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무어와 함께 20세기 구상조작을 대표한다는 이탈리아의 조각가 마리노 마리니의 대규모 전시회가 개최된다고 한다. 나로선 생소한 작가인데, 실상 조각과 관련한 책들 들춰본 게 하도 오래전이니 나의 무지에 핑계가 없는 건 아니다. 관련기사와 함께 몇 작품을 미리 감상해본다.

한국일보(07. 02. 12) 구상조각 거장 마리니, 그가 왔다

전후 세계의 불안과 비극을 표현한 기마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조각가 마리노 마리니(1901~1980)의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국내 첫 전시가 덕수궁미술관과 선화랑에서 나란히 시작한다. 마리니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헨리 무어와 함께 20세기 구상조각을 대표하는 작가. 두 전시는 조각 뿐 아니라 미술작가로서 그의 출발점이었던 그림도 함께 소개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14일부터 덕수궁미술관에서 여는 <마리노 마리니-기적을 기다리며> 전은 조각과 회화 105점으로 그의 예술 생애 전반을 돌아보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크게 세 가지 주제, 기마상과 포모나, 초상조각으로 분류해 시기별로 전시를 구성했다.

고대 그리스ㆍ로마 작품에서 착안한 마리니의 기마상은 비극적 시대의 표상이다. 1930년대 후반의 초기 기마상에서 보이던 말과 자연의 조화로운 결합은 2차 대전을 지나면서 불안한 긴장감을 띠고 1950, 60년대로 갈수록 격렬하게 요동친다. 말은 난폭하게 몸부림치고 기수는 통제력을 잃은 채 간신히 매달려 있거나 땅으로 처박힌다. 60년대에 들어서면 말과 기수는 형체조차 무너져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사그라져 가는 비극의 절정에 이른다. 그의 작품 중 가장 거대한, 59년 네덜란드의 헤이그 광장에 설치한 높이 6m의 청동 기마상에는 말굽들 중 하나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우리는 건설하며 우리는 파괴한다. 이 세계에는 절망적인 노래만 남아 맴돈다.”



비극적 시대를 구원할 기적을 기다리는 마음은 풍만한 육체의 여성 누드, 포모나 시리즈로 표현됐다. 포모나는 고대 이탈리아의 에트루리아 문화에 등장하는 과일나무와 풍요의 여신이다. 마리니 자신의 발언에 따르면 포모나는 “비극적인 전쟁으로 망가진 행복의 시기를 의미한다.” 둥글게 부풀어오른 배와 커다란 가슴을 지닌 마리니의 포모나에서 풍기는 풍요와 관능은 대지의 치유력을 상징한다.



마리니의 조각은 특히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사진), 화가 샤갈 등 예술가의 초상으로 유명하다. 예술가의 예민한 기질과 내면을 포착한 걸작들이 이번 전시에 나온다. 색채에 매혹된 추상화가로서 마리니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강렬한 원색의 그림도 볼 수 있다.

22일 시작하는 선화랑의 마리노 마리니 전은 40여 점을 선보인다. 조각도 있지만, 그가 조각의 거장이 되기까지 작품의 바탕이 되었던 회화와 드로잉, 판화를 중심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덕수궁미술관 전시는 4월 22일까지, 선화랑 전시는 3월 21일까지 한다.(오미환기자)

07. 02. 12.

P.S. 마리니의 작품들을 검색해보았는데, 개인적으로 조각보다 더 흥미를 갖게 되는 것은 원색의 회화 작품들이다. 그리고 기수가 말안장에 얌전하게 앉아 있는 조각상이 아니라 목을 아주 길게 뺀 말 조각상. 마음에 드는 몇 작품의 이미지를 더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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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 학교에 있는 서가에서 연구서 한 권을 찾다가 우연히 칸트의 <판단력 비판>(책세상, 2005)를 손에 들게 됐다. 물론 이 책세상판은 제1부에서 '미의 분석론'과 '숭고의 분석론'만을 옮긴 발췌본이다. 완역본이나 영역본이 모두 집에 있기 때문에 굳이 학교에 놓아둘 필요가 없어서 가방에 챙겨넣으려다 역자가 쓴 '들어가는 말'을 읽어보고, 또 거기서 '감성적asthetisch'이란 번역어에 대해서 용어해설을 참조하라고 하길래 그것까지 읽어보았다.

 

 

 

 

흔히 '미감적', '미적'이라고 번역되어온 칸트의 'asthetisch'를 주로 '감성적'이라고 옮기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놓고 있는데, 서양어권에서 사용하고 있는 '아름다운'이란 표현(schon/beautiful/beau)의 연원이 'asthetisch'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aisthesis'에 있지 않다면서 역자가 인용하고 있는 것이 폴란드의 미학자이자 미술사가 타타르키비츠(1886-1980)였다(국내엔 그의 주저인 <여섯 가지 개념의 역사> 외에 3권짜리 <미학사> 가운데 두 권이 더 출간돼 있다). 

현대 영어에서 말하는 beautiful은 그리스어로는 kalon, 라틴어로는 pulchrum이라고 지칭되었다. 라틴어 명칭은 고대와 중세 동안 줄곧 사용되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어 bellum이라는 새 단어로 대체되면서 사라졌다. 이 새 명칭은 유래가 다소 특이한데, '선'을 뜻하는 bonum에서 지소사 bonellum을 거쳐 다시 bellum으로 축약된 것이다. 처음에 이 말은 여성과 어린이에 한정해서 쓰이다가 나중에는 앞서의 pulchrum울 밀어내고 모든 종류의 미를 가리키게 되었다. 현대어에는 pulchrum의 파생어가 전혀 없으니 bellum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형태로 채택되었다. 즉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의 bello, 프랑스어의 beau, 영어의 beautiful이 그것이다. 그밖의 유럽어는 토착어에서 유래한 독자적 표현을 사용한다. 독일어의 schon, 러시아어의 krasseeviy 등이 그것이다.(178-9쪽)

타타르키비츠를 인용한 이 문단은 원저 'A history of six ideas : an essay in aesthetics'(영어본 1980)의 국역본 <여섯 가지 개념의 역사>(이론과실천, 1990), 144쪽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이 책은 <미학의 기본개념사>(미진사, 1990)라고 다른 번역서가 같은 해에 출간된 바 있으며, 손효주 역의 이 책은 <미학의 기본 개념사>(미술문화, 1999)로 재출간되었다. 그리고 원제의 '여섯 가지 개념' 가운데 '예술' 파트만 따로 떼 번역한 책으로 <예술 개념의 역사>(열화당, 1990)가 있다. 짐작에는 이 세 종의 번역이 거의 동시에 진행되었다가 한꺼번에 출간된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인용문에 흥미를 갖게 된 건 러시아어의 krasseeviy 란 말이 아무래도 미심쩍어서였다. 이론과실천판을 내가 갖고 있는지 기억에 가물가물해서(있다고 해도 박스보관도서이지만) 미술문화판을 구해볼 작정이었는데, 귀가길에 들른 서점에서 뜻밖에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아직 판매중인 책을 구할 수 있었다(내가 산 건 2006년판 초판 4쇄이다). 1997년에 찍은 미진사판도 품절되지 않고 알라딘에서는 판매하는데 같은 역자의 같은 책이지만 나중에 나온 미술문화판보다 3,000원이 더 비싸다(물론 미술문화판의 후기에서 역자는 이전판의 일부 오역들을 바로잡았다고 했으니 엄밀하게 '같은 책'은 아니겠다). 좀 희한한 시스템이긴 하나 아무튼 45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을 12,000원에 사들고서는 제일 먼저 펼쳐본 곳이 역시나 '미: 개념의 역사' 파트였다.

미술문화판의 이 대목 번역(155-6쪽)은 그리스어 kalon을 희랍어로 표기해준 것 말고는 이론과실천판과 대동소이한데, 차이라면 마지막 문장이 "독일어의 schon, 러시아어의 krasseeviy, 폴란드어의 piekny 등이 그렇다"로 마무리되는 것 정도이다. 한데, 여기서도 러시아어의 krasseeviy 라고 내 짐작과는 다르게 표기돼 있었다. 국역본의 대본이 된 영어본을 바로 찾아볼 수 없어서 집에 돌아와 내가 한 일은 이 장의 원출처가 되는 저널을 인터넷으로 뒤져보는 것이었다. 미국미학회가 발행하는 잡지에 실린 '미의 대이론과 그 쇠퇴The Great Theoty of Beauty and Its Decline'(1972)가 그 원출처이다.

The Journal of Aesthetics and Art Criticism Cover Image

다행히도 텍스트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는데, 거기엔 'Russian, krassivyj' 라고 짐작했던 단어가 제대로 표기돼 있었다. 'krasseeviy'와 'krassivyj'는 철자가 전혀 다르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추정해보면, (1)영어본의 오타이거나 (2)두 국역본의 오기, 두 가지 가능성밖에는 나로선 떠올릴 수 없다. 그런 오타를 내기도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명의 역자가 똑같은 착시를 일으켰을 가능성도 매우 낮다(비슷한 시기에 출간됐으므로 한 역자가 다른 역자의 번역을 참조했을 리도 없고). 영어본을 확인해보기 전까지는 이래저래 미스테리하다.

참고로, 러시아어의 '아름다운 krassivyj'을 구글에서 검색하면 가장 먼저 뜨는 이미지는 '아름다운 정원'이다. 형용사의 남성형이기에 기대(?)를 약간 벗어나는 것. 러시아 여성들이 아주 듣기 좋아하는 단어이기도 한 '아름다운'의 여성 형용사 'krassivaja'를 검색해야 그래도 기대에 부응하는 이미지들이 조금 뜬다. 아래의 미스 우크라이나처럼...

07. 0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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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80 2007-01-31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남성형과 여성형의 구분이 있는 단어를 쓰는 나라의 언어관을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 나라일수록 미학과 철학이 뿌듯하게 발전한 곳이 많은데 이것도 일종의 언어현상과 관련된 것인지. 저는 아주 오래전 잠깐 배운 프랑스어도 남성형과 여성형의 구분때문에 애를 좀 먹었거든요.

로쟈 2007-02-01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구분은 사실 대부분의 서구어들에 공통되는 것인데요. 그렇다고 미학/철학의 발달과 관계가 있을 거 같지는 않은데요. 제 생각엔.^^
 

이번 주중에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앤디 워홀 그래픽전'을 관람할 예정이다. 전시는 지난 2일부터 시작됐는데, 까맣게 잊고 있다가 기회가 닿았다(따지고 보면 어려운 걸음도 아니지만). 지나간 기사들을 훑어보다가 그 중 하나를 옮겨놓는다. 전시에 관한 안내는 미술관의 홈피(http://www.snumoa.org/Exhibition/view.asp?sType=c)를 참조할 수 있다.

경향신문(06. 12. 04) 언제봐도 새로운 도발 ‘앤디 워홀’

“돈을 버는 예술이 진정한 예술이다.” “나는 기계가 되고 싶다.”

오늘날 순수미술에 대한 도전은 기실 팝아트의 대표작가 앤디 워홀(1928~1987)로부터 시작됐다. 여러 도발적인 선언을 통해 스스로 상업예술가임을 드러내고 미술 역시 상품이라고 당당히 떠들고 다녔던 예술가. 워홀은 자신의 작업실조차도 상품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공장(Factory)’이라고 이름붙였다. 조수를 쓰는 일 또한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돈과 명성, 권력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드러냈다.



그래서 앤디 워홀은 현대 작가들에게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면서 동시에 모범이다. 또한 요즘 화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성에 기반한 소재를 그린 작품들은 실은 워홀의 팝아트 작품과 일견 닮아 있다. 정형민 서울대 미술관장은 이러한 요즘 작품들에서 풍기는 ‘네오팝’적인 성향의 연원은 바로 워홀에 있다고 말한다. 정관장은 “일본과 한국 작가들이 요즘 다시 모든 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미술작품을 제작하고 있고 중국의 정치적 팝아트 작품 역시 워홀의 스타일로 정치상황을 풍자한 것”이라며 이 때문에 다시 앤디 워홀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미술관이 지난 2일 시작해 내년 2월10일까지 여는 ‘앤디워홀 그래픽전’은 초기 상업 광고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시기의 구두작업에서 이제는 워홀의 상징이 된 캠벨 스프캔, 사진 연작, 전기의자 연작, 꽃 연작과 위장 연작 등 그의 전 생애를 망라하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이 전시는 미국 뉴욕시립대학(CUNY)의 부속기관인 QCC 아트 갤러리와의 교류전으로 미국과 스페인의 개인 소장가의 컬렉션 60여점으로 구성됐다.

그래픽전이라는 제목은 워홀의 작품이 기본적으로 판화기법에 기반하는 데서 따왔다. 워홀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지 않고 늘 기존의 이미지를 변형하고 가공했다. 1960년대 전후 코카콜라 병과 캠벨스프캔, 브릴로 박스 등 일상의 상품 이미지를 평면으로 옮겨온 작품은 워홀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가 평생을 거쳐 몰두한 작업은 실크스크린 방식으로 제작한 초상작업이다.



워홀은 실크스크린을 이용해 원형을 복제하면서도 여러가지 색상을 사용하고 이미지의 배치, 인쇄 상태를 달리했다. 언뜻 인쇄상의 실수처럼 보이는 실크스크린 작품들은 기계적인 작업에 손맛을 더하고 순수미술가로서 독창성이라는 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의도적인 기법이었다. 전시에는 유명인에 대한 워홀의 지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재키’ ‘리즈’ 등이 전시 중이다.



워홀은 1960년대 중반부터 죽음의 이미지가 강하게 드리워져 있는 ‘전기의자’ 연작, 존 F 케네디를 모델로한 ‘플래쉬’ 연작(이상은 전시 중), ‘자살’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으스스한 분위기가 서려있는 이들 작품은 고객들로부터 외면당했다. 그래서 밝고 경쾌한 것에 대한 사람들의 동경을 읽어내고 돈을 벌기 위해 제작한 것이 바로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감이 살아있는 ‘꽃’ 연작이다.



관람동선을 따라 돌다 마지막으로 만나는 작품은 위장을 위한 알록달록한 군복 이미지에서 따온 ‘카모플라지’ 연작이다. 평생 자신의 작품 이면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며 표면만 봐달라고 주문하던 워홀의 마지막 작품이다. 온갖 화려한 색깔로 변형된 ‘카모플라지’는 세상의 관심을 즐기면서도 철저히 자신을 감추려했던 워홀 자신을 반영한 일종의 추상적 자화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윤민용 기자)

06. 12. 25.

 

 

 

 

P.S. 워홀에 관한 책들은 가장 최근에 나온 클라우스 호네프의 <앤디 워홀>(마로니에북스, 2006)를 비롯해서 여러 권이 나와 있다. '상식'이 필요하다면, <30분에 읽는 앤디 워홀>(랜덤하우스코리아, 2005)을 손에 들면 되겠고, 한 작품이라도 소장해보고픈 꿈을 키우고 싶다면 <앤디 워홀 손안에 넣기>(마음산책, 2006)를 먼저 손안에 넣으면 됬다. 워홀 이야기들은 미술비평가 김광우의 책 등을 훑어볼 수 있겠다. 나는 (예전에 20분 읽어두었기에) 10분만 더 읽고 전시장에 가볼 예정이다. 특별히 관심이 끄는 건 '전기의자' 시리즈인데, 죽음에 대한 워홀의 강박관념을 드러내준다고 하니까 흥미가 생긴다(게다가 대중으로부터 가장 외면받은 시리즈!). 사실 워홀은 한 채권자의 권총에 맞아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지 않았나? 농담삼아 말하자면, 전기의자가 그보단 낫다고 생각했을까?.. 

P.S.2. 전시회를 오늘 관람할 수 있었다. 앞에 적은 마지막 멘트는 수정되어야 하는데, 워홀이 '전기의자' 시리즈를 제작한 건 1967년이고, 그가 피격당한 건 이듬해인 1968년이다. 10점으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의 포트폴리오가 모두 전시돼 있어서 반가웠다. 이 시리즈 외에 눈길을 끈 작품은 '그림자'. 워홀 자신의 초상화를 재료로 한 시리즈이다(전시된 건 아래의 한 작품). '캠벨 수프'보다야 이런 작품이 보다 '전통적'이고 보다 흥미롭다.

06.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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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규모의 르네 마그리트전이 열린다. 오늘(12.20)부터 내년 4월 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이다. 얼마전부터 관련기사들을 읽어볼 수 있었는데, 전시회 개막일을 맞아 기사들이 정점을 이루고 있다. 두 가지 기사를 옮겨놓고 새삼 전시회의 의의를 환기해두고자 한다. 방학때는 시간을 낼 수 있지 않을까도 싶고.

경향신문(06. 12. 20) '르네 마그리트’전, 상식을 비트는 ‘이미지의 배반’

“우리는 우리 밖의 세상을 보지만,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 안에 있다.”

액자 속 그림 안에 또 하나의 그림을 즐겨 그려 넣던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는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갖고 있는 한계를 종종 이질적인 요소를 결합시킨 그림으로 표현하곤 했다. 이파리가 된 새, 나무가 된 여인, 구두가 된 발, 낮과 밤 등 두 개의 시간이 공존하는 거리. 그의 그림에는 기이하면서도 무미건조한 분위기, 상식을 깨는 묘한 매력이 서려 있다.

시뮬라크르, 기호와 상징 등 현대미학의 여러 주제를 설명할 때 단골처럼 등장하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 우리나라에 왔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벨기에 왕립미술관 및 르네 마그리트 재단과 공동으로 ‘르네 마그리트’전을 20일부터 내년 4월1일까지 연다. 초기부터 말기까지 마그리트의 작품세계 전반을 훑어볼 수 있는 전시로 회화와 드로잉, 판화 등 120여점과 사진 및 영상자료 150여점 등 총 270여점이 선보인다. 작품 중 초기작인 ‘보이지 않는 선수’는 1백20억원을 호가하는 작품으로 벨기에인들이 국보처럼 여기는 작품이다.

작품들은 대부분 마그리트가 즐겨 그리던 캔버스 속의 캔버스 구도를 차용해 액자 형태의 파티션 위에 설치됐다. 전시실을 훑어보다 보면 대부분 작가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완성도가 높고 한 주제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에 비해 마그리트는 20, 30대 시절 묘사했던 소재와 주제를 끊임없이 변형하고 자기복제해 나갔음을 알 수 있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달리나 미로 등 여타 초현실주의 화가의 작품에 비해 논리정연한 질서에 기반하고 있다. 르네상스 이후 미술의 오랜 목표이던 실물의 재현에서 벗어나려한 근대 화가들이 추상회화로 나아갔던 것과 달리 마그리트는 정교하고 세밀한 구상회화를 그리되 실물의 재현이기를 거부했다. 파이프를 그려 놓고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글귀를 써놓은 ‘이미지의 배반’ 같은 작품이 바로 마그리트의 예술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이 갖고 있는 통념, 상식을 끊임없이 분석해 이를 자신만의 시각언어로 표현한 마그리트는 사실 화가라기보다는 철학자에 가깝다. 실물과 언어, 이미지의 관계, 현실과 가상, 꿈과 무의식 등 현대미술의 주요 주제를 마그리트는 데페이즈망 기법을 적용해 표현하곤 했다. 데페이즈망은 친숙한 사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되 모순되거나 대립되는 요소를 한 화면에 늘어놓거나 혹은 전혀 엉뚱한 맥락에 위치시켜서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기법. 또한 마그리트는 정교하게 그린 그림과는 전혀 호응하지 않는 텍스트를 화면 안에 써넣거나 제목을 달았다.

회화 사이사이에 설치된 작은 크기의 사진들은 마그리트의 독특한 상상력을 더욱 잘 보여준다. 주로 친지와 지인들을 마그리트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들로, 오늘날 디카족들이 장난치듯 만들어낸 이미지와 비슷하다. 한 전시실에는 사진가 듀안 마이클이 찍은 르네 마그리트의 초상 사진과 영화에 관심이 많던 마그리트가 훗날 소형 영사기로 직접 찍은 영화도 상영된다.(윤민용 기자)

동아일보(06. 12. 11) "당신이 보고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르네 마그리트 전시회"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뭔가 생각을 해야만 할 것 같다. 낯익은 형상들을 결합한 그림인데도 이미지나 느낌은 낯설다. 그림과 관객의 역동적 대화가 일어나는 순간이다. 작가는 철학자 미셀 푸코에게 보낸 편지에서 “닮음과 비슷함이라는 단어를 통하여 세계와 우리 자신들이 전혀 새롭게 존재하는 광경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작가는 바로,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1898∼1967)다. 그는 20세기 초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빛의 제국’ 연작 등으로 관습적으로 각인되어 온 사물의 존재 방식을 깨는 그림들을 제시했다. 철학적 사유의 화가로 통하는 그는 “그리기의 예술은 사유의 예술”이라고 했다.

그 마그리트가 한국에 온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벨기에 왕립미술관과 함께 19일∼내년 4월 1일 ‘르네 마그리트’전을 마련한다. 마그리트 전시회가 아시아에서 대규모로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갤러리 현대의 도형태 대표는 “마그리트 작품들은 개인 소장품이 많아 모으기 어렵다”며 “마그리트 전시회는 전시 기획의 끝이라는 말이 있다”고 말했다. 전시에서는 ‘빛의 제국’ ‘회귀’ ‘신뢰’를 비롯한 유화 대표작 70여 점과 드로잉 판화 등 120여 점. 작가의 사진이나 친필 서신도 함께 선보인다.

마그리트를 비롯한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무의식 꿈 판타지 등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려고 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드러난 몰인간성에 기겁한 일단의 예술가가 인간의 이성을 부정하고 무의미를 추구한 다다이즘의 뒤를 이어서 초현실주의가 나타난 것. 마그리트는 추상에 가까운 작품을 추구해 온 다른 초현실주의자와 달리, 사과 돌 새 벨 등 낯익은 대상을 엉뚱한 환경에 배치하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 기법’으로 충격과 함께 신비감을 불러일으켰다. 사물을 엉뚱한 곳에 갖다 놓는 ‘고립’, 이질적 사물을 결합하는 ‘사물의 잡종화’, 두 사물을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하는 ‘이미지의 중첩’,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사물을 한 그림에 넣은 ‘패러독스’ 등이 그의 기법이었다.

전시작은 마그리트 작품 중 정말 수수께끼 같은 ‘보이지 않는 선수’, 날아가는 새와 알의 둥지를 대비한 ‘회귀’, 신사의 초상에 파이프를 갖다 둔 ‘신뢰’, 평야에 직육면체의 거대한 돌덩이 구조물을 그린 ‘대화의 기술’ 등이다. ‘고문당하는 여사제’ ‘신은 성자가 아니다’ ‘두려움의 동반자’ ‘곤충들의 삶’도 선보인다. 문제작 중 하나로 기존 언어와 그림문법에 대한 반성을 호소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1929년)는 해외 다른 곳에서 전시되고 있어 오지 않는다.



마그리트의 작품들은 언어(문자)로 진술되거나 형상을 통한 이성의 사고를 부정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했으며 이 시도는 결국 신비와 환상과 미스터리를 자아냈다. 광고 디자이너로 일한 적이 있어서인지 그의 작품들은 영화와 소설에서도 영감의 원천이 됐다. 가상 현실을 다룬 영화 ‘매트릭스’도 그중 하나였다. 아이러니 중 하나는 마그리트의 그림이 종래 언어 관습이나 형상을 부정하지만, 그 작품에 대한 사유의 출발점은 문자로 된 제목이라는 점이다.(허엽 기자)

06. 12. 20.

 

 

 

 

P.S. 마그리트의 세계에 관한 가장 요긴한 안내서는 아직까지는 수지 개블릭의 <르네 마그리트>(시공사, 2000)인 듯하다. 이 책에 대해서는 예전에 리뷰를 쓴 적이 있다. 그밖에 예경에서 나온 화집 정도가 내가 갖고 있는 마그리트의 전부인 듯하다. 이 '철학자' 마그리트를 다룬 푸코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민음사, 1995)는 현재 절판 중이다. 그밖에 <노성두-이주헌의 명화읽기>(한길아트, 2006)나 서지형의 <속마음을 들킨 예술가들>(시공사, 2006) 등에서 '마그리트 읽기'를 읽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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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6-12-20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립미술관이죠? 곧 방학이 시작되니 다녀와야겠군요.

로쟈 2006-12-21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시죠.^^

비로그인 2006-12-21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적 관점에서 마그리트의 화법은 다소 유치하고 만화적이지요.
그가 그림에 담아내는 이야기는 독특합니다.


로쟈 2006-12-21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제목으로도 썼지만 '철학자 마그리트'에게 화법은 중요하지 않았을 듯합니다...

이네파벨 2006-12-21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전시 소개...감사드립니다...
마그리트...저에게도 빼놓을 수 없는 전시회네요...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서 달리의 "기억의 고집"인가...(흐물흐물한 시계)를 보고 난 후 초현실주의에 매료되어..한동안 들이팠었죠...

마그리트는 흥미롭고 나름대로 독특한 세계를 창조해낸 화가이지만...딱 제 타입ㅇㄴ 아니지요...^^
너무 머리로 그림을 그리는 느낌이어서요...
머리..특히 좌뇌로요...

전 초현실주의 화가 중에서 단연 달리..그리고..에른스트의일부 그림...그리고...몇 점 안남겼지만(아니 기억에 남는거 정말 한두 점이지만) 키리코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머리(이성, 사유, 논리, 좌뇌적 사고)로 닿을 수 없는 독특한 세계를 표현하기에...
 

요즘은 미술 전시회 소식만 전하는 일로도 1년을 다 채울 수 있을 듯하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는 말도 진리이지만, "세상은 언제나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 넓다"는 것도 진리이다. 예술도 예외는 아니어서 언제나 이 두 가지 진리를 반복적으로 증언해준다. 펠리시엥 롭스와 에드바르트 뭉크의 2인 판화전에 개최된다고 한다. 솔직히 롭스란 화가의 이름은 이번에 처음 들어보았다. 관련기사들을 옮겨놓는다. 발걸음이 또 미칠 지 어찌 알겠는가...

한국일보(06. 08. 14) 팜므파탈… 치명적인 아름다움 뒤의 풍자

-유럽 역사에서 19세기 말부터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까지를 ‘벨 에포크’(Belle Epoqueㆍ아름다운 시절)라고 부른다. 풍요와 퇴폐, 쾌락과 죽음이 우아하게 쌍을 이루던 그 시절 문학과 예술의 최고 인기 품목 중 하나는 팜므 파탈(femme fatalㆍ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자를 파멸시키는 여자)이다. 이건 남자들의 발명품이다. 19세기 중반 여성해방운동이 일어나면서 여성들이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하자 그에 대한 경계심이 팜므 파탈로 나타난 것이다.(*벨 에포크에 대해서는 빌리 하스의 <세기말과 세기초>(까치글방, 1994)란 책이 오래전에 출간된 바 있다. 미술에서의 팜므파탈 이미지에 대해서는 이명옥의 <팜므파탈>(다빈지, 2003) 참조).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미술관에서 열고 있는 ‘롭스와 뭉크’ 판화전의 키워드는 팜므 파탈이다. 19세기 벨기에 판화가 겸 풍자화가 펠리시엥 롭스(1833~1898)와, 그보다 서른 살 아래로 20세기 초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노르웨이 작가 에드바르트 뭉크(1863~1944)의 판화 98점을 선보이고 있다.

-두 작가 모두 미술사에서 중요한 인물인데도, 우리나라에 작품이 오기는 처음이다. 뭉크는 매우 유명한데도 그렇고, 롭스는 이름조차 낯설다. 롭스와 뭉크는 세기말 악마주의, 상징주의 그리고 표현주의에 이르는 미술사조의 흐름 속에 있다.

-롭스는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빌어 시대와 사회를 풍자했다. 여자, 어리석음, 그리고 죽음이 주도하는 세계를 표현했다. 치부를 드러내고 눈을 가린 채 돼지(성욕의 상징)의 인도를 받으며 위협적일 만큼 당당하게 걸어가는 창녀(‘창부정치가’)나 칼을 숨긴 채 높이 쳐든 손바닥에 남자를 올려놓고 조롱하는 여자(‘꼭두각시를 든 부인’)는 세계를 지배하는 팜므 파탈의 파괴력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는 사탄이 지배하는 악마적 세계,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 유혹, 파멸을 부르는 어리석음을 팜므 파탈과 연결짓고 있다. “여성의 냉혹한 눈짓, 숨기지도 위장하지도 않고 온몸으로 명백하게 드러내는 남성에 대한 적개심 등 롭스는 현대여성의 잔인한 측면을 묘사하는 데 정말 뛰어나다.”(롭스와 교유했던 프랑스인 공쿠르 형제의 평)

-뭉크에게 여자는 사랑스러우면서도 두려운 존재였다. 그의 대표작 ‘마돈나'는 여인의 멍한 눈과 소용돌이치듯 불안하게 흘러내리는 선으로 쾌락의 절정, 곧 죽음을 암시하면서 웅크린 태아와 정충으로 테두리를 장식해 염세적인 공포를 배가하고 있다. 또 다른 작품 ‘흡혈귀’는 고개를 숙인 채 남자의 목에 입술을 갖다 대는 여자의 모습이 마치 피를 빠는 듯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피해망상에 가까운 이런 두려움은 병약하고 신경질적이었던 뭉크의 기질 탓이기도 하지만 시대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뭉크 자신은 20, 30대 청년시절을 회고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여성 해방의 한복판에서 무상한 시대를 살았다. 남성을 유혹하고, 사로잡고, 기만한 것은 여성이었다. 카르멘의 시대. 이 무상한 시대에 남성은 더 연약한 성(性)이 되었다.”

 

 

 



-뭉크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이의 잇따른 죽음과 아버지의 우울증 때문에 평생 죽음의 공포와 불안에 시달렸다. 쾌활하고 방자하게 사회 풍자 놀음을 즐긴 롭스와 달리 뭉크는 철저히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 인간 실존의 어둠과 고독을 표현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벨기에 트랜스페트롤 재단이 공동으로 기획했으며, 브뤼셀-서울-오슬로 순회전이다. 전시는 10월 22일까지. (02)2022-0600(오미환 기자)

 

국민일보(06. 08. 14) 19세기말 여성 이미지 들춰보기

-팜므파탈, 그 치명적인 이미지가 난무하던 19세기 말 유럽은 새로운 여성상과 남성상이 극렬하게 대립했다. 이 시기에 유럽에서 활동했던 벨기에의 판화가이자 풍자화가였던 롭스(Felicien Rops,1833∼1898)와 효현주의 대표작가 뭉크(Edvard Munch,1863∼1944)는 정치적,사회적 해방을 요구하는 여성에 대한 경계심을 작품에 반영했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김윤수)은 이들의 판화작품을 모은 ‘롭스와 뭉크:남자와 여자’ 전을 지난 11일 개막했다.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두 작가의 작품은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르다. 롭스가 사회를 풍자하면서 시대를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인 작가라면,뭉크는 자신의 감성을 철저히 파고들어 객관화시킨 작가이다. 롭스의 작품들은 ‘풍자의 손’으로 관람객의 눈길을 잡아 당기지만 뭉크의 작품은 시간이 멈춰버린 듯 정적이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작가는 세대를 이은 상징주의적 표현과 ‘팜므 파탈’이라는 여성관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단 롭스는 세기말 사회에 대한 영향으로,뭉크는 개인적인 경험으로 형성된 여성관이란 차이점이 있다.

-롭스의 어린시절이야기는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다. 가정교사를 두고 교육을 받은 덕에 자유로운 유년기를 보냈고 브뤼셀에 들어가 학교 수업보다는 주간지의 삽화가로 시간을 많이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보들레르의 대표시집 ‘악의 꽃’에 삽화를 그렸던 그는 ‘악마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통해 사회를 풍자하고 해악함으로써 시대정신에 입각한 새로운 작품들을 생산해냈다. 대표작 ‘창부정치가’는 벌거벗은 창녀가 눈을 가린 채 돼지의 인도를 받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가릴 곳은 가리지 않고,반대로 드러낼 곳은 모두 가린 묘사로 여인의 누드를 강조해 사악함을 드러낸다. ‘꼭두각시를 든 부인’은 칼을 숨긴 채 꼭두각시를 치켜들고 있는 여자를 묘사해 여자는 남자를 파멸시키는데 그치지않고 사회 전체를 위협하는 악마적인 존재로 그렸다. 이번에 그의 61점의 작품이 전시됐다.



-노르웨이 출신의 화가로서 국내에 많이 알려진 뭉크는 불행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의 우울한 성격,다섯 살 때 겪은 어머니의 죽음, 병약한 자신의 건강,두 살 위의 누나의 죽음 등으로 죽음의 공포와 불안은 평생 동안 그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런 병적인 상태는 오히려 수많은 걸작을 생산해내는 밑바탕이 되었다.

-대표작 ‘마돈나’는 역동적인 곡선과 함께 여자의 황홀한 표정이 잘 드러난다. 뭉크에게 마돈나는 사랑의 상징이자 죽음에 이르게 하는 팜므 파탈의 여성으로 대변된다. 뭉크는 유화에서부터 판화에 이르기까지 사랑,불안,죽음에 이르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예술작품으로 승화해 표현주의라는 거대한 시대의 물결을 이끌었다.



-이번 전시에 그 유명한 ‘절규’는 오지 못했지만 ‘마돈나’와 어린시절 죽은 누나의 옆모습을 그린 ‘병든아이’,10대 소녀의 공포감을 나타낸 ‘사춘기’ 등 주요작품 37점이 전시됐다. 한편 ‘롭스와 뭉크:남자와 여자’ 전은 벨기에 크랜스페트롤 재단이 14개 소장처의 작품을 모아 기획한 전시로 10월 22일까지 계속된다.(이지현 기자)

06. 08. 1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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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26 0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 이 전시 갔었어요. 로쟈님의 인문학 내공 엿보기만 했는데 제가 잘 아는 미술을 매개로 살짝 흔적 남겨요. 롭스의 여성에 대한 경계 정말 대단하더군요. 그렇지만 판화에 보이는 묘사력은 기교의 절정이었어요. 역시 시대에 필요한 기술이 발전을 가져오는듯 해요. 뭉크는 판화만 와서 아쉬웠지만 워낙 정서가 친숙한 화가라 관심갔어요. 그런데 뭉크의 마돈나가 팜므파탈이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제가 그림가르치는 사람인데도 그림을 깊이 안봐버릇해서 부끄러워요..오히려 글을 쓰면서 그림도 깊게 봐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뭉크는 오히려 가족의 병력, 죽은 누이, 슬픔, 불안 이런 이미지로 여성을 보았다는 막연한 기억만 나요.. 로쟈님, 저 인문학책 열심히 읽고 나중에 자문 많이 구할게요~ 러시아문학도 문화도 좋아해요. 특히 체홉 희곡에서 사랑화살의 어긋남같은 거요..^^

로쟈 2006-12-26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까 저는 못보고 지나가버렸네요.--; 대신 소식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체홉의 드라마들을 좋아하신다니까 반갑네요. '사랑의 어긋남'을 좋아하신다는 걸 보면 좀 짓궂으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