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 테이블에 앉아 있는 여자가 전화통화를 한다. 피곤에 찌든 음성이며 목소리는 갈라지고 눈은 퀭해 보인다. 근접거리다 보니 본의 아니게 통화내용을 듣게 되었다.
어 어젯밤에 오빠랑 교대했어. 그러게 그나마 비행기로 4시간 거리니까 올 수 있는 거지 더 멀었으면 꿈도 못 꿨지. 상태는 많이 좋아졌어. 본인은 당장 나가겠다고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고....아무래도 무리했나 봐. 안 그래도 아빠 저리 되고 엄마가 고생이 심했어. 그 수발드는 게 보통이 아니잖아 저러다 엄마까지 쓰러진 거지. 다행히 119불러 2시간 이내로 응급실 와서 상태가 저 정도인거야 좀만 늦었어봐 어휴....
그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듣는 나 역시 전화기를 붙잡고 수다를 하는 여인네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추리닝을 걸쳐 입고 잠은 제대로 못자 눈은 뻑뻑하다, 조금이라도 정신 좀 차리겠다고 의자 앞에 자리 잡은 푸르스름한 조명을 내뿜는 커피 자판기에서 일반커피보다 100원이나 비싼 고급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고 있었으니까.
일주일 전 이런 일이 우리 집에도 일어났다. 우린 이미 일 년 전 분가를 했고, 퇴직하신 아버지는 홀로 집에 계셨고 어머닌 출타 중이었다. 침대에서 내려오시던 아버지는 곧바로 쓰러지셨고 집으로 귀가하시던 어머니에게 발견, 응급실로 실려갔나보다. 원인은 뇌경색. 응급실에서 반나절 후 집중치료실에서 사흘, 그리고 일반병동으로 옮기셨다. 음식물 섭취 불가로 인해 주렁주렁 팔에 주사액을 매달고 코에 불투명한 호스를 꼽으셨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봐야 할 사항은 병원 침대에 누우셔서도 평소의 못된 습관이 그대로 나온다는 것이다. 지독하게 어머니 말을 안 듣고 세상 만천하 사람들을 눈 밑에 두시는 버릇은 여전하시다. 회진 도는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해 주변 환자들까지 무시하는 그 모습에서 조금은 안도를 한다.
결국 주말엔 코에 꽂아 놓은 호스를 묶여 있는 손목 재갈을 풀고 스스로 기어이 뽑아내버렸다. 이게 벌써 4번째란다. 일주일 동안 이런 빈도는 전무후무하다는 병원 관계자의 평가다. 다행히 점차 호전되는 모습을 보이시나 보다. 이젠 코로 섭취해야 할 간단한 유동식도 입으로 직접 드시고 재활치료에 들어갔다고 하시니. 더불어 신체 반응을 점검하는 의사의 손가락을 부러질 정도로 잡아채는 손아귀 힘이라면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덕분에 비행기로 13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에 위치한 누나는 이번 주에 들어온단다. 아무래도 아버지 연세가 있기 때문에 이번 일을 계기로 가부장의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