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한국에서 경계적 지식인을 다룬 커버스토리를 옮겨놓는다. 다큐영화 <경계도시2>가 빌미가 돼 한국사회에서 경계적 지식인의 문제를 살폈다. 그런 범주에 속한다고 지목돼 나도 인터뷰에 응했고, 몇 가지 언급이 기사화됐다. '경계'라는 말이 다의적인 만큼 '경계적 지식인'도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데, 내 경우엔 학계와 대중 사이를 오간다는 의미다. 그런 역할도 그다지 오래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주간한국(10. 04. 20) <경계도시2> 경계인을 생각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경계도시2'를 보고 난 관객들의 뜨거운 응원소리가 전해진다. 개봉한 지 한달여가 지난 지금까지 칼럼니스트, 변호사, 소설가, 가수, 대학교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지식인 인사들의 자발적 지지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릴레이 방식으로 관객과 만나 자유롭게 영화를 본 소감을 얘기하거나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유명 인사들만이 아니다. 영화를 관람한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가정주부들도 리뷰를 쏟아내고 있다.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 가운데 최다 관객리뷰를 기록할 정도다. 이 같은 반향이 시사하는 바는 뭘까? 그것은 이 사회가 진정 필요로 하는 성찰의 다큐멘터리라는 점이다. 그러면 단지 이념 논쟁에 대한 성찰일까? 



영화는 2003년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의 귀국을 둘러싼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여과 없이 드러나는 것은 여전한 레드 콤플렉스뿐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한 사상의 다양성에 대한 관용의 부재, 그리고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시선의 결핍과 심각한 쏠림 현상이다.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인'으로 살기 힘든 한국적 사회현실에 대해 '경계도시2'는 냉정하게 렌즈를 들이댄다. 



왜 경계인 생존이 힘든 사회인가
송두율 교수는 스스로를 경계인으로 규정한다. 소통이 불가능한 배타적인 두 경계를 허물기 위해 그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경계인을 자처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경계인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이쪽 아니면 저쪽을 택하라고 윽박지른다. 경계인 송두율은 이러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가혹한 희생양이 되고 만다. 하지만 이사회에서 경계인으로 살기 어려운 것이 송 교수뿐일까? 영화는 보다 포괄적으로 경계인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준다.

이 작품을 만든 홍형숙 감독은 전화 인터뷰에서 "분단이나 레드 콤플렉스 저변의 중요한 문화코드에 대해서도 말하고자 했다"고 답했다. 집단적인 선택과 요구가 강요되고, 개인의 권리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갖기 쉽지 않은 문화를 지적했다. 그는 "그러한 문화 속에서 새로운 시선을 갖는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본인 역시 이념논쟁을 비롯한 어떤 '틀'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고, 많은 혼란과 갈등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사실 경계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정의를 내릴 수 있다. 경계인은 일반적으로 진보와 보수, 좌와 우, 학계와 대중 등 분리와 극단의 경계선상에서 양쪽과의 소통과 통섭을 시도하는 사람이다. 또, 주류에 반기를 드는 재야 지식인,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도 포함된다.

어느 사회를 불문하고 경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 사회가 경계인의 생존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뭘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는 연고주의나 패거리주의를 근거로 삼은 출세주의가 한 이유라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은 근대화의 후발주자로서 치열한 내부경쟁으로 경제적 성공을 이룬 나라다.

한국인들은 극렬한 경쟁에 치를 떨면서도 경쟁만이 살 길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패거리를 중심으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인다. 우리는 그런 투쟁을 곧잘 이념투쟁이나 지역투쟁으로 착각하지만, 그 실체는 이익투쟁이다. (2009년 12월27일 한겨레신문)

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권력을 가진 자와 같은 학교나 고향 출신이라는 연고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자기 영역을 확장하고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후마니타스 박상훈 대표는 경계인이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대학의 붕괴를 거론한다. 지성의 영역이어야 할 대학이 사라지고 상업적 성과를 중시하는 이상한 풍토가 독자적으로 사유하는 지식인을 멸종시켰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으면서 빨리 연구하고, 빨리 성과를 내는 기업적인 연구문화가 만연하게 됐고요. 또,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은 연구논문들 가운데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는 안 되는 학문적인 분야가 너무 많아요. 비정상적인 지식 연구 패턴이 대학, 그리고 더 나아가 지식인을 없애고, 제도권에 대한 지식의 종속을 심화 시키게 된 것이라고 봅니다."

그는 '경계도시2'를 통해 심각한 지식의 종속을 발견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이끌었던 진보인사들조차 여론몰이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모습이 나오는데요. 제도와 권력에 대한 지식의 종속을 반영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강사이자 대중적인 인문교양서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펴낸 이현우 박사는 우리나라의 열악한 출판 시장을 경계인으로 살기 힘든 환경으로 꼽는다. 그는 인터넷에서 인기 서평 블로그를 운영하는 등 학계와 대중 사이를 오가는 경계적 지식인이다.

"영어권 국가나 일본 등과 달리, 우리나라는 출판시장이 작고 열악해서 지식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해 대학이나 기업, 혹은 국가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제 책의 경우에도 1만 부가 팔려 인문학서적으로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나, 저자가 받는 인세는 1500만원도 안 됩니다. 학진(학술진흥재단)에서 프로젝트를 받아 연구를 하면 1년에 논문 한 편을 써서 3000만원 정도를 받아요. 그러다 보니 제도권에 속하지 않고 독자적인 지식의 길을 택하는 이들이 매우 드물게 되고, 지식이 국가 등 기득권에 예속 되는 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봐야겠죠."

경계인이 필요한 이유
하지만 경계인이 자생하기 힘든 사회적 여건 속에서도 꾸준히 경계인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경계인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소통의 문제 때문이다. 강준만 교수는 저서 '대한민국 소통법'에서 우리사회가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승자독식주의, 서울 중심의 초강력 중앙집권주의, 다른 이념에 대해 약간의 신축성도 보이지 않는 이념의 사유화 등을 꼽았다. 그리고 소통의 조건으로 이 같은 무리의식과 이해관계가 그어놓은 경계에서 벗어날 것을 제시한다.

여기서 좌파와 우파를 비롯해 소통 불가능한 경계를 넘나들며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경계적 지식인이라 할 수 있다. 한국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발행인 성일권 씨는 경계인이 많아져야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경제, 사회, 정치 등의 분야에서 활약 중인 몇몇 국내 경계적 지식인을 거론하며 "제도권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주류 지식에 편입되지 않고 자유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경계인이 많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유롭게 주류세력을 비판할 수 있는 경계적 지식인이 많은 프랑스를 예로 들었다. 프랑스는 주류에 반대하는 진보적 지식인, 즉 경계인의 영향력이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큰 나라다. 이들은 사회 주류세력의 독주를 견제하고, 사상과 문화의 다양성을 지키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사회기류는 기존의 주류 문화와 제도에 반기를 들었던 '68혁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 68혁명은 1968년 5월 프랑스에서 대학교육의 모순과 관리사회에서의 인간소외, 사회적 모순 등에 반대해 학생과 근로자들이 연합해 벌인 대규모 사회변혁운동이다.

"68혁명으로 인해 비록 기존의 체제와 문화가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그랑제꼴 중심에서 대학으로 교육제도의 개혁이 이루어졌고, 대중문화를 당당히 문화의 주류 반열에 올리는 데 성공했지요. 이후 주류문화에 도전하는 지성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면서 사회의 변화와 견제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고 봅니다."

경계적 지식인은 지식사회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이현우 박사는 "대학의 도제제도나 파벌주의, 업적주의 그리고 국가, 기업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경계적 지식인이 없는 한 세계를 보는 눈을 바꿔 놓는 지식의 탄생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왜 론 처노와 같은 전문 저술가가 나올 수 없는지 반문한다. 시사 평론가이자 금융전문 작가인 처노는 '금융제국 J.P. 모건'이나 '부의 제국 록펠러'를 통해 미화되고 은폐되기 쉬운 거대 기업가의 숨은 면모를 낱낱이 파헤쳐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또 '과학의 탄생'이나 '16세기 문화혁명' 같은 세계적인 저작이 과연 국내의 재야 지식인에게서도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가 든다고 덧붙였다.(전세화 기자) 

10. 04. 21.  

P.S. 참고로, 우리의 '출판시장' 혹은 '지식시장'의 현실과 관련해서 내가 답변한 내용은 이렇다.

'지식시장'은 또 다른 의미에서 '동정 없는 세상'이죠.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훈련'받지 않은 터라 생존확률이 그만큼 떨어진다고 봅니다.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도 대중성을 확보하는 건 어려운 일이어서 국내 인문학자 가운데서는 손에 꼽을 정도이니까요. 분야는 다르지만, <금융제국 J.P모건>이나 <부의 제국 록펠러> 등을 쓴 론 처노 같은 '전문 저술가'가 국내에서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고요, <과학의 탄생>과 <16세기 문화혁명> 같은 저작이 역시 국내의 재야 지식인에게서 나올 수 있을지 회의가 듭니다. 개개인의 역량 이전에 사회문화적 여건의 문제이고, 학문적 온축의 문제이기 때문에요. 20-30년 후라면 좀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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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1 23: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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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1 23: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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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1 2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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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1 23: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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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좌파란 무엇인가

아침신문을 밤중에야 읽었다. 최근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글항아리, 2010)를 펴냈을 뿐만 아니라 한겨레21('노 땡큐!'란)과 교수신문의 연재(격주로 '세계사상지도'를 다룬다)를 새로 시작하는 등 문화비평가로서 '시즌2' 활동에 나선 이택광 교수의 인터뷰기사가 있기에 옮겨놓는다. 사실 낮에 한겨레21에서 드라마 <추노>에 대한 칼럼도 읽었기에 이런 정도의 활동 빈도라면 '기록'해두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경향신문(10. 04. 12) 이 시대 ‘합의된 아름다움’을 깨라 

왜 사람들은 ‘꿀벅지’와 ‘초콜릿복근’에 열광하는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42)는 그것이 우리 시대의 ‘합의된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공교롭게도 ‘먹는 것’ 그 중에서도 ‘달콤한 것’으로 상상되는 아름다움은 특정 시기의 사회적 산물이다. 
 
 

이 교수는 최근 서울 홍대앞 한 카페에서 ‘지금 우리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연하며 “새로운 것은 합의된 아름다움과 다른 것을 상상하는 데서 나오고 그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잡지 ‘1/n’이 마련한 이 강연에서 이 교수는 이마누엘 칸트와 자크 랑시에르를 많이 언급했다.

이 교수는 칸트의 말을 빌려, 사람들이 ‘소녀시대’와 ‘짐승돌’의 몸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은 ‘쾌락적 판단’에 기반한다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쾌와 불쾌를 나누는 ‘판단’이다. 그는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예로 들었다. 지금은 누구도 인상파 그림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19세기 파리 시민들은 그리다 만 것 같은 이 그림들을 보고 비명을 지르거나 졸도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아름다움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들에서 배운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몸, 그림이 되려면 “지금 이 사회에서 합의되어 있는, 욕망에 기반한 자본주의 상품화의 쾌락 원칙”에 들어맞아야 한다. 



이 교수는 합의된 쾌락 원칙을 ‘감각적인 것의 나눔’, 즉 미학으로 불렀다. 그런데 합의라는 말에 바로 전환의 가능성이 들어있다. 합의는 깨면 되기 때문이다. 즉 “예술이 학습되는 것이라면 미학을 통해 ‘세계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가능하다”. 여기서 계급적 배경처럼 물려받은 감각에서 자유로워진 ‘무관심한 판단’이 중요해진다. 이 교수는 랑시에르가 1848년 프랑스혁명 당시 한 노동자의 일기를 살펴본 것에 주목했다.

“미장공이 갑자기 일을 멈추고 자기가 만든 방을 바라보는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무심한 마음으로 그는 갑자기 그 방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지요. 바깥에는 오후 햇살이 환하고 창문으로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옵니다. 이 순간 미장공의 노동이 배어 있는 방은 완전히 낯선 사물로 재발견됩니다.” ‘무관심한 시선’의 발견이 랑시에르의 독창성이라고 이 교수는 말했다.

무관심한 판단이 있고서야 합의된 아름다움을 상대화시켜 보게 되고, 그것을 깨는 것도 가능하다. 이 교수는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10대 청소년들이 가장 먼저 거리로 나온 것도 그렇게 해석했다. “촛불집회에 나온 청소년들은 ‘10대들은 어른들과 다르다’는 공동체의 합의를 넘어서는 감각을 서로 나누고 있었던 겁니다.” 



이 교수의 생각은 최근 출간된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글항아리)에서 좀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여기서 ‘인문좌파’란 합의된 공동체의 윤리를 의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던지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로 ‘정치적 좌파’나 ‘인문학자’와 구별된다. “진보운동이 진보정당이라는 합의제 민주주의에 갇혀 있고, 소통 담론이 진보 세력의 전략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이 교수는 “민주주의보다 정치적인 것을, 소통보다는 불통을 설파”한다. “갈등과 모순을 강조하고, 고정성보다 우발성에 주목하는 이론들을 통해 진보정당을 통해 드러나지 않는 ‘비가시적인 정치’를 찾아내는 것이 인문좌파의 임무”라는 것이다.(손제민기자) 

10. 04. 12. 

P.S. '문화평론가'란 직함으로도 칼럼을 쓴 적이 있지만(담당기자는 내게 '백수를 고상하게 부르는 이름'이라고 정의해주었다) TV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기에 내게 '문화비평'은 다른 동네 얘기에 가까운데, 그래도 이런 정도의 얘기는 알아들을 수 있다. 이택광 교수가 이번주 한겨레21의 '추노, 근육질의 시대'란 칼럼에 적은 내용이다.   

80년대 할리우드의 람보나 코난 시리즈가 60년대 반문화 운동의 형식을 빌려와서 보수주의적 내용을 담아냈다면, <추노>는 반대의 경우다. 80년대나 통했을 보수적 형식에 이명박 시대의 '계급투쟁'이 드라마에서 주된 내용을 이루었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는, 특히 대중문화는 고정적이지 않다. 언제나 경험하는 것과 재현되는 것 사이에 괴리가 존재하는 법이고, 이로 인해 동일한 형식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판이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추노>의 문제성은 보수적 형식에 담긴 '계급투쟁'이란 내용에 있다는 것. 일반 대중이 그렇게 보거나 말거나와 무관하게 그것이 말하자면 그 드라마의 진리내용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비가시적인 정치'를 찾아내는 것이 그가 말하는 '인문좌파의 임무'가 아닌가라고 나대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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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3 00: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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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3 00: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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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센터(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에서 진행하는 '고전, 영화로 읽다' 강좌에 대한 안내이다. 러시아문학과 영화에 대한 강의를 한 꼭지 섭외받고 정한 것이 <안나 카레니나>인데, 하자센터에서 그레타 가르보 주연의 <안나 카레니나>(1935)를 감상작품으로 골랐다(러시아판 <안나 카레니나>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의는 4월 10일부터 9주간 진행되며,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강의와 감상은 5월 15일에 예정돼 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 강의 개요 

강의명 : 고전, 영화로 읽다
시간 : 매주 토요일 15:00 ~ 19:00
기간 : 2010년 4월 10일 부터 6월 5일까지 총 9회
장소 : 하자센터(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2층 999클럽, 203호
대상 : 고등학생 이상의 일반인
모집인원 : 50명
수강료 : 8만원
대표메일 : nivriti@naver.com

▶ 강의 일정 

1강 (4월 10일)|죽음의 운명을 수용하라
호메로스『일리아스』,기원 전 8세기 경 / 로버트 와이즈 감독 <트로이의 헬렌>,1956
강사 : 강대진(고전문헌학자), 정암학당 연구원,『고전은 서사시다』,『잔혹한 책 읽기』,『신화와 영화』등

2강 (4월 17일)|영화로 읽는 카프카의 문학
프란츠 카프카『성(城)』,1926 /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카프카>,1991
강사 : 김진영(철학자),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아도르노와 벤야민 미학을 전공.

3강 (4월 24일)|당통과 로베스피에르
게오르그 뷔히너『당통의 죽음』,1835 / 안제이 바이다 감독 <당통>,1982
강사 : 장정일(소설가), 시집『햄버거에 대한 명상』,희곡『고르비 전당포』,소설『보트하우스』등

4강 (5월 1일)|고전, 깊은 강에 몸 담기 
혼란과 음울 / 데이비드 린치 감독 <블루 벨벳>,1986
강사 : 김성태(영화학자), 파리 3대학 영화학 박사,『영화,존재의 이해를 위하여』,공저『세계영화사 강의』등

5강 (5월 8일)|영화로 번역하는 소설
코맥 매카시『로드』,2006 / 존 힐코트 감독 <더 로드>,2009
강사 : 정영목(전문번역가),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겸임 교수, 옮긴 책으로 『책도둑』,『맛』,『불안』,『지젝, 레닌을 만나다』,『눈먼 자들의 도시』,『 융-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로드』등 


 
6강 (5월 15일)|열정의 논리와 삶의 윤리
톨스토이『안나 카레니나』,1877 / 클라렌스 브라운 감독 <안나 카레니나>,1935
강사 : 이현우(인문학자),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박사, 한림대학교 연구교수,『로쟈의 인문학 서재』등

7강 (5월 22일)|초인이 되기 위한 감성의 스파르타 훈련
프리드리히 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91 / 프랭크 다라몬트 감독 <쇼생크 탈출>, 1994
강사 : 정여울(문학평론가),『미디어 아라크네』,『모바일 오디세이』,『시네필 다이어리』등

8강 (5월 29일)|삶과 죽음의 이어짐
가와바타 야스나리『산소리』,1954 / 나루세 미키오 감독 <산의 소리>,1954
강사 : 이연호(영화평론가), 전 KINO 편집장, 영상원 강사,『전설의 낙인』등

9강 (6월 5일)|타자 지향의 욕망
요한 볼프강 폰 괴테『파우스트』,1831 /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The Fly>,1986
강사 : 이창익(종교학자),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 한신대 강사,『종교와 스포츠』등   

10. 0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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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화로 읽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7-30 01:37 
    엊저녁에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진행한 5주간의 '도스토예프스키 깊이 읽기' 강좌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읽기'로 마무리됐다. 수강생 몇 분과 간단하게 뒷풀이자리를 가졌는데, 차후 강의 일정을 물어오시는 분들이 계셔서 9월 강의 일정이긴 하지만 미리 올려놓는다. 지난 봄 '고전, 영화로 읽다' 강좌의 속편 격인데, 도서관에서 또 한번 영화로 고전을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됐다. 지난번에 다룬 톨스토이의 &l
 
 
다크아이즈 2010-03-25 00:25   좋아요 0 | URL
네,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니 로쟈님 말씀대로 <참고>나 하는 처지네요. 제목이 너무 인문학적이군요. 좀 호리낭창한 낭만적 접근도 괜찮을 것 같은데 ㅎㅎ

로쟈 2010-03-25 09:15   좋아요 0 | URL
기획자가 정한 <안나 카레니나> 꼭지 제목은 '지금의 나는 진짜인가?'였어요.^^

2010-03-25 0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5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중지성의 정원(다지원)의 제안에 따라 '레닌 재장전하기'란 기획강좌에 참여하게 됐다. 빌미가 된 건 물론 <레닌 재장전>(마티, 2010)의 출간이며 공동 번역자 가운데 다섯 명이 강사로 참여하고(알라디너 람혼님도 포함돼 있다), 조정환, 정남영 선생이 '네그리의 레닌'과 '루카치의 레닌'을 보충한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둘러보시길 바란다(http://daziwon.net/second_2010/10489).    

[기획] 레닌 재장전하기 

강사  조정환, 이현우, 한보희, 정병선, 최정우, 정은경, 정남영
개강  2010년 3월 29일부터 매주 월요일 저녁 7시30분 (7강, 91,000원)

강좌취지

최근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프레드릭 제임슨, 테리 이글턴, 토니 네그리 등 세계에서 손꼽히는 비판적 지식인들의 레닌에 대한 해석을 모은 책 『레닌 재장전』(마티, 2010)이 출간되었다. 저자들은 어떻게 레닌이란 이름으로 모이게 되었을까? 레닌이 오늘날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는 곧 우리 시대에는 어떠한 혁명이 가능한가를 묻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10년 2분학기, 레닌을 재장전하고, 새로운 사유와 세계의 가능성을 함께 모색해 보자.

1강  네그리의 레닌_강사 조정환 [2010 년 3월 29일] 

2강  레닌주의적 제스처와 포퓰리즘_강사 이현우 [2010 년 4월 5일]  

3강  레닌과 변증법의 프락시스(Praxis) _강사 한보희 [2010년 4월 12일] 

4강  캘리니코스의 레닌주의: 21세기의 사회주의_강사 정병선 [2010년 4월 19일] 

5강  레닌 주위의 레닌주의(들) - 포스트모던과 정치적인 것 [2010년 4월 26일]   

6강  『무엇을 할 것인가?』 에서 자생성(stikhiinyi)개념의 쟁점_강사 정은경 [2010년 5월 3일] 

7강  루카치의 레닌_강사 정남영 [2010년 5월 10일]

참고문헌

* 『레닌 재장전』, 다니엘 벤사이드 외 지음, 이현우 외 옮김, 마티,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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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0-03-02 23:24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서 책을 한 번 들춰본적이 있는데요. 어휴...너무 어려워서 더 읽을 엄두가 안 나더군요. 강의라면 표면적이나마 책을 이해하고 가야 건질(?)수 있는게 많을 텐데, 책에서부터 주눅이 드니 감당이 안 됩니다. 건강하시죠?^^ (괜히 댓글을 달아 초를 친듯한 느낌이...후덜덜합니다.^^;;)

로쟈 2010-03-02 23:37   좋아요 0 | URL
비교적 쉬운 글들도 있습니다. 바디우부터 읽으신 건가요? 캘리니코스나 이글턴, 지젝 등은 어렵지 않습니다...

빵가게재습격 2010-03-10 01:29   좋아요 0 | URL
가물가물한데요. 알랭 바디우가 맞는 것 같습니다...--;;;

2010-03-03 0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3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생전에 '신화'가 된 지식인은 많지 않은데, '리영희'는 그 중 대표적인 이름이다. 최근 그의 팔순을 기념하여 <리영희 프리즘>(사계절, 2010)이 출간되어 눈길을 끈다. 마침 공동필자들 가운데 두 사람의 대담 기사가 올라왔기에 스크랩해놓는다. 12권짜리 <리영희 저작집>(한길사, 2006)까지는 넘보지 못하더라도 이 참에 한두 권 정도는 챙겨도 좋겠다. 개인적으론 아직 읽지 못한 <대화>(한길사, 2005)가 일순위이다.

경향신문(10. 02. 22) 경쟁에 지치고, 공통문화 없는 ‘모래알 청년세대’  

고은 시인이 ‘1970년대 대학생의 아버지’라고 썼던 리영희. 군부독재 정권이 ‘대학생 의식화의 원흉’으로 지목해 탄압했던 그를 프랑스 신문 르 몽드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사상의 은사’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리영희는 지난해 12월 팔순을 맞았지만 대학생 혹은 청년이라는 단어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리영희 선생 팔순을 기념해 최근 출간된 <리영희 프리즘>(사계절)은 리영희를 이 시대 청년을 위한 교양의 기초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다. 이 책은 고병권, 천정환, 김동춘, 이찬수, 오길영, 이대근, 안수찬, 은수미, 한윤형, 김현진 등 10명의 각 분야 ‘논객’이 리영희의 삶과 사상이 던진 생각거리를 각각 풀어냈다. 필자로 참여한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41)와 20대 논객 한윤형씨(27)가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대학생으로 뭉뚱그려지는 이 시대 청년세대의 교양과 삶, 책읽기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청년세대의 교양
천정환(천) = 리영희 선생은 저희 세대만 해도 영향을 덜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리영희 프리즘> 기획서를 처음 받았을 때 한윤형씨가 필자에 들어 있어 흥미롭기도 했고 어떻게 볼지 궁금했습니다.

한윤형(한) = 리영희가 지금 20대에게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누군지 모른다가 정답일 것입니다. 실제로 그러니까요. 제가 쓴 글도 그런 취지인데 그때 리영희에 해당했던 것이 지금의 20대에게는 왜 없는가, 어떤 조건이 바뀌었는가라고 묻는 것이 옳은 질문이 아닌가 합니다. 리영희 선생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세대에겐 꼭 리영희를 읽지 않더라도 공통의 무엇인가가 있었을 텐데, 지금 시대는 텍스트로서 그런 것은 없습니다.

천 = 저희 세대는 미리 짜여져 있는 커리큘럼을 가지고 정치에 관심을 갖고 의식화됐는데 지금은 같이 읽기라든지 세미나가 존재하지 않고 의식의 편차도 세대 안에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20대가 정치에 관심을 갖는다든지 옛날말로 지식인스러운 태도를 갖고자 할 때 어떤 경로로 인식을 넓혀가는지 궁금합니다.

한 = 저 같은 경우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케이스인데, 인터넷을 별로 안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여기에서도 패턴이 좀 나뉘는 것 같습니다. 책을 많이 보는 쪽은 박노자의 영향력이 큰 것 같고, 인터넷 많이 하는 친구들은 진중권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강준만은 90년대 후반 학번에게 좀 더 영향력을 미쳤던 것 같고요. 어디까지나 정치에 관심 있는 친구들 얘깁니다만.

천 = 88만원 세대라는 규정이 있긴 하지만 대학생 내부의 격차가 그야말로 극심하잖아요? 세대로 규정 당했지만 하나로 묶일 수 있을까 회의적입니다. 같은 대학생이지만 고민하는 주제나 행동하는 양식이 다 다르기 때문이죠. 일테면 어떤 여학생이 소개팅을 할 때 서열상 어떤 위치 이하 대학의 남학생과는 절대 안 만나겠다고 말하더군요.

한 = 그 부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옛날에 비해 대학생 집단이 엄청나게 넓어졌습니다. 대학진학률이 86%에 달합니다. 선배들 얘기를 들어보면 90년대 초반만 해도 농촌 출신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만 해도 같은 수준의 텍스트를 읽고 섞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같은 학교, 같은 과라고 해도 계층이 다르면 서로 안 섞이고 사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수능을 비슷하게 쳐서 들어와도 그 안에서 이미 계층이 갈라지는 것이죠.

청년세대의 현실
천 = 결국 대학생들이 끝없이 경쟁하게 만드는, 원자화하는 구조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로 압축되는 것 같습니다. 옛날 방식처럼 ‘100만 청년학도’라고 호명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겠지만 가능한 부분에서 공동체성 같은 것들을 회복하거나 대학생 공통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20대를 사회 전체의 변혁을 위해 복무하는 전사로 동일시하거나 그렇게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겠죠. 그럼에도 이해가 잘 안되는 것이 역시 등록금 문제입니다. 대학생들이 영어와 컴퓨터 등을 배우기 위해 끊임없이 사교육에 의존해야 하는 문제도 있죠. 이건 전체 사회의 문제이자 자기 자신의 문제이고 내 주머니에서 돈을 갈취해가는 문제인데 정치의식이 없더라도 같이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요.

한 = 설문조사를 보면 운동이 필요하다고 답하는 비율이 많은데 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들 합니다. 원자화가 완료된 상태에서 문제의식은 느끼는데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인 거죠. 시간이 지나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요. 지금은 부모가 돈을 투자해서 대학만 가면 취직이 된다는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 때를 대비해서 삶의 문제가 곧 정치의 문제라는 것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천 = 작은 단위의 실천 같은 것이 중요하겠죠. 예를 들어 제가 몸담고 있는 학교에 ‘여학생자취연대’ 같은게 있더군요. 자취하는 여학생들이 같은 문제에 처해 있으니 같이 대응하자라는 취지인 것 같았습니다.

한 = 20대가 운동을 해서 당장 정권을 바꾸고 하는 것보다는 작은 것부터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20대 내부의 논쟁이 많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대끼리 서로 누가 옳네 그르네 하며 싸우면 20대가 보게 되고 힘이 세지는 것 아닌가 합니다.

청년세대의 책읽기
천 = 주제를 책읽기로 돌려보죠. 대학생들이 책을 덜보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물론 문화적 조건이 있습니다. 인터넷을 많이 보니까요. 저희 세대에 책은 사회과학, 인문·교양서 이미지가 강한데 2000년대 들어 인문사회과학 시장이 굉장히 쪼그라들었습니다. 인문사회과학 독자가 재생산이 안된다는 것이고 그 핵심은 20대 독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자기계발로서의 교양이든 삶의 태도나 지향점으로서의 교양이든 교양을 다 포기했다거나 열망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지금 20대는 어릴 적부터 아이폰을 갖고 노는 초등학생하고는 다른 세대이므로 책읽기에 대한 강박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엄청나게 바쁩니다. 경쟁하느라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거죠.

한 = 제가 아는 후배는 이공계를 다니는데 제가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책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게 쳐다봅니다. 자기 주변에 전공서적 이외에 다른 책을 보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다고 합니다. 실제로 바쁘니까요. 전공 외에도 영어, 컴퓨터, 중국어를 시간표를 짜놓고 공부합니다.

천 = 처절한거죠. 학원 5~6개씩 다니는 강남 초등학생들도 불쌍하지만 20대들도 자기 책임을 이행하느라 엄청난 압박에 시달립니다. 구조적인 문제라 어디서부터 뚫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대학 간 경쟁, 대학 내부의 경쟁이 너무 치열합니다. 대학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런 것을 해소하지 않으면 당분간 희망은 없다고 봅니다. 청년문화가 붕괴된다고들 하는데 청년이라는 말 자체가 20세기 들어서면서 처음 쓰인 것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청년문화가 아예 없는 시대, 청년이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가 없어지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합니다. 

10. 02. 21.  

P.S. 대담의 초첨은 리영희보다는 리영희라는 프리즘으로 본 이 시대의 청년문화인 듯싶다. 천정환 교수와 같은 세대인 나도 대학에 들어왔을 때 이미 리영희란 이름을 자주 접하지 못했다. 그때는 이미 '리영회 신화 비판'이 오히려 힘을 얻기도 했다. 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연이은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이 그러한 비판의 배경이 돼 주었다. 특히 문학비평가 이동하의 비판이 기억에 남는다(어지간한 문학평론집은 다 읽어보던 시절이었다). 리영희 선생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그로부터 멀어지게 한 계기이기도 했다. 균형을 잡자면 '신화 비판' 이전에 '신화'를 먼저 읽었어야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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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1 1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케 2010-02-22 09:06   좋아요 0 | URL
제가 리영희 선생의 소위<전-논>을 읽던 87년 봄날이 생각납니다.

인문관 마당에는 목련이 잔뜩 피었다가 하염없이 지고
전두환이 호헌을 이야기하던 87년 봄.
나름 신산스러웠던 이십대가 시작되었던 그해 봄날.

물론 한 인간의 삶이 책 하나로 바뀌는건 아니지만 그 이전과 이후의 삶은..
참 예전 이야기네요.



로쟈 2010-02-24 18:40   좋아요 0 | URL
어케 저랑 비슷한 연배시네요.^^

비로그인 2010-02-22 16:55   좋아요 0 | URL
요기 위에분도 저와 같은 느낌이셨나봐요. 2007년 리영희님의 '대화'를 읽고는 제 안의 무언가가 꿈틀거리면서 눈이 떠지는 경험을 했더랬습니다. 젊은이의 사상의 은사이시겠지만, 저에게 있어서도 사상의 은사인 셈이지요. 찜만 해두고 주문 전인데...빨리 주문해야겠습니다.

로쟈 2010-02-24 18:41   좋아요 0 | URL
필자들의 무료강좌도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2-23 17:45   좋아요 0 | URL
<전환시대의 논리>< 우성과 이성>에 한해 말하자면 70년대엔 대학생 수가 얼마 없었고,80년대에는 금서였던 기간이 많았으며,이미 9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젊은이들이 그런 책을 안 읽기 시작했습니다.그리고 이 책들에는 외교나 군사에 관한 내용이 많은게 과연 대학에 막 들어온 신입생들이 그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좀 아리송합니다.신문에서도 외교나 군사 기사는 잘 안 보는데 말이죠.

로쟈 2010-02-24 18:42   좋아요 0 | URL
창비 영인본 외판원을 교정에서 자주 보던 시절이었죠...

페크pek0501 2010-02-24 11:09   좋아요 0 | URL
리영희님에 대한 비판이 한때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사고를 확 엎었다는 사실로 그는 우리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분입니다. 우리의 관점을 흔들어 놓았으니...소설가 박완서님도 그의 저작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어요. 전 그래서 <전환시대의 논리>를 알게 되었죠. 또 유시민님의 <청춘의 독서>에서도 그 분을 사상의 은사라고 썼지요.

어쨌든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 주고 사고의 영역을 넓혀 주시는 분은 소중합니다.

로쟈 2010-02-24 18:42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뒤에 리영희 '선생'이 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