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역사분야의 화제작은 이덕일의 <윤휴와 침묵의 제국>(다산초당, 2011)이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김영사, 2000)를 바로 떠올리게 해준다. 아이가 영화를 보고 나서 요즘 해리 포터 시리즈에 잔뜩 빠져 있어서 몇권 주문하는 김에 나도 이 두 권을 어제 같이 주문했다. 조선사에도 관심을 갖게 되면 읽을 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텐데 큰일이다...

  

경향신문(11. 07. 24) “주류에 맞서다 죽은 윤휴 과연 우리세대는 떳떳한가”

“나라에서 유학자를 쓰기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죽일 것은 무엇 있는가.” 조선 후기 학자이자 정치가 윤휴(1617~80)는 사약을 받으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10여년 전부터 이 비운의 정치가를 주목했던 역사평론가 이덕일씨(50·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는 당시 윤휴의 후손이 “아직도 말하기를 꺼려하는 것 같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무엇이 300여년 전 죽은 선비를 그토록 ‘금기’로 만들었는가, 이 소장이 <윤휴와 침묵의 제국>(다산초당)을 내놓은 이유다.

 

지난 19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이 소장은 “현재 우리 사회는 ‘윤휴를 죽였던 당시 체제와 무엇이 다른가’라는 문제의식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말했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학계의 정설과 다르면 비난하고 추방하려고 하는 풍토가 있어요. 인문학은 늘 세상에 대한 비판적 통찰을 제시해야 하는데, 사고의 다양성을 추구하다 사형당한 윤휴는 과연 우리 시대는 ‘떳떳한가’를 묻고 있습니다.” 

이 소장은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를 통해 송시열에 덧칠된 신화를 벗겨냈다. 이번에는 그의 반대편에 섰던 윤휴의 삶을 조명하면서 다시 한번 송시열 계열의 노론 중심 역사관을 비판한다. “아직도 국사교과서는 송시열이 효종을 도와 북벌을 추진했다고 가르치지만, 송시열을 위시한 서인들은 진짜 북벌론자인 윤휴를 죽였습니다.” 그는 송시열이 주장한 북벌이 위로는 조선 국왕을 압박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억압하면서 사대부들의 기득권을 영원히 잇겠다는 전략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효종의 군비 강화책을 사사건건 반대했으며, 북벌 총사령부격인 체부를 설치했다는 것을 도리어 역모의 증거로 삼아 윤휴를 제거한 것 자체가 그 증거라는 것이다.

송시열은 주희의 성리학만을 만고의 진리로 삼아 유일사상 체제를 구축하고자 했다. 윤휴가 <중용>에 주석을 붙인 <중용신주>를 내놓으면서 주희와는 다르게 장·절을 구분하자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붙일 정도였다. 성리학에는 양반 사대부의 계급적 특권을 절대시할 수 있는 사상이 담겨 있었기에 일점일획도 고칠 수 없었다. 흔히 당파싸움으로만 알려진 예송논쟁 또한 사대부의 특권을 강화하기 위해 조선의 왕을 자신들과 같은 명 황제의 신하로서 동격에 놓기 위한 것이었다. 이 소장은 “국상에 상복을 3년이 아니라 1년을 입으라는 주장은,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는데 가족장을 치르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윤휴는 ‘송시열의 나라’에 맞서 “어찌 천하의 이치를 주자만 알고 나는 모르겠는가? 주자가 다시 살아온다면 내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자사(중용의 저자)는 동의할 것”이라고 응답한다. 그는 중국에서 청나라에 반대해 일어난 ‘삼번의 난’을 호기로 여기고 이때 북벌을 실시해야 한다며 58세에 처음 벼슬길에 나섰다. 북벌에 앞서 윤휴는 양반들에게도 군포를 징수하는 호포제와, 신분에 따른 호패의 차이를 없애는 지패제를 도입했다. 북벌이 추진되려면 나라와 백성들이 부유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양반 사대부의 계급적 특권이 폐지돼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모든 정책은 서인들에 의해 좌절된다. 이 소장은 “윤휴의 죽음 이후 조선은 다른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침묵의 제국’이 돼 버렸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윤휴의 북벌론은 실현 가능했을까. 이 소장에게 이 질문은 본질이 아니다. 그는 정치와 학문의 ‘진정성’을 말한다. 북벌을 부귀영화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노론과, 실제 북벌 총책임자가 되길 원했던 윤휴의 삶은 어떻게 전승됐는가. “윤휴의 사상을 이은 강화 양명학자들이 일제에 맞서 만주로 넘어가 독립운동을 했다면, 노론은 대거 친일파로 변절했습니다.” (황경상 기자) 

11. 07. 24. 

 

P.S. 송시열과 윤휴를 포함한 17세기 조선 유학자들에 대한 소개는 이경구의 <17세기 조선 지식인 지도>(푸른역사, 2009)를 참고할 수 있다(이선아의 <윤휴의 학문세계와 정치사상>(한국학술정보 2008)은 학위논문인 듯싶다). 윤휴를 다룬 장의 제목은 '근본주의자를 위한 변명'인데, 윤휴의 '이단적' 주자 해석에 대해서 이렇게 평했다.  

윤휴 본인은 주자를 반대할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주자의 정신을 따른다는 신념을 가졌다. 하지만 송시열 등은 주자를 따르는 또 다른 길, 해석의 가능성을 용납할 수 없었다. 국가 재건의 방향이 다르게 흐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윤휴가 제기한 대안은 정치적으로 문제되지 않는 범위에서 유형원, 정약용 등을 통해 이어졌고, 국가주의적 기획은 영조, 정조의 정국 운영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영조는 유학의 시비는 국가와 무관하다고 선언해 유학의 틀 내에서는 더 이상 시비가 강렬하게 전개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윤휴가 대한제국 끝 무렵인 1908년에야, 조선의 문제적 인물 수십 인과 함께 비로소 복권된 것은 권력화된 주자학의 독선이 드린 어두운 그림자일 것이다.(149-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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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11-07-24 12:15   좋아요 0 | URL
사실 이덕일이 주장하는 것들이 우리가 배웠던 것들과 유사합니다. 소위말하는 현대 주류 사학에서 가르치는 내용들이지요. 로쟈님도 국사책에서 윤휴가 주자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서 송시열과 노론에 의해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었다는 내용을 배웠을 것입니다. 전혀 새로울게 없습니다. 우리의 기억속에 이미 송시열과 노론은 나라를 망하게 한 세력이고 윤휴는 복권되어 있었습니다. 광해군과 같은 맥락이지요. 이덕일 말대로 노론이 아직도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있다면 국사 교과서가 이렇게 기술되어 있을리 없겠지요. 이덕일이 널리 읽히는 것은 소위 우리가 배운 것과 유사한 내용을 좀더 드라마틱하게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지 뭔가 새로운 사관이나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닌 것 같아요.

로쟈 2011-07-24 13:35   좋아요 0 | URL
핵심주장은 노론이 친일파가 되고 지금의 기득권세력이란 것 같아요. 학계도 포함해서. 그래서 논란을 부르는 것 같고요...

푸른바다 2011-07-24 14:07   좋아요 0 | URL
섵부른 음모론이지요.^^ 역사를 무슨 다빈치 코드류의 소설로 착각하는 분인 것 같아요. 굳이 현재의 추세를 들자면 영남 출신들이 재계와 정계를 장악하면서 조선시대 소외되었던 '영남남인'과 '영남북인'들이 재조명되는 흐름은 있는 것 같아요. 이황, 유성룡, 윤휴, 이익, 정약용이 남인이고, 남명 조식은 북인이며 북인 세력들이 광해군 시대를 이끌었지요. '실학'을 이야기 하면서 박지원이나 홍대용이 모두 노론이었다는 점은 숨깁니다. 역시 왜곡을 수반하는 말이긴 하지만 영남 세력이 대한민국 주류가 되면서 노론은 평가 절하되고 남인이 실학이란 이름으로 재조명됐다는 게 약간은 더 실상에 가까운 듯 해요. 제 국사시간 기억으론 송시열과 노론은 역사의 흐름에 저항한 기득권 세력으로 배웠어요. 로쟈님도 그렇게 배우지 않았나요? 이덕일의 주장은 이러한 흐름에 부합되어 오히려 각광을 받는 듯 싶기도 합니다. 그가 주류 학계와 다른 저항 세력인 듯 행세하는 건 책을 팔기위한 상술일 수는 있어도 전혀 현실과 부합되는 건 아닙니다.

lunar-altena 2011-07-24 16:26   좋아요 0 | URL
실학이 재조명 된거는 아무래도 민족주의 사학에 입각해서 뭔가 우리도 일본 침략만 없었으면 자본주의화 됐다는(자본주의 맹아론) 그런 '바람'때문이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영남 출신들의 정재계 장악과 연관되서 생각해 볼점도 충분히 있는것 같구요.

뭐. 아! 제가 말하고 싶은 점은 지역대학 사학과를 나온 사람 입장에서 한마디 덧붙이고 싶어서요. 고등학교 국사시간 때 어떻게 가르쳤는지는 잘 생각이 안나네요. 그점은 논외로 치고,(어쩌면 진보의 투철한 민중사관이 교과서에 실렸을 수도요) 제가 대전 지역 사학과를 나왔거든요. 송시열과 기호학파의 고향인 셈이죠. 그래서 그런지 여기 교수님들(조선시대 전공, 특히 성리학)은 송시열에 상당히 긍정적이십니다. 뿐만아니라 서울의 유명대학의 조선시대 전공 교수님들도 노론쪽 학파가 많다보니 학계가 그 쪽으로 치우쳐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서울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서울의 모 유명대학 교수님들의 입김은 학계에서 강력하다고 생각됩니다. 이같이 된 원인이 노론-> 친일파 -> 기득권층 이란 도식에 완전히 부합될 수는 없을지라도,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 생각됩니다.

재미난 건 또 있습니다. 서울중심의 학계에서 소외된 지역대 교수님들은 각자 자기 지역 유학자들을 연구하시죠. 그런데 마치 자신이 그 옛날 최고 유학자의 학맥을 이었다면서, 옛날에 스승들이 논쟁했던 그대로 아직도 싸우십니다. 뭐 일반화 할수는 없지만, 제가 들은 바로는 노론과 소론이, 남인과 서인 쪽 연구자분들이 다투고 계신다고 합니다. 참 웃기죠?

서울 주류와 지역 비주류, 그리고 지역들간에도 사소한 차이로 화합하지 못하는 점.
논어의 이런 구절이 생각나네요.
君子 和而不同하고 小人 同而不和니 (군자는 서로 다르지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화합하지만, 소인은 서로 같은 듯 무리지어 다니지만 어울리지 못한다.)
과연 지금의 일부 교수님들이 예전 유학자들만큼의 도량이나 될런지...

이런 면을 그냥 참고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보기엔 아직도 노론과 주류 학계의 문제점은 해소되지 못한것 같습니다. 굳이 노론이 아니더라도,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과 불관용은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죠. 그런면에서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자는 이 책의 목표는 적절했다고 생각됩니다.

푸른바다 2011-07-25 10:06   좋아요 0 | URL
이덕일 류가 조선과 한겨레에서 모두 대접받는 이유이기도 하죠.^^ 좌파는 자본주의 맹아론을 주장하면서 성리학을 비판적으로 극복하는 일에 관심있기에 송시열과 노론은 수구반동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죠. 우파는 꼭 위에 기술한 이유만은 아니지만 복합적인 이유로 송시열과 노론에 비판적입니다. 이는 한중일 삼국의 반주자학적 일반 경향이 일부 반영되었다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님의 말씀대로 송시열과 노론 주류의 고향인 충청도 지역에서 일부 지지 그룹이 있지만 그야말로 지역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지요. 제가 알기론 사학계에서 송시열과 노론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흐름은 마이너 중의 마이너입니다. 대표적으로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선생을 들 수 있는데 이분이야 말로 학계에선 이단자로 볼 수 있죠. 학계에서 송시열과 노론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을 냈다간 수구보수로 몰리기 십상으로 알고 있습니다.

lunar-altena 2011-07-25 20:42   좋아요 0 | URL
예, 잘 들었습니다. 뭐 제가 학계 사람도 아니고, 자세히는 모르지요. 지역에서 중앙을 바라보는 창도 부족하고. 훔 그래도 말이죠. 훔 실명을 거론하기 그렇지만 서울대 사학과 출신 교수님들이 우암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생각되네요. 물론 지금의 국사학과 교수님들은 어찌되는지 모르지만, 현재 은퇴하시고 명예교수로 계신 분들, 제자도 많이 배출한 뭐 그런 분들이 몇몇 우암에 긍정적이시더라구요. 확실히 저희 지역(대전)은 우호적인 분위기 입니다. 또한 충북 쪽이 우암의 학술사업과 기념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푸른바다 2011-07-25 23:15   좋아요 0 | URL
서울대 국사학과 출신 교수도 다양하니 송시열에 긍정적인 사람도 물론 있겠지요. 그러나 제가 알기론 대다수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2011-07-25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5 15: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5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5 2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5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5 22: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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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6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6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6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침에 주문한 책의 하나는 강준만 교수의 신작 <강남 좌파>(인물과사상사, 2011)다. 애초에 '강남 좌파'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이 강 교수라고 하니 원조 & 본격 '강남 좌파'론쯤 되겠다. 부제는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칼럼으로 쓸 만한 거리가 있는 듯싶어 챙겨놓는다. 흔히 조국 교수가 강남 좌파의 대표주자처럼 언급되는데, 칼럼집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21세기북스, 2011)와 같이 일독해도 좋겠다...  

한겨레(11. 07. 22) "강남좌파, 정치불신의 벽 못뚫는다”

최근 정치권과 사회운동 진영에서 부쩍 자주 쓰이는 용어가 ‘강남 좌파’다. 소득수준은 높으면서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이들을 일컫는다. 진보적 지식인으로 꼽히는 조국 서울대 교수는 “나를 강남 좌파로 불러도 좋다. 우리 사회가 더 좋아지려면 강남 좌파가 많아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의 논쟁적 사안을 책으로 꾸준히 살펴온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이번에는 이 ‘강남 좌파’를 도마 위에 올렸다. 강 교수는 최근 펴낸 책 <강남 좌파>(인물과사상사)에서 강남 좌파는 결국 또다른 엘리트주의일 뿐이며 극복해야 할 일종의 허위의식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조국 교수를 언급하며, 그가 갖는 강남 좌파 이미지만으로는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혐오의 벽을 뚫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강남 좌파란 강남과 비슷한 일정 수준의 생활 양식을 보이고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통칭한다”며 “기존 학벌주의의 혜택을 누리고 그걸 바꿀 뜻이 없으면서 외치는 좌파의 비전, 그것이 바로 강남 좌파의 한계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한국의 모든 정치인들이 실은 강남 좌파로 분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 엘리트가 되기 위해선 학벌은 물론 생활수준까지 강남 수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우파 정치인이어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포퓰리즘적인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기회주의적 좌파가 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강남 좌파라는 말에서 방점이 찍히는 부분은 ‘좌파’가 아니라 ‘강남’이어야 하며, 이런 이유로 강남 좌파의 문제는 이념이 아니라 엘리트 문제로 비판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국 교수는 21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강남엔 모두 우파만 있고 좌파는 모두 지방과 강북에만 있어야 하느냐”며 “중요한 것은 지역을 떠나 모든 좌파의 연대”라고 지적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30년 전 미국에 등장한 ‘여피 좌파’가 한국에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강남 좌파란 말은 좌파의 보조역량이어야 할 고소득 전문직들이 자칫 좌파의 주력인 것처럼 비칠 수도 있어 민주화를 주도한 노동자나 중간계급에겐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권은중 기자)  

11. 07. 22.  

P.S. '좌파처럼 생각하고 우파처럼 생활하는' 리무진 진보주의자에 대한 풍자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브룩스의 '보보스' 시리즈에서 읽을 수 있다. '보보스'는 '부르주아 보헤미안'의 줄임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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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엘리트주의 청산과 추첨민주주의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8-01 21:42 
    내일자 경향신문의 '문화와 세상' 꼭지를 옮겨놓는다.낮에 쓴 칼럼인데, 강준만의 <강남좌파>(인물과사상사, 2011)의 문제의식을 풀어놓고 싶었다. 같이 참고한 책은 어니스트 칼렌바크와 마이클 필립스가 쓴 <추첨민주주의>(이매진, 2011)다.경향신문(11. 08. 02) [문화와 세상]엘리트주의 청산한국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진단하고 비판함으로써 소위 ‘강준만 한국학’이란 걸 세워온 강준만 교수가 최근 <강남좌파&g

도올 김용옥의 한글역주 시리즈의 하나로 <중용한글역주>(통나무, 2011)이 출간됐다. <논어한글역주>(통나무, 2008)로 방향을 잡은 이후엔 파죽지세다. 올해 안으로 <맹자한글역주>까지 출간된다고 한다. 예전에 <도올선생 중용강의>(통나무, 1995)를 읽은 적이 있는데, 당시 도올의 책이 흔히 그랬듯이 나오다 만 책이었다. 사정이 좀 달라졌다는 걸 알겠다. 인터뷰기사에서도 저자의 진지한 태도가 읽힌다. '새로운 문명' 얘기에는 아직도 공감하기 어렵지만...    

  

한겨레(11. 07. 20) “중용은 ‘가운데’가 아니라 모든 극단 포용하는것”

‘도올’ 김용옥 원광대 석좌교수가 최근 동양의 고전인 <중용>을 우리말로 풀고 주석을 붙인 <중용한글역주>를 펴냈다. 김 교수는 2008년부터 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한글 세대를 위해 동양의 고전 역주 작업을 계속해왔다. <논어>, <효경>, <대학>에 이어 이번에 <중용>을 펴냈으며, 올해 출간할 계획인 <맹자>까지 펴내면 ‘사서’를 모두 우리말로 옮기게 된다. 특히 이번 <중용한글역주> 작업에 대해 김 교수는 “나의 사상 역정의 모든 생각과 체험을 집결한 분수령”이라며 “나의 사상은 <중용한글역주> 전과 후로 나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중용> 한글역주 작업을 이처럼 중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8일 서울 동숭동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중용>에는 인간과 인간이 속한 현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없다”며 “과연 인간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긍정적인 건설의 철학으로서, 서양문명의 한계에서 벗어나 21세기의 새로운 문명을 만드는 논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중용>의 문헌학적 배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찍이 사마천이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지었다”고 했지만, 청나라 때 옛 문헌을 의심하는 ‘의고풍’ 학문이 번성하면서 이를 믿지 않는 시각이 한때 대세를 이뤘다. 특히 <중용>은 유·불·도의 사상적 면모를 모두 포함하고 있고 철학적 개념을 가지고 논술을 펼쳐가는 방식으로 이뤄졌기에, ‘한나라 초기에 당시 제자백가의 논의를 취합하여 만들어진 저술이 아니냐’는 시각이 강했다고 한다.

그러나 1993년 중국 허베이성 궈잔촌에서 대량으로 죽간이 발견된 뒤, 자사의 존재와 그가 <중용>을 저술한 사실 등이 문헌학적으로 증명됐다. 김 교수는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신문명의 정수가 생성된 시기를 적어도 기원전 5세기 정도로 올려 잡아야 하며, <중용>이 제자백가의 논의를 취합한 것이 아니라 제자백가보다 앞서 그 정신적 원형을 제공했다고 봐야 한다는 것. 그는 “결국 <중용>은 자사가 공자의 사상을 망라하여 ‘유교’라는 사상의 체계적인 틀을 만들어내기 위해 펼친 작업”이라며 “그런 관점을 전제로 깔고 <중용>을 풀이했다는 것이 내 작업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은이인 자사의 논의를 충실히 따라가면, <중용>의 핵심은 ‘성’(誠)으로 압축된다”고 말했다. ‘성은 스스로 이루어가는 것이요, 도는 스스로 길지워 나가는 것이다’(誠者自成也, 而道自道也), ‘지극한 성은 쉼이 없다’(至誠無息) 등의 문장에서 나타나듯, 성은 ‘천지(天地)의 성실한 모습’, 곧 끊임없이 창조적인 현실태로서 우주 자연의 운영 원리를 뜻한다고 한다.

또 흔히 ‘중용’을 ‘이것과 저것의 가운데’ 정도의 뜻으로 쓰는데, 김 교수는 “의미를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했다. “‘중용’은 가운데가 아니라 모든 극단적 상황들을 포용할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용기는 만용과 비겁의 중간이 아니라, 만용과 비겁을 포용하는 데에서 스스로 우러나오는 그 무엇이라 한다.

<중용>의 이런 사상적 면모에 대해 김 교수는 “서양 사상은 완전과 불완전, 보편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을 나누어놓고 생각하지만, <중용>은 모든 극단을 포용하며 ‘불완전하지만 완전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라고 평가했다. 서양 사상은 신이나 최고의 선(善) 등 인간 외부에 초월적인 존재를 상정하고 그에 기대는 목적론적 성격이 강하지만, <중용>에 담긴 사상은 끊임없는 우주의 운영 원리를 담고 있는 인간 내면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중용>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인간이 스스로의 내면에 대해 주체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는 인간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느냐를 고민하는 창조와 건설의 철학”이라고 역설했다. 홀로 있을 때에도 스스로를 삼가는 ‘신독’(愼獨)의 개념이 이를 압축해서 드러낸다고 했다.

최근 유교를 정신문명의 기반으로 다시 세우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국 공산당 역시 유교 정신의 정수로서 <중용>에 주목하고 있다. 김 교수는 “근본적으로 신화적이고 초월적인 서양 사상은 더이상 인류를 이끌고 나가기에 부족하다”며 “중국 문명이 <중용>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제시해야 하는데, 우리가 나서서 선구적 모델을 만드는 지렛대 구실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자면 ‘꼰대들이 읽는 고리타분한 규범윤리’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중용>에 담긴 가치들을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는 주장이다.(최원형 기자) 

11. 07. 20.   

P.S. <중용한글역주>와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은 김진석의 <우충좌돌>(개마고원, 2011)로 서양철학을 공부하는 저자가 지속적으로 쓰고 있는 일련의 사회비평집 가운데 하나다. 부제가 '중도의 재발견'이니 '중도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책으로 읽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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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thema 2011-07-20 19:10   좋아요 0 | URL
김용옥의 특기가 "나오다 만 책"이지요. 도올문집 시리즈도 1차분 100권 낸다고 떠들고서는 2005년에 도올문집9 나온 이후 안 나오고 있지요. 김용옥이 100권을 쓸 수 있을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습니다.

로쟈 2011-07-20 21:57   좋아요 0 | URL
전력은 그런데, 최근의 행보는 좀 다르네요...

미국사람 2011-07-21 06:49   좋아요 0 | URL
도올의 중용강의는 상편은 책으로 나왔고 하편은 출판이 안되었는데 하편은 인테넷에 텍스트 화일로 돌아 다닙니다. 파일을 읽어보면 거의 완전한 형태인데 왜 출판이 안되었는지 모르겠읍니다. 아마 도올서당에서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정리한 것인지...

도올의 책은 거의 전부 읽어보았는데 재주가 너무 많아서 자신의 학문적 성취가 방해가 된 것 아닌가 싶읍니다. 방송나오구 기자하고 하면서 시간이 없겠조. 다만 이번에 나오고 있는 13경 주석은 도올이 거의 모든 사회활동을 접고 벌이는 일인 것 같아서 약간 기대가 됩니다. 글쎄 워냑 튀는 사람이라 끝까지 갈지는 모르겠읍니다만.

학자로 성공하려면 사람이 단순 무식해야하고 하고 공부 이외에 재주가 없어야합니다. 재주가 많은 사람은 학자로서 성공하기 어렵죠. 주변에 보니까 학부시절 공부잘하던 친구들보다 무식하고 성실한 쪽이 오십 넘어서 돋보이더군요.


로쟈 2011-07-21 08:07   좋아요 0 | URL
도울이 21세가 3대 과제 중 하나로 '학문과 삶의 소통'을 들기도 했는데, 그런 면으로는 가장 성공한 학자이긴 합니다. 동양철학 전공자로 그만큼의 대중적 영향을 가진 학자도 없을 듯하니까요. 학자의 사회적 용도도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할일이 너무 많으면 손을 놓게 되듯이 읽을 책이 너무 많아도 바라만 보고 있게 된다. 책상 위와 아래 잔뜩 쌓인 책들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얇은 책 한권을 빼든다. <추첨민주주의>(이매진, 2011)다. 이번주에 나온 책으로 에이미 굿맨과 데이비드 굿맨의 <미친 세상에 저항하기>(마티, 2011)와 같이 묶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책들도 너무 많아서 사실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연하지만, 이번주에 책을 고른다면 이 두 권부터 시작해도 좋겠다. 일은 손이 닿는 데부터 시작하는 수밖에 없는 것처럼 독서 또한 그렇다.  

       

한겨레(11. 07. 16) 위기의 ‘대의 민주주의’ 노동자부터 주부까지 추첨으로 뽑아 국회로!

데모크라시는 그리스어 ‘데모스’와 ‘크라토스’가 합쳐져 만들어진 말이다. 곧 민주주의는 ‘전체인민’이 ‘스스로 통치’하는 체제를 뜻한다. 아테네처럼 작은 도시국가에서는 그것이 가능했으나 인구가 많은 현대의 국가에서 모든 이들이 모여서 의사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도입된 것이 대의기관으로서의 국회다. 국회는 보통, 평등, 직접, 비밀 투표에 의해 선출되어 자신을 뽑아준 국민을 대표하여 각종 법령을 제정하고 국가의 대사를 결정한다. 원론적으로 그렇다.

현실은 그게 아니다. 대한민국 18대 국회는 299명 정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41명, 47%가 서울대 출신이다. 법조인 출신은 60명으로 20%. 반면 노동자 출신은 3명, 단 1%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은 국회의원 중 14%에 불과하며, 유권자의 41%를 차지하는 19~39살은 7명으로 2%인데 전체 인구의 17%인 50대는 142명으로 48%를 차지한다.

인류가 발명한 정치체제 가운데 그래도 가장 나은 게 이 꼴인 것을 어쩌란 말인가. 그러면 그 대안으로 국회의원을 추첨으로 뽑는다면? 책 <추첨 민주주의>는 이런 도발적인 제안을 내놓는다. 우선 역사적으로 뜬금없는 얘기가 아니다. 아테네의 정치도 기본이 추첨이었다. 민주주의의 원형으로 꼽는 까닭은 시민들이 민회에 모여 결정을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지금으로 보면 행정, 입법, 사법의 전 분야에서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추첨으로 공직을 충원했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도시공화국에서도 용례는 발견된다. 14세기 피렌체에서는 예비 선정위원회를 통과한 이들을 대상으로 비밀투표를 실시해 3분의 2 이상 득표한 사람들의 이름을 가죽가방에 넣은 뒤 무작위로 선택해 행정관을 뽑았다. 베네치아는 13세기 후반부터 추첨과 투표를 혼합해 최고 지도자인 도제를 뽑기 시작해 1798년 공화국이 붕괴할 때까지 이 제도를 유지했다. 이런 추첨 대표 방식은 현재 사법 배심제의 형태로 그 예가 남아 미국,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46개국에서 운영되고 있고 한국에서도 시범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책은 추첨제의 장점에 대해 파고들어 간다. 우선 추첨을 하면 국민 전체의 구성과 근접한 국회를 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처럼 선거비용을 댈 수 있는 부자, 학벌 좋은 전문직 엘리트, 텔레비전 카메라가 돌아갈 때만 입에 침을 튀기는 ‘미디어형 인물’이 아니라 일용직 노동자부터 전업주부까지 국회로 진출할 수 있다. 이러한 소시민들이 의회의 주인이 되면 의원은 특권이 아니라 봉사가 되며 의사당은 정쟁공간이 아니라 일하는 장소가 될 것이다.

또 추첨을 하면 부패가 줄어들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선거 시스템은 원천적으로 부패 가능성이 내재돼 있다. 입후보하려면 일정 금액을 기탁해야 하고, 선거자금이 없이는 운동원을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당선되면 그동안 들인 돈을 벌충하려는 유혹을 견디기 힘들고, 다음 선거에 또 나오려면 자금을 든든히 마련해 두어야 한다. 하지만 추첨제에서는 재선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설혹 된다 하더라도 돈과 무관하므로 부패와 무관하다. 설혹 부패한다 해도 현재의 의원들보다는 덜할 것이다. 이와 함께 거수기 역할도 사라진다. 뒷배 역할을 하는 이익단체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며 소속정당의 이데올로기를 단체로 대변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군대 내 투표부정을 폭로했던 이지문씨는 덧붙인 글에서 “추첨제는 하나의 수단일 뿐, 그것 자체로 완전무결한 것은 아니며 제도의 성패는 결국 사람의 몫”이라고 말했다. 그 점에서 이 책은 현재 대의제 민주주의가 능사는 아니며 보완할 여지가 많은 제도임을 환기하는 것으로도 읽힌다.(임종업 선임기자) 

경향신문(11. 07. 16) 풀뿌리 민주주의 만들고 있는 ‘시민 영웅들’

미국의 진보적 독립언론인 ‘데모크라시 나우!’의 창립자이자 진행자인 에이미 굿맨(54)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평범한 시민들”의 저항을 취재해 담아냈다. “용기와 신념을 갖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만들고 있는 평범한 영웅들이 “장기적이고 진정한 변화”를 일궈나가는 이야기라고 저자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2006년 8월 아랍 출신의 미국인 건축가 라에드 지라르는 케네디 공항에서 보안요원들에게 탑승을 제지당했다. 문제는 그의 티셔츠였다. 거기에는 영어와 아랍어로 ‘우리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보안요원들은 그 셔츠를 벗기고 ‘뉴욕!’이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혔다. 그들은 앞자리로 지정된 지라르의 탑승권을 찢었으며, 맨 뒤의 화장실 옆 좌석번호가 적힌 탑승권을 내밀었다. 지라르가 이 ‘황당한 굴욕’을 ‘데모크라시 나우!’에 출연해 공개하자, 그 고백은 “인종 프로파일링에 대한 시민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입었던 것과 똑같은 티셔츠가 수천장이나 만들어졌고, 많은 예술가와 학생들이 그 옷을 입은 채 공항으로 몰려가 항의했다. 결국 ‘문제의 티셔츠’는 비행기 탑승에 아무 지장이 없는 ‘평범한 티셔츠’로 복귀했다. 아울러 이 시위는 외모와 옷차림을 검열하는 미국식 애국주의와 인종주의에 경종을 울렸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뉴올리언스를 휩쓸었을 때의 일이다. 대통령 부시는 2주가 지나서야 폐허가 된 도시를 찾아와 “여러분이 마을과 생활을 재건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진풍경이 벌어졌다. 숨진 주민들의 주검을 수습하는 일을 군, 경찰, 지방정부가 수수방관했다. 시신들은 도로와 벌판에서 부패했다. 곧이어 재난 복구에 ‘민영화’가 도입됐다. 부시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내놨던 ‘캐니언 장례회사’가 시신 한 구당 1만2500달러를 받아가며 수습에 나섰다. 집 잃은 주민들 가운데 일부는 ‘카니발 크루즈 라인’이라는 회사의 선박에 수용됐다. 저자는 “공화당의 자금줄인 이 크루즈 회사는 휴가철 요금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을 챙길 수 있었다”고 꼬집는다.

결국 시민들이 나섰다. 뉴올리언스 9구역은 “가장 활기차게 재건이 진행”된 곳이다. 거기에는 주택을 복구하고, 이재민에게 의료와 법률 서비스, 기초적 생필품을 제공하려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임인 ‘커먼 그라운드’의 본부가 있다. 그들은 단돈 50달러와 3명의 봉사자로 출발한 지 며칠 만에 이슬람사원에 진료소를 열었고,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에게 4만달러를 지원받아 저소득층을 위한 생필품 보급소를 설치했다. 본부 앞 표지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자동차로 구경만 하고 지나가는 당신, 내 고통을 구경하려면 차를 세우고 값을 지불하라. 여기서 1600명이 숨졌다.” 



책에는 이 밖에 도서관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염탐하는 일을 거부하며 ‘애국법’에 항의한 코네티컷주 도서관의 사서들, 반전연극을 공연하려다 제지당한 고등학생들, 이라크전 파병을 공개 거부한 육군 장교 등이 등장한다. 모두 ‘데모크라시 나우!’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인물들이다. 1996년 태동한 이 인터넷 매체는 “깊이 있는 뉴스 전달과 진보적 관점의 시사 분석”을 모토로 삼는다. 광고나 기업의 후원이나 협찬을 받지 않고 공공재정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사이트 회원들과 시청자의 후원금, 방송중계업자들이 지불하는 저작권 사용료, DVD와 책, 머그잔 등을 판매한 수입으로 제작비를 충당한다. 민주주의를 빙자한 선정주의, 뻥튀기 제목을 동원한 ‘낚시질’은 보이지 않는다. “풀뿌리 시민영웅들”이 주요 등장인물이지만, 노엄 촘스키, 나오미 클라인, 슬라보예 지젝, 우고 차베스 같은 ‘유명 인물’도 종종 등장해 진행자 에이미 굿맨과 시사 문제를 주고받는다.(문학수 선임기자) 

11. 07. 16.   

P.S. 추첨민주주의에 대해서는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 정신의 기원>(이매진, 2006)도 참고할 수 있다. 대의제에 대한 대안으로 제비뽑기(추첨제)가 갖는 의의에 한 장이 할애돼 있다. 그밖에 민주주의 관련서로 최근에 나온 책으로는 고병권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그린비, 2011), 고성국의 <10대와 만나는 정치와 민주주의>(철수와영희, 201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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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엘리트주의 청산과 추첨민주주의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8-01 21:42 
    내일자 경향신문의 '문화와 세상' 꼭지를 옮겨놓는다.낮에 쓴 칼럼인데, 강준만의 <강남좌파>(인물과사상사, 2011)의 문제의식을 풀어놓고 싶었다. 같이 참고한 책은 어니스트 칼렌바크와 마이클 필립스가 쓴 <추첨민주주의>(이매진, 2011)다.경향신문(11. 08. 02) [문화와 세상]엘리트주의 청산한국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진단하고 비판함으로써 소위 ‘강준만 한국학’이란 걸 세워온 강준만 교수가 최근 <강남좌파&g

지난주 번역서 가운데 관심도서는 로널드 애런슨의 <사르트르와 카뮈>(연암서가, 2011),  <찰스 다윈 서간집 기원>(살림, 2011), 그리고 싯다르타 무케르지의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까치, 2011) 등이었다(부케티츠의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이가서, 2011)도 장바구니에 넣어둔 책이다). 다윈의 서간집은 2권 <진화>가 마저 출간돼야 한다는데, 작년에 나온 다윈 평전들에 이어서 본격적인 다윈 읽기를 자극한다. 아무래도 <사르트르와 카뮈>를 먼저 손에 들 듯하고, <암>은 장서용으로 꽂아둘 참이다.

 

국내서로 눈길을 돌리면 김용옥의 <중용 한글역주>(통나무, 2011), 박홍규의 <이반 일리히>(텍스트, 2011), 그리고 주강현의 <제주기행>(웅진지식하우스, 2011) 등이 손꼽을 만한 책이다. 모두 상당한 필력을 자랑하는 인문학자들의 신작이란 공통점이 있다.   

 

거기에 한 권 보태자면 원로 문화인류학자 한상복 교수의 <평창 두메산골 50년>(눈빛, 2011)이 있다. 2018년 동계올림픽 예정지이기도 한 평창 두메산골의 지난 50년을 글과 사진으로 복원한 책으로 '한국의 마을 총서'의 첫 권이다. 이제는 책으로만 만나볼 수 있는 삶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진다.    

 

한겨레(11. 07. 09) 올림픽 품기 전의 평창 ‘50년간의 인류학적 탐사기’

강원도 평창이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됐다. 대회 개막식과 폐회식, 그리고 스키점프와 봅슬레이, 크로스컨트리 경기가 평창군 대관령면 용산리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열릴 예정이다. 알파인 종목들도 같은 용산리에 있는 용평리조트에서 열린다. 



겨울올림픽이 펼쳐질 두 리조트가 자리잡은 평창군 대관령면 용산리의 50년 전 모습은 어떠했을까? 알펜시아 리조트는 1949년 12월1일 도암초등학교 용산분교로 시작해 2000년 폐교가 된 용산초등학교를 허물고 지었다. 1960년 학교 건물이 완성되기 전에는 귀틀집과 움막집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여기서 6㎞가량 떨어져 있던 용산2리와 14㎞ 떨어져 있던 봉산리 아이들은 학교가 너무 멀어 서당을 다녔다. 아이들은 댕기를 땋고 한복 차림이었다. 학생들은 천자문과 동몽선습을 1년 동안 배우고 중급 과정으로 명심보감, 통감, 소학을 6년 동안 배웠다. 1960년 당시 봉산리 주민의 98%가, 용산2리 주민의 77%가 초등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주민들마저 잊어버렸을 오지마을의 50년 전 모습을 한상복 서울대 명예교수(문화인류학)가 생생하게 복원했다. 한 교수가 최근 내놓은 <평창 두메산골 50년>은 당시나 지금이나 오지로 꼽히는 용산2리와 봉산리의 50년 전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정밀하게 대조한 다큐멘터리 같은 책이다. 연구 보고서지만 진귀한 사진과 사람 중심으로 풀어가는 이야기여서 흡입력이 대단하다.

지은이는 1959년 겨울 대학 2학년 복학생 시절 두 마을을 처음 찾아 첫 문화인류학 조사를 했다. 당시 이 두 마을을 선정한 것은 이곳이 오대산, 박지산(두타산), 계방산 등 1000m가 넘는 산으로 둘러싸인 오지였기 때문이다. 봉산리는 지금도 비포장도로로 20㎞를 달려야 닿을 수 있는 두메로 강원도가 선정한 대표적 오지 관광지의 하나다. 그는 이듬해인 1960년에는 40여일을 머물며 두 마을의 생활양식을 들여다봤고, 이후 몇 차례 다시 방문해 두 마을의 의식주, 가족의 구성, 신앙과 의례, 교육 등을 조사했다. 그리고 이 결과를 졸업 논문과 석사 논문으로 썼다.

스물다섯살 대학생에서 일흔다섯살 노학자가 된 한 교수는 학문 인생의 출발지였던 이곳으로 지난해 다시 들어갔다.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이 우리 이웃들의 생활사를 들여다보자는 의미로 기획한 ‘한국의 마을 총서’ 시리즈 작업에 참여하면서 두 마을을 여러 차례 찾아가 지금의 현실을 정리했다. 한국의 마을 총서 시리즈는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이 2002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과거와 자취를 말살하는 반달리즘에 맞서 이를 지키고 증언하겠다는 취지로 준비한 프로젝트로, 첫 권으로 나온 이 책 <평창 두메산골 50년>에 이어 앞으로 경상도의 농촌 마을, 전라도의 평야 마을, 청계천 판자촌 등을 다룬 책들이 계속 출간될 예정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마을 인구와 학교 학생 등의 통계를 비교하는 것은 물론 마을을 떠난 이들까지 찾아가 수십명을 인터뷰했다. 50년간 마을의 변화에 대한 정량적 접근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의 달라진 생활과 문화를 최대한 담았다. 지역 주민들의 편지와 시 등도 수록돼 산골 마을 주민들의 일상을 볼 수 있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특히 50년 전과 지금을 나란히 비교한 사진들이 압권이다. 50년 전 사진은 한 교수가 직접 찍었고 최근의 사진은 엄상빈 상명대 교수가 찍었다



용산2리와 봉산리, 두 마을은 50년 동안 어떻게 바뀌었을까. 두메산골에 올림픽 경기장이 들어서는 것처럼 두 지역은 상전벽해가 됐다. 역시 드라마틱한 것은 인구수다. 봉산리는 1960년 221명에서 2010년 29명으로, 용산2리는 427명에서 63명으로 줄었다. 50년 전 주민들은 감자와 옥수수를 생계형 농업으로 키웠고 부족한 식재료를 (산나물처럼) 산에서 구했다. 하지만 지금 주민들은 대부분 가구별로 몇만㎡ 규모의 농지에서 고랭지 채소를 재배한다. 그리고 도시 사람들처럼 시장에서 식재료를 사서 먹는다.

그러나 여전한 것들도 있다. 특히 전통문화는 그대로다. 공동체 신앙과 의례의 상징인 서낭당은 50년 동안 변하지 않았고, 지금도 두 마을에선 마을의 안녕을 비는 서낭제를 매년 치른다. 지은이는 책에서 “월정사를 통해 용산리로 들어갈 때 마치 어린 연어가 민물을 떠나 바다를 돌아보다 나이를 먹어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다”고 회고했다.(권은중 기자) 

11. 0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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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11-07-10 20:38   좋아요 0 | URL
김화영 교수가 번역한 카뮈 전집에는 아쉽게도 카뮈가 장송의 <반항적 인간> 서평에 분개하여 <현대>지에 투고한 편집장에게 보내는 글이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사르트르의 재반박문은 근래에 번역된 <시대의 초상>에서 읽을 수 있지만 정작 논쟁을 촉발한 장송의 글과 카뮈의 글은 방곤 교수가 번역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부록에서만 볼 수 있는 상황이지요. 이 번역은 좀 아쉬움이 있기에 김화영 교수의 번역으로 읽었으면 했는데 구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김화영 교수가 장송과 카뮈의 글을 번역해서 잡지에 실었다는 기록은 있는데 찾아보기도 쉽지 않구요. <사르트르와 카뮈>에 이 글들의 번역이 실렸는지 궁금하네요.

로쟈 2011-07-11 23:37   좋아요 0 | URL
김화영 교수 편 <사르트르>(고려대출판부)에 혹 번역돼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사르트르와 카뮈>에는 물론 개별 글들의 번역이 들어있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