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멈퍼드-허먼 멜빌-알베르 카뮈

루이스 멈퍼드의 <유토피아 이야기>(텍스트, 2010)와 박홍규 교수의 <메트로폴리탄 게릴라>(텍스트, 2010) 출간 기념으로 박홍규 교수와의 대담 자리를 갖게 됐다. 도서출판 텍스트의 제안에 따른 것으로 일시는 8월 24일(화) 저녁 7시 30분이고, 장소는 청어람아카데미 지하소강당이다. 알라딘 이벤트는 http://blog.aladin.co.kr/culture/3896091 참조.



10. 07. 19. 

 

P.S. 대담일 바로 전 주에 이사가 예정돼 있어서 아마도 정신이 없을 것 같다. 준비를 잘할 자신은 없고, 다만 <메트로폴리탄 게릴라>, <유토피아 이야기>, <아나키즘 이야기> 세 권은 읽고 갈 계획이다. 혹 대담 행사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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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9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9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9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9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약 아내가 여러분을 배신한다면"

경향신문에서 '목수정의 파리통신'을 옮겨놓는다(지난번 신형철 칼럼과 짝을 이룰 만하다). "대통령은 정말 잘 뽑고 볼 일이다"가 제목이어서, '좀 센데!'하며 클릭했는데, MB 얘기가 아니라 사르코지 얘기였다. 하지만 결국 MB 얘기. 위안거리는 그렇게 잘났다는 프랑스인들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 베를루스코니를 총리로 둔 이탈리아 국민들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이번 월드컵에서 나란히 죽을 쒔다는 점도 공통적이군. 정치사에서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올 줄 어찌 알았겠는가. 세 나라 국민의 다음 번 선택이 벌써 궁금하다...  

경향신문(10. 07. 17) 대통령은 정말 잘 뽑고 볼 일이다 

‘난 소중하니까.’ 10년 전쯤, 지겹도록 들었던 저 광고의 주인공, 로레알사가 프랑스를 스캔들 정국으로 몰아넣는 중이다. 어지간한 남의 인생살이엔 콧방귀도 안 뀌는 이 동네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이 집안 얘기를 속속들이 알게 된 연유는 재벌가에서 벌어진 그 흔한 재산 소송의 귀퉁이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에게로 흘러간 불법 정치자금의 꼬리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87세의 릴리안 베탕쿠르는 로레알사 창업주의 딸로, 로레알사 주식의 31%를 점유하고 있는 프랑스 제1의 거부다. 이 여인의 주변을 40여년 전부터 맴도는 사람이 있었으니, 소위 다큐전문 사진작가 바니에란 자다. 꾸준히 베탕쿠르가 주변을 맴돌던 그는, 20년 뒤 베탕쿠르 가족의 절친이 되기에 이른다. 귀도 성치 않고, 심신 상태도 흐릿해진 릴리안의 심리를 조정하여 약 1조5000억원에 이르는 돈을 빼간 혐의로 이 자를 고소하고, 어머니가 자산관리 부적격자이니 자신이 그 대리인 역할을 하겠다고 외동딸이 소송을 걸면서 싸움은 시작되었다. 릴리안은 인생 최고의 낙이 바니에와의 대화였다며, 딸의 방해로 자신의 즐거움을 빼앗겼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딸이 오히려 자신을 모함한다고 항변한다. 그 와중에 릴리안의 경리담당 직원이 비밀리에 녹음테이프에 담아오던 몇 가지 진실을 법정에서 폭로하고, 언론에 진술하면서 사르코지가 시장이던 시절부터 그와, 그의 대선자금 담당이던 뵈르트(현 노동부 장관)에게 지속적으로 불법 정치자금이 건네진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다급해진 사르코지는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과 측근의 결백을 소리 높여 주장하였으나, 그의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은 많지 않은 분위기다. 그러면서 연금개혁(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연장하는)은 끝까지 밀어붙인다고 천명한다. 프랑스의 모든 노조들이 총력을 다해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연금개혁이다. 이제 그의 지지율은 프랑스의 그 어떤 대통령도 가보지 못했던 26%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대통령의 발언보다, 일개 경리직원의 말을 사람들이 더 신뢰하기까지엔 많은 일들이 있었다. 23살의 대학도 아직 안 졸업한, 오토바이 뺑소니 경력의 심히 의심스러운 청년을, 단지 사르코지의 아들이란 이유로 정부 고위직에 임명하려다, 천지를 뒤흔드는 조롱소리에 카드를 잠시 내려놓은 일도 있었다. 농민박람회에서 만난 농민에게 악수를 청한 사르코지의 손을 한 농민이 회피하자, “꺼져버려, 이 멍청아”라고 시원하게 내질러 유튜브의 톱스타가 된 적도 있다. 교황과의 면담 중에 아내 브루니에게 문자를 보내다가 들킨 사건 정도는 애교에 속한다. 



2008년, 사르코지가 임기 1년을 넘겼을 때, 프랑스의 유력 주간지 마리안은 표제로 “제기랄, 4년이나 남았어!”를 뽑아냈다. 친부자 반서민 색깔이 명백한 데다, 경악할 수밖에 없는 언어감각, 게다가 부지런하기까지 한 사르코지를 1년간 겪고 난 프랑스인들의 피로감을 정확하게 드러낸 한마디였다. 집권 3년차에 해당하는 지난 1년을 르몽드는 “끔찍한 한해”라고 묘사했다. 한 동안 시사주간지들은 루이 14세의 초상화를 표지에 등장시키기도 했다. 어딘지 좀 이상해서 가까이 들여다보면, 얼굴은 사르코지였다. “사르코지 왕조” 라는 유행어를 뒷받침하는 섬뜩한 패러디였다. 프랑스 사람들과 정치얘기를 하면, 꼭 우리나라 얘기를 하는 것 같은 친밀감을 급격히 느끼는 요즘이다. 대통령은 정말 잘 뽑고 볼 일이다. 우리는 소중하니까.(목수정 | 작가·프랑스 거주) 

10. 0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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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한국일보를 사들고 동네 분식점에 가 콩국수를 먹으며 읽었다. 가장 읽을 만했던 건 '삶과 문화' 꼭지에 쓴 신형철 평론가의 칼럼이다(이번에 새 필진으로 가세한 듯하다). 제목부터 '아, 즐거운 체호프!'이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일보(10. 07. 13) 아, 즐거운 체호프! 

예컨대 이런 글은 얼마나 진부한가.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 나오는 리틀 피플의 차이를 살펴보면 전자는 외적 억압의 상징이고 후자는 내적 병리의 반영이다,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는 외부의 억압이 아니라 내면의 공허 때문에 생기는 것일 수 있다, 무라카미가 60년 만에 오웰을 다시 쓴 것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은 1984년 이전으로 후퇴했다, <1Q84>가 독서계를 휩쓸고 있지만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불행하게도 <1984>일지 모른다….

이런 내용의 글을 쓸 뻔 했다. 이미 너무 많은데 또 보탤 필요가 있을까 싶어 접었다. 진부한 세상이 진부한 칼럼을 양산한다. 칼럼니스트의 잘못이 아닐 것이다. 도대체 다른 시각이 필요 없을 정도로 단순하게 엉망인 현실 때문이다.

적어도 이 지면에서만은 즐거운 얘기를 하고 싶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시길. 분노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체념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제는 일일이 분노하기조차 지쳐버려서, 그저 이 나라는 안 된다고 체념하면 속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체념하면 지는 것이다. 힘 있는 어떤 분들이 세계를 거꾸로 되돌리기 위해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으니 우리도 각자 분야에서 그만큼 열심히 해야 할 텐데, 그 과정에서 체념하지 않으려면 즐거워야 한다. 그분들이 잠 안자고 시뻘건 눈으로 열심히 할 때 우리는 충분히 자고 낄낄대면서 해야 한다. 그런 태도를 배워보기로 하자. 레이먼드 카버의 <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소설이 있다. 우리가 살면서 30분 정도 시간을 내서 체호프의 산문을 읽는 일은 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일이다. 

"인생은 지독하게 재미없는 농담과 같지만 그런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랍니다… 만약 여러분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성냥에 불이 붙었다면, 호주머니 속에 화약창고가 들어있지 않았음을 기뻐하고 하늘에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의 별장으로 가난뱅이 친척들이 들이닥치거든 새하얗게 질리지 말고 환호작약하십시오. 경찰이 아니어서 얼마나 행복한가! 손가락이 가시에 찔렸을 때에도 기뻐하십시오. 눈을 찌르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아내나 처제가 피아노를 두드려대기 시작하거든 발끈하지 마시고 뛸 듯이 기뻐하십시오. 당신은 들개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있거나 고양이들의 연주회에 참석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연주를 듣고 있으니 말입니다. 만약 아내가 여러분을 배신한다면 아내가 배신한 것이 조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뻐하십시오."- <인생은 아름다운 것>에서.

아, 즐거운 체호프! 비슷한 맥락에서, 움베르토 에코는 세상의 바보들에게는 웃으면서 화를 낼 줄 알아야 한다고 했고 무라카미 류는 적들에게 복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니 체호프를 따라 이렇게 말하자. 국가적인 비극의 조사결과를 오류와 실수투성이로 발표해 망신을 당하고 세계가 조롱하는 국책사업을 개발독재 시대의 마인드로 밀어붙이는 한편, 민간인을 불법 사찰해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고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특정인의 TV 출연을 막기 위해 제작진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등, 대한민국을 30년 전으로 되돌린 이 황당하고 창피한 정부 밑에서 보내야 할 시간이 2년 넘게 남았다는 사실에 머리를 쥐어뜯지 말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십시오. 20년이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가! (신형철 문학평론가)  

10. 07. 13. 

P.S. 나도 며칠 후에는 칼럼을 써야 하기에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웠는데, 덕분에 좀 '가벼운' 기분으로 써보기로 했다. 매번 머리를 쥐어뜯게 되지만, 그래도 4주에 한번씩일 뿐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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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통령은 정말 잘 뽑고 볼 일이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7-17 10:02 
    경향신문에서 '목수정의 파리통신'을 옮겨놓는다(지난번 신형철 칼럼과 짝을 이룰 만하다). "대통령은 정말 잘 뽑고 볼 일이다"가 제목이어서, '좀 센데!'하며 클릭했는데, MB 얘기가 아니라 사르코지 얘기였다. 하지만 결국 MB 얘기. 위안거리는 그렇게 잘났다는 프랑스인들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 베를루스코니를 총리로 둔 이탈리아 국민들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이번 월드컵에서 나란히 죽을 쒔다는 점도 공통적
  2. 인생의 아름다움과 비극적 유머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6-11 01:48 
    오늘자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읽기'를 옮겨놓는다. 체호프의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에 대한 '해럴드 블룸의 읽기'를 바탕으로 적은 글이다.번역본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열린책들),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귀부인>(고려대출판부), <사랑에 관하여>(펭귄클래식코리아)에 실린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참조했다.참고로 국내에 소개된 체호프 단편집은 이 작품을 포함하고 있는 것과 그렇
 
 
델러웨이부인 2010-07-13 14:30   좋아요 0 | URL
즐거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로쟈 2010-07-13 19:12   좋아요 0 | URL
저는 전달자일 뿐인데요...

미지 2010-07-13 16:42   좋아요 0 | URL
저도 감사드립니다 ~

로쟈 2010-07-13 19:12   좋아요 0 | URL
제가 대신 감사를 받는 건가요?^^

비로그인 2010-07-13 19:01   좋아요 0 | URL
배신할 아내가 없어서 안타깝네요 ㅋㅋ
매번 머리를 쥐어뜯게 되지만?
이건 상상이 잘 안 되네요.
이렇게 얘기하면 화내실지 모르겠지만 늘 술술 힘들이지 않고 쓰시는 것 같아서요^^

로쟈 2010-07-13 19:08   좋아요 0 | URL
나름대로 쥐어뜯습니다.^^;

paul 2010-07-13 19:10   좋아요 0 | URL
이제는 정부에 대한 비판이 일상적 대화의 주제가 된 듯하군요. 정말로 30년 전으로 되돌려진 시간이라면 오히려 지금의 대응방식이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행동이 결여된 '비판의 말들'이 유희되고 소비될 수도 있다는 우려입니다. 왜 대부분의 조소섞인 비판들이 2년이라는 유예를 굳이 들먹이며 고통의 시간을 합리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에 골몰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2년 뒤에 어떤 세상이 도래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인데, 단지 시간의 (길고) 짧음이라는 추상적 안위에 안도하라는 충고가 지나치게 허무하게 들리는 것은 왜일까요. 더 가볍게 읽는다면야 물론 문제 될 것은 없겠죠. 웃으면서 화내는 것은 더 어렵지만, 아직 우리들은 정당하게 화내는 법조차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로쟈 2010-07-13 19:12   좋아요 0 | URL
"체념하지 않으려면 즐거워야 한다"는 게 한 가지이고, 분노도 축적하려면 즐거움의 외양을 필요로 한다는 게 다른 한 가지입니다. 사실 정색하고 비판하기엔 너무 엉터리 같기도 하구요(천안함 조사결과도 그렇지만). 안에서부터 바가지가 새기도 하고...

루딘 2010-07-14 08:27   좋아요 0 | URL
아내는 배신을 안하는데 조국이 배신을 행하는 파렴치한 현실은 어찌하나요? 조국이라는 개념보다는 정부의 개념이겠지만... 항상 로쟈의 글에 감사를 드리며.

로쟈 2010-07-14 15:42   좋아요 0 | URL
네, 조국은 좀 다르죠. 모국이라고 해도 되겠구요.^^;
 

내일자 한국일보에 실리는 좌담기사를 옮겨놓는다. 마이클 센댈의 화제작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2010)가 지금 한국사회에서 왜 읽히나를 화두로 삼아 장동진 연세대 정외과 교수와 대담을 나누었다. 오늘 오전의 일인데(연장전까지 간 월드컵 결승전 여파로 하루 종일 피곤하다), 대담이라곤 하지만 기자의 질문에 응답한 내용이 대담기사로 재구성됐다. 듣자 하니 초판 5만부를 찍은 책은 현재 11만부 가량이 판매됐고, 이런 추세라면 30-40만부는 무난하리라는 전망이었다. 현 시점에선 '문화적 사건'과 '사회적 현상'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일보(10. 07. 13) "한국, 형식적 민주화 이후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마이클 샌델(57)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발행)가 오프라인서점 교보문고와 온라인서점 예스24, 알라딘 등의 7월 첫주 종합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모두 1위에 올라 화제를 뿌리고 있다. 교보문고의 경우 인문서가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은 2002년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1> 이후 8년, 철학서로는 2000년 <노자와 21세기2>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 출판계는 '문화적 사건'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출판사 측은 "독자층의 70%가량이 20~30대이며, 여성 독자들도 40%대로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젊은이들은 왜 '정의'를 묻고 있는가. 정의론 분야 전문가인 장동진(57)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로쟈'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진 인터넷 서평가 이현우(42ㆍ서울대 노어노문학과 강사)씨의 대담을 마련했다. 



▦이현우= 저도 이 책이 나오자마자 구입해서 블로그에 소개했습니다. 이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고 바랬는데, 제가 걱정할 게 전혀 아니었어요.(웃음)

그동안 공동체주의 정치철학자들의 책이 국내에 소개됐고 이론가들이 여러 번 방한하기도 했고 강연집도 나와 있어요. 근데 이런 책들은 다 관심을 받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이 열풍이 마이클 샌델이란 저자나 정치철학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거죠. 그럼 뭐냐. 우선 타이틀이 주는 효과인데, 천안함 사건, 4대강 논란, 지방선거 국면에서 현 정부의 실정이 도마에 오르면서 <정의란 무엇인가>란 제목의 문제 제기가 시의적절했어요. 2008년 촛불 정국 때도 <죽음의 밥상>이란 책이 1만부 정도 나갔다고 합니다. 이 책도 수만 부 정도는 나가겠구나 예상은 했는데, 그것을 뛰어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러면 뭘까. 진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무엇보다 잘 읽힌다는 점입니다. 하버드 효과 얘기들을 하지만, 하버드 최고 인기 강의라 해도 읽기 어려우면 이런 반응이 나오지 않겠죠. 책에서 다루고 있는 벤담이니 칸트, 롤스는 사실 쉽게 접하기도 어렵거니와 이해하기도 어려운데, 그런 철학자들 얘기를 하는데도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거죠.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하고. 독자들 스스로도 놀라워하는 거 같아요. 폼으로 읽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인문서로 크게 화제가 된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도 많이 팔렸지만 실제로 다 읽은 독자는 많은 거 같지 않아요. 근데 이 책은 독자들이 별점을 네댓 개 주면서 정말 좋은 책이라고 서평을 남겨요. 그만큼 읽고 공감했다는 뜻이죠.

▦장동진= 또 다른 원인으로는 지금의 우리 정치 현실을 들 수 있을 겁니다. 현 정당정치에 국민들이 많은 회의를 느끼고 '이들이 과연 우리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가', '파당적 이익을 대변하는데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정의'란 말이 우리사회의 어떤 결핍과 갈증을 채우는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떤 근본 원칙 하에서 움직이고 작동해야 하는가, 서양에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그런 관심을 촉발시킨 것이죠.

특히 청년실업으로 고통받고 있는 20대가 이 책에 주목한 것을 보면 이들이 우리 사회의 비전에 대해서 뭔가 암울하다, 부당하다고 무의식적으로 인식해왔던 것 같아요. 그동안 우리사회가 민주화운동으로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됐지만, 20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공평한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는 거죠. 한편으로 그들이 이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런 상황에 처해있기도 하고요. 공평한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불만과 이런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얽혀서 정의에 대한 관심으로 표출된 게 아닌가 싶어요.

▦이= 현 정부가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 세워진 정통성과 합법성을 가진 정부인데도, 촛불 때도 그랬지만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게 어쩌면 모순적인데요. 문제는 우리사회의 제도적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가 수십년 간의 노력을 통해 성취된 것이긴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라는 문제의식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내실이 필요하다는 거죠. 민주주의는 분명히 하고 있는데, 그 결과가 부패나 빈부격차의 확대 등으로 나오니까요. 그 때문에 이 책이 던지는 정의라는 기표가 화두처럼 젊은이들에게 와 닿았다고 봅니다.

▦장=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정의 담론 자체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사실 과거에는 정의라는 게 독재정권 타도하고 민주주의 확립하는 거였죠. 그게 명백했기 때문에 따로 정의라는 담론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문제가 사회 곳곳에서 대두되면서 학자들 간에 이론적인 면에서 논의가 오갔습니다.

이 책을 계기로 정의 담론이 일반 담론으로 확대된다면 우리사회의 근본적인 원칙에 대해 새롭게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의는 공동체의 근본적인 운영 원칙입니다. 자유주의적 이념, 시장적 원리, 민주주의 원리 등의 큰 근간이 어떻게 조합돼야 하느냐는 점인데, 이 원리가 구체화되면 헌법이 되고 더욱 세분화하면 법과 정책이 되겠죠. 이 근본 원칙이 잘못되면 어떤 사람은 유리하고 어떤 사람은 불리하게 되는, 사회구조적 불평등을 양산하게 되는 겁니다. 정의 담론의 확산으로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새삼 인식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를 논의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샌델이 책 결론부에서 강조하는 공동체주의나 공동선의 정치가 한국적 정서와 맞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1970~80년대에 자유주의가 주입됐지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가족애나 애국심 등이 더 친숙한 가치이죠. 그런 점도 이 책을 쉽게 받아들이게 하는 요인인 것 같아요.

▦장= 이 책이 개인의 자유나 권리보다 공동체주의적 성향이 강한 한국적 정서와 맞아떨어진 부분입니다. 샌델은 또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시장의 자유에 대해 구조적 제한을 둬야 한다는 입장인데, 이런 점은 국내 진보 진영의 생각과도 부합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샌델은 중도좌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결국 국가의 능력을 인정해야 하고, 이럴 경우 '확대된 국가'의 위험성이 있습니다.

샌델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협력해서 공공선에 참여할 수 있고 정치적 영역에서도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보는데, 중립적 자유주의자가 보기엔 이게 낭만적 생각이라는 거예요. 도덕적 판단을 개입시키면 매우 복잡해집니다. 샌델이 말하는 '덕성 정치'가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실현될 경우 '강한 국가'라는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도 있어요. 그의 주장은 아직 이론적으로 완성이 안됐다고 생각해요. 책의 뒷부분이 앞부분과 달리 명쾌하지 않은 것도 이런 점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 정의 담론이 확산되는 것은 매우 긍정적입니다. 공정하고 정당한 제도 여하에 따라 우리 삶의 조건은 달라집니다. 정의가 이제 막 사회적 담론이 되기 시작하는 단계인데,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문제입니다

  

■저자 마이클 샌델은

미국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57ㆍ사진)은 공동체주의 이론의 대가다. 브랜다이스대 졸업 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27세 때인 1980년 하버드대 최연소 교수가 됐고,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하며 '공동체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1982)를 발표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하버드대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그의 강의 '정의'는 2007년 가을 학기 수강생이 하버드대 사상 최대인 1,115명을 기록하는 등 20여년 간 1만 4,000명 이상이 수강했다. 이 강의는 하버드대와 보스턴 공영방송(WGBH)이 2007년 편당 50분의 TV시리즈 12편으로 제작해 방송했는데, 온라인(www.justiceharvard.org)으로 강의를 보면서 토론에 참여할 수도 있다.

10. 07. 12.  

P.S. 기사 말미에 나온 대로, 장동진 교수는 샌델의 '덕성 정치' 혹은 공동체주의 정치철학이 아직 미완성이며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많이 남겨놓고 있다고 주장한다. 존 롤스 전공자다운 식견으로 보였다. 실제로 장 교수는 <정의론> 이후 롤스의 대표작인 <정치적 자유주의>와 <만민법>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자유주의 정치철학에 대한 해설서 <현대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이해>(동명사, 2001)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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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nanoc의 생각
    from conanoc's me2DAY 2010-07-13 22:14 
    왜 읽히나 철학서적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게 10년만이라는.
  2.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공동체주의적 접근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8-20 08:45 
    <정의란 무엇인가>로 적어도 한국과 일본에서는 붐을 일으키고 있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방한 기자간담회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어제 이사중에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서평을 청탁받아서 겸사겸사 챙겨놓는 것이기도 하다. 일정상 외부 청탁원고는 사양하고 있지만 이미 읽은 책인데다가 언론 인터뷰 등에 응한 바도 있어서 나대로의 감상을 정리해두려고 한다. 여건상 9월초에나 쓰게 되겠지만. 기사 중에 '글로벌 교
 
 
2010-07-13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3 0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콩세알 2010-07-13 06:32   좋아요 0 | URL
약간은 회색눈으로 이 현상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래도 궁금해져서 소개해 주신 사이트에 가서 첫강의를 들었습니다. 오디오 강의는 물론이고 비디오 강의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 10분 이상 듣기가 힘들었는데 파트1을 한번도 자리를 뜨지 않고 다 봤습니다. (고맙게도 자막도 깔아주더군요. ^^ ) 상당히 흡인력이 있는 강의더군요. 엄청나게 많은 학생들이 강의를 듣는 것도 인상적이었구요. 책이 재밌을 것 같다는 실감이 옵니다. 사이트 소개 감사합니다.

로쟈 2010-07-13 08:11   좋아요 0 | URL
20대 대학생이나 직장 여성까지 손에 든다는군요. 신드롬의 경계쯤에 와 있는 거 같습니다...

mirror 2010-07-13 07:36   좋아요 0 | URL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되었다고 하셨군요? 지금 한국 사회의 문제가 형식적 민주주의가 잘 지켜지고 있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는 거죠? 홉스 이래의 자유주의적 정치철학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의 정치체제가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해도 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나요? 언론이 정권과 결탁해서 왜곡을 밥먹듯이 하는 것이 절차적 민주주의가 잘 되는 나라에서 발생하는 일들입니까? 현정부는 민주주의적인 절차를 통해서 집권했으나, 통치방식은 민주적이지 않습니다.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통치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자유주의와 공통체주의의 논쟁 이전의 문제들입니다.

로쟈 2010-07-13 08:17   좋아요 0 | URL
"민주주의적인 절차를 통해서 집권했으나, 통치방식은 민주적이지 않습니다"가 공통적인 전제입니다. 저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란 말을 살짝 비틀었을 뿐입니다. 형식적 민주화 이후에 정치는 더이상 문제될 게 없다는 인식이 벽에 부닥친 것이라고 봅니다. 현 집권세력을 '반민주 세력'으로 몰아붙일 수도 있지만 크게 어필할 거 같지 않습니다. '불의한 세력'이라고 하면 사정이 좀 다르죠. 더구나 '정의'는 오랫동안 5공(민주정의당)의 전유물이고 그 유산이었습니다(선점효과죠). 이젠 되찾아야 할 프레임이라고 생각합니다...

2010-07-13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3 0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3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3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콩세알 2010-07-13 11:21   좋아요 0 | URL
리바이어던을 얼마전에 읽고 있었는데 홉스는 정치체제가 자유를 억압해도 된다고는 안했지만 목숨을 지키려면 알아서 내어놓으라고 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리고 자유란 주권자가 법률이나 명령의 방식으로 간섭하지 않는 부분에서만 허용된다고 하구요. 그런데 이런 홉스가 로크로 로크가 밀로 그리고 자민당(lib-dem)으로 신자유주의로 간다고 하는데 영 헷갈려요.

로쟈 2010-07-13 19:18   좋아요 0 | URL
서양정치사상사 종류를 참고하셔야 하나 봅니다...

kumun 2010-07-13 13:37   좋아요 0 | URL
저는 이 현상에 윤리 인강에서 가장 유명인사인 '이현'씨의 강의가 기여한 바가 크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나라가 얼마나 썩은 사회인지를 말하시면서 정의를 말하면 바보가 되는 사회라고 하셨죠. 우리나라가 얼마나 썩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면서...
또한 자신은 노무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노무현 정부가 역사상 가장 깨끗한 정부였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하셨죠. 이 부분만 편집이 돼서 인터넷 유머사이트 등에서 많이 화제가 됐었죠.
또한 몇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윤리과목을 선택하는 많은 수의 학생들이 그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을 것을 생각하면 무시못할 영향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로쟈 2010-07-13 19:14   좋아요 0 | URL
새로운 해석이네요.^^ 젊은 네티즌에겐 어필했을 것도 같습니다...
 

흥미를 끄는 논쟁 기사가 있어서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의 '진보적 애국주의' 논쟁 후일담 성격인데, 반년간지 <시민과 세계>(여름호)에서 서동진, 장은주 두 교수가 '애국주의'에 대한 각자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음미해볼 만한 주제라 생각한다.   

한겨레(10. 07. 08) '시민과 세계’ 여름호, ‘진보적 애국주의’ 논쟁 다시 점화  

우리나라 진보진영에서도 ‘애국주의’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진보적 애국주의’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붙을 조짐이다. 지난번 <한겨레> 지면에서 벌어졌던 논쟁이 진보적 애국주의 자체의 성격과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번엔 마르크스주의가 개입해 국가를 매개로 한 정치적 기획 자체의 모순을 지적했다. 

최근 나온 반년간지 <시민과 세계> 여름호는 서동진 계원디자인예술대학교 교수의 ‘과연 공화국만으로 충분한가 : 애국주의 논쟁을 되짚어봐야 할 이유’와 진보적 애국주의를 주창했던 장은주 영산대 교수의 ‘민주적 애국주의와 민주적 공화주의 : 비판과 문제제기에 대한 응답’ 등 두 편의 글을 나란히 실었다. 서 교수가 지난해 말 지상논쟁과 별도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실었던 장은주 교수의 주장에 대한 비판의 글을 다시 가다듬어 싣고, 장 교수가 이를 포함한 진보적 애국주의에 대한 다양한 문제 제기에 대해 응답을 하는 방식으로 꾸려졌다.

이번 논쟁에 붙일 수 있는 소제목은 ‘공화국만으로 충분한가’이다. ‘민주공화국’을 명시한 헌법을 내세워 진보적 애국주의를 주장한 장은주 교수는 “애국주의는 특수주의적이지만, 인권을 비롯한 보편적 가치와 결합하는 한 민주주의를 추진하고 확장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공화국의 이상만으로는 보편주의적인 국가의 모순을 극복할 수 없으며, 이것을 간과하고 국가를 새로운 진보 정치를 기획하는 마당으로 삼은 것이 진보적 애국주의의 문제라고 비판한다.

민족 또는 민족을 통해 구성되는 국가라는 공동체는 사람들을 직접적인 삶의 세계로부터 떼어놓고 ‘개인화된 개인’을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기로서 이미 보편주의적이라는 주장이다. 쉽게 말해, ‘나는 한국인’이라고 말할 때 일본인·프랑스인과는 다른 공동체에 속한다는 측면에서 특수주의적이지만, 계급·성별과 같은 직접적인 삶의 세계로부터 떨어져나와 ‘국적’으로 규정되는 개인이 된다는 점은 보편주의적이란 것이다. 



서 교수의 이런 주장은 프랑스 정치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의 이론에 주로 기대고 있다. 발리바르는 근대 국가가 보편적 인권 및 시민권을 확대해왔지만, 다른 한편 ‘국민’이라는 특권적 공동체를 만들어 그 권리를 한정했던 점에 주목한다. 근대 국가는 자본주의와 한 몸인데, 자본주의가 일으키는 계급투쟁 및 사회적 갈등을 조절하기 위해 사람들이 노동자·농민이 되기 이전에 시민적 권리를 줘서 국민으로 만드는 작업을 수행해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자본주의적 보편성과 정치적 공동체로서의 보편성을 함께 갖고 있는 모순을 안고 있다는 것이 서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자본주의적 사회관계 속 착취와 불평등을 고발하고 거부하기 위해 더 많은 권리나 더 좋은 법에 호소해야 하나, 국가는 그럴수록 효과적인 정치적 공동체로서 구실하지 못한다”고 진단한다. 만약 진보적 애국주의가 말하듯 “국가가 정치적 공동체로서 보편성을 담지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결국 자본주의와의 대결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장은주 교수는 이런 지적에 대해 “민주적 헌정주의에 대한 좌파주의적 회의”라고 규정하고 “‘자본주의의 극복’이라는 급진성을 좌파적 순혈주의의 추구라는 방식으로 사고하는 완고한 지적 습관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자신이 주창한 진보적 애국주의의 배경적 이념을 ‘민주적 공화주의’라고 이름붙이고, “민주주의의 이념과 원칙이 지닌 참된 해방적 잠재력을 신뢰하는 근본·급진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특히 그는 서 교수가 지적한 보편주의적 국가의 모순을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전제하며, “바로 그 내적 모순이 끊임없이 국가 안에서 실질적 보편화에 대한 강력한 내적 동학을 발생시킨다”고 주장했다. 곧 인권과 같이 추상적이지만 가장 보편적인 원칙이 보편적으로 입법화되는 것 자체가 현실적 실천이 이뤄질 수 있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통해 자본주의를 제어·규제할 수 있다”며 ‘공화국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비판을 반박한다. 



두 사람의 시각 차이가 워낙 커 앞으로 논쟁이 계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공화국만으론 안 된다”는 서 교수의 비판은 진보적 애국주의뿐 아니라 최근 관심이 모였던 공화주의 등 정치철학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또다른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는 “‘권리의 정치’를 기반으로 삼다보니 자꾸 대안을 찾아 국가나 헌법으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인다”며 “그러다보니 착취와 불평등이 실제로 드러나는 삶의 공간으로서의 ‘사회’가 잊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곧 시민적 권리에 기대느라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으면, 노동문제도 노동 현장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기관에 민원을 넣어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다.(최원형 기자) 

10. 07.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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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0-07-08 09:37   좋아요 0 | URL
저는 서교수 입장에 더 설득이 되는군요. 국가민주주의의 보편성은 너무 추상적이어서 삶의 구체성은 그 시작부터 배제되어 있다고 느껴집니다... 지금 한국만 봐도 국가민주주의가 얼마나 황당할 수 있는지 바로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로쟈 2010-07-08 13:49   좋아요 0 | URL
이론적 버전으론 지젝과 라클라우/무페(급진민주주의) 사이의 논쟁으로도 읽힙니다...

미지 2010-07-08 15:55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로쟈 2010-07-09 00:02   좋아요 0 | URL
아, 그냥 제 해석이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