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5월이 시작됐지만, 개인적으론 푸르죽죽이다(이러다가 '광산'으로 가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잠시 하늘 한번 쳐다보는 기분으로 이달의 읽을 만한 책들을 골라본다. 읽을 수 있는 책과 읽고 싶은 책의 차이가 너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1. 문학 

신경숙 작가가 고른 문학분야의 책은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문학동네, 2010)이다. 알라딘 마을에서야 따로 소개가 필요 없는 책이다. 신형철 평론가는 이렇게 평했다(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7235.html).   

이 소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분류하자면 ‘수용소 문학’쯤 된다. 어떤 사람들은 위대한 이성을 가진 인간의 근대 프로젝트가 아우슈비츠(나치 수용소)와 굴락(소련 수용소)으로 귀결된 것을 냉소한다. 냉소주의는 위험하지만 냉소 자체는 성찰의 촉매가 되기도 한다. 확신에 차 있을 때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4대강을 살려야 한다는 확신에 차 있는 사람들은 낙동강 강바닥의 돌멩이보다도 덜 생각할 것이다.) 수용소는 우리가 ‘생각’을 하기 위해 부단히 되돌아가야 할 상처이고 바로 거기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출발점인지도 모른다. 탁월한 수용소 문학은 과거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반성이고 미래의 연습이다. 프리모 레비가 그랬고 솔제니친이 그러했다. 수용소의 문학은 문학의 수용소를 해체할 수 있다.

수용소 문학의 '고전'으로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열린책들, 2009)도 꼽아두고 싶다. 단 5권짜리 완역본 대신에 1권만을 '세계문학'에 포함시킨 것은 너무 임의적이란 불만도 적어둔다.  

 

덧붙여, <제1권>과 <암병동>도 재출간되거나 새 번역본이 나오면 좋겠다.    

2. 역사  

이덕일씨가 고른 역사서는 나가사와 가즈토시의 <돈황의 역사와 문화>(사계절, 2010)이다. 돈황에 대한 배경 설명이 좀 필요하겠다(돈황이란 말은 윤후명의 소설 <돈황의 사랑> 덕분에 인구에 회자되지 않았나 싶다).  

실크로드의 천산북로(天山北路)와 천산남로가 갈라지는 교통의 요지에 있는 도시가 돈황(敦煌)이다. 예부터 동서 문명의 교류지였던 돈황 근교에 막고굴(莫高窟)이 있다. 천불동(千佛洞)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석굴들이 있는데 현재는 812개가 남아 있다. 1900년 왕원록(王圓籙)이라는 도사가 막고굴 17굴에서 오호십육국 시대부터 북송 시대에 이르는 문서와 그림 등 5만여 점에 달하는 유물을 발견했다. 당시 구미열강의 침탈에 시달리던 청 조정이 이 유물들의 가치에 주목하지 못하는 사이에 영국의 오럴 스타인과 프랑스의 폴 펠리오같은 인물들이 이를 헐값에 사들여 자국으로 가져갔다. 이는 일종의 문화약탈이지만 그 바람에 세계에는 돈황학이라고 불리는 하나의 학문 분야가 형성되었다.

그런 '돈황학'의 입문서격으로 읽을 수 있겠다. 찾아보니 마쓰오카 유즈루의 <돈황 이야기>(연암서가, 2007)도 돈황학 입문서의 '고전'이라고 소개되는 책이다. 중국쪽 학자로는 리우진바오의 <돈황학이란 무엇인가>(아카넷, 2003)가 소개돼 있다. 보다 전문적인 성격을 지닌 책인데, "동황학 전문 연구가인 지은이는 이 책에서 중국인의 시각에서 영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등 세계 각지에 분포해 있는 돈황 관련 자료와 연구를 집대성하여 저술해 돈황학 전반에 대한 체계적 이해를 돕고 있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철학분야의 책은 이종은 교수의 <정치와 윤리>(책세상, 2010)다. 정치철학 범주에 속하는 책인데,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은 칸트를 위시한 의무론자, 밀로 대표되는 공리주의자, 홉스, 로크, 루소로 대표되는 사회계약론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정치권력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를 시도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의무론자는 행위의 동기와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공리주의자에게는 행위결과의 극대화가 중요하다. 홉스는 절대군주, 로크는 작은 정부, 루소는 일반의지에 기초한 정부를 옹호한다. 각 이론의 논의의 방식은 다르지만, 우리는 민주주의적 정치권력 견제에서 공통점을 발견한다. 오늘날 어지러운 정치현실을 보면 마키아벨리가 왜 영악한 여우와 용맹한 사자의 덕목을 군주에게 요구하는 지가 잘 설명된다.

정치철학적 화두이기도 한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조승래 교수의 <공화국을 위하여>(길, 2010)과 대표적인 현역 철학자들의 <민주주의는 죽었는가?>(난장, 2010)가 요긴한 참조점이 돼줄 듯싶다.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추천한 책은 <다극화체제, 미국 이후의 세계>(시대의창, 2010)이다. 저자들은 9.11 테러와 최근의 경제 위기 등으로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EU, 중국, 인도, 러시아가 포스트 아메리카 시대의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다극화세계가 개막되면서 세계사가 다시 한 번 공생공영의 다극화와 약육강식의 신제국주의 사이에서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본다." 소위 '다극화체제'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담고 있는 책이다. 비슷한 전망을 다루고 있는 책으론 파라그 카나의 <제2세계>(에코리브르, 2009)가 먼저 떠오른다. 미국이 소련의 전례를 따르고 있다고 경고하는 드미트리 오를로프의 <예고된 붕괴>(궁리, 2010)도 나란히 읽어봄직하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추천한 경제분야의 책은 최용석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애플의 전략>(아라크네, 2010)이다. 추천자의 소개는 이렇다. 

애플사의 야심작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세상을 바꿔놓고 있다. 이 변화의 바람은 IT 산업뿐 아니라 전체 사회, 전체 경제에 휘몰아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와 같은 급격한 변화를 지각변동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 책은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확산과 함께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를 여러 각도에서 심도 있게 설명해 주고 있다. 우선 우리가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에 일대혁명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관과 음식점을 찾아가고, 책을 사서 읽고, 쇼핑을 즐기는 방식에도 변화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보통신혁명은 우리 삶을 통째로 바꿔놓고 있다. 이 혁명의 선두에서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가 흥미진진하게 설명되어 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사용자가 아니어서 '변화의 바람'이 어떤 것인지 실감하고 있지 못하지만, 몇달 전에 나온 화제작 <구글드>(타임비즈, 2010)와 함께 '트렌드'를 점쳐보는 데 참고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가 알던 세상의 종말'이라고 하지 않는가! 거기에 <디지털 혁명의 미래>(청림출판, 2010)까지 얹으면, 애플과 구글,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삼각편대가 이끌고 가는 '디지털 미래'가 어떤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있겠다.  

6. 과학 

최영주 교수가 추천한 과학분야의 책은 마르쿠스 베네만의 <지능적이고 매혹적인 동물들의 생존게임>(웅진지식하우스, 2010)이다. 책의 내용은 이미 제목이 잘 요약해주고 있다.     

우리가 즐겨먹는 오징어의 바닷속 최면술에 대하여, “계획은 심플하게, 결정은 단호하게, 공격을 재빠르게”, 카멜레온의 필사적 살생기를, 공격의 정석 정공법을 갈매기류의 북방가넷의 청어 사냥법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생물학을 전공한 기자의 눈으로 면밀히 관찰한 동물들의 약육의 세계를 과학적인 근거로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다. 인간상식을 뛰어 넘는 동물들의 생존법은 책의 제목처럼 매혹적이고, 지적이고, 교묘할 정도이다.

'인간상식'을 뛰어넘는다고 하지만, 그러한 생존술에서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인간들도 많다는 사실 또한 역설적이지만 '상식'에 속한다.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은 마티 크럼프의 <감춰진 생물들의 치명적 사생활>(타임북스, 2010). 저자는 <멍청한 수컷들의 위대한 사랑>(도솔, 2007)이 소개된 바 있는 양서류 전공의 행동생태학자라고. 머리말에서 저자는 이렇게 적고 있다.  

<멍청한 수컷들의 위대한 사랑>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는 학술적인 논평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동식물 관계에 얽힌 이야기들이다. 내가 목표로 하는 일도 자연 세계를 올바로 인식하도록 도와주자는 것이다. 간간이 내가 인간이 아닌 동물, 식물, 세균, 심지어 곰팡이도 마음에 의식적인 목표를 갖고 행동한다는 암시를 하는 듯도 하고(학자들은 이것을 목적론이라 한다), 혹은 내가 다른 동물에게 인간적인 특징을 부여하고 있는 듯도 할 것이다(학자들은 이것을 의인화라 한다). 하지만 그런 의도보다는 단순히 세상 모든 것을 서로 연관 지어보고, 이 멋진 자연사를 나누고 싶다는 열정으로 내가 좀 오버하고 있다고 생각해주기 바란다.

어디 가나 '멍청한 수컷들'은 차고 넘치는 모양이다. 가벼운 읽을거리고 보아도 좋겠다.   

7.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유예진의 <프루스트의 화가들>(현암사, 2010)이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음미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인데, 추천자 소개는 이렇다.  

2008년의 <그림과 함께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매우 훌륭한 책이었는데 너무 잘 만들어서 책이 두껍고 비싸지는 바람에 추천을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유예진이 펴낸 <프루스트의 화가들>은 프루스트를 처음 만나도 낯설지 않게 안내를 잘 하면서 프루스트의 소설 내용과 필연적 관계에 있는 그림들 역시 엄선해서 넣었다. 아름다운 5월에 걸맞는 책이다. 혹시 여력이 있으신 독자는 2008년의 책과 더불어 이 책을 읽으면 더욱 좋으리란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러한 '여력'을 가늠해보기 전에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생갹의나무, 2005)란 질문을 먼저 통과해야겠다. 알랭 드 보통의 질문이다.   

8. 교양 

이한구 기자가 고른 교양서는 폴 브뢰머의 <이라크에서 나의 생활>(한국국방연구원, 2010). 한국국방연구원에서 펴낸 책이라는 점이 눈에 띄는데, 추천자의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은 이라크에서 후세인 정권이 붕괴한 후 미국식 민주정부 수립의 임무를 맡고서 2003년 4월부터 1년 4개월 동안 주이라크 미국대사 겸 연합임시행정기구 총독으로 활동했던 폴 브뢰머의 생생한 보고서다. 현지 사정뿐만 아니라 미국내 다양한 입장들과 충돌하고 설득하며 다른 나라에서의 국가건설이라는 과제를 추진해가는 브뢰머의 임무를 마치 화면으로 보듯 생생하게 살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기회다. 국제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 이후 이라크의 내부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는데도 큰 도움을 주고 미국이라는 사회가 대외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처리해가는 지를 아는데도 많은 정보를 준다.

더불어, 추천자는 이 책이 1945년 8월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의 미 군정 기간을 겪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 많으리라고 말한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저자는 미제국의 '이라크 총독'이었으니까. 더불어, 사병의 시각에서 본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는 올 아카데미영화제 작품상 수장작인 <하트로커>도 참조해볼 만하다. 거기에 '한국전쟁에서 이라크전쟁까지 세계 역사를 조종한 CIA의 모든 것'을 폭로하고 있는 팀 와이너의 <잿더미의 유산>(랜덤하우스코리아, 2008)도 좀 무겁지만 올려놓고 싶다. 소장하기엔 부담스럽고 도서관에서 언제 빌려봐야겠다.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추천한 책은 서영남의 <민들레 국수집의 홀씨 하나>(휴, 2010)이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대접하는 서영남 전직 수사 이야기'란 부제가 책의 내용을 말해준다.  

저자 서영남은 이 책을 통해 ‘민들레 국수집’을 열게 된 사연과 민들레 가족의 우정을 담고 있다. 눈여겨 볼 것이 독특한 운영 방침이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프로그램에 공모하거나 후원회를 조직하지 않으며, 부자들의 생색내기 돈은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오직 우리 이웃들의 자발적 나눔과 정성으로 식탁을 차려내고 민들레 가족을 보살핀다. 곤경한 사람을 돕는 데 이유는 없다. 봄이 되면 노랗게 꽃을 피우는 민들레처럼. 정부나 부자, 후원회에 대한 독선적인 시각이 거슬리긴 하지만 이게 나눔의 본령인 게 어쩌겠나.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 사람들은 그에게서 이타행을 실천하는 성자의 모습을 본다."라고 추천자는 적었다. 국수 말아주는 전직 수사 이야기라니까 떠오르는 건 다일공동체의 밥 퍼주는 최일도 목사이다. 찾아보니 <행복하소서>(위즈덤하우스, 2008)까지가 근황이다.   

10. 노무현  

내 마음대로 고르는 이달의 주제는 1주기를 맞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이미 많은 책이 나왔고, 이달에도 아마 더 나올 것이다. 그가 꿈꾼, 하지만 실패한 지점에서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이미 '노무현'이라는 기표는 인간 노무현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것이 한국사회의 '분노 자본'을 모두 끌어담을 컨테이너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10. 05. 02.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은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이다. 언제부턴가 그의 가장 유명한 단편이 된 듯싶은데, 들뢰즈를 비롯해서 많은 철학자들이 이미 주석을 붙인 바 있다. 평론가 복도훈도 <눈먼 자의 초상>(문학동네, 2010)의 서문에서 다시금 이 소설의 주인공 '바틀비'를 호명하고 있어서 인용한다.    

너그럽고도 참을성 있는 중년의 부르주아 신사이자 법류사무소 사장인 화자가 필경사 바틀비에게 이것저것 시키고 묻는다. 서류 좀 검토해주게, 필사를 부탁하네, 안 한다는 건가, 우체국에 다녀와주게, 자, 포목 직원은 어떤가, 자네의 직업을 책임져주지, 자네 고향이 어디인가, 식사 좀 들게, 대답 안 할 건가, 대체 자네는 누구인가. 그러나 돌아오는 바틀비의 대답은 매한가지.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 소설에서 수십 번 반복되는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는 바틀비가 앉아 있는 구석진 책상으로부터 조그맣게 들려오다가, 서서히 그를 둘러싼 법률사무소라는 소우주를 잠식하는가 싶더니, 마침내 옥사에 수감된 바틀비가 아사(餓死)한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바틀비의 망령, 분신처럼 주변을 배회한다. 물론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는 그 말이 발화되고 울리는 장소인 사무소와 옥사,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특별한 위협도 타격도 주지 않는다. 그것들은 여전히 흔들림없이 거기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바틀비의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처럼 그렇게 모든 것을 변화시킬 '상투어(formula)'가 우리에게도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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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쟌느의 느낌
    from avecjang's me2DAY 2010-05-03 14:21 
    갑-을 관계에서 을에게 주어지는 노예계약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내 속의 '바틀비' 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고 중얼거린다.
 
 
비온새벽 2010-05-02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기분이 푸르죽죽하시다니 가슴이 아프네요. 사실은 저도 방금 대형 행거가 무너져서 기분이 거무죽죽합니다 ^^ 저는 로쟈님의 추천도서중에는 숨그네와 애플의 전략을 이번달 목표로 삼아봐야겠어요.

로쟈 2010-05-02 22:20   좋아요 0 | URL
자업자득입니다.^^;

주니다 2010-05-02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봄다운 날씨 같아요. 금방 더워져서 여름으로 접어들겠지만..<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시간을 시절로 번역하기도 하나봐요? 한 글자 차이가 주는 뉘앙스가 아주 묘하게 혓바닥을 간지럽히는군요. ㅋㅋ

로쟈 2010-05-02 22:21   좋아요 0 | URL
네, 그래도 '잃어버린 시절'은 좀 어색하죠. 적응은 잘 하셨나요?^^

미지 2010-05-02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만 푸르죽죽한 건 아니었군요.. 오랜만에 날이 좋아 아이한테 미안해서 뒷산에 데리고 갔다가 로쟈님께서 전에 추전하셨던 <우리 안의 과거>란 책을 좀 읽었는데, 숙연해져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앞부분 읽어가는 중이지만, 이 시대의 역사 문제에 대한 테사모리스 스즈키의 매우 진중하고도 세심한 시각이 놀랍더군요...!
"분노자본"은 로쟈님의 용어인가요? 흥미로운데요^^ 언제 해설 들을 기회가 있길 빕니다.

로쟈 2010-05-02 22:53   좋아요 0 | URL
'분노 자본'은 지젝의 '민주주의에서 신의 폭력으로'란 글에서 가져왔습니다. <우리 안의 과거>는 정작 저는 못 챙겨둔 책인데요.^^;

노이에자이트 2010-05-02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틀비라는 사나이의 정체가 뭘까...정말 읽어도 읽어도 묘한 느낌을 주는 소설입니다.공포영화로 만들어도 될 것 같기도 하구요.일종의 돌아이같기도 하구...마지막 장면을 보면 좀 불쌍하다는 느낌도...한 번 또 읽어볼까요.제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 중 한 편이에요.배경이 월스트리트인데 금융공황 당시를 배경으로 해서 바틀비를 다시 써본다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로쟈 2010-05-02 23:28   좋아요 0 | URL
영화화되긴 했는데, '공포영화'인지는 모르겠네요.^^

종이달 2022-03-23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어제 한겨레교육문화센터 강의가 끝나서 4월엔 한숨 돌리게 됐지만(5월 강의 이전에 재충전이 될까?), 3월에 마무리 못 지은 일들이 고스란히 이월됐기에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내내 부조리극을 연출하고 있는 천안함 침물 사건도 물론 마음을 가라앉게 만들고.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4월의 책장을 펼친다. 무엇이 보이나?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1. 문학  

신경숙 작가가 추천한 문학분야의 책은 '현대문학' 55주년 기념 소설집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현대문학, 2010)로 박완서 선생 외 여덟 작가의 자전적 단편을 모았다.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회상과 함께 펼쳐지는 박완서의 자전이나 전쟁 통에 홀로 떨어져 피난 가는 소년 이동하의 모습에서는 우리 역사가 만들어낸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들의 입장에서 쓰여진 윤후명, 사람 속에 섞이지 못하고 자신 속으로만 파고드는 여자의 내면을 고백 투로 펼쳐낸 김채원, 누구보다 뛰어난 예술가의 자질을 펼쳐보지 못하고 투신해버린 오빠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낸 양귀자를 비롯한 최수철, 박성원, 조경란, 김인숙의 자전 속에서는 작가로서의 그들의 삶만 보이는 게 아니다. 자연스럽게 그 작가의 삶속에 비쳐지는 우리 역사와 지금의 현실이 보인다.

생각난 김에 <얼룩 - 2010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현대문학, 2009)과 <201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작가, 2010)도 같이 묶어볼 만하다.    

세계문학의 고전들도 연이어 출간되고 있는데, 일단 눈에 띄는 건 작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헤르타 뮐러의 작품들이지만, 1930년대 미국작가 너새네이얼 웨스트의 소설들을 골라본다. 그건 <거금 100만 달러>(마음산책, 2010)이 출간됨으로써 39살에 교통사고로 요절한 이 작가의 '전집'이 소개된 셈이기 때문이다. <메뚜기의 하루>와 <미스 론리하트>, 그리고 이번에 묶여서 나온 <거금 100만 달러>와 <발소 스넬의 몽상> 등 네 편이 그가 남긴 작품의 전부라 한다. 그럼에도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포크너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면 대단하지 않은가! 해럴드 블룸은 <거금 100만 달러>에 대해 "이 혼란의 시대의 정전"이라고 평했는데, 그게 어떤 시대인지는 작품의 에피그라프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   

"말했잖아요. 저는 죄가 없다고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걸 입증할 돈이 없지 않은가." 

'1930년대 암울한 미국사회의 축소판'을 그려냈다고 하지만, 지금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성싶지 않다. 고전은 그래서 언제나 '우리시대의 고전'이다.   

2. 역사  

이덕일 소장의 추천작은 임상혁의 <나는 노비로소이다>(너머북스, 2010). 제목의 암시대로 '노비제', 특히 '노비 소송'이라는 프리즘으로 조선시대를 들여다보는 게 핵심. 부제는 '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다.    

저자는 노비제가 조선시대의 신분제, 나아가 사회의 얼개를 규명하는 핵심 관건이라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 노비에 대한 연구는 극히 소략하다. 저자는 “신분이라는 것이 지극히 법률적인 개념인데도 노비의 법적 성격에 대해 거의 외면한 채 진행된 것은 따져 볼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일본은 물론 중국과도 달랐던 조선의 노비소송을 들여다보면 조선의 시스템이 보이는 듯하다. 이 책은 노비 소송을 통해서 바라본 조선 사회의 생생한 속살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흑인 노예의 역사를 다룬 정상환의 <검은 혁명>(지식의숲, 2010)도 우리와 비교해서 읽어봄직하다. 노예제에 관한 이론적 저작으론 모시스 핀리의 <고대 노예제대와 모던 이데올로기>(민음사, 1998)가 있다. 현재는 절판된 책인데, 다시 나오면 좋겠다. 개인적으론 작년에 핀리의 책을 모아놓고 조금 읽다가 만 적이 있다. 여차하면 다시금 시도해봐야겠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철학분야의 책은 최훈의 <라플라스의 악마, 철학을 묻다>(뿌리와이파리, 2010)이다. 철학 입문서인데, 책소개에 따르면, "기존 책들이 대부분 사고실험을 단순히 흥미 위주로 쭉 나열해놓았을 뿐이어서 특정한 사고실험이 철학사의 어떤 맥락에서 제기되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단점을 보였다면 논리학을 전공한 최훈 교수가 쓴 이 책은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과학철학 등 철학의 주요 분야들에서 골고루 선택한 117가지 사고실험을 통해 철학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고. 청소년들도 읽을 수 있는 책이지 않을까 싶은데, 원조를 따지자면 양운덕의 <라쁠라스의 악마는 무엇을 몰랐을까?>(창비, 2001)도 있었다. 영어권 철학 입문서로는 로젠버그의 <철학의 기술>(서광사, 2009)도 소개돼 있다. 원제대로 하자면 '철학실습'이 딱 어울린다.   

 

개인적으론 라캉과 정신분석 관련서들이 몇 권 출간돼 반가운데, 모두 4월에 손에 들려고 하는 책들이다. '라캉 정신분석의 쟁점들'이란 부제를 갖고 있는 맹정현의 <리비돌로지>(문학과지성사, 2010)는 라캉의 사위이자 상속자 자크-알랭 밀레의 지도하에 박사학위논문을 쓰고 있는 저자의 '인간 정신의 지형도'. 국내 저자의 책으론 <라깡의 재탄생>(창비, 2002) 이후의 성과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만화책 <라캉>(김영사, 2002)을 통해서 처음 소개됐던 영국의 정신분석가 대리언(다리언) 리더의 <여자에겐 보내지 않은 편지가 있다>(문학동네, 2010)도 눈길을 사로잡는 책이다. 어인 일인지 나는 저자를 여자로 착각하고 있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책은 "우아하고, 지적이고, 명쾌하다!"는 알랭 드 보통의 추천사도 싣고 있는데, 거기에 보태진 뒷표지의 문구는 이렇다. "알랭 드 보통보다 대담하고 지젝보다 친절하다!" 보통보다 어렵고 지젝보다 쉽다, 고 읽힌다.

     

덧붙여, 카자 실버만의 <월드 스펙테이터>(예경, 2010)도 소리소문 없이 나온 라캉주의 철학서다. 부제는 '하이데거와 라캉의 시각철학'. 저자는 기호학과 정신분석, 페미니즘을 이론적 기반으로 하여 영화와 사진을 분석한다. 이번엔 진짜 여자다.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추천한 정치/사회분야의 책은 한번 소개한 바 있는 박지희, 김유진의 <윤리적 소비>(메디치, 2010)다. 이젠 많이들 아는 내용인데, 책의 핵심은 '합리적 소비 VS 윤리적 소비'다.    

자급자족적인 농업문명 시대와 달리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상의 거의 모든 활동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여 활용하는 소비행위를 수반한다. 그런데 소비활동의 중요 요소인 구매 과정은 전형적인 경제활동으로서 ‘현명한’ 소비자로서 활동할 것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상품이나 서비스의 제조나 제공 과정을 살펴보지 않고,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용을 얻기 위해 구입하는 행위는 합리적인 소비자의 최고 덕목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찬양받는 ‘합리적’ 소비의 ‘비윤리성’을 고발하고, 대신 ‘윤리적’ 소비를 주장한다. 우리의 소비활동을 생태계 보존, 동물의 복지, 노동자와 제1차 생산자의 복지, 그리고 (여행과 같은 문화적 소비의 경우) 현지인들의 복지 등과 연관시켜 윤리적으로 사고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보이는 '윤리적 소비'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도 없지는 않은데,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실천문학사, 2010)이 대표적이다. 관련 페이퍼로 '윤리적 소비에 관한 두 권의 책'(http://blog.aladin.co.kr/trackback/mramor/3451490) 참조.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의 추천작은 <토요타의 어둠>(창해, 2010)이다. 얼마전 언론에서 크게 다루었던 책인데, '품질경영'의 대표적 브랜드로 인식됐지만 자사 자동차의 결함에 대한 은폐로 위기에 몰린 도요타의 문제를 짚고 있다. 알고 보면, 1년에 광고비만 1천억 엔 이상씩 쓴 광고빨이었다는 것.    

이 책을 쓴 사람들은 토요타 자동차의 성능이 좋다는 이미지가 허구에 불과함을 지적한다. 그러나 사실은 자동차 판내대수와 리콜대수가 거의 똑같을 정도로 결함이 많은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2004년에서 2006년의 기간 동안 512만 대를 팔고 511만대를 리콜해 결함률 99.9%를 기록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을 소중하게 키운다는 기업이 과로사한 사람에게 산재 처리조차 해주지 않는 매정함을 보이고 있다. 토요타의 사례는 기업의 덩치가 통제불능의 수준까지 커지는 공룡화의 현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 토요타의 교훈을 새겨들어야 할 기업이 많을지 모른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어떤 시사점인가? <삼성과 도요타, 왜 최강인가?>(열매출판사, 2006)란 책 제목이 반어적으로 말해주는 듯싶다.   

 

개인적으론 자본주의 해부서 몇 권이 관심도서다. 짐 스탠포드의 <자본주의 사용설명서>(부키, 2010)은 "노동자나 자영업자 같은 보통 사람들을 위해 쉽게 풀어 쓴 자본주의 경제학 입문서"이고, <제1권력>(프로메테우스출판사, 2010)은 J.P. 모건과 록펠러가라는 독점재벌이 미국경제뿐 아니라, 세계경제를 어떻게 '주물렀는가'를 폭로한다. 히로세 다카시 버전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문화사회학자 에바 일루즈의 <감정 자본주의>(돌베개, 2010)는 자본주의를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도록 해준다.  

6. 과학

최영주 교수가 추천한 과학분야의 책은 김병호의 <과학인문학>(글항아리, 2010)이다. 시인이 쓴 과학이야기란 점에서 <시인을 위한 물리학>(에코리브르, 2006)과는 거울상을 이루는 게 아닌가 싶다. 어떤 장점을 지녔을까? 

“질량이 뭐야, 아빠” 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물리를 전공한 시인의 관점으로 물리학에서 필요한 근본이론을 설명하고자 노력한 책이다. 저자는 시인이 생각하는 삶의 관점에서, 고민 많은 청소년의 경험의 관점에서, 우리의 주변 일상생활에서 어려운 물리학의 개념을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때로는 철학적으로 때로는 현실적인 예를 들어 설명의 지루함을 피하게 한다. 

요즘은 뇌과학이 대세이므로 <인문학에게 뇌과학을 말하다>(동녘사이언스, 2009)도 같이 꼽아볼 수 있겠다. 모두 지난달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꼽은 나탈리 앤지어의 <원더풀 사이언스>(지호, 2010)와 자웅을 겨뤄볼 만하다.   

7.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김동규, 정해진의 <이 장면을 아시나요?>(생각을담는집, 2010)이다. 오페라 가수의 오페라에 관한 책이다. "오페라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 열다섯편이, 마치 그 인물들이 옆에서 내게 말을 거는 것처럼, 쓰여진 책이 나왔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곡을 불러 인기를 한몸에 안고 있는 성악가 김동규씨가 자신의 입담대로 이야기하듯이 책을 엮어 아주 재미있다."고 한다. 소개를 보니, 라디오 프로그램의 인기코너를 엮은 것이다. 

CBS-FM <아름다운 당신에게> 최고 인기 코너 ‘이 장면을 아시나요’에서 소개된 오페라만 해도 무려 30여 편. 한 장면 한 장면이 아닌, 오페라 전체를 들려주고 싶은 욕구로 바리톤 김동규는 “아니, 오페라가 뭐하는 데 쓰는 물건이여?”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오페라가 별 게 아녀요.”라고 너스레를 떨며 오페라의 황홀한 세계로 안내한다.

오페라 애호가라면 돌라르와 지젝의 <오페라의 두번째 죽음>(민음사, 2010)도 같이 꽂아둘 만하다. 오페라 광팬이라는 두 저자가 각각 모차르트와 바그너의 오페라를 철학적으로, 정신분석학적으로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짐작엔 오페라에 관한 가장 고난도/고감도의 책이지 않을까 싶다. 지젝이 밝힌 취지는 이렇다.    

“근대기 주체성의 시대와 대체로 일치하는 시대에, 어떤 극적 사건을 상연하는 일부로서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것이 가능했다. 따라서 우리는 오페라의 역사에서 주체성의 역사를 구성하는 추세들과 변동들의 발자취를 찾아보고 싶은 것이다.”

 

8. 교양  

이한우 기자가 고른 교양분야의 책은 랠프 네이더의 <열일곱 개의 전통>(재인, 2010)이다. 랠프 네이더? 소비자-시민 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랠프 네이더, 우리에게는 미국의 대표적인 소비자운동의 선구자 정도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레바논계 부모님으로 받은 교훈을 아주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네이더는 당당하게 말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둘 다 거의 백 년을 살았다. 우리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의 풍부한 경험에 바탕을 둔 통찰과 지혜의 도움을 받았다.” 어머니는 늘 네이더 형제들에게 듣기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그는 이런 식으로 경청의 전통, 가족식탁의 전통, 자녀평등의 전통, 독립적 사고의 전통, 애국의 전통, 시민생활의 전통 등 부모와 자연 그리고 공동체로부터 익힌 17개의 자랑스러운 덕목을 마치 곁에서 이야기하듯 들려준다.

결들여, 요즘 사회-시민운동엔 전통 대신에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 앤디와 마이크의 <예스맨 프로젝트>(빨간머리, 2010)에도 눈길을 줄 만하다(관련기사는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6931.html 참조). 광고카피였던 '유쾌-상쾌-통쾌'는 이들의 작업에도 더없이 유효한데, 이런 사진은 어떤가. 



예스맨이 어떤 천재지변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서바이버볼’을 입고 해변을 거닐고 있다. 테러 방지에 안달한 사회를 풍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다큐멘터리 <예스맨 프로젝트>의 한 장면.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추천한 실용서는 김효정의 <나는 오늘도 사막을 꿈꾼다>(일리, 2010). 저자는 영화프로듀서인데, 특이한 것은 사막 횡단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그녀가 구른 것은 영화판만이 나니었다. 사막의 모래밭을 굴렀다. 세상에서 가장 추운 고비(중국), 가장 건조한 아타카마(칠레), 가장 뜨거운 사하라(이집트), 가장 바람이 세게 부는 남극 대륙을 달렸다. 이 네 곳의 사막 레이스를 완주한 사람을 그랜드 슬래머라고 한다. 여성으로서는 아시아 최초, 세계에서는 세번째란다. 나는 이 그랜드 슬래머를 줄여 ‘글래머’라고 부르고 싶다.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이야기다.

이 정도면 '실용서'가 아니라 '모험서'로 분류해야 될 듯싶지만, 여하튼 '꿈을 향해 도전하는 젊음'이란 이미지에 잘 맞는 이야기가 펼쳐질 듯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오늘도'의 컨셉이 그런 것이겠다. 덩달아 <나는 오늘도 유럽출장간다>(부키, 2008), <나는 오늘도 춤추러 간다>(마젤란, 2007) 등의 타이틀에도 눈길이 간다. '실용서'가 무엇인지도 감이 좀 잡힌다.   

10. 오늘의 영화 

내 맘대로 고르는 주제는 '오늘의 영화'다. 계기가 된 건 영화평론가 허문영의 <세속적 영화, 세속적 비평>(강, 2010). <씨네21>의 편집장을 역임한 저자의 영화평은 자주 읽어봤지만 한데 묶어놓으니 중럄감이 다르다. 그의 비평은 '표준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개성적'인 쪽에 가깝다는 것도 알게 됐다. 저널리즘적 비평에 몸담고 있었지만 별로 구애받지 않았다는 의미다. 말미에는 동료 평론가인 정성일, 김혜리의 유익한 발문도 수록돼 있다. 더불어 '오늘의 영화'에 대한 흥미도 자극한다. '강의 영화' 시리즈에는 '우리시대의 감독'도 예고돼 있는데, 임권택, 김기덕 감독과의 대담은 정성일, 그리고 홍상수 감독과의 대담은 허문영, 박찬욱 감독과의 대담은 김영진 평론가가 각각 맡고 있다. 기대가 되는 근간들이다.  

10. 04. 01.  

P.S. 이달의 '의무방어전'을 치른 기분이다.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만을 덧붙인다. 이달의 고전작가라고 해도 되겠다. '가장 러시아적인 작가'로 꼽히는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작품들이다.  

"니콜라이 레스코프, 그야말로 진정한 작가다"라고 톨스토이는 평했는데, 톨스토이가 남을 칭찬한 건 흔하지 않은 일이다. 대표적인 중단편을 묶은 <왼손잡이>(문학동네, 2010)가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됐고, <괴물 셀리반>(닮, 2006)과 <러시아의 맥베스부인>(소담출판사, 2006)은 수년 전에 출간됐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이야기꾼'이기도 한 레스코프의 면모를 확인해볼 수 있겠다. 발터 벤야민의 레스코프론은 유명한데, 이렇게 말했다.  

이야기꾼이 지닌 재능은 그의 전 생애를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야기꾼이란 그의 삶의 심지를, 조용히 타오르는 그의 이야기의 불꽃에 의해서 완전히 연소시키는 사람이다. 레스코프와 같은 이야기꾼을 둘러싸고 있는 비교할 수 없는 아우라는 바로 여기에 기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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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3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3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대학 신입생을 위한 추천도서

메를로퐁티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것인데, 흥미롭게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선정한 '2010년도 대학 신입생을 위한 추천도서 20종'에 포함돼 있다('대학원 신입생'을 위한 책이 아닐까?). 겸사겸사 추천도서의 리스트를 훑어보고, 분야별로 몇 권씩 묶어놓는다(작년에도 같은 리스트를 올려놓은 적이 있군. 목록을 비교해보도 좋겠다). 폴 크루그먼의 <불황의 경제학>과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는 임의로 두 권씩을 덧붙였다. 

  

1. 문학 

 

2. 역사 

 

3. 철학 

 

4. 과학 

 

5. 예술 

 

6. 교양 

 

7. 경제 



8. 연애 

 

10. 03.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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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ol 2010-03-08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록 중에 절반은 대학 신입생이 쥐어들엇다가 독서 취미를 평생 잃어버리기 알맞은 책들이 아닌가 싶네요 -_-

로쟈 2010-03-08 20:12   좋아요 0 | URL
그래도 많이 나아진 듯해요. 절반은 읽을 수 있을 만한 책이니까요.^^

다크아이즈 2010-03-08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신입생 둔 엄만데요, 저 목록에 있는 책 울집에도 몇 권 있는데 안 읽던데요. 인문학적 소양과는 담 쌓고(이과 출신이라는 핑계로)그냥 싸이월드 죽순이로 지내는걸요. 전 그냥 일반교양인을 위한 추천서로 생각할래요. ㅋㅋ

로쟈 2010-03-08 20:12   좋아요 0 | URL
단골도 몇 권 있습니다. 그냥 참고하시란 거지요.^^

이진이 2010-03-08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생각이 좀 느린편이라 그런지 대학생때는 읽어도 책맛(?)을 잘 모르고 그저 읽은 책
편수만 늘이는 데 급급했던 것 같아요.
혹자는 젊은 시절 읽었던 책만으로도 인생의 좌표가 생기는 데 말이죠.저는 이제와서 다시 읽어보면 '아 이렇게 깊은 뜻이...'라고 감동의 도가니탕으로 빠지는 건지...

로쟈 2010-03-08 20:13   좋아요 0 | URL
그래도 아직 늦지는 않은 것이죠.^^

보고사는 책방 2010-03-08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보고 찾아왔습니다. 매번 책을 보면서도 먼가 허전합을 느끼곤했는데, 알라딘에 이런 공간을 만드신 것을 보고 놀라웠습니다. 그동안 번역서를 보면서도 답답함을 느끼곤 하였는데,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가 가진 몇몇 책들도 오역리스트에 올라있군요.(책값이 아까워집니다) 계속해서 멋진 활동 부탁드립니다... 위에 있는 책들중 정말 몇몇은 신입생이 보기에 버거울 수 있겠네요. 공부 좀 하라는 메세지로 전 받아들이겠습니다. ㅋㅋ

로쟈 2010-03-08 20:14   좋아요 0 | URL
멋진 활동은 아니어도 '꾸준한' 활동은 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빵가게재습격 2010-03-10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학 신입생이 가장 읽기 어려운 책'으로 <난중일기>를 꼽고 싶은데요. <난중일기>가 어떤 역사적 가치와 의의가 있다고 해도, 날씨와 사건의 나열로만 이루어진 책을 전후 맥락없이 '읽어볼만하다'고 내미는 건 너무 무리해 보여서요. -저는 책을 읽고 나니 '맑음, 망궐례 드렸다. 활 몇 순 쏘았다. 누구 곤장때렸다.' 밖에 기억나지 않더군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저열하기 때문이겠으나,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이더군요.--; - 어짜피 고전을 추천해야 했다면 차라리 <열하일기>가 훨씬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여기까지 쓰니까 아내가 옆에서 '그 긴 걸 언제 다 읽어?' 하네요.--;;;)

로쟈 2010-03-11 08:51   좋아요 0 | URL
<칼의 노래>와 같이 읽으면 되지 않을까요?^^;
 

'3월의 읽을 만한 책'을 후딱 적어놓으려 한다. 새 학기를 맞아 아이와 찜찔방에 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이고(가장 저렴한 '가족행사'다), 해야 할 일들의 진도는 빠질 기미가 없어서 제 풀에 지치기도 해서다(언제나 저질체력이 문제다).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추천 리스트를 보니 문학 분야만 아직 업뎃이 안 됐는데, 문학부터 내 맘대로 고른다.   

1, 문학 

국내 작가들의 신작 소설을 고른다. 무엇보다도 <고래>(문학동네, 2004) 이후에 6년만에 나온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문학동네, 2010)이 눈에 띈다. 여담이지만 2004년에 러시아에서 체류하다가 이듬해 돌아왔을 때 나만 모르던 작가가 천명관이었다. 다들 <고래>를 추천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지만, 게으른 탓에 책만 사놓고 아직 들춰보진 못했다. 영화쪽에 더 주력하던 작가가 문학을 부업 정도로 간주하고 있었던 것도 독서를 미루게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에 인터뷰기사들을 읽어보니 이젠 문학에 '올인'할 예정이라고. 독자들도 이젠 그의 소설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해도 좋을 듯싶다. 한 일간지의 리뷰는 이렇게 시작한다.    

천명관의 두 번째 장편소설 ‘고령화 가족’(문학동네)은 애틋하고 유쾌하다. 애틋하면서 유쾌한 이질적 결합이 가능한 이유는 인간에 대해 궁극적으로 신뢰하는 작가의 따뜻한 밑바탕과 가면을 벗어던진 진솔한 서술 태도에 있는 것 같다. 더 이상 어떻게 더 망가질 수도 없을 정도로 마이너의 최극단에 놓인 한심한 형제 자매가 있다. 강간죄를 비롯한 폭력 전과 5범인 큰아들과 영화감독을 한다고 설치다가 완전히 망해 먹고 알코올 중독자가 된 둘째 아들, 바람을 피우다 이혼을 당해 친정으로 쫓겨온 막내딸. 이 3남매가 칠순의 어머니 집으로 기어들어와 모친의 등골을 빼먹는다. 하지만 노모는 단호했다. 서술자인 둘째 아들 오 감독의 진술에 따르면 이 정도는 노모에게 약과인 것이다. “가난한 살림에 아이 셋을 키우고, 남편을 수발하고, 홀몸이 되어 큰아들 옥바라지로 한 세월을 보내는 과정이 전쟁보다 하등 나을 것도 없었을 터, 전쟁통에 학도병으로 끌려가서도 멀쩡하게 살아돌아왔던 아버지가 승용차에 치여 죽기까지 했으니까 말이다.”(41쪽) 오 감독의 진술을 계속 따라가자면 그들은 “마이너리그 중의 마이너리그, 인생의 패배자들만 모아놓은” 가족이었다.(세계일보)

편혜영의 <재와 빨강>(창비, 2010)은 엊그제 포스팅을 했으니 넘어가고 오현종의 <거룩한 속물>(뿔, 2010)은 요즘 젊은 세대를 중인공으로 한 세태소설. 사회학쪽에서도 '속물'론이 본격적으로 나오더니 이젠 대놓고 '속물'이다(거룩한!). '21세기 대한민국 속물지형도'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알다시피 알라딘의 문학웹진뿔에 연재됐던 소설이다.   

소설가 오현종(37)의 장편 ‘거룩한 속물들’(웅진 뿔)은 속물이 되지 않으면 낙오자가 돼 버리는 우리 사회의 속성을 담은 작품이다. 한마디로 21세기 대한민국 속물지형도다. 초점을 맞춘 대상은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하고 세상에 발을 내딛는 20대다. ‘속물을 권하는 사회’에서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할 기회도, 여유도 없이 세상으로 내몰리는 안쓰러운 20대. 서울 중상위권대 사회복지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기린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하면서도 돈을 펑펑 쓰는 친구들과 어울린다. 가방에 들어있는 화장품의 가격에 따라 인간 등급을 매기는 지은과 부잣집 딸로 명품 옷은 척척 사도 친구들에게 커피 한 잔 사는 법 없는 명이 그들이다. 기린은 이들과 어울리기 위해 A급 짝퉁 가방과 지갑을 샀고, 수입 생수병에 학교 정수기 물을 몰래 받아 들고 다닌다.(국민일보)

 

2. 역사 

이덕일 소장이 추천한 역사분야의 책은 필립 판의 <마오의 제국>(말글빛냄, 2010). 지난번에 <윤치호의 협력일기> 대신 한겨레21 서평에서 다룰 뻔했던 책이다(사정상 더 얇은 책을 골랐다). 추천자의 책소개는 이렇다.  

저자 필립 판은 대약진운동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요 사건들에 직간접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을 심층 취재해 이 책을 저술했다. 한때 모택동을 아버지라고 불렀던 베이징대 여학생 린자오는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에 홀로 맞서다 1968년 감옥에서 사형 당하는데 그녀가 옥중에서 자신의 피로 18만 단어에 이르는 수기를 썼다는 실화는 인간의 양심과 존엄성에 대한 큰 감동을 주었다. 겉으로 중국은 평온해 보이지만 중국 내부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저자는 중국이 현재의 경제 규모에 걸맞은 정치체제로 나아갈 것인가의 여부가 중국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마오의 그늘'이라고 할 때 아무래도 가장 큰 그늘은 문화대혁명일 텐데, 그와 관련하여 같이 읽어볼 만한 두툼한 책들이 있다는 것 정도만 덧붙인다. <문화대혁명, 또 다른 기억>(그린비, 2008)과 <80년대 중국과의 대화>(그린비, 2009) 등 '현대 중국의 목소리' 시리즈로 나오고 있는 책들은 모두 <마오의 제국>을 부피에서 압도한다. 대국에 대한 나름의 대우인 듯하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철학분야의 책은 김용석의 <메두사의 시선>(푸른숲, 2010)이다. <문화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푸른숲, 2000)이란 대중적인 철학서의 물꼬를 튼 저자가 10년만에 개정판을 내면서 같이 출간한 책이다. 부제는 '예견하는 신화, 질주하는 과학, 성찰하는 철학'. 저자의 문제의식이 '신화, 과학, 철학'에 모아진다는 걸 알게 해준다(물론 분량으로 보아 문제의 윤곽만을 그릴 듯싶다). 추천자의 간단한 소감.  

메두사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과학이다. 그렇다면, 지혜를 사랑한다는 철학자의 작업은 무엇인가? 필로소피아, 애지愛知, 철학은 지식을 아는 것도 아니고, 지식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지식을 사랑한다는 것은 지식과 지혜를 끊임없이 탐구하고자 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과학도 신화도 철학적 탐구 대상이 된다. 철학은 과학과 신화가 전제로 하고 있는 그 어떤 것도 이성의 비판 없이 당연시하지 않는다.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은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동녘, 2010)과 나란히 출간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강신주의 <철학 VS 철학>(그린비, 2010). '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이 부제이고, 56개 주제에 대해 두 사람씩 대질시키고 있다. 하면 무려 112명의 '철학자'가 (주연 없는) 카메오 출연을 하는 셈인데, 일종의 '철학자 사전'으로 보아도 무방하겠다. 928쪽이란 두께 자체가 사전류의 두께이기도 하고. 아무려나 저자의 공력이 혀를 내두르게 한다. '대중적 철학서 쓰기'의 현단계를 보여준다.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추천한 정치/사회분야의 책은 <핀란드가 말하는 핀란드 경쟁력 100>(바이북, 2010). 제목 그대로 핀란드인들이 말하는 자국의 다양한 모습과 강점의 소개다.  

이 책은 ‘핀란드, 국가경쟁력 세계 1위의 비밀을 말한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국가경쟁력이란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여러 분야에 걸친 국가적 역량의 총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핀란드의 사회적 창안을 구상하고 개발한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이 책의 집필에 참여했다. 여성의원 40퍼센트 할당제, 부정부패 척결, 노사정 3자주의 등 ‘국가행정’, 빈곤층의 최저소득 보장을 국민의 사회적 기본권으로 인식하는 ‘사회정책’으로부터 시작하여, 전통문화의 활성화를 통해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성탄절 길’ 등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핀란드 사회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다. 

연이어 관련서들이 나오고 있지만 '핀란드''는 이미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남의 떡'이 될지 '남의 돌'이 될지는 두고봐야겠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추천한 경제/경영서는 매튜 메이의 <우아한 아이디어가 세상을 지배한다>(살림Biz, 2010). '우아함'이 경제학 사전에도 등재돼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책은 우아함이 상품의 핵심적 특성이라고 말한다고.  

사람들은 왜 아이폰에 열광하는가? 이 책의 저자인 메이는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의 열쇠가 아이폰이 갖는 우아함에 있다고 본다. 우아함이야말로 히트상품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특성이라는 것이다. <우아한 아이디어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책 제목이 바로 그 생각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저자는 우아함이 반드시 마케팅의 측면뿐 아니라 우리 삶 전반에 걸쳐 매우 큰 중요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저자가 MBA 출신이고 마케팅 얘기를 많이 하는 것을 보면 경영서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영서라고 말하기에는 우리 삶의 일반에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 너무나 크다. 이런 애매모호함이 오히려 책 읽는 즐거움을 더 크게 만들어 주고 있다.

표지만 보면 아무래도 나비 모양이 더 큰 원서의 표지가 더 우아해 보인다. <우아함의 탄생>(민음사, 2009)도 이왕이면 나란히 꽂아둠 직한데, 남송 시대 이후 중국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던 강남의 문화사를 다룬 책이다.   

6. 과학 

최영주 교수가 고른 과학분야의 책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 나탈리 앤지어의 <원더풀 사이언스>(지호, 2010). 이미 '여자'와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책을 펴낸 바 있는, '예찬'에 남다른 소질이 있는 저자의 과학 예찬이다. 저자의 사진을 한번 찾아봤다.   

이 책은 스스로가 과학과 연애를 하고 있다는 과학 작가가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질학 등 과학의 중심 분야에서 일하는 수십 명의 과학자들과 인터뷰를 통해 과학자들의 위의 질문들에 관한 답을 찾으며 과학자들이 아름답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옥같은 이야기들을 담아 때론 인터뷰형식으로 때론 이야기 형식으로 다룬 과학 교양서이다. 때때로 동양 사람과 다른 형식의 유머러스한 그의 글을 읽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7. 예술 

김춘미 교수가 고른 예술분야의 책은 유일하게 생소한 책이다. 밀드레드 프리드먼이 엮은 <게리>(미메시스, 2010). '게리'라고 하면 뭔가 싶은데, 건축가 프랭크 게리에 관한 책이라고 한다(철자는 다르지만 동생의 닉네임도 '게리'이다). 한국어판의 표지가 더 맘에 드는군.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이 책을 잡는 순간 꼭 누구라도 한번쯤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리는 한 마디로 살아있다. 어차피 건축가는 어떤 형태의 건물을 짓는 사람인데, 살아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그에 대한 답은 이 책을 보면 알게 된다. 지난 10여 년간 게리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 낸 건축물의 화보와 설계과정 등이 알기 쉽게 망라되어 있다. 이 책의 3분의 2 이상은 편집자인 밀드레드 프리드먼이 게리를 직접 인터뷰해서 정리한 글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책 전체가 게리의 육성으로 이야기를 듣는 듯한 친근함이 있고 쉽다.

흠, 아래 두 작품만 봐도 이 건축가의 개성을 알 수 있겠다.

 

 

 

8. 교양  

이한우 기자가 추천한 교양서는 로렌스 쇼터의 <옵티미스트>(부키, 2010)이다. 리뷰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낙관하기 여려운 시대에 '옵티미스트'를 자처하는 것도 대단한 '낙관주의'라 할 만하다.  

이 기발한 저자는 세상의 낙관주의자들을 찾아 나선다. 그가 한 마디라도 나눈(사실 한 마디면 충분하다. 그는 ‘당신은 왜 인생을 낙관적으로 보시나요?’라는 질문만 던지기 때문이다.) 명사 목록을 보자.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 가수 믹 재거, 존 볼턴 전 유엔미국대사, 노벨문학상 수상자 해럴드 핀터 등 수십 명에 달한다. 물론 찰스 왕세자나 오프라 윈프리처럼 거절당한 경우도 있다. 무명의 저자는 어떻게 클린턴을 만났을까? 영국에서 열린 클린턴 강연회 시작에 앞서 스치듯 만났다. ‘당신은 낙관주의자인가요?’ 클린턴은 강연을 끝내려 할 때 그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사람들은 늘 나에게 낙관주의자인가라고 묻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문제가 산적해 있지요. 언제나 그랬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어쨌든...우리는 결국 이겨내 왔습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이런저런 자연적, 인공적 재해가 예기찮게, 또 빈번하게 일어나서야 무얼 낙관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 이번주 한겨레21의 표지 타이틀 '이명박 취임 2주년, 아직 3년이 남았다'는 낙관쪽일까, 비관쪽일까?..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고른 실용서는 박희권의 <문화적 혼혈인간>(생각의나무, 2010). 이 또한 처음 보는 책이다. 제목만으론 책의 정체를 알 수 없는데, 핵심은 이렇다고 한다.      

“고대 로마 1000년 영광은 개방성과 유연함이다. 아테네는 시민권을 극도로 제한한 나머지 아리스토텔레스마저 마케도니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아테네 시민이 되지 못했다. 이에 비해 로마는 식민지 사람들도 군복무를 마치면 시민권을 부여했다” “영국인은 상대방과 대화할 때 팔 하나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해야 안정감을 느끼는 반면 중동이나 중남미 국가들은 팔의 절반, 즉 팔꿈치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친밀감을 느낀다” 오랜 기간 직업외교관으로 세계무대를 경험한 저자가 젊은이들을 상대로 글로벌 시대의 성공전략을 제시한 책이다. 국제사회의 명품인간은 문화의 다양성과 상대성을 수혈한 ‘문화적 혼혈인간’이라는 주장이 핵심이다.

일종의 '컬쳐코드' 익히기쯤이 될까? 그런 면에서 읽어볼 만한 책은 케이트 폭스의 <영국인 발견>(학고재, 2010)이지만, 두꺼워서 엄두는 못 내고 있다. <러시아인 발견> 같은 책도 나오면 좋을 텐데...  

10. 진보 

6월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의 책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래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진보의 재탄생: 노회찬과의 대화>(꾸리에, 2010)이다. 진보신당 상상연구소에서 기획한 <리얼 진보>(레디앙, 2010)도 출간됐기에 어제 같이 손에 들었다. <리얼 진보>의 말미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진보의 미래>(동녘, 2009)에 대한 서평도 수록돼 있는데, 그가 실패한 자리에서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진보 진영의 화두로 보인다. 카피는 이렇다. "노무현이 실패한 곳에서 진보는 시작된다." 홍세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위원의 진단에 따르면, 향후 20년 안에 진보정당이 집권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므로, 바야흐로 긴 장정의 시작이기도 하다...    

10. 02. 28.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은 찜질방에 다녀와서 덧붙인다.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마음>을 골랐다. 지난 2007년인가 이광수의 <무정>을 다시 읽으면서 언젠가 소세키 읽기를 시도해보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어떻든 때가 되었다. <마음>이 소세키의 대표작일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문학의 정전이 된 배경에 대해서는 윤상인 교수의 <문학과 근대와 일본>(문학과지성사, 2009)을 참고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국가'와 '국민'을 환기시키는 언설이 가장 많이 내포된 작품"이어서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문학'이란 무엇인가를 한번쯤 되새겨보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소세키에 대해서는 3월에 좀더 자세히 다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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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자 인터뷰] 삶의 바닥을 보여주는 '철학'에 대하여
    from 그린비출판사 2010-03-05 16:45 
    ㅡ『철학 vs 철학』 저자 강신주 인터뷰'철학' 어떤 이에게는 애증의 이름일테고, 어떤 이에게는 감동적인 기쁨의 이름일 것입니다. 사실 '철학책'을 읽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 중에 하나입니다. 2500년 동안 켜켜이 쌓여온 생각의 지층들을 읽어나가는 것이 쉬울 수는 없을테니까요. 그런데 그 지층을 탐사하는 데 좋은 지도가 있다면, 훨씬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가 읽은 『철학 vs 철학』은 그런 책이었습니다. 시간의 순서를 뛰어 넘어서 주제를 중심으...
 
 
Mephistopheles 2010-03-01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랭크 게리..재미있는 건축가에요. 정형성을 부정하고 저리도 부정형을 고집하는 것 같으면서 그 안에 또 다른 질서를 만들곤 하니까요..^^

로쟈 2010-03-01 00:10   좋아요 0 | URL
저도 대표 건축물들의 이미지만 봐왔는데, 인터뷰기사라고 하니까 책에도 관심이 갑니다...

푸른바다 2010-03-01 19:51   좋아요 0 | URL
일전에 MIT를 방문했을 때, 위 사진 속 건물 중의 하나를 직접 봤지만 전 솔직히 좀 괴상하다는 느낌만 들었지 별루였습니다^^ 일행 중 하나에게 그 느낌을 이야기 했더니(중국 사람이었음) 오히려 저를 이상한 눈으로 보더군요. 자신은 너무 좋다면서...^^

로쟈 2010-03-02 23:17   좋아요 0 | URL
저는 건물 내부의 시점이 궁금합니다.^^

푸른바다 2010-03-01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더풀 사이언스>라는 책에 관심이 가는 군요. 미국인들의 과학 예찬은 좀 얄팍하기도 하고 과장되어 있기도 하지만 재미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로쟈 2010-03-02 23:16   좋아요 0 | URL
우리에겐 그런 얄퍅함도 부족하니까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3-0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상인 교수는 말씀하신 저서에서 나쓰메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죠. 특히 천황제와 관련해서 말이에요. 제겐 여느 나쓰메 연구자와 다른 윤상인 교수의 미덕이라 생각하며 그 책을 봤습니다.

로쟈 2010-03-02 23:16   좋아요 0 | URL
네, 한데 작품론을 갖고 다룬 게 아니어서 아쉬웠습니다. 평론/시론과 작품은 서로 충돌하는 경우도 많아서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3-03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읽고 써 봤던 감상입니다. "<그 후>에서도 느꼈지만 작가는 근대성을 개인적 차원에서는 잘 이해하고 있다. 인물들은 모두 중세적 교양과 감정간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서게 된 근대적 주체는 이상하게도 자꾸 아버지와 선생님의 애국주의와 순결주의에 눈을 돌린다. 그 눈은 천황까지 가 닿는다."

천황까지 가 닿는다는 게 제 오버인지도 모르겠네요.

로쟈 2010-03-04 00:46   좋아요 0 | URL
<마음>에 대해선 조만간 강의할 기회가 있는데, 저도 몇 마디 감상을 올려놓아야겠습니다...
 

매달 한번씩 '의무방어전'을 치르는 기분으로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 벌써 2010년도 달력도 한 장을 넘기게 됐다. 설 연휴가 껴 있어 2월도 바쁘게 지나갈 듯싶은데, 아무려나 고를 책을 골라놓고 본다...  

1. 문학 

신경숙 작가가 고른 문학 분야의 책은 이동하의 <장난감 도시>(문학과지성사, 2010). 원래는 1982년에 나온 작품이지만, 소설 명작선으로 다시 나왔다. 추천의 변은 이렇다.

<장난감 도시>는 전후가 배경이다. 1955년경 전쟁이 휩쓸고 간 황폐한 도시의 변두리로 갑자기 이주해 온 한 소년의 영혼이 치러내는 고통스런 통과제의의 성격을 띤 소설이기도 하다. ‘장난감 도시’, ‘굶주린 혼’, ‘유다의 시간’ 이란 제목으로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각 장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한편의 장편소설로 읽어도 무방하다. 책이 첫 출간 된 지 거의 삼십 년이 지나서 이달의 책으로 <장난감 도시>를 추천하는 이유는 이제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어 간 듯한 전후시대를 잊지 말자거나 돌이켜보는 것에만 그 의미가 있지 않다. 물론 <장난감 도시>는 전후시대의 궁핍과 빈곤이란 참담한 상황 앞에 선 인간들의 생리가 곡절 있게 펼쳐지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존재론적인 성찰이 깊이 있게 배어 있는 작품으로도 단연 빛이 나기 때문이다.(...) 재출간된 <장난감 도시>를 다시 읽는 동안 이 책의 출간년도인 1982년을 생각했다. 그때 대학 신입생이었던 내가 이 책을 읽고 수혈 받았던 내면의 그 많은 빛과 그늘 들이 2010년인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전달되는 위력을 느꼈다.

이젠 40대 중반이 된 '82학번'들에게 특별히 더 의미가 있을 법하다. 그렇게 치면 나같은 87학번은 어떤 책을 골라야 할까. 먼저 떠오르는 건 강석경의 <숲속의 방>(민음사, 1986)이다. 86년에 출간됐지만 내가 대학 1학년이었을 때 단연 화제작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떠오르는 건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민음사, 1987). 1979년작이지만, 나는 그해 겨울인가 87년판으로 읽었다. 당시 이문열은 80년대 최대 작가로 꼽히고 있었던 단연 <사람의 아들>의 작가였다. 지나고 보면 그런 시절도 있었다...  

2. 역사 

이덕일 소장이 고른 책은 킴 매쿼리의 <잉카 최후의 날>(옥당, 2010). 16세기 잉카 제국으로 안내하는 두툼하고 묵직한 책이다.  

인류학자이자 작가인 킴 매쿼리가 집필한 <잉카 최후의 날>은 이 수수께끼 왕조의 멸망의 날을 잉카와 스페인 양측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새롭게 조명한다. 스페인 인들이 자신들의 견지에서 기록한 잉카사의 한계를 아마존 강 유역에서 잉카 제국을 기억하고 있는 ‘요라(yora)’라는 부족을 찾아냄으로써 잉카인의 시각을 가미하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저자는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잉카의 어린 황제가 대규모 반란군을 이끌고 스페인 병사들과 맞서 싸웠고 그들을 거의 소탕할 뻔했었으며, 아마존 밀림 속에 비밀의 도시 빌카밤바를 세우고 36년 동안 치열한 게릴라전을 펼쳐나갔다는 새로운 사실들을 발굴해냈다. 새로운 사료 덕분에 스페인군과 잉카군의 전투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살아 꿈틀댄다.

그런 '최후의 날'을 다른 책으로 한 권 더 얹자면 스티븐 런치만 경의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갈라파고스, 2004).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에 오스만투르크제국에 함락됨으써 서방 기독교 세계와 단절되고, 기독교의 도시에서 무슬림의 도시로, 유럽의 일원에서 아시아의 일원으로, 콘스탄티노플에서 이스탄불로 그 모습을 달리하게 된다. 영국의 저명한 동로마사 연구자인 지은이는 이제껏 서로마제국 중심의 역사서술에 묻혀 '잊혀진 제국' 으로 여겨져온 동로마제국을 새롭게 조명하며, 1453년에 벌어진 투르크족과의 공방전과 그 전후의 상황들을 한편의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재현했다."고 평가받는 책이다. 원저는 1965년에 나온 것으로 돼 있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추천한 책은 프랑수아 줄리앙의 <현자에게는 고정관념이 없다>(한울, 2009). 저자는 몇 차례 언급한 바 있는 프랑스의 중국철학 전공자다. 중국의 '담(淡)의 미학'을 다룬 에세이 <무미예찬>(산책자, 2010)이 최근에 나왔고, 작년에 <사물의 성향>(한울, 2009)이란 책이 출간된 바 있다. 거기에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한울, 2004), <운행과 창조>(케이시, 2003)까지 하면 번역된 책은 다섯 권 가량. 이 정도면 드문 경우라 할 만하다.  

그리스 철학과 중국 철학을 전공한 파리 제7 대학의 줄리앙 교수는 원칙과 같은 고정관념의 유용성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동양의 현자에게는 고정관념이 없다. 무엇인가에 의존해서 세상을 본다는 것은 편견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존재자의 전체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사실 사물을 보고 있는 자신의 눈을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것도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떠한 과학기술을 동원해서도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현자는 어떤 고정관념에도 얽매이지 않고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지혜를 갖춘 사람이다. 

'중국철학'이라고 하지만 물론 저자가 주로 다루는 건 중국의 고대철학 내지 고대사상이다. 저자 소개에는 "줄리앙은 유럽 사상 및 철학이 역사 속에서 발전시켜왔던 것과는 다른 길을 극동아시아, 즉 중국의 공자나 장자 및 묵가 등과 비교함으로써 '서양 철학'을 재구성하는 데 주력하면서 동시에 그 반대 효과로서 두 진영 간에 놓인 간극을 어떻게 하면 좁힐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돼 있다. 그래서 <현자에게는 고정관념이 없다>의 부제도 '철학의 타자'다.  

 

그런 시각을 중국 지식인들이 시각과 대비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얼른 생각나는 건 최근에 나온 이중텐 교수의 신작 <백가쟁명>(에버리치홀딩스, 2010). "중국 문화의 무형적인 가치가 2000년 전 중국 선진先秦 시대에 등장한 사상가 유가, 묵가, 도가, 법가 등과 이들이 벌인 논쟁을 압축하여 이르는 ‘백가쟁명’에서 비롯되었음을 역설하는 책이다." 거기에 리쩌허우의 <중국고대사상사론>(한길사, 2005)도 견주어볼 만한 책이겠다.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추천한 책은 박영희의 <보이지 않는 사람들>(우리교육, 2009). 제목에서 이미 내용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책은 가난하고 소외된 우리 이웃의 삶을 인권 차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사회경제적 인권은 정치적 인권과 달리 가시적인 박해자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인권이란 추상적 차원에서 교과서를 통해 가르치면, 마치 헌법조문처럼 시험답안용으로 암기되기 십상이다. 오직 살아 있는 인간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얘기할 때 비로소 우리의 마음에 꽂힌다. 효에 대해서 세 시간 강의를 듣는 것보다는 심청전을 애절한 판소리로 감상할 때, 효의 중요성이 우리 마음속에 깊이 꽂히는 것처럼.

같은 취지의 책으로 잔혹한 진실을 폭로하는 벤저민 스키너의 <보이지 않는 사람들>(난장이, 2009), 그리고 국제엠네스티 사무총장 아이린 칸의 <들리지 않는 진실>(바오밥, 2009)도 함께 묶어볼 만하다(<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http://blog.aladin.co.kr/mramor/2799374, <들리지 않는 진실>에 대해선 http://blog.aladin.co.kr/mramor/3222336 참조).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고른 경제/경영서는 <컨슈머 키드>(책보세, 2009). 제목 그대로 상업주의에 노출된 아이들, 소비에 탐닉하는 아이들의 문제점을 다룬 책인 듯하다. 그게 이젠 어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현대 사회에 창궐하고 있는 상업주의는 천진난만해야 할 어린이들마저 물질주의의 노예로 만들고 있다. 이 책의 배경인 영국 사회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위시한 전 세계에서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 책은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갖가지 사례를 들어 그와 같은 세태를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우리로 하여금 상업주의의 확산을 더 이상 방치해 두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을 느끼게 만든다. 

이러한 '절박감'은 국역본 표지보다 원서의 표지가 더 잘 드러내주는 듯하다.  



찾아보니 키즈 마케팅을 비판한 책으론 수전 린의 <TV.광고.아이들>(들녘, 2006)이 이미 출간됐었다. 문제의식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문제는 실천이겠다.  

심리학자인 지은이는 광고가 어린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어른에는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하다고 말한다. 광고와 정규 프로그램을 비교하지 못하거나, 지성이 아닌 감성에 호소하는 광고의 내용을 무의식적으로 믿어버리는 아이들의 경향이 그 이유이다. 책은 이러한 상업주의가 이런 아이들의 취약한 면을 의도적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있음을 밝히기도 한다. 인생의 행복을 소비의 여부로 재단하는 물질주의적인 가치관을 주입하거나, 일탈적 행동으로 유혹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부정적인 영향이 어른이 된 이후에까지 지속된다는 점.

6. 과학 

최영주 교수가 추천한 과학서는 <20세기 수학자들의 초상>(궁리, 2009)이다. 생각해보니 수학자들의 전기를 읽은 지도 꽤 오래됐다. 아마도 대학원시절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해 좀 알아야 될 필요가 있어서 뒤적거렸던 게 마지막인 듯하다. 괴델의 전기도 몇 권 갖고 있었지만, 한권만 읽고 말았다. 다시금 손에 들 수 있을까? 일단 <20세기 수학자들의 초상>은 어떤 책인가? 

이 책에서는 20세기를 빛나게 하였던 선도 수학자 20명의 이야기를, 그들의 공적을, 그들의 왜 20세기를 선도할 수 있었는지에 관한 창의적 경험을 이야기한다. 물론 이것은 자서전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을 동원한 소설 형식이라 가상적인 것도 있지만 각각에 대한 중요 업적과 그들에 삶에서의 특별하였던 점등을 이야기 하려는 노력이 있다. 수학은 상상력이며 수학자는 이를 명료하고 분명하게 이해하여 표현하려는 노력자이다. 창의를 가능하게 하는 ‘변환’ 경험을 이 책에서 20세기를 선도한 최고의 수학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보탤 만한 책은 핼 핼먼의 <수학자 대 수학자>(경문사, 2009). 수학자들의 불화와 다툼, 그리고 반목을 다룬 책이라 하니 '사극'만큼의 재미를 줄 만하다. 거기에 비하면 <푸앵카레가 묻고 페렐만이 답하다>(도설, 2009)는 긍정적인 사례. 이미 페렐만 이야기는 잘 알려진 바 있는데, 좀더 자세히 음미하고픈 독자라면 읽어볼 만하겠다.  

1904년 앙리 푸앵카레가 처음 제기한 이래 100년동안 수많은 수학자가 풀지 못했던 '푸앵카레 추측'에 얽힌 이야기. 100년이 지난 2005년, 기이한 러시아의 은둔 수학자가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해내어 100만 달러짜리 밀레니엄 수학상을 받을 권리를 획득했다. 이 책은 어떻게 페렐만이 선배 수학자들의 어깨 위에 서서 공간의 모양에 관한 수수께끼를 해결했는지 설명하고, 1세기에 걸친 수학계의 역사와 수학자들의 문제 해결을 위한 집착과 열정을 서술한다. 

 

7.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제리미 시프먼의 <모차르트, 그 삶과 음악>(포토넷, 2010)이다. 이미 여러 종이 소개된 모차르트 전기에 더 추가할 것이 있나 싶은데, 사정을 보니 뭔가 있다.  

모차르트의 삶과 음악은 늘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가 가득하다. 이러한 이야기 거리가 두 개의 CD에 담긴 모차르트의 음악과 함께 하나의 책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봄을 기다리며 음악도 듣고 18세기 주변을 산책하듯 읽어 내려가다 보면 내가 어느덧 유럽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있는 착각에 빠진다.

핵심은 '두 장의 CD'!  280쪽짜리 책이 2만원이란 책값도 CD를 고려하면 말이 된다. 그러니까 '음악을 듣기 위해 알아둘 만한 전기'가 컨셉이겠다. 거기에 더해서 읽어볼 만한 책은 인지심리학자이면서 레코드 프로듀서라는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 대니얼 레비틴의 책 두 권이다. <뇌의 왈츠>(마티, 2008)과 <호모 무지쿠스>(마티, 2009). 중간에 올리버 색스의 뮤지코필리아>(알마, 2008)까지 얹어놓으면,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 3부작쯤 된다. 책상에 세 권이 나란히 올려져 있는데, 표지들만 봐도 음악이 흘러나오는 듯하다.   

8. 교양 

이한우 기자가 추천한 교양분야의 책은 윤성근의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매진, 2009)이다. 연초에 저자 인터뷰 기사를 포스팅하려고 하다가 흐지부지됐는데, 이런 기회에라도 소개할 수 있어서 반갑다. 저자는 응암동에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젊은 주인장. 뭔가 사연이 없을 수 없다.   

한 젊은이가 있다. 서울 정릉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 젊은이는 초등학교 때 벌써 종로서적의 위력을 알았다. 걸어서 2시간 가까이 걸렸지만 종로서적에 있는 수많은 책을 마음대로 읽기 위해 그 먼 길을 걸어서 다녔다. 그 젊은이가 커서 잘 나가는 직장에 취직했다. 10년 이상 안정적이고 돈도 많이 받는 회사를 다녔다. 그러던 그 젊은이는 어느 날 우연히 책 하나를 집어 든다.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다. 혁명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책이다. ‘필’을 받은 그 젊은이는 곧바로 회사에 사표를 낸다. 2002년 무렵의 일이다. 남들은 월드컵에 열광하고 있던 그 때 혁명이라니, 그래서 보기에 따라서는 참 철없는 젊은이다. 그 젊은이는 출판사에 취직해 2년 정도 다녔고 책 만들기의 진부함에 진력이 난 그는 헌책방에서 다시 2~3년을 보낸다. 알고 보니 책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2007년 봄 헌책방을 그만둔 그는 직접 헌책방을 냈다. 자기가 읽은 책, 자기가 권하고 싶은 책만 파는 그런 헌책방이었다.

책은 그 헌책방 이야기이면서 헌책방 주인장의 독서록이다. 책의 부제는 '어느 지하생활자의 행복한 책일기'. 여기서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도 같이 읽을 만한 책으로 엮어놓는 명분이 생긴다. 사실 레닌과 도스토예프스키는 서로 안 어울리는 궁합이긴 하지만...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고른 실용서는 오츠 슈이치의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21세기북스, 2009). '1000명의 죽음을 지켜본 호스피스 전문의가 말하는'이 제목 앞에 붙는다. 그럼 대략 견적이 나온다.   

저자 오츠 슈이치는 말기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마지막을 배웅하는 의사다. 그는 호스피스 전문의답게 넓은 귀를 가졌다. 육신에 이어 정신의 고통을 겪는 환자들 앞에 같은 한 명의 인간으로 마주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그가 만난 인물은 1000여 명에 이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고 싶었던 첫 번째 후회부터 신의 가르침을 알았더라면, 하는 마지막 스물다섯 번째 후회까지 인간 내면의 커튼을 조심스럽게 걷어내고 있다. 사실 이런 유형의 책이 신선한 것은 아니다. 내용은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한번씩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다. 일상에서 늘 만나고 그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실천에 인색했던 항목들이다. 그러나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는 임상경험에서 건져 올린 사례들을 담아 가슴을 파고드는 힘이 있다.

요즘 부쩍 굿긴소식이 많은 탓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드는 책. 죽음과 죽어감을 다룬 책은 예전에 한번 다룬 듯싶어서 이번엔 '죽기 전에 꼭' 시리즈를 검색해봤다.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역사 1001 Days>(마로니에북스, 2009) 등은 많이 보던 타이틀인데,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여행 1001>(마로니에북스, 2010)은 '기획작품'이다. 여행을 즐기진 않더라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알아두면 좋겠다.    

      

10. 하워드 진 

아동서 대신에 내 맘대로 고르는 책의 주제는 '하워드 진'이다. 이유야 알다시피 며칠 전 그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언젠가 마이리스트로 만들어놓은 적은 있지만,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골라놓은 기억은 없다. 대표작인 <미국 민중사>(이후)는 열외로 하고 세 권을 고른다. <하워드 진, 역사의 힘>(예담, 2009)는 가장 최근에 나온 에세이집이고,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이후, 2002)는 유명한 그의 자서전, 그리고 <오만한 제국>(당대, 2001)은 개인적으로 '하워드 진은 누구인가'를 알게해준 책이다. 참고로, 하워드 진의 사진 가운데 가장 정겨운 것은 우리 인디고 아이들이 찾아가서 같이 찍은 사진이다. 한번 더 옮겨놓는다.



10. 01. 30. 

 

P.S. 2월의 읽을 만한 고전은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역시나 며칠전에 작가가 세상을 떠났기에 '추모특집'으로 고른 것이다.   

작년 가을에 작품 읽기를 올려놓은 적이 있는데, 그때 덜 읽은 자료들을 좀 챙겨놓아야겠다. 언젠가 본격적인 작품론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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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10-02-01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둔 작가 '샐린저'도 세상을 떠났군요. 작년 가을에 로쟈님 덕분에 읽었는데요. 자신이 감명깊게 읽은 책의 저자(존경한)가 세상을 떠나면 믿기지 않군요.

로쟈 2010-02-01 14:57   좋아요 0 | URL
사실 하도 오래 절필했기 때문에, 작가로선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었죠...

그람 2010-02-01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진석의 "더러운 철학"을 읽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삶에 필요한 "더러움" ?

이문열과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 이름 보면서
갑자기 "더러움"이 떠오르네요.
안티조선운동과 함께.

더러움을 넘어서 "추악함"이 더 어울리나 ?

로쟈 2010-02-01 14:57   좋아요 0 | URL
사람은 그래서 오래 두고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