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에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마음산책)를 교재로 하여 쿤데라의 <농담>을 강의했다. 강의준비를 하면서, 책이 나온 뒤로 쿤데라에 관한 장은 처음 읽어봤는데 주인공 루드비크(세계문학전집판에서는 ‘루드빅‘)가 인민재판까지 받게 한 농담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그 농담은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입니다. 무엇을 패러디한 것인가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에 종교 대신 낙관주의를 넣었습니다. 낙관주의는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를 말합니다.˝(사회주의적 낙관주의는 중국 화가 웨민쥔의 그림들을 떠올리게 한다.)

인용만 보면 루드비크는 ‘종교‘ 대신에 ‘낙관주의‘를 넣음과 동시에 ‘인민‘도 ‘인류‘로 대체한 듯 보이지만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강의에서 내가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라고 입에 올렸을 리가 없다(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는 표현이다). 편집상의 착오인가 싶었는데, 아침에(아침에서야!) 다시 생각나 두 종의 <농담>(민음사)을 확인해보니 놀랍게도 루드비크가 여자친구에게 보낸 엽서에 적은 농담이 이렇게 옮겨져 있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비크.˝

상황을 추정해보니 내가 ˝낙관주의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강의시 말한 대목을 편집자가 번역본에 준해서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라고 고쳤고 이게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는 마르크스의 말과 조응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농담>의 번역자는 마르크스의 발언도 ˝종교는 인류의 아편˝이라고 옮겼다.

인류와 인민의 차이? 마르크스를 ‘인류를 위한 철학자‘로 보느냐, 아니면 ‘인민을 위한 철학자‘로 보느냐의 차이다. 전자는 내가 상상도 해보지 못한 것인데 여하튼 세계는 넓고 번역은 다양하다는 걸 새삼 확인한다.

그럼에도 둘다 가능하다고 보는 쪽은 아니어서 3쇄에서는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를 ˝낙관주의는 인민의 아편이다˝로 교정하기로 했다. 종교에 관한 책을 최근에 몇권 더 입수했는데 시간이 나는 대로 ‘인민의 아편‘에 대해서도 좀더 자세히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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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발란데르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라지만 스웨덴의 작가이자 연극연출가 헤닝 만켈에 대해서는 그의 마지막 에세이 <사람으로 산다는 것>(뮤진트리, 2017) 덕분에 알게 되었다. 2014년 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에 쓴 에세이로 만켈은 이듬해 2015년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번역본 부제도 '삶의 끝에서 헤닝 만켈이 던진 마지막 질문'으로 붙여진 이유다.  



원저는 스웨덴어판인데, 한국어판은 독어판을 대본으로 하고 있다. 찾아보니 영어판도 출간돼 있다(발란데르 시리즈의 최근작은 <사이드트랙>이다). 


아직 책을 읽어나가기 전이지만 만켈의 헌사 때문에 몇 마디 적게 되었다. 이렇게 적고 있다. "에바 베르히만에게. 또한 이 책은 제빵사 테렌티우스 네오와 그의 이름 모를 부인에게 바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부부의 얼굴은 그들이 살던 폼페이의 집에서 발견된 초상화에서 볼 수 있다."



일단, 에바 베르히만. '베르히만'이란 성은 영어로는 '버그만'으로 읽고 스웨덴어로는 '베리만'으로 발음되는 듯한데,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이 영화감독 잉마르 베르히만이다. 에바 베르히만이 바로 그의 딸이고 직업도 아버지와 같은 영화감독이다. 찾아보니 그녀의 어머니 엘렌 베르히만도 영화감독이었다. 에바는 1945년생으로 1948년생인 만켈보다는 세 살 많다. 두 사람은 1998년부터 2015년 만켈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부부였다(아마도 법적인 부부 기간이 그랬다는 것으로 보인다.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사는 부부도 많으니까). 위의 사진이 부부의 모습이다. 이렇듯 안면을 익히게 되니까 책에도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만켈은 마지막 책을 아내에게 바치면서 "또한 이 책은 제빵사 테렌티우스 네오와 그의 이름 모를 부인에게 바치는 것이기도 하다"고 적었다. 테렌티우스 네오와 그의 아내라... 이 부부의 초상화도 찾아봤다. 



어디선가 본 듯한 초상화가 뜨는데, 이 그림 속 부부에 대한 만켈의 묘사는 이렇다. "삶의 한가운데에 있는 두 사람의 모습, 둘의 표정은 진지하면서도 몽환적이다. 여자는 매우 아름답지만 수줍어 보인다. 남자 역시 부그러워하는 표정이다. 두 사람은 자신의 삶을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남편의 직업이 제빵사였다는 건 고고학자들이 밝혀낸 사실이리라. '삶의 한가운데'에 있다고 했지만 '한창때'라고 옮겨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아주 젊어 보여서 이 부부는 20대 내지 많아야 30대 초반의 나이로 보인다. 이 초상화가 그려진 이후 두 사람은 얼마나 더 오래 살았을까? 그림에서는 불행의 암시를 읽을 수 없지만(적어도 나로선)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대폭발로 이탈리아 남부 도시 폼페이는 최후의 날을 맞았고 이들 부부도 운명을 같이했다. 당시 폼페이는 로마 상류계급의 휴양지이자 아름다운 항구도시였다. 


부부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만켈은 이렇게 적는다. "서기 79년에 화산이 폭발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시간이 이 부부에게는 없었을 것이다. 둘은 삶의 한가운에서 죽었다. 화산재와 이글거리는 용암에 묻혀." 특별히 테렌티우스 네오 부부가 아직까지 기억되는 것은 그들의 초상화가 기적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을 적은 기록이 남았다면 그 또한 초상화와 비슷한 의의를 갖게 되었으리라. 만켈이 생의 마지막 시간을 살면서 적어간 기록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이미 지상에 없지만 그의 독자들에겐 여전히 살아서 말을 건넨다. 내가 그의 책을 읽으며 그의 '한국어 육성'을 듣는 것처럼. 



만켈의 책 제목과 나란히 적은 것은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어크로스, 2017)에서 가져온 것이다. '뉴욕의 예술가들에게서 찾은 혼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가 부제. 저자는 <옵저버> 부편집장을 지낸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에세이스트이다. '제2의 리베카 솔닛'이라는 평도 듣는 모양인데, 여하튼 국내 독자들에겐 초면이다. <외로운 도시>는 원제를 그대로 옮긴 것인데, 제목이 염두에 둔 도시는 뉴욕이다. 

"30대 중반에 사랑을 좇아 런던에서 뉴욕으로 이주했지만 하루아침에 실연을 당하고 철저히 혼자가 된 랭. 고립감·우울·피해망상으로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던 그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단서를 발견하고 뉴욕을 살아낸 예술가들의 작품과 삶 속으로 빠져든다. 대도시 속 고독한 현대인을 상징적으로 묘사해낸 호퍼의 유리벽, 팝아트의 선구자로 화려한 명성을 누렸지만 고립감이 작업의 원동력이었던 워홀의 녹음기, 아무도 모르게 자기만의 예술적 세계를 구축했던 아웃사이더 아티스트 헨리 다거의 콜라주, 동성애와 섹스를 주제로 삼고 에이즈 운동을 펼쳤던 행동예술가 데이비드 워나로위츠의 가면, 상실과 단절의 상처를 실로 꿰매고자 했던 설치미술가 조 레너드의 이상한 열매까지. 랭은 이들이 남긴 외로움의 다양한 조각을 유연하게 이어붙이며 ‘우리가 거주하는 고독이라는 도시’의 맨 얼굴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책 역시 나는 첫 장을 열어보았을 뿐이지만, 읽어볼 만하다는 인상을 받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람은 어디서든 고독할 수 있지만, 도시에서 수백만의 인간들에게 둘러싸여 살면서 느끼는 고독에는 특별한 향취가 있다"는 대목에서다. 



어떤 고독이고, 어떤 향취인가. 나대로 규정하자면 '고독한 형체(Lonely Form)'라는 제목의 사진이 던져주는 인상 같은 것이다. 1955년 <라이프>에 실린 것인데, "가르보가 최근 어느 오후에 뉴욕 자택 근처의 1번 애버뉴를 건너고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가르보는 그레타 가르보를 말한다. 스웨덴 출신으로 전성기에 은막의 여신으로 불렸지만(1935년작 <안나 카레니나>도 전성기의 작품이다) 서른여섯 살에 일찍 은퇴한 가르보는 1941년부터 거의 50년의 긴 은퇴 기간을 대부분 뉴욕에서 보냈다. 제목대로 '얼굴'이 아니라 '형체'를 찍은 사진에서 가르보를 알어볼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사진에 드러나지 않은 얼굴은 카메라를 눈치챘다면 귀찮은 파파라치에 대한 거부감 내지 고독을 방해한 훼방꾼에 대한 혐오감으로 찡그러져 있을지도 모른다. 사정이 어떻든 이제 우리는 사진 속에서 '가르보의 고독'과 함께 '도시의 고독'을 읽는다. 배경이 한적한 시골길이라면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을 것이기에.  



덧붙이자면, 가르보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자식도 없었다. 1990년에 사망했을 때 주식과 채권에 투자해서 모은 재산은 모두 조카딸에게 상속되었다. 여신에게 맞는 짝이 지상에는 없었던 모양이다...


17. 0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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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씨를 핑계로 점심은 라면으로 때우고(막국수가 다른 선택지였다) 오늘 할일을 가늠해보던 차에 우연히 손에 들고 펼쳐본 게 사이토 다카시의 <철학 읽는 힘>(프런티어, 2016)이다. 기시미 이치로와 함께 국내에 가장 많이 소개되고 있는 듯한 인문 저자. <철학 읽는 힘>이 3월에 나왔는데, 그 이후에도 두달 동안 세 권의 책이 더 보태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달에만 세 권이 나왔다. 다작의 저자이기도 하지만 그의 거의 모든 책이 국내에 번역되는 추세가 아닌가 한다.

 

 

이유야 물론 팔리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불황기에 고정 독자층을 거느리고 있으면서 심심찮게 터뜨려주는 저자라면 출판사들로선 유혹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부쩍 많이 소개되는 건 작년에 나왔던 <혼자 있는 시간의 힘>(위즈덤하우스, 2015)이 대박을 쳤기 때문. 알라딘에서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잡담이 능력이다>(위즈덤하우스, 2014)도 의외의 판매고를 올렸고.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뜨인돌, 2009)은 '사이토 다카시'란 이름을 각인시킨 스테디셀러다.

 

 

 

여하튼 이렇게 쏟아지고 있는 사이토 다카시의 장점은 무엇인가. 내가 읽은 몇 권에 기대 말하자면 일단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인문교양서'로 읽을 수 있는 자기계발서'라고 할까(하긴 모든 책은 자기계발서로 용도변경이 가능하다). 인문학 전공이 아니고 인문서 독서 경력이 일천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도 사이토 다카시의 책은 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다. 그로써 '읽었다'는 만족감을 가져다 주는 것.

 

 

그리고 <철학 읽는 힘>의 부제가 '지적 교양을 위한 철학 안내서'라는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책이 길잡이 혹은 안내서의 역할을 한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열풍에서도 확인되지만, 인문 독자층의 하부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초급 교양(넓고 얕은 지식)에대한 수요다. 고전(이른바 '그레이트 북스')을 읽어야 한다고 얘기들은 많이 하고 그에 대한 책들도 많이 나와 있지만 정작 현단계 대다수 독자들에겐 '그림의 책'일 따름이다.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 같은 베스트셀러가 독자들에게 고전 독서 의욕을 잔뜩 부추켜놓았지만 정작 플라톤이나 데카르트를 직접 읽을 만한 독서력이 대다수 독자들에겐 마련되어 있지 않다. 독서에 대한 기대와 현실 사이에 간극이 생겼다고 할까. 이 간극을 채워주는 책들이 채사장과 사이토 다카시, 그리고 기시미 이치로 등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기시미 이치로의 경우에도 <미움 받을 용기> 열풍을 낳은 것은 '용기'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지만, 프로이트와 아들러 같은 고전 심리학자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게 크지 않았나 한다.  

 

여하튼 이런 저자들의 독자층이 수만에서 수십만에 이른다는 사실은 음미해볼 만한 일이다(이백만 부 가까이 팔린 <정의란 무엇인가>는 너무 예외적인 사례였고). 인문 독자층이 삼각형의 구조를 갖고 있다면 주로 아랫변에 해당한다. 그리고 꼭지점을 형성하는 소수의 고급 독자층이 있다. 예컨대, 칸트나 비트겐슈타인을 원전번역으로 읽는, 그리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다.

 

 

최근에 나온 책으로는 새번역 <철학적 탐구>(아카넷, 2016)나 강철웅 교수의 <설득과 비판 - 초기 희랍의 철학 담론 전통>(후마니타스, 2016) 등이 '하드'한 책에 속한다. 조금 평이하게 쓰였지만 신승환 교수의 <해석학>(아카넷, 2016) 같은 책도 어느 정도 독서력을 갖춘 독자들이 손에 들 수 있는 책이다. 이런 책의 독자는 몇 명이나 될까? 이삼천?

 

요는 <철학 읽는 힘>과 <철학적 탐구> 사이의 차이와 간극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 나는 이 간극이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거나, 반대로 이러한 두 가지 독서 혹은 경향은 상충적이며 대중철학서 열풍은 부정적인 현상이라고 보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연결이다. 중간 저자들이 다리가 되어 더 깊이 있는 교양으로 독자를 이끄는 것이 가능하고, 가능해야 한다고 보는 쪽이다. 곧 <철학 읽는 힘>의 독자들이 일부라도 <철학적 탐구>의 독자가 되기를 바란다. 전부가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20/80의 균형은 유지되면 좋겠다 싶은 것이다(1/99가 아니라).

 

<철학 읽는 힘>에서 사이토 다카시는 칸트를 이렇게 소개한다. 칸트가 '경험적 인지'와 '선천적 인지'를 구별했다고 하면서 "칸트는 매주 진중하게 사고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태도로 구별해보니 사람의 인식은 경험적 인식이 많았다."(118쪽) '매주'는 '매우'의 오타일 것이다. 즉 우리가 아는 칸트는 "매우 진중하게 사고하는 사람"이다(혹은 '매일 진중하게 사고한 사람'?).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그를 따라서 '매우 진중하게 사고하는 사람'이 됨으로써 칸트가 되거나 칸트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매주 하루 정도는 진중하게 칸트를 읽거나 비트겐슈타인을 읽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고전을 무작정 숭배하는 물신적 독서를 제안하는 것은 아니다. 칸트는 다만 고전의 대명사로 내세운 것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비판적 사고력을 신장시키는 것이고, 이에 필수적인 것이 바로 고전을 읽는 힘, 철학을 읽는 힘이다. '매주 진중하게 사고하는 사람'을 그 한 가지 모델로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매주'도 부담스러운 분이라면, '매달 진중하게 사고하는 사람'도 가능하다. '매년'은 어떻겠느냐고? 흠, 그건 좀...

 

16. 0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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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의 신간 <거울로서의 자전과 일기>(서정시학, 2016)을 잠시 손에 들었다. 우연히 검색하다가 눈에 띄기에 연휴 전에 구입한 책이다. 제목 그대로 자전(자서전)이나 일기나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로서 의미가 있다. 저자가 거울로 삼은 자전과 일기 들에 더하여 당신의 자전과 일기 일부도 포함해놓은 책이다. 지난해에는 <내가 읽은 기행문들>(서정시학, 2015)이 나왔으니 무슨 시리즈의 의미도 갖는 성싶다.

 

 

여러 자전과 함께 '김윤식의 자전, <내가 살아온 20세기 문학과 사상>'도 한 장을 차지하고 있어서, 긴가민가해서 확인해보니 실제로 <내가 살아온 20세기 문학과 사상>(문학사상사, 2005)의 일부를 그대로 옮겨놓았다. 문학과사상사판에서는 90-192쪽까지니까 무려 100쪽 분량이다.(<거울로서의 자전과 일기>에서는 128-232쪽까지다). 일종의 재수록인데, 그런 사실이 밝혀져 있지 않은 것은 저자나 편집자의 불찰로 보인다.

 

100권을 훌쩍 넘는 김윤식 선생의 책을 상당수 갖고 있고, 그중 몇십 권은 읽은 독자로서(다수의 강의를 들었던 수강자이기도 하다) 많은 내용이 친숙하지만 가끔 공감하기 어려운 대목도 만난다. 출생에 대한 감동이 그것인데 저자는 '19년 만의 생일을 가진 아이의 환각' 장에서 이렇게 적는다(장제목이 <자전과 일기>에서는 '19년 만에 생일을 가진 아이의 환각'이라고 돼 있다. 오기인지 정정인지 모르겠다).  

"오이디푸스왕, 아기장수 설화, 돌잡이 등에서 드러나는 예언자적 목소리만큼 가슴 설레게 하는 것이 따로 있을 것인가. 사람의 한생애가 그 과정을 겪음에 있어 목숨이, 아직 아기일 적에, 아니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그 본질이 남김없이 드러난다는 사실만큼 엄청난 사실이 따로 있겠는가. 그것은 두려움이자 동시에 그럴 수 없이 마음 편한 것이기도 하다."

흠, 나는 그런 일로 가슴 설렌 적이 한번도 없어서, 이런 감동에는 구경꾼일 수밖에 없다(비록 내 당사주가 '책을 읽는 도인'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런 '운명'도 에피소드로 칠 따름이다). 저자가 이런 운명론에 대한 감동을 앞세운 것은 음력 윤달생이어서다. "내 생년월일은 1936년 8월 10일이다. 민적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고, 그 위에 이루어진 호적에도 그대로 되어 있다." 이 날짜를 저자는 '1936년 음력 윤3월 12일'이라고 푼다. 음력의 윤달이 자주 돌아오지 않는 만큼 평월생 아이와 윤월생 아이의 생에 대한 감각이 다를 것임은 자명한 일. 음력 윤3월이 다시 돌아오는 해는 1955년이니까 음력으로 생일을 다시 맞기까지 19년이 걸린다. 그 감회를 저자는 이렇게 적는다

"윤달에 태어난 아이에게도 생일이 있을 수 있을까. 19년 만에 한번 돌아오는 생일을 가진 아이를 두고도 '생일 있는 아이'라 불러도 될까. 고아 아닌 고아, 고아일 수도 아닐 수도 없는 이 아이를 뭐라 부르면 적절할까."

 

'고아 아닌 고아'라고까지 칭한 것은 좀 과도한 듯싶지만, 여하튼 남들과 달리, 여느 아이들과 달리 19년만에 생일이 돌아온다고 하면 자신의 특별한 운명에 대해서 짐짓 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겠다. 이 윤달생에 대한 예민한 숙고가 비평가 김윤식을 탄생시켰다면 과장일까(저자는 윤달생 운운을 한국 근대문학의 '윤달스러움'과 연관짓기 위해서라고 해명하지만, 여하튼 그 윤달스러움을 직시한 이가 윤달생 비평가란 사실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한데 윤3월생과 양력 8월생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서, 직관적으로 이상하다 싶어, 달력을 확인해보았다(이런 확인은 인터넷에서 손쉽게 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1936년 윤3월 12일은 양력으로 8월 10일이 아니라 5월2일이다.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방도는 선생이 5월 2일생(윤3월 12일생)인데 출생신고는 8월 10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다(과거에 흔했던 일로 안다). 그런데 5월 2일이란 날짜가 빠지니까 좀 이상한 기술이 되어버린 것. 실제 8월 10일은 평달이다.

 

더불어 저자가 간과한 것은 윤달이란 게 규칙적이지 않아서 그 주기 또한 매번 다르다는 점. 윤3월이 낀 해는 1936년에서 1955년으로 이어지지만, 그 다음해는 1966년이다. 이번에는 11년만에 생일잔치를 할 수 있는 것. 1993년과 2012년도 윤3월이 낀 해였다. '19년'이란 건 결코 고정된 주기가 아니다.

 

덧붙이자면 나도 윤달생이다. 나는 1968년 윤7월에 태어났기에 양력이 아닌 음력으로 생일을 쳤다면 2007년에야 첫 생일을 맞았을 것이다. 19년도 아닌 39년만에! 그리고 그 다음 생일은 2044년에 가야 맞는다. 평생 생일잔치 한번 하고 끝날 수도 있었던 셈이다. 그런 점까지 고려해서 부모님과 달리 생일을 양력으로 지내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혹 음력으로 지냈더라면 나도 100권이 넘는 책을 쓰는 비평가가 되었을지 궁금하다. 아무려나 김윤식 선생의 저작을 몇십년 동안 따라 읽어온 것도 어쩌면 그 윤달생의 인연이 작용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16. 05. 07.

 

 

P.S. 자전 부분의 한 대목에 대해 적었지만, 정작 이 책에서 더 흥미로운 부분은 1부의 자전이 아니라 2부의 일기다. 일기를 거의 쓰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14권의 일기를 보관하고 있다면서 일부를 소개하고 있다. 주로 외국 체류 중의 일기로, '도쿄 일기'와 '아이오와 일기' 등이 그에 해당한다. '도쿄 일기'의 많은 부분은 루카치와의 만남(<소설의 이론>과의 만남)과 그 회고로 채워져 있다. 교정사항을 적자면, 293쪽에서 인용된 <소설의 이론>의 역자가 '이경식'으로 오기돼 있다. 291쪽에서와 마찬가지로 '김경식'이다. 저자가 아직 원고지에 글을 쓰기 때문에 입력과정에서 이런 오식들이 발생하는 듯싶다. 다른 저자들에서도 오식이 자주 나와서 하는 얘기다. 283쪽에서는 <토마스 복음서>(<도마 복음>)의 역자가 '류시하'로 표기됐다. '류시화'의 오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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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잖은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터라 주말과 휴일이면 다중인격 비슷한 장애를 겪는다(그런 장애가 있긴 한가?). 다중강의 장애? 셰익스피어를 읽다가 스탕달을 읽고 홍길동전 자료를 보다가 다시 러시아문화사를 뒤적거리는 식이다. 그러다 또 새로 나온 책들에도 눈길을 주어야 하니 머릿속도 온통 뒤죽박죽인 책상을 닮아간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잠시 펴든 책이 <황석영의 밥도둑>(교유서가, 2016). 먹는 얘기로 시작해서 끝나는 음식 순례기이니 만큼 잡념이 없어서 좋다. 작가도 새로 붙인 개정판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책에는 <노티를 꼭 한 점만 먹고 싶구나>(디자인하우스, 2001)의 최신 개정판이라고 돼 있는데, <황석영의 맛있는 세상>(향연, 2007)이란 개정판도 나온 적이 있어서 '최신'이 덧붙은 듯싶다. 원래는 90년대 말에 일간지에 연재한 이야기들이다.)   

 

"나이가 들수록 맛있게 먹는 한 끼 식사가 만들어내는 행복감이야말로 삶의 원천이며, 진정한 밥도둑은 역시 약간의 모자람과, 누군가와 함게 나눠먹는 맛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제일 먼저 펴본 곳은, 혹은 따라가본 곳은 '카프카의 음울한 눈빛이 생각나는 밤에' 꼭지인데, 아무래도 다녀온 적이 있는 곳이라 '합석'이 가능할까 해서다. 아니나 다를까, 북아프리카의 쿠스쿠스에서 파리 외곽 차이나타운의 돼지갈비에 대한 회상을 거쳐서 프라하에서 먹은 수프를 작가는 떠올린다.  

"체코가 변하고 나서 어두운 프라하 역에서 내려 요기할 곳을 찾다가 우연히 작은 술집에서 빵과 먹던 뜨거운 수프 생각이 난다. 더구나 밖에는 겨울비가 축축이 내리고 카프카의 음울하게 큰 눈이 생각나는 그런 밤이었다. 구야시 수프가 그것이다. 원래는 헝가리 음식이지만 겨울철에는 서유럽의 모든 도시에서 러시안 수프와 함께 인기가 있다. 소의 뼈를 우려내어 양파, 월계수입, 마늘로 맛을 내고 고기, 감자, 당근, 셀러리, 파프리카와 토마토를 넣어 걸쭉하고 뭉근하게 끓인 국이다."(183쪽)

그런 묘사를 읽으니 나도 바로 떠올리게 된다. 여름날 저녁 프라하에서 먹던 뜨거운 수프를. 그런데 내가 먹은 건 '굴라시'여서 찾아보니 헝가리에서는 '구야시'라고 부르고, 체코에서는 '굴라시'라고 하는 음식이다. 헝가리 원산이라지만 체코에서 먹었다고 하면 굴라시를 먹은 것이겠다.  

 

 

수프라지만 빵과 같이 먹어야 더 좋을 듯. 원래 음식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지라 수프 애기가 나온 김에 작가는 '러시안 수프' 얘기도 빼놓지 않는다.

"그러니까 다시 베를린의 장벽 넘어 동독 쪽 알렉산더 광장 건너편에 있던 오래된 러시안 레스토랑이 생각난다. 보르시치 수프는 뉴욕에서도 싸고 맛있는 유명한 집이 있었는데, 속풀이 서양 해장국으로는 으뜸이다. 따뜻한 수프 위에 스메타나라는 사워크림을 살찍 얹어주는 게 특징이다."(183-184쪽)

 

굴라시(구야시)나 보르시치나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 음식이고, 나도 맛있게 먹던 기억이 있다. 수프니까 거의 기본 음식이기도 하고. 나이가 들면 순전히 이런 음식에 대한 기억 때문에 다시금 프라하나 모스크바를 찾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 가까운 데 이런 식당이 생긴다면 그런 수고를 덜 수 있을 텐데...

 

16. 03.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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