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아부 그라이브와 테리 시아보

11년 전에, 지젝의 <시차적 관점>에 대해 쓴 리뷰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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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사랑의 대상으로서 시선과 목소리

10년 전에 쓴 페이퍼다. 지젝과의 인연도 얼추 20년이 돼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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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사회주의냐 공산주의냐

10년 전에 쓴 리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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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지젝과 함께 한국문학을 읽다

15년 전의 글이다. 한국문학강의의 비중을 늘리면서 다시 곱씹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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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의 <팬데믹 패닉>은 11개의 장과 부록, 그리고 특별기고문으로 구성돼 있다. 200쪽이 안 되는 분량의 책 구성이 그렇기에 각 장은 더욱 짧아서 단숨에 읽을 수 있다. 10페이지 분량이라면 10분이면 충분히 읽게 된다. 가끔 곱씹어볼 만한 단락들과 만냔다 하더라도.

간간이 쉬는 시간마다 한두 장씩 읽고 있는데 어젯밤에 읽은 것 중 하나가 2장 ‘우리는 왜 늘 피로한가?‘다. ‘피로‘ 하면 떠올리게 되는 바로 그 저자와 책,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검토하고 있는 장이다. 나도 몇 차례 강의에서 다룬 바 있는데, 지젝의 두 가지 비판은 예상과 별로 다르지 않다. 성과라면 영국 작가 카밀라 샴지의 소설 <홈 파이어>를 소개받아 바로 주문한 것. <안티고네>를 다시 쓴 소설이라는데 다행하게도 번역돼 있다.

지젝은 한병철이 제시하는 새로운 주체성으로서 성과 주체에도 계급차별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데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회사를 소유하거나 경영하는 최고 관리자와 집에서 자신의 컴퓨터와 홀로 씨름하며 소일하는 불안정한 노동자 사이에 확연한 간극이 있다. 물론 그들은 분명 우리가 아는 의미에서 주인도 노예도 아니다.˝

마지막 문장은 교정이 필요하다. 한병철이 말하는 성과주체는 자기 착취적 주체로서 오늘날 주인과 노예의 계급 투쟁은 내부로 전이되었다는 게 핵심 주장이다. 우리는 각자가 자신의 주인이자 노예라는 것. 그렇지만 ‘최고 관리자‘와 ‘불안정한 노동자‘가 그렇게 동일한 주체성을 갖는가, 동일시될 수 있는가라고 지젝은 묻는다. 번역문은 이러한 맥락을 놓쳤다.

마지막 문장은 ˝they are definitely not both a master and a slave in rhe same sense.˝를 옮긴 것인데 ˝그들은 결코 같은 의미에서 ‘주인이면서 동시에 노예‘인 게 아니다˝ 정도로 옮겨져야 한다. 같은 ‘성과주체‘라 하더라도 엄격하게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이어트와 결식을 구별해야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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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8 13: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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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8 14: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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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9 14: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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