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533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필립 카곰의 <나체의 역사>(학고재, 2012)를 서평거리로 삼았다. 잡지는 아직 받아보지 못해서 초고를 올려놓는다. 이 책의 흥미로운 서두는 이렇다. "이렇게 한번 해보라. 책을 덮고 당장 옷을 벗어라. 만약 지금 욕실에서 이 책을 읽으려 했다면 괜찮겠지만 하필 서점에 있거나 버스나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면 인생이 달라질지 모른다."

 

 

 

공간(12년 4월호) 나체의 역사

 

누드(nude)와 네이키드(naked)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누드는 옷을 입지 않고 고의로 시선을 끄는 것을 말하며 네이키드는 단순히 옷을 입지 않은 ‘순수한’ 상태를 말한다.” 즉 누드는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네이키드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누드의 공간이 주로 예술가의 작업실이라면 네이키드의 공간은 욕실이다. 하지만 이 두 단어가 언제나 확연히 구분되는 건 아니다. 가령 대중목욕탕에서 벌거벗은 몸은 자기 자신을 위한 네이키드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운 누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립 카곰의 <나체의 역사>(원제 ‘A Brief History of Nakedness’)는 제목에 ‘네이키드’를 달고 있지만 누드와 구별되는 네이키드만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그는 의미상의 논란을 막기 위해 두 단어를 구별 없이 사용하며 우리말로는 통칭 ‘나체’로 번역됐다. 이 나체가 어째서 관심거리인가?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이렇다. “나체는 왜 사람들을 그렇게 흥분시키는가? 왜 어떤 종교는 나체를 비난하고 또 어떤 종교는 권하는가? 나체 시위로 무언가 보람 있는 것을 이룰 수 있는가? 젖꼭지를 가린 재닛 잭슨의 가슴이 겨우 눈 깜짝할 동안 노출됐다는 이유로 CBS에 55만 달러의 벌금을 매기는 나라에서 어떻게 음경 연기자들이 자신의 생식기를 주무르는 공연을 할 수 있는가?” 등등. 이러한 관심에서 나체의 역사를 탐사해보기로 마음먹었다면 어떤 목차를 구상할 수 있을까? 저자는 예상할 수 있는 경로를 비껴가지 않는데, 그가 고른 주제는 ‘종교와 나체’ ‘정치와 나체’ ‘대중문화와 나체’, 세 가지이다.  

 

저자에 따르면 나체와 종교가 최초로 결합한 사례는 4,000여 년 전, 인더스강 유역에 나타난 현인들로 이들은 옷을 거부했다. 알렉산드로스대왕과 이들 나체 현인들과의 만남이 기록에 남아 있다. 그런 기원이 우연은 아닌지 인도의 종교에서는 나체 수행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자이나교도들은 옷을 입지 않는 것을 ‘공기를 입는 것’이라고 표현하는데, 자신이 아무것에도 ‘묶이지 않은 사람’이란 뜻도 전한다. 현재 나체 자이나교 승려들은 200명이 채 되지 않지만 힌두교 나체 성자들은 아직 수천 명이나 있다. 인도의 나체 수도승 전통에서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성적 편견과 나체 동기다. 남성만 옷을 벗을 수 있다는 게 나체의 역사 내내 발견되는 성적 편견이고, 자제와 금욕의 행위로 나체가 되려고 한다는 게 종교적 동기다. 나체 수도승들이 누군가를 유혹하려고 한다면 그 짝은 신이다.  

 

나체가 신에 더 가까이 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깨달음이 유대교와 기독교에서는 은밀하게만 전해졌다. 가장 유명한 나체 기독교도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였다. 중세의 신학자들은 나체를 네 종류로 구분했는데, 원죄로 타락하기 이전의 자연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자연적 나체’, 가난하거나 자발적인 거부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인 ‘일시적 나체’, 자신의 순결함을 드러내기 위한 ‘상징적 나체’, 허영과 육욕이 지배하는 ‘죄악의 나체’ 등이다. 나체를 옹호하는 자연주의 기독교도들은 자신들의 나체가 처음 세 종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종교에서 나체가 순수함, 수치를 모르는 상태, 더 나아가 육체를 거부를 뜻한다면 정치에서 나체는 강력한 힘과 권위를 나타내면서 동시에 취약성과 노예상태를 상징하기도 한다. 즉 나체에 대한 이중적이고 모순적 태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정치영역이다.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미군이 이라크 죄수들의 옷을 벗길 때 나체는 굴욕적이고 가학적인 의미를 지녔다. 하지만 정치적 시위를 목적으로 옷을 벗을 때 아무것도 숨길 게 없는 나체는 도발적이면서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의 전달수단이 된다. 종교에서 남성의 나체가 특권적이었다면 여성의 나체는 정치 운동의 영역에서 주도적이다. 2005년 캘리포니아 멘도시노카운티에서 여성들은 가슴을 드러낸 채 일광욕을 하고 대중 앞에서 수유할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브레스트 낫 밤(Breasts not Bombs)’ 운동을 펼쳤다. 이 활동가들이 외친 구호는 “가슴은 폭탄이 아니다. 유방은 탱크가 아니다. 젖꼭지는 네이팜탄이 아니다. 유방은 미사일이 아니다”였다. 인간은 나체일 때 가장 약한 모습을 드러내지만 시위하는 나체는 강하다. 이것이 나체의 역설적 본성이다. 때문에 나체는 정치적 주장뿐만 아니라 도덕적 분노를 표출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도 이용된다.

 

하지만 영어권 국가에서 나체 시위는 나도 과도하게 이용되어 진지한 캠페인이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대중이 나체 시위에 싫증을 내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미국에서 나체 활동가들은 여전히 소수자일 뿐이고,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최근에 들어와서야 나체가 시위의 수단이 됐다. 게다가 한국에서 나체 시위는 여전히 ‘남의 나라’ 얘기인 만큼 나체의 정치성은 아직 고갈되지 않은 영역이다.

 

종교와 나체, 정치와 나체와 달리 우리에게 친숙한 건 대중문화와 나체라는 주제다. 나체는 언제나 관음증적 주목의 대상이 되기에 정치적 주장과 저항의 수단으로서도 유효하지만 그만큼 상품화의 수단으로도 유력하다. 1960년대에 나체 혁명을 일으킨 뮤지컬 <헤어>에서 나체 장면은 20초도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많은 연극과 뮤지컬, 오페라 등에서 나체가 등장하며 성적 자유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러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나체는 이제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제약받지 않고 세상에 존재할 자유’를 표현하는 행위가 됐다. <나체의 역사>는 벌거벗은 몸의 역사가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중요한 통로라는 걸 알려준다.

 

12. 0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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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5월과 6월에 사이아카데미에서 '예술가의 독서클럽'이란 강의를 진행한다. 문지문화원 사이(http://www.saii.or.kr/)와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공동으로 기획한 '예술가 시리즈' 강의의 하나로 '예술가의 스테이트먼트' 강좌와 묶여 있다. 강의는 5월 2일부터 6월 27일까지(6월 6일 휴강)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30분-9시 30분,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진행된다. 이번에 잡은 주제는 '종말'이며 강의 개요와 일정은 다음과 같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우리는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는가? 하지만 종말론이나 종말의식 자체는 유구한 내력을 갖고 있으며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 시대의 ‘종말’이 상투적 상상력의 재탕이나 무감각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각 시대는 고유한 종말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각 시대는 자기 몫의 역사적 소명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종말은 곧 완성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강의에서는 문학, 철학, 예술, 정치 등의 각 분야에서 종말의 논리가 어떻게 제시됐고, 종말의 상상력이 어떻게 펼쳐졌는지 살펴보면서 우리 시대 종말의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최소한 그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윤곽 정도는 그려보고자 한다.

 

 

1강) 5월 2일_ 시간의 화살과 종말의 의미 (스티븐 제이 굴드, <시간의 화살, 시간의 순환>)

 

 

 

2강) 5월 9일_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 (프랜시스 후쿠야마, <역사의 종말>)

 

 

 

3강) 5월 16일_ 인간의 죽음과 초인의 탄생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4강) 5월 23일_ 근대문학의 기원과 종언 (가라타니 고진, <근대문학의 종언>)

 

 

 

5강) 5월 30일_ 예술의 종말과 종말 이후 (아서 단토, <예술의 종말 이후>)

 

6강) 6월 13일- 미학이냐 미술비평이냐 (아서 단토, <예술의 종말 이후>)

 

 

 

7강) 6월 20일_ 파국의 묵시록과 종말의 상상력 (문강형준, <파국의 지형학>, 복도훈, <묵시록의 네 기사>)

 

 

 

8강) 6월 27일_ 신적 폭력과 혁명적 유토피아 (지젝, <폭력이란 무엇인가>,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12. 0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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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소식지 책&(405호)에서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이달의 주제는 '미술사'로 관련서 몇권에 대해 적었다.

 

 

 

책&(12년 4월호) 미술사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한 시인 엘리엇은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봄기운이 완연해지는 4월은 나들이하기에 좋은 달이다. 봄꽃이 만발한 고궁이나 미술관이라면 나들이 장소로는 더할 나위 없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나들이에 따로 준비물이 필요할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미술책이라면 발걸음을 한결 더 가볍게 해줄지도 모른다. 어떤 책들이 있을까.


게오르크 슈미트의 <근대회화의 혁명>(창비)은 제목에 주눅들 필요가 없는 책이다. 스위스 바젤미술관의 관장으로 재직했던 저자의 라디오 방송 강연을 옮긴 것으로 10회에 걸쳐서 근대회화에 혁명을 가져온 10명의 화가들을 소개한다. 강연이 1955년에 이루어졌으니까 우리식으로 말하면 ‘구수한’ 이야기이다. 그가 고른 10명의 화가는 오노레 도미에부터 마르크 샤갈까지인데, 각각의 대표작 한편씩을 골라 간결하면서도 명석한 해설을 들려준다.


가령 도미에의 그림을 설명하기 전에 저자는 중세 초기 이후 서양회화의 역사를 네 단계로 구분하여 소개한다. 14세기초까지만 해도 화가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피안의 세계를 그리고자 했기 때문에 원근법도 해부학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14세기초부터 15-16세기로 접어드는 중세 후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그리고자 했다. 이때 화가들이 도입한 수단들은 이미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사용한 것을 재발견한 것이어서 ‘르네상스’라고 불린다. 16세기 중반 이후 미술사는 한 번 더 전환을 경험한다. 역시나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그리긴 했지만 그 현실은 화가가 보는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현실이었다. 이에 따라 나타난 것이 색조의 회화이고 대상의 물질성을 대신하는 필촉의 물질성이다.

 

 

이러한 화풍의 마지막에 나타난 화가가 도미에이며 그는 대략 1850년경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단계의 회화에 첫발을 내딛은 사람이기도 하다. 저자는 도미에의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1850)를 통해서 그가 ‘데포르마시옹’, 곧 형태의 변형이 갖는 미술적·인간적 의미를 파악한 화가였다고 평가한다. 도미에가 열어젖힌 현대 회화의 길은 곧바로 반 고흐와 수많은 다른 화가들에게로 이어지게 된다. 

 


우정아의 <미술, 역사를 만나다>(아트북스)는 회화사 자체의 발전과정이 아니라 회화적 이미지에 담긴 세상의 변화를 읽어주는 책이다. ‘어떻게 그렸는가’보다 ‘무엇을 그렸는가’에 초점을 맞춘 셈으로 18세기 후반 신고전주의 시대부터 19세기말 후기인상주의까지가 이 책에서 다루는 변화의 범위다. 그림들은 자기 시대의 사회상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을까. 가장 잘 알려진 그림의 하나로 밀레의 ‘이삭줍기’(1857)를 예로 들어본다. 저자는 이 그림의 배경인 19세기 프랑스에서 이삭줍기가 농촌의 극빈층에게 부농이 베푼 일종의 특권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추수가 끝나고 난 뒤 남은 밀 이삭을 이들이 주워가도록 한 것이다. 허리를 구부리고 곡식 알갱이를 줍는 일은 중노동에 가까웠지만 이마저도 아쉬웠던 것이 당시 농촌의 처참한 현실이었다. 그림 속의 세 여인이 하루 종일 이삭을 줍더라도 겨우 빵 한 덩어리를 만들 수 있을까 말까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말을 탄 보안관이 멀찍이서 이들을 감시하고 있는 게 보인다. 아름다운 농촌 풍경과는 너무도 대비되는 고된 현실을 ‘이삭줍기’는 보여준다.

 

 


가볍게 시작한 그림과의 만남이 좀더 깊이 있는 만남을 부추긴다면 본격적인 미술사를 손에 들 수도 있겠다. 들고 다니기엔 좀 불편하지만 이 경우 보통 곰브리치나 잰슨의 <서양미술사>가 표준적인 가이드북 역할을 한다. 거기에 특색 있는 미술사 책을 더 얹자면 제임스 홀의 <왼쪽-오른쪽의 서양미술사>(뿌리와이파리)를 빼놓을 수 없다. 제목 그대로 ‘왼쪽-오른쪽’이란 코드로 서양미술사를 다시 들여다본 시도이다. 왼쪽과 오른쪽이 왜 문제가 되는가. 그건 그림이 갖는 특수성 때문이다. 가령 ‘창세기’에서 이브가 “그 열매를 따먹고, 함께 있던 남편에게도 주어서 그가 그것을 먹었다”고 말할 때, 이브가 어느 손으로 열매를 따먹고 건넨 것인지는 명시돼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화가는 이브가 아담과 뱀 사이 어디에 서 있고 사과는 어느 손으로 땄는지 분명히 선택해야 한다. 문화적 통념에 따라 흔히 ‘오른쪽=선, 왼쪽=악’으로 그려졌을 거라고 우리는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미술사는 ‘왼쪽으로의 선회’라는 중요한 변화를 보여준다. 저자의 문제의식 덕분에 무심코 봐왔던 그림의 왼쪽-오른쪽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

 

 


그렇듯 색다른 미술사라면 플로리안 하이네의 <거꾸로 그린 그림>(예경)도 뒤처지지 않는다. ‘미술사 최초의 30가지 순간’을 다룬 책으로 ‘최초’라는 키워드로 읽어낸 미술사이다. 책의 마지막 ‘최초’는 ‘최초로 거꾸로 그린 그림’인데, 게오르크 바젤리츠의 ‘머리 위의 나무’(1969)가 미술사의 기록이다. 그럼 거꾸로 보아야 하느냐고? 그건 아니다. “그는 물체를 거꾸로 그려 주제의 의미가 사라지게 만듦으로써 감상자의 관심이 회화적인 결과에만 집중되도록 했다.” 또 다른 ‘최초’가 더 남아있다면 미술사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12. 0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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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건축전문지 공간(531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지면에는 오타가 몇개 있어서 바로잡는다. 위베르 다미쉬에 대한 언급도 잘못 돼 있어서 교정했다). 니꼴라 부리요의 <관계의미학>(미진사, 2011)에 대한 것이다(글에서는 저자명을 '니콜라 부리요'라고 표기했다). 생소한 프랑스 비평가의 책이어서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론을 배경으로 놓고 읽었다. 책 뒤에 실린 정연심 교수의 서평에 따르면 미술비평가이자 큐레이터인 부리요는 1965년생으로 "1999년, 뉴욕과 런던 등에 비해 현대미술이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파리에 팔레 드 토쿄(Palais de Tokyo)관을 설립하면서 일약 선풍을 일으켰다." 최근엔 팔레 드 토쿄를 떠나 큐레이터로 활동중이라고. 대표작이 <관계의 미학>인데, "1998년에 불어로 출판된 이 비평서는 2002년 영어로 번역되면서 미국 비평가들과 미술 이론가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 영어본은 125쪽의 얇은 책으로 리뷰를 쓰면서 참고했다.

 

 

 

공간(12년 2월호) 관계의 미학

 

미국의 철학자이자 미술비평가 아서 단토에 따르면 예술은 앤디 워홀과 함께 종말을 고했다. 그는 아예 시간과 장소까지 명시한다. 때는 1964년, 장소는 뉴욕 이스트 74번가의 스테이블 갤러리에서였다. 팝아티스트 워홀이 비누상자 ‘브릴로 박스’를 전시장에 쌓아놓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레디메이드 브릴로 박스가 아니라 워홀이 합판으로 만든 브릴로 박스였다. 하지만 육안으로는 둘의 차이를 식별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똑같게 보이는 두 상자가 어떻게 해서 하나는 그냥 상자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작품이 되는가? 어떤 사물이 예술작품인가 아닌가는 대체 누가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는가?

 

 

 

워홀의 브릴로 박스가 떠안긴 질문들에 대해 이 철학자는 ‘예술의 종말론’으로 응수한다. 전시장의 브릴로 박스가 웅변적으로 보여주듯이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기에 이제는 예술에 대한 정의가 가능하지 않다는 게 단토의 문제의식이다. 그리고 만약 예술에 대한 정의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고 또 유효하지도 않다면 예술의 역사는 거기서 끝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그렇다고 음울해 할 이유는 없다. 종말은 동시에 해방이기에. 단토는 이렇게 말한다. “예술의 종말은 예술가들의 해방이다. 그들은 이제 어떤 것이 가능한지 않은지를 확증하기 위해 실험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미리 말해줄 수 있다. 예술의 종말에 대한 나의 생각은 오히려 역사의 종말에 대한 헤겔의 생각과 비슷하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역사는 자유에서 종말을 고한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예술가들의 상황이다.”(<예술의 종말 이후>)

 

프랑스의 큐레이터이자 미술비평가 니콜라 부리요의 <관계의 미학>(1998)은 예술의 종말론에 대한 한 대응으로 읽힌다. 물론 프랑스 이론가답게 미국 철학자의 주장을 대놓고 상대하지는 않는다. 프랑스 철학자 위베르 다미쉬를 인용하여 예술의 종말론을 반박할 따름이다. 그에 따르면 예술 종말론자은 ‘게임의 종말’과 ‘플레이의 종료’를 혼동하고 있다. 한 가지 게임이 끝나더라도 예술이라는 경기는 다른 방식의 게임으로 지속될 수 있고, 실제로 우리가 접하고 있는 현실이 그렇다. “예술적인 활동은 시대와 사회적 맥락에 따라 형태와 양상, 그리고 기능이 변화하는 게임이지 불변하는 하나의 본질이 아니다”라는 게 부리요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비평가의 몫은 새로운 게임, 새롭게 전개되는 예술창작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 텐데, 부리요가 보기에 1990년대 이후 미술비평과 철학은 직무유기 상태다. 그 때문에 “1990년대 예술을 둘러싼 오해들”이 빚어지며 “현대의 예술적 실천들은 대부분 해석이 불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동시대 예술가들은 무슨 작업을 하고 있고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가. 부리요가 들고 있는 몇 가지 사례만 나열해보자면, “리크리트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는 한 컬렉터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그에게 태국식 수프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재료들을 남겨주었다.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는 5월 1일(메이데이)에 사람들을 초대해 공장의 작업공정 라인 위에서 그들이 좋아하는 취미를 실행하도록 했다. 바네사 비크로프트(Vanessa Beecroft)는 20여 명의 여자들에게 똑같은 옷을 입히고 빨간 가발을 쓰게 한 후 관객들이 문에 난 구멍으로만 볼 수 있도록 했다.(...)” 작가들의 다양한 이름만큼이나 생소한 작업 목록은 한참 더 이어진다. 이러한 예술적 실천들은 과연 해석이 불가능한 것일까?

 

 


물론 부리요의 대답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상 “오늘날 사회적 장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파악하는 것”은 비평가의 기본적 임무에 속한다. 그는 그 변화를 ‘관계의 미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풀어낸다.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의 해체 이후에 전개된 1990년대 미술이라면 탈정치적, 탈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갖고 있을 것으로 지레 짐작하기 쉽지만 부리요의 생각은 다르다. 분명 계몽주의 철학과 함께 ‘해방의 기획’을 갖고서 태어난 정치적 모더니티가 종말을 고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이상주의적이고 목적론적인 버전의 종말일 뿐이다. 관계의 미학은 목적론 대신에 ‘우연한 만남’은 존재론적 근거로 갖는다. 철학적 전통에서 보자면 알튀세르가 말하는 ‘마주침의 유물론’ 혹은 ‘우발적 유물론’에 기댄다. “기원도 없고, 그에 선재하는 의미도 없으며, 하나의 목적을 부여하는 이성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우연성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 유물론이다.


더불어 세계적인 도시화와 도시문화의 탄생은 관계의 미학의 사회학적 배경을 이룬다. 거주 가능 공간의 협소함은 가구나 오브제의 규모 역시 다루기 쉽게 작아지도록 유도했다. 또한 도시의 근거리 경험은 만남 혹은 마주침은 생활의 기본조건으로 만들었다. 그러한 환경에서 미술 전시는 사적인 소비 매체인 텔레비전이나 일방적인 이미지 앞에서 작은 공동체를 형성하는 연극 공연장, 혹은 영화관과는 다른 유형의 관계의 공간을 창출해낸다. 예컨대 전시회에서 작품은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대화의 가능성을 펼쳐놓는다. 우리는 동일한 시공간에서 작품을 보고 논평하고 움직인다. 이때 미술은 특수한 사회성을 생산하는 장소가 된다. 부리요는 그러한 공존과 상생의 창출이 해방이라는 모더니즘의 기획을 어떻게 보충하는지 주목한다.


관계의 미학을 예술이론이 아니라 일종의 형태에 대한 이론으로 정의하는 그는 형태를 또한 ‘지속적인 만남’이라고 부른다. 이 만남이 새로운 삶의 가능성에 대한 모색인 한, 예술에서 유토피아적 계기는 계속 보존된다. 그렇다면 예술은 죽었지만 또 죽지 않았다. 어떤 예술의 종말 이후에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예기치 않은 ‘얼굴들’이다. “모든 형태는 나를 바라보는 얼굴”(세르주 다네)이란 의미에서 그렇다. 지금, 예술은 이렇게 말한다. “나를 바라봐.”

 

12. 02. 03.

 

 

P.S. 위베르 다미쉬(다미슈)는 국내에 <사진, 인덱스, 현대미술>(궁리, 2003)에 붙인 서문으로만 소개돼 있는 듯싶다. 그의 <구름의 이론> 등은 흥미를 끄는 책이다. <구름의 이론>은 러시아본도 나와서 구한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구면'이군.

 

 

한편 <관계의 미학>에서 부리요가 다미쉬를 인용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위베르 다미쉬는 "예술의 종말"에 관한 이론들에서 "게임의 종말fin du jeu(game)"과 "경기의 종류fin de la partie(play)" 사이의 유감스러운 혼동의 결과를 이해했다: 게임 자체의 의미를 재검토하지 않은 채 사회적 맥락이 급격하게 변화하자마자 새로운 경기가 공표되었다."(29쪽)

'게임의 종말'과 '경기의 종류'라는 대구에서 '경기의 종류'는 아무래도 '경기의 종료'의 오식인 듯싶어서, 리뷰에서는 '게임의 종말'과 '플레이의 종료' 짝으로 바꾸었다. 단토가 말하는 '예술의 종말'은 예술이란 활동에서 그냥 하나의 게임(스테이지)의 종말일 뿐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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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전문지 SPACE(528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지난달에 나온 책을 뒤늦게 받았다. 세라 손튼의 <걸작의 뒷모습>(세미콜론, 2011)을 거리로 삼았다. 일반인에겐 다소 생소한 미술계 뒷얘기들이 흥미로운 책이었다. 

 

공간(11년 11월호) 걸작의 뒷모습

걸작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예술가의 손끝에서? <걸작의 뒷모습>의 저자 세라 손튼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위대한 작품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다. 즉 작가와 그의 조수가 위대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후원하는 딜러, 큐레이터, 비평가, 컬렉터들에 의해 비로소 위대한 작품은 완성된다. 그러니 걸작을 낳은 건 ‘작가’가 아니라 ‘미술계’라고 말해야 할까.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이자 문화사회학자인 저자가 보여주는  ‘걸작의 뒷모습’은 실상 ‘미술계의 뒷모습’이다. 고독한 예술가의 초상 대신에 그는 미술계를 움직이는 여러 ‘선수들’의 활동 스케치와 인터뷰를 통해서 이것이 바로 오늘의 미술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미술이란 무엇인가보다 미술계란 무엇인가를 먼저 묻는 것이 순서이겠다.  

미술계는 작가, 딜러, 큐레이터, 비평가, 컬렉터, 옥션 전문가 등 여섯 분야의 ‘선수들’에 의해 움직여진다. 보통 사람들은 그냥 미술시장을 떠올리겠지만 미술계는 미술시장보다 훨씬 넓은 개념이다. 저자의 구분에 따르면 “미술시장이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라면 미술계는 사람들이 상주하며 살아가는 공간”이다. 물론 오순도순 사이좋게 살아가는 공간은 아니다. 미술계는 ‘상징의 경제학’에 지배되며 명성과 신용, 미술사적 중요성, 제도권의 인정, 학력, 지능, 부, 컬렉션 규모 등의 요소에 의해 좌우되는 계층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이 미술계의 뒷모습을 그려내기 위해 저자는 일종의 에스노그라피(민족지학)를 시도한다. 관찰과 청취, 인터뷰, 핵심자료 분석 등을 아우르는 ‘참여관찰법’이 미술계의 사회적 문화적 특징과 내용을 통합적으로 기술하기 위해 그가 동원한 방법론이다. 250명 이상의 미술계 인사를 인터뷰한 것만으로도 책의 현장감은 충분히 전달된다.     

작품은 대개 고독한 작업의 결과로 탄생하지만 작품에 대한 평가와 인정은 다수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작가들은 다만 ‘미술처럼 보이는’ 작품을 만들어낼 따름이며, 그것이 ‘미술’이 되는 것은 미술계 사람들의 평판을 등에 업고서이다. 미술계는 어떤 작업의 결과물을 가치 있는 미술로 ‘호명’한다고 말해도 좋겠다. 미술만큼은 아니더라도 미술계의 역사 또한 짧다고만 할 수는 없을 텐데, 유독 지금의 시점에서 미술계가 주목을 끄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지난 10년간이 미술사의 가장 흥미로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미술시장의 전례 없는 호황, 미술관 관객의 급증, 그리고 미술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통해서 미술계는 양적으로 비대해졌다. 더 ‘핫(hot)’해졌고, 더 ‘힙(hip)’해졌으며, 더 ‘비싸’졌다. 사람들은 왜 갑자기 미술에 열광하게 됐을까? 저자는 세 가지 가설을 이유로 든다. 먼저 예전보다 더 좋은 교육환경에 노출돼 있다는 점, 그리고 교육받을 기회가 늘긴 했지만 현대인들이 예전보다 더 적게 책을 읽는다는 점, 끝으로 글로벌리즘이 지배하는 시대에 미술은 국제공용어이며 문자언어와 달리 공통의 관심사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그가 꼽은 이유이다.  

거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자면 미술작품이 매우 비싸다는 사실도 강력한 이유가 된다. 높은 가격에 경매되는 작품이 자주 헤드라인에 오르면서 미술품은 가장 대표적인 ‘럭셔리 아이템’으로 떠올랐고 전 세계 부호들의 관심사가 됐다. 금융위기가 도래하자 웰렘 드 쿠닝의 드로잉이 리먼 브라더스의 주식보다 더 안전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현대미술은 마치 부동산처럼 안정적인 투자대상이 되었다. 미술은 삶을 윤택하게도 해주지만 이제는 ‘투자 포트폴리오 다변화’의 한 종목으로도 당당히 인정받는다. 바로 이러한 분위기가 저자가 다섯 국가의 여섯 도시를 돌면서 취재한 일곱 가지 이야기의 배경이다.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가면서 제일 먼저 들르게 되는 곳은 뉴욕의 크리스티 옥션이다.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현대미술 경매 행사는 1년에 뉴욕에서 두 번, 그리고 런던에서는 세 번에 걸쳐 열리며, 이들 양대 옥션 하우스가 전체 옥션 시장의 98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미술 컬렉터들에게 옥션은 2차 시장이다. 1차 시장 딜러는 물론 갤러리인데, 갤러리에서 구입하면 가격은 훨씬 싸지만 작가나 작품의 성장 곡선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위험이 따른다. 반면에 옥션에 나오는 작품은 시장의 검증을 거친 뒤라 그만큼 위험이 줄어든다. 옥션 현장의 생생한 중계에 이어서 저자가 안내하는 곳은 LA칼아츠의 비평수업 강의실이다. 1960년대 이후 MFA(미술학 석사) 학위가 작가의 경력으로 인정되면서 유명 미술학교의 석사학위는 미술계에 들어오기 위한 필수 여건이 됐다. 보통 이들 학교의 등록금은 연간 2만 7000달러에 달하므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선 꽤 돈이 많이 든다. 비록 학생들은 MFA를 Mother-Fucking Artist(빌어먹을 예술가)라고 욕하기도 하지만 작가로서의 사회적 정체성이 화랑, 미술관, 강단 등 다양한 분야의 지지를 바탕으로 하기에 비평 수업의 의의는 과소평가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귀띔이다.   

현대미술의 또 다른 현장은 아트페어이다. 저자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아트페어로 꼽히는 스위스의 아트바젤로 안내한다. 갤러리로선 입성하는 일 자체가 화제가 되기는 아트페어다. 그리고 영국으로 건너가면 테이트미술관에서 주관하는 터너상의 시상과정을 밀착하여 지켜보게 된다. 뉴욕에서는 패션의 <보그>에 해당하는 미술전문지 <아트포럼>의 편집부를 찾아가며, 도쿄에 있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업 스튜디오와 베네치아 비엔날레도 여정에 포함돼 있다. 저자에게는 “매우 길고 느린 여정”이었지만 독자에게는 한바탕 회오리바람 같은 이 이야기들을 읽고 나면 적어도 이런 주장에는 공감할 수 있게 된다. 미술계 사람들에게 현대미술은 일종의 종교다.    

11. 1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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