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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당신의 문해력 - 공부의 기초체력을 키워주는 힘
EBS <당신의 문해력> 제작팀 기획, 김윤정 글 / EBS BOOKS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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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 : 현대 사회에서 일상생활을 해나가는데 필요한 글을 읽고 이해하는 최소한의 능력 



"문해력은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받아들이는 도구로서 학습 능력을 좌우하는 가장 기초적이면서 중요한 역량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나는 것이, 100세 인생에 적응해야 하는 세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변형 자산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배우는 오픈 마인드와 정보처리 능력이다. 문해력이 점점 떨어지는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기초 능력이 문해력이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읽는' 행위는 타고난 것이 아니고, 살면서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개발하지 않으면, 문맹에서는 벗어나더라도, 읽지 못하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2020년 4월, 미국의 디트로이트 공립학교 학생들은 "문해 교육에 있어 학교 측으로부터 양질의 교사와 제대로 된 학습 환경을 제공받지 못해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 '문해 교육은 국가가 보장해야 할 헌법적 권리' 라는 취지의 소성을 제기하고, 미 연방고등법원은 이에 대해 주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을 계기로 미국 공교육 기관들은 문해 교육 상황을 점검하기 시작했고, 교과 과정을 개정하면서 '읽기 교육'을 대폭 강화했다. 선진국들에서는 literacy, 문해력을 가장 중요한 기초교육으로 학교와 병원과 정부 차원에서 기초 문해력을 점검하고, 뒤쳐지는 사람이 없도록 다양한 정책들을 펼치고 있다.  


1년에 1권의 책을 읽는 '초보 독서가'와 평균 70권의 책을 읽는 '능숙한 독서가' 를 상대로 실험을 했는데, 

능숙한 독서가는 글자를 읽는 것보다는 글의 의미와 맥락을 파악해서 내용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한 인지 활동에 뇌를 더 많이 쓴다. 반면 글을 잘 읽지 않는 초보 독서가의 뇌는 글자를 읽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우리는 종종 글을 읽으면서 "머리가 잘 안 돌아간다"라는 말을 하는데, 글을 읽어도 전전두엽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사람은 글을 읽을 때 글자 자체를 읽는 데 뇌를 많이 쓰느라 전전두엽이 쉽게 활성화되지 않기 때문이다.그래서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계속해서 잘 읽을 수 있는 반면에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은 점점 더 읽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문해력은 후천적으로 발달하는 능력이며 가지고 태어나는 능력이 아니다. 어렸을 때 제 나이에 맞게 문해력을 발달시키는 것이 중요하지만, 어떤 요인으로 인해 뒤처졌다고 해서 격차를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문해력을 개발할 기회들이 적절하게 제공되면 누구나 언제든지 따라갈 수 있고 만회할 수 있다. 문해력은 평생 배워야 하는 것" 이라고 한다. 


문해력의 1단계가 파닉스, 2단계가 이야기 이해, 3단계가 어휘력과 배경지식 쌓기 정도 되겠다. 문해력이 높은 사람은 더 높아지고, 낮은 사람은 더 낮아지는 격차가 발생한다. 


문해력 평가는 결국  '이야기 이해도'로 글의 내용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으로 문해 교육을 통해 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유아기부터 초중고등학교까지의 문해력을 점검하는 다양한 실험이 나와있다. 성인 문해력과 개선 방안이 궁금한데,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은 부분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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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9-11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지식도서 이전에 이야기 책이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 소설읽어? 는 정말 잘 못된 질문일 것이고요 ㅎㅎ
좋은 주말 되세요 ~ ☺️☺️☺️

하이드 2021-09-12 11:37   좋아요 0 | URL
다양한 책을 다양하게 읽는게 좋겠지요. 주말.. 이제 일요일 반 남았어요! 남은 주말 편하게 보내세요!
 
화 내는 법
신숙옥 지음, 서금석 옮김 / 푸른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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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숙옥 교수의 이 책이 트위터에 뜬 걸 보니 재미있어 보였다. 처음 보는 저자인데, 책이 꽤 많이 나왔고, 모든 책이 절판이다. 알고보니, 극우 인사와의 토론 동영상으로 나도 봤던 그 분이다. 출판사에 문의 있었나본데, 판권소멸로 재계약, 재출간 계획은 없다고 한다. 알라딘 현재 중고가... 


저자는 재일교포 3세이다. 사이다 발언으로 유명하지만, 자신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화를 내고 있고, 화내지 않고 지나가는 날은 없으며, 결코 화내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단지

 

"화를 내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첫 챕터에 나온 '나는 매일 화내고 있습니다' 에 요약되어 나오는 저자의 하루는 요즘의 뉴스를 보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눈 뜨자마자부터 눈 감기전까지 화나는 일 투성이다.  


저자는 도쿄에서 나서 자랐으며, 3대에 걸친 토박이다. 어느 영상을 보니, 시부야에서 나고 자랐다고 한다. 

조선인으로서 차별받고, 극심한 생활고로 어머니와 형제가 오사카의 친척 집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배가 고파 견디기 힘들 때면 어머니와 둘이 오사카 거리를 걸었고, 그런 날 밤이면 어머니는 울면서 몇 번이나 두 손으로 어린 셋짱 (저자의 일본 이름 세스코) 의 목을 졸랐다. "세쓰코야, 나하고 죽자."

죽는 것은 싫었지만 어머니가 너무 불쌍해서 항상 "응." 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가난했고, 학교에 다니기도 힘들었고, 밖에서는 북한에서 배신, 한국에서 배신, 일본의 외면, 무시. 안에서는 오빠만 아끼고 딸인 저자는 6살 때부터 일해서 번 돈을 모두 집에 갖다 주었다. 그리고, 엄마는 목을 졸랐지. 이 책을 다 읽어도 모르겠다. 어릴때부터 적대적인 환경에 둘러싸여 자란 저자가 어떻게 굳세게 자라 맨 앞에서 싸우는 행동하는 날카로운 지성이 되었는지. 

작은 힌트들을 책에서 보지만, 무엇이 저자의 힘이 었는지 내내 궁금하다.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할 때 반응의 8-90 퍼센트가 항의였으나 끝날 즈음에는 90퍼센트가 지지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도하면 처음에는 비난이 쏟아지지만, 이를 악물고 참으면 반드시 지지자가 나타난다. 익명으로 제 이름조차 떳떳이 밝히지 못하는 상대를 설득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는 상대편과 어떻게 빨리 손을 잡을 수 있는가가 승부를 결정짓는 요인"이다. 


어떻게 화낼 수 있게 되었는가? 

'연결' 을 통해서. 저자의 울분은 다른 재일 동포의 울분과 통하고, 동포 선배의 눈물, 부모의 눈물, 친구의 눈물, 조부모의 눈물, 여자의 눈물.. 들을 보아 온 경험이 일상생활을 통하여 쌓아 올려지고 정리되어 자신 속에서 나름대로 확고한 기준이 세월을 거쳐 만들어졌기 때문에 화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낼 수 있으려면 옳은 것, 선량한 것, 아름다운 것, 공평한 것, 합리적인 것 등에 대한 가치관이나 기준이 자신 속에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 기준이 명확하면 할수록, 그 기준에서 벗어난 타인의 행위나 발언에 대하여 화를 낼 수가 있다." 


저자의 기준은 '나보다 약한 사람, 없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준다. 도와준다' '여자이기 때문에 차별 받아서는 안된다' '경제가 약육강식의 자본주의라면, 정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약자를 구제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 '학문은 배울 기회가 없었던 사람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배우는 것이다' '폭력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등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는 기준이 "체험을 통하여" 하나씩 쌓아 올려져야 비로소 화를 낼 수 있게 된다. 


저자는 누구에게도 의존할 수 없었고, 바람막이 또한 없었다. 사면초가 속에서 자신만을 의지하고 살아왔다고 한다. 


"혼자서 세파를 헤쳐 나아가는 자는 어떠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그의 과거와, 그 세파를 헤쳐 나와 지금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니, 흔한 말조차 무겁고 단단하게 다가온다. 


화의 유형에는 분화형, 불평불만형, 방화형, 현관매트형, 그리고 문제해결형이 있다. 

이름 보면 대충 어떤 분노인지 알 수 있는데, 현관매트형만 말해보면, 분노를 참고 참고 참다가 터트리는 테러형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화는 '문제해결형' 으로 분노의 근본 원인을 찾아 신속하게 대응하는 유형이다. 


" '화내는 것'은 언어로써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은 표현할 언어를 잃었을 때의 상태이다." 


" '화내는 것'은 인간관계를 만들고 이어 가기 위한 것이다.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은 인간관계를 끊기 위한 것이다." 


저자가 화내는 대상은 주로 '사회의 부정'에 대한 것이었고, 상대는 권력이거나 조직이었다. 마지막에야 맞서게 된 것은 가족과의 관계였다고 한다. 10대 무렵부터 집에서 경제적 기둥이었고, 쉴 사이 없이 일하며, 가족 여행이나 음식점 예약까지도 맡아서 했다. 누구 하나 도와주거나 대신해 주지 않으며 정해진 음식점에 대한 불평은 모두가 했다고 한다. 부모는 보살펴야 하는 대상이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화를 내는가? 저자의 답은 '내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하여' 이다. 

모욕을 당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자신이 이미 자신이 아닌 상태이고, 자신을 혐오하면서 자신을 위해 화를 낼 수는 없다. 


화내는 법과 화내는 사람을 상대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자기계발서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인가 싶지만, 저자가 드는 사례들이 박력있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기억해야지 했던 부분은 '사회에 대한 분노는 어떻게 표현할지' 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느 순간, 저자가 상대해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닌 '무지' 가 된다. 

무지와의 싸움은 시위와 집회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일부 엘리트만이 배워 무지에서 해방된다 하더라도 약자는 도움을 얻지 못한다. "이제 권력만이 적이던 시대는 지났다." 이 책이 나온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지금에도 굉장히 와 닿는 말이다. 


"권력에 따라 움직이는 '무지'한 사람과 이웃이, 약자를 배제시켜 가고 있는 현실에 어떻게 맞서 싸울 것인가?" 


"다문화공생의 정보(지식과 노하우 등)를 어떻게 생활 속에 스며들게 할 것인가가, 정치적인 힘을 가질 수 없는 (선거권조차 없는) 나의 승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악의를 지닌 확신범을 설득하고 있을 시간이 있다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상대와 한시라도 빨리 손을 잡자. 그것이 안전망이 되기 때문이다." 


1) '우'냐, '좌'냐 하는 과거의 틀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2) 공통점이 1퍼센트만 있다면 그 점을 지지한다 (비록 활동이 미숙할지라도).

3) 정보가 부족한 사람이 있다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시대도 환경도 변하고 있기에 선배 세대와 똑같이 싸울 수는 없다. 현재에 실패와 학습을 반복하며 나름대로 싸워왔고, 싸우는 모습을 후배 세대에게 보여주는 것이, 차별과 싸우는 사회를 이어 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후배에게는 후배 시대의 환경과 가치관과 투쟁 방법이 있다. 그것을 지지하고 뒷받침하는 것이 선배, 즉 어른의 역할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뒤에 이어지는 저자가 직접 계획하고 운영했던 활동 사례들은 각각이 다큐나 영화로 만들어질법한 이야기들이다. 

이시하라 도지사와의 투쟁, 우산 대행진, 다문화 탐험대, 일일 홈스테이, GOGO 기시모토 밥 딜런을 향하여 등이 그것이다. 


오델로의 흑말을 백말로 뒤집듯,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일. 그렇게 가장 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고 생각한다. 미력해 보이지만, 주변을 끌어들여 권력과 권력을 따르는 '무지'에의 대항. 이 '화내는 법'은 신념을 가진 약자들의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해서 한 것이다."라든지 "강간하는 남자는 원기 왕성해서 좋다>"라는 말을 뻔뻔스럽게 내뱉는 ‘영감쟁이‘를 설득하고자 한다면, 인생이 300년이라도 짧다.

무지와 정열 때문에 차별적인 표현을 하는 사람은 말 그대로 화석이다. 장식품으로 놓아둘 수밖에 없다.

악의를 가진 자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느니, 서로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과 빨리 손을 잡는다. 손을 잡으면 고독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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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솔로사회 - 2035년 인구 절반이 솔로가 된다
아라카와 가즈히사 지음, 조승미 옮김 / 마일스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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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후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20년 후 사회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2018년에 나온 이 책은 과거에서부터 2035년까지의 통계와 예상치들을 가지고 과거와 현재를 분석, 20여년 후, 2035년 사회의 모습을 예측한다. 


2035년에 솔로가 50% 에 육박하고, 1인가구도 40% 가까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 추세는 점점 더 빨라지면 빨라졌지, 멈칫하지 않는다. 초고령화 사회에 가장 먼저 들어선 것은 일본이지만, 초고령화 사회로 가장 빨리 달려가고 있는 것은 한국이고, 저출산으로 가장 먼저 소멸할 국가도 한국이다. 일본사회 분석이지만, 한국사회에도 들어맞는다. 


미혼이 늘어나게 된 이유로는 경제적 이유와 여성의 사회진출을 들고 있다. 거품경제가 붕괴하며, 경제적 기반의 지속성과 안정성이 사라졌고, 1986년 남녀고용기회균등법 이후 일하는 여성이 늘고 여성의 의식이 변했다.


얼마 전에 읽은 우치다 타츠루의 '하류지향'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 책인데, 저자는 광고업계에서 오래 일했고, '솔로활동계 남자연구 프로젝트'??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소비, 마케팅 측면에 한 장을 투자하고 있어서 그 부분은 새로웠다. 남자 1인가구가 4인가족보다 식비에 더 많은 돈을 쓴다니. 놀랄 일이다. 


고령화 문제로 인한 세수 부족에 대한 해결로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정책적으로 추진하는데, 전업주부나 가사노동을 하던 여성이 사회에서 일하면 세금 수입이 플러스 되고, 여성이 수입을 얻음으로써 소비가 증가되어 경제성장의 요인이 된다. 택도 없는 저출산 정책들들에 돈을 쏟아붓는 것보다 즉각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 같다. 


눈 앞에 임박한 '초'솔로사회는 모두가 대비해야한다. 결혼할 때부터 남성이 연상인 커플이 많고, 여성의 평균수명이 길기 때문에 고령의 독신 여성이 고령의 남성에 비해 훨씬 많으므로 여성의 경우 결혼했어도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솔로로 돌아가는 시기가 찾아오게 된다. 그리고, 50대 전후 남성의 자살율은 전 세계적으로 남녀 모든 세대 중 가장 높다. 


의존과 자립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서도 나오는데, 가족에 의존하고, 배우자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고, 남자가 여자보다 더 높다고 한다. 은퇴 후 황혼이혼이 느는 것에 대해 정년이 되어 일을 그만 둔 고령의 남편은 객관적으로 보자면 나이 든 무직 남성이다. 라는 글을 63년생 남자 저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네.


미혼화, 만혼화, 저출산 고령화, 이혼이나 어린이 빈곤 문제는 다 연결되어 있고, 이 문제들은 모두 솔로사회화와 관련이 있다. 연결된 문제로 봐야 하며, 미혼자뿐 아니라 기혼자도 누구나 솔로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솔로사회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솔로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갖춰야 하며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솔로의 소비에 대한 챕터에서는 소비가 소유가치에서 체험가치로, 그리고 이제 정신가치로 옮겨갔다는 이야기를 한다. 


"과거에 물건 자체가 목적이었던 소유로서의 소비와 달리 소비방식은 자기표현, 커뮤니케이션, 체험의 수단으로 이행했고, 이제 소비행동은 정신적 안정이나 충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소비의 목적은 더 이상 소유가치도 체험 가치도 아니고, 소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신가치로 그 중심이 바뀌고 있다."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에 '승인욕구'와 '성취욕구'가 있는데, 에모이 소비 (정서적 소비) 가 이 두 가지 욕구를 모두 만족시키며 행복감을 준다고 한다. 


"'미혼으로 가족을 안 만드는 사람들은 불행하다'는 생각을 없애게 위해서 '미혼으로 가족이 없지만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끼고 싶어 한다. 이런 생각이 승인욕구나 성취욕구를 충족하려는 소비행위로 연결된다." 


이 부분은 좀 잘 생각해봐야겠다. 솔로 여성이 힐링하고 싶다. 쉬고 싶다며 달콤한 디저트를 먹거나 온천 여행을 하는 등의 소비를 하는 것을 정서적 소비로 분리해두었다. 


성취욕구와 승인욕구, 인정욕구를 소비로 채우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서적 소비'로 소비하는 것들도 그와 같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아둬야 겠다. 


두 가지중 한 가지를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한 가지는 버리는 것이다. 저자가 미혼의 정서적 소비를 예로 든 것처럼 기혼의 정서적 소비 또한 분명 있을텐데, 일본사회는 결혼규범 (프로파간다)이 강해서 그 부분에서 미혼의 정서적 소비를 예로 든 것 같다. 결혼규범 강한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 


자립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모으고 있다. 


"'솔로로 살아갈 힘'은 정신적인 자립을 뜻한다. 여기서 자립은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상태를 뜻하는 게 아니다. 의존할 곳이나 사람이 많은 가운데, 스스로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상태가 정신적 자립이다.선택지가 한 가지밖에 없거나 자신이 있을 곳이 한 곳밖에 없는 사람은 갖고 있는 하나에만 강하게 의존한다." 


" 솔로로 살아갈 힘이란 혼자 있는 상태를 견딜 수 있는 인내력을 말하는 게 아니다. 솔로로 잘 살아가려면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 전제임을 알아야 한다. 마음 속에 아무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어른이 되더라도 아기나 마찬가지다. 불안해서 눈앞에 있는 사람이나 물건에만 의존하게 되고 물리적으로 혼자 있다는 사실로 인해 마치 온 세상에서 버림받았다는듯 절망한다." 


2016년에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알려진 호세 무히카 (Jose Mujica)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일본에 와서 강의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여러분 꼭 가족을 가지세요. 단순히 피로 연결된 가족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가족이란 '사고방식으로 연결된 가족'을 말합니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가족입니다. 인생길을 혼자 걷지 마세요." 

 


결혼하고 자기 아이를 낳는 집단만 가족이 아니다. 또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만 인간의 사회적 역할이 아니다. 결혼을 안 해도, 아이가 없어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해 일하고 경제를 순환시킴으로써 간접적으로 아이들을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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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9-04 2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인가구로서 공감이 가네요. 1인가구로서의 우주 공동체의 일원으로 느끼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비슷한 이야기가 나와서 신기했어용~!^^

하이드 2021-09-05 20:50   좋아요 0 | URL
제가 잘 못하는건데, 저 나름의 방법을 찾아봐야겠지요.
 
하류지향 - 배움을 흥정하는 아이들, 일에서 도피하는 청년들 성장 거부 세대에 대한 사회학적 통찰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옥 옮김 / 민들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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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타츠루의 <하류지향>은 학생들이 묻는 '공부는 왜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공부로부터의 도피'가 '노동으로부터의 도피'로 이어짐을 이야기하면서 일본 사회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일본의 이야기이지만, 우리와도 많이 겹친다. 


아이들은 묻는다.  "선생님, 이걸 배우면 뭐가 좋아요?" " 이걸 배우면 뭐에 도움이 되나요?" 

아이들은 '교육 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왜 이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안 되나요?' 거꾸로 묻고 있다. 


이에 대해 경제성과 합리성으로 동기부여해서 아이들에게 '공부하면 이런저런 좋은 점이 있다' 고 실용적으로 아이들을 유도한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면 돈을 많이 벌고, 예쁜 여자, 돈 잘 버는 남자를 만날 수 있다. 라고 말하고, 일부 제대로 된 부모는 아이들의 질문을 받고 어처구니 없어 말문이 막힌다고 말하고 있다. 


아이들의 '이걸 배우면 뭐가 좋아요?'나 '이걸 배우면 뭐에 도움이 되나요?'는 딱히 요즘의 경향도 아니고, 이상한 질문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용적인, 아니, 탐욕에 가득차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나쁘다. 글자를 왜 배우나요? 라는 질문에 글자를 왜 배우는지, 글자를 배우면 뭐가 좋은지 이야기해주는 것이 어렵나? 실용적이고, 경제적 합리를 찾는 사람들이 나쁘다고 하면서, 그 눈으로만 보기 때문에 대답 못하는 것이 아닌가? 


저자는 아이들이 소비의 주체가 되면서 소비자 마인드로 모든 것을 등가교환 하려 하고, 계산적이 된다고 비판하고 싶은 것 같다. 아이들이 "나는 이만큼 지불하는데 선생님은 무엇을 줄 건가요?" 라고 묻고 있다고 아이들의 마음을 어른의 눈으로 짐작하며, 


"그런 질문이 아이들한테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이 교육 제도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라고 전제부터 틀려있다. 


" "왜 공부를 해야 하나요?" 라고 묻는 초등학생은 '자신이 배움의 기회를 구조적으로 박탈당한 사람이 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자기가 누리고 있는 특권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만이 의외의 질문을 할 수 있다. "


라고도 말하는데, 요즘 아프간- 탈레반 사태에 이어 '나는 말랄라다'를 읽고 있어서 처음 읽을 때는 여기에 좀 혹했다. 말랄라는 학교에 간다는 이유만으로 총을 맞았다고. 공부하지 못하게 하려고 학교를 폭파시켰다고. 하면서. 근데, 다시 읽으며 생각해보니, 그것은 답이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말라라 같은 사람도 있는데, 니들은? 응? 말이야. 이런 마음의 답변이여서는 곤란하다.  


"이런 질문에 대해 지금의 어른들은 그런 질문은 "있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물리치지 못한다. 말문이 막혀서 허둥대거나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만한 실용적인 이유를 들어서라도 아이들을 공부시키려고 한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한 질문이 어른들을 아연실색케 하거나 또는 유아적인 지성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무의미한 답변을 끌어내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을 일찍부터 배우게 된다. 이것은 실로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런 과정이 아이들에게 일종의 성취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등가교환 하는 아이들'이 탄생한다. 이 것이 이 책의 화두이자 주제이다. 


아니야, 누가 봐도 어른들이 잘못했잖아. 아이들이 "소비자 마인드"라는 프레임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아이들의 질문에 실용적인 이유를 대는 어른들이 잘못했고. 사실, 이걸 아이들이 묻기도 전에 어른들이 하는거 아닌가. '너 공부 열심히 해야 예쁜 여자 만난다' '공부 잘해야 좋은 남자 만난다' '공부 잘해야 돈 많이 번다' 라고, 어쩔수 없이 실용적인 답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먼저 아이들이 겪어보지 못해 알지 못하는 '미래들'로 협박하잖아. 


아이들은 아무 질문이나 해도 된다. '등가교환 하는 아이들'이 탄생했다면, 그건 질문에 답한 어른들의 거울일 뿐이다. 


왜 공부해야 하나요? 는 평생 공부 하는 인간의 평생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추구해야 할 질문이고, 그것이 아이때 시작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비판으로 시작했지만, 이 책에서 좋은 부분 많았다. 


저자는 요즘 아이들과 삼십 년 전 아이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처음 사회관계에 들어설 때 노동을 통해 들어나는가, 소비를 통해 들어가는가의 차이라고 한다. 어릴 때 가사노동에 참여하면서 밥 먹고 그릇 치우거나, 화초에 물 주거나 하는 소소한 가사노동으로 부모의 칭찬을 받으며 처음으로 가족 구성원으로 인지되며 인정을 받고, 자신의 정체성을 다져가며 사회화 과정을 밟아갔다고 한다. 


"아이들은 좀더 자라면 가사노동에 머물지 않고 바깥 사회활동에도 참가하는데, 타인에게 뭔가 도움되는 일을 하면서 그에 대한 감사와 사회적 승인이라는 대가를 받는 교환 행위를 통해 자기 정체성의 기초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는 가사노동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노동의 작은 분담자로서 사회관계 속에 자기를 등록하면서 아이들은 먼저 노동 주체로 자기를 세운다." 


이런 기조의 이야기들에 공감한다. 뒤에 나오는 '노동으로부터의 도피' 에도 연결되는 이야기이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고, 아이때부터 필요한 사회화를 배워나가야 한다. 하지만,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라는 '공부' 와 '내가 이 돈 받고 일하느니 일 안 하고, 돈 안 쓰고 만다' 라는 니트족의 합리성은 성립되지 않는다. 사회 관계 속의 나를 설정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자본주의의 쳇바퀴가 감당할 수 없이 돌아가는 것에 대한 피로도가 극도로 높아져서 벗어나는 사람들, 튕겨나가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불쾌함' , 즉 "기분"이라는 화폐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불쾌함은 화폐로 유통되는데, 아이들은 이 등가교환을 어릴 때부터 부모를 보며 배운다.


"아이들은 '타인이 초래하는 불쾌함을 견디는 것'이 가정 내에서 화폐로 기능한다는 것을 아주 어릴 때부터 습득한다. 현대 일본의 가정에서 화폐 대신에 유통되는 것, 그리고 아이들이 생애 처음으로 '화폐'로 인지하는 것은 타인이 존재한다는 불쾌감을 견디는 것이다." 


일하고 돌아온 아버지가 밤늦게 돌아와 온몸으로 표현하는 '피로감' 으로, 자신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가혹한 노동에 종사하고 있음을 과시하고, 아버지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언짢은 얼굴을 함으로써 자신이 기울이고 있는 노력을 호소하는 어머니를 보고, 아이들은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학교와 학원을 가고, 공부를 하면서 '온몸으로 피로와 불쾌함을 표현'해서 자신도 집안에 보탬이 되고 있음을 과시한다. 


"가족 중에서 '누가 가장 집안에 보탬이 되는가'를 '누가 가장 기분이 나쁜가'로 측정한다. 이것이 현대 일본 가정의 기본 규칙이다. '불쾌함'이라는 카드를 가정에서 가장 많이 쓰는 사람이 자원 배분과 결정의 순간에 가장 강력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내가 가장 힘들고 불쾌해. 피해자 경쟁을 하게 되는 것. 좀 웃긴 얘기였지만, 그럴듯하다고 생각한다. 

'불쾌함' , '기분' 이라는 화폐가 지금 이 사회에서 어떻게 통용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것이 어떻게 문제의 본질을 가리고 흐리는지를 생각해보면 각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해야할지 답을 찾을 수 있을것이다. 


배움에 대한 이야기들도 좋았다. 


"배움이란 자기가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모르고, 그것이 어떤 가치와 의미와 유용성을 갖는지도 말할 수 없는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오히려 자기가 무엇을 배우는지 몰라서, 그 가치와 의미와 유용성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배움이 일어나는 동기가 된다. (..) 배움이란, 배우기 전에는 몰랐던 잣대로, 배우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의미나 의의를 측정할 수 있는 역동적인과정이다." 


'공부로부터의 도피'와 '노동으로부터의 도피' 사이에 '리스크 사회의 약자들' 이 있다. 

이 챕터가 이 책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되어준다. '학력은 더 이상 취직의 보증수표'가 아니고, '노력과 성과가 일치하지 않는 사회' 라서 '공부와 노동으로부터의 도피' 가 일어난다. 


"일반적으로 부유층 가정의 아이들이 빈곤층 가정의 아이들보다 학력이 높게 나온다. 그 이유에 대해 보통 부유한 가정이 자녀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그보다 더 내밀한 이유가 있다. 바로 부유층 자녀들은 높은 학력을 딸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많은 이익을 회수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지만, 빈곤층 자녀들은 학력의 효용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학력의 차이'가 아니라 '학력에 대한 신뢰의 차이'가 있다. '노력의 차이'가 아니라 '노력에 대한 동기부여의 차이' 이다. '학력의 차이'는 간단하며 계량이 가능하지만 '학력에 대한 신뢰의 차이'는 통계적으로 취급하기 곤란하다. '목표하는 바를 위해 노력하면 반드시 보상받는다' 는 것을 온 가족이 믿고 있고, 실제로 그 노력의 성과를 향유하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과 '공부해도 소용없다'고 공언하고 지금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에 있는 원인이 자신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을 비교하면 '노력에 대한 동기 부여'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덧붙이면, 노력에 보상을 받지 못해도 괜찮다. 다시 하면 된다는 경험을 가진 것과 이 노력이 만약 실패하면, 더 이상 기회는 없다. 망하는 것이라는 것을 체득한 것의 차이도 있겟다. 


후자가 저자가 말하는 '리스크 사회' 이고, 현대 사회는 '리스크 있는 삶을 선택한 개인'의 책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 문제임을 지적한다. 리스크 사회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 '상부상조 집단' '친밀권' 등을 제안한다. 


재미있는 것이 옛날 책이고, 일본 사회의 기득권 남자가 꼰대말 하는 것 같다는 평이 있는 것도 이해되는데, 이런 지점들에서 공감하게 되는 바로 지금의 이야기들이 있다. 이 저자의 위치에서 페미니즘 어쩌고, 요즘의 페미니스트들이 어쩌고 하는 건 좀 콧방귀 끼게 되지만, '고립'과 '자립'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고, 지금, 그리고 앞으로 할 중요한 이야기이다. 저자의 통찰력이든, 시대가 돌고도는 것이든, 둘 다이든 말이다. 


'고립된 인간'을 '자립한 인간'으로 내세우는 것이 1980년대 중반 이후 일본 사회에서 합의를 넓혀갔다고 한다. 

고립된 사람에게 타인은 그의 자유와 자기실현을 방해하는 자이고 타인의 존재 자체가 주체의 자유를 제약하는 일이 된다. 고립된 주체는 타인의 공간을 자신이 이동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간주할 수 없다. 고립된 주체에게는 그 외에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적이라면, 자신의 주체를 방해하는 사람이고, 친구라면 지원과 연대의 의무가 발생하고, 노예라도 부양과 관리 따위의 번잡한 일을 동반한다. 반면 자립한 사람은 다르다. "나는 자립했어" 라고 얘기하는 것은 소용없다. "그 사람의 판단과 언행이 적절하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확증되어 주변 사람들이 계속해서 조언과 지원과 연대를 부탁해올 경우 비로소 그 사람을 자립한 사람이라고 불러줄 수 있" 다. 자립하는 것이 자신의 선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립해서 주변을 침범하고, 침벙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변과 사회가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침범'이라는 말이 좀 싫을 수도 있겠지만,  타인과 내 쪽에서 먼저, 그리고, 타인으로부터의 연결을 주고 받을 수 있음을 뜻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전제는 절대적이고, '자립'을 바라는 사람은 '고립'과 '자립'을 구별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해야 할 것이다. 


저자가 마지막에 이야기하는 '친밀권' 중 자신이 구상하는 '도장 공동체'도 친밀권을 만드는 시도라고 했다. 자신의 신체와 돈을 써서 친밀권 모델을 만들겠다고. 대학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대충 다 했으니, 여생은 지역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도장에서 보내며 무예를 배우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는 무예를 가르치고, 집에서 지내기 어려운 아이들이 있으면 청소와 가사일을 시키고 도장에서 숙식 해결하며 자립할 수 있게 돕고, 학문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가 있으면 원서강독을 하고, 철학과 문학도 가르치며, 주말이 되면 친구들과 모여 파티를 열고 마작을 하는 열린 학교 같은 서당이나 도장 같은 커뮤니티의 거점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이 그동안 사회에서 배우고 가르치고, 얻은 것을 사회로 돌려서 연결시키는 멋진 미래라고 생각한다.    


우치다 타츠루의 책 더 찾아봐야겠다. 재미있었다. 이 책 읽으면서 '노동' 에 대해 생각하고, 요즘 뜨는 '파이어족'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린다 그래튼의 '100세 인생'을 읽고 있는데, 이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장수 사회가 오고 있어서 '노동' 에 대한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이 책 읽으니, 미하엘 엔데의 '엔데의 유언' 도 다시 읽어보고 싶다. 

 


교육의 효과는 졸업 시점에서 취득하는 단위 수와 성적, 자격, 전문지식, 기능 따위만 잇는 것이 아니다. 고등교육에서 배운 좀더 중요한 기법이라고 할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은 종합적으로 수치화하기가 불가능하다. 식견, 판단력, 감수성, 취미 같은 것들은 도대체 언제 어떻게 자신의 몸에 배게 됐는지 본인도 잘 알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학교에서 익힌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배우는 능력‘은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능력‘인 메타능력이다. - P160

우리가 화폐와 상품을 교환하는 데 열중하는 이유는 교환이 안정적으로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 교환의 장을 밑에서 받쳐주는 여러 제도들과 인간적 자질을 개발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환 자체보다 오히려 교환의 장을 두텁게 하는 것. 바로 여기에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교환의 목적은 등가의 물품을 교환하거나 싼값으로 고가의 물품을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교환을 계기로 그것을 가능케 하는 다양한 인간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 P167

경제 관계의 배후에는 교환을 성사시키고 유지하기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노력들이 있습니다. 사실 그 노력들이 경제활동의 본래 목적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경제적 합리성은 경제 활동에 부가적으로 따르는 많은 인간적 가치를 배제합니다. 따라서 군더더기 없이 아주 깔끔합니다. 하지만 시야에서 배제된 탓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것이 많습니다. 교육도 타격을 입었고 노동, 육아도 그렇습니다. - P169

소음을 신호로 변환하는 과정, 이것이야말로 배움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생각은 일단 보류하고, 아직은 이해가 안 되지만 주의 깊게 듣고 있으면 언젠가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경의와 인내심을 갖고 메시지를 맞이해야 합니다. 이러한 개방적인 태도로 귀 기울이지 않으면 소음은 결코 신호로 바뀌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소음은 소음이고 신호는 신호라는 식으로 구분하는 살마에게는 소음이 신호로 변하는 순간이 결코 찾아오지 않습니다. - P172

오늘 리스크 헤지에 대해 많은 말을 했지만, 친밀권은 리스크 헤지를 위한 공동체 이야기였습니다. 오늘날 미혼과 비혼이 늘고 있다고 하지만, 고학력에 고수입인 사람들의 결혼율은 더 높습니다. (..) 사회적인 약자들일수록 조력자가 없는 시스템이 되고 있다는 겁니다. 가족을 만들 수 없는 사람은 병에 걸리거나 장애를 입게 되거나 노인이 되었을 때 곁에서 지원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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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3 1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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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3 12: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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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3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07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07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 책은 내 삶의 훈련과정에서 적용했던 ‘선택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원리에 기반해 있다.미래는 당신이 만드는 것이다.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선택과 결정은 당신이 꿈꿔 왔던 삶으로도, 혹은 후회만 남길 삶으로도 당신을이끌 수 있다. 인생의 경로를 결정하는 것은 그토록 사소한 선택들이다.  단 2밀리미터만 빗나가도 삶의 궤적 전체가 바뀐다. 아무리 하찮고 사소한 결정이라 해도 엄청난 오차를 낳을 수 있다.
무엇을 먹고, 어디서 일하며, 누구와 어울리고,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그 모든 선택이 당신의 오늘 하루, 나아가 평생을 좌우한다. 

좋은 소식은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모양이 바뀐다는 점이다. 단 2밀리미터의 오차가 삶의 경로를 완전히 바꿔 놓을 수 있는 것처럼, 2밀리미터의 조정만으로도 안전하게 원하는 목적지로 나아갈수 있다. 제대로 된 지도와 가이드, 그리고 계획이 있으면 가능하다.
절대 수동 모드로 살지 않기 바란다. 오늘부터 당신의 삶을 되찾고 꿈꾸던 목적지로 당신을 이끌 수 있는 선택을 내려라.  - P16

컴파운드 이펙트는 작지만 현명한 일련의 선택들이 엄청난 보상을낳는 원리를 일컫는다. 이 프로세스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 결과가 아무리 클지라도 초기에는 각 단계가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건강, 관계, 재산 등 자신에게 중요한 부분을 개선시키기 위해 어떤 전략을 사용하든 간에 초기의 변화는 아주 미세해서 감지조차 어렵다. 즉, 이 작은 변화들이 즉각적으로 뚜렷한 결과를 내지 않기에, 선뜻 대단한 이득이라고 여길 만한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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