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에서의 짧은 휴가를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그러고 보니 특별히 인상적인 식사는 없었다. 괌에서의 맛집 몇 곳을 가봤지만 음식을 기대하고 가볼 만한 관광지는 아니었다. 가격대비면 더더욱. 지난봄 이탈리아여행의 부작용인지도). 자주 가는 카페에서 익숙한 맛의 커피와 함께(날이 더워서 오늘은 아이스커피로).

일상을 구성하는 풍경도 있지만(변함없는 건물과 대로, 그리고 오가는 차량 행렬), 익숙한 소리도 있다. 해독할 수 없으니 소음이라고 할까. 윗층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드릴 소리, 아파트단지를 점령하고 있는 매미 소리, 그리고 카페에서 매번 반복해서 듣게 되는 노래들. 이 소리들이 괌의 파도소리와 바람소리와는 다른 질감의 느낌으로 현실이라는 배경을 구성한다. 내가 연기해야 할 무대가 달라진 것. 그래서 오늘 할일은, 이미 어젯밤부터였지만, 일련의 강의준비다.

여분의 책은 가방에 넣지도 않았는데 넣었다면 가볍다는 이유로 ‘인생학교‘ 중에 골랐을지도. 점검해보지 않아서 내가 몇 권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여하튼 안 읽은 건 확실해서 지난주에 몇 권 구입한 터이다. 가령 <나이 드는 법><지적으로 운동하는 법><정서적으로 건강해지는 법> 등.

더불어 샐린저나 코맥 매카시 같은 은둔형 작가들의 인생관이 궁금해졌다. 지금처럼 너무 과도하게 연결된 세계에서(그렇지만 그만큼 더 외로움을 느낀다는 게역설이다. 많은 사람과 알게 될수록 궁극적으로는 그 ‘무연성‘을 깨닫게 되는 것이니까) 더 희소해보이는 선택이다. 은둔의 철칙이나 노하우도 있을까. 아, ‘인생학교‘에는 <혼자 있는 법>도 있다. 이걸 왜 빼놓았을까(확인해보니 구입한 책이다. ‘혼자 있는 책‘인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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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les 2019-08-06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에서 돌아오면 익숙한 일상에서 느끼는 안도감이 있죠^^ 그나저나 호캉스를 왜 외국에서 보내야하는지에 대한 신의 섭리는 파악하셨는지..ㅋ

로쟈 2019-08-06 11:53   좋아요 0 | URL
신의 뜻은 모르겠지만 ‘거리‘가 필요한 거죠. 5시간의 거리. 현실에서 떨어지려고 하니 어디로든..
 

순천에서의 강의를 마치고 귀경중이다. 지난해에 서평강의까지 포함하여 네 차례 내려갔던지라 이제는 순천역도 친숙하다. 오늘 강의에서 김대륜의 <역사의 비교>(돌베개)와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김영사)을 다루었는데 <역사의 비교>는 강의를 위해 이번에 읽은 책이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책으로 이동기의 <현대사 몽타주>(돌베개)도 같이 읽어볼 만한데, <역사의 비교>가 비교역사학을 내걸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민족주의, 세 주제에 대한 비교사적 검토를 시도한다면 <현대사 몽타주>는 20세기의 여러 쟁점을 짚는다. 하라리의 책은 물론 제목대로 21세기의 현황과 과제를 다루고 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어떤 과제를 떠안고 있는지 살피는 책. 그의 다른 책들이 그렇듯이 필독에 값한다.

혹시나 시간이 될까 하여 가방에 같이 넣어온 책은 강상중과 우치다 타츠루의 대담집 <위험하지 않은 몰락>(사계절)이다(알고보니 두 사람은 1950년, 동년생이다). 대담의 주제는 냉전 종식 이후의 현대사 내지 현재의 역사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전방과 후방, 전시와 평시, 비극과 희극이라는 구분도 거의 의미가 없어지는 시대의 도래를 목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진단에서 출발하여 이 시대의 여러 쟁점에 대한 견해를 교환하고 있다. 두 저자의 전작들을 고려하건데 충분히 경청해볼 만하다. 눈이 피로하여 집중해서 읽지는 못하고 여기까지만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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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견문>에 짝이 될 만한 책으로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효형출판)를 고른다(기보다는 ‘찾았다‘가 맞겠다). 15년 전에 나온 화제작인데 그때는 읽지 않았다. 아직 절판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스테디셀러. 저자의 다른 책들도 더 나와있지만 일단은 ‘도보여행서‘의 백미라는 <나는 걷는다>부터 시작해야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자의 여정을 반복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쉽게 흉내낼 수 있는 여정도 아니다).

˝30여년 간 기자로 일하며 숨가쁘게 살아온 저자는 퇴직한 후에도 쉬면서 편히 보내기를 거부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델라로 향하는 2,325 km에 달하는 길을 걸은 후, 걷기의 행복감을 맞본 저자는 좀더 오래, 좀더 멀리 걸을 수 있는 길을 찾는다. 그가 선택한 것은 이스탄불과 중국의 시안을 잇는 신비의 실크로드였다. 그는 총 4년에 걸쳐서 11,000 km를 걸었다. 이 여행이 4년이나 걸린 이유는 그가 통과해야 하는 사막이 겨울엔 통행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천상 기자인 저자가 매일 매일의 여행 기록을 노트로 남기고, 파리로 돌아와 그것을 정리하여 낸 것이 이 세 권의 책이다. 1권은 터키를 횡단해서 이란 국경에 이르는 여정을, 2권은 이란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까지를, 그리고 3권은 마침내 중국의 시안에 도착하기까지를 담고 있다.˝

<유라시아 견문>과 중복되는 부분도 있지만 <유라시아 견문>이 동양인이 아시아에서 유럽의 중심부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여정을 담고 있다면, <나는 걷는다>는 좀더 단순하게 <동방견문록>에 가깝다. 터키에서 중국 시안까지의 여정이므로. 그렇게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유라시아대륙을 종횡하는 일이 발로만 가능한 게 아니라 독서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그 여정의 품에 비하면 책값이라는 비용은 얼마나 저렴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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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12-28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로쟈님 포스팅 보고
수전 손택 책 3권을 장바구니에
담았어요. 요즘 저는 사막 여행기를
읽고 있습니다. 연말 어수선한 분위기를 피하기(?)에는 여행, 특히
도보여행기, 도보여행영화가
제격인 듯 싶어요^^
그나저나 무슨 3-3-3 원칙도
아니고 오늘 또 6권을 장바구니에
넣으며 ;;;

로쟈 2018-12-29 00:08   좋아요 0 | URL
저는 16권쯤 주문한 듯.^^;
 

이탈리아 문학기행은 인문기행의 성격도 지닐 수밖에 없는데 문학작품 이외의 책으로는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와 함께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한길사)를 골랐다. 교양의 최소한으로. 마침 간편한 입문서로 제리 브로턴의 <르네상스>(교유서가)가 출간돼 반갑다. 건축 쪽으로는 디스커버리총서의 <건축의 르네상스>(시공사)를 참고하려고 한다.

유럽근대문학사를 그간에 다뤄왔는데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독일의 종교개혁과 함께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을 가져온 거대한 사건이다. 그 의의와 실상을 현지에서 주마간산으로라도 가늠해보는 게 이탈리아 문학기행의 목표 가운데 하나다. 아, 조만간 단테의 <신곡>도 다시 읽게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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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문학기행 준비차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를 손에 들게 되었다. 민음사판 완역본(전6권)도 갖고 있지만 사실 강의에서 읽기에는 부담스러운 분량이다. 차선을 발췌본인데 청소년용으로 나와 있는 걸 제외하면 두 종의 선택지가 있다.

국내판으로는 전문번역가 이종인 선생의 노작이 있는데 이번에 보급판(책과함께)으로 나왔다. <쇠망사>를 세 차례나 완독하고서 독자적으로 엮은 책으로(그러면서 두번 더 완독했다니 로마사 전공자 이상의 공을 들였다) 발췌본이라지만 분량이 1148쪽에 이른다. 원서의 1/3 분량이다.

조금 더 평범한 선택지는 까치판이다. 데로 손더스가 엮은 것으로 530쪽 분량. 여느 책에 비하면 두꺼운 책이지만 <쇠망사> 리그에서는 최경량급에 해당한다. 준비강의에서는 가장 가벼운 책을 바탕으로 하되 책과함께판과 민음사판을 참고하려고 한다. 로마를 방문하려고 하니 숙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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