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기 안내서 - 더 멀리 나아가려는 당신을 위한 지도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반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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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잘 잃는 사람, 하지만,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것이 나다. 

솔닛은 <길 잃기 안내서>에서 길을 잘 잃는 사람, 길을 잃지 않거나, 길을 잃지 못하는 사람, 길을 잃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길을 잃는 방법과 왜 길을 잃어야 하는지 알려준다. 


솔닛의 안내를 따라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길 잃기를 쫓아가다보면, 세상이 점점 커진다. 지나가는 모든 발자국들이 떠난 자리가 아니라 '떠난 자리가 있는 공간' 으로 채워진다. 그렇게 과거가 채워지고, 앞으로 가야 할 곳, 길을 잃어야 할 곳만큼이 푸르게 넓어진다. 솔닛은 먼 곳을 표현하기 위해 푸름을 가져왔다. 책은 모래밖에 없어서 삭막하다고 생각했던 사막을 생명들로 채우고, 길을 잃기 위해 떠나야 할 곳을 푸름으로 채운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을 아는 것으로 채우고, 길을 잃는 것을 미지의 곳으로 한 발짝 내딛는 용기로 채운다. 


우리는 모두 길을 잃어야 한다는 말은 우리는 모두 미지로 발을 디뎌야 한다는 말이고, 그 과정에서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솔닛이 이렇게까지 거침없이 걷고, 새로운 곳으로 늘 발을 디디고, 앞으로 나아가며 세계를 넓히는 사람인줄 몰랐다. 작가라고 하면, 머릿속에서, 마음 속에서 한계 없이 사고가 뻗어나갈 것 같은데, 솔닛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물리적인 존재의 움직임으로 외부의 세계 또한 넓혀 나간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못하고,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런것 치고는 흘러가는 것에는 거부감 없어서, 흘러가지는대로 흘러와서 늘 길을 잃으며 여기까지 왔고, 혹은 길을 무시하며 내키는대로만 내 세계를 넓혀왔던 것 같다. 그렇게 지금은 솔닛이 머물렀던 사막의 오두막처럼, 이 곳 섬의 숲 끄트머리와 맞닿은 집에서 이곳이 영원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솔닛은 사람도 사막도 오두막도 결국 떠났지만, 나는 또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 


솔닛은 떠나고 잃은 빈 자리마저 '빈 자리' 로 채웠지만, 나는 지나온 길에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다. 현재와 현재 내가 짊어지고 있는 사랑하는 것들과 더 이상 길 잃지 않고, 풍경이 되고 싶다. 풍경이 되어 적극적으로 길 잃는 이들을 응원하는 것은 괜찮을 것 같다. 나아가서 더 이상 길 잃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잠시의 사막의 오두막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요즘 종종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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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헤리치의 말 - 삶이라는 축제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마르타 아르헤리치.올리비에 벨라미 지음, 이세진 옮김 / 마음산책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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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시리즈는 인물에 따라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편이지만, 불호도 좋아한다. 아니, 불호를 좋아한다는 말은 이상하지만, 좋지 않아도 그 좋지 않은 이유조차도 좋게 만드는 그런 솔직함 혹은 하찮음 (이런거 하나도 안 궁금한데, 이런것까지 내가 알아야 해? 싶은) 도 다른 곳에서 읽기 힘든 것들이라 좋아한다. 워낙에 인물이 궁금하거나 좋아서 읽게 되는거니깐, 사소한 점을 읽는 것도 싫지 않은 것. 작품에서 알게 되거나 그 외 미디어에서 알게 되어 상상했던 모습과 다른 의외의 모습들을 알게 된다. 잘 아는 작가라고 생각했는데도 새로운 모습들을 볼 수 있으니, 이 시리즈의 호도 불호도 나에게는 다 남는 것이 있다. 


아르헤리치의 인터뷰와 그가 직접 쓴 단상들 (단상들 덕분에 더 알찬 책이었다) 

그처럼 재능 있고, 어릴적부터 영재로 인정 받고, 커리어를 노년까지 이어간 역사에 남을 예술가의 말들은 의외여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 나는 나에게 정말로 관심이 없어요. 나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남들의 일에 열광하고, 그게 행복해요. 평생 연주를 많이도 했는데 즐거웠던 적은 없어요. 이제 내가 관심 두는 일을 하기에도 시간이 많지 않고 독주는 내가 우선시하는 일이 아니죠. 난 이제 젊지 않아요. 나 좋은 대로 하고 살 권리가 있다고요. 사람들은 내가 괜히 그러는 거다. 애를 태우려고 그런다, 하지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27) " 


중간에 피아노를 그만두게 되었을 때, 그래도 외국어를 여러 개 하니깐, 취업은 할 수 있겠지. 라는 글을 봤을 때 눈을 의심했다. 미국에 더 있고 싶었는데, 비자가 나오지 않아서 유럽으로 돌아갔다는 부분도. 


그가 싫어하거나 관심 없는 것들도 그가 좋아하는 것들과 바라는 것들도 의외였다. 


" 내 방식은 원래 늘 그래요. 그래서 과거의 업적으로 찬사를 듣거나 상을 받는 건 별로예요.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어떠어떠하다는 얘기도 별로고. 그건 다 지난 일이고 난 삶의 의미가 발견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 더는 ..... 삶이 남지 않은 그 순간까지, 항상. (58) " 


그가 음악가와 음악에 빠져 있는 모습들이 많이 나온다. 피아노 연주는 잘 모르지만, 이런 글들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책이란건 정말 대단하구나 읽는 내내 생각했다. 


그가 생각하는 예술가는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 시대정신을 표현하려고 하는 사람, 자기 시대를 좀 앞서가려고 하는 사람이다.예술적 수단으로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 


그가 이야기했던 자신의 모습과는 좀 다르지만, 그가 높게 평가하는 예술가들 (레너드 번스타인과 같은) 의 시대정신과 시대를 앞서 가고, 봉사 하고, 어린이들과 대중에 음악을 알리는 모습을 높게 사고 있다. 


자서전을 쓰기도 했다는 올리비에 벨라미라는 기자, 작가, 인터뷰어의 감정이 드러나는 글은 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여서 아르헤리치에게 이런 말을 끌어냈다고 생각한다면, 넘어갈만 하다. 자서전도 번역되어 나와 있어서 빌리려다 그 옆에 있는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들을 빌려왔다. (전자책으로 이미 있지만) 


아르헤리치의 말을 읽는 비오는 오전 내내 아르헤리치의 슈만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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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하게 하려면 B라고 말하라 - 아이 마음을 움직이는 말의 원칙
이와시타 오사무 지음, 이선아 옮김 / 양철북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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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사인 이와시타 오사무의 'A하게 하려면 B라고 말하라' 는 아이들에게 지시하는 화법의 전환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아이들에게 지시하는 화법이지만, 어른들에게도 통하고, 발화자 역시 머리를 많이 써야 한다는 점에서 발화자와 청자를 모두 지적으로 만드는 소통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캠핑이 끝나고, 아이들에게 냄비를 씻게 하기 위해 "더 깨끗이 씻어야지." "더 빨리 씻어." "더 열심히 해봐, 이제 시간이 없어' 

냄비를 한 번도 닦아본 적 없는 초등학교 1학년과 2학년들의 냄비 설거지는 더디기만 하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냄비를 박박 닦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도록 씻어볼래?" 


초등학교 1,2학년 아이들이 모여 설거지를 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면, 그 전에 얼마나 진도가 안 나갔을지, 그리고, 저자의 말에 아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냄비를 박박 씻었을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B를 말하는 요령을 알려주는 책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B를 말함으로써 듣는 사람이 지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일 때뿐만 아니라 평생을 가르치고, 배우는 존재이다. 지적으로 생각하고 배울 수 있는 질문과 지시를 하는 것은 중요하다. 


아이들은 '소리' 에 집중한다. '소리가 선생님에게 닿는' 것을 염두에 두고 박박 씻게 된다. 

그렇게 냄비를 씻는 것에 몰두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지시하는 것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광고 카피 문구 역시 'A하게 하려면 B'의 원칙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한다. 

일본 광고 중에 "한 알 300미터" 라는 광고가 있다. 일본의 유명 과자 브랜드인 그리코 캐러멜 광고 문구라고 한다. 한 알을 먹으면 300미터를 달릴 수 있는 에너지를 섭취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소리' 뿐만 아니라 '숫자' 또한 집중과 몰두를 가져온다. 

사토 노부오의 <레토릭 인식>이라는 책이 소개된다. 


1) 'A하게 하려면 B'의 방법은 전통적인 레토릭 기법의 핵심을 딱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2) 레토릭이 '발견적 인식'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주장은 'A하게 하려면 B'로 '아이들을 지적으로 만든다'는 주장과 공통점을 갖는다. 

3) '발견적 인식'을 창조하기 위해 '레토릭'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사토 씨의 주장은 '교육 기술'을 생각할 때 참고가 된다. '발견적 인식'의 창조를 목적으로 교육 기술을 축적하고 분석해야 한다. 


우리는 저자와 함께 합숙 모임에 참가해 자신을 소개한 사람처럼  A하게 하려면 AA 하는 것이 보통이다. 

B의 말이 효과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B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 안에는 B를 찾기 위해 필요한 놀라운 사례들이 많이 나온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은 아이들을 지적으로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 이다. 저자가 이야기한 그러한 질문, B를 찾다보면, 저자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 질문을 찾는 이도 머리를 많이 쓰는 지적활동을 해야만 할 것이다. 


A하게 하려면 B라고 하는 것은 위의 '지적활동을 끌어내는 것'을 꼭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돌려 말하는 것이나 듣는 이를 휘둘리게 만들거나 하는 비대칭적 소통을 가져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바를 잘 익히려고 노력한다면, 더 효과적이고 지적인 소통과 교육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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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04-23 2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찌 보면 돌려말하기 일까요?

하이드 2023-04-23 22:35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생각했어요. 돌려 말하기나 조삼모사 같은 것. 근데 책에서 이야기하는건 좀 더 정교해요. 화자의 지적활동을 자극하는 지시라는 것이 돌려말하기와는 다른 의도입니다. 읽으면서 약간 애들 속이는 기분 ㅎㅎ 하지만 지적 활동 자극! 이거가 중요하더라고요. 리뷰에는 다 안 썼지만 와닿는 법칙들도 있습니다.
 
친애하는 숙녀 신사 여러분
유즈키 아사코 지음, 이정민 옮김 / 리드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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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에 이어 읽게 된 유즈키 아사코의 소설집이다. <버터>는 여성 범죄자와 여성 기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는 꽤나 긴 분량의 장편이었다.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을 볼 수 있어 무척 좋았고, 선과 악과 그 사이의 복잡함, 그리고, 그것들이 보는 것, 말하는 것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보이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번 소설집도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고, 초반에는 너무 착한 이야기들인거 아닌가로 시작했다가 읽을수록 계속 너무 웃겼다. 웃기면 안되는데 웃겼고, 웃을 수 있는 사람과 왜 웃긴지 모르는 사람들로 나뉠 것 같다. 


<아기띠와 불륜 초밥>, <서 있으면 시아버지라도 이용해라> 에서는 <버터>에 나올법한 개성 강한 주인공들과 자연스럽게 그 옆에, 뒤에 서는 여자들, 그리고, 조신한 남자가 나온다. 


<키 작은 아저씨>에서는 소녀문학이라고 불리는 작품들, 하이디, 키다리 아저씨, 작은 아씨들, 빨간 머리 앤, 소공녀 등이 있는 전집이 중요한 소재로 나온다. 전집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현대적이면서도 이상적이다. 작은 이야기들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계속 작은 반전을 만들어내며 진행되고, 소녀는 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이 좋았다. 이 단편은 진짜 웃김. 이 이야기 뿐만 아니라 다른 이야기들도 다 이상적이다. '이게 이렇게 편한 거였어?' "여자의 할 일들"로 여겨졌던 일들의 굴레를 벗어난 여자들은 놀란다. 남자들은 그동안 이랬던 거야? 하면서. 같이 있게 해달라고 사정하며  "여자의 할 일들"로 여겨지는 일을 배우고, 익혀 잘하게 되는 "시아버지"의 존재는 어디서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가사일을 잘 하는 남자들은 종종 있다. 근데, 여자들을 위해 그런 일들을 해주는 남자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그 반대의 경우가 디폴트이지. 


소설집의 처음과 끝단편에는 기구치 칸이 나온다. 문예춘추사를 만들고, 나오키상과 아쿠타카와상을 제정한 사람이라고 한다. 판타지처럼 나오기도 하고, 정말 판타지로 나오기도 한다. 아무튼 판타지. 


이건 계몽소설인가 싶은 마음도 중간중간 들었다. 이런 정도의 미러링, 소설가가 맘 먹고 보여주는 미러링은 엄청 재미있었다. <버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면서도 <버터>에 나올법한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유즈키 아사코만의 개성을 듬뿍 지닌 이야기들로 즐거웠고, 유즈키 아사코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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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시간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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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독자는 한 북동부 여자에 대해 읽게 된다. 

책 속의 저자가 이야기하려는 북동부 여자이다. 그녀는: 


"내가 이야기하려는 여자는 너무 멍청해서 가끔은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미소를 보낸다. 하지만 아무도 그 미소에 답하지 않는데,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기 때문이다. " (25)


그녀도,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는 저자도 별의 시간의 저자 자신의 한 부분인듯한데, 그들은: 

"오직 현재 속에서만 산다. 그건 언제나 영원히 오늘이기 때문이고, 내일은 오늘이 될 것이며, 영원은 바로 이 순간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30) 


"한 룸메이트는 그녀에게서 퀴퀴한 냄새가 난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으므로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녀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반점들 사이의 피부에는 오팔 비슷한 빛이 살짝 맴돌았지만, 그녀 안에 있는 무언가가 빛을 내뿜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길거리에서 그녀를 쳐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녀는 식은 커피였다." (44) 


그녀는 식은 커피였다니. 식은 커피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녀는 개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신은 벼룩이나 키우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48) 


"(그녀는 지하에 살았고 꽃을 피워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녀는 풀이었다.) " (51)


"그녀가 스스로에게 허용한 사치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식은 커피를 홀짝거리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사치의 대가로 잠에서 깰 때는 속 쓰림에 시달렸다." (55) 


"그녀에겐 신뿐 아니라 현실 역시 아주 희박하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 막 발견했다. 일상적인 비현실에 더 익숙했던 그녀는 기이이픈 사아아안골 까아앙총 까아앙총 뛰어가는 산토끼처럼 느으으으린 동작으로 살았다. 모호함은 그녀의 현실이었고, 모호함은 자연의 섭리였다." (57)


"아침에 잠에서 깨면? 그녀는 아침에 깨면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고, 조금 시간이 지나서여 흡족한 마음으로 이런 생각들을 떠올렸다: 나는 타이피스트고, 처녀고, 코카콜라를 좋아해. 그녀는 이 과정을 거쳐야만 자신이라는 옷을 입을 수 있었고, 그러고 나면 순순히 자신이라는 역할을 수행하며 하루를 보냈다." (60)


"그녀에게도 이른바 내적 삶이 있었지만, 그녀 자신은 그걸 알지 못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내장을 먹듯 스스로를 집어삼키며 연명했다. 출근할 때의 그녀는 버스 안에서 요란하고 눈부신 몽상에 잠겼고, 덕분에 유순한 미치광이 같아 보였다." (63)


"넌 먹기 싫은 걸 먹은 사람 얼굴이야. 난 슬픈 얼굴 싫으니까 - 그는 여기서 어려운 말을 썼다- 그 '형색' 좀 바꿔." 

그녀는 몹시 혼란스러워하며 대답했다. 

"난 이 얼굴밖에 없어. 하지만 난 얼굴만 슬픈 거야. 속으로는 사실 행복하거든. 살아 있다는 건 너무 좋은 거야. 안 그래?" (88)


"마키베아는 공포 영화와 뮤지컬 영화를 좋아했다. 특히 여자들이 교수형을 당하거나 가슴에 총을 맞는 내용이 좋았다. 비록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지만, 그녀 역시 자살자나 마찬가지였다. 그녀에게 삶이란 버텨도 바르지 않은 오래된 빵보다 더 맛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99) 


"마키베아, 넌 수프에 빠진 머리카락 같아. 누가 그런 걸 먹고 싶어 하겠어. 상처 줘서 미안한데,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내 말에 상처 받았어?" (102) 


북동부 여자가 주인공인 이야기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하찮게 묘사된다. 작게 빛나는 반딧불이 같았다. 희미하게 빛나다 반짝 빛나다 다시 희미해졌다가 또 한 번 반짝 빛나는. 좋은 이야기는 별로 없는데, 그녀가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우에 우울하지 않고, 행복하다고 착각하며 살아가서 그렇게 칙칙하지도 않았다. 아, 제목이 별의 시간이구나. 왜 별의 시간인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고 반딧불이 떠올랐던걸 보면, 그런 느낌으로 빛나는 이야기인가보다. 


 

만일 그녀가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던질 만큼 멍청하다면 무참히 고꾸라지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누구일까?‘는 하나의 욕구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 욕구를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ㄱㅆ는가? 의구심에 잠기는 자들은 불완전하다. - P25

중산층 맨 밑바닥의 너저분한 무질서 어딘가에는 먹는 데에 모든 돈을 쓰는 사람들 특유의 따문한 안락함이 있었던 것이다. 그 동네 사람들은 많이 먹었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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