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분야에서도 '이주의 책'을 고른다. 그럴 만한 책이 나왔기 때문인데, 다름 아니라 데이비드 실베스터의 프랜시스 베이컨과의 인터뷰집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디자인하우스, 2015)다.

 

 

그러고 보니 '현대미술가 시리즈'의 하나로 나왔는데, 마틴 게이퍼드의 <다시, 그림이다>(디자인하우스, 2012)와 <내가, 그림이 되다>(디자인하우스, 2013)에 뒤이은 책.

 

 

프랜시스 베이컨의 책은 몇 권 갖고 있고 또 읽었기에 이번에 나온 인터뷰집에도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어떤 책인가.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는 저명한 미술 평론가이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가까운 친구였던 데이비드 실베스터가 25년에 걸쳐 베이컨을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베이컨은 예수 그리스도를 푸줏간의 고깃덩어리로 표현해 충격을 안겨준 ‘십자가 책형 습작’이나 뭉크의 절규를 연상시키듯 공포에 질린 채 비명을 지르고 있는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 연구’ 등 공포를 자아내는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로 설명한다. 특히 인간의 형상을 물감으로 어떻게 구현해 낼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던 베이컨은 이 문제에 대해 데이비드 실베스터와의 대화를 통해 차분히 풀어낸다.

 

원서를 찾아보니 의외로 그다지 비싸지 않은 책이다. 내용이 마음에 들면 구비해놓아야겠다. 비록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은 소장하기 어려워도 책 정도야 얼마든지...

 

15. 0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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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예술분야에서 '이주의 책'을 고른다. 독일 철학자 크리스토프 멘케의 <예술의 힘>(W미디어, 2015)과 '행동주의 예술비평가' 앨런 앤틀리프의 <아나키와 예술>(이학사, 2015)이다.

 

 

멘케의 책은 <미학적 힘>(그린비, 2013)의 '속편'처럼도 느껴진다. 대학에서 실천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는 멘케는 인권철학 쪽의 저서도 갖고 있고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다. <예술의 힘>은 독일의 동시대 철학자가 쓴 미학서가 갖춤직한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다.

크리스토프 멘케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인 아도르노 계열의 철학적 미학자로서 그의 미학은 단지 예술의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철학적 인식 전체를 통괄하는 차원에서 예술을 말하고 미학을 말한다. 따라서 그의 미학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특성이기도 한 사회비판적 시각을 함축하며 그 관심은 미학을 넘어 인식, 사회, 정치의 영역을 관통하며 그 가운데 예술과 미학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통찰하게 해준다.

저자에 따르면 예술가는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것이 예술의 힘이다.

예술은 할 수 없음의 할 수 있음, 무능력의 능력이라는 역설적 능력에 근거한다. 예술은 단지 능력의 이성도 아니며, 힘의 유희도 아니다. 예술은 능력으로부터 힘으로 돌아오는 시간과 장소이며, 힘으로부터 능력이 생겨나는 시간과 장소이다.

 

<아나키와 예술>은 '예술의 힘'의 실제 사례로도 읽을 수 있을까. '파리코뮌에서 베를린 장벽의 붕괴까지'가 부제인데, 저자는 예술사에서 최근 생겨난 한 분야의 발전에 대해 관심을 환기하고 촉구하기 위해 책을 썼다고 말한다. 그 분야가 바로 '예술에서의 아나키즘에 대한 연구'인데, 저자가 아나키즘 선집을 편집하고 <아나키스트 모더니즘> 같은 전작을 펴낸 걸 보면 거의 혼자서 주도하는 분야가 아닐까도 싶다. "이 책은 아나키즘 시각의 역사적, 철학적, 사회적 정치적 이슈들과 관련된 예술생산을 부각시키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고 자평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첫걸음'이라잖은가. 책소개는 이렇다.

그동안 아나키스트로 확인된 예술가를 다루는 연구는 많이 있어왔지만, 아나키즘과 예술의 관계를 광범위하게 조망하여 시대적 특징을 밝히는 연구는 찾아보기 어려웠으며, 아나키즘 예술과 다른 전통들 사이의 차이는 종종 얼버무려지거나 완전히 무시되었다. 그런 점에서 행동주의 예술 비평가 앨런 앤틀리프가 쓴 이 책은 아나키즘 시각에서 역사적, 철학적, 사회적, 정치적 이슈들과 관련된 예술 생산을 부각시키면서 예술과 아나키즘의 관계에 대해 보다 풍부한 전망을 제공하는 첫 번째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란 문제와 관련해서 이론적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예술의 힘>은 그 실천에 주목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아나키와 예술>을 손에 들어볼 수 있겠다. 물론 두 권 다 읽겠다고 해도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

 

15. 0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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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르포르타주 작가 이상엽의 사진책 <변경지도>(현암사, 2014)가 출간됐다. '2008~ 2014 변경을 사는 이 땅과 사람의 기록'이 부제. "2008년부터 최근까지 대한민국의 지리적 변경인 DMZ, 서해 5도, 새만금, 제주 강정 등과 정치· 사회적 변방인 4대강 등의 재개발 지역, 시위 현장, 그리고 밀양, 진도 팽목항 등 자본과 욕망의 경계를 수차례 답사· 취재한 여정의 결산을 담은, 조세희의 <침묵의 뿌리> 이후 30년 만에 반갑게 만나는 진진한 포토 르포르타주다."

 

 

사진가로서의 성찰을 담은 <사진가로 사는 법>(이매진, 2010)과 <최후의 언어>(북멘토, 2014) 이후에 펴낸 저작이어서 그간의 작업에 대한 중간결산의 의미도 갖는 것처럼 보인다. 의당 저자의 사진론도 포함돼 있는데, '타인의 고통 앞에서' 같은 글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처음 사진을 찍던 무렵인 1990년대 초반은 민주와 독재 중간 어디쯤이었다. 이런 시대에 사진을 찍던 자들은 '사회적 책무'를 회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모두들 아스팔트를 스튜디오 삼아 작업했다. 낮에는 방독면을 챙겨 돌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거리에서 사진을 찍었고, 밤이면 암실에서 필름을 현상하며 사진사 책을 읽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회 사진가로 분류된 자들을 제외한다면 아마 사진 역사상 가장 적극적으로 사회변혁을 꾀했던 이는 루이스 하인(1874-1940)이었을 것이다.

 

루이스 하인이란 이름이 입에 익어서 찾아봤지만 국내에는 출간된 사진집이 없다(일부 사진 관련서에서만 언급이 된다). 어떤 작업을 했던가.

사회학자였던 루이스 하인은 대학에서 강의할 때 필요한 교재를 만들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뉴욕 항 앞에 있는 앨리스 섬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의 초라한 모습에서부터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건설하는 위험천만한 노동자들의 모습까지 그의 관심은 도시의 최하층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이중에서도 루이스 하인의 대표작은 노동하는 아동들을 찍은 사진이다. 석탄을 캐는 광산에서, 실을 뽑는 방직공장에서, 그는 셔터를 눌렀다. 당시 뉴욕 주민들에게 그것이 일상이었다 해도 그것은 고쳐야 할 사회적 문제였고 변화해야 할 시대였다. 결국 그의 사진은 미 의회에서 아동노동금지법으로 만들게 하는 근거가 되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건설하는 위험천만한 노동자들의 모습'이란 말에서 떠오르는 사진, 아하, 그게 바로 루이스 하인의 작품이었다. 언젠가 인상적으로 보고 루이스 하인이란 이름을 몇번 중얼거려 보았을 터였다. 바로 아래 사진이다.

 



도대체 어떻게 찍었으며, 사진에 찍힌 노동자들은 어떤 상태에 있는 건지 궁금하면서도 놀라게 하는 사진. 최근에 본 영화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도 이 사진을 오마주한 장면이 들어 있다(물론 영화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이나 특수효과를 이용했을 터이다). 르포르타주 사진작가의 작업이 어떤 것이며 사진의 사회적 책무가 무엇인지 단 한 컷으로 웅변해주는 듯싶다. 아동 노동자들에대한 사진도 마찬가지다.

 



천진한 아이들의 표정과 고된 노동의 흔적을 여실히 보여주는 그들의 옷차림이 대비된다. <변경 지도>에서 작가가 담고자 한 우리의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조국 교수의 추천사에 따르면, "이 책은 탐욕과 폭력의 체제가 유린한 사람과 자연의 모습에 대한 이상엽의 명징한 보고서다." 이 '보고서'를 '올해의 사진책'으로 꼽아두고 싶다...

 

14.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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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그림을 통해서 자기를 발견하는 수가 있다. 좋아하는 음악이, 좋아하는 영화가 그렇듯이. 그런데 막상 어떤 그림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은 막연한데, 좋아하는 일에 세금을 매기지 않는 이상 취향은 제각각이자 중구남방일 수 있기 때문이다(그냥 좋은 그림을 좋아한다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좋아하는 만큼 그의 모델이기도 했던 루시안 프로이드의 초상화들을 좋아한다(물론 둘다 유명 화가이므로 나의 취향이 특별한 건 아니다). 조디 그레이그의 <루시언 프로이드>(다빈치, 2014) 때문에 다시 상기하게 된 사실이다.

 

 

원제는 <루시안 프로이드와 함께한 아침식사>(2013). 마틴 게이퍼드의 '화가 에세이' <내가, 그림이 되다>(디자인하우스, 2013)도 관련서로 작년에 나왔지만 미처 챙겨두지 못했다('루시안'과 '루시언'이라고 따로 표기하는 바람에 같은 화가에 관한 두 권의 책이 따로 검색된다). 아무래도 보관장소가 걸려서였는데, 이젠 따로 이사갈 일도 없을 것이기에 맘에 드는 미술책이나 화집을 요령껏 구입할 수 있게 되었으니 첫번째 득템은 루시언 프로이드가 될 듯싶다. 예전에 그에 관한 페이퍼를 두 번 적을 때는 생존작가였지만, 루시안은 2011년 7월에 세상을 떠났다.

 

<루시언 프로이드>의 부제가 '오래된 붓으로 그려낸 새로운 초상의 시대'다. 다소 길지만 책소개를 발췌한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미술가로 손꼽히는 루시언 프로이드의 이름은 늘 엄청난 수식어와 함께한다. 그는 저명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손자로 태어나 평생 할아버지의 아우라 속에서 그 혈통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았다. 1930년대 나치스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건너온 이민자지만 루시언은 영국의 로열패밀리는 물론 데번셔 공작과 보퍼트 공작, 윌러비 남작부인 등 엘리트 귀족들과의 돈독한 관계와 후원을 평생 유지했다. 또한 그는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했으며, 수많은 여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최소 열네 자녀의 아버지로 화제가 되곤 했다(서른 혹은 마흔 명의 자녀가 있다고 추정되기도 한다). 더구나 프로이드의 대표작인 벌거벗은 인물화 중에는 그의 아들, 딸이 모델인 경우도 있어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팔십 대에 이르러서도 여인들과 관계를 갖거나 난투극을 벌여 가십난을 장식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루시언 프로이드는 2011년 여든여덟 살에 세상을 떠나기 전 십여 년 동안 전 세계 미술계를 제패한 최고의 화가였다. 70여 년간 이어진 그의 작품 활동의 중심 주제는 언제나 ‘인물’이었으며, 그는 특히 누드화에 전념했다. 거친 붓질의 물감층을 세밀하게 중첩시켜 인체의 질감과 양감을 표현하고, 그로써 인물의 존재감을 드러낸 화면으로 프로이드는 ‘20세기 최고의 사실주의 구상화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이 책 <루시언 프로이드>는, 유대인 이민자로 가난하게 시작했으나 세상을 떠날 때 1천6백억 원 이상의 어마어마한 유산을 남기고 간 성공한 예술가의 삶과 사랑 그리고 예술을 그리고 있다. 저자는 실패와 성공, 절망과 희망, 사랑과 이별이 수없이 교차하는 인생에서 쉽게 포기하거나 방향을 전환하거나 하지 않고 치열한 자기 싸움을 벌이며 꿋꿋이 자신을 지킨, 예술가다운 예술가를 꽤 오랜만에 만나게 해준다.

 

이번주에는 루시안과 아침식사를 같이할 수 있겠구나란 기대에 좀 늘어지던 휴일 저녁이 갑자기 팽팽해졌다...

 

14. 1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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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로는 여름을 몇 시간 남겨놓고 있지만 사실상의 여름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데(물론 한여름의 폭염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름맞이' 페이퍼로 미학책 몇 권에 대해 적는다. 이사를 얼마 남겨놓고 있지 않아서 실제 구입은 좀 늦춰질 수 있지만 필수 소장 아이템으로 이미 '눈도장'을 찍어놓은 책들이다.

 

 

먼저 폴란드의 저명한 미학자 타타르키비츠(1886-1980)의 미학사 3부작 가운데 '근대미학'을 다룬 마지막 권 <타타르키비츠 미학사3>(미술문화, 2014)이 출간됨으로써 드디어 완결됐다. 고대미학과 중세미학을 다룬 1, 2권은 지난 2005년과 2006년에 나왔으니 거의 잊고 있던 참이었다. 어떤 책인가(아래는 폴란드어판 원저). 

 

15-17세기 미학의 역사를 다룬 타타르키비츠 미학사 3부작의 완결편이다. 타타르키비츠는 고대·중세·근대라는 세 시기의 미학을 아우르면서 미와 예술에 대해 시대를 넘나드는 귀중한 글을 쓴 것뿐만 아니라, 각 시대의 원전들에서 발췌한 인용문으로써 그것을 예증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는 각 용어의 정착과 변형과정을 살피며 역사 속에서 미학이 어떻게 성립되어왔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의 글은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의미로 변천해온 여러 개념을 보다 명확하게 정리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미학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총 9부로 구성되어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유럽 미학의 유의미한 사건과 주요인물, 특징을 서술한다.

방대한 분량의 <타타르키비츠 미학사>를 완역한 역자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타타르키비츠의 대표작은 <미학의 기본개념사>(미술문화, 1999)인데, <여섯 가지 개념의 역사>(이론과실천, 1990)으로 처음 번역됐던 책이고 원제 또한 그렇다. 찾아보니 <미학의 기본개념사>는 1970년대에, <미학사>는 1960년대에 나온 책이다. 미학 관련서로는 고전급에 해당하겠다. 이론적인 저작으로 이 정도 소개된 저자는 <미학>과 <미학사>가 소개된 루카치 정도이지 않을까.

 

미학 관련서로는 제럴르 레빈슨이 엮은 <미학의 모든 것1>(북코리아, 2013)도 기대를 갖게 하는 시리즈다. 원저는 <옥스포드 미학 핸드북>이다. (눈에 띄는 표지의) 원저가 848족의 방대한 분량이어서 몇 권으로 나뉘어 번역되는 듯싶은데, 1권은 '미학의 기초: 철학적 미학'을 다룬다. 한두 권 더 나올 것 같은데, 조만간 완간되기를 기대한다...

 

14. 0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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