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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들뢰즈-세르주 다네-에이젠슈테인

13년 적에 적은 페이퍼다. 중간에 언급된 알로이스 리글의 <조형예술의 역사적 문법>은 올해 번역본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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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노르웨이는 어떻게 되어 갑니까?

10년 전의 밑줄긋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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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뇌‘로서 성능이 좋은 편이라고 느끼지만 문제는 정작 필요할 때 써먹지 못하는 것이다(중요한 경기에 몸값 못하고 결장하는 운동선수 같다). 오늘도 오전에 고작 2시간 남짓 책을 읽고는 방전돼 버렸다(이걸 충전하느라 오후에 2시간 낮잠을 자고). 읽어야 할 책은 기하급수적으로 쌓여 가는데 이렇게 약질의 뇌를 가지고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

체력만의 문제도 아니다. 책이 가슴 높이까지 둘러싼(의자에 앉아 있으면 키를 넘는다) 서재에서 쾌적한 기분으로 책을 읽기란 무망한 일이다. 책 한권 펴놓을 공간도 없으니. 독서 생산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건 당연해 보인다.

자가진단은 그러한데 뾰족한 대책이 없다. 이럴 때는 러시아의 부조리 작가 다닐 하름스를 떠올리곤 한다. 엄청난 창작 역량을 느끼지만 정작 허기져서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작가(하지만 쓰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작가). 어렵사리 나온 한국어판은 절판된 지 오래 되었다. 아무도 읽지 않는 작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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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통상적인 일과의 하나로 새로 나온 책들의 면접을 보다가 다시금 강의와 관련한 책들을 읽는다(페이퍼를 몇개 쓰려다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될 듯하여 무리하지 않기로 한다. 내킬 때 하는 수밖에).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헤밍웨이, 그리고 지젝과 하루키. 피츠제럴드와 헤세에 대해서도 보충할 게 있지만 필요한 책이 바로 눈에 띄지 않아서 일단 보류.

하루키에 관한 책 가운데 임경선의 <어디까지나 개인적인>(마음산책)을 읽다가 재즈카페 주인장으로서 하루키가 했다는 말을 옮긴다. 아마도 에세이 어디에선가 읽은 듯한 말이기도 하다. 가게 단골손님들이 생길라치면 그는 이런 말을 던지고 싶어 했다. ˝이거, 어쩌죠? 정말 죄송하게 되었네요. 실은 저희 곧 이사간답니다.˝

보란듯이 이사를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다만 말로라도 한방 먹여보는 것이겠다. 하루키는 그런 말이 주는 쾌감을 좋아했다고. 이 또한 ‘하루키적인 것‘의 목록에 포함시킬 만한데, 하루키의 독자가 된다는 것은 그런 감정이나 태도에 공감하고 맞장구치는 것이겠다. 그렇게 이사한 가게에까지 여차저차하여 손님이 쫓아온다면? 하루키식 대처법은 이렇다. ˝저도 심기일전해서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할 테니까 여러분도 심기일전해서 힘내주십시오.˝

문득 떠올린 건 이 서재도 언제까지 유지해야 하는가란 의문이다. 30대에 시작한 일을 50대에 이르도록 못 끊어도 되는 일인가 싶어서다. 독서야 평생의 일이라지만 ‘블로거‘ 노릇은 언제까지 해야 할까. 마땅한 선례가 없어서 판단하기 어렵다. 내년이면 아마 알라딘 창업 20주년이 되는 성싶은데 그것도 하나의 매듭이다. 적당한 시기에 자리를 내주고 새로운 시작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책들이 잔뜩 펼쳐져 있는 식탁에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심리학자‘라는 에바 블로다레크의 <외롭지 않다고 말하는 당신에게>(문학동네)도 놓여 있다. 독일에서도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인가 보다. 원제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솔직하고 다정하게 내 안의 고독과 만나는 법‘이 부제다.

잠시 책을 펼치니 ‘부모 자아‘ ‘어른 자아‘ ‘어린아이 자아‘란 개념이 나온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에릭 번의 개념으로(교류분석 모델의 창시자라 한다), 우리 각자의 자아는 이 세 가지 자아 상태로 구조화돼 있다고. 부모 자아는 다시 비판적 부모 자아와 양육적 부모 자아로 나뉘고, 어른 자아는 객관적, 어린아이 자아는 순응적이다. 오랜 습성을 바꾸려고 할 경우에는 양육적 부모 자아나 객관적 어른 자아의 태도를 가지고 순응적 어린아이 자아를 잘 위로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보니 이사 문제도 그러하다. 자립과 분리의 문제도 그렇고. 익숙한 것과 작별하기 위해서는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 언젠가는 떠나는 날이 올 것이다. ˝여러분도 심기일전해서 힘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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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강의가 있어서 마태우스님의 <서민 독서>(을유문화사)를 읽는 중이다(내 얘기도 나와서 뜨끔하다). 맹렬 독서 전도사를 자처한 저자의 열의에 감복하며 읽는데(비유컨대 저자는 전도에 몸을 사리지 않는다), 특이한 작품이 나와서 눈길이 멎었다.

각 출판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을 나열하고 있는데, 우선 (<서민 독서>를 펴낸) 을유세계문학전집은 <마의 산>에서 <돈키호테 성찰>까지 90권, 그리고 민음세계문학은 <변신 이야기>에서 <오 헨리 단편선>까지 350권을 돌파했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은 <안나 카레니나>로 시작해서 ˝2017년 <마의 도살장>으로 150권째 작품을 출간한다.˝

<마의 도살장>? 처음에는 저자의 유머인가 싶어서 앞뒤로 유심히 봤지만 그냥 사실을 적은 대목이다. 흠, 커트 보니컷의 <제5도살장>의 오기인 것. 원인을 생각해보니 <마의 산>의 잔상 효과 때문으로 보인다. 더불어 ‘마‘에 대한 마태우스님의 편애도 무의식중에 반영되지 않았나 싶다. 저자는 그렇게 오타를 적을 수 있지만 편집자의 손에서도 걸러지지 않은 점이 특이하다. 하긴 내가 그간에 낸 책들에도 적잖은 오타가 있었기에 남 얘기만은 아니다.

그나저나 어차피 목록에도 올라간 김에 <마의 도살장>이라는 고전도 누가 써주면 좋겠다. <마의 산>의 배경이 되는 스위스의 고급 결핵요양원 옆에 도살장도 하나 있었으니... 라고 시작하면 되려나. <노르웨이의 숲>에서도 와타나베가 나오코가 있는 요양원을 찾아기는 중에 읽는 책이 <마의 산> 대신에 <마의 도살장>이고 말이다. 어차피 마법이 깃든 산인데 도살장이면 어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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