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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어떻게 보고 감히...이것들을 그냥...!!'

강력한 서브를 네트 너머 상대의 진영에 꽂아 넣으면서 그는 중얼거렸다.
1시간째 상대선수를 바꿔가면서 열심히 땀을 흘리는 그는 불과 일주일전의 컨디션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땀을 흘리는 양은 같았으나 머리가 혼란스럽고 기분도 불쾌스럽기 그지 없았다.

`내가 지들을 위해 해준 걸 생각하면 이딴식으로 나오면 안되지..은혜도 모르는 놈들...!!'

상대의 느슨한 서브리턴을 강력한 백핸드로 다시 건네주면서 그는 또 중얼거렸다.
그가 입은 하얀색 상하의 운동복과는 상반되게 그의 속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그동안 얼마
나 열심히 뛰었는가? 마을 여기저기 있는 우물을 정화하여 동네주민들이 물만 퍼다 쓰는 그곳을
배도 띄우고 후룸라이더도 탈 수 있게끔 만든 그였다. 더군다나. 마을 소달구지들의 원활한 소
통을 위해 길 가운데 소달구지 바퀴 홈까지 꼼꼼하게 파서 달구지의 원활한 소통을 해줬었다.
소문이 소문을 타고 옆동네 이장이 직접와서 자기네들 길에도 달구지 바퀴홈을 파야 겠다고 탁
주를 마시면서 입에다 구겨 넣은 부침게가 튀어나올 정도로 떠들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결국 바퀴홈이 안맞는 경운기는 왕따가 되었지만 말이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셔틀콕의 속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하긴 상대가 도내 베드민턴 대표선
수이다 보니 상대하는게 여간 만만치가 않았다. 이런식으로 셔틀콕에 집중을 하면서 시간가는 줄
몰랐는데 이런 즐거움이 부메랑이 되어서 자신의 옆구리를 치게될 줄 누가 알았는가..운동을 한다
고 하지만 그의 몸에 흘러나오는 땀은 왠지 식은땀 내지 비지땀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1세트경기가 끝났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슬아슬한 점수차로 그가 이겼고 잠시의 휴식시간을 가졌다.
땀이 식어가고 있는 느낌에 등골이 알싸한게 실내라는 느낌이 안들었다. 왠지 보이지 않은 수많
은 눈들이 자신의 이 신성한 운동을 감시하고 기록하고 있는 듯한 느낌. 그렇다. 그는 지금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고 있는 불신의 늪에 깊숙히 빠져있는 것이였다.

4년전 지역 족구 대회에서 동네주민들의 열렬한 응원에 힘입어 서울체육교사의 영입으로 4강에 들
었을 때가 생각났다. 환영회에서 그는 동네주민들을 재끼고 그 서울출신 코치와 가족들과 기념촬영
을 했고, 그일 때문에 몇몇 주민들의 원성을 들었지만 조용히 넘어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동네 뒷산에 도를 수행하시는 신비한 도사님께 가서 자신이 행정을 맡고 있는 이 동네를
앞으로 잘 보살펴주시면 큰맘 먹고 봉헌하겠다고 했을 때도 이렇게 주민들의 원성을 듣지 못했었다.

`치사한 놈들 그래...옆동네 그녀석이 마을단체 김장시즌에 몰래 뒷동네 꽃다방 미스김하고 테니스
치다 들통난 걸 가지고 나까지 묶어서 치도곤을 칠려고 그러는 걸꺼야...!!'

쉬는 시간 연신 땀을 훔치면서 그는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지금 일련의 모든 사태들에 대해
대단한 유감인지 그의 중얼거림은 끝이 날 기미가 안보였다. 하긴 그럴만도 하다 자기는 단지 마을
회관에 금이 가서 무너질려고 했을 때 아주 우연하게 베드민턴을 치고 있었을 뿐이고, 동네 양아치
몇놈이 뒷산에서 까치담배를 피다 조그마하게 불을 냈을때도 우연스럽게 베드민턴을 치고 있었을
뿐이였다. 단지 우연..우연이였을 뿐이지 의도적으로 그러지 않았는데 지금의 동네주민들의 원성은
적잖게 억울한 심정을 오늘 지하 깊숙히 아무도 모르는 실내 베드민턴 장에서 애꿎은 셔틀콕에 화
풀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네 주민들이 어떻게 한번 베드민턴으로 몸한번 풀려고 그러면 자기가 좀 일찍 일어나 먼저
치고 있었던 것.. 그것도 6개월동안.. 이런 사소한 것까지 물고 늘어지는 주민들에게도 배신감이
들었으리라.

`나보다 일찍 일어나서 먼저 시작했으면 이런일 없잖어.누가 늦게 일어나라 그랬나..젠장...'

2세트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고 그는 투덜거리면서 다시 네트로 나갔다.

그런데 왠지 건너편 네트에 있는 상대선수가 아까 그 1세트의 상대 선수가 아닌 듯 해 보였다.
이런 실내에 하얀색 가운을 입고 영어로 T자가 선명하게 각인된 파란색 야구모자를 쓰고 있는 그 선
수는 누가 봐도 1세트를 같이 운동한 도내 베드민턴 넘버 원....그 선수가 아니였다.

`까짓것...뭐 선수가 누구면 어때..난 언제나 이기고 언제나 전진만을 할 뿐인데....''

그의 서브로 시작한 경기는 꽤 오랜시간 셔틀콕이 땅에 떨어질 기미를 안보이고 끝도 없는 리턴의
연속이였다. 꽤 하는 상대선수였었다. 가끔 힐긋힐긋 보이는 모자속의 얼굴은 중년의 얼굴이였지만
웬지 제법 귀여붜 보이기까지 했었다.

10여분 리턴이 이어졌을 때였다. 의도적으로 높이 띄워 버린 셔틀콕이 상대방 진영으로 날라갔다.
순간. 귀엽고 착하게만 보였던 상대선수의 눈에 뜨거운 불길이 솟아 올랐다.

`주민의 이름으로 정의의 심판을 하리라!! 불꽃 스메쉬이~!!!!!'

정신이 아득해졌다. 분명 마지막 기억은 기묘한 스파이럴 곡선을 그리면서 셔틀콕의 꼬리에 불꽃을
내뱉으면서 자신에게 쇄도했던 그 물건이 농구공만큼 크게 보였었는데. 자신은 어느새인가 이마의
한가운데 그 셔틀콕이 박힌채로 경기장 바닥에 자빠져 있는 것이였다.
사지가 오그리들고 손발이 마음대로 안움직이고 정신은 혼미하고 주변에 있는 자신의 똘마니들은
순식간의 일에 황당했는지 자기 곁으로 올 생각들도 안하고 있었다.

네트 너머로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에게 이 엄청난 스메쉬를 날린 상대선수는 알 수 없는
혼자말로 크게 소리 질었다.

` 만원 적립...!!!!! '

그때 어디선가 들리는 응답..

`오케이~! 마빡 정중앙 10점 만점 오천원 추가 적립~~~!!

고개를 억지로 돌려 그 소리의 발원점을 추적한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세상 사람이 아닌듯 분홍머리에 쫙 찢어진 눈...비릿하고 으스스한 미소를 날리는 소녀..
그가 정신을 놓치기 전에 봤던 마지막 영상이였다.

상황이 종료된 후 강 스매쉬를 날린 그 하얀 가운에 파란색 야구모자 선수는 유유히 베트민턴장을
빠져나갔다. 그가 입은 가운의 등판에는 하얀색 백마가 기운차게 뛰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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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 2006-03-24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역시...ㅋㅋ

물만두 2006-03-24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하 아이고! 마태님 우야꼬~

Koni 2006-03-24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재미있어요. 이 대담한 풍자!

paviana 2006-03-24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어제 뜸하신게 오늘 이걸 올리실려고 한거군요.ㅋㅋ

Mephistopheles 2006-03-24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트님//뭐가 역시 인지요...? ^^
물만두님// 마태님이 어디 나오나요..?? (시치미)
냐오님//초면입니다 반갑습니다..대담하다니요..일개 필부의 끄적거림일 뿐입니다.
파비님//어젠 카메라 가지고 노느라고요...^^

날개 2006-03-24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카테고리 하나 만드시지요...^^

Mephistopheles 2006-03-24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 주제는 안되는디요....^^ 키득키득..

마태우스 2006-03-24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말이 나오다니 넘 기쁩니다. 아예 이미지 사진으로 써볼까요?^^ 제 컴에 저장했습니다. 감사합니다.

Mephistopheles 2006-03-24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말씀을요 마태우스님.~
경마장에 가서 말뛰는 걸 한번 봐야 할텐데 말이죠..^^ (도박이 아니구요)
정말 근사하다고 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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