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스바움을 기다리며

어제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 마사 누스바움의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궁리, 2011)이다. 저자가 2008년 방한한 적이 있고, 그때 한 차례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미국 인문학계를 대표할 만한 여성 학자인데(고전학을 전공했지만 현재는 시카고대학의 석좌교수로 철학과 법학, 윤리학까지 강의하고 있다) 국내에는 그간에 단독 저작이 소개되지 않았다(공저만 두 권 나와 있는 듯싶다). 사실은 더 무게 있는 책의 출간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인문학과 시민교육'이란 주제도 괜찮아 보인다. 우리의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아서이다. 다른 저작들도 소개되기를 기대한다.   

경향신문(11. 08. 06) 교육, 이익이 아닌 시민을 만들라

책의 원제는 ‘Not For Profit’이다. 그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 누스바움(64)이 강조하는 핵심은 “학교는 시장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세계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야말로 저자가 주목하는 교육의 목적이다. 그는 오늘날의 교육이 “다른 문화권에 대한 공감 능력을 감소시키며, 전 지구적인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해나갈 능력을 오히려 손상시킨다”고 진단하면서 “교육을 국민총생산의 도구로 환원하려는 노력에 저항할 것”을 주문한다. 교육의 목적을 ‘이익’이 아닌 ‘민주주의’로 환원하자는 얘기다.

이러한 주장에는 ‘위기’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저자가 보기에 “교육의 목적이 마치 경제성장인 양 행동하고 있는 사태”는 이제 세계적인 흐름이다. 저자는 주로 미국과 인도의 사례를 들고 있지만,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이로 인해 세계의 민주주의가 위험에 빠질 수 있으며, 시민정신의 기초가 흔들리고 말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책의 곳곳에 깔려 있다.

저자가 열정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인문학의 부활이다. 하지만 인문학의 발상지였던 유럽에서조차 상황은 비관적이다. “유럽의 인문학 학과들은 미국의 인문학 학과들이 그러하듯이… 이윤창출에의 기여도가 보다 뚜렷한 다른 학과들에 합병되기 십상이다. 합병되고 만 학과는 이윤창출에 가깝거나 그렇게 보이도록 자체 요소들을 강화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이를테면 철학과가 정치과학과에 합병되는 경우, 플라톤 연구나 비판적 사색의 기술, 삶의 의미에 대한 성찰 따위가 아니라 기업윤리 같은 것들을 강요받는다. 오늘날의 유행어는 바로 ‘효과’이며, 그것이 명확하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보다 경제적 효과다.”

그것은 “유능한 기술·비즈니스 엘리트들을 양산해 GNP를 상승시킬 수 있는 효과”를 가져올 수는 있지만, “불평등을 무시하는 경제발전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데 적합한 도덕적 둔감성”을 키운다. 아울러 “특정 집단에 대한 폭력적 적대 프로젝트”에 쉽게 빠져들게 한다. 예컨대 “기괴하고 거대한 ‘문명의 충돌’에 자신이 참여하는 사태를 기분좋게 여기게” 하며, “세계의 ‘다른 곳’에서 온 ‘나쁜 놈들’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게 한다.

저자는 잘못된 교육이 결국 “악독한 사유”를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인문학과 예술교육이야말로 무엇보다 시급한 명령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세계에서 불현듯 사라지고 말” 운명에 처한 인문학과 예술이야말로 “존경과 공감을 받을 만한 자신의 생각을 지닌 채, 타인을 전인적 인격체로 인식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을, 이성적이며 공감에 바탕한 논쟁을 위해 공포와 의심을 극복할 능력이 있는 나라들을 창조”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오늘날의 교육에서 중요한 교수법으로 거론하는 것은 ‘과거의 지혜들’이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이 보여주는 열정적 상호작용,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이 강조하는 주체적으로 삶을 해결하는 의지와 타인과의 동등한 삶의 가치, 페스탈로치가 실천했던 공감과 사랑의 교육, 독일 교육가 프뢰벨이 시도한 놀이를 통한 교육, 미국의 현대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존 듀이가 제창한 경험으로서의 교육 등에 주목한다. 인도의 타고르가 다양한 종교와 민족을 수용하는 교육을 실천하려고 참여형 학교를 설립했던 사실도 떠올린다. 이 모두가 오늘날 유용하다는 것이다. 법철학, 정치철학, 고전학, 연극학 등 다양한 학문을 섭렵한 인문주의자인 저자는 현재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다.(문학수 선임기자)  

11. 08. 07. 

  

P.S. 누스바움에 관해서는 예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마사 너스봄'이란 저자명으로 나온 편저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삼인, 2003)이 세계시민주의에 대한 그의 입장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와 같은 주제를 다룬 책으론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항의 인문학>(마티, 2008)도 꼽을 수 있겠다. 원제는 '인문주의와 민주적 비판'. 그리고 교육 문제를 다룬 책들에 대한 가이드로는 '앎과 삶' 시리즈로 나온 <교육>(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1)를 참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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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익을 위한 교육 VS 민주주의를 위한 교육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9-20 20:50 
    이번주 매경이코노미(1624호)에 실은 서평은 옮겨놓는다. 제안을 받고 인문서평을 격주로 게재하기로 했다. 첫 번째로 고른 책은 마사 누스바움의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궁리, 2011)이다.추석 연휴 첫날에 독서실에 가서읽은 책이다. 참고로 같이 읽은 건 곽준혁의 <경계와 편견을 넘어서>(한길사, 2010)에 수록된 인터뷰이다. 이 책에선 '마사 너스바움'이라고 표기돼 있다. 서평을 쓰고 나서 <인간성 함양(Cultivati

얼마전에 사두고 아직 손에 들지 못한 책은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이파르, 2011)이다. '위기의 지구화 시대 청(소)년이 사는 법'이 부제. 자칭 '잉여세대'의 하위문화를 다룬 논문들도 포함돼 있는데, 그중 '병맛 웹툰'을 분석한 '너희가 병맛을 아느냐?'는 제목만으로도 눈길을 끈다(하지만 나는 '병맛 웹툰'이란 말도 처음 들어봤다. 요즘 청(소)년 세대에 무관심한가 보다). 요지를 전해주는 기사가 뜨기에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11. 08. 05) '병맛’ 웹툰…‘잉여’ 세대의 발칙한 반전

경제적으로 ‘낀 세대’인 요즘 젊은 세대를 말하는 ‘88만원 세대’를 비롯해 갖가지 세대론이 나온다. 그러나 한 세대의 정체성과 특징을 규정하는 세대론의 고질적인 약점은 ‘대표성’이다. 과연 청년 세대의 정체성을 하나의 표현으로 묶을 수 있는 걸까? 또 그렇게 규정하는 가장 적절한 접근법은 무엇인가? 



문화연구자인 김수환 한국외대 노어과 교수는 최근 인터넷 만화인 ‘웹툰’으로 요즘 젊은 세대를 읽어내려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김 교수는 최근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이파르)이란 책에서 ‘너희가 병맛을 아느냐?-웰컴 투 더 <이말년 월드>’란 논문을 싣고 ‘병맛 웹툰’을 우리 청년 세대를 들여다보는 틀로 활용했다. 웹툰을 20대 문화의 경향성을 보여주는 문화현상을 넘어 20대가 고유하게 장악하고 있는 ‘매체’로 보고 이를 구체적으로 파고들어간 작업이다.

김 교수는 “21세기 한국의 청년층에게 웹은 단순한 ‘소통’의 공간이 아니라, 개인의 인격과 주체성이 만들어지고 성장하며 때론 상실되거나 소멸되기도 하는 공간”이라고 분석했다.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청년층의 정신적, 문화적 멘탈리티에 심원한 영향력을 미치는 실존적 토대라는 것이다. 특히 웹툰은 20대들과 함께 태어나고 성장하고 유통되는 장르라는 점에서, 매체로서의 속성을 지닌다고 봤다. 1990년대 청년 세대가 영화를 자기 세대 고유의 특징을 담은 매체로서 활용했던 것처럼, 오늘날 20대의 지배적인 매체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웹툰이란 해석이다.

김 교수는 웹툰 중에서도 젊은층들의 인기가 높은 이말년 작가의 <이말년 월드>가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병맛’이란 성격에 주목했다. 인터넷 신조어인 병맛은 ‘병신 같은 맛’의 준말로 흔히 어떤 대상이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한다. 이런 맥락에 따라 대충 그린 그림체, 말도 안 되는 전개 등이 병맛 웹툰의 특징이며, 폭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말년 월드>는 병맛 웹툰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승객 한 명이 아무 생각 없이 버스 요금통에 담배를 넣는 바람에 버스에 불이 붙자 갑자기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고 하고, 운전기사는 “그래야 내 손님이지” 맞장구를 치면서 버스를 몰고 ‘명박산성’으로 돌진하는 식이다.

이 ‘병맛’ 코드에 대해 많은 이들은 청년층의 ‘잉여’ 의식을 주목했다. 냉엄한 현실 속에서 스스로를 패배자, 곧 잉여적 존재로 인식하는 자기비하적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병맛=잉여=자기비하’라는 단순한 논리를 넘어 그 속에 담긴 ‘유희적 공통코드’를 짚어낸다. <이말년 월드> 속에는 일정 시간 이상을 웹에서 거주하는 사람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수없이 많은 ‘인터넷 서브컬처 코드’들에 대한 패러디들이 난무하고, 독자들은 이를 발견하고 해독한다. 곧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너도 알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잉여짓’을 작가인 너 또한 하고 있다는 모종의 공감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을 토대로 김 교수는 “잉여들의 ‘문화적 플랫폼’이 가시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고 본다. 그리고 그 공감대가 새로운 주체성을 일궈낼 일종의 ‘연대의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묻는다. 또한 병맛 웹툰이 보여주는 냉소적인 현실인식과 유희적 코드의 결합에서, 조르조 아감벤이 말한 ‘세속화’ 전략을 읽어낸다. 아감벤은 세속화라는 말을 통해 ‘무엇을 하겠다’가 아닌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수동적 저항 태도로 지배권력의 문법을 무화(無化)시키는 놀이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이말년 월드>가 이 단초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병맛 웹툰 말고도 다양한 장르의 웹툰들이 있기 때문에 이들을 단일하게 규정하는 것은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김 교수는 “아직 제도권에 편입되지 않은 20대의 ‘최전선’으로서 웹툰에 대해 더 많은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며 “기존 세대의 영향을 받지 않는 20대 스스로의 목소리도 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최원형기자) 

11. 08. 05.   

P.S. 논문의 필자인 김수환 교수는 러시아문학자로 유리 로트만의 문화기호학을 전공했다. 로트만적 관점에서 읽은 '병맛 웹툰'쯤 될까? 그의 대중문화 분석은 주로 러시아 상류사회의 문화를 분석한 로트만의 작업과 대비돼 더욱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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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11-08-05 12:32   좋아요 0 | URL
얼마전에 서울대 행정관 점거 농성 때도 정문에 '엉덩국 만화'의 유행어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가 있어서 웃겼어요.ㅋㅋㅋ 그런데 80년 대 운동권들은 '숭고'에 사로잡힌 반면 요즘은 스스로를 저질, 잉여로 자처하는 세대라서 그러한 의식의 차이가 나중엔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궁금하더군요.

로쟈 2011-08-05 22:59   좋아요 0 | URL
'나중'이라면 한 20년 후가 되나요?^^

미지 2011-08-05 23:24   좋아요 0 | URL
와~ 얼마 전 김수환 교수 논문 하나 읽고 감동해서 이분에 대해 계속 궁금했는데 반가운 포스팅입니다. 보통 학술지 논문은 출판용 도서에서의 문체와 괴리가 있는데 이분 논문은 짜임과 문체가 생생하고 아름답다고 느껴져서 정말 놀라웠거든요. 충격 받고 반성 좀 하다 보니 논문 쓰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만... 사이버공간은 청년뿐 아니라 일부 장년`노년층에게도 실존적 공간이 된 것 같습니다.^^
많이 더운데 건강하세요~!

로쟈 2011-08-05 23:37   좋아요 0 | URL
논문 독후감은 언제 연락이 닿으면 전하겠습니다.^^

2011-08-08 0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08 1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08 1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11-08-08 19:37   좋아요 0 | URL
네, 양해해주셔서 감사. 잘진행되시길 바래요.^^

미지 2011-08-10 00:02   좋아요 0 | URL
완전 감사드립니다~^^!!!
 

미키 맥기의 <자기계발의 덫>(모요사, 2011)과 함께 오늘 당일배송으로 받은 책은 수지 오바크의 <몸에 갇힌 사람들>(창비, 2011)이다. 받아 보니 생각보다 작고 가볍다. '8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올려놓기도 했으니 읽을 짬을 내봐야겠다. 뒷표지에 실린 추천사 가운데 나오미 울프의 말이 솔깃하다. "신체이미지와 미의 표상을 논하는 거의 모든 페미니스트들은 수지 오바크 덕분에 존재할 수 있었다." 

    

한겨레(11. 07. 30) 다이애나비 고쳤던 심리치료사의 ‘성형 반대론’

“우리는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즐거운 일이어야 합니다. 치명적인 일로 만들지 맙시다. 자신의 몸이 별로라는 생각에서 출발하지 맙시다. 그 대신 우리의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사랑스럽게 느끼도록 합시다.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다양성, 우리의 독특함입니다.” 



<몸에 갇힌 사람들>의 지은이 수지 오바크가 한국 독자들한테 하는 말이다. 비포, 애프터 두 가지 사진을 제시하며 성형, 지방흡입 등 ‘신체변형’을 부추기는 성형외과 의사들이 펄쩍 뛸 일이다. 지은이는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폭식증을 치료해 영국에서는 ‘프로이트 이래 가장 유명한 정신분석가’로 불리는 심리치료사다.

최근 거식증, 폭식증, 또는 정상적인 외모인데도 흉하거나 장애가 있다고 느끼는 신체이형장애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지은이는 이런 문제를 프로이트적 신체관념으로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프로이트는 성의 문제가 몸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보았지만, 이제는 몸 자체가 프로이트 시대의 성만큼이나 복잡한 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성인 환자의 신체경험에 그 부모의 괴로운 몸들이 담겨 있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며 불안의 체현이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되는 경향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이런 현상 가운데 스타를 동원한 성형 및 다이어트산업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그는 그런 산업을 “사람들의 신체불안에서 이익을 얻는 기업들”이라고 규정하고 그들의 그릇된 행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움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는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 “공중보건의 긴급상황”이라고까지 말한다.

이 장사꾼들이 제시하는 신체변형의 샘플은 의도적으로 조작된 이미지들. 전문가를 동원해 화장·조명·뽀샵으로 만들어진 스타들의 이미지는 60년 전만 해도 일주일에 한번 극장에 가서야 접할 수 있었는데 텔레비전, 인터넷이 집안을 점령한 요즘은 일주일에 2천~5천번쯤 본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전세계적으로 유포된 이미지는 패션처럼 유행을 불러일으켜 어느 도시를 가도 비슷한 모양의 사람들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미용성형 및 피부재생 분야 시장의 급속 성장은 세계적인 추세로 2007년 140억달러를 기록했으며 매년 10억달러씩 늘고 있다고 한다. 시술 건수는 2006년 2100만건을 넘겼다고 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건강보험이 미용성형을 보장할 정도.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성형수술을 고려하는 사람들의 3분의 1이 가계수입 연 3만달러 미만이라는 사실도 전한다. 이들이 성형을 하는 까닭은 좋은 직장을 얻거나 경제력이 향상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지은이는 한국의 소녀 50%가량이 쌍꺼풀 수술을 했다고 소개한다.

다이어트 산업도 폭발적인 성장세. 미국은 2006년 기준 1000억달러였는데 이는 같은 해 미국 교육부 예산 1270억달러에 버금간다. 지은이는 다이어트는 신체의 기본대사율을 유지하려는 자가규제 과정을 교란시켜 다이어트 시도자 96%가 요요현상을 일으킨다면서 다이어트 회사는 이런 실패율에 기생하는 산업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몸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몸은 우리가 달성해야 할 열망이 아니라 우리가 깃들어 사는 장소로 바꿔야 한다.” 책의 마무리도 간청이다.(임종업 선임기자)  

11. 07. 29. 

   

P.S. 페미니즘 이론의 시각에서 바라본 몸에 대해선 엘리자베스 그로츠나 주디스 버틀러의 책도 떠오른다. 아무래도 이론서들이다 보니 좀 난해하다. 전혜은의 <섹스화된 몸>(새물결, 2010)은 이 두 이론가에 대한 소개를 겸하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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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la 2011-07-31 10:10   좋아요 0 | URL
<섹스화된 몸> 반갑군요!
번역할 때 버틀러 등이 너무 어려워서 <섹스화된 몸>을 참고로 읽었는데, 무척 잘 썼더라고요.
크게 도움이 되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로쟈 2011-07-31 12:05   좋아요 0 | URL
고생 많으셨습니다.^^ <섹스화된 몸>은 저도 구입해놓아야겠군요. 그로츠나 버틀러나 좀 미뤄두고 있어서 바로 구입하진 않았거든요...
 

알라딘의 '새로나온 책'은 거의 매일 검색하는 편이지만 가끔씩 못 보던 책을 서점 신간코너나 언론리뷰에서 볼 때가 있다. 놀랍기도 하고 뭔가 속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번주에 나온 책 가운데 미키 맥기의 <자기계발의 덫>(모요사, 2011)이 그런 경우다(출판사도 처음 들어본다). 그래도 제목이나 주제가 모두 마음에 든다. 한국에서 붐을 일으켰던 자기계발서의 문제점에 대해선 서동진의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돌베개, 2009)에서 무게 있는 비판을 읽을 수 있었다. <자기계발의 덫>은 미국 '본토'의 사정은 어떤지 들려줄 듯하다. 자기계발서의 애독자라면 필독해볼 만하다... 

  

한국일보(11. 07. 30) 허구적인 자아를 제시하는 현대의 자기계발서들

잡지와 신문, TV 토크쇼와 서적을 통해 하루에도 몇 번씩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이가 “더 나은 나로 거듭나라”며 전하는 생활 수칙들을 접한다. 어느 틈에 자기계발 담론은 하나의 산업군으로 분류할 수 있을 만큼 급증했다. 



<자기계발의 덫>은 이처럼 널리 퍼진 자기계발의 메시지, 특히 관련 서적이 지닌 가치에 의문을 품는다. 사회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저자는 1970년대 이후 발행된 미국의 자기계발서를 토대로 자기계발 문화의 맹점을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1972년부터 2000년 사이 미국의 자기계발서 발행 부수는 두 배 이상 늘었고 전체 출판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높아졌다. 시장 자율과 경쟁을 기치로 내건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현대의 자기계발서는 허구적인 자아의 미래상만을 제시한다고 꼬집는다. 어느 누구도 혼자서 자아를 실현할 수는 없으며 진정한 자기 형성을 위해서는 타인의 노동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온전히 개인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자수성가가 가능하다면 실패 역시 오직 개인의 단점이나 약점에서 비롯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논리적인 허점도 함께 언급하고 있다.

오늘날의 자기계발 문화는 광고와도 닮아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자기 변화를 위한 가장 빠른 수단으로 몸치장에 열을 올리는 교본류의 처세서가 늘고 있다”며 “구강청결제나 비듬샴푸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생활의 기본 예의를 지킬 수 있던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이 같은 종류의 자기계발서는 독자들을 미, 건강, 부, 특정 분야의 기술적 지식 등 어떤 근본적인 요소가 결여된 존재로 정의하면서 해결사를 자처한다.

결국 저자는 오늘날의 자기계발 문화가 개인들이 자신의 상처와 불만을 구조적인 사회 문제의 일부로 이해할 가능성에서 비켜서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자기계발서의 성적 불평등 가능성도 덧붙인다. 전통적으로 여성은 배우자나 자녀의 자아실현을 돕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표현해 왔지만 자본주의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다른 사람의 성공에 기여하는 것만으로 가치를 인정 받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김소연기자)  

11. 07. 29.  

P.S. 서동진의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와 함께 떠오르는 건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부키, 2011)인데, 그는 <자기계발의 덫>에 대해 이렇게 평해놓았다. "과연 이 책이 당신을 부유하고 성공적이며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은 당신을 즐겁게 해주고, 대중문화와 경제적 힘을 훨씬 더 잘 이해하도록 만들어줄 것이다." 그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데뷔작이 <빈곤의 경제>(청림출판, 2002)이다. 저자명이 '바바라 에렌라이히'로 돼 있어서 같이 검색이 안 된다. 이런 건 맞춰주면 좋지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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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11-07-30 10:44 
    [책] 자기계발의 덫 — “널리 퍼진 자기계발의 메시지, 특히 관련 서적이 지닌 가치에 의문을 품는다. 사회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저자는 1970년대 이후 발행된 미국의 자기계발서를 토대로 자기계발 문화의 맹점을 지적한다.” (via 로쟈)
 
 
evol 2011-07-29 23:13   좋아요 0 | URL
추천사 명단에 바바라 에런라이크 말고도,
미디어사의 대가 스튜어트 유엔,
감정노동의 저자 알리 러셀 혹칠드 (혹실드?),
역시 저명한 미디어 정치경제학자인 토비 밀러까지.
화려하군요.

로쟈 2011-07-31 11:50   좋아요 0 | URL
성공적인 데뷔작인 듯해요...

펠릭스 2011-07-30 06:37   좋아요 0 | URL
신자유주의 경제체제하에서 끊임없이 자기계발하라는 압박, 준비라는 명분하에 현재를 만끽 못하는 불안의 연속, 모 광고에서 그러던데요. 많은 스팩을 쌓았는데 뽑아주시면 안될까요? 매일매일 성실하십시오!

로쟈 2011-07-31 11:51   좋아요 0 | URL
편리한 관리술이지요...

꼬마요정 2011-07-30 15:58   좋아요 0 | URL
제가 처음 접한 자기계발서는 한 때 엄청 유행했던 치즈 머시기 였어요. 그거 읽고 좀 아니다.. 싶었거든요. 쥐들이 치즈가 가득한 창고를 찾아서 치즈를 약탈(?)하는 걸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는지 적어놨더라구요. 차라리 치즈를 만드는 법을 배우지 말이죠.. 그 뒤로도 자기계발서 - 아침형 인간 이런 것들 - 좀 봤는데 읽다보니 그냥 경영학 원론 보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을 했죠. 인간을 기업의 부품 취급해서 불량속성을 제거하려는 시도로 보여 불쾌했어요..ㅠㅠ

로쟈 2011-07-31 11:52   좋아요 0 | URL
알아서 역량을 업그레이드하라는 주문이지요...

담연 2011-07-31 14:53   좋아요 0 | URL
자기계발을 사회와의 대립각 속에서 비판하였다는 느낌입니다. 쉽게 말해서 자기계발로 인해 사회에 대한 관심을 망각하게 된다는 것인데, 너무 범박한 문제 설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문제를 사회 구조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분명히 필요한 태도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반드시 바람직하기만 한 것일까요? 이 점에 대해서는 푸꼬가 <<주체의 해석학>>에서 보여주었던 '자기에의 배려'라는 개념을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사회의 틀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자기에게 고유한 삶의 형식을 어떻게 개발해야 하는지가 오늘날엔 더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최근에 제가 품고 있는 의문과 곁들여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로쟈 2011-07-31 23:34   좋아요 0 | URL
자기계발의 의지가 자유의 의지와 중복되기도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의문 같습니다. 서동진도 "결국 지난 20년간 한국 자본주의의 변화과정에서 형성된 권력의 주체화의 논리, 즉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형성은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기존의 규율사회를 비판하고 자유를 꿈꾸는 주체의 자기형성의 논리와 겹쳐져 있다. 그렇다면 이런 자기계발에의 의지와 자유에의 의지의 공모는 불가피한 것일까."(<자유의 의지 자유계발의 의지>, 376)란 고민을 적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경영'이나 '기업가적 자아'로의 주체화가 갖는 문제성을 식별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는지, 빠져나가는 게 가능한지는 별개로 묻더라도요...
 

중복이어서 어머니댁에 가 닭죽을 먹고 왔다. 덕분에 '나가수'도 끝까지 보고(집에서라면 아이와 채널경쟁을 해야 한다). 그렇게 돌아오긴 했어도 기력이 좋아진 것 같진 않다. 기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욕의 문제 같긴 하지만. 그런차에 지난 주중에 임시저장해놓은 페이퍼가 생각나 다시 불러왔다. 음식을 다룬 책에 손길이 가는 건 매우 드문 일이지만 <칼로리 플래닛>(월북, 2011)이란 책이 3년전에 나온 <헝그리 플래닛>(월북, 2008)과 짝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관심이 생겼다. 이를 테면, 나란히 보면 좋은 책이다. 그래서 서평기사도 나란히 불러모았다. 우리가 무얼 먹으며 살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보게 한다.    

국민일보(11. 07. 22) 불평등한 21세기 지구인 식탁, 그래도 한결같이 웃는다…왜냐고? 먹고 살 수 있으니까

기차역에 사는 방글라데시의 12세 가출 소년 알라민 하산. 첫 열차로 도착한 승객의 가방을 택시 정류장까지 나르고 동전 몇 개를 확보했다. 운이 좋았다. 오늘 아침은 굶지 않아도 좋았다. 그가 역 바닥에 하루치 식량을 늘어놓았다. 롤빵 한 개, 홍차 두 잔, 흰 쌀밥 위에 채소 카레를 끼얹은 덮밥 두 접시, 그리고 담배 다섯 개비. 거리의 진수성찬은 그가 하루 종일 동료 짐꾼들과 주먹다짐하며 생계를 꾸려갈 1400㎉의 에너지를 제공해줄 터였다.

음식을 먹는 건 에너지를 얻는 행위이다. 빵과 밥은 잘게 부서져 분자 상태로 혈액에 흡수된다. 그 빵과 밥을 위해 인간은 하루를 산다. 인간이 에너지를 몸속에 넣고 배설하는 반복적 활동으로 생존한다는 이 단순한 사실은 삶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않는다는 것, 하루에 얼마만큼의 식료품을 소비해야 한다거나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삶을 얼마나 단단히 옭죄고 있는가. 그래서 누군가의 식탁을 엿보는 건 놀라운 관찰 행위가 된다.

환경 및 과학 분야 사진 저널리스트 피터 멘젤과 그의 아내이자 TV 뉴스 프로듀서 출신의 저술가 페이스 달뤼시오가 함께 제작한 ‘칼로리 플래닛’은 개인의 하루 식단을 한 장의 사진에 담은 포토 논픽션이자 요리 다큐멘터리이다. 세계 30개국, 미국 12개 주를 돌며 80명의 사람을 만나 그가 먹어치우는 음식들을 요리된 상태 그대로 한 자리에 모아 주인공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어떤 잣대로도 평균이라고 말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극단적인 사례들을 모아놓고 보니 21세기 어느 날 지구인의 하루 식단표가 완성됐다.

사진과 함께 음식 목록, 주인공 일상도 소개됐다. 당연한 얘기다. 미국 전쟁(베트남에서는 베트남전을 이렇게 부른다) 상이군인의 식생활은 그가 참전군인이고 세발 모터 카트를 운행할 수 있는 특별면허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분리될 수 없다. 덕분에 쌀국수와 돼지고기 스튜, 청어튀김, 돼지 간 등 2100㎉의 음식을 풍족하게 먹는다. 묽은 곡식 죽과 찐 밀가루 만두, 쇠고기 육수로 하루 고작 900㎉를 섭취하는 보츠와나의 간병인. 그녀 식단에서 가장 중요한 건 HIV 항 레트로 바이러스 약이다. 알약 네 알이 없다면 그녀 아들은 고아가 될 것이다.

후대 역사학자는 현대 인류의 삶을 말할 때 ‘섭취 열량과 활동량의 극단적 불균형’을 지적할 게 틀림없다. 80명의 하루 식단을 살피다 보면, 투입과 배출 사이의 균형을 맞춘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하게 된다. 너무 많이 먹어 걱정인 대표주자를 꼽으라면 단연 미국인이다.

175.3㎝, 135.6㎏의 15세 미국 여고생 맥켄지 울프슨은 체중 감량 캠프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침 식사로는 사과 팬케이크 2장과 칠면조 소시지 2개, 무지방 우유, 오렌지 주스를 먹는다. 점심은 샌드위치 샐러리 당근 샐러드, 저녁으로는 닭고기 샐러드 파스타 과일펀치가 준비돼 있다. 여기에 간식으로 사과 초콜릿푸딩 프레첼까지 총 1700㎉가 허락된다. 평소 식사량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양이다.

조만간 비만 수술을 할 예정인 미국의 전직 스쿨버스 운전사 릭 범가드너도 곡물 베이글과 브로콜리, 아이스티로 구성된 1600㎉의 다이어트 하루 식단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예전이라면 한 끼로도 부족한 양. 그는 “과거에는 이걸 다 먹고 추가로 닭 3마리의 가슴살, 감자, 그레이비, 비스킷까지 먹었다”고 고백했다. 과식은 비만을 낳았고 비만은 릭에게서 직장을 앗아갔다. 쇼핑몰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20대 미국 여성 티파니 화이트헤드의 하루는 버거킹 치킨 프라이와 프렌치프라이, 닥터 페퍼로 시작한다.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그립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양상추가 가득 든 시저 랩 샌드위치와 과일 스무디를 먹으려면 한 끼에 8달러는 투자해야 한다.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버는 그녀에게는 벅찬 가격이다. 그래서 발길은 또 패스트푸드점으로 향한다.

모두가 많이 먹어 고통스러운 건 아니다. 케냐 마사이족 목축인 눌키사루니 타라콰이는 가뭄으로 가축을 대부분 잃어 하루에 두 끼밖에 먹지 못한다. 우갈리(옥수수가루 죽) 400g과 바나나 1개, 우유 59㎖와 설탕 2큰술을 넣은 홍차 2잔이 그녀가 하루 종일 먹는 음식이다. 총 800㎉. 그녀 반대편에는 병적인 간식 중독증 환자 질 맥티그가 있다. 영국 런던의 학교 도우미이자 세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하루에 4개의 샌드위치와 비스킷, 소시지, 초코바, 초콜릿 케이크, 초콜립 칩까지 무려 1만2300㎉를 집어 삼킨다. 두 사람 모두 그대로는 살아남지 못할 게 분명하다. 800㎉보다 많고 1만2300㎉보다 훨씬 적은 중간지대 어딘가에서 타협은 이뤄져야 했다.

사람은 제 입으로 들어갈 음식 앞에서 오래 가식적일 수 없는 법이다. 카메라 앞에서 사람들은 조금씩 수줍어하고 얼마쯤 자랑스러워했고 금세 긴장을 풀었다. 그렇게 70억 세계인의 삶을 한 권의 책에 통째로 복사해냈으니 저자들이 진정 영리하다 하겠다.(이영미 기자) 

 

경향신문(08. 02. 16) ‘우리가족 일주일치 식량입니다’

최근 ‘음식’이라는 창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들여다보는 책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마이클 폴란의 ‘잡식동물의 딜레마’(다른 세상)나 사샤 아이센버그의 ‘스시 이코노미’(해냄) 같은 책이다. 1년 전 이맘때쯤 나온 빌 버포드의 ‘앗 뜨거워’(해냄)도 빼놓을 수 없다. 건강이나 요리에 대한 관심이 점증하고 있는 세태를 반영한 것으로 보이지만, 음식이 오늘날 인간의 본질과 조건을 성찰할 수 있는 좋은 소재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삶을 유지하는 데 음식은 기본이다. ‘먹는다’는 행위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사회적 활동이다. 음식은 또 우리를 다른 동물들과 구분짓는 기준이다. 인간만이 굽고 삶고 볶고 튀긴다. 음식은 우리를 규정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당신이 먹는 음식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는 것이다.

 

이번주 나온 ‘헝그리 플래닛’(원제 Hungry Planet)도 그 같은 연장선상에서 읽어볼 만하다. 부제처럼 ‘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가’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라 할 만한데 참신하고 독창적인 기획이 돋보인다. 전 세계 24개국 30가족이 1주일 동안 먹는 모든 식품들과 그 가족 구성원들을 사진에 담았다. 여기에 1주일치 식품의 상세 목록과 총지출 비용 등이 제시되고, 이들 음식을 둘러싼 가족들의 일상이 펼쳐진다. 부부이면서 각각 저명한 사진기자, 작가인 두 저자는 아프리카 차드의 난민촌에서부터 남미 에콰도르의 안데스 산맥, 부탄 고원지대의 작은 마을, 그린란드 중동부 연안의 이누이트족 마을까지 전 세계를 누비면서 그곳 가족들의 ‘음식 이야기’를 모두 265장의 사진과 글로 풀어냈다.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각 장을 여는 30장의 ‘가족사진’. 1주일치 식품을 앞에 둔 가족들을 거의 똑같은 구도로 잡아낸 사진은 다른 문화와 풍습을 가진 이들의 식단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배급 받은 밀과 옥수수 포대, 생수 한 통, 염소고기와 생선 조각, 과일과 야채 몇 개를 늘어놓은 수단 난민 가족의 휑한 식단과 온갖 육류와 스낵, 음료수, 패스트푸드 등으로 산을 이룬 미국 중산층 가족의 식단 사진을 비교해 보라. 또 선진국으로 갈수록 고기와 가공된 포장식품을 많이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눈에 알게 된다. 코카콜라나 맥도날드 햄버거 등 이른바 ‘글로벌 브랜드 식품’을 발견할 수도 있다.

1주일치 식품의 상세 목록과 총지출 비용을 비교해보는 건 어떨까. 예컨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사는 흑인 중산층 5인 가족의 1주일치 식품 총지출 비용은 31만4180원인 데 비해 아프리카 말리의 13인 가족은 2만4230원이다. 책 말미에 제시된 나라별 개황도 흥미롭다. 미국의 비만 인구 비중이 남녀 각각 32%, 38%인 반면 말리는 0.4%, 3.4%다.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도 각각 124.7㎏과 19㎏. 말리의 가족에게 대표 요리를 부탁했더니 토마토와 고추, 쌀, 양파 등 모든 재료를 그냥 넣고 푹 끓인 쌀요리가 나온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알아보니 먹는 것에 대해 ‘좋아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

책에는 각 나라의 평범한 한 가족이 살아가는 삶의 풍경이 간결하게 그려졌지만 오늘날 세계의 식탁이 직면한 문제들이 날카롭게 포착돼 있다. 에콰도르 산간마을의 한 가족은 직접 기른 것들로 먹거리를 충당하면서 ‘포브레 페로 사나’(Pobre Pero Sana, 가난하지만 건강하다)의 삶을 영위한다. 반면 멕시코에선 코카콜라가 다른 마실 것들을 몰아내고 ‘가족 지정 음료’로 등극했다. 부탄의 한 가족은 아침과 저녁 식사가 똑같이 붉은 쌀밥, 고추, 시금치, 카레지만 미국의 한 가족은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면서 오히려 패스트푸드를 더 많이 먹게 되는 고민에 빠져 있다. 프랑스에선 대형 할인점이 들어서면서 프랑스의 상징인 전문 식품점들이 사라지고 있고, 폴란드에선 미국 스타일의 패스트푸드가 뿌리내리기 시작하면서 패스트푸드와 그 영향을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다이어트 열풍이 동시에 들어오는 기현상이 목도된다. 



저자들이 이 책을 쓴 이유는 음식과 관련해 ‘중대한 변화’를 겪고 있는 지구의 현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것은 영양 부족에서 비만으로의 변화다. 세계 각지의 식탁은 천차만별이지만 하나의 경향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이 더 많은 설탕과 정제 탄수화물과 지방을 섭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세계는 몇 억명이 영양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한편에선 몇 억명이 너무 많이 먹어 과체중과 비만에 시달리는 곳이다. 저자들은 ‘과잉’의 현대 사회에 필요한 소박한 지혜를 세계의 장수마을로 유명한 일본 오키나와의 옛말에서 찾는다. ‘하라 하치 부.’ 배가 80% 부를 때까지 먹으라는 것이다.

각양각색의 음식 문화를 담은 30개의 메뉴로 만들어진 ‘음식의 세계지도’라 할 만한 책이다. 세계 각지의 음식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풍습도 알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즐거운 경험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책 속의 사진들 속에 ‘우리 가족’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혹시 이번 주말 대형 마트에 가서 1주일치 먹거리를 구입할 생각이었다면 한번쯤 되묻게 될 것이다. ‘우리 가족은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가’라고.(김진우 기자)  

11. 0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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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TAS 2011-07-24 23:42   좋아요 0 | URL
오늘 구입했는데 아주 흥미로운 책입니다.^^

로쟈 2011-07-25 20:51   좋아요 0 | URL
네, 사진만으로도 성찬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