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의 의식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함정임 옮김 / 현암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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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 책 중에서 인쇄되기 전에 당신이 읽지 못한 첫 번째 책이 있습니다. 어쩌면 유일한 책일 것입니다. 이 책은 모두 당신께 바치는 헌정인데, 당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졌습니다." 


보부아르의 이름만 보고 사서 읽기 시작한 이 책은 읽다보니 보부아르의 이야기가 아닌, 사르트르의 이야기였다. 보부아르가 사르트르의 마지막 10년을 기록한 글이다. 그렇게 보부아르의 이야기인줄 알고 읽기 시작했던 책은 사르트르의 이야기였고, 보부아르의 이야기로 맺는다. 


책은 1970년에서 1980년 사르트르가 죽는 해까지를 기록하고 있다. 1970년에 이미, 사르트르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가구들에 자꾸만 부딪쳤다. (...) 아주 조금 마셨음에도 비틀거렸다. (...) 택시에서 내리면서 그는 거의 쓰러질 뻔했다." 담배를 아주 많이 피웠고, 술을 아주 많이 마셨다. 


사르트르가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음에도 비틀거려서 실비와 함께 부축해야 했을 때, 보부아르는 집으로 돌아와 일기에 쓴다. "집으로 돌아오자, 밝았던 스튜디오 색깔이 바뀌어 보였다. 벨벳 양탄자는 죽음의 의복을 연상시켰다. 살아가는 것이 이런 식이다. 행복과 기쁨의 순간들이 있는가 하면, 위협은 머리 위에서 어른거리고, 인생은 괄호 속 여담 같은 것." 


새벽에 일어나 전날밤의 트위터를 보니, 통가 해저에서 일어난 화산폭발로 옆나라인 일본이 쓰나미 경보로 급박한 상황이었고, 섬에 사는 나는 통가의 해저 화산폭발 전에 해저지진이 일어났었고, 그것이 전조였을 것이라는 뉴스를 보며, 얼마전에 처음으로 실감했던 지진을 떠올렸고, 통가와 일본을 걱정하며, 내가 사는 곳에 대한 소식도 함께 찾으며 불안해 했다. 자기 전까지만 해도 다음에 어디로 이사갈지, 집들을 구경하며, 바닷가는 좋긴한데, 좀 별로지, 근데, 바다뷰가 좋아보이긴 한다. 생각했던 것이다. "위협은 머리 위에서 어른거리고, 인생은 괄호 속 여담 같은 것" 


이미 여기저기 아팠던 사르트르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내가 상상한 것은 사르트르 간병 이야기였으나, 책은 사르트르가 죽어간다는 명제 외에는 전혀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들로 진행된다. 사르트르와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라벨은 뗄 수 없는데, 그의 몸이 노화와 병으로 점점 그 기능을 잃어가면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불의에 항의하고, 토론하고, 글을 쓰고, 책을과 잡지를 만들고, 책을 읽고, 여행을 가고, 사랑을 하는 강한 사람이라는 것은 이 책을 읽고 알았다. 노년의 모습이 그럴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읽게 되어서 노년에서 죽음까지의 그간 내가 생각해왔던 것들이 마구 흔들렸다. 


나는 늘 내가 내 정신이 아니게 되면 내가 죽는 순간을 정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그렇게 단순한 것은 없다. 한 순간에 살아 있는 나이다가 죽어 있는 내가 되겠지만, 온 정신으로 살아가다가 그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한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끝이 있다는 것만 알고, 그 끝이 언제인지도 알 수 없는 무망의 시간들이다. 


정신과 몸 어느 것이 먼저 사그라드는지, 그것은 각자의 기질에 달려 있는 것일까? 살아 온 경험에 달려 있는 것일까? 사르트르는 할 일을 했고, 자신의 삶을 사랑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몸의 이곳 저곳이 제 기능을 하지 않게 되어서도 굳건한 정신이 계속해서 꺼지지 않고 불타올랐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계약 결혼' 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51년간 함께 했고, 부부이되 우연히 찾아오는 사랑 또한 각자 즐기기로 했다. 여름 바캉스와 부활절, 겨울에 늘 여행을 다녔다. 여행 이야기가 병원 가는 이야기보다 많이 나온다. 걸음을 못 걷게 되어도, 눈이 반 실명 되어도 계속 여행을 다니고, 카페를 가고, 책을 읽고, 토론을 한다. 가장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부분이고, 여행의 즐거움 뭘까. 진지하게 계속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사르트르가 아파서 혼자 둘 수 없을 때, 보부아르가 독박간병을 한 것도 아니다. 보부아르의 양녀, 사르트르의 양녀, 그리고, 사르트르의 젊은 여자친구들이 돌아가며 그를 돌보았다. 


책은 사르트르의 병에 대한 기록과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행복, 그리고, 여행기로 채워져 있다. 이 세 가지가 같이 간다는 것이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지고, 새로운 대륙을 발견한 기분이다. 


사르트르가 자신의 병과 노화에 겸허하고, 인정 또는 체념하며,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가 끝까지 인정하기 힘들어했던 것은 시력이다.


++


"내 시력은 영영 회복될 수 없는 걸까?" 그 말이 내 가슴을 너무나 아프게 찢어놓아서 나는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

 

내가 생각하는 나의 노년에서 죽음까지 중, 최악의 시나리오가 정신은 있고, 몸은 안 움직이고,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삶의 재미도 의미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오디오북에 익숙해지자고, 오디오북들을 듣는 습관을 기르려고 하고, 제법 좋아지긴 했지만, 역시 종이책이 가장 좋고, 책을 읽는 것을 듣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은 다른 카테고리이지 않나 생각 들 뿐이다. 사르트르의 눈이 읽고 쓸 수 없어졌을 때, 보부아르가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다. 


사르트르는 대부분의 경우 죽음에 초연한 모습을 보인다. 


++ 


" 내가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오. 난 절대 죽음을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죽음이 온다는 것은 알고 있소." 

" 그렇소!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소... 글을 썼고, 살아왔고, 후회할 것은 아무것도 없소." 

" 내가 늙었다는 기분이 안 들어요." 

" 날 흥분시키는 대단한 것이 더 이상은 없소. 내가 조금은 그보다 윗길에 있는 것이오." 그의 말 전체를 통해 드러난 것은, 그가 현재를 차분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자신의 과거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  


아홉시에 자도 아쉽지 않은 하루를 보내자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걸 좀 더 늘리면, 할 일을 했고, 잘 살았고, 그런 과거에 만족하고, 행복하기에 아쉽지 않은 삶이 되는 걸까? 


사르트르의 이야기에 몰입하다, 마지막 페이지의 보부아르의 말에서 이 책은 보부아르의 책임을 기억한다. 

죽음이 임박한 사르트르에게 그 사실을 숨긴 것에 대한 회의. 사르트르는 늘 자신이 불치의 병에 걸리면 '알고' 싶다고 했는데, 보부아르는 그 사실을 숨겼다. 사르트르가 취할 어떤 방법도 없었고, 더 잘 치료받을 수도 없었으며, 그는 삶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 몇 해는 임박한 죽음에 무지함으로써 덜 우울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보부아르 또한 사르트르처럼 두려움과 희망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 나의 침묵은 우리를 갈라놓지 않았다. 그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고 있다. 나의 죽음이 우리를 결합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된 것이다. 우리의 생이 그토록 오랫동안 일치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아름답다." 


보부아르는 이 책으로 사르트르에게 작별 의식을 치루었다. '작별 의식' 이라는 말은 어느 날 사르트르가 보부아르에게 농담처럼 건넨 인사였다. 그 작별의 의식을 이어받아 50여년을 보낸 동료이자 친구이자 연인과의 마지막 10년을 기록하고, "사르트르를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으며, 사랑하게 될 사람들에게" 헌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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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1-17 0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력의 노화는 사르트르 같은 이에게는 치명적인 것일듯요. 그가 존재해왔던 이유가 사라지는 일일듯요.
실낙원의 한부분이 생각나네요!

하이드 2022-01-22 15:56   좋아요 1 | URL
맞아요. 앤 패디먼 책에도 아버지가 시력 잃었을 때 실락원 읽어주는 장면 나왔던 것 같아요. 책 읽는 사람에게 시력 잃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에요.
 
곱게 지지 말기로 해
김진아 지음 / 봄알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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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신의 코어 커리어,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 코어 커리어를 카피라이터로 잡고 있다. 저자가 해낸, 하고 있는, 할 많은 일들은 단단한 코어 커리어인 카피라이터 업무를 통해 쌓은 분석력과 기획력을 활용하여 뻗어 나가는 일이라고 한다. 


책을 읽으며 나의 코어 커리어는 뭘까 생각해 봤다. 많은 일을 했지만, 돌이켜보면, 나의 코어 커리어는 영어와 읽기였다. 이 두 가지로 대부분의 일을 해왔다. 내가 그간 다양한 일을 해왔지만, 좋아하는 것만 했고, 거기에 어떤 공통점이 있긴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해왔었는데, 답을 얻은 기분이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코로나로 인해 주 4일제 도입이 빨라지고 시간제, 탄력 근무제 등 노동 유연화가 가속화 되며, 장래희망은 '파이어족' 이지만 경제적 기반이 약해 노년에도 일할 확률이 높은 여성들은 확고한 커리어를 가지고, 배리에이션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몸도 일도 코어가 중요해~ 


같은 세대의 여성 저자가 자기 반성을 하고,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것들을 보면서 속이 후련했다. 그 여성이 반성에 그치지 않고, 계속 부딪히고 나아가는 여성이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 


여자의 운명이 왜 '여자'의 운명인지 묻지 않은 결과가 지금이라면, 살던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긍정의 힘은 기도가 아닌 시도에서 나온다." 


첫 챕터부터, 나한테 하는 얘기인가.. 멍 때리다가 책을 덮고, 두 번째 시도에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일하면서 유학 검색하고, 탈출 꿈꾸고, 계획하는 탈출 전문가. 나도 그랬는데.. 회사 생활이 싫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랬다. 그냥 뭔가 달라 보이고 싶고, 특별하게 보이고 싶었나 싶다. 대신 나는 무슨 날이면 한국을 탈출했다. 생일, 크리스마스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결혼을 전제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되겠지' '무슨 수가 생기겠지' 같은 방임적 태도 역시 회피의 일종이다. 가부장제 영향력 아래 살아온 여성의 자기 부양자로서의 인식은 남성보다 약할 수밖에 없다." (18) 


여자들이 가장 먼저 놓아야 할 것이 막연한 낙관주의라고 하는데, 구구절절 맞는 말이고, 읽으면서, 나의 낙관주의를 생각했다. 아, 나 망하는건가? 망했는데 모르고 있나? 아님, 낙관주의 플러스 알파랄 것이 나에게 있어서 여기까지 왔나? 그렇다면 그게 뭘까? 나는 낙관주의자라서 마지막 질문을 덧붙인다. 다른 기조로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마, 낙관주의로 성공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뭔가가 있긴 있을거다. 뭘 알아야 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이 책을 읽는 것은 뭔가 새로 계속 알게 되는 경험이었다. 


'남자라는 클라이언트' 에서 굉장히 미묘한 친밀한 관계의 남자와 있을 때의 '부자연스러움' 에 대해 나온다. 아무리 친해도 완벽하게 무장해제할 수 없고 완전히 편해질 수 없는 일정량의 긴장을 동반하는 상태, 저자는 그것을 클라이언트와의 그것으로 비유한다. 이거 정말 미묘한 거라서 타인과 이야기해본 적도 없는데, 책에서 읽을 줄 몰랐다. 완벽하게 무장해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정도의 친밀한 관계를 여자와 이루었을 때와 비교해보면 된다. 미묘하지 않고, 대놓고 불편한 것도 있다. 딸기를 씻어올 때, 여자와 남자 중 여자가 씻어오면, 여자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고, 남자가 씻어오면, 여자가 해야 하는데, 남자가 해"주는" 것 같다고 나도 세상도 그렇게 봐서 기분 나쁜 것. 이건 정말 어쩔 수가 없다. 새로 태어나서 새로 세뇌당하기 전에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길러지고 적응하며 살아온 여성은 관계의 기울기를 인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여자를 왜 더 쉽게 놔버릴까' 에서는 "자신의 외모를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전시하는 여성이 주위에 있을 때 생성되는 묘한 긴장감, 불안감, 피로감" (36) 을 이야기한다. 이런 것도 정말 잘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뭔지 아는 그거. 잘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텐데, 이렇게 펼쳐 놓다니 대단하다. 


'나는 내게 실망해야 해' 챕터는 짧게 나마 저자의 행로를 봐 왔고, 책을 읽어왔어서 더 와닿는 글이었다. 틀리기 싫어하고, 흠잡히기 싫어서 레퍼런스만 주구장창 찾는 것. 


"문제는 여기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쓴다는 사실이었다. 언제나 예상보다 초과였다. 정말 중요한 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결과물을 만드는 단계다. 시간은 한정돼 있고 몸풀기 시간이 길다는 건 그만큼 이 '본 게임'에 쓸 시간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 나의 기획서를 써 내려가지만 뭔가 시시하다. 새로운 느낌도 없다. 조금 전까지 보던 완성도 높은 사례들과 비교가 되어 더욱 그렇다. 내 실력과 자질에 대한 좌절은 여기서 시작된다. 나의 독특한 취향, 까다로운 안목, 날카로운 비평 의식이 정작 나의 결과물로 연결되지 않다니. 믿고 싶지 않아. 이건 그냥 시간이 부족해서 그래! 속으로 외치며 시간을 더 쓴다 해서 더 좋은 게 나오지는 않으리란 예감을 애써 외면한다." (53) 


아.. 진짜.. 책 읽으며 종종 느끼는 바이지만, 이 책 읽으며 특히, 나한테 하는 이야기로 들려 계속 찔렸다. 


"레퍼런스는 남의 작업이다. 내 것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정답과 '맞는 말'에는 '나'라는 필터를 통과시켜 나의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나를 둘러싼 사람, 환경도 변수로 작용함은 물론이다." (56) 

공감. 레퍼런스가 너무나 널려 있는 세상이다보니, 내 것을 말하는 사람이 희귀해졌다. 레퍼런스들은 혼돈의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이고, 남의 것에 기대기보다 내 것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을 최적화하려는 욕망은 실패의 최소화와 닮아 있지만, 실패도 실망도 계속 하고, 맷집을 기르고, 나만의 방식을 찾으라는 이야기가 위안이 되었다. 


" '한 달에 200만 원 씩 쓴다면 지금 가진 돈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까?' 

'한 달에 100만 원 씩 쓴다면?' 생명 연장을 위해 월 지출액을 줄여 계산하면 어쩐지 기분은 더 나빠졌다." 


아, 나 이 생각 맨날 하는데, 나는 이거 계산하는거 심지어 좋아한다. 사실 이것은 사라지지 말라는, 옆에 사라지려는 여자가 있다면 붙들라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사라지지마. 


모든 챕터에 나의 공감을 드리지만, '익명과 크레딧' 도 특히 좋았다. 내가 기성 세대로서 느꼈던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에 대한 생각이 여기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최신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지만, 사회가 너무 빠르게 변한다. 이 이야기가 나온 지금보다 더 나빠질지, 더 나아질지, 지금을 글로 박제해두었다. 동시대를 지나며, 차갑고, 동시에 뜨거운 이야기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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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일기 - 공포와 쾌감을 오가는 단짠단짠 마감 분투기
김민철 외 지음 / 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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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관련 책들을 몇 권인가 보았는데, 이 책이 제일 와닿는다. 

내가 마감 속에 사는 사람이라 와닿는 것이 아니라, '마감' 과 '마감'에 대한 생활의 태도와 팁들과 애환과 애증이 난무하는 책이다. 작가로 사는 사람들 모두가 모든 글을 100% 진심을 다해 쓰지는 못할 것이다. 이 글들에는 담지 않으려야 담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찐한 진심들이 담겨 있다. 


각 일기의 맨 뒤에 나와 있는 네 컷 일러스트가 좋았다. 수십 장 일기의 내용을 네 컷 만화로 압축해 둔 것인데, 일기만큼 존재감 강한 네 컷이었다.책을 이리저리 뒤져 일러스트레이터 이름도 찾아봤다. 최진영 작가. @jychoioioi


김민철 작가이자 광고회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글로 마감일기의 문을 연다. 황선우 김하나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읽은 사람이라면 낯익은 이름이다. 망원호프 주인장. 알고 있으면서도 이름 보고 남자려니 생각하다가 뒤에 가서야 아, 여자였지. 생각났다. 처음부터 마감 잘 지키는 사람 나와서 약간 배신감 들지만, 시작만 그렇다. 광고회사에서 일하면서 마감을 잘 지킬 수 밖에 없는 사람으로 길러지고 진화됨.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고 마감을 해내도록 만드는 '마감 근육'이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 근육은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고 마감을 해내도록 만드는 근육, 어렵사리 잡은 약속을 일 핑계로 취소하지 않고, 사생활을 지키면서 할 일을 해내도록 만드는 근육" 이라고 한다. 10여년 단련한 마감 근육 덕분에 저자는 "사람은 단련된다." 고 굳게 믿는다. 


읽기도, 쓰기도 운동처럼 습관과 근육을 만드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근래 여러 책에서 봤는데, 마감도 근육이구나. 근육! 근육!


저자가 공개하는 마감 필살기 첫째는 메모이고, 둘째는 리스트 만들기이다. 각자에게 맞는 마감 필살기들을 산처럼 모아두고, 다 해보면서 나한테 맞는 걸 찾..기 보다는 그냥 일하는게 낫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해? 


두번째 마감 타자는 이숙명 저자이고, 웃긴다. 보면서 나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마감 한참 지났는데, 친구들과 인도네시알 숨바섬으로 놀러간 저자의 구구절절 편지를 볼 수 있다. 내가 편집자라면 설득당했...을리가. 편집자 아니라도 알 수 있다. 이 뭔 개ㅅ... 재미있었다. 이렇게라도 마감을 할 수 있었던 저자의 마감 짬밥에 리스펙


세번째 마감일기의 주인공은 권여선 작가이다. 낄낄 거리고 웃다가 진지해진다. 저자에게 가장 큰 마감은 학교생활이었다고 한다. "학교로 향하는 길은 두려움뿐이었고 낮에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슬픔뿐이었다"는 작가는 고3 수능을 보고 큰 마감을 마침내 했다고 느낀다. 서른두 살 등단 후 글을 못 쓰는 시간이 길어지고, (7년쯤..) 불규칙한 알바로 연명하는 것이 힘들어져서 학원강사로 돈을 벌고 다시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하는 동안 어느 술자리에서 주어진 것도 아니고,  눈 앞에 스쳐가는 기회를 잡는다. 반강제로 쟁취한 청탁으로 7년만에 소설을 다시 쓴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쓴다.  7년동안 못 했던 일을 한 달만에 해내야 했을 때 그에게 특별한 비법은 없었다. 


"내 능력이 닿는 선에서 오로지 소설만 쓸 계획을 짰다. 계획은 단순했다. 내가 잠에서 깨듯이, 시시각각 숨을 쉬듯이, 무언가를 먹고 마시듯이, 하루를 잠으로 맺듯이, 그렇게 요구된 순간에 요구된 행위를 하도록 만드는 것. 해야 한다면,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길든 짧든 남은 시간은 오직 마감을 위한 것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 않아도 계획은 시시각각 실현되어야 했다. 이를 닦고 세수를 하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잠을 자고 꿈을 꾸면서도, 무얼 하든 내 머리와 몸은 매 순간 소설을 쓰고 있도록. " 


이와 같은 몰입을 동경한다. 그것이 마감이든 뭐든. 그렇게 소설을 탈고하고, 소설을 완성하던 날, 울보는 펑펑 운다. 행복하고, 비통해서. 마감이 찬란해서. 이 일을 이제 더 이상 못한다고 생각하니 비통해서. 그 이후는 다들 알다시피, 청탁이 이어지고, 마감이 이어지고, 잘 알려진 소설가가 된다. 


"마감을 한다는 것은 끝내기로 한 것을 끝냄으로써 약속을 지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크든 작든 그건 내 삶의 흐름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우는 일과 같다. 삶의 시간을 이쪽과 저쪽으로 구획 짓는 일이다. 마감 이전에는 내 모든 것이었던 하나의 세계를 그곳에 놓아두고 떠나는 일, 마감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했던 자신을, 어쩌면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더 나아졌을지도 모를 그 세계에서 단호히 끄집어내 그 너머의 세계로,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데려가는 일이다." 


다음 타자는 권남희 번역가이다. 숨쉬듯 번역하며 숨쉬듯 마감하는 그는 자고, 일어나고, 밥 먹고 하는 일상 속에 '번역하고' 를 하나 더 끼워넣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왜 밥을 세 끼씩 먹어야 해! 불평하는 사람 없듯이 종일 번역만 하는 데 불만 없고, 숨 쉴 때 "아이고, 내 팔자야" 하는 탄식은 좀 나온다고. 


교수 한 분이 "마감이 어디 있어. 내가 주는 날이 마감인거지"  하는걸 보고, 나의 목표! 했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고, 대신 '마감을 칼같이' 를 신조로 지키며 칼타듯 30년쯤 마감하면 마감 득도의 경지에 올라 끊이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방송작가인 강이슬의 글은 위태위태하다고 생각했다. 극단까지 밀어붙여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저울에 올려두고 얻는 것만을 바라보며 달린, 또라이만이 살아남는다는 그 세계 


임진아 작가는 기쁨을 말한다. 마감은 기쁨이래. "할 수 있는 일을 의뢰받았다는 기쁨, 모처럼 신나게 그릴 수 있는 일이라는 기쁨, 생각보다 빨리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헛된 희망같은 기쁨, 제안받은 조건이 좋아서 힘이 절로 나는 기쁨, 당분간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기쁨, ...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는 기쁨" 일을 시작하고 마감을 떠올리며 괴로워하기보다 끝낸 후의 기쁨을 생각하며, 그러니깐, 조금 더 멀리 보면서 '기쁨'을 모아 일을 해낸다. 사실 '기쁨' 보다는 '기쁘고 싶다', '얼마나 예쁠가? 어서 보고싶다!' 보다는 '다 끝내면 얼마나 좋을까?'에 조금 더 가깝다고 하는데, 무엇이 되었든 그 기쁨을 향해 오늘의 나를 움직인다. 


삽화를 그리는데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그림 도구가 아니라 '그릴 마음'과 '그릴 수 있는 맑은 감정' 이라는 말은 꼭 담아두고 싶다. 조금씩 무리하는 일들이 내년의 표정을 만들고, 그러지 않고 싶다는. 항상 힘이 없는 사람이어서 분배와 마음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 같다.  강이슬 작가와 너무 대비된다.


다음 저자인 이영미 작가이자 편집자의 망치를 휘두르고 싶은 격정, 사장님 뒤에 꽂혀 있는 벽돌책들을 꺼내서 집어 던지고 싶은 마음. 마감으로 수행하는 건가. 혼자하는 마감과 달리 중간에 끼어서 모든 것을 조정해야 하는 마감 스트레스가 제대로 느껴진 일기였다. 


마지막 타자는 김세희 작가이고, 나는 지금 김세희 작가의 단편집을 주문해두고 기다리고 있다. 마감도 그렇고, 인생의 어떤 힘든 시기에 한계에 부닥치며 깨지거나 깨고 나가는 그런 모습들을 책으로나마 읽는다. 


마감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마감을 통한 삶을 이야기하는. 삶에 대한 태도를 이야기하는 좋은 책이다. 


‘지금, 고여 있는 이 물안에서, 마실 수 있는 한 모금이 없다면, 고여 있을 여유가 없지.‘ 월급만으로는 그곳에 머무르는 한 달을 이해할 수 없던 시저이었다. 하지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듯이 퇴사할 수 없었고, 말보다는 표정에 그리고 어깨에 내 진심이 걸쳐져 있을 뿐이었다.
그런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점심시간에 좋아했던 상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회사는 내일 당장 그만둘 수 있게 만들어놓으며 다녀야 해. 그리고 그렇게 하더라도 스스로한테 창피하지만 않으면 돼."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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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09-18 0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찾아봤는데 챕터마다 있는 네 칸 만화가 귀엽네요. 권남희 번역가 부분만이라도 읽으려고요. 명절 직전에 다음 일 일정 짜는중이에요.
 
EBS 당신의 문해력 (워크북 포함 한정판) - 공부의 기초체력을 키워주는 힘 EBS 당신의 문해력 시리즈
EBS <당신의 문해력> 제작팀 기획, 김윤정 글 / EBS BOOKS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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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 : 현대 사회에서 일상생활을 해나가는데 필요한 글을 읽고 이해하는 최소한의 능력 



"문해력은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받아들이는 도구로서 학습 능력을 좌우하는 가장 기초적이면서 중요한 역량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나는 것이, 100세 인생에 적응해야 하는 세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변형 자산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배우는 오픈 마인드와 정보처리 능력이다. 문해력이 점점 떨어지는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기초 능력이 문해력이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읽는' 행위는 타고난 것이 아니고, 살면서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개발하지 않으면, 문맹에서는 벗어나더라도, 읽지 못하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2020년 4월, 미국의 디트로이트 공립학교 학생들은 "문해 교육에 있어 학교 측으로부터 양질의 교사와 제대로 된 학습 환경을 제공받지 못해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 '문해 교육은 국가가 보장해야 할 헌법적 권리' 라는 취지의 소성을 제기하고, 미 연방고등법원은 이에 대해 주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을 계기로 미국 공교육 기관들은 문해 교육 상황을 점검하기 시작했고, 교과 과정을 개정하면서 '읽기 교육'을 대폭 강화했다. 선진국들에서는 literacy, 문해력을 가장 중요한 기초교육으로 학교와 병원과 정부 차원에서 기초 문해력을 점검하고, 뒤쳐지는 사람이 없도록 다양한 정책들을 펼치고 있다.  


1년에 1권의 책을 읽는 '초보 독서가'와 평균 70권의 책을 읽는 '능숙한 독서가' 를 상대로 실험을 했는데, 

능숙한 독서가는 글자를 읽는 것보다는 글의 의미와 맥락을 파악해서 내용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한 인지 활동에 뇌를 더 많이 쓴다. 반면 글을 잘 읽지 않는 초보 독서가의 뇌는 글자를 읽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우리는 종종 글을 읽으면서 "머리가 잘 안 돌아간다"라는 말을 하는데, 글을 읽어도 전전두엽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사람은 글을 읽을 때 글자 자체를 읽는 데 뇌를 많이 쓰느라 전전두엽이 쉽게 활성화되지 않기 때문이다.그래서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계속해서 잘 읽을 수 있는 반면에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은 점점 더 읽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문해력은 후천적으로 발달하는 능력이며 가지고 태어나는 능력이 아니다. 어렸을 때 제 나이에 맞게 문해력을 발달시키는 것이 중요하지만, 어떤 요인으로 인해 뒤처졌다고 해서 격차를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문해력을 개발할 기회들이 적절하게 제공되면 누구나 언제든지 따라갈 수 있고 만회할 수 있다. 문해력은 평생 배워야 하는 것" 이라고 한다. 


문해력의 1단계가 파닉스, 2단계가 이야기 이해, 3단계가 어휘력과 배경지식 쌓기 정도 되겠다. 문해력이 높은 사람은 더 높아지고, 낮은 사람은 더 낮아지는 격차가 발생한다. 


문해력 평가는 결국  '이야기 이해도'로 글의 내용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으로 문해 교육을 통해 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유아기부터 초중고등학교까지의 문해력을 점검하는 다양한 실험이 나와있다. 성인 문해력과 개선 방안이 궁금한데,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은 부분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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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9-11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지식도서 이전에 이야기 책이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 소설읽어? 는 정말 잘 못된 질문일 것이고요 ㅎㅎ
좋은 주말 되세요 ~ ☺️☺️☺️

하이드 2021-09-12 11:37   좋아요 0 | URL
다양한 책을 다양하게 읽는게 좋겠지요. 주말.. 이제 일요일 반 남았어요! 남은 주말 편하게 보내세요!
 
실크 스타킹 한 켤레 - 19, 20세기 영미 여성 작가 단편선
세라 오언 주잇 외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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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세기 여성 작가들의 시나 단편집들이 몇 권 나와 있는데, 그 시기 여성 작가들의 단편들을 재조명 하는 것이 의미 있을 뿐 아니라, 무섭게 재미있다. 이 단편집의 큐레이션 역시 훌륭하다. 


엮은이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세기 전환기의 이 시기의 삶의 양상이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고, 그러한 과거를 통해 지금은 고착되어 제대로 보기 힘든 사회의 여러 면모를 새롭게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시기는 무엇보다도 여성의 삶에 급격한 변화가 찾아오고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결혼 말고는 다른 삶의 가능성이 희박했던 과거와 달리 많은 여성들이 다양한 공적 영역에 진출하고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면서 결혼과 가족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던 생각에 도전 받았다." 


과거의 이 시기를 소설을 통해 읽어봄으로써, 그것이 현재에 어떻게 발전했는지, 어떻게 퇴보하거나 지지부진 그대로인지를 고민해볼 수 있다. 


살럿 퍼킨스 길먼, 케이트 쇼팽, 윌라 캐더, 이디스 워턴, 버지니아 울프, 캐서린 맨스필드의 이름이 낯익다. 

처음 접하는 작가인 세라 오언 주잇, 메리 E. 윌킨스 프리먼, 수전 글래스펠, 엘런 글래스고, 조라 닐 허스턴의 작품도 다 재미있었다. 


세라 오언 주잇의 작가소개에는 "관절염 치료차 숲속을산책하며 자라 자연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 평생 결혼하지 않고 애니 필즈와 가깝게 지내다가 그녀의 남편인 '애틀랜틱 먼슬리' 편집자 제임스 필즈가 사망하자 여생을 함께 보냈다" 고 나와 있다. 


작품 '백로'는 자연을 사랑하는 소녀가 숲을 찾아온 조류학자를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가 찾는 '백로'를 찾아주려 한다. 아주 높은, 아주아주 높은 나무에 올라가는 장면 묘사가 엄청 박력 있고,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메리 윌킨스 프리먼의 '뉴잉글랜드 수녀'도 좋았다. 수녀가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고, 약혼을 한 채 혼자 30여년 동안 자기만의 성을 가꾸며 남자를 기다린다. 남자가 마침내 돌아와 결혼 날짜가 잡히는데, 자신의 성을 떠나, 자신이 가꾼 모든 것을 버리고, 남자의 집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니 우울해진다. 남자는 자신의 어머니를 봐주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둘 다 의무에 따라 결혼을 되돌리지는 않는다. 그 일이 생기기 전까지. 여자, 루이자는 "수녀원에 있지 않았지만 수녀나 다름없었다" 고 하는데, 수녀원이라고 하면, 갇혀 있는 느낌이 강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자신의 세계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희망적인 의미로 나온다. 이 시기에는 결혼보다 수녀원이 좋은거였나?


세번째 작품인 샬롯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는 워낙 유명하고, 서너번쯤 읽은 것 같다. 읽어도 읽어도 으스스하다. 


케이트 쇼팽의 작품은 '아카디아 무도회에서' 와 속편인 '폭풍우' , 표제작인 '실크 스타킹 한 켤레'가 나와 있다. 결혼생활과 여자의 욕망에 대해 다룬 작품들이다. 


윌라 캐더는 평생 미혼으로 살았고, 남장을 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작품에 나오는 토미가 그렇다. 평생 미혼으로 살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사업을 이끌고, 아버지의 사업 친구들이 토미의 친구들이다. 그 지역에서는 젊은 여자에게도 얼마간의 사업 능력을 기대하고 인정하는 경항이 있고, 토미는 능력자였다. 은행의 출납업을 맡은 제이 엘링턴 하퍼는 사업 능력이 떨어지고, 파트너인 아버지가 꽂아준 청년이었다. 토미가 동부에 갔다 오면서 친해진 여자를 데려왔는데, '바이올렛 향수를 뿌리고 양산을 쓰고 다니는, 얌전하고 기운 없는 하얀 피부의 여자' 였다. 그리고, 제이랑, 토미랑, 그 여자, 제시카랑 이런 저런 일들이. 소설의 결말은 토미처럼 씩씩하다. 


이디스 워턴의 '다른 두 사람'은 블랙코미디 같은 느낌이다. 세번째 결혼한 웨이손 부인 이야기. 


수전 글래스펠의 '여성 배심원단'은 연극적인 느낌이 강한 작품이었다. 바보 남자들에 대항하는 여자들의 연대. 노란 카나리아.


버지니아 울프의 '벽의 자국'에서는 울프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잘 느낄 수 있다. 벽에 난 자국 하나로 이렇게까지 글을 쓸 수 있다니 부러운 마음.     


캐서린 맨스필드의 '작고한 대령의 딸들' 에서는 독재자 아버지가 죽고 난 후의 이야기. 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쓰는 삶만을 살다 아버지가 죽은 후의 이야기이다. 


앨런 글래스고의 '제3의 그림자 인물' 또한 고딕호러물이다. 주인공이 간호사와 의사.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는 의사의 부인과 죽은 딸. 


마지막 작품인 조라 닐 허스턴의 '땀' 은 포악한 악질 남편과 그 남편과 살아낸 딜리아 존스의 이야기이다. 

 


작가 이름들을 다 기억해둬야지. 생각할만큼 작품성도 재미도 잡은 여성의 눈으로 보고 그린 여성의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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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9-08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섭게 재미있다니…!!!

하이드 2021-09-08 15:45   좋아요 1 | URL
무섭고 재미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