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의 일기
안네 프랑크 지음, 데이비드 폴론스키 그림, 박미경 옮김, 아리 폴먼 각색 / 흐름출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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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 프랑크에 대해 뜨문뜨문 읽고, 안네의 일기도 어린이 버전으로 읽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더라도, 열 세살 소녀가 쓴 책이 이 정도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힘들어하는 10대, 20대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읽는 동안 했다. 비록 일기를 쓴 이는 열 세살에서 열 네살이 되고, 열 다섯살은 맞이하지 못하지만. 


음모론이든, 시절이 암울해서든, 요 며칠 중국의 전쟁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고, 매일 뉴스 보면 나라가 후퇴한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안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큰 부자였다. 전쟁 앞에서 모두 평등하게 힘들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모두 살기 위해 애써야했다. 안가에 숨어 지내며 성격이 제각각인 여덟명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 시간들을 그렇게 몸과 마음이 병들어 가면서 죽지 않는 것을 버틴다고 할 수 있다면, 버텨나가는 것이 생생해서 지금 여기를 생각하게 된다. 이년이 안 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사람이 망가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고, 결국 그들 여덟 명 중 살아 남은 사람은 안네의 아버지인 오토 프랑크가 유일하다. 마지막을 알고 읽는 안네의 읽기 마지막 장은 씁쓸했다. 이 예민하고, 영민한 소녀가 어른으로 자라지 못하다니. 







그래픽노블이 굉장히 잘 뽑혔고,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봤지만, 구매할 예정이다. 안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서 전자책으로는 사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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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숙녀 신사 여러분
유즈키 아사코 지음, 이정민 옮김 / 리드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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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에 이어 읽게 된 유즈키 아사코의 소설집이다. <버터>는 여성 범죄자와 여성 기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는 꽤나 긴 분량의 장편이었다.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을 볼 수 있어 무척 좋았고, 선과 악과 그 사이의 복잡함, 그리고, 그것들이 보는 것, 말하는 것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보이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번 소설집도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고, 초반에는 너무 착한 이야기들인거 아닌가로 시작했다가 읽을수록 계속 너무 웃겼다. 웃기면 안되는데 웃겼고, 웃을 수 있는 사람과 왜 웃긴지 모르는 사람들로 나뉠 것 같다. 


<아기띠와 불륜 초밥>, <서 있으면 시아버지라도 이용해라> 에서는 <버터>에 나올법한 개성 강한 주인공들과 자연스럽게 그 옆에, 뒤에 서는 여자들, 그리고, 조신한 남자가 나온다. 


<키 작은 아저씨>에서는 소녀문학이라고 불리는 작품들, 하이디, 키다리 아저씨, 작은 아씨들, 빨간 머리 앤, 소공녀 등이 있는 전집이 중요한 소재로 나온다. 전집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현대적이면서도 이상적이다. 작은 이야기들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계속 작은 반전을 만들어내며 진행되고, 소녀는 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이 좋았다. 이 단편은 진짜 웃김. 이 이야기 뿐만 아니라 다른 이야기들도 다 이상적이다. '이게 이렇게 편한 거였어?' "여자의 할 일들"로 여겨졌던 일들의 굴레를 벗어난 여자들은 놀란다. 남자들은 그동안 이랬던 거야? 하면서. 같이 있게 해달라고 사정하며  "여자의 할 일들"로 여겨지는 일을 배우고, 익혀 잘하게 되는 "시아버지"의 존재는 어디서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가사일을 잘 하는 남자들은 종종 있다. 근데, 여자들을 위해 그런 일들을 해주는 남자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그 반대의 경우가 디폴트이지. 


소설집의 처음과 끝단편에는 기구치 칸이 나온다. 문예춘추사를 만들고, 나오키상과 아쿠타카와상을 제정한 사람이라고 한다. 판타지처럼 나오기도 하고, 정말 판타지로 나오기도 한다. 아무튼 판타지. 


이건 계몽소설인가 싶은 마음도 중간중간 들었다. 이런 정도의 미러링, 소설가가 맘 먹고 보여주는 미러링은 엄청 재미있었다. <버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면서도 <버터>에 나올법한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유즈키 아사코만의 개성을 듬뿍 지닌 이야기들로 즐거웠고, 유즈키 아사코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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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토당토않고 불가해한 슬픔에 관한 1831일의 보고서 문학동네 청소년 60
조우리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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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렌 산토스.' 

나무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밀크초콜릿 빛깔의 문에 손을 올렸을 때 무의식의 심연에 가라앉아 있던 이름이 수면 위로 둥실, 부표처럼 떠올랐다. 


그 문, 문 뒤로 사라진 마법사 헤렌 산토스. 문 뒤로 사라진 .. 


좋은 어른들이 많이 나오는 책은 왠지 가짜같다. 나쁜 어른들이 매일 뉴스에 나온다. 그것은 진짜. 좋은 어른들은 뉴스에 나오지 않으니 모르는걸까? 나쁜 어른들때문에 다치고, 아프고, 죽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매일 뉴스에서 보다보면, 그 주변에 있는 좋은 어른들을 상상하기 힘들다. 그래서 이런 책들이 있는 걸까? 필요한 걸까? 


어른의 눈으로 아이가 주인공인 책을 읽지만, 어른들을 원망하게 된다. 왜 쿠키런에 홀딱 빠진 열 살 아이와 일곱 살 아이를 호텔 로비에 두고 해피 아워라고 술을 마시러 갔어요. 진짜 나쁜 부모들이었다면, 맘놓고 욕하겠는데, 평범하게 좋은 부모들이었다. 실종된 아이도 아이이고, 남은 아이도 아이인데, 남은 아이를 왜 유령으로 만들었어요. 불행이 닥쳤을 때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현수는 자신이 제대로 못 봐서 동새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투명인간이 되는 것을, 불행해지는 것을, 모든 끼니에 소화불량에 걸리는 것을 택한다. 가족이라는 팀이 거대한 불행에 맞닥뜨려 산산조각이 났을 때, 어떻게든 부서진 조각들을 메우겠다고 있는 애를 다 쓰는데, 조각난 아이는 아무도 돌봐주지 않고, 조각난채로 유령이 되어 휩쓸린다. 


그렇게 유령이 된 조각 아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벽만들기. 그 벽을 아랑곳않고 넘어오는 선의의 사람들이 조각을 메워준다. 근데, 그 선의의 사람들도 조각 사람들. 조각난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조각난 사람들. 사실, 사람들은 겉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모르는 채, 부서진 조각들로 살아나가는 것. 


현수는 어릴적에 가족들과 해변으로 호텔에 갔다가 동생을 잃어버린다. 그랑블루 호텔의 해피 아워 시간에 엄마는 쿠키런에 빠져 있는 현수에게 동생 잘 보고 있으라며 아빠와 한 시간 반 정도 술을 마시러 간다. 오락을 하던 현수가 정신을 차리니 동생이 없어졌다. 책 속의 사람들도, 독자인 나도, 왜 아이들을 내버려두고 술을 마시러 갔어. 부모를 비난한다. 자식을 잃은 부모 마음을 헤아릴 수 없지만, 참새 눈꼽만큼도 도움되지 않는 비난은 속으로 하고, 힘내라고 얘기해주는 것이 맞을 것이다. 누군가는 '힘내'라는 말도 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그럼 뭘 할 수 있을까. 전국민의 마음에 트라우마로 남는 참사들을 겪으며, 다양한 사람들을 보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계속 생각하게 된다.  


부모는 후회로 자신을 매일 죽이면서, 망가진다. 이유가 없어도 이유를 찾을텐데, 현수와 혜진의 부모에게는 가장 찾기 쉬운 이유가 본인들 앞에 놓여 있다. 그렇게 몇 년간 혜진이를 찾으며 몸도 마음도 관계들도 망가지는 중에 현수는 방치된다. 학교에서는 투명인간이 되기를 바라고, 학교 끝나면 돌봄센터로 가서 시간을 보낸다. 거기에서 이상한 사람들을 만난다. 센터장인 선생님은 서프라이즈 광팬이다. 같은 학교 다니는 최수민은 센터에도 오게 되는데,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제 할말만 하는 이상한 아이다. 센터에서 보고, 학교에서는 아는체 하지 말자고 말하고, 다음날 학교에 가니 현수의 자리에 앉아 있다. 수학 숙제 했냐고 묻는 수민이에게 현수는 아는 척 하지 말자니깐. 말하니, 싫다고 한다. 왜 싫은데? 물으니, 수민이는 "아는 사이니깐 아는 척하고 싶어." 라고 말한다. 구구절절 왜 싫은지 설명하니


 "그래서 수학 수제를 했어, 안 했어?"  

수민이는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이쯤 되자 오늘 학교에서 분량 이상의 말을 해 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설득할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교실로 털레털레 돌아와 수민이에게 수학 숙제를 넘겼다. 


서로 장래희망을 묻는 장면, 이 책이 진심으로 좋아지기 시작한 장면이다. 


"장래 희망이 뭐야?" 

"선생님." 대충 자기소개서에 썼던 직업을 말했다. 

"아니, 직업 말고." 자기는 직업을 물은 게 아니란다. 정말로 장래의 희망에 대해 말해 달라고 한다. 

"장래 희망 하면 왜 꼭 직업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인생이 다 직업에만 달려 있는 것처럼." 

"넌 그럼 뭔데?" 

"나는 하얀 강아지 한 마리랑 갈색 강아지 한 마리랑 얼룩 강아지 한 마리랑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는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황당한 대답이었다. 할 말을 잃었다. 

"되게 어려운 거야. 반려동물을 네 말나 키우면서 경제적 상황도 좋아야 하고, 할머니가 되어서도 귀여우려면 매너나 마인드도 좋아야 해. 그리고 옷도 귀엽게 입어야 해. 손으로 뜬 스웨터 같은 거. 즉 손재주도 좋아야겠지. 평생을 바쳐 이뤄야 하는 장래 희망 아니냐고." 수민이는 다시 내게 장래 희망을 물었다. 그런 식의 장래 희망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하자 지금 생각해 보라고 했다. 

"난 .... 전단지에 붙은 얼굴들을 주의 깊게 보는 어른이 되고 싶어. 혼자 걷는 아이에게 부모님은 어디 있냐고 묻는 어른이 되고 싶어. 슬픈 기사에 악플 대신 힘내라고 댓글 다는 어른이 되고 싶어." 


아이가 살아남기 위해 하는 일들이다. 누가 동생 혜진이를 잘 돌봐주고 있으면 좋겠다. 슬픈 기사의 슬픈 사람들에게 악플 달지 않고 힘내라고 댓글 다는 어른이 되겠다고 생각한다. 


좋은 어른들이 많이 나온다. 혜진이와 현수가 다녔던 어린이집의 원장선생님은 혜진이 사진이 있는지 묻는 현수에게 원에서는 개인정보 때문에 폐기했지만, 혜진이 친구 어머님들 통해 알아봐주마고 한다.  "혜진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어. 이제 너에 대해서도 기,도할거야." 라고 말한다. 현수는 동정하는 사람도 많고, 우는 사람도 많지만, 기도하는 건 조금 다른 차원의 접근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냉담자지만,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기도하고 싶다는 마음이 종종 든다. 기도의 마음. 


엄마가 결국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아버지는 혜진이를 놓아주려 한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혜진이 찾기를 포기한대요. 전 혜진이 찾기를 시작했어요." 


슬픔만 가득한 바다에 홀로 떠있던 현수가 웃기는 짬뽕같은 수민이를 만나고, 서프라이즈 마니아에 좀 미친 것 같은 센터장 선생님을 만나고, 개를 만나고, 호텔 지배인을 만나고, 혜진이의 친구 빛나를 만나고, 혜진이가 실종된 날 아이를 잃은 여자를 만나며 바다에서 육지로 헤엄쳐 나오게 된다.   


그 과정의 이야기들이 얼토당토 않고 불가해한 슬픔에 잠식되어 있으면서도 쪼개지지 않는 단단함들이 모여 앞으로 나아간다. 


개는 리드미컬하게 돌며 박자를 맞추듯 한 번씩 짖었다. 개가 짖는 걸 듣고 있자니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있던 몸의 감각이 돌아왔다. 소리도 냄새도 동네의 풍경도 어느새 평범한 오월 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 P67

혼자일 때는 괜찮은데 마음이 슬픈 사람과 함께 있으면 체하게 된다고 말하자 의사는 신경정신과를 권했다. 의사는 심인성이라는 단어를 썼다. (..) 누군가의 슬픔과 고통이 내게 전이되는 것이 분명했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아픈 것인지 다른 누군가가 아픈 것인지 점점 더 경계는 불분명하게 느껴졌다. 몰래 토했고 몰래 소화제를 삼켰고 몰래 음식을 뱉었다. 당연하게도 내 몸은 좀처럼 자라지 않았다. - P77

나는 울지 않는다. 울지 못한다고 해야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울어도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남들에게 동정만 살뿐이다. 울고 난 뒤의 이상스러운 개운함도 싫다.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도 싫다. ‘울고 나면 시원해져.‘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부류의 인간들도 싫다. 상황은 그대로인데 나만 감정적으로 시원해지고 나면 뭐 어쩌라는 건지. - P96

아버지가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방법은 순서가 틀렸다. 비일상이 끝나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다. 비일상의 상황에서 일상을 지속한다고 일상이 될 수는 없는 거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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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통은 달랐다. 비통에는 거리가 없었다. 비통은 파도처럼, 발작처럼 찾아왔고 깁작스런 불안 때문에 무릎이 떨리고 앞이 안 보이고 일상이 지워졌다. 비통을 겪어본 사람들은 거의 모두 이 ‘파도‘현상을 경험한다. - P40

나는 어렸을 때부터 괴로운 시기에는 읽고 배우고 노력하고 문학에 매진하도록 훈련받았다. 정보가 통제력이었다. 그런데 고통 중에서도 비통이 가장 일반적인 고통일 텐데, 이것을 다룬 문학작품은 유난히 드물었다. - P60

존과 나는 40년을 부부로 지냈다. 존이 《타임》에서 근무하던 신혼 초 5개월을 제외하고 나머지 기간 동안에는 우리 둘 다집에서 일을 했다. 그러니까 하루종일 붙어 있었던 셈인데, 우리어머니와 이모들은 이 사실을 두고 좋아하는 한편으로 걱정스러워했다. "부자일 때나 가난할 때나 어쩌고 저쩌고 해도, 점심은 같이 먹는 게 아닌데." 신혼 때만 해도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불쑥 생각나는 경우가 하루 평균 몇 번이었는지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런 충동은 그가 죽은 뒤에도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을 들을 가능성은 사라져버렸다.
신문을 읽으면 그에게 읽어주고 싶은 기사가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그가 관심을 보일 만한 변화들이 눈에 띈다. 71번과 72번가 사이에 자리잡은 랠프 로렌 매장이 확장을 했다든지, 매디슨 애버뉴 서점이 있었던 빈 공간에 드디어 새로운 주인이 들어왔다던지.. - P242

날마다 조금씩 더 사랑해.
당신이 나한테 늘 했던 말처럼.
나는 부검보고서를 읽은 뒤에야 자동차의 충돌과 죽은 별의 붕괴를 재구성하려는 노력을 중단했다. 보이지도 않았고 생각지도 못했을 뿐 붕괴의 가능성은 처음부터 존재했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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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데버라 캐머런 지음, 강경아 옮김 / 신사책방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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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버라 캐머런의 '페미니즘' 이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책이 생각보다 얇고 작아서 큰 기대는 없이 읽기 시작했다. 

페미니즘 관련 책들을 좀 읽은 사람들에게도, 처음 읽어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와닿을 책이다. 아는만큼 보이기는 하겠지만. 


페미니즘의 정의부터 시작한다. 사람들이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쓸 때


ㅇ 관념으로서의 페미니즘 : 마리 시어가 말했듯, 페미니즘은 "여성도 사람이라는 급진적 개념"이다. 

ㅇ 집단적 정치 활동으로서의 페미니즘 : 벨 훅스에 따르면,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다. 

ㅇ 지적 체계로서의 페미니즘: 철학자 낸시 하트삭에게 페미니즘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방법이자 (..) 분석 모형"이다.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교차성을 꺼내지 않더라도, 다양한 계급과 문화를 배경으로 한 인류의 반인 여자와 나머지 반인 남자의 이야기가 한 목소리로 설명되고 논의될 수 있을리 없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슈 파이팅이 이루어진다.


 " 여성은 남성만큼이나 인간이라는 주장을 펼치려면,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토대 위에 하나로 모여야 한다. 여성은 무척 광범하고 내부적으로도 다양한 집단이기에 이들을 하나로 모으기란 항상 쉽지 않다. 페미니스트는 자유, 평등, 정의와 같은 추상적 관념을 지지하기 위해 연대할 수 있지만, 그러한 관념이 구체적 현실에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거의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 


너 페미야? 라는 (너 빨갱이야? 를 떠올리게 하는) 답정너 yes or no 질문에 할 말, 안 할 말, 못 할 말, 한꺼번에 쏟아놓을 수 없어서 답을 해도 안해도 찜찜한 상황을 맞게 된다. 이 책에서는 그간 내가 해온 답과 그 답을 하며 느끼는 복잡함과 스트레스의 실타래를 좍좍 풀어서 정리해준다. 이 한 권이 만능은 아니겠지만, 아주 좋은 시작과 중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30년대 영국에서 여성과 남성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페미니스트와 여성만의 차별점을 강조하는 페미니스트 사이의 분열은 구 페미니스트와 신 페미니스트로 불리는 두 개의 충돌하는 접근법을 낳았다. 구 페미니스트가 남성과의 평등을 쟁취하기 위해 운동했다면 (동일임금, 동등한 고용 기회 등), 신 페미니스트는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여성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다. 이처럼 극단을 오가는 진자 운동 속에서 페미니즘 운동은 계속해서 재발명됐다." 


19세기 페미니즘의 극집전 요소를 부각하고자 제2 물결이라고 불렀고, 제3 물결은 90년대 초반 제2 물결의 접근법과 대조를 이루려는 활동가들의 선언이었다. 지난 10년 사이 눈에 띄게 증가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은 '제4 물결'로 불리기도 한다. 


"'물결' 모델은 과거의 유산이 현재에 여전히 남아 있는데도 새로 등장하는 각 물결은 이전의 것을 대체한다고 느끼게 하여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님 페미임? 이라는 질문이 남성들에게서 온다면, 니가 (그러고도 ) 진짜 페미냐? 라는 질문은 여성들에게서 온다. 과거의 유산이 새로운 운동의 방향에 녹여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녹여날 수 없는 부분들이 분명 있을테고. 


저자는 이 책에서 페미니즘(들)의 복잡성을 톺아보고 탐구하는 작업을 하고자 하고, 기초하는 두 가지 믿음을 이야기한다. 


1. 현재 여성은 사회에서 예속 상태에 있다.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함을 겪고 체계적 불이익을 받는다. 

2. 여성의 예속은 불가피하지도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는 정치적 행동을 통해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만 한다. 


"페미니즘의 이야기는 복잡한 것 투성이다. 모든(혹은 대다수) 여성이 '페미니스트'라는 딱지를 적극적으로 품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며, 이를 받아들인 여성 간에도 언제나 갈등이 존재해왔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살아남았다. 페미니즘에 사망 선고를 내리는 목소리들은 언제나 과장된 것이었다. 오늘날 페미니즘의 핵심 신념인 "여성도 사람이라는 급진적 개념"을 당당하게 반대할 이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신념을 행하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발생한다. 


이 문제에 관해 페미니스트가 어떻게 답했는지는 앞으로 이 책이 다룰 주제다." 


총 7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지배구조, 권리, 노동, 여성성, 성, 문화, 경계와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다양한 고전과 현대의 레퍼런스와 간결하고 명료한 정리, 작은 책이지만, 현재의 페미니스트들이 고민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눈에 들어오게 잘 정리해서 보여준다. 이 책이 페미니즘을 공부하는데 시작이자 중간일 수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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