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모먼트
권김현영 외 지음 / 그린비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페미니스트 모먼트는 언제였을까. 


돌이켜보면,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 여성학이 인기 있었던건지 여성학 도서관이 크고 깔끔하게 지어져서 도서관보다 여성학 도서관을 더 들락거렸던 것 같다. 이론 공부 이런거 아니고, 그냥 인문학 사회학 책 읽듯이 여성학 책들을 읽었었고, '이갈리아의 딸들' 이나 크리스타 볼프의 책들도 그 당시 읽었던 책들이 다시 나온 것이다. 졸업 논문도 '벽'의 작가를 인용하여 로빈슨 크루소와 비교하며 '에코 페미니즘'을 주제로 했었다. '여성학'과 현실을 밀접하게 연결지어 생각하지 않고 가부장제에 절여져 살아 오다가 어느 순간,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 해쉬태그가 뜨고, 그 무렵부터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라.가 나오고, 페미니즘 도서들이 많이 소개되기 시작했으며, 2015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 것 같다. 


느슨한 연대로 트위터에서 알라딘 서재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폭발적으로 이야기하게 되었지만, '모먼트'라고 할 만한 것은 그것을 오프에 연결시켰을 때인 것 같다. 비슷하게 눈 뜬 애인과 친구들 덕분에 여성학 강의를 찾아 다니기도 하고, 많은 것들을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다. 


알면 알수록 좌절감과 무력감도 함께 왔다.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수록,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뭘 더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계속 이야기하자. 책을 읽고 공부하자, 말할 수 있을 때 말하자. 라는 얘기 정도를 계속 했다. 새삼 활동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거나 페미니즘을 진지하게 공부해서 필자가 될 것이라던가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라고 했으니, 일상에서 더욱 타이트하게 설치고, 떠들고, 생각하는 것? 정도일까. '페미니스트 모먼트'의 '모먼트'가 어떤 모먼트를 이야기하는 걸까. 알고 나면 더 이상 뒤돌아 갈 수 없는 그 모먼트인 것일까? '모먼트' 이후를 고민해야 한다. 


마지막 타자였던 전희경 선생님의 글이 어떻게 잘 죽을지 생각하는 마음에 계속 남는다. 


40대가 되었다. 이런저런 질병들이 찾아오고, 체력이 떨어지고, 노안이 왔다. 그리고 나에게 몸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발견'했다. 손가락 관절이 아프고 나서야 손가락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전까지는 손가락 관절이 아프지 않았기에 워커홀릭으로 살아올 수 있었다는 것 역시 깨닫게 된 것이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장기요양이 필요해지자 그간 불화해 왔던 부모님 집으로 다시 들어갔던 페미니스트 친구의 선택을 보며 대안은 지금 당장 만들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몸의 유한성과 죽음의 확실성이 점점 더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사람이 몸이(몸에) 있는 존재이고 누구나 아프고 늙고 죽어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페미니스트는 어떻게 대면해야 하는가? 


20대 때와는 달리, 40대가 되는 나에게는 '독립'보다 '의존'이 더 중요한 이슈다. 아프면 '페미니즘을 쉬는'게 아니라, '페미니스트로서' 아프고 늙고 죽어가는 그 현실을 마주하고 분석하고 개입해야 하지 않을까. 


비혼 페미니스트들이 시작하고 마을 운동으로 확장 중인 살림의료협동조합은 나에게 페미니즘의 의제뿐 아니라 방법과 조직론에 있어서도 새로운 장을 열어 주었다. 


그 어느 때보다 '무엇이 문제인가' 보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골몰하고 있기도 하다. 

 

한채윤 선생님이 책 말미의 대담에서 말했듯 '선언'보다 그 이후가 중요하다. '선언 이후의 삶', '선언 이후의 실천' 


페미니즘은 너무 재미있다. 공부하고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고, 그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을 일상에 체화시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페미니스트 모먼트 이후 나의 목표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선은 간데없고 악이 이렇게 판을 쳐대는지, 

어째서 평범한 사람들이 불행해지고 괴로워하고 이런 쓰라림을 맛봐야 하는 건지 …….


강상중 선생의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을 페터 회의 '수잔 이펙트' 바로 다음에 읽었다. 

페터 회의 책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생각과 내가 평소 헤어나오지 못했던 생각들, 당장 닥친 문제들에 대한 답이 보이는 것 같다. 이런 사유를 책으로 내주신 선생님 계신 곳으로 절. 


가장 근본적인 주제들을 현실을 통하여, 고전들을 통하여 풀어내는 것을 읽고 있으면, 생각의 힘, 마음의 힘, '소설'의 힘 등을 생각하게 된다. 책에서 답을 찾는 나에게 이 책은 '그래, 책 안에 답이 있어'를 저자가 깊이 인용하고 분석해주는 소설들을 보고,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풀어낸 책을 보고 이중으로 느낀다.


저자가 악에 대해 고찰하기 전에 예로 드는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가와사키시 중학교 1학년 남학생 살인사건(중고생 소년들이 중1소년에게 심각한 고문과 폭행을 가한 후 한 겨울에 발가벗겨 강물에 던짐. 시체를 옮길 때 발로 굴렸다는 사실이 알려져 사람들의 분노 폭발) 환자 18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군마대학병원 사건(2010년에서 2014년에 걸쳐 복강경 수술을 받은 환자 8명이 사망. 이 사망사고 전부에 40대의 한 집도의가 연관되어 있고, 이 집도의가 관여한 개복 수술에서도 수술 후 10여명의 환자가 사망했음이 알려짐), 나고야대학 여학생 살인,상해,방화사건(나고야의 여학생이 77세 여성을 살해한 후 '사람을 죽여보고 싶었다' 고 발언. 살인을 저지르고 집에 가는 길에 저택에 방화, '장례식에서 불에 탄 시체를 보고 싶어서' 라고 함),잔학무도한 IS 


사람이 선을 행하는 것은 구체적인 습관, 실천적인 행위를 통해서입니다. 여기서 구체적인 습관이란 '사는 법'에 관한 것입니다. 이는 사는 법을 체득한 사람만이 선을 행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나아가 사는 법이란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죽음의 충동을 조금씩 길들여 제어하고 조절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나고야 여학생은 이 구체적 습관인 '사는 법'의 대척점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고, 죽음의 충동을 길들이는 방법을 모르는 공허한 존재,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파괴충동을 분출시키는 것이라고.


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그곳이 직장이건 공공장소이건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하면서 아주 섬세하게 사회적인 룰이 결정됩니다. 공허한 존재의 악은 세계의 그런 물질적인 복잡함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 견딜 수 없는 부분이 죽음의 충동으로 분출되지 않았을까요. 


죽음의 충동은 공허한 존재에 숨은 마물입니다. 악이 범람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마물을 길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공허함이란 너무도 간단하게 우리에게 들러붙곤 하니까요. 그러니 우리의 세상은 결코 악의 세계와 떨어질 수 없습니다. 


 세상 끔찍한 나고야 대학생 사건의 뿌리를 우리가 공유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니, 이 학생 속의 악을 우리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니. 일견 이해가지 않지만, 이런 끔찍하고, 인간 같지 않은 범죄들을 보며 도대체 왜? 어떻게? 끔찍함을 넘어서 수많은 의문을 가지게 했던 '악'의 존재에 대해 내가 사는 이 사회에 함께 하는 것임을 인정하고, 그 이유를 찾아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얼마전 필리핀 성매매남들을 잡는 장면이 현지 뉴스 페북라이브로 중개 되면서 '성매매하는 한국남자들' 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중에 인상 깊었던 것은 성매매남 관상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하고, 사귀면서 겪게 되는 갈등들, 이 사람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나를 관찰하는 것 등을 경험하는 대신 돈을 주고 여자를 사서 자신의 비위를 맞추기만 하는 여자만 만나봐서 사회에 나와서도 적응 못하고, 갈등이 생겼을 때, 이 얼마짜리가. 하며 분노하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 그렇게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을 반복하게 되면, 눈빛이 죽은 동태눈깔처럼 되서 '성매매남 관상'이 된다고! 얼른 성매매를 그만 하고! 인간으로 살라고! 하는 이야기.    


이 이야기가 위에 이야기한 '여러 감정들이 교차하며 섬세하게 결정된 사회적인 룰, 세계의 물질적인 복잡함'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동태눈깔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 그렇게 '공허함'이 들어찬 곳에 '악'이 자리잡는다는. 


이런 것이 역사상 대규모로 나타난 것이 '나치' 였다. 

목적성도 생산성도 없는 파괴(살육)행위를 위해서 모든 수단을 소비해버린다. 

나치 독일이 품은 악에서 느껴지는 것은 그들이 불순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공포인데, 이것은 나치 독일 안의 '악의 이면성'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을 과대망상적으로 크게 보이고 싶다는 바람과 자신이 병적일 정도로 작은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공포에 관한 것.


이런 분열된 이면성 속에 나고야 대학생이 안고 있던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포, 그 공동감(속, 핵심, 중심이 비어 있는느낌) 의 반작용으로 '과대망상적으로 자기를 긍정' 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는데, 저자가 말하는 '악의 이면성'이 낯설지가 않다. 


과거의 악의 축이 나치였다면, 오늘날 악의 축으로 떠오르는건 IS의 폭력과 테러이다. IS를 이슬람원리주의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 활동은 고전적 원리주의와 거리가 멀고, "무함마드의 가르침과 이슬람의 규칙을 인터넷상에 카피 엔 페이스트, '복사해서 붙여놓고' 이를 폭력을 정당화하는 지표로 삼았다"는 느낌만 든다.

이런 얄팍한 원리주의는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얼마든지 다른 스티커로 바꿔 붙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현대의 자본주의를 '익명의 시스템 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1장 '악의로 가득한 세상' 에 나오는 악의 여러가지 얼굴들에 관한 이야기들이고, 2장 '악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악'의 존재, 악의 정체를 탐구하는 장이다. 성서에 나오는 '베르제바브, 바알세붑 들의 이야기, 욥기의 욥 이야기 등과 고전으로 넘어 와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토마스 만의 작품 등이 소개 된다. 뒤로 가면서 소개 되는 문학작품 레퍼런스들로는 강상중 선생의 책을 오래 읽은 사람이라면 짐작하듯이 나쓰메 소세키, 도스토예프스키('악'을 탐구하는 소설로 이만한 작가가 있을까) 가 나오고, 자본주의를 현대의 시스템악으로 규정한만큼 베버도 나온다. 


원죄와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도 나오는데, '근원적인 악'과 '진부한 악' 으로 나누어 놓고 있다. 

한국에서는 '악의 평범성'으로 번역되는데, 일본판에서는 '진부함'으로 나오고 있다. 


"아이히만은 이아고나 맥베스가 아니었다. 더욱이 '악당이 되어주지'라고 한 리처드 3세의 결심만큼이나 이 진부함과 무관한 것도 없으리라 (중략) 완전한 무사상성 - 이는 결코 어리석음을 뜻하지 않는다 - 이것이 바로 아이히만이 그 시대 최대의 범죄자 중 한 사람이 되는 요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깐, 진부한 악이란, 사려와 상상력의 결여이고, 이 '무사상성', 사상 없음은 우리에게도 있다. 


짧은 책이고, '악'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성경과 고전, 역사속의 사건과 인물들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낯익고, 마음에 와닿을 일인가 싶다. 지금이 '악의 시대' 이고,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을 갈구하고 있어서인 것 같다. 


악이란 결국 무엇일까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악이란 한마디로 말하자면 병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악은 '텅 빈'마음에 깃드는 병입니다. 



루프트한자 계열 항공기 사건과 같은 일은 앞으로도 더 일어날 거라 보고 있습니다. 파일럿 중에서 사건을 모방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예로부터 악이란 기억과 관습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악행을 저지른 것을 기억합니다. 일단 악행을 저지른 인간은 그 습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악행은 반복되는 것이지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악의 연쇄는 우리에게 견디기 힘든 비극을 가져옵니다.

우리가 사는 세간에도 악은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악은 세간이라는 몹시 진부한 인간 사회에서 생겨납니다. 우리는 크건 작건 공허함을 품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세상을 거절하고 싶을 정도의 증오에 휩싸이는 일도 있겠지요. 공허함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어두운 파괴 충동이 있으며 사람을 상처 주거나 멸시하는 데서 오는 어두운 기쁨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런 암흑의 그림자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자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이 받아들이기 힘든 ‘죽음의 충동‘과 어떻게 타협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그 길이 소세키가 생애를 바쳐 그린 세간의 삶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바깥쪽에서는 타협할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공허함과 허무함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로애락 가운데 이어지는 나날이 있는 것이라며 소세키는 세간의 세부를 그려내 보였습니다.
서로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하루하루 생활을 소세키는 달관하여 희극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의 세계자본주의는 악의 배양기일 따름인 절망의 자본주의인지도 모릅니다. 그 이유는 여러 번 이야기한 것처럼 시스템 자체가 악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이 시스템 자체가 인간을 고뇌하게 하고, 그런 고뇌를 계속 만들어내 시스템을 유지하는 악의 연쇄를 낳습니다. 말하자면 전 지구적인 규모로 악이 자본주의에 기생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절망 속에서도 타자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절망 속이라 해도 함께 있다면 조금은 타자의 아픔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아픔도 누그러질 순간이 있을 터입닏. 비록 일시적인 공감일지라도 이를 얻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세상의 일부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피북 2017-04-22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에서도 이런 일들이 있었다니요. 흡사 우리나라 일인줄 알았어요. 특히 나고야 여자 대학생이야기가 충격적이면서도 얼마전 사건을 떠올리게 하고요. 악은 텅빈 마음에 깃드는 병이란 글귀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ㅜㅜ 함께하는 사회이니 그 이유를 함께 찾아보자는 말씀도 공감되고요.

하이드 2017-04-22 10:5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우리나라 뉴스들에 나오는 사건들이 많이 오버랩되더라구요. 뉴스 볼 때마다 도대체 왜? 어떻게 사람이? 정말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답답했는데, 이 책 읽고, 많은 부분 더 생각할 거리들을 얻었습니다.

 

외모지상주의는 무의식까지 너무 깊이 뿌리내린 데다 관련 산업의 발달로 쉽게 변화시킬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차라리 사회주의 혁명이 더 쉬울 것이다. 성형수술 세계 1위 한국사회에서 외모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가장 심각한 정치학이다. 


본인이 신경 쓰지 않는다 해도, 타인과 사회가 신경 '써준다'. 페미니스트도 예외는 아니다. 


'날씬해도' 자기 몸에 만족하는 여성은 드물다. 문제는 '살찜' 여부가 아니라 이 물 셀 틈 없는 완벽한 외모 통제 사회에서 여성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이다. 나는 이 책의 주제가 "외모지상주의 극복"이라기보다는 저자의 삶에 대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살쪄도 건강하기만 하면 돼", "외모는 중요치 않아. 실력이나 품성을 갖춰야 해..." 이런 말은 사기다. 진실도 사실도 아니다. 삶의 체현embodiment 으로서 외모는 중요하다. '관상'이 그것이다. 관상은 과학이다. 삶의 흔적은 몸으로 드러난다. '미'에 대한 강박을 비판한다고 해서 '추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외모지상주의를 극복하는 방식은 미추의 기준을 다양화, 비본질화, 유동화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내 몸이 나 자신이라는 근본적인 인식론의 전환이 필요하다. 나를 포함하여 자신에게 온갖 불만이 있는 이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서다.  


맨 앞에 나온 추천사 잘 안 읽는데, 정희진의 추천사라서 잘 읽었다. 위의 인용은 정희진 추천사 중에 

나온 말들이다.




" 본인이 신경 쓰지 않는다 해도, 타인과 사회가 신경 '써준다' " 나는 이십대때 비해 훨씬 살쪘지만, 그때에 비해 몸에 신경 쓰지 않는다. 혹은 않는 척 하고 잘 살아왔다. 내 몸에 대해 이야기할만큼 무례하고 무딘 자는 내 주변에 엄마와 아빠밖에 없었다. 엄마의 인신공격성 발언에는 같은 인신공격성 발언으로 대꾸했지만, 내 맘에는 차곡차곡 남고, 엄마는 개뿔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아서 손해이고, 화난다. 아빠의 발언은 무시하고, 지금은 다른 여러가지 이유를 더해서 잘라냈다. 


여튼, 가족으로부터의 무시에 대해서는 열받긴 했지만, 맘에 남거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다. 하는 마음 들지 않았는데, 애인의 말 한두마디는 계속 생각하게 된다. 초창기에 한 번 그랬고, 얼마전에 또 그런 일이 있었다. 애인도 나도 과거에 여성혐오했고, 지금도 계속 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고쳐나가고자 하고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페미니스트다. 


애인의 발언은 본인은 좋은 뜻이 었다고 하는데, 받아들이는 내가 그렇게 받아들이지를 못하겠다. 연애 전의 내가 지금의 "예뻐지겠어. 예뻐져서 사랑받아야지" 하는 나를 본다면, 어이구, 한심한 년. 했을꺼다. 사실 지금의 나도.. 

이 책을 읽고, 도저히 끌어 올릴 수 없는 나의 자존감 한 부분이라도 올라와서 '당당한 페미니스트' 가 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20대 초반까지 아주 마른 몸매였다. 30대 초반까지도 평균체중에 훨씬 미달했다. (술살인 줄 알았는데, 술 안 마셔도 계속 찜. 나잇살인가, 부은게 살이 되었나. 뭐 이러고 있음) 단 한번도 몸에 콤플렉스가 없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가슴이 너무 작아서, 배가 나와서, 하체 비만이라서 ( 내가 배 안에 장기가 있는데, 그 정도도 안 나오면 운동선수여야 했고, 하체 비만이라고 해봤자, 가장 작은 사이즈의 옷들도 컸던 그 때, 아 옛날이여) 불만이었다. 언젠가부터 포기,체념,신경안씀의 단계를 밟은 것 같은데, 옛날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있는건 건강해지고 싶다. 체력짱에 유연한 몸이고 싶다. 였던 것 같다. 지금의 나의 가장 큰 목표이자 화두는 병 걸리지 말고, 건강하게 '소모품'인 이 몸뚱이 잘 달래고 가꾸기. 이다. 유연하고, 건강할래, 아님, 병약하고 마를래 고를 수 있다면, 나는 전자를 고를 것이다. 건강한 돼지도 괜찮아. 애인이 후자를 고른다면 미워해야지. 뭐, 애인의 로망이야 어쩔 수 없구요. 하지만, 누가 나한테 그런걸 고르라고 하겠어. 내가 해야지. 으으.. 


지난주부터 팔이 너무 아파서 한 번은 아침에 움직이기도 힘들었고, 어제는 하루 종일 통증이 있어서 불편했다. 스트레칭으로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았고, 병원가서 주사 맞는건 지난번처럼 팔이 아예 안 움직이는 정도는 되어야.. 라는 생각이 강하고, 집 앞에 부위별로? 마사지 해주는 곳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고 찾아봤는데, 뭔가 그 사이에 미용마사지로 바뀐 것 같고(오늘 가서 다시 알아볼 생각), 요가... 하면 돈들지.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 아파하고 있는데, 누가 등근육이 이완되면 통증이 풀리기도 해요. 라며 흉추운동을 권해줬다. 팔을 등뒤로 깍지 끼고, 고개를 들어 턱을 하늘로 향하며 15~20초. 얘기 듣자마자 엊저녁에 하고 잤더니, 어제만치 안 아픈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새벽에 꽃시장 다녀오면서 무거운 거 들었더니, 또 아팠지만, 좀 자고 나니 나아져서 또 스트레칭 했다.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자기 전에 한 번 하면 좋다고 했다.  


이래도 저래도 상관 없으니, 이왕이면 애인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싫어하는 것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가끔 네일 하고 싶어도, 돈도 들고, 애인이 네일 무섭다고? 했으니 하지 않고, 가끔 충동적으로 머리를 자르고 싶어도 애인이 내가 머리 올리는거 좋아하니 자르지 말아야지. 했었다. 

이 책에 어떤 이야기들이 더 나올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첫 챕터부터 충격적이어서 재미있을 것 같은 예감이다. 

몸에 대한 프로파간다에서 내가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몸이 나다' 라는 명제를 담고, 즐독해야지.  


어제 트위터에서 페미니즘 책 10권쯤 사겠다고 추천해달라고 하셔서 알라딘 여성학/젠더 부문 판매량으로 검색해보세요. 라고 추천드렸다. 판매순위 보니, 추천해야지. 했던 책들 대부분 상위권에 들어가 있다. 










일단 요기까지는 강추. 











페미니즘으로 본 지금까지 한쪽 성별을 지우고 쓰여 왔던'경제학' 이야기, 우에노 치즈코와 미나시타 기류의 비혼 주제 대담집, 호불호 갈리지만, 남자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맨박스, 그래픽 노블들, 페미어 사전 등을 추가 추천하고,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 7는 20년 전과 후를 비교하는 훌륭한 보고서와 분석글이다. 글도 좋고, 제목에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다양한 이슈들이 커버되고 있어서 강추.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들은 장점이 한 둘이 아니다. 일단 재미있고, 몇십년 전의 소설이 담고 있는 인사이트가 대단하다. 보면서 계속 소름끼쳤어.


일단 이 정도 읽으면 페미독서 1단계는 수료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라디오 2017-02-28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들을 다 읽어야 겨우 1단계인가요ㅎㅎ? 봤던 책도 몇 권 보이고 대부분 익숙한 책들이네요ㅎ

하이드 2017-03-02 06:43   좋아요 1 | URL
알라딘에서는 특히 그럴 것 같습니다. ^^
좀 더 정리해보고 싶어요. 페미니즘 도서들!
 
거리에 선 페미니즘 - 여성 혐오를 멈추기 위한 8시간, 28800초의 기록
고등어 외 41인 지음, 한국여성민우회 엮음, 권김현영 / 궁리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 여성들이 이 사건에 대해서 분노하고 슬퍼하고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이유는 남자가 싫어서가 아닙니다. 남녀 싸움을 조장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단지 문제가 있으니까 한번 해결을 해보자는 겁니다. 그런데 그 문제가 있음을 인정조차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논의를 하고 해결해나갈 수 있겠습니까? 


변화는 잘못됐다는 알아차림 없이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변화는 기존의 것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피해자들, 약자들,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데 기득권자들과 사회 시스템이 알아서 바꾼 경우는 단 한번도 없습니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신촌에서 있었던 필리버스터 소식을 보았던 것을 기억한다. '거리에 선 페미니즘'은 그 때의 이야기들을 '기록'해 둔 것이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고 누가 그랬던가. 계속해서 말해지고, 기록되어지고, 읽혀지고, 다시 말해지기를 바란다. 


광장에서 사람들 앞에 나서 필리버스터를 이어간 사람들 중에는 준비해 온 사람들도 있었고, 길 가다가 즉석에서 나가서 발언한 사람들도 있었고, 주최한 사람들 중에서도 있었고, 남자들도 있었다. 한 번 터진 이야기는 멈출 줄 모르고, 시간 관계상 추려야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야기들은 다 비슷하고, 다 다르다. 여자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들인데, 남자들한테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우리는 이 이야기들을 2박3일도 너끈히 이어갈 수 있는데,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와 여자만 그랬구나, 남자들은 겪지 않는 일이구나.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한 번 말하기 시작한 여성들은 좀처럼 멈추지 않고 있다. 

차별, 성추행/성희롱/성폭행 을 겪어서 힘들었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음을 알고,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을 이야기하고, 나누고, 앞으로 더 이야기해서 더 나아지게 만들겠다. 는 이야기들이 모여 있다. 


인상 깊었던 남성 발언자의 말 중 : 

지금의 이 끔찍한 상황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일부 남성의 책임이 아닙니다. 거꾸로, 모든 남성이 책임의 일부입니다.  

한숨 쉬게 만드는 이야기들은 매일같이 일어나고, 내 주변은 정리했다. 미역은 무시하고 떼놓고 갈 것이다.  

집에서 혼자 사는 것이 아닌 이상, 집에서 혼자 살아도 신경쓸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사회 속에서 여자의 성별로 살아가야 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싶다만, 이렇게 이야기하고, 서로의 경험으로 정보를 얻고, '서로의 용기'가 되어 주는 것 등을 생각한다. 가장 유명한 슬로건 중 하나인 Personal is Political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일테니깐. 


오늘 본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다. 

지하철에서 험한 일 당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볼 때마다 '나라면 어떡할까' 생각한다. 얼마전에 옆자리 앉은 여자에게 포르노를 보여주며 농을 치는 변태할저씨 이야기가 돌았었다. 이런 경우에 동영상으로 찍고, 열차 가는 방향 다음역을 네이버에 찍으면 전화번호가 나오는데, 글로 전화해서 신고하고, 어느 칸인지 이야기해주면, 지하철방범대? 분들이 나오신다고 한다. 첫번째 본 글에서는 경찰에 신고했는데, 아무 도움 안 됐다고 한다. 전혀 놀랍지 않다. 

오늘 당한 사람이 보니 모정치인 영상과 포르노 영상들을 유튜브 리스트에 올려 놓고, 옆자리 여자 반응 봐가면서 포르노 보여주고, 중얼중얼 하는 것이, 얼마전 트위터에서 돌았던 바로 그 변태할저씨였다고. 다음역이 가까워서 신고는 못하고, 큰소리로 개망신만 주고 내렸다고 하는데, 후에 경찰에 신고해도, 이분이 하도 의연하게 대처해서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으니,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지하철에서 이 변태놈 만나면, 개망신도 주고, 신고도 해야지. 라고 시뮬레이션. 이런 것들. 이런 이야기들. 잊을만하면 올라오는 납치당할뻔한 이야기들, 성추행당하는 이야기들. 내가 당하면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 누가 당하는 거 보면 옆에 가서 도와줘야지. 하는 것들을 계속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피엔스의 미래
알랭 드 보통 외 지음, 전병근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스티브 핑커,매트 미들리,알랭 드보통,말콤 글래드웰 둘씩 편먹고 ‘인류의 미래는 긍정적인가?‘를 토론한다.과학자 둘과 인문/사회학자 둘의 대결로 과학 vs.인문학으로도 볼 수 있겠다. 가장 똑똑한 사람들끼리 엄청나게 비꼬고 갈구며 토론해서 웃었다.찬/반 둘 다 공감,내 표는 말콤 글래드웰 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이드 2017-01-25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캐나다의 앞날에는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가?‘ 이것 역시 확실히 그럴 겁니다. 여러분, 캐나다인들은 최근에 국가 지도자를 뽑는 과정에서 엄청난 진전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가 모두 캐나다에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저만 해도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미국의 공화당 대선 후보 토론을 5분만 지켜봐도 캐나다 국경 남쪽 저 너머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낙관적인 명제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