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의 눈 - Julia's E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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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눈이 많이 나쁘다. 그것이 선천적이던 후천적이던 이 눈으로 인해 많은 불편을 겪어오고 있다. 학창시절 구기운동을 하다 공을 맞고 박살낸 안경도 꽤 많고 이런저런 물리적 충격으로 소실한 안경 또한 제법 많다. 딱 하나 눈이 나빠 유리하게 작용했던 건. 병무청에 가서 신검 받을 때 군의관의 검사 후 ‘당신 눈은 장식이구만. 제 2 국민역!’ 이 말을 들었을 때 빼곤 시력 때문에 좋았던 기억은 거의 전무하다. 이러니 안경을 벗으면 사물이 뿌옇게 잔상을 남기며 투시된다. 안경을 벗고 마주치는 선남선녀들이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로 보이는 이유는 다 내 시력 때문이다.

그래도 난 그나마 뿌옇게 라도 사물을 볼 수 있지만, 깜깜하게 어떤 빛도 스며들지 않는 시각적 이미지를 가진다면 어떨까. 상상도 못할 일이다. 갑자기 일어난 정전에도 주변 사물의 위치를 파악 못해 그 잠시 동안 우왕좌왕 허둥대는 일반인들에게 시력을 잃은 사람들의 맘을 알 순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이런 공포와 소실에 대해 직관적 표현방법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선천적 시력장애가 아닌 갑작스럽게 시력이 서서히 잃어가고 결국엔 깜깜한 어둠 속에 가라앉아 버리는 시간의 순차적 과정을 보여준다. 여기서 살인마 코드와 스릴러를 첨가하고 길예르모 델 토로만의 묵직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깔아주면 제법 완성도를 보여주는 영화가 만들어진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 또한 수많은 소실을 보여준다. 시력을 잃어가는 줄리아를 중심으로 믿음을 점차 잃어가던 그의 남편 이삭, 그리고 가족의 사랑을 잃은 주변 이웃들, 정상적인 애정방식을 소실한 살인마 이반까지.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무언가를 잃어가는 중이거나 이미 잃어버린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부조화가 인물들 간의 충돌로 진행되어간다.

표현방식 자체만으론 만족스런 결과 치를 내놓았으나 스릴러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범인의 존재는 중반 이후 밋밋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아쉬움을 남겨준다. 그리고 복잡한 인간사에서 거울 속에 비춰지는 눈동자 속 광활한 우주로 끝을 맺는 엔딩은 좀 뜬금없어 보인다.  



모든 면에서 오드리 헵번의 ‘어두워질 때까지(1967년)’를 넘어서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겨준다. 화려한 토핑은 만족스러웠으나 도우가 그에 못 미칠 땐 제 아무리 이탈리아 햇살아래서 먹는 피자일지라도 완벽한 맛을 선사하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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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6-02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이 영화는 다락방님이 최고의 몸매를 지닌 여 주인공이 극 칭찬한 영화이군요. 그나저나 안경을 벗으시면 모두 브래드 피트로 보이신다고 하시니 제가 한 번 안경을 벗으셨을 때 등장하고 싶군요. 완전 의욕 댕껴~~

도우가 문제군요. ㅋ

다락방 2011-06-02 17:43   좋아요 0 | URL
기억력 좋은 루쉰님. 네, 그 영화가 맞습니다. ㅎㅎ

Mephistopheles 2011-06-03 10:56   좋아요 0 | URL
벨렐 루에다..라고 스페인 배우더군요..연식이..1965년...우리나이로 40중반....이신데...몸매 정말 출중하십니다..^^

근데 제가 여간해선 안경을 안벗는다는...ㅋㅋㅋ
 
아웃레이지 - Outr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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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속 특징을 찾아보면 공통적인 코드를 발견할 수 있다. 강력한 폭력의 수위 속에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유머와 위트가 넘쳐흐른다. 잔인하다 인상 찌푸리다가도 낄낄 웃게 만들어 버리는 재주는 아무나 가진 건 아닐 것이다. 이런 그가 이번에도 역시 야쿠자. 다시 말해 조직폭력의 어두운 부분을 들춰내는 영화를 하나 만들었나 보다. 단 그가 여태 보여줬던 이런 부류의 영화와는 차이점이 하나 존재한다.

그의 영화는 대부분 라스트 한 방이 존재하곤 했다. 소나티네에서 혈혈단신 자신의 짓눌렀던 조직을 분쇄하거나 비루한 최후를 맞이하는 하나비처럼 상황을 반전시키는 강렬한 한 방이 존재하곤 했었다. 그의 영화가 깔끔하고 딱딱 맞아 떨어진다는 표현도 아마 이런 급진적 변화를 보여주는 영화 속 라스트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번 영화 아웃 레이지는 그런 급진적 퍼포먼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극히 당연한 엔딩. 모든 것이 사그라지는 파멸의 길을 순차적 방법으로 결말에 도달한다. 배반이 배신을 낳고, 정의감이 사라진 부패한 경찰의 모습, 의리나 정 따위는 존재조차 않은 비정한 세계를 위트와 유머를 버무려 보여준다. 비록 그 한 방의 부재가 그의 다른 영화와는 이질적인 느낌일지라도 어쩌면 ‘어때 내 영화야. 모두가 바라는 그런 결말이 아니라 좀 당황스러운가?’라며 썩소를 날리는 기타노 다케시의 얼굴이 떠오르게 된다. 익숙해졌다 싶으니 허를 찔렸다고 해야 할까. 



 토사구팽(兎死狗烹). 주인공 오오토모는 조직의 궂은 일을 도맡아 처리하지만 사냥철이 끝난 사냥개 꼴로 전락한다.

다분히 예상 가능한 엔딩을 보여주는 아웃 레이지는 아마도 그쪽 세계의 현실성을 가감 없이 보여줬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뉴스에서 들었던 조직의 중간 보스가 처지를 비관해 자살했다는 실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쪼들리는 생활고와 무늬만 보스인 자신의 처지가 버거웠기에 생을 마감하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어서 음성변조 목소리의 인터뷰 내용은 거품 쫙 걷어낸 그 세계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요즘 돈 없으면 애들한테 무시당해요. 보스나 형님도 돈이 있어야 하는 거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죠. 의리, 형제애? 그런 건 그냥 폼이에요 폼.’

이렇게 이 영화는 이러한 현실을 어떤 미화적인 방법을 배제하고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환상을 걷어내고 현실에 고정판을 박아 넣어 만든 영화가 우악스럽고 식상할진 몰라도 다케시만의 코드가 곁들여진다면 심각한 표정과 웃음을 반복하는 묘한 상황과 매력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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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11-03-30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강호 나오는 영화... 제목이 뭐죠? 맞다, 우아한 인생. 거기에도 저거 비슷한 대사가 나왔던 것 같아요. 아니, 비열한 거리였던가. 아무튼, 우아한 인생 그 영화도 참 좋았는데.

Mephistopheles 2011-03-31 12:42   좋아요 0 | URL
송강호가 조직폭력배이지만 가정에선 힘 없는 가장으로 나왔던 영화라면..우아한 인생이 맞을 꺼에요. 그 영화..엄청 현실적이죠.ㅋㅋ

버벌 2011-03-31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타노 다케시. 한때 그의 영화가 모두 주목 받았을 때가 있었죠? 전 웬지 거부감이 일어 보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이 영화는 보고프네요.

Mephistopheles 2011-03-31 12:45   좋아요 0 | URL
다케시의 영화가 모두 다 처절하지만은 않습니다. 가끔 이게 이 사람 영화가 맞나 할 정도로 당황스러운 영화들이 몇몇 있어요. '기쿠지로의 여름' 정말 다케시답지 않지만 참 좋은 영화였습니다..^^
 
일라이 - The Book of E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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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근래 영화 봤던 영화 중 이런저런 구설수와 논란으로는 이 영화를 따라올 영화는 없어 보인다. 다른 나라보단 아마 우리나라에서 유독 갑론을박 말이 참 많다. 국내 개봉과 흥행수입은 어떠했는지 모르겠으나 케이블 TV에 새롭게 편성되며 직접 보고 판단하게 되었다.

아마도 논란의 중심엔 이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종교관과 상직적인 의미로 쓰인 ‘성경’때문인 것 같다. 지구가 황량하게 변하고 인류가 거주하기 힘든 행성으로 종말로 향해 가고 있을 때 일라이라는 인물이 소중한 물건을 가지고 여행을 다니는 이야기이다. 그 소중한 물건은 세상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성경’이며 이를 차지하기 위해 남아있는 인간들이 피터지게 싸우고 박 터지는 내용이다.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라이(덴젤 위싱턴)라는 인물이 주는 메시아적 환상과 그가 지니고 있는 ‘성경’의 의미로 인해 기독교 미화적인 영화로 단단히 찍혀버린 것 같다. 그런데 단지 이 영화를 기독교 미화영화로 보기엔 약간의 다른 시선도 존재한다.  

 

고독한 수도승 같은 일라이의 여정엔 여러 일들이 발생하고 예정된 수순으로 그는 희생을 받아들인다. 

영화는 일라이와 카네기(게리 올드만)의 대립을 축으로 진행된다. 기독교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카네기는 일종의 적그리스도적인 인물이다. 현실세계와 비유를 하자면 이슬람을 비롯한 이교도들이고 기독교를 배척하는 악의 무리라는 설정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영화 속 카네기는 살아남은 인류 중 거대한 권력을 쥐고 폭압을 휘두르는 후안무치의 무법자니까. 그런데 영화 속 카네기의 대사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그가 일라이가 소유하고 있는 성경을 노리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것이 수중에 들어오면 세상 사람들을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거든.’ 그리고 이 대사처럼 그는 성경을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영화 속 악의 축 카네기는 수집광이다. 특히 책. 그가 읽고 있는 책은 의미심장하다.

영화에서 잠시 눈을 돌려 현실을 살펴보자. 어느 대형교회 목사님들은 연일 일어나는 지구의 자연재해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 예수를 멀리한 죗값이라고 목청을 높이신다고 한다. 한술 더 떠 국익을 위해 행하는 외교행동에 이교도와 거래를 맺는 대통령을 하야시키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 무슨 망발이냐 하겠지만, 여기는 대한민국이고 그만큼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쥔 대형교회이기에 무서울 것 없이 이런 발언들을 거침없이 내뱉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영화에서 표현되는 적그리스도인 카네기라는 인물을 현실과 비유해보자. 그가 어떤 인물들과 오버랩 되는가. 테러를 일삼는 이슬람극단주의자 알카에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대한민국 현실엔 오히려 다른 부류들과 겹쳐진다. 그들 역시 성경을 손에 쥐고 수많은 사람들을 조종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더불어 종교의 범위를 넘어서 정치와 국가관까지도 손에 쥐려 한다.

영화 속 결말은 조금은 전형적이다. 일라이의 희생, 그리고 또 다른 메시아의 탄생, 그리고 적그리스도이며 영화 속 악의 축인 카네기는 자멸한다. 영화와 현실을 혼동하지 말라지만 어차피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영화의 결말처럼 현실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졌으면 좋겠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 어느 신도 인간의 탐욕과 위선을 좌시하진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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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 The Yellow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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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돈 삼천만원이면 사람 목숨 하나 금방 사라진다. 불법 체류 중국인에게 청부를 하는 거지. 그들은 그 돈이면 부자가 될 수 있거든. 그렇게 사람 죽이고 본토로 넘어가면 범인을 잡을 수가 없어. 거의 완전범죄야.”

짐작 살벌한 농담이려니 하다가도 이런 말을 꺼낸 사람이 어두운 직업계통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면 그냥 하는 농담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우연하게 들었던 이야기를 영화로 만나게 되었다. 그것도 최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영화로 말이다.

이 영화는 2시간이 넘는 동안 두 남자의 궤적을 쫒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극과 극의 상황 속에 먹이사슬로 따지면 제일 아래 있음직한 사내와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을 남자는 일종의 계약을 맺는다.

부채탕감을 보장받고 사람 하나를 죽이라는 계약.

궁지에 몰려 나락의 끝자락에 몰렸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계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일이 껄끄럽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얽히고설키기 시작하며 황토물이 누렇게 끼었을 황해는 핏물로 변하기 시작한다.

이미 이들(하정우, 김윤석, 감독 :나홍진)은 전작에서 맞춘 호흡을 보다 완성도 높게 다듬고 예리하게 날을 세워 황해를 통해 또 다른 핏빛 묵시록을 보여준다. 전작인 추적자와 마찬가지로 주인공들의 일생은 비루하고 처절하다. 거기다 이번엔 소속감 부재까지 얹어버린다.

조선족인 구남(하정우)은 어디에도 소속감을 가질 수가 없어 보인다. 마작 판에서 조선족이란 놀림에 발끈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허공에다 내뻗는 헛된 주먹질 같이 보인다. 한국에선 동정과 더불어 경멸의 시선을 함께 받는다. 이런 어둡고 탁한 배경에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가족애는 애당초 파묻혀버리고 만다.

육식동물 같은 면사장(김윤식) 역시 조선족이다. 구남과는 달리 폭력으로 이뤄낸 성과물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인물이지만 그 역시 황해를 건너며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수월하게 취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물질의 탐닉이 사냥개에 쫒기는 토끼라고 여겼던 구남의 끈적끈적함에 조금씩 수렁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한다.

단순하게 사람 목숨 하나 끊고 오는 여정에 검은 조직의 알력과 치정과 불륜까지 부대끼기 시작하며 황해라는 영화는 수많은 곁가지를 하나의 줄기로 다시 묶어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더불어 영화 속 면사장이 휘두르는 날 선 손도끼로 장작을 패듯 줄기를 싹둑 잘라내 하얗게 태워버리는 허무한 결말로 끝맺는다.

황해는 군더더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적인 구도, 시적인 대사 같은 건 존재자체가 무의미하다. 사건의 진행과정도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꽤 빠르게 진행된다. 다양한 등장인물이 품고 있을 복잡한 관계 역시 어렵지 않게 풀어내고 있다. 이렇게 무거운 주제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직관적 표현이 난무하는 영화는 시간이 지나도 뒷맛이 계속 남게 된다. 해감이 덜 된 조개를 씹고 자글거리는 모래가 입에 거슬리는 느낌이 오래가듯 이 영화 역시 그 질긴 퍼석거림이 꽤 오랫동안 남는다.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잔인하며 깨끗하고 아름다운 영화는 결코 아니지만, 세상사는 이치가 바른생활 도덕책 같진 않기에 이런 비릿한 영화도 완성도에 따라선 대접받아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그 긴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몰입하게 만들만큼 영화의 완성도와 배우들의 연기는 수준급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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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1-03-16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서워서 이영화는 안볼려구요 --;;

Mephistopheles 2011-03-17 00:35   좋아요 0 | URL
수위가 좀 높긴 하지만 '악마를 보았다.' 보단 얌전해요. 한번 도전해 보심이..굉장히 거친 영화지만 표현 하나하나는 제법 섬세하더군요.

마녀고양이 2011-03-16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되새겨보면 괜찮았는데
볼 당시에 감동이나 여운이 별로 남지 않아서 실망했던 기억이 있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줄거리도 좋았고, 연기도 무척 좋았는데...

2% 부족한 느낌이 드는데, 그게 무엇인지 못 집어내겠더라구요.
메피님은 좋으셨다니, 다행입니다~

Mephistopheles 2011-03-17 00:43   좋아요 0 | URL
어쩌면 감독님이 전작의 성공에 약간의 부담감을 가지고 생각이 많아지지 않았나 싶더라고요. 근데 잘 찾아보면 영화 속에 숨어있는 장치 같은 것들이 제법 많이 눈에 띄어요.

예를 들면 구남이 밀항하는 배 이름이 행복호 이고 묵는 여인숙은 희망 여인숙이고요.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가장 가슴에 와 닿는 장면은 살인 장소 논현동 99-1 빌딩에서 제일 늦게 새벽 2시 반에 퇴근하는 건물 사람들이....설계사무소 사람들이라는 것...흑흑...

sayonara 2011-03-27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참 찝찝한 감흥의 영화를...(그래도 재미있었다는..)
이토록 우아하게 평가하시다니.. 잘 읽었습니다. ^^

Mephistopheles 2011-03-28 09:19   좋아요 0 | URL
오래간만이에요 사요나라님..

영화 내용은 찝찝해도. 영화 자체가 워낙 디테일하게 잘 만들었는지라...^^
 
더 브레이브 - True G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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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 참 땀내 나는 단어다. 사실 땀내로만 끝날 단어가 아니다. 왠지 짙은 담배연기에 거칠고 투박한 수컷의 냄새가 잔뜩 배어 있는 것 같다. 좋다고만은 말할 수 없다. 마초라는 단어가 주는 그 압박감은 때론 그 주변의 모든 것을 초토화로 만들곤 하니까.

영화 장르 중 이런 마초의 성격을 작정하고 내면 깊숙이 내포한 장르가 웨스턴 다시 말해 서부극이다. 하긴 그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구리로 만든 탄환 하나로 사람 목숨이 하루살이 마냥 사라지는 시대. 무법의 시대이며 폭력이 정당화되는 시대로 대변된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의 개념이 강하게 표현되었다고 하더라도 요즘 같은 시대와는 많은 부분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어느 일부분에선 다를 바가 없다.)

어쩌면 이 영화는 요즘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철 지난 영화일지도 모른다. 거기다가 웨스턴 마초의 대표인물이라고 볼 수 있는 존 웨인이 주연한 영화의 리메이크라면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영화의 스텝을 살펴보면 의외의 인물이 눈에 띈다.

감독이 ‘조엘 코엔’, ‘에단 코엔’ 즉 코엔형제가 만든 영화다.
이들의 영화를 한 편이라도 봤던 사람들이라면 이 형제가 만드는 영화의 독특함에 대해 기억할지도 모른다. 4차원이라고 말하긴 주저스럽지만, 현실세계 3차원과 4차원의 중간쯤으로 말하고 싶은 3.5차원 같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곤 한다. 더불어 원작을 해석하는 능력이 뛰어난지 2008년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대단한 상복을 누린 적도 있다. 몽환적 환상적 분위기에 과격하고 어이없는 폭력까지, 영화의 전개를 예상하기 힘들게 끌어가곤 하는 묘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일단 이런 그들이 어찌 보면 과거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 서부극을 만들었다면 무언가 기존과는 다른 모습을 선보일 꺼라 예상이 든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아떨어진다.

그들이 만든 서부극을 떠들기에 앞서 과거 웨스턴 무비의 변천과정을 잠깐 들여다보자. 과거 서부극은 여러 차례 변천 과정을 겪어 왔다. 미국이 아닌 이탈리아에서 만든 속칭 ‘마카로니 웨스턴’은 기존의 로망과 정의가 가득한 서부극을 산산이 부셔버렸다. 정의의 보안관, 건맨이 주인공이 아닌 물질을 탐닉하는 악당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 후 마카로니웨스턴으로 스타가 된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감독겸 배우는 정의란 존재조차하지 않은 비정한 현실과 비겁함만이 가득한 수정주의 서부극으로 또 다른 변천의 과정을 거치게 만들었다.

이런 변천과정에서 이 영화는 새로운 변화를 보여준다. 그것이 ‘과거로의 회귀’로 규정될 수도 있는 방법이면서 그 시대를 휩쓸었던 거친 모래바람 속에서도 잡초나 들꽃이 생존하는 모습처럼 ‘소녀’라는 1인칭 시점을 제시하며 새로운 서부극을 표현한다.  



이들의 관계는 레옹과 마틸다와는 전혀 다르다. 더불어 요즘 영화에선 당찬 소녀의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이 영화도 그렇고 얼마 전 봤던 '윈터스 본' 역시 마찬가지다.  (엄청난 연기력 때문인지 '헤일리 스타인펠트'는 오스카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윈터스 본의 '제니퍼 로렌스'는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된다.)

단순히 아버지의 복수로 시작한 여정이 퇴물 보안관과 겉멋 잔뜩 들은 레인저와 동행하게 되는 소녀의 시선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초적 본성의 내면을 하나씩 해체된다. 선이라고 대표되는 이들의 노쇠화, 속물화와 더불어 악이라 칭할 수 있는 악당들 역시 악당이란 명칭에 걸맞지 않는 나약함을 보여준다. 거기에 세월의 흔적을 첨가하여 화려했던 과거가 서커스단의 구경거리와 동격이 될 수밖에 없는 시대적인 반영까지 묘사한다.

시대가 흐르고 생각이 다양화 되면 어떤 대상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 아마도 이 영화는 코엔형제가 그들만의 시선과 생각으로 지금껏 수없이 묘사되었던 마초라는 상징에 대해 또 다른 주석을 달아 놓은 것 같다. 

뱀꼬리 : 난 정말 멧 데이먼인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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