀려나거나 파산하여, 우리 기억 속에만 인상 깊게 남아 있을 뿐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 출판계에 오래 몸담아온 라이너 모리츠는 이렇게 적었다. 유럽도 다르지 않은가 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동네책방은 거의 멸종 단계에 접어든 듯하고, 대학가에도 서점이 사라진 지 오래다. 입시용 참고서와 문제집, 취업과 자격증을 위한 책들로 연명하는 서점들이 드문드문 남았을 뿐이다. 대신 도시 한복판에는 거대한 서점들이 대형 백화점처럼 좌판을 넓게 펼치고 있다.

그래서 라이너 모리츠의 아쉬움은 우리에겐 배부른 소리처럼 들린다. 그가 유럽의 독특하고 유명한 서점 20곳을 뽑아 소개하는 책 <유럽의 명문서점>은 괜찮은 서점조차 찾기 어려운 우리 독자들에겐 ‘서점의 로망’을 불러일으키고도 남는다. 아직도 이런 서점들이 버티고 있는데 서점의 몰락을 걱정하다니 말이다. 



책이 소개하는 명문 서점들은 아름다운 인테리어 자체로도 눈길을 끌지만, 서점이 들어선 공간이 독특한 점에서도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는 곳들이 많다. 화려한 쇼핑가의 한가운데 있는 서점, 퇴근길 전차철로 고가 아래에 자리잡은 서점, 교회 건물을 서점으로 바꾼 서점 등등이 이어진다. 

수십년에서 수백년에 이르는 역사를 지닌 서점들은 첨단 시스템을 갖춘 곳도, 오래 묵은 박물관 같은 곳도 있다. 고서점에선 책에서만 만나온 옛 명사들의 흔적이 가득하고, 미술사에 등장하는 천장화를 감상할 수 있는 서점도 있다. 라이너 모리츠의 말마따나 이 책에서 ‘노스탤지어’만 확인하게 되는 건 아니다. 고객 전용 서가를 제공하는 곳도 있으며, 에코백 유행을 불러일으킨 서점도 있다.  

이런 명문 서점들의 흥미진진한 면모는 텍스트를 넘어 전문 사진작가 두명이 찍은 사진들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유럽 여행 가이드북으로 삼아도 좋을 듯 싶다. 책 뒤편에는 스무곳의 주소와 연락처 등 외에 이밖에 더 가볼 만한 서점들을 소개해뒀다. 지도가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다.(김진철 기자)  

11. 05. 27. 

 

P.S. 서점 이야기로는 루이스 버즈비의 <노란 불빛의 서점>(문학동네, 2009)도 챙겨놓아야겠다. "이 책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고대 로마, 6세기의 중국 등 역사의 구석구석을 간단없이 누비며 서적판매업이 어떻게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는지 상세하고도 매혹적으로 서술해놓았다. ‘관능적인 독서 공간’에 관한 세밀한 고증이자 애정의 기록"인 책. 도서관쪽으로도 책들이 나와 있다. 유종필 전 국회도서관장의 <세계 도서관 기행>(웅진지식하우스, 2010)에서 가보고 싶은 도서관들의 리스트를 얻을 수 있다. 최정태 교수의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한길사, 2011)도 최근에 개정판이 나왔다.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들이 발로 쓴 <유럽 도서관에서 길을 묻다>(우리교육, 2009)란 책도 나와 있는 건 이번에 알았다. 도서관에는 다 비치돼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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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1-05-27 12:47   좋아요 0 | URL
신문에서 소개기사를 읽고 아쉬어 했습니다. 3년전에 파리(2박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2년전에 런던을 다녀온 터라 일찍 나왔으면 좋았었을텐데요.
미국에서 별 유명하지 않은 대학 도서관에 잠깐 들렀다가 깜짝놀랐습니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도서관 모습에 .. 우리로써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서점, 도서관 문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로쟈 2011-05-28 07:38   좋아요 0 | URL
관심과 열의만큼의 문화를 갖는 것이죠...

Daniel 2011-05-28 04:37   좋아요 0 | URL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읽고는 유럽 여행을 책마을들 위주로 꼭 한번 가고싶다했는데 더 갈 곳이 많았졌네요^^;;

로쟈 2011-05-28 07:36   좋아요 0 | URL
네, 책마을도 있었지요. 찍을 곳이 너무 많네요.^^;
 

직장인이라면 이제 막 점심메뉴를 골랐거나 골라야 할 시간이겠다. 이번주에 나온 폴 그린버그의 <포 피시>(시공사, 2011)에 눈길이 갔다면 생선구이나 참치 전문점 쪽으로 발길이 가지 않았을까. '포 피시(Four Fish)', 말 그대로 네 종류의 물고기가 주인공인 책이다. 부제는 '네 종류 물고기를 통해 파헤친 인간의 이기적 욕망과 환경의 미래'. 제목에다 쓴 연어, 농어, 대구, 참치가 우리의 '빅4'다.

   

번역본 표지는 낚시를 연상시키지만, 원저는 생선 시장이나 마트의 생선 코너 분위기다. 아무려나 제목만으로 '오늘의 책'에 값한다(순수한 책벌레의 입장에서 나는 이런 책을 좋아한다. '로쟈의 낚시'에 잘 부합하기도 하고). 저자의 발상이 특별하진 않으면서도 참신한데, 소개는 이렇다.  

작가이자 평생 낚시를 하며 살아온 폴 그린버그는 우리의 식탁을 장악해온 연어, 농어, 대구, 참치의 역사를 탐험하는 여정으로 우리를 인도하면서 이 중요한 변화의 시기에 물고기가 어떤 상태에 처했는지 밝히고 있다.

맘에 드는 책이 나온 만큼 원서의 이미지를 찾아봤다. 실제 크기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키워보면 아래와 같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위에서부터 차례로 연어, 참치, 농어, 대구다. 물론 한국인이 더 좋아하는 고등어나 갈치, 삼치 등이 주인공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 세계적으로 보자면 이들이 '빅4'란 얘기다.   

 

책 대신에 생선들을 서재에 올려놓으니(서재의 좌판화?) 날씨따라 궂은 마음이 조금 펴지는 기분이다. 비록 점심메뉴가 생선구이는 아니더라도... 

11. 05. 26.  

P.S. 네 종류 물고기 가운데, 대구는 마크 쿨란스키 덕분에 이미 조명을 받은 바 있다. <세계를 바꾼 어느 물고기의 역사>(미래인, 1998) 정도되면 대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은 절판된 책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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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5-26 14:23   좋아요 0 | URL
말씀대로 번역본 표지는 좀 덜 싱싱해 보이네요 ㅋㅋ 오늘은 대구탕이 당겨서 그런지 대구가 유독 반가운데요^^

로쟈 2011-05-27 08:33   좋아요 0 | URL
네, 원서의 표지가 훨 싱싱해보이는데 말이죠...

雨香 2011-05-27 12:51   좋아요 0 | URL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인지 구미가 당기는 책입니다. 음식에 관심을 두다 보니 음식이라는 것이 사회,문화,역사,자연을 모두 품고 있다는 생각에 미치고 있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로쟈 2011-05-28 07:40   좋아요 0 | URL
전 어제 서점에 들렀는데, 허탕치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