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도시 타코야키 - 김청귤 연작소설집
김청귤 지음 / 래빗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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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세 단편이 굉장히 불쾌하고 화가 나서 하나 읽고, 쉬고, 하나 읽고 쉬며 읽어냈다. 


바다, 빙하가 녹아 모든 것이 잠겼거나 잠겨가는 와중에 육지를 잠기게 만들어 인간 외 모든 죄 없는 육지종들까지 다 멸망시킨 죄많은 인간이, 여전히 이기적으로, 아니, 문명이 모두 잠긴 와중에 이기심과 탐욕만 발달시켜 아이와 여자, 여자 아이를 괴롭히고, 때리고, 작살로 찌르고, 죽이는 이야기들이다. 


임박한 현생 인간종의 멸망 앞에 이보다 더 추할 수 없는 그런 이야기들. 작가는 이기적인 인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바다로 돌아가는 것(죽음) 을 해피엔딩으로 만든다. 단편 하나 하나 볼 때마다 작가도 싫고, 인간도 싫었는데, 작가의 인간혐오가 나보다 한 수 위라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 해피엔딩인가보다. 내가 아직 거기까지는 안 가서 착하고, 선하게 도우며 사는 여자 아이들은 소설 속에서라도 좀 살았으면 싶은거지. 


바다를 주제로 한 연작이라 등장인물은 다 다르지만 장소는 모두 바다의 곳곳이다. '불가사리'에서는 육지에서 바다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바다와 함께 춤을' 와 '파라다이스' 에서는 배 인간과 물 속 인간이 나오고, '해저도시 배달부', '해저도시 타코야키' 에서는 돔으로 만든 해저도시가 나온다. '산호 트리'는 바다 인간이 나온다. 


바다 풍경에 대한 묘사와 바다에 가라앉은 인간의 쓰레기들을 묘사한 것은 허무하고 좋았다. 


"어른들은 바다를 두려워했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빙하라는 커다란 얼음 덩어리가 순식간에 녹아서 어떠한 대비도 못 한 채 대부분의 땅이 물에 잠겼다고 했다. 해일에 풍화되어 남은 땅들마저 깎여 나갔고 육지 자체가 자취를 감췄다고 했다." (65) 


기후 위기로 빙하가 녹고, 지구 시계가 50년, 30년, 째깍째깍 하더라도 30년 후에 다 죽는 종말이 아니라 거기까지 가는 동안 점점 힘들고 괴로워지는거라고 얘기했는데, 그 점점 힘들어지는 것이 거의 순식간과 같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니 무섭다. 화재가 제일 무서운 재해였는데, 해수면이 높아져서 육지가 잠기는 것도 진심으로 무서워졌다. 


" 우리의 최대 수명은 3년이다. 하는 일이라고는 자석을 잡고 돔 외벽을 닦는 것뿐이라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도 없고, 배급되는 식량이 똑같으니 음식을 나눠 먹을 일도 없고, 그렇다고 생식기관이 있어서 번식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청소부의 탄생 목적은 오로지 돔 벽 청소뿐이다. 


이럴 거면 로봇을 만드는 게 낫지 않았나 싶지만, 해저도시에서는 전기가 매우 귀하다. 로봇을 충전하는 것보다 인간을 인공양하는 게 훨씬 더 싸게 먹힌다. 식량도 조금만 먹고 사고도 일으키지 않으며 평생 청소만 하다가 다시 다음 인공 인간의 재료가 되기 위해 제발로 공장으로 돌아가니 완벽한 에너지 순환 시스템인 것이다. 돔 중심부의 진짜 인간들은 얼마나 편할까."  (186)    


이거 디스토피아 아니라, 좀 비튼 현실 아닌가. 로봇이 인간의 일을 빼앗는 걸 우려하는 다음 단계는 그 로봇 부리는 것도 아까우니 인간 주 69시간씩 일시켜서 일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게 하기. 그렇게 부려먹을 인간들은 계속 만들어야 하니 사람을 노동할 사람 만드는 도구로 생각하는 정책들만 뽑아냄. 못되고 머리도 없는 놈들, 두 개가 다 되겠냐. 


책 말미에 심완선 평론가의 해설이 나온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유스토피아 (ustopia)' 개념을 설명한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의 필연적인 연관을 이야기하며 유스토피아의 개념을 제시했다고 한다. 인류가 이룬 대부분의 문명과 인류의 대부분이 멸망한 디스토피아와 물 속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신인류의 탄생인 유토피아가 '바다' 를 매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해설에서는 유전자 조작으로 형성된다고 함.)


책 뒷면에 

"우리는 멸망과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웃는 날이 더 많을 거라 믿었다." 

물에 잠긴 지구에서 춤추고 사랑하는 존재들의 해피엔딩  


이라고 써 있는데, 대단하다. 나는 내가 초긍정형이라 긍정이 병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의 감상이 위와 같다니. 나는 아직 멀었다. 긍정성도 인간혐오도 부족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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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하는 공부, 봄에 읽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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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1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02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부만두 2023-04-01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로는 영상이 안 보이네요.

하이드 2023-04-02 11:12   좋아요 0 | URL
모바일로앱으로는 보이는데, 북플로는 안 보이더라고요;
 
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선집 2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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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언 고닉은 자신이 나고 자란 도시를 오가며 자신의 과거들과 도시에서 마주치는 도시인들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는다. 그가 흩뿌리는 생각들을 홀리듯 따라가다보면, 독자들의 과거들도 떠오른다. 리뷰들을 보니, 그렇게 떠오른 각자의 과거들은 고닉의 향을 듬뿍 묻힌채 독자 자신만의 이야기로 빛나는 경우가 많다. 독자를 드러내는 글이다. 


이전 같으면 공감했을 많은 이야기들이 지금은 그저 흘러가는 반짝임으로 느껴졌다. 책의 제목은 '짝 없는 여자' 와 '도시' 이다. 조지 기싱의 <짝 없는 여자들>에서 따온 짝 없는 여자는 고닉, 그리고, 도시는 뉴욕. 이것은 내가 더 이상 도시에 사로잡혀 있지 않기 때문일까? 나의 생각은 주로 이 곳을 헤매었다. 


고닉은 사랑과 열정에 매몰되었던 과거에서  짝 없는 여자로 나아갔다. 그러나 여전히 도시의 사람들 속에서 이야기를  긷는다. 나는 사람이 많은 도시에서 사람이 없는 이곳으로 와서 사람 없음에, 도시 아님에 만족하고 있다. 사람, 자동차, 높은 건물들로 차 있던 시선은 이제 하늘, 나무, 산, 꽃, 새 등으로 채워졌다.  


비비언 고닉은 이야기 중 많은 부분을 사람에서 길어낸다. 그 사람들은 가족이기도 하고, 친구나 연인이기도 하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훔쳐 듣는 것이다. 고닉이 훔쳐 들은 이야기들은 생생하고, 특별하게 들린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중의 평범한 대화였겠지만, 고닉의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그들 대화의 순간은 특별하게 독자 앞에 펼쳐진다. 


도시에 대한 그의 사랑은 도시의 사람에 대한 사랑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그는 자신을 짝 없는 여자로 칭하지만, 이 책에서 그는 그가 맺은 많은 관계들을 돌아본다. 그가 짝 있는 여자였을 때와 달리 '짝 없는 여자'로서의 그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웅크린 집착, 열정, 강박 등에서 벗어나 세상과 사람들, 자신을 관조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관조하고, 그제야 보이게 되고, 알게 되는 이야기들이 인상 깊다. 


그가 맺어온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게이 친구인 레너드와의 우정에서부터 시작된다. 부정적인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영원히 컵에 물이 반밖에 없다고 느끼는 인간들끼리 친구가 되었고, 불평, 불만, 패배감으로 우정을 이어간다. 그 이후 다양한 인물들과의 영원할 것 같았던 우정들, 짝으로가 아니라도 다양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뒤로 갈수록 사람과의 관계의 끈은 옅어지고, 외로움은 짙어지며, 용기와 고독으로 살아남는다. 

에드먼드 고스의 회고록 <아버지와 아들>에서 아버지의 거짓을 발견한 여덟 살 아이가 내면의 혼란을 겪으며 속으로 질문한다. 아빠라고 모든 걸 아는 게 아니라면, 아빠가 아는 건 대체 뭐지? 뭘 믿고 믿지 않을지 어떻게 결정하지?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음을 깨닫고 고스는 이렇게 적는다. 


“그 위태로운 상황에 아직 여물지도 발달하지도 못했던 내 작은 뇌로 몰려들던 온갖 생각 중에서도 가장 신기했던 건, 내가 동행해줄 이도, 비밀을 나눌 친구도 전부 내 안에서 찾아냈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엔 비밀이 있었고, 그 비밀은 내 것인 동시에 나와 같은 몸을 쓰는 누군가의 것이기도 했다. 우리 둘이 있었고 우린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 나 자신의 가슴 속에서 나를 알아주는 이를 발견한다는 건 크나큰 위안이었다. “ 


자신이라는 가장 든든한 아군이자 친구를 알게 되고, 위안을 얻는 것은 짝 없는 여자에게도 좋은 일일 것이다.  


이번 책에서 가장 좋았던 이야기는 연극배우 존 딜런의 이야기이다. 뉴욕 연극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 중 한 명이었던 그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실어증에 걸린다. 그의 대표작은 베케트의 독백극이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 사람들을 모아 낭독회를 열었고, 고닉은 모임에 초대되었다. 존 딜런, 조니는 사뮈엘 베케트의 <무를 위한 글>에 나오는 독백을 읽기 시작한다. 그럭저럭 안정적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점점 힘을 잃고, 불안정해진다. 


"존의 목소리는 내려갔어야 하는 대목에서 올라가기 시작했고 단단하게 유지됐어야 하는 대목에선 갈라졌으며 주춤거렸어야 하는 대목에서는 달려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밤의 불안은 신기하게도 신경에 거슬리지 않았고 그의 낭독에 내내 마음을 빼앗겼다. 그건 존이 통제력을 잃어간다는 사실에 맞서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나는 서서히 깨달아갔다 


마치 그런 상황이 오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고, 그에 맞춰 살아남을 전략을 미리 세워두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그것과 동행하고 그것을 타고 달릴 생각이었으며 그것이 자기를 어디에 내려놓든 사실상 그곳을 활용할 심산이었다." 


가장 절망적인 일이 닥치더라도 굳건하게 함께 가기로 마음 먹고, 자신을 무대에 올리고, 관객들을 불러 모았다는 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멋지다. 그의 퍼포먼스는 그 자리의 사람들에게 특별한 종류의 힘을 줬을 것이다.


첫 페이지 첫 문장은 레너드와 식당에서 커피를 마시며 시작했고, 책의 마지막 문장은 레너드에게 전화를 걸 시간임을 확인하며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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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3-18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퍼포먼스 장면 저도 감동적이었습니다

하이드 2023-03-19 12:16   좋아요 1 | URL
분량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압도적이었지요.
 

알라딘 굿즈 요즘 안 사는데 뭐 올리지 생각, 아니 착각 하다가 눈에 보이는 것들 모아봤다. 영상 올린 굿즈들 외에도 티셔츠, 양말, 수건, 담요, 페브릭 수납함, 노트, 노트, 컵,컵,컵, 가방,가방,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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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보고 영화 보고 다시 만화 보며 영화 보고 싶은 분들의 갈증을 해소해줄 더 퍼스트 슬램덩크 리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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