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만 없는 아이들 - 미등록 이주아동 이야기
은유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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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은유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미등록 이주아동을 포함한 관련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책으로 묶어냈다. 


책을 읽기 전 나의 짧은 지식은 '불법체류자' 각 분야에서 필수노동력이 된지 오래이고, 불법을 빌미로 열악한 환경에서 열악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는 것. 이들의 위치가 올라가야 한국 노동자들의 위치도 올라갈 수 있다는 것. 정도였다. 화재나 사고로, 폭염이나 아주 추운 날 동사로 그들의 열악한 거주지를 보여주는 뉴스에서나 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이주노동자들이 데리고 온, 혹은 한국에서 태어난 이주아동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책을 읽기 전 생각해보지 못했고, 책을 읽으면서 이게 말이 되는지, 황당했다. 우리 사회의 많은 썩은 고리들 중 하나를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신분증 없이 사는 삶

얼마 번 동생이 공항에 가는데 신분증이 없어서 마침 가지고 있던 주민증을 찾아 준 적이 있다. 그 신분증마저 잃어버렸지만, 생각해보니, 이전에 등록해둔게 있어 손바닥 찍고 공항에 잘 들어갔다고 한다. 내가 근래 신분증을 내밀어야 했을 때는 도서관 회원증을 만들 때와  공항, 도민 무료 관광지에 들어갈 때였다. 


이 신분증은 그 신분증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주민등록번호다. 주민등록번호가 주어지지 않는 아이들.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면, 핸드폰도 통장도 만들 수 없다. 코로나 시대에 QR 체크도 할 수 없다. 청와대에 견학을 가서도 들어가지 못하고, 봉사 사이트 봉사 포털에 가입하지 못하고, 역사 골든벨에서 우승할 정도로 역사를 잘 알아도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 좋아하는 아이돌 콘서트에 예매를 못해 가지 못하고, 아이들끼리 떡볶이를 먹고 계좌이체를 할 때 현금을 꺼내야 한다. 


졸업을 하면 현행 법체계 안에서 언제든 강제퇴거명령이 내려질 수 있다. 고등학교까지 공부를 열심히 해도 대학에 갈 수 없다. 한국말밖에 모르는데 가본 적도 없는 부모의 국적국으로 쫓겨갈 수도 있다. 단속을 피해 저임금으로 그림자 노동을 하면서 있어도 없는듯 살아간다. 


히잡을 쓴 달리아는 백석 시인을 좋아하고, 한국어로 시를 쓰는 아이다. 대학에 진학할 수 없어 오빠 카림이 그랫듯이 대학을 포기한다. 고3때 아이들이 모이면 대학 이야기하는데 낄 수 없어 고3 생활이 너무 길었다고 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한국사회 일원으로 살아왔고, 한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모 대학병원 근처에 살 때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간병인들을 거의 대체했다고 들었다. 이들 없이 간병돌봄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농사도, 공장도. 이미 이들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이미 한국 사회의 필수 존재가 된 그들을 미비한 사회제도를 빌미로 인권을 무시한채, 법 테두리 안에서, 법 테두리 밖에서 이용하고, 학대하고 , 모르는 체 하고 있다. 


아이들의 경우는 더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혹은 한국에서 태어나 평생을 한국땅에서 살아온 이들을 성인이 되어 말도 환경도 모르는 본국으로 추방하는 것은 인도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비합리적이다. 


되지도 않는 저출산 정책들로 세금낭비 그만하고, 있는 아이들을 제대로 케어해야 한다.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싶은 사회를 만들려면, 이미 존재하는 아이들을 잘 돌보는 사회가 선행해야 할 것이다. 


다문화 이해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고 한참 열심히 하다보니 ‘도대체 교육이라는 게 효과가 있나? 인간이 교육으로 변하나?‘ 하는 의문도 들었어요. 당근과 채찍 전략으로 한편으로는 교육, 한편으로는 규제, 이렇게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걸로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았고, ‘감수성‘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하지만 그 감수성이라는 게 하루 아침에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제 스스로의 생각이나 의식이 바뀌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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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달 일곱 번째 밤 - 아시아 설화 SF
켄 리우 외 지음, 박산호 외 옮김 / 알마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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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설황, 제주설화와 SF의 만남으로 기대 이상이었던 작품집이다.

견우 직녀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 온 켄 리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마침 7월 7일에 이 책을 읽고 있었어서 더 기억에 남는다. 10대 레즈비언 커플들 중 한 명이 미국으로 유학가게 되어서 칠월칠석에 긴 헤어짐을 앞두고 있다. 거리가 멀어지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이제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이별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한 명은 긴 거리 연애도 가능하다, 어떻게 헤어지냐고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각자 마음 아파하는 두 커플은 오작교를 만들려고 올라가는 까치들에 휩쓸려 하늘로 올라가 견우와 직녀의 만남을 보게 된다. 그렇게 롱디의 아이콘인 견우직녀에게 연애 조언을 받게 되고.. 


두번째 단편인 왕관유의 '새해 이야기'는 새해에 대한 이야기이다. 새해라는 전설의 동물은 빨간 것과 불을 무서워하고, 인간의 공포를 먹고 산다. 인간들이 새해를 쫓아내고, 망한 현실을 버리고, 모두 가상 세계에만 빠져 있던 미래의 어느 시점에 새해를 무서워하지 않는 존재가 새해를 깨워내서 부탁한다. 


홍지운의 '아흔 아홉의 야수가 죽으면'은 아흔아홉 골 설화에서 모티브를 따온다. 박력 있고, 아련하며, 위트 있다. 옛 설화의 야수와 미래의 헌터, SF 적인 요소들이 잘 버무려져 있고, 여운도 길다. 


요즘 좋아하는 작가인 남유하의 작품을 보게 되어 기뻤다. 설문대할망 설화를 모티브로 한 '거인 소녀' 는 가슴이 웅장해지는 이야기이다. 남유하 작가 다이웰 주식회사에서도, 그리고, 이 작품 '거인 소녀'에서도 엄마와 딸 이야기가 묘하게 까슬하게 나오는데, '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 의 발문에서 강지희 평론가가 이야기했던 한국 소설의 모녀 관계에 대한 글 읽고 나니, 계속 사례로 모으게 된다. 


이 작품집 읽고, 제주설화 관심가게 되서 제주설화 책도 주문했는데, 남유하 작가의 후기가 흥미롭다. 


"제주도 설화에는 거인이 많이 등장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그 거인들이 할머니, 할망이라는 것입니다. 제주도를 만든 설문대할망, 바다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풍요를 가져다주는 영등할망. 저는 두 할망이 몹시 마음에 들었고 이 이야기를 모티브로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설화에서 나타난 두 할망에게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거인이라는 점, 인간을 사랑한다는 점,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 보답을 받지 못했다는 점. (..) 거인 할망. 힘을 가진 여성이 왜 이토록 외면받거나 끔찍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까? 이 이야기는 이러한 의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너무 커져 버렸기 때문에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소녀들. 다르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고립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부디 소녀들이 그들만의 섬, 이어도를 찾을 수 있기를." 


진짜 너무 좋다!! 


다음 작품은 남세오의 서복 설화에서 모티브를 딴 서복이 지나간 우주에서.

불안정한 탐라라는 행성에 살면서 우주로 잠수하는 이야기. 바다에 뛰어드는 해녀 대신 우주에 뛰어드는 잠수의 이야기를 썼는데, 멋지다. 작가들 대단해. 


그 다음은 후지이 다이요의 아마미섬 설화 


곽재식의 한라산 우인은 곽재식이 곽재식했네의 느낌. 


이영인의 용두암 설화에서 온 '불모의 고향'은 이 작품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단편이다. 제주의 기류, 해류, 용류와 인류의 탄생에 대해 하필이면 탐라섬에 정착해서 악착같이 살아가는 초기 인류에 대해 그리고, 섬을 만들어 별을 관찰하고, 용류와 해류와 기류를 타고 노는 신과 같은 존재의 가문에 대해 나오는데, 여전히 미친 바람과 자연에 둘러쌓인 제주섬에 살다보니, 이 이야기가 정말 벅차게 와닿았다. 


윤여경의 원천강 오늘이 설화를 소재로 한 소셜무당지수도 좋았다. 오늘이 매일이 장상이, 고양이 로투스 (연꽃) 무당, SNS, 유튜브에서 성공해서 부자되기, 등등 블랙코미디 같으면서도 설화 모티브가 잘 드러났다고 생각된다. 


이 단편집의 단편들은 너무 좋거나 좋거나였는데, 마지막 단편에서 한숨난다. 


이경희의 산신과 마마신 


산신, 마고신, 마마신이 나오는데, 설화를 소비하는 방식이 저급하다. 

나쁜 왕이 있어서 산신과 마고신이 나쁜 왕에 맞설 아이를 낳는다. 그 아이가 마마신이다. 


나는 요즘 픽션의 윤리에 대해서 종종 생각하는데, 이 작품 보고도 또 생각했다. 

재미도 없고, 설화 모티브 작품인데 설화가 후져졌고, 이야기도 결말까지 별로고, 별 생각 없이 지나가는 장면들이 별 생각 없이 안 지나가진다. 


산신과 마고신이 별상을 강하게 만들어 성주에게 대적하게 하기 위해 하는 것은 괴롭힘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시켜 왕따 시키고, 옥상으로 불러 폭력을 가하게 한다. 배 걷어 차고, 연초빵 하고 막 그런 장면 나와. 

별상은 자기를 낳아준 마고에게 사랑을 느끼고, 발기하고, 그걸 알게 된 마고에게 따귀 맞고 쫓겨남. 이 때 별상은 열다섯살의 몸을 가진 다섯살 아이였다. 마고의 반응으로 장면을 더럽게 만듬. 산신과 마고가 질척하게 자기 위해 울고불고 난리 난 별상을 매몰차게 내침. 별상이 성주를 만나게 되었을 때 성주는 여자들 잔뜩 끼고 있고, 가슴을 주무르고, 별상에게 여자를 대주고 이런 장면들이 이야기에 필요한가? 


나는 장르 소설을 많이 읽었고, 예전 소설들도 많이 읽어, 예전보다는 많이 가리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혐이군 생각하고 넘어가는 편인데, 예전 소설도 아니고, 이제 쓰인 소설에 별 상관도 없어 보이게 저런 장면들이 들어가면 더이상 술술 읽히지 않는다. 


작가 후기 보면, 이야기에는 망할, 드러운, 죽어 마땅한 성주 얘기만 써 놓고, 성주가 별의 주인이라 멋있대. 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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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집 정리 - 부모님과 마주하는 마지막 시간 즐거운 정리 수납 시리즈
주부의벗사 편집부 엮음, 박승희 옮김 / 즐거운상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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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책들 많이 읽었는데, 그 어떤 정리책보다 더 버리기와 정리에 대한 경감심을 일깨워주는 책이었다. 


부모님의 집 정리,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기도 한데, 비혼1인가구로서 나의 집정리는 어떻게 하고 가야 하나 하는 생각도 같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님 집을 정리하기 전 기억해야 할 8가지 

1. 부모님의 집 정리, 이제 우리 모두가 피해갈 수 없는 숙제다. 

2. 물건을 귀하게 여기던 부모님 세대

3. 쉽게 버리지 못하니 짐이 많을 수박에 없다

4. 부모님의 집 상태를 냉정하게 점검하라. 

5. 정리 계획을 세우고 '정리 노트'를 작성한다.

6. 혼자서는 어렵다. 주변에 도움을 적극적으로 청한다. 

7. 처분할 물건은 지역의 규정을 미리 확인한다. 

8. 누구든 한번은 도중에 좌절감을 느낀다. 


부모의 집정리를 한 15인의 사례를 보여준다. 

첫번째 사례부터 이 책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확 와닿는다. 


부부가 30여년동안 살던 방 다섯개 주택에서 남편이 죽고, 혼자 지내다가 본인도 몸이 안 좋아져서 딸네 가까운 10평 짜리 집으로 두 달 안에 이사하면서 집정리를 해야 했던 케이스다. 노년이 되어, 나이가 들수록 몸은 점점 안 좋아지고, 그러다 '갑자기' 이전처럼 살기가 어려워진다. '갑자기' 라고는 했지만,  분명히 닥칠 '갑자기' 인데, 그 대비를 하는 사람은 아주 적다. 


집 정리는 짧게는 몇 달부터 길게는 몇 년에 이르기까지 해야 하고, 기력 없고, 아픈 본인 보다는 가족, 자녀 세대에서 하게 된다. 단순히 이사로 집을 비우는 것과는 다른 차원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담긴 짐을 처분하는 일이다. 그 힘든 짐 정리를 하고 나서는 원망과 망가진 몸만 남는다. 


"부모님은 평생 사실 생각으로 후쿠오카 집을 장만했어요. 나이드신 두 분의 살림이고 단독주택이라 수납 장소가 많았죠. 창고방과 벽장, 헛간 등에 물건이 가득 차 있었어요." 어머니의 새로운 생활을 위해 무엇을 가져가고 무엇을 놓고 갈지 선택해야만 했다. 남은 시간은 2개월, 거의 초읽기였다. 

"몸 상태가 온전치 못한 어머니가 혼자서 물건을 처분하고 이사하기는 어려웠어요. 저도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주말이나 유급 휴가를 이용해 도쿄와 후쿠오카를 오가며 정리를 도울 수밖에 없었죠." 


노년이 되어, 움직이는게 힘들어지면, 짐을 한 군데 쌓아두게 되고 (현관에서 거실), 짐이 많으면, 불편할 뿐 아니라 위험하다. 나이가 들어 신체 기능 저하되어 넘어지는 사고가 쉽게 일어나고, 넘어져 골절되면 죽을 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머니를 자랑스러워했지만, 집안 정리나 요리는 서툴렀다고 한다. 예전부터 물건을 줄이는게 좋겠다고 말해왔지만, 어머니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현실을 회피하려고만 했고, 그 정리를 나중에 떠맡아 하고나니, 정리한 지 7년이 지난 지금도 어머니의 얼굴을 보기 싫을 때가 있다고. 자랑스럽던 어머니가 원망스러워졌다고 한다. 


정리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아프게 되고, 머리가 하얗게 다 세어 버리는 등 몸도 마음도 상하게 되는데, 그걸 누구한테 떠민단 말인가. 


"저도 이제 노년이에요. 얼마 전, 50년동안 써 온 일기를 다시 읽어보고 마음과 머릿속에 추억으로 남긴 뒤 과감히 처분했어요. 앞으로 갑자기 입원하거나 시설에 들어가는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잖아요. 언제 그런 때가 와도 당황하지 않도록 주변을 홀가분하게 해두고 싶어요." 


정리를 하는 건 보통 집안의 여자..인데, 출판사에서 일부러 여자만 골라서 사례 수집을 하지는 않았을테고, 딸이나 며느리가 집안 정리를 한다. 


"남편은 높이 80cm가 넘는 목각 장식물도 부모님 집에서 가져왔어요. 깔끔하게 쓰던 방에 지금은 그 목각 장식물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죠. 시댁 정리 후 제 머리가 하얗게 셌어요. 정리도 힘들었지만, 남편과 제가 물건을 대하는 방식이 너무 달라 그것도 큰 스트레스가 된 것 같아요." 


집을 정리하는 이야기를 보며, 하나 더 눈에 들어오는 건, 남는 건 대부분 여자다. 대체로 남자가 먼저 죽고, 그러니깐, 평균 수명도 남자가 짧은데, 결혼은 왜 남자 연상으로 하냐. 확률적으로 여자 혼자 남을 수 밖에 없고, 남자의 노년 뒷바라지에 자원을 쏟을 수 밖에 없다. 답답. 사례 중에 아들이 50대에 먼저 죽어서 어머니와 며느리만 남아, 며느리가 어머님 집 정리 하는 것도 있다. 


희망적이고, 롤모델이 되는 사례도 드물지만 있다. 


"서랍장 안도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평상복 몇 벌과 속옷과 앞치마, 기모노 몇 벌이 들어있을 뿐 텅 비어 있었죠 .돌아가시기 십 수 년 전부터 '난 이제 물건을 필요 없어. 쓸 사람이 있으면 주고 싶어.'라며 시어머니는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반지와 목걸이, 좋은 기모노는 친척이나 이웃에게 나누어주셨고, 저도 갈 때마다 반지와 오비 같은 걸 조금씩 받았어요. '이 접시는 너희가 써줬으면 좋겠어.'라며 오래된 접시와 어머니가 쓴 하이쿠도 주셨어요." 


이 어머님은 드문 사례인데, 자식들이 자신이 죽으면 집에서 살거나 내려 올 것인지 확인하고, 안 내려갈거라고 하자, 집을 팔고, 살 곳을 물색한다. 작은 아파트로 옮기면서 "10년은 여기서 살고 싶어. 그 다음엔 고령자 전용 주택으로 옮길 거야." 라고 말한다. 운전을 좋아했지만, 70세가 되자 고령자 사고가 많다는 이유로 차도 처분하고 운전도 그만둔다. 


이런 식으로 마지막 십년에서 이십년을 자기 주도로 계획한다. 짐도 몸도 가볍게. 그러면서 일상을 이어간다. 


나이 들면 무조건 대형 병원 있는 아파트지. 그래도 주택에서 살아보고 싶은데, 아파트가 편하긴 하지. 

생각한다고 다 살 수 있는건 아니지만, 지향점을 어디에 두냐 따라서 어디 살지 정해질텐데, 

노년도 이렇게 나누어서 주거 목표를 세우는 것 좋아보였다. 


나는 내 부모의 집정리는 살아계신 동안은 포기했고, 내 집정리를 어떻게 할지. 끝을 생각하고, 거기까지 줄을 쫙 그어서 필요한 것들을 해나가야 겠다고 다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미니멀리즘, 정리정돈, 버리기 책보다 더 와닿았던 독서경험이었다. 


"내 물건의 쓰임을 판단하고 처분하기 위해서는 판단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몸이 말을 안 듣고 물건을 옮기는 게 귀찮아진다는 거예요.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동안, 최대한 물건을 줄이고 손이 닿는 곳에 알기 쉽게 물건을 재배치하는 게 좋아요. 저도 조금씩 해나가고 있어요." 








무엇을 처분하고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를 생각하는 것은 앞으로의 인생을 즐겁게 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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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싱킹 - 속도를 늦출수록 탁월해지는 생각의 힘
황농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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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농문 교수의 몰입이 유명한데, 슬로싱킹을 먼저 읽게 되었다. 몰입으로 책 두 권 나왔던데, 조만간 읽어볼 생각이다. 

7월 1일까지 7일 남았고, 딱 7일만 책에 나온 슬로싱킹, 몰입을 실천해보려고 한다. 


슬로싱킹의 기본은 1. 충분한 수면 2. 1초도 놓치지 않고 계속 문제에 대해 생각(스트레스 받으면 안됨) 3. 선잠 4. 매일 30분씩 규칙적인 운동하기 이다. 


읽어보면, 굉장히 혹하게 되는 내용들인데, 사례로 나오는 다양한 상황에서 몰입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처방, 그리고, 그걸 따른 후의 피드백까지가 꼼꼼히 나와 있어서, 몰입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상황에 맞춰볼 수 있다. 

몰입을 위한 슬로싱킹을 시도하고, 경험한 사람들이 막 세상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고, 살이 빠지고 등등등 이야기 나오는데, 오버나 허황된게 아니라, 읽다보면, 그럴 수 밖에 없겠다 싶다. 


처음 읽을 때 딱 떠오르는건, 비주얼리제이션, 하고자 하는 걸 계속 생각해보기, 이미지 트레이닝, 별똥별에 소원빌기 같은 거였다. 간절히 바라고, 이루길 원하는 것만 하루종일 생각하다보면, 그걸 잘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몰입의 상황. 거기에 선잠은 '몰입의자' 에 앉아서 1-20분의 짧은 낮잠을 말하는데, 자면서 얻게 되는 창의력과 장기기억 끄집어낼 수 있는 상황을 활용하라고 하는 것. 달리가 영감 얻기 위해 숟가락 들고 자는 에피소드 생각난다. 숟가락 떨어트리면 그 소리에 깨서 그림 그린다고. 


나는 지금 이루고 싶은 것이 두 가지인데, 어떡하나. 생각했는데, 그 답은 직장인의 슬로 싱킹에 나온다. 자투리 시간 활용하라고. 자기 상황에서 최대한 생각하기를 지향하는 것. 생각할수록 뇌에 시냅스 형성, 활동하게 되고, 그게 사라지지 않도록 끊이지 않고 생각, 생각 하라는 것. 


같은 주제에 대한 세 번째 책쯤 되면, 비슷한 이야기들 많을 것 같고, 첫번째 책이 제일 좋을 것 같지만, 난 이 책을 제일 먼저 읽어서인지 이 책도 충분히 좋았다. 


공부하는 학생들이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기 나온 학생들은 중학생부터 대학원생까지, 그리고 직장인들 이야기도 나오다보니, 누구라도 해결할 '문제'가 있다면,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이전에, 삶의 가치관이 바뀌는 몰입이라는 점은 빅터 프랭클 생각도 났다. 자신이 하는 일에 몰입하고, 문제 해결하며 의미를 찾는 것.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일' 이 나에게서 차지하는 부분을 생각해보면, 일하는 나가 다이고, 일하는 동안 불행하고, 그것이 일 외적으로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한 번뿐인 인생에 많이 아까운 시간들일 것이다. 


대학원에 와서 고민하는 대학원생의 메일에 대해 조언하기를, 

첫째, 학위 논문 주제와 관련한 자료를 읽고 생각하는 데에만 집중할 것. 둘째,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과정에만 최선을 다할 것. 셋째, 잠을 자면서까지 그 문제를 생각하는 숙면일여 상태가 될 때까지 1초도 놓치지 않겠다는 태도로 논문의 주제에 대해서만 생각할 것. 


잡일이 많아서 그러기 힘든 그에게 "사실 수험생이나 연구자가 아니고서야 일상을 꾸리면서 문제 하나를 1초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경우 나는 차선책으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학위 논문 주제에 관해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직장인의 슬로싱킹을 위한 팁은 다음과 같다. 

1. 잠을 충분히 자고, 필요하면 선잠도 잔다. 

2. 생각에 집중하되 몸과 마음은 이완된 상태를 유지하며 슬로싱킹한다. 

3. 깨어 있는 동안 1초도 멈추지 않고 프로젝트를 생각한다. 

4. 하루 30분씩 규칙적으로 운동한다. 

5.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추진해야 할 때라도 가능하면 한 프로젝트에만 일정 기간 집중한다.

6.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해야 불안감이 통제된다. 

7.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8. 업무 구동력, 즉 이 일을 해야 할 이유나 의미를 찾는다. 


1번이 진짜 중요한 것 같다. 수면시간 7시간 확보. 자기 전에, 일어나자마자, 중간에 깼을 때도 하나의 문제에 집중해서 생각했다. 자면서 뇌에서 영감 얻기를 바라며. 어제 꾼 개꿈은 밤에 본 트위터 때문이었는데, 차마 트위터를 끊겠다거나 스마트폰을 덜 보겠다거나 목표 세우지는 않고, 트위터 앱 메인에서 지운거, 몰입하다보면, 자연스레 덜 쓰게 되겠지. 바란다. 여튼, 타임라인도 정리했다. 인터넷이란건 내가 만드는 환경이니깐. 처음부터 몰입하기는 쉽지 않으니, 포스트잇으로 여기저기 몰입할 문제를 적어서 붙여두는 것도 도움 된다고 한다. 


몰입하는 문제를 무대와 조명, 관객(장기기억)으로 설명한 부분이 와닿았다. 


2번 몸과 마음 이완시키는 것도 계속 의식해야 하고.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된다. 4번, 하루 30분 운동. 이게 힘들어. 일 때문에 많이 움직이던 때도 있었지만, 운동을 위한 운동을 한 적이 없어서 말이다. 요즘같이 활동량 없는데도 몸이 막 개운하지 않은 것은 운동 안해서겠지? 7시간 자려고 깨면 또 자려고 노력하고 노력하면서, 운동을 안 해서 그렇구나 인지도 했으니, 운동 빠트리지 말 것. 시험 준비하던 학생이 운동해서 도움 되었다는 이야기도 책에 나온다. 


그리고, 또 하나, 절실함이 클수록 몰입하기 쉽다고 한다. '여기 내 인생이 걸렸어!' '목숨을 걸어보겠다!' 같은 생각을 떠올리며. 7일동안 몰입해보겠다. 


수학 문제 풀기를 훈련에 많이 이용하는데, 

"인문학 독서는 정신적 성숙에 유리하고 토론과 글쓰기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발달시키는 데 유리하다. 한편 답이 명확한 문제를 스스로 생각해서 해결하는 몰입 방식의 훈련은 전두엽을 발달시켜 생각이 깊어지게 만든다. " 


이건 일단 메모만 해둔다. 수학이 진짜 싫었고, 좋았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는데, 시험에 대한 압박 없는 지금 외려, 수학 공부 해보고 싶어진다.


전 작 두 권을 읽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이 책만 읽어봤을 때는 다양한 내용으로 꽉 차 있는 알찬 책이었다. 


7일 성공하면 7월 1일에 와서 '내가해냄' 하고, 수정, 업데이트하겠다. 


일단, 위에 얘기한, 수면시간 7시간 이상 확보, 1초도 멈추지 않고 계속 생각하기, 30분 운동, 선잠 실행할거고, 해결해야 할 문제도 생각해뒀다.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의 ㅇㅇㅇ 찾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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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25 1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슬로싱킹 8가지 팁 좋네요. 특히 전 6번과 8번이 완전 와닿습니다!

하이드 2021-06-25 12:16   좋아요 2 | URL
저도 6번 좋아요. 전 현재의 행복감을 위해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불안감도 없애주죠.

난티나무 2021-06-25 14: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글 보고 궁금해서 저도 전자책 빌려두었어요.^^

하이드 2021-06-25 17:20   좋아요 1 | URL
사례로 나오는 사연들이 디테일해서 더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몰입에 대한 책들 많지만 컨셉만 가지고 뜬 책 아니고, K 커스터마이즈 되어 좋았던 것 같아요. 누구라도 당장 시작해볼 수 있구요.
 
책 파는 법 - 온라인 서점에서 뭐든 다하는 사람의 기쁨과 슬픔 땅콩문고
조선영 지음 / 유유 / 202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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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의 세상에는 두 종류의 책이 있다. 더 팔린 책과 덜 팔린 책. 


알라딘, 인터파크도서를 거쳐 예스24 도서팀에서 일하고 있는 조선영 MD의 책. 

작고 얇은데, 내용이 꽉꽉이고, 온라인 서점 이용하는 사람들, 거기, 네, 거기 당신이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첫 챕터부터 전쟁같은 문화 '상품'으로서의 책을 사고 파는 현장을 제대로 보여줘서 책 많아서 좋겠다, 도서 MD에 대한 막연한 부러움이 순식간에 증발한다. 그래도 내가 안 할거니깐, 여전히 부럽기는 함. 


나도 온라인서점 처음 생겼을 때부터의 프리미엄, 플래티넘 회원으로 온라인 서점의 변천사를 읽으며 감회가 새로웠다. 

굿즈 1.0 에서 굿즈 3.5 시대까지의 이야기는 보면서 진짜 웃었네. 온라인 서점으로 책 더 많이 읽게 된 사람들이 분명 있다. 

나는 늘 대형서점 주위에서 일하면서 출근하다시피 했어서 대형서점도 이용하고, 온라인 서점도 이용했지만, 지금 사는 곳에서는 온라인 서점 없었다면, 절대 지금까지처럼 책을 사고, 읽고,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온라인 서점에서 뭐든 다하는 사람의 기쁨과 슬픔' 인데, 

알라딘의 많은 서재 지인들이 많은 굿즈와 책에 둘러쌓여 있다는 걸 나는 알지. 우리도, 나도 온라인 서점에서 뭐든 다 한 건 아니겠지만, 꽤 많은 걸 하면서 기쁘고 슬펐지.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파는 이야기를 읽으며,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는 행위에 대한 사고가 확장되는 독서 경험이었다. 



"독자들이여, 부디 많은 고민 끝에 그 자리에 진열한 책을 발견해서 바로 지금 장바구니에 담고 계시기를! 아, 장바구니에 넣기만 하면 안 된다. 장바구니에서 바로 결제로 이어지기를! 장바구니는 그저 위시리스트에 불과할 뿐이니까." - 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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