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에서 '강북의 고찰'이란 커버스토리 기사를 잠깐 보게 됐다. 그 중 인문학적으로 바라 본 강북지역과 그 문화를 짚어본 기사가 있기에 스크랩해놓는다(http://weekly.hankooki.com/lpage/coverstory/201001/wk20100119144259105430.htm). 윤지관 교수의 '강북지역의 상상과 인문학적 실천'이라는 한 심포지엄 발표논문을 주로 소개하고 있다.  

주간한국(10. 01. 22) 강북, 인문학적 사유가 필요해 

한강을 사이로 둔 강남과 강북. 집값만 놓고 봐도 두 지역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부인하기 어려운 건 경제적 격차뿐이 아니다. 한강은 남과 북의 문화적 경계를 점점 뚜렷하게 그려놓고 있다. 강남이 풍요롭고, 세련되고 현대적이라면, 강북은 상대적으로 근대적이며 촌스럽다. 그런 모습들이 강남과 강북의 문화에 어떻게 투영될까. 강북의 문화는 빈약한 것인가? 그건 정답이 아닌 것 같다. 강남이 소비 자본주의 문화라면, 강북에서는 아직도 유구한 역사와 탈근대의 모순에 대한 성찰과 문화적 힘과 상상, 그리고 도시적ㆍ문화적 획일화에 대한 대안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강북이라는 지역, 그리도 강북개발을 인문학적으로 사유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지난해 말 덕성여대 인문과학연구소가 '지역문화와 인문학-강북지역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그간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던 강북의 문화. 인문학적으로 바라 본 지역문화의 특성은 어떠한가? 또, 강북이라는 도시문화가 강남지향적으로 획일화되는 것을 막고, 대안적인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까?

경계성, 대도시에 대한 새로운 상상의 가능성

'촌스럽고, 근대적이고, 개발이 덜 돼 살기 불편하다….'

흔히 강북 하면 떠오르는 말들로, 자본논리에 입각해 강남에 대한 대타 개념으로 강북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인문학이라는 학문적 고찰을 통해 본 강북의 문화는 어떤 양상일까?

지난해 말, 지역문화 심포지엄에서 '강북지역의 상상과 인문학적 실천'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던 덕성여대 윤지관 영문학과 교수는 우선, 강북이 갖는 '경계지대'로서의 특성에 주목한다. 그는 경계지대로서의 강북은 한강 이북의 서울 전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강북구와 노원구, 도봉구 등 강북 3구에 한정된다고 봤다. 따지고 보면, 강남에도 중심지역과 주변지역이 있듯이 강북도 중심과 주변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강남구와 서초구, 송파구 등 강남의 중심지역인 '강남3구'의 대척점에 있는 것은 강북의 주변지역인 '강북3구'다.

윤 교수가 말하는 '경계지대로서의 강북'은 첫째, 지리적 차원에서의 경계성이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주변지역이면서 의정부 등지의 남한 최북단 지역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분단이라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레드 콤플렉스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현실에서 이러한 지리적 위상이 가지는 의미는 이 지역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둘째는 경제적 차원의 경계성이다. 이곳은 대도시 내에서 상대적으로 저개발된 곳으로, 구로나 영등포지역과 같은 공업지대도 아니고, 활발한 소비가 일어나는 소비지대도 아니다. 즉, 대도시의 영역에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농촌적인 혹은 도시주변마을적인 요소들이 혼재하는 접이지대의 특성이 있다. 그러나 상대적인 저개발은 획일화, 개인주의, 소외 등 개발위주가 안고 있는 대도시의 문제들을 상대적으로 덜 야기하고, 농촌의 공동체적인 요소들을 보존할 수 있는 환경을 낳기도 했다.

세 번째로 환경적 경계성을 들었다. 이 지역은 대도시에서는 드물게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 가운데 대부분의 큰 산들이 이 지역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이 지역을 특별하게 만드는 특성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서울의 팽창이 본격화된 60년대 초 이전까지 이 지역은 지방 혹은 농촌적 속성을 가지고 있던 지역이었다. 삼각산도당제처럼 이 지역의 전통의례들이나 제식들은 아직까지도 전승돼 오고 있다. 대도시 지역이면서 향토성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며, 특히 도봉서원과 그 주변의 마을처럼 진보적인 성리학의 터전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윤 교수는 "이 지역이 갖는 경계지대로서의 속성은 대도시에 대한 상상을 새롭게 펼쳐낼 토대가 된다"고 주장했다. 가령, 마을과 도시적 요소의 공존은 대도시에서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시험할 수 있는 자원이 된다. 그런가 하면, 자연이 인공적인 것과 조화를 이룬 점은 대도시가 환경친화적인 성격을 간직한 채 발전을 지향하는 데 있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근대성의 문제

윤 교수는 또한, 강북문화가 가진 근대성에 주목한다. 강남문화가 완전한 현대라면, 강북은 근대성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근대성에 대한 성찰이란 근대와 전통 사이의 갈등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근대와 전통의 사이, 그리고 이와 동시에 근대의 성취와 탈근대의 지향 사이의 대립도 이 지대에서 일어나는 문화적 사건의 일부다. 급격한 근대화에 따른 도시팽창의 과정에서 이 지역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근대형성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존의 역사는 문학작품 속에서도 만날 수 있다. 



윤 교수는 강북지역을 배경으로 한 <녹천에는 똥이 많다>(이창동·1992년)와 <장석조네 사람들>(김소진·1995년)을 예로 든다.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소설가 이창동에게 한국일보 문학상을 안긴 역작으로, 근대화의 과정에서 한 시민이 겪는 정신적 갈등을 보여준다. 작품에서 주인공은 자수성가해 상계동에 소형 아파트를 마련하고, 행복한 소시민으로 정착해가고자 한다. 그러나 이 시기, 대학졸업 후 노동운동으로 쫓기는 이복동생을 숨겨 주었다가 위기를 맞는다. 소설의 배경을 이루는 녹천역 주변은 한편에는 입주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아파트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악취가 풍기고 열악하지만, 한 푼 없이 상경해 직장을 얻고 가정을 꾸리고 사는 주인공에게는 소중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었다.

윤 교수는 "그러나 주인공이 천신만고 끝에 이룩한 가정의 행복이 알량한 자기만족과 허위에 지어진 초라한 모조품에 불과한 것으로 깨어지고 있는 것을 작품은 목격한다"고 말했다. 노동운동으로 쫓기는 이복동생을 숨겨줬다가 위기를 맞게 된 주인공은 결국 동생을 고발하고 거대한 오욕의 세상에서 살아남기로 다짐한다. 이 작품이 시대적인 전형성을 가지는 이유는 80년대라는 시대 상황에서 소시민이 되어가던 서민들의 삶의 양상의 외적 조건과 내적인 갈등을 면밀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장석조네 사람들>은 70년대에서 8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의 미아리 산동네를 배경으로 기층민중의 삶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김소진이 불러낸 70년대의 미아리는 인구의 도시유입으로 서울이 팽창을 거듭하던 시기다. 이 시기에 각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인간군상이 서로 갈등하고 미워하고, 화해하고 도우면서 삶의 공간을 창출해가던 도시변두리의 모습이 작품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산동네라고 불리는 지역 민중의 삶이 산업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통과 비극에 활력과 인간적인 훈기를 불어넣었다.

윤 교수는 이 같은 근대성의 모순들에 대한 성찰을 예술의 원동력으로 보았다. "강북문화에 내장된 성찰이야말로 이 지역이 가진 문화적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강남의 문화를 부러워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소비문화일 뿐입니다. 유행의 첨단이며, 자본의 논리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지요. 강북의 문화가 빈부격차와 도시문제 등 근대성의 모순들에 성찰을 담고 있는 반면, 강남은 성찰이 없어요. 자본화, 세계화, 현대화에 전적으로 승복하는 게 강남인데, 그것은 문학 등 창조적인 예술의 원천이 될 수 없겠지요."

그는 강북의 문화는 전통이 있고, 질적인 면에서의 깊이가 있다고 강조한다. 인문학의 관점에서 바라 보면, 꼬불꼬불하고 좁은 골목길이나 현대화 되지 않은 가옥, 빈약한 학원시설, 촌스러운 스타일 등 강북적인 삶의 양식에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전세화 기자) 

10. 01. 25. 

 

P.S. 도시인문학에 대해선 작년에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에서 펴낸 책들이 있다. 짐작엔 시리즈로 계속 출간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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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2010-01-25 15:45   좋아요 0 | URL
마포에서 얼마간 일을 할 때..광흥창역 근방..
같이 전철을 타고 다녔던 한 사람(강남에서만 살았다고 했던)이 그러더군요.
처음 출근하면서 서울에 이런 동네가 있는가 싶어 깜짝 놀랐다고...
저는 그 사람 말에 깜짝 놀랐었죠.
그냥 학교에 일반주택에 아파트에 시장에 다 섞여있는 평범한 동네인데(살만한 동네같던데)
달동네 처음 보는 부잣집 공주 같은 시선이라서요.

로쟈 2010-01-26 08:58   좋아요 0 | URL
네, 변두리엔 아직 70년대 풍경도 남아 있더군요. 나머진 아파트가 다 집어삼키고...

펠릭스 2010-01-25 19:09   좋아요 0 | URL
인류의 최초의 공간은 동굴같습니다. 동굴밖으로 여행은 계속되고, 결국 문명의 도시를 만들었죠. '도시 공간에 대한 사유'는 곧 도시속 사물간의 연계(역사)성을 이해하고 상상하기에 좋습니다. 도시 공간의 분할과 결합 그리고 확장속에 인간의 서사가 있죠. 대도시 사람들은 도시의 공간을 미워(?)합니다. 하지만 도시 공간에서의 추억(조용필, 서울 서울 서울)을 잊지 못합니다. 도시속에는 강남/강북, 진보/보수, 우성/열성/, 승자/패자, 파괴/건설이 혼재합니다. <사라진 서울/강명관/푸른역사>과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황두진/해냄>처럼 어둔한 역사 흔적과 개인의 소박한 삶을 품고 있으며, <말테의 수기/라이너 마리아 릴케/민음사>처럼 도시의 빈곤과 타락과 절망적인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숨기고 있습니다.

로쟈 2010-01-26 08:56   좋아요 0 | URL
네, 서울에 대한 책이 최근에도 나왔죠...
 
진화심리학과 절망의 진화
다윈의 렌즈와 인간 본성

지난 목요일 저녁에 <오래된 연장통>(사이언스북스, 2010) 출간기념 행사에 참석한 바 있는데, 프레시안에 취재기사가 올라왔기에 옮겨놓는다(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22190055&Section=04). 내 역할은 저자의 전중환 교수에게 저서와 진화심리학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주최측에선 처음에 '인문학자'의 반론을 기대했지만, 나는 시종 우호적인 입장에서 질문을 했고 몇가지 사안에 대해서만 아직 진화심리학의 성과가 미흡한 듯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진화심리학과의 개인적인 인연은 '진화심리학과 절망의 진화'란 페이퍼에 적어놓은 적이 있다). 소위 '다윈주의 좌파'의 가능성에 대한 의견도 문의했지만 저자는 진화심리학자는 현상을 설명할 뿐이라는 '과학자'의 입장을 견지했다.     

프레시안(10. 01. 23) "내 안에 석기 시대의 마음이 들어 있다" 

"먼 훗날 나는 훨씬 더 중요한 연구 분야가 열리리라 본다. 심리학은 새로운 토대 위에 서게 될 것이다."

150년 전 다윈이 <종의 기원>의 말미에서 이렇게 예언했을 때, 그 얘기를 귀담아 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일군의 학자는 이런 다윈의 전망을 현실로 만들었다. 1980년대 중반 이들은 진화의 산물인 '인간 본성'을 규명하려는 자신의 연구에 이름을 붙였다. 바로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가지고 있을 마음의 틀에 관심을 갖는다. 그 마음의 틀은 수백만 년 동안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 초원에서 수렵·채집 생활을 하면서 맞닥뜨린 온갖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전중환 경희대 교수는 최근 펴낸 <오래된 연장통>(사이언스북스 펴냄)에서 이 마음의 틀을 '오래된 연장통'에 비유한다.

"인간의 마음은 톱이나 드릴, 망치, 니퍼 같은 공구들이 담긴 오래된 연장통이다. (…) 우리의 마음은 어떤 배우자를 고를 것인가, 비바람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포식동물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등 수백만 년 전 인류의 진화적 조상들에게 주어졌던 다수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설계되었다."

진화심리학은 이 오래된 연장통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한국에서 맨 처음 진화심리학 박사 학위('가족 내의 갈등과 협동에 관한 진화심리학적 연구')를 받은 전중환 교수는 <오래된 연장통>에서 그것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진화심리학의 유혹에 빠지다
지난 21일 마련된 전중환 교수와 책벌레들이 만난 자리('과학, 블로거를 만나다')에서도 진화심리학은 빛났다. 책벌레들을 대표해서 전 교수와 대담에 나선 이현우 박사도 진화심리학에 끌리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는 이 박사는 '로쟈'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서평가이다. 그의 얘기부터 들어보자.  

"(진화심리학에 대한 인문학자의 딴죽 걸기를 기대했을) 주최 측의 생각과는 달리, 나는 진화심리학에 대단히 우호적이다. 국내에 이미 소개된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Moral Animal)>,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The evolution of Desire)>와 같은 책도 흥미롭게 읽었다. 진화심리학의 최신 연구 성과가 담긴 <오래된 연장통>도 열심히 읽었다.

이런 진화심리학의 연구 성과가 더 많이 소개되고, 여러 사람이 이것을 공유해야 한다. 인문학자들은 흔히 인간에게 기대를 갖고 있기가 쉬운데, 진화심리학은 이런 거품을 빼는데 기여해 결과적으로 인문학의 진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진화심리학을 고등학교 교육 과정에 집어넣어야 한다."

이현우 박사의 이런 솔직한 고백은 진화심리학의 위상 변화를 잘 보여준다. 1970년대 그 전신인 사회생물학은 인문과학, 자연과학을 막론하고 대다수 지식인에게 극우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는 사이비 과학으로 받아들여졌었다. 여전히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이들이 상당수가 있지만, 이 박사의 얘기에서 엿볼 수 있듯이 분위기가 바뀌었다. 



인간의 발정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진화심리학을 둘러싼 환경이 변한 데는 그것이 지난 30년간 쌓은 놀라운 연구 성과 덕분이다. 전중환 교수는 <오래된 연장통>에서 이런 연구 성과를 가장 최신의 것까지 요령 있게 소개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믿음직한 진화심리학 길잡이의 출현이 반가울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대다수 포유류 암컷은 배란 직전에 발정기에 도입하며, 이 기간 동안 여러 수컷과 성관계를 맺는다. 인간은 이런 발정기가 없다. 남성은 물론이고 여성도 (신경을 쓰지 않는 한) 배란 여부를 확인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의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인간의 발정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전중환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우리 조상들이 진화한 원시 환경에서 모든 여성이 자식에게 우수한 유전적 형질을 전달해 주는 섹시한 남편들을 얻은 건 아니다. 이런 여성은 가임기에 섹시한 외간 남자와의 혼외정사를 추구하게끔 진화했을 것이다. 이 이론은 다음과 같은 예측을 한다. 가임기의 여성은 좋은 유전자를 지닌 남성을 남편감이 아닌 성관계 상대로 선호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예측은 사실로 확인이 되었다. 코와 턱이 발달한 남성적인 얼굴, 어깨가 넓고 근육이 탄탄한 남성적인 신체, 분위기 있는 저음의 남성적인 목소리, 남자답게 크고 훤칠한 키에 대한 여성들의 선호는 가임기가 되면서 뚜렷한 상승 곡선을 그렸다. (…) 가임기 여성은 비가임기 여성보다 거칠고 남성적인 사내의 체취를 보통 사내의 체취보다 더 선호했다."

이처럼 진화심리학은 마음의 틀이 어떻게 빚어졌는지 설명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인간의 비밀을 발견하면서 영향을 확대해 왔다. 전중환 교수는 <오래된 연장통>에서 진화심리학이 철학, 예술, 종교, 미학, 경제 등을 바라보는 시각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알려준다. 



마음의 '오작동'에 주목하라!
전중환 교수가 <오래된 연장통>에서 반복해서 지적하고 있듯이 인간의 마음은 수백만 년 전 아프리카 초원의 수렵·채집 생활에서 겪어야 했던 문제를 잘 풀게끔 진화했다. 불과 1만 년 정도밖에 안 되는 농경 생활이나, 길어야 200년 짧으면 수십 년에 불과한 도시 생활이 마음의 진화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은 적다.

"우리 안에는 석기 시대의 마음이 들어 있다."

이러다 보니, 인간의 마음은 현대의 일상생활 속에서 갖가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예를 들어 보자. 먹을거리가 부족한 수백만 년 전 아프리카 초원에서 인류의 조상은 열량이 높은 음식을 달게 느끼게끔 마음이 진화해 더 많은 에너지원을 섭취했다. 그러나 이런 본성은 단 것이 지천에 있는 현대에서 각종 성인병을 일으키는 원흉으로 작용한다.

포르노에 흥분하는 남성도 마찬가지 예다. 전중환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인류가 진화한 환경에서 포르노는 없었다. 남성이 포르노에 등장하는 여성의 모습을 감상할 때, 남성의 두뇌는 그 모습이 실제 여성이 아니라 점과 선이 조합된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포르노 속 여성과 성관계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남성의 두뇌는 포르노를 보면서 아무런 실익도 없이 심장 박동 수를 높이며 발기를 시킨다."

이현우 박사는 "연예인에게 열광하는 대중문화도 이런 진화심리학의 시각으로 볼 수 있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TV 속의 선남선녀 연예인에게 열광을 한다 한들, 실제 현실에서 얻는 이익은 없다. 우리의 마음이 수백 만 년 전 아프리카 사바나에서는 그런 선남선녀를 배우자로 선호하도록 빚어진 데서 비롯된 현상이라는 것이다. 



좌파든 우파든 진화심리학을 접수하라!
전중환 교수의 주장대로, 진화심리학이 오래된 연장통의 비밀을 하나씩 해명해 인간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걸 인정하자. 그렇다면, 그것은 인간의 미래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이현우 박사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물었다. "진화심리학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전 교수의 답을 들어보자.

"많은 진화심리학자는 오래된 연장통의 비밀을 해명하는 데서 멈춘다. 그렇게 발견된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해석해 처방할지를 놓고는 대부분의 진화심리학자가 침묵한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듯이, 진화심리학자의 주장은 인류가 진화한 환경에서 빚어진 인간의 마음을 그대로 따르자,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자연주의 오류).

그러나 인간의 마음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면 온갖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유용한 참고 사항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정치적으로 우파든 좌파든 진화심리학을 통해서 얻은 인간에 대한 통찰은 세상을 이해하는 시각을 더욱더 깊게 해줄 것이다.

나는 국문과, 영문과, 불문과 학생들에게 진화심리학 강의를 들으라고 권유한다. 인문과학, 사회과학, 그리고 우리 삶을 둘러싼 모든 지식 분과들은 진화심리학을 토대 삼아 한 단계 더 도약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마음에 대한 진화적 접근을 불편하게 받아들이며 무시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지만, 다윈 혁명은 어쨌든 진행 중이다."

다윈 혁명은 진행 중이다!
이런 전중환 교수의 선언이 현실이 될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진화심리학의 있는 그대로의 면모를 제대로 전달할 전문가를 한국 사회가 얻은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다. 장담하건대, 진화심리학을 둘러싼 지적 논쟁은 앞으로 전 교수의 존재로 더욱더 풍성해 질 것이다.

전중환 교수는 농담처럼 "대중을 위한 진화심리학 책은 <오래된 연장통>이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이 책에 실린 수많은 진화심리학 연구에 필적할 만한 성과를 내겠다는 한국의 첫 진화심리학자의 야망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연구에만 몰두하겠다는 그의 바람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자신의 연구 성과를 대중과 잘 소통할 수 있는 과학자가 드문 한국 현실에서, 대중이 이런 감각과 솜씨를 가진 전중환 교수를 그대로 둘 리가 없다. 또 한국 사회의 지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도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 그가 앞으로 오래된 연장통의 어떤 비밀을 파헤쳐 우리를 놀라게 할지 기대된다.(강양구기자) 

10. 0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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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3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3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펠릭스 2010-01-23 18:13   좋아요 0 | URL
생명체의 속성은 생명체가 영속되기를 바라는 것이며, 이 바램은 우성(극우 이데올로기로 이용됨)과 열성에 의해 진행됩니다. 생명체(조직,개체)의 극소단위가 유전자(DNA)라 한다면 진화심리학이 생명체의 외형적인 행동습성(반응) 등을 가지고 유전적인 속성(우리 안에는 석기 시대의 마음이 들어 있다)을 증명하기보다는 좀 더 미시적인 유전자의 특성이나 역활 등을 증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화심리학이 진화생물학 등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최근에 유전학에서 어떤 이론적인 근거가 되고 있는지를 살펴 봄도 좋을 듯해요.

로쟈 2010-01-24 21:17   좋아요 0 | URL
진화심리학이나 진화생물학이나 요즘은 유전학과도 요즘은 연계돼 있는 듯싶은데요. 서로 대립되지 않는 걸로 압니다(초기엔 물론 왓슨과 에드워드 윌슨 같은 이들이 서로 대립했다고 얼핏 읽은 듯하지만요)...
 

시사IN에 '로쟈'와 관련한 기사가 올라왔기에 스크랩해놓는다. 도서출판 텍스트에서 펴내는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소개기사인데, 나도 필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미 마감을 여러 차례 넘겨서 자주 독촉받고 있는 처지이긴 하지만, 애쓰고 있는 편집팀의 환한 미소를 보니 그래도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그나저나 원고는 언제 다 넘기나...  

시사IN(10. 01. 06) “젊은이여, 자서전 써라”  

텍스트 출판사가 펴내는 시리즈물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는 ‘20·30대 젊은이들이 쓰는 자서전’을 표방한다. 극소수 스타 필진을 제외하고는 이름조차 낯선 저자들이 채 절반도 지나지 않았을 인생을 소재로 ‘자서전’을 쓴다. 왜?

이 시리즈를 기획한 박선화 편집장은 “소위 ‘88만원 세대론’이 나온 이후 젊은 세대에 대한 비판은 많아졌는데 정작 20·30대 본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는 게 기획 의도다”라고 말했다. 블로그를 뒤지고, 홍대 인디신과 영화계와 시민단체를 훑고, 언론의 독자투고란까지 꼼꼼히 살피며 필자를 발굴한다.

박 편집장은 너무 쉽게 모든 것을 ‘세대론’으로 치환하는 풍토가 마땅찮다. 그 자신 386 세대이지만, 추상적 담론을 먼저 꺼내들고 그걸 기준으로 20·30대 젊은이의 구체적 현실을 끼워 맞추는 태도야말로 전형적인 ‘386스러움’이라는 것. 만인보 시리즈는 말하자면 ‘구체에서 추상으로’ 순서를 뒤집어보자는 접근법이다.

“정말로 젊은이 1만명의 자서전을 만들어 한데 모아보면, 그때는 정말 이 세대를 두고 뭔가 제대로 된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박 편집장의 ‘야심찬’ 목표다. 자서전 하면 흔히 떠오르는 대필 작가는 전혀 쓰지 않는다. 저자로 선정된 이들은 원고지 700장 정도의 분량을 손수 채운다. 한눈에 봐도 돈 될 기획은 아니지만, 얼마 전 뚝심 있게 열 권을 채웠다. 내년에도 젊은 인문학자 로쟈, 만화가 기선 등 20여 명의 ‘젊은 자서전’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천관율기자)   

10. 01. 11. 

 

P.S. 작년말에 나온 '만인보' 3차분 세 권이다. 나는 4차분에 맞추기로 했는데, 계획대로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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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10-01-12 00:24   좋아요 0 | URL
출판기획이라는게 새로운 유형의 통계 모델을 만드는 수학자같군요. 기다려집니다.

로쟈 2010-01-12 09:10   좋아요 0 | URL
기획이란 게 없는 걸 만들어내는 거죠. 수학적 계산도 필요하지만 예술적 영감도 필요해보입니다. 거기에 사회학적 상상력과 인문적 교양도 덧붙이고요..

L.SHIN 2010-01-12 09:04   좋아요 0 | URL
헤, 괜찮은 생각이군요.
수백년 뒤의 후손들이 이 시대를 쳐다보는데 도움이 되겠군요.
'20-21세기의 시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의 삶과 생각들은 이러했다'
본인이 직접 쓰는 것이라 약간 주관적인 시각이 들어가긴 해도.

로쟈 2010-01-12 09:08   좋아요 0 | URL
한번 동참해보시는 것도.^^

L.SHIN 2010-01-13 16:55   좋아요 0 | URL
안됩니다. 그건, '지구인 젊은이들의 자서전'이잖아요.(웃음)

지나갈께요 2010-01-12 13:45   좋아요 0 | URL
이 책 잼있죠. 만권까지 채워졌으면 좋겠네요. 그 안에 참여할 수 있다면 더 좋겠구요(첫 댓글이네요 ㅋㅋ)

로쟈 2010-01-13 23:12   좋아요 0 | URL
만권은 '정서적' 목표치이지만, 수백 권은 채워지면 좋겠습니다.^^

다크아이즈 2010-01-12 15:53   좋아요 0 | URL
참신한 기획인데, 로쟈님도 그 주자라니 급 관심 모드. 700매라면 경장편 분량인데, 한 두달 이상 걸릴 것 같네요. 로쟈님이라면 더 빠를 수도... 달려가는 로쟈님, 파이팅!

로쟈 2010-01-13 23:12   좋아요 0 | URL
제가 걸음이 좀 느려서요.^^;

정서방 2010-01-13 13:17   좋아요 0 | URL
흠.. 근데. 로쟈님.. 2, 30대에 해당되기는 하신거죠?. ^^;; 살짝 태클

로쟈 2010-01-13 23:13   좋아요 0 | URL
계약은 30대에 했습니다.^^;

델러웨이부인 2010-03-02 23:15   좋아요 0 | URL
와 멋집니다!!! 저도 30대가 가기전에 삶을 정리해보고 싶었어요~ 좋은 기획이네요.
 

이번주 교수신문에서 서평위원 칼럼을 옮겨놓는다. 칼럼을 읽고서, 니체의 초인을 '나눔에의 의지를 가진 자',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는 자'로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빈번한 오해의 대상이 된 '힘에의 의지'보다 '나눔에의 의지'는 훨씬 더 명쾌하며 의미심장하지 않은지?.. 

 

교수신문(09. 11. 16) ‘자발적 가난’의 지혜

자신의 주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Also sprach Zarathustra)』에서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가 말했던 적이 있다. 우리는 낙타에서 사자로 변해야만 한다고 말이다. 낙타는 수동적인 인간, 따라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을 상징한다. 기존의 공동체가 부여한 규범이나 가치를 하나의 숙명이나 본성인 것처럼 등에 지고 살아갈 때, 우리는 낙타에 다름 아닐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는 사자가 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누가 감히 사자 등에 올라탈 수 있겠는가. 사자의 등에 타려면 우리는 사자를 죽여야만 할 것이다. 오직 그럴 때에만 사자의 시신 위에 우리는 걸터앉을 수 있다. 그래서 사자는 부정의 전사이자 동시에 자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니체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사자는 최종적으로 어린아이로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어린아이는 삶을 긍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위베먼쉬(ubermensch), 즉 초인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자가 되기 위해서 아직도 우리의 등에는 많은 짐들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얹혀 있다. 너무나 오랫동안 짐들을 지다보니, 이제 우리는 그것이 짐인지 아니면 나의 몸의 일부인지 헛갈릴 정도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짐들로는 니체는 국가, 종교, 자본을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그렇다면 사자의 정신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삶의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인가. 국가의 부당한 권력에 대해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는 용기’가, 내세를 약속하는 종교의 유혹에 대해서는 ‘삶을 긍정하는 유쾌함’이, 그리고 최종적으로 재산축적을 명령하는 자본에 대해서는 ‘자발적 가난의 행복’이 필요한 법이다.

아마 이 글을 읽은 사람 중 많은 독자들은 ‘자발적 가난’이 ‘행복’일 수 있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릴지도 모르겠다. 이 점에서 가난을 뜻하는 한자, ‘貧’이란 글자는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한다. 이 빈이란 글자는 나눔을 상징하는 ‘分’이란 글자와 조개 화폐를 상징하는 ‘貝’라는 글자가 합쳐져서 만들어져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이 가진 재산을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도래하는 상태가 바로 가난이라는 것이다. 淸貧, 즉 맑은 가난이란 말이 나온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바로 여기에 행복의 비밀이 있다. 자신이 애써 수확한 재산을 아낌없이 나누어주었을 때, 우리는 축적의 행복과는 질적으로 다른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더 많은 재산을 가지라고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체제를 말한다. 항상 자본주의는 자본의 양이 자유의 양이라고 사탕발림하며 우리를 미혹의 길로 이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빈주머니에 손을 찔러보며 우리는 무엇인지 모를 부자유와 우울함을 느끼곤 한다. 많은 지혜로운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결국 자본주의가 말하는 자유는 소비의 자유, 소비할 때 일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덧없는 자유에 다름 아닌 셈이다. 이 점에서 자본주의의 자유는 일종의 마약과 같다. 달콤한 쾌락은 주지만 약효가 떨어지면 우리에게 심한 금단증상을 제공한다는 점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발적인 가난은 가장 자본주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려는 의지이자, 동시에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유사 이래 동서양의 많은 철인들은 한결같이 ‘자발적 가난’이 가져다주는 행복을 통찰하고 있었다. 슈마허(E. F. Schumacher)는 『자발적 가난』이란 책으로 진정한 행복의 비밀을 노래했던 많은 철인들의 이야기를 수록하려고 한다. 원제가 더 의미심장하다. ‘작은 것이 많은 것이다(Less is more)’가 원제이기 때문이다.

청빈한 삶을 영위하던 서양의 은둔자들, 노동하지 않으면 먹지도 않겠다고 선언했던 동양의 선사들,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자본주의의 폐단을 지적했던 현대의 사상가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위대한 정신들은 직접 노동하며 남에게 나누어주는 삶, 그래서 자발적으로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삶에서 가장 인간적인 행복을 발견했다. 혹시라도 자본이란 마약에 아직도 취해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은 진정한 행복을 약속하는 좋은 처방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먹을 것을 친구에게 나누어주는 어린아이의 미소, 니체가 그렇게도 요구했던 초인의 미소는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셈이다.(강신주 서평위원/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09.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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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09-11-27 15:46 
    나눔의 의지와 자발적 가난 — via 로쟈
 
 
펠릭스 2009-11-16 20:12   좋아요 0 | URL
'빈농(貧農)'의 나눔은 물질과 정신의 경계가 없는듯 합니다. 가난뒤에 어떤 부(富)를 얻었는지 궁금합니다.

로쟈 2009-11-16 21:04   좋아요 0 | URL
타의에 의한, 타율에 의한 가난은 짐이고 구속이죠. 그건 부정적인 것이구요, 다만 뒤집어서 부에 대한 강박을 짐처럼 이고 다닌다면 그 또한 낙타의 삶이라고 해야겠어요...

2009-11-16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16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16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09-11-17 09:30   좋아요 0 | URL
오호 로쟈님 글을 읽으니 갑자기 폴리네시아 원주민이 생각나네요.자발적 가난(청빈)과는 좀 다른 개념인데... 이들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온가족이 정말 밤잠 안자고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합니다.그래서 대규모의 부를 축적하면 갑자기 온 마을 사람들한테 그 부를 정말 무상으로 배분한다고 하는군요.그 뒤에 남는 것은 그 사람에게 주민들이 바치는 대인이라는 칭송뿐이라고 하더군요.일종의 명예인데 사람들은 그 명예를 부러워하며 너도 나도 부를 축적하고,대인이라고 명예를 받은이도 그 명예를 지키기위해 또 부를 축적하며 마을 주민들에게 나누워 준다고 합니다.
뭐 사회적 부의 재분배 시스템인데,결국 나눔은 이타적 생각이지만 마음속에 이런 명예욕에 관한 이기적 생각이 있어서가 아닌가 싶은데요

로쟈 2009-11-17 12:22   좋아요 0 | URL
그런 '이기심'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블룩과 출판권력의 재편

올 한해 출판계를 결산하는 한국일보의 연재기사에서 '블룩(blook)'을 다룬 꼭지를 옮겨놓는다. 블록에 대해서는 나도 한 발을 담그고 있기 때문인데, 기사에서도 언급이 되고 있다. 더불어, 자세히 보니 관련이미지가 '로쟈의 저공비행'이기도 하다. 다시금 바닥이 좁구나란 생각이 드는데, 내년에는 더 많은 블로거들의 더 풍성한 '블룩'이 햇빛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흠, 나부터도 어서 2, 3탄을 준비해야 할까...

 

한국일보(09. 11. 12) [책의 풍경, 2009] <4> 블룩(blook)의 시대

"아이템은 풍부한데, 마땅한 필자가 없다." 풍부한 자본력과 인적 네트워크를 갖춘 일부 대형 출판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내 출판사들의 고민거리다. 쓰기만 하면 몇만부가 팔리는 일급 필자는 언감생심, 5,000~1만부 정도를 꾸준히 팔 수 있는 작가군의 확보가 이들의 과제다. 전문성과 필력, 취재력을 갖춘 '재야의 고수'는 과연 어디에 숨어있을까? 2003~2004년께부터 누구에게나 친숙해진 블로그가 그 시름을 크게 덜어줬다. 블로그 콘텐츠를 책으로 출간한 '블룩'(blookㆍblog와 book의 합성어)이 베스트셀러의 2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처럼, 국내 출판계도 인기 블로거들을 필자로 활용함으로써 '블룩의 시대'를 열었다. 온라인의 대중성ㆍ개방성ㆍ정보공유성에 기반한 '블룩의 시대'는 대중이 더 이상 '책'으로 상징되는 지식의 소극적 수용자가 아니라, 그 적극적 생산자이자 유통자가 됐다는 문화사적 의미를 지닌다. 



스타 블로거들, 출판계 스타로
인기 블로그의 콘텐츠를 책으로 출판하는 시도는 요리ㆍ육아ㆍ화장ㆍ여행 등 실용ㆍ취미 분야에서 시작됐다. 주부 김은주(33)씨가 2004년부터 싸이월드에서 운영하던 인기 육아블로그의 내용을 책으로 묶은 <예성맘의 우리아이 10년 밥상>(2006), <예성맘의 우리아이 평생밥상>(2008)은 6만부 이상 판매됐다. 평범한 주부였던 김씨는 TV 광고에도 출연했고 3~4권의 새 책 출간이 예약된 '귀하신 필자'가 됐다. 



취미ㆍ실용 분야 스타 블로거들의 성공 이후 다양한 분야의 블로거들이 스타 필자로 각광받게 됐다. 젊은 미술인들에 주목하며 미술계의 숨은 이야기를 전하는 '문화의 제국'이라는 블로그로 온라인 스타가 된 김홍기(37)씨의 블룩 <샤넬, 미술관에 가다>(2008), <하하 미술관>(2009)도 각각 1만부 이상 팔렸다. 인터넷 논객으로 불리는 한윤형(26)씨는 정치ㆍ사회 분야의 스타 블로거. 그의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2009)는 6개월 만에 2쇄를 찍었다. 지성사의 흐름을 짚고 인문학 신간을 소개하는 인기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의 운영자 이현우(41)씨의 <로쟈의 인문학 서재>(2009)도 그 분야에서는 손꼽히는 책이다. 고양이, 편의점, 팝업북, 골목, 장난감 등 소소한 소재에 대한 전문 블로거들을 주목한 출판사 갤리온의 '작은 탐닉' 시리즈는 모두 20권으로 출간돼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출판사로 들어온 원고를 보고 필자를 구하는 고답적인 방식에서 신문이나 잡지 등으로 알려진 필자 찾기, 인맥 동원하기 등 기존 방식과 달리 블로그는 이처럼 묻혀있던 저자군을 발굴하는 수원지로 자리매김했다. 배영진(40) 갤리온 주간은 "'작은 탐닉' 시리즈의 경우 1~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우연히 찾아낸 필자들"이라며 "블로그는 가장 손쉽게 예비 저자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자 저자와 출판사를 연결해주는 새로운 채널"이라고 말했다. <하하 미술관>을 기획한 미래인 출판사의 황인석(39) 편집장은 "블로거들은 정보가 공개돼 있으며 이메일 연락도 수월해 섭외도 용이하다. 중소 규모 출판사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기획ㆍ편집 중요성 더 높아져
블로그가 출판의 새로운 콘텐츠 공급원으로 각광받는 이유는 콘텐츠 내용이 소비자ㆍ독자 친화적이기 때문. 주로 취미ㆍ실용 분야의 블로거들이 초기부터 성공한 점이 이를 증명한다. 하루 수백~수천명에 이르는 블로그 방문자 수에서 시장성도 어느 정도 검증되는 점, 블로거들이 대부분 사진 판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제작단가도 낮출 수 있다는 점, 기존 필자에 비해 선인세 등 초기 자금을 적게 투입해도 된다는 점도 블룩의 매력이다.

그러나 블로그의 인기나 블로거의 스타성이 곧장 출판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온라인과 활자라는 매체의 형식이 다르기 때문에 블로그의 콘텐츠를 가공하는 정교한 편집ㆍ기획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기획한 산책자 김수한(39) 주간은 "책은 전체 블로그 내용의 5%도 소화하지 못했다"며 "어떤 식으로 텍스트를 재배치할 것인가, 사진 숫자는 얼마나 줄일 것인가, 문체는 어떤 식으로 바꿀 것인가 등 컨셉을 가다듬는 데 1년 가량 걸렸다"고 말했다.

블로거 네트워크가 책 구매로 연결되는가에 대해서도 회의적 시각이 있다. 황인석 미래인 편집장은 "온라인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노는 데 길들여진 블로그 방문자들을 전통적인 활자매체로 유도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콘텐츠의 내용보다는 방문자 수에 집착하거나, 기존 지식과 정보의 짜깁기에 불과한 블로그가 태반인 만큼 이를 선별하는 출판기획자들의 섬세한 시각과 치밀한 기획, 마케팅 전략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연구부장은 "1인 미디어 시대를 대변하는 블로그는 콘텐츠의 전시장이자 재야의 고수를 발굴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라며 "그러나 아직까지는 블룩이 주로 실용서 범주에 머무르고 있으며 비실용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느냐가 향후의 과제"라고 말했다.(이왕구기자) 

09. 11. 12.  

P.S. 블룩 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알라딘 리뷰계의 지존이라 할 파란여우님의 블룩 <깐깐한 독서본능>(21세기북스, 2009)이 내주에 출간될 예정인 것으로 안다. 바야흐로 개봉박두다! 기회가 닿아서 책의 몇 꼭지를 미리 읽어볼 수 있었는데, 알라딘마을의 수준(독서본능!)을 대변하고 있는 듯싶어서 정겹고 부듯했다(우리동네 사람이 '깐깐한' 건 자랑거리다). 자칭 '알라디너'라면 고대할 일이며, 필독해마지 않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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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09-11-12 15:52   좋아요 0 | URL
정말 좋은 블로거들의 블로그들이 많은데 저는 역시 종이책이 좋은지라 이런 현상이 매우 반갑습니다. 앞으로도 게속 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로쟈님도 2,3탄 준비하셔야죠?ㅎㅎ

로쟈 2009-11-13 00:20   좋아요 0 | URL
블로거 천만시대라고도 하므로, 블로거가 책을 내는 일이 조만간 뉴스거리에서 빠지게 되지 않을까 해요. 저야 준비는 하고 있지만 마음보다 손은 언제나 더딘 편이어서...^^;

빵가게재습격 2009-11-12 21:1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로쟈님. 체일요양(?)중에 잠시 들렀습니다. 로쟈님 책은 쟁여놓고 다 읽지 못했는데, -<차라투스트라...>와 <누가 슬라예보 지젝을...>사이에 끼워 놓았습니다. 앞 뒤 두 권을 겨우 읽고 나서 로쟈님 책을 열어보야지...하고있는데, 게을러서 언제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파란여우님의 책이 필독! 이라면 과제가 하나 더 늡니다. 건강하세요.^^

로쟈 2009-11-13 00:21   좋아요 0 | URL
네, 건강의 안 좋으신 것 같던데, 요양 잘 하시길. 사실 '요양객'은 저의 로망 중의 하나인데요.^^;

빵가게재습격 2009-11-13 14:49   좋아요 0 | URL
생각만큼 즐겁지 않습니다...오히려 괴롭다(?)고 하는 편이 진실에 좀 더 가깝습니다.--;;;;

로쟈 2009-11-14 10:37   좋아요 0 | URL
빨리 쾌유되시길 바랍니다.^^;

펠릭스 2009-11-14 22:24   좋아요 0 | URL
들리는데 길들려진 블로거지만 덕분에 이런저런 책들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로쟈 2009-11-15 12:28   좋아요 0 | URL
부수효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