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 읽은 아침신문 기사에서 눈길을 끈 것은 루시안 프로이드의 작품 경매 소식이다.  생존작가의 그림들 중 최고가를 경신할 거라는데, 내가 놀란 건 그림값이 아니라 프로이드가 아직 생존작가라는 사실. '루시안 프로이트의 리얼리즘'이란 페이퍼를 예전에 쓴 적이 있는데, 나는 그때 이미 "오랜만에 프로이트의 그림들을 찾아보면서 두번 놀랐다. 우선 1922년생인 그가 아직 '생존화가'라는 점. 그리고 국내에 그의 화집이 아직 한권도 출간되지 않았다는 점."라고 적어놓고 이번에 다시 놀란 것이니 그가 '생존화가'란 사실이 제대로 '입력'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하튼 그의 그림들은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국일보(08. 04. 14) 프로이드의 누드화, 생존화가 작품 최고가 낙찰 '눈앞'

독일 태생의 영국 화가 루시안 프로이드(85)가 그린 누드화가 생존작가 작품 가운데 사상 최고 경매가로 팔릴 것으로 예상돼 전세계 미술계를 벌써부터 흥분시키고 있다. 화제의 그림은 내달 13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부쳐지는 프로이드의 실물크기 나부상 <베너피츠 슈퍼바이저 슬리핑: Benefits Supervisor Sleeping>으로 지난 1995년 완성됐다.

AFP통신은 13일 미술 전문가를 인용해 프로이드의 이번 작품이 2,500만달러에서 최대 3,500만달러(약 350억원)에 낙찰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지난해 제프 쿤의 조각 <행잉 하트: Hanging Heart>가 기록한 역대 경매 최고가 2,360만달러를 능가하는 액수이다. 현존하는 작가의 미술작품 중 경매와 개인거래를 포함해 역대 최고가는 재스퍼 존스의 그림이 기록한 8,000만달러이다.

나부상의 모델을 섰던 수 틸리라는 여성은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프로이드의 그림을 위해 옷을 벗은 채 포즈를 취하고 하루 20파운드(약 4만원)의 개런티를 받았다고 밝혔다. 틸리는 모델료는 적었으나 프로이드 같은 대가에게 '창조의 원천'이 됐다는 데 자부심과 희열을 느낀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빅 수(Big Sue)'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넉넉한 몸매를 가진 틸리를 화폭에 담은 누드화는 12일자 권위 있는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의 1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틸리는 이에 대해 자신이 파이낸셜 타임스의 머릿면을 장식한 최초의 '핀업 걸'이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감격해 했다. 그는 신문에 게재되기 이틀 전에 통보를 받았다며 “생각지도 않은 상황에 내 자신도 놀라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로이드는 지금은 런던 직업소개소 책임자인 틸리를 호주 출신 화가 리 바우러의 소개로 알게 됐으며 지난 90년대 초 4년 동안 서로 수시로 만나 점심식사를 같이한 뒤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작품은 완성된 뒤 개인 소장가에게 넘어갔다.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정신과의사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친손자인 프로이드는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지만 나치스가 대두한 33년 11살 때 부모와 함께 영국으로 이주해 6년 후 국적까지 취득했다. 그는 센트럴 미술학교 등에서 그림 수업을 하고 44년 처음 개인전을 열고 화가로 정식 데뷔했다. 초기 작품은 초현실주의 색채를 띠었으나 50년부터는 가벼운 터치의 채색을 특징으로 하는 누드화와 초상화를 주로 그렸다. 등장 모델은 주변의 가족과 친구, 동료화가,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2005년 세계적인 슈퍼모델 케이트 모스의 누드 초상화가 390만파운드(약 75억원)에 팔렸고 작년 6월에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친구 브루스 버나드를 그린 92년작 초상화가 786만파운드에 낙찰돼 주목을 샀다.(한성숙 기자)

08. 04. 15.

P.S. 예전에 'Lucian Freud'를 '루시안 프로이트'라고 적었는데, 우리말 표기는 '루시안 프로이드'인 모양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이고 독일계이긴 하지만 영국인이기 때문에 'Freud'를 그냥 '프로이드'라고 읽는 것. 하여간에 외국어 표기 규칙이란 게 복잡하고도 오묘하다.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규칙도 허다하고. 그런데 이 '가장 비싼 화가'의 화집은 왜 한권도 나오지 않는 걸까? 이마저 너무 비싸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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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량 2008-04-15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사람들이 필요 이상 '무난한' 그림들, 즉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그림들을 편애하는 것도 이유가 될 듯합니다. 이 사람뿐 아니라 다른 '당대' 거장들의 화집도 시중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니,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화집조차 전시회 도록 말고는 없네요.

로쟈 2008-04-15 21:41   좋아요 0 | URL
전문 출판사들이 있는데 화집이 나오지 않는 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소경 2008-04-16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육중하네요. 예전에 본 한 여인의 사진이 연상되네요.그 여인도 한껏 흘러내리셨는데..

로쟈 2008-04-16 23:31   좋아요 0 | URL
네, 볼륨이 상당하죠? 그림도 꽤 무거울 거 같습니다...
 

그림에 문외한이더라도 한번 보면 고흐만큼이나 쉬이 잊을 수 없는 화가에 모딜리아니(모디)가 있다. '목이 긴 여인'들이 너무도 개성적이기 때문인데, 그 그림들의 전시회가 열린다고 한다. 연인 잔 에뷔테른의 그림들과 함께.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07. 12. 21) 모딜리아니와 연인 잔의 애틋한 사랑

풍성한 갈색 머리채, 갸우뚱한 고개, 오른손으로 앞가슴을 가린 채 내면을 응시하는 듯한 목이 긴 여인. 모딜리아니가 죽기 한 해 전(1919년)에 그린 ‘어깨를 드러낸 잔 에뷔테른’이다. 태어난 해는 각각 1884년, 1898년으로 14년 차이가 나지만 1919년 같은 해에 죽은 아마데오 모딜리아니(모디)와 잔 에뷔테른. “마치 항상 알고 지낸 것 같았던” 이들은 1917년 봄 몽파르나스의 화가들 모임에서 눈이 맞은 이래 3년 동안 지독한 사랑과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가난한 커플은 후원가가 내준 빌딩 꼭대기의 작업실에서 알콩달콩 지내다 모디의 결핵이 악화돼 니스로 요양을 갔다. 여기서 잔은 훗날 아버지 평전을 쓴 딸을 낳았고 모디는 대표적인 초상화 작품을 가장 많이 그렸다. 행복은 잠시. 생활고는 모디의 성격을 괴팍하게 만들어 파리로 돌아왔을 때 모디의 병세는 악화돼 있었다. 1920년 1월 모디가 병원에서 죽은 이틀 뒤 에뷔테른 역시 친정집 아파트 5층에서 투신 자살했다. 8개월 된 둘째 아이를 임신한 채.

‘미술사상 가장 잘 생긴 화가’라는 모딜리아니의 주변에는 모델이 되어주겠다는 여자가 끊이지 않았다. 안나 아크마토바(*아흐마토바), 베아트리스 헤이스팅스, 루니아 체호프스카야 등등. 하지만 이들은 모디가 잘 나갈 때의 얘기. 미술계의 주류와 타협하지 않고 점점 외톨이가 되어 술과 마약에 빠져든 그에게 나타나 천국에서도 모델이 되어주겠다며 반려가 되어 ‘생명의 예술’을 창조시킨 여성은 에뷔테른이다.

이러한 모디와 에뷔테른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복원한 전시회가 열린다. 27일부터 내년 3월16일까지 고양시 아람미술관(031-960-0180)에서 열리는 ‘천재, 열정을 그리다’ 전이 그것. 모디가 주로 초상화를 많이 그린 탓에 모디 관련 전시회의 모티브는 ‘모디와 그의 모델’이 주류였다. 하지만 모디와 마지막 3년을 지낸 에뷔테른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베일에 싸인 채 전설로만 떠돌았다. 애초 가족들의 반대에 부닥쳤던 이들의 사랑은 사후에도 마찬가지여서 따로 묻힌 지 10년 뒤에야 합장이 가능했다. 또 가족들은 잔의 작품이 모디에게 가려져 왜곡될 것을 우려해 공개를 반대해 왔다. 에뷔테른의 진면목이 드러난 것은 2000년 ‘모딜리아니와 그의 친구들’이란 전시회에서부터다. 비로소 미술사적으로 대접을 받게 됐다.

한국 전시에서는 잔의 유화, 과슈, 아크릴, 드로잉 등 65점, 모딜리아니의 유화 및 드로잉 45점과 공동드로잉 1점, 그리고 이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엽서, 사진, 머리카락 등 150점이 처음으로 선보인다. 모디의 애정이 담뿍 담긴 그림 ‘에뷔테른’에서 막연하게 상상되던 두 사람의 사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모디가 특별한 만큼 그가 사랑한 여인 역시 특별한 존재였음을 드러낸다.(임종업 선임기자)

07. 12. 21.

P.S. 덧붙일 사항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앤디 가르시아 주연의 영화 <모딜리아니>(2004)도 소개되면 좋겠다는 것(영화의 한 장면은 http://www.youtube.com/watch?v=XekpJXGKeTc 참조).

그리고 또 한가지는 모디가 그린 아흐마토바. 1911년에 페테르부르크에서 그린 스케치들이 남아있다. 아흐마토바(1889-1966)는 20세기 러시아시의 디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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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12-21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칸딘스키와 반 고흐 그리고 모딜리아니...까지. 방학특수인가요^^
멀리까지 가서라도 봐야겠군요..
고양시가 꽤 좋은 레퍼토리들을 마련하는것 같아요..

맨 아래 사진 아흐마토바의 표정..참 좋네요.

로쟈 2007-12-22 01:38   좋아요 0 | URL
아흐마토바에 관한 책을 요새 새로 구했는데 겸사겸사 읽어보고 싶네요...

2007-12-21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12-22 01:39   좋아요 0 | URL
네, 너무 잠깐이었습니다. 나중에 길게 말씀을 나누도록 하지요.^^

李潤映 2007-12-21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가와 여인이 항상 일치되는 주제인지는 몰라도 같이 놓고 보면 항상 흥미있는 것이 될 수는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언제나 사람의 삶에 있어서 사랑이라는 게 에로스적인 것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더 그런 듯 하구요.

로쟈 2007-12-22 01:40   좋아요 0 | URL
모든 범인의 뒤에는 여인이 있다는 속설이 예술가들에게도 대부분 맞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일보의 '오늘의 책'을 자주 둘러보는 편이다. 12월 13일자는 러시아 출신의 화가 칸딘스키의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를 다루고 있다. 칸딘스키의 기일이어서다. 현재 열리고 있는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http://blog.aladin.co.kr/mramor/1726386)에서도 그의 그림을 볼 수 있는 터여서 기사를 챙겨두도록 한다.  

한국일보(07. 12. 13) [오늘의 책<12월 13일>]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현대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바실리 칸딘스키가 1944년 12월 13일 78세로 사망했다. 러시아 태생으로 모스크바대학에서 법학 정치학 경제학을 공부한 칸딘스키가 미술로 인생의 방향을 튼 것은 30세 때인 1896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프랑스 인상파 회화전에서 모네의 그림 ‘건초더미’를 보고서였다.

그 해 대학교수직 제의를 거절하고 뮌헨으로 가서 그림공부를 시작한 그가 현대예술의 방향마저 바꿔버린 최초의 추상회화 ‘첫번째 추상 수채’를 제작한 것은 44세 때인 1910년이다. 나치에 의해 퇴폐 예술가로 지목돼 작품이 몰수되기도 했던 칸딘스키는 1933년 프랑스에 귀화해 여생을 보냈다.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1912)는 칸딘스키의 예술론을 집약한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무릇 예술가의 임무라는 것은 형식을 지배하는 데 있지 않고, 내용에 적합한 형식을 만드는 데 있다”고 선언한다. 존재하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모방하고 재현하던 전통적 회화를 벗어나, 예술가의 ‘내적 필연성’에서 우러나오는 형태와 색채로 화면을 채우는 현대예술은 그의 이 선언에서 시작됐다.

이로써 현대예술은 그 자체가 하나의 미적 실체, ‘오브제’가 된다. 예술의 모든 외적인 표현수단이나 형식을 관통하는 예술가의 내적인 울림을 가리키는 말인 ‘내적 필연성’은,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닌 정신이라는 칸딘스키의 생각이 담긴 핵심 개념이다. 그에 따르면 “참된 예술작품은 비밀로 가득 차고 수수께끼 같은 신비스런 방식으로 예술가에 의해 생겨난다.”

칸딘스키의 글은 그 자체로 음미할 문학적 향기가 가득하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 “흰색은 가능성으로 차 있는 침묵이다. 그것은 젊음을 가진 무(無)다. 정확히 말하면 시작하기 전부터 무요, 태어나기 전부터 무인 것이다.”(하종오기자)

07. 12. 12.

P.S. 찾아보니 얼마전 칸딘스키 등이 엮은 <청기사>(열화당, 2007)이 번역돼 나왔다. 국내에서 전시회를 가졌던 것으로 기억돼는데, "청기사(靑騎士, Der Blaue Reiter)는 20세기 유럽 현대예술의 불규칙하고도 혼란스러운 태동을 포착하고 그 산고를 함께하며 새로운 탄생을 널리 선포했던 선구자들의 이름인 동시에, 그들이 1912년에 발간한 예술연감(藝術年鑑)의 제목이자, 그 연감의 주도적인 편집진이었던 바실리 칸딘스키(W. Kandinsky)와 프란츠 마르크(F. Marc)가 중심이 되어 조직한 전시회의 이름이다."

이 청기사파를 소개하는 책으로 <청기사파>(예경, 2007)도 올해 나온 책이고, 하요 뒤히팅의 <바실리 칸딘스키>(마로니에북스, 2007)은 지난 가을에 번역돼 나왔다. 김광우의 <칸딘스키와 클레의 추상미술>(미술문화, 2007)까지 더하면 나름대로 풍족한 읽을 거리다.

Василий Кандинский Точка и линия на плоскости

내가 갖고 있는 러시아어본은 <평면 위의 점과 선>. 우리말로 <점. 선. 면>(열화당)이라고 소개된 책이다. 한데 어느 구석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군,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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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들이 없나 뒤적거려보다가 '어렵게' 발견한 책이 토머스 크로의 <60년대 미술>(현실문화연구, 2007)이다(국역본의 부제가 '순수미술에서 문화정치학으로'이다). 저자는 미국의 저명한 미술사학자이자 미술평론가. 미술/이론 세미나를 하다가 좀 읽어본 책이 그의 <대중문화 속의 현대미술>(아트북스, 2005)이어서 저자와는 구면이다. 특히 '시각예술의 모더니즘과 대중문화'란 그의 글은 내가 찾은 것만 국내에 3종의 번역본이 소개돼 있을 정도로 '중요한' 문헌이다(아트북스판은 신뢰할 만하지 못하다). <60년대 미술>은 크로의 1996년작이니까 원서로는 <대중문화 속의 현대미술>과 나란히 출간되었던 책이겠다(그러니 같이 읽어보아야 할까?).  

소개는 이렇게 돼 있다: "1960년대 미술은, 오늘날의 보수적인 비평가들에 의해서는 모든 동시대적 스캔들의 분수령이라고 언급되고, 좌파의 비평가들에 의해서는 미학적 급진주의가 성공을 거둔 드문 사례라고 언급된다. 그러나 미국의 비평가 토머스 크로는 1960년대 미술이 미술이라는 개념 자체를 재형성했다고 본다."

그리고 저자 자신의 소개는 이렇다: "1960년대의 새로운 정치학 안에서 빚어진 미술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히 양면적이다. 미술가들은 새롭고 공격적인 세계 시장 속에서 그들의 활동에 대한 지지가 점차 증가하자 이러한 시장의 지지와 시장을 반대하는 자신들의 입장을 화해시키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역설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작업은 1955년부터 1969년까지의 시기가 낳은 하나의 산물이자 이 시기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그리고 이것이 궁극적올 이 책의 중심 주제이다."

해서 관심은 '60년대'로 다시 회귀한다.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로 얼른 떠오르는 것은 (1960년대 후반 이후) '정치적 모더니즘의 위기'를 다룬 로도윅의 <현대 영화이론의 궤적>(한나래, 1999)과 1960년대초 김승옥의 시사만화를 다룬 <혁명과 웃음>(앨피, 2005)이다. 영화와 만화라는 각기 다른 장르와 유럽과 한국이라는 각기 다른 지리적 공간에서의 '1960년대'를 일별해볼 수 있겠다. 문화정치학의 관점에서. 흠, 내년의 한 가지 연구테마로 잡아도 좋을 듯하다...

07.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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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브레이크 시간에 잠시 읽은 기사는 패션사진작가 김용호씨의 사진전 소식이다. 'mom'(몸)이 전시회의 타이틀이라는 데서 짐작해볼 수 있지만 누드사진들이 빼곡하게 전시돼 있다고(전시회의 주제는 '리얼 누드: 새로운 몸의 발견'으로 돼 있다. http://www.daelimmuseum.org/exhibition/now_view.jsp 참조). 관련기사를 자료로 담아둔다.

매일경제(07. 11. 19) 부담스럽지 않은 누드 김용호 사진전 `mom`

"몸은 인간의 역사를 보여주는 소리 없는 언어입니다. 소리가 없으니 부를 일도 없고, 부르지 않으니 소리도 없습니다." 차가운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17일 늦은 오후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 단풍이 길거리를 울긋불긋하게 뒤덮은 미술관 도로에는 김용호 작가(51)의 사진전을 보러오기 위한 차들로 빼곡했다.

미술관 2층과 3층에 전시된 작품들의 느낌은 `쇼킹` 그 자체였다. 사진기 렌즈를 통과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남녀의 몸뚱이들이 적나라하게 전시돼 있었다. `은밀한 부위(?)`마저도 당당하게 내놓은 사진들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관람객들의 시선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거부감 없는 누드 사진들이었다. 적나라한 맨몸 사진들이지만 포르노라기보다는 하나의 예술에 가까웠다. 관람객들의 몸과 사진의 몸은 다를 게 하나 없는 `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패션사진작가 김용호 사진전 `몸`이 대림미술관에서 지난 17일부터 시작됐다. `몸`은 연예인, 무용가, 미술인, 음악가, 트랜스젠더, 동성애자, 어린이 등 다양한 인물의 누드 사진 14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회. 대림미술관 2층과 3층은 김 작가가 찍은 화려한 몸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 속 주인공의 면면은 화려했다. 유나미(전 싱크로나이즈 선수), 강예나(발레리나), 김판선(안무가), 박윤정(패션디자이너), 션(가수), 오광록(배우), 이건수(월간미술 편집장), 이동은(어린이), 이범수(영화배우), 이상봉(패션디자이너), 장두이(연극연출가), 장루이(장두이의 아들), 마돈나 노현정(트랜스젠더), 홍석천(배우) 등. 다양한 인물의 순수한 몸을 작가적인 시선으로 카메라 렌즈에 담아냈다. 김 작가가 찍은 국립무용단 발레리나 김주원과 영화배우 김정은의 누드 사진은 이번 사진전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 전시는 김 작가의 실험적인 누드를 통해 인간의 `몸`을 둘러싼 다양한 면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트랜스젠더, 동성애자 등 성적소수자들의 몸을 통해 이들도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배우 홍석천 씨는 "몸은 `나란` 사람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최상의 도구입니다. 난 내 몸을 너무 사랑하며 반대로 또 너무 혹사시키는데요…. 그런 과정을 통해 완전한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라고 나름의 몸 철학을 밝혔다. 몸짱부터 몸꽝까지 다양한 `나체 사진`이 있지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임신부, 발가락이 찢어진 발레리나의 발, 중요 부위를 자신 있게 드러낸 남녀의 사진 등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한편 `몸`은 단순한 누드 사진이 아닌 인간의 몸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전시회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용호 작가는 "몸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전시회를 기획했다"며 "몸을 통해 발견하는 새로운 모습들이 `몸` 전시회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년 1월 27일까지다.(정승환기자)

07.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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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 2007-11-19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자 매경에서 이 전시회 기사를 보고, 관람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개인적으로 오광록 아저씨의 몸이 가장 궁금합니다 ㅋㅋ

로쟈 2007-11-19 23:38   좋아요 0 | URL
링크된 미술관 홈피에 이미 떠 있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