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골고루 번갈아 읽고 있는 책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문학강의> 이전에는 <피와 눈의 나라 러시아 미술>이 있었고,
<레이븐 블랙> 이전에는 <꽃밥>이 있었다.
<자코메티>는 도대체 얼마나 오래 잡고 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미의 역사>는 <자코메티>보다는 덜되었으나, 오래 붙잡고 있을 각오로 반년여만에 비닐을 뜯은 책이다.
<카페 여주인>은 아마도 읽으려고 꺼내 놓은 것이 아닌것 같은데, 어느 순간 보니, 읽고 있더라.
워낙에 두세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는 편이기는 하지만, 이번엔 내가 생각해도 좀 심했다싶다.
그렇다고 내용이 헷갈리거나 할 일은 없다. 아니, 재미있는(?) 우연을 발견하고, 혼자 즐거워하기도 한다.
<미의 역사>와 <문학강의> 둘다 에코의 책인데, 한두챕터씩 읽는 와중에 <미의 역사>의 '비례와 조화로서의 미' 와 <문학 강의>의 '발루아의 안개'에서 꽉 막혔다. 무지한 내머리를 탓하는 대신, 폭염과 애꿎은 에코 할아버지를 탓하다, 폭염이 물러가고 밤이 내려앉아, 마음이 좀 나아진 무렵에는, 이해하길 포기하고, 다 읽고 다시 읽을 생각하고, 편하게 읽어나갔다.<미의 역사>는 뒤로 갈 수록 나아지리라 생각하지만, 끊임없이 인용되는 플라톤을 비롯한 고대 철학가들의 글들과 피타고라스로 시작한 비례 이야기는, 음악의 비례 이야기에서 그야말로 두 손을 들어버렸다. <문학 강의>에서 '발루아의 안개'는 네르발의 <실비>라는 단편을 해부하고, 분석하고, 재결합하고, 다시 쪼개고, 뭐, 그런 내용인데, <실비>라는 작품이 생소할뿐더러, 문학작품 쪼개고 분석하는 일에 익숙지 않은지라, 네르발의<불의 딸들>을 보관함에 담아 두는 것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읽어내려갔다. 다행히, 두 책 다, 그 다음 챕터는 재미있는 부분인데, <미의 역사>에서는 '중세의 빛과 색채' 이야기가, <문학 강의>에서는 '와일드 : 아포리즘과 역설' 이 나온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금 풀어진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는데,
<미의 역사>의 '중세의 빛과 색채' 들어가는 말에 강력한 데자부.
<문학 강의>에서 이전에 읽었던 '<천국 편>읽기' (단테의 신곡중 '천국') 에 순서와 조사만 조금씩 바뀌고 똑같은 말이 있었다. <문학 강의>의 그것은 신곡 700주년을 기념하여 기고한 글이었었다. 무튼, 그런 소소한 발견에 즐거워하며, 남은 책들을 읽고 있다.
<자코메티>와 <미의 역사>가 끝나면, 좀 줄여나가서, 두-세권 정도의 멀티리딩으로 복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