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6년) 써오던 노트북이 사망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집에서 일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빌빌거리는 게 영 마땅치가 않았다. 고사양을 요구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돌리다 보니 파일 하나 오픈하는데 빌빌 거렸고 어쩔 경우엔 담배 한 대 피고 올 동안의 시간을 가지게 돼 버리다 보니 마님께 긴급제안을 하나 했다.

 

“나 노트북 하나만 살께!”

 

“이기이기 미칫나?(퍽)”

 

의외의 지원군은 주니어였다. 학년이 올라가다 보니 그리고 사교육(잉글래쉬)으로 인해 컴퓨터를 활용하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가끔은 구닥다리 노트북을 공유하다 마님의 표현대로라면 울집 큰아들(나)과 옥신각신 하기 일쑤였다. 그리하여 조금 더 완곡한 표현으로 도전해보기로 했다.

 

“주니어도 이제 컴퓨터를 활용할 때가 되었는데 말이지 컴퓨터는 달랑 한 대 뿐이고. 블라블라 주절주절 어쩌고저쩌고.”

 

“그럼 사야겠다.”

 

참나 치사하고 아니꼬워서 내가 사자고 할 땐 뭔 개솔? 이냐는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만 주니어가 개입되니까 관음보살의 표정으로 허락을 해준다. 하지만 단서가 붙는다. 비싼 건 안 돼! 하지만 성능이 좋으려면 어느 정도 가격은 감수해야. 아 안 들려 몰라. 무조건 비싼 건 안 돼!늘 이런 식이다.

 

그래 뭐 그렇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망을 총동원하여 가성비가 뛰어난 노트북을 찾아내 결재를 받아 내리라. 란 각오로 근 보름을 활활 불타올랐다.

 

본격적인 노트북 구매 체크 포인트.

 

1. 가성비가 우선인 제품을 추스른다.

- 확실히 노트북을 만드는 제조사들이 많이도 늘었다. 더불어 외산 제품들도 다양하게 수입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중에서 옥석을 가리기는 쉽지 않다. 가격정보 사이트를 이용하면 비교적 상세하게 분류해놨으니 그에 걸맞은 항목에 들어가 비교하면 의외로 쉽게 범위를 좁힐 수 있다.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비슷한 성능의 제품들 중 유독 S사의 제품이 고가라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싸도 살 이유가 없는 S사의 제품이지만 비슷한 스펙에 가격차이가 많이 나는 이유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노트북뿐일까. 가전제품 전반과 더불어 하다못해 고가의 소비를 지향하는 자동차의 가격도 이해 불가능이다. 개인적 성향이겠지만 어떤 면에선 국민호구 인증일지도 모르겠다.

 

2, OS의 유무를 확인한다.

-딸랑 노트북만 사면 뭐하나 안에 돌릴 수 있는 기본적인 구동 프로그램이 있어야 제대로 노트북을 사용한다. 이 부분은 사실 거의 독점이나 다름없다. MS사의 윈도우가 가장 대중적이다 보니 선택의 폭은 아예 없다. 단 같은 회사 제품 내에서 어떤 OS를 쓸 것인가는 결정 가능하다. XP, 7, 8 중 자기 입맛에 맞는 OS를 선택하면 된다. 단 XP를 지원해주는 노트북은 요즘 찾아보기 힘들다.

 

OS의 유무에 따라 제법 가격차이가 많이 난다. 본인이 스스로 OS를 설치할 수 있다면 이 부분에선 노트북 구매와 관련된 예산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차라리 OS를 자가 설치하고 그 돈으로 RAM을 추가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32비트 OS에선 아무리 램을 추가해도 4GB밖에 인식을 못하므로 이점은 유의해야 한다. 8,16GB의 램을 달아도 OS가 32BIT면 무조건 4GB로 인식해버린다. 그렇다면 64BIT OS를 깔면 되잖아? 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64BIT 전용프로그램들은 32BIT프로그램에 비해 그리 많지는 않다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3. 곁들여 주는 물품은 무엇인가?

-한참 때 용산에서 부품을 사 컴퓨터를 조립했던 시기. 그 바닥에서 제법 잔뼈가 굵은 일명 “용산 마피아” 형님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컴퓨터 살 때 딸려오는 자질구래한 물품은 사실 공짜가 아니야. 알게 모르게 다 값이 포함된 거지. “ 시대가 흐르고 세월이 변하며 이 진실은 많이 완화되었어도 구질구질 별 쓸모없는 액세서리들을 받느니 차라리 깔끔하게 포기하고 본체만 달랑 사는 것도 나쁘진 않다.

 

 대략 이렇게 기본 가닥을 잡아놓고 뒤져보니 딱 알맞은 메이커가 튀어 나온다. 사실 이 메이커는 옛날엔 전설이었다. IBM이라는 공룡이 탄생시킨 브랜드이며 그때 당시만 해도 이 제품은 노트북에선 단연 돋보이는 메이커였다. 하지만 IBM이 PC사업 부분을 포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싱크패드로 대표되는 ‘레노버’라는 브랜드는 중국의 어느 기업에 매각된다. 마데 인 차이나의 상표가 붙어버린 후 이미지 상으론 그때 그 화려했던 만큼의 영광을 누리진 못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썩어도 준치라고 기본이상은 하는 상표로 인정되고 있다. OS는 미설치 상태로 제법 저렴하게 나오다 보니 넷상에선 “가성비 으뜸”으로 이 브랜드의 제품들이 제법 입에 오르내린다. 단점은 국내 제품에 비해 턱없이 부실한 AS정도. 흔히 말하는 뽑기를 잘해야 한다는 리스크는 존재한다지만, 나처럼 눈치 보며 물건 사는 사람에겐 이정도 모험쯤이야............

 

그리하여 질렀다.

 

 

한 달 정도 사용해 보니 뽑기 운은 좋았고 노트북 내 여러 가지 옵션들은 아무 문제없이 돌아간다. 지문인식부터 캠, 무선인터넷, 블루투스까지 잘 잡힌다. 지금도 별 무리 없이 조금은 고성능을 요하는 프로그램들이 제법 팽팽 잘도 돌아간다.

 

단지, 구입한 후 3일 만에 5만원이나 가격이 떨어져버린건 무지 속이 쓰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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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3-01-22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증샷요!

Mephistopheles 2013-01-22 14:48   좋아요 0 | URL
슈퍼 패스..!!!!

다락방 2013-01-22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안그래도 제가 요즘 노트북 사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려요. 메피스토님 덕에 저는 알아보지도 않고 확 사면 되겠네요. ㅎㅎ 그런데 음, 가격은 얼마나 되나요? 비밀글로라도 가격을 좀.. ( ")

Mephistopheles 2013-01-22 14:51   좋아요 0 | URL
비밀글이라고 할것도 없는걸요. 제가 산 모델은 70만원이 안되는 모델입니다. 그러니까 OS는 미설치, 15.6인치에 CPU는 인텔 코어 i5 램은 8기가 외장그래픽 존재하고요.

근데 다락방님은 그래픽 프로그램같은 걸 쓰지 않으신다면 가성비따지면 더 얇고 가벼운 노트북을 더 저렴하게 구입하실 수도 있을 껍니다.^^ 일예로 OS 안깔린 도시바 노트북이 30만원대에 거래되니까요..^^

(사실 레노버 노트북은 좀 투박합니다.)

paviana 2013-01-22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성능보다 이뻐야 되요. ㅋㅋ 놋북이나 아이팟이나 하는 일은 별반 차이가 없어서요. 요즘은 메이플에 대한 애정이 식어서 정말 게임도 안해요.흑흑

Mephistopheles 2013-01-22 23:48   좋아요 0 | URL
근데 이쁜건 죄다 비싸더군요.(가전제품도 외모지상주의?) 얇고 이쁜 건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비싸다는....애니팡 배틀이나 한 판 어떠신지요? ㅋㅋ(아 그러고 보니 한성 컴퓨터에서 판매하는 "인민에어"라는 기막힌 제품이 있긴 하네요..^^)

moonnight 2013-01-22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컴맹인지라 잘 이해 못 하고 있음. -_-;;;;;
집의 컴퓨터가 수명을 다 한 것 같은데 뭘 사야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메피님이 곁에 계시면 좋겠어요!!!! ㅠ_ㅠ;;

Mephistopheles 2013-01-22 17:41   좋아요 0 | URL
제가 곁에 있다고 뾰죽한 수가 있나요. 그냥 무슨 용도로 쓸껀가? 생각하고 데탑 혹은 노트북? 이정도 분류만 해보면 대충 자기에게 가장 알맞는 컴퓨터는 선택이 가능합니다. 요즘은 가격비교 사이트가 제법 많기에 속칭 "눈탱이" 맞을 일도 거의 없고요..^^

맥거핀 2013-01-22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노트북은 확실히 AS 문제를 고려할 필요는 있는듯해요. 문제 생기면 일반 데스크탑이야 뜯고 갈면 되는데, (노트북 전문가 분들은 다르겠지만) 노트북은 뜯어서 가는게 만만치가 않아서요. 레노버 AS는 어떤가요? 예전에 도시바 같은 경우는 AS가 하도 황이라 '또시발'이라는 별명을..

아..그래서 모델명이 뭡니까? 혹시 알려주실 수 있으면 알려주세요.^^

Mephistopheles 2013-01-22 17:43   좋아요 0 | URL
ㅋㅋㅋ. 또시발..전 도시바 노트북 사서 고장 없이 참 잘 썼는데 말입니다. 레노버는 사실 도시바보다 좀 더 극악한 AS라고 하더군요. AS전화 걸면 중국으로 연결된다는 소문이 무성...ㅋㅋ 제가 산 모델은 edge E530 15.6인치 모델입니다..^^

광화문연가 2013-01-22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페이퍼 너무 좋아요 ^^
안그래도 엄마가 병원에 계셔서 하나 장만 하려 했는데
감사해요

Mephistopheles 2013-01-23 11:56   좋아요 0 | URL
이동거리 생각한다면 가벼운 걸 선택하시는게 좋을지도 몰라요. 노트북이라고 해도 들고 다니면 체감무게가 꽤 나가는 것들이 많다보니까요. 포탈에서 "인민에어"를 검색해보시면 아주 재미있는 노트북 하나를 발견하실 수 있을 껍니다..^^

카스피 2013-01-22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컴맹이시라면 S전자가 최고입니다.레노버 A/S가 극악인것은 맞지만 중국으로 연결될 정도는 아니지요.서울의 경우 용산에 센터하나 있으니까요.다만 램을 가져가 추가로 달아달라고 하면 나사 푸는값 2만원 달라고 하니 좀 거시기 하지요^^;;;

Mephistopheles 2013-01-23 11:57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사실 S사의 노트북이 비싼 건 그 많은 서비스센터의 유지와 인권비를 따진다면 수긍이 가능하긴 합니다만, 그닥 정이 안가는 브랜드라 거의 불매수준으로 구입을 꺼려지게 됩니다. 얼마 전 기사 보니까 잦은 AS를 요구하던 고객에게 "찌질이 같다."란 문구를 남기기도 했다더군요...ㅋㅋ

조선인 2013-01-23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노바는 뽑기 확률이 높은 게 흠이고, 레노바도 도시바도 AS가 극악이긴 하고, 제 타협선은 델이더라구요. 서버 저리가라 싶은 디자인은 정말 NG지만요.

Mephistopheles 2013-01-23 11:58   좋아요 0 | URL
그래도 델은 알록달록 칼라가 다양한 기종이 존재하잖아요. 레노버는 아우 무조껀 시커먼...ㅋㅋ 그것도 무광으로 시커먼스. 다행히 레노바 브랜드가 신경을 쓰는지 뽑기 확률이 많이 낮아지긴 했다더군요..^^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 거더라.

 

영화 짝패를 보면 악당으로 나오는 장필호가 이제 함께 할 수 없는 친구를 적으로 돌리며 하는 소리다. 능글능글한 충정도 사투리 풍으로 날리는 이 대사가 심오한 이유는 단지 영화라는 허구세계가 아닌 현실에서도 십분 적용 가능하기 때문 아닐까. 요즘 들어 느끼는 것이지만 이 대사는 폐부를 찔러도 사정없이, 날카롭게 찌른다.

 

 파시스트로 사느니 평생 돼지로 살겠어.

 

볼품없는 돼지의 모습으로 얼굴을 뜯어 고친 붉은 돼지 포르코 롯소가 자신의 친구에게 대뇌 이는 대사. 지부리 스튜디오의 애니 중에선 가장 “남성”적인 애니의 성격을 띤 붉은 돼지는 사실 그냥 애니라고 보기엔 내포하고 있는 사상이나 의미는 의외로 많다. 국가에 종속된 개인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필두로 종속의 관계가 아닌 대등의 관계로써 개인이 누려야 할 자유와 낭만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극히 낭만적이며 자유로운 주인공의 외모가 볼품없는 돼지로 묘사되는 설정에서 어쩌면 강한 부정이 곧 긍정의 효과를 보여준다는 객관화된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그가 그냥 돼지가 아닌 하늘을 “나는”돼지 로서의 차별성은 중요하다.

 

 

나를 나타내는 건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다.

 

걸쭉하게 쉰 목소리로 음성변조를 하여 내뱉는 배트맨의 이 대사는 시리즈 전편을 통해 개인적으로 울림이 가장 강하지 않았나 싶다. 말 그대로 “실천”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대사. 생각과 말로는 난 이미 지구정복과 우주정복까지 이룬 상태 아니던가. 그러나 이 대사의 또 다른 핵심은 “바른”생각과 “바른”행동이 필수요소겠지만.

 

 why so serious?

 

배트맨 최대의 슈퍼빌런(Super villain) 조커의 대사. 이 익살스런 대사는 사실 영화에선 섬뜩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현실로 따져보면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사항이 사실 까고 보면 별일 아닌 상황들이 제법 많다. 이리 되었건 저리 되었건 어찌되었건 모든 건 돌아가긴 한다. 물론 그것이 개개인이 느끼는 만족도에서는 차이가 있는 건 당연한 이치이기도 하겠지만. 짬이 없는 상황에서 심각해지기 보단 여유라는 빈틈을 조금이라도 만들어 숨구멍을 내는 것이 조금은 결과 치에 쉽게 가는 길이 아닐까.

 

뱀꼬리 : 끙..말로는 이미 만리장성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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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13-01-02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좋은 목표(?)로군요. 끄덕끄덕.

Mephistopheles 2013-01-04 09:58   좋아요 0 | URL
목표가 참 좋을 뿐.....^^ 실천하기엔 태클이 많겠죠..^^

2013-01-02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찬 페이퍼네요. 감사~~^^

Mephistopheles 2013-01-04 09:59   좋아요 0 | URL
물오른 생선같은 페이퍼를 추구하겠습니다.(그런데 이게 일종의 처세술같은 내용일 뿐인지라...^^)
 

 

1. 개인적으로 난 지옥에 떨어졌었다. 저점을 찍고 늙고 쇠약해진 다리근육을 이용해 발판을 찍고 튀어 오르고 있는 중이다. 지옥의 바닥까지 닿을 뻔 했으나 그 전에 다른 발판을 마련해 미비하게 다시 도약을 하는 중. 천국까지의 문턱은 아직 까마득하고 무간도를 벗어나 연옥의 귀퉁이를 돌파하는 중이다. 내년 상반기 목표는 천국이 아닌 지옥과 천국의 경계인 이승에라도 안착하고 싶은 심정이다. 야차와 인간의 차이는 백지장 한 장의 차이일 뿐이며 이 백지장은 아주 쉽게 찢어진다는 것 또한 실감했다.

 

 

 

2. 이번 대선은 별 생각이 없다. 어떤 의미로 준비된 자를 이기기엔 준비 되지 않은 자는 여러모로 불리할 뿐이다.(내가 말한 준비는 “선거준비”를 말하고자 함이다.) 획기적인 돌파구나 번쩍이는 아이템이 존재하지 않는 한 애초에 이기기 힘든 게임이었다. 패배가 좌절이 아니지만 승자독식 사회구조 상 패배는 쓰고 처참할 것이다. 같은 내용의 반성문 100장이 필요한 시기는 아니다. 반성만 하는 건 발전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3. 우리 쪽 업계엔 “paper architecture”라는 구분이 있다. 말 그대로 도면상 종이 위에 설계는 이루어지나 실제 건물로 지어지지 않는다. 라는 것이 핵심이다. 혹자는 예술적 분야로 분류되어 독자적 위치를 차지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지어지는 건축물에 비하면 그 한계성만큼은 확실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진보의 아이콘 중 SNS, 넷은 이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SNS로만 떠드는 진보는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투표장에 나타나 한 표를 행사하는 어르신들에 비해 누군가가 말한 “파괴력”에서 상대가 되지 못한다. 우리가 전뇌화된 “공각기동대” 사회를 사는 게 아닌 이상 말이다.

 

“진보”라는 아이콘은 아마도 진화를 해야만 할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머리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는 표현방식은 복고풍으로 취급받지 못할 정도의 “퇴물”로 간주되어야 할 것 같다. 이 나라가 처한 특수한 상황(근현대 식민지, 전쟁, 이념갈등)에 걸 맞는 전략과 전술이 필요한 시기다. 화려한 스펙만이 아닌 기발한 발상과 발칙한 상상력이 동원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4. 어쩌다 우연히 “청담동 엘리스”라는 된장냄새 풀풀 풍기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제목대로라면 심히 럭셔리하며 환상적이며 흔히 봐왔던 “신데렐라 스토리”가 주된 내용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실제 드라마도 그러하다. 물질적 욕구와 자본의 부를 극대화 시켜 드라마에 투영시켰으며 간접광고 또한 지나칠 정도로 빈번하게 노출된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동종 드라마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아주 현실적”인 모습을 종종 비취 준다고나 할까. 빚에 지속되는 사랑이 없다는 모습과 더불어 순수를 찾는 재벌 2세의 철없는 행동은 단지 어른의 위한 동화일 뿐이라는 해석은 재미있게 비취진다. 결말이야 뻔할 뻔자 소시민 여자가 재벌 2세와 맺어지며 끝을 맺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다가 아닌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즐겨 볼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단지 문근영보단 박시후가 더 빛나고 있다는 것. 그건 좀 아쉬울 뿐이다. 아마도 이런 드라마를 보며 심각하지 않고 웃을 수 있는 이유도 2012년 개인적으로 “지독한 현실”을 체험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5. 어찌되었던 국가적인 가장 커다란 “이벤트”는 이제 끝이 났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표현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상해있더라. 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남들에게 휩쓸려 상한 음식 먹고 탈나는 것 보단 안 먹고 잔치만 즐겨보는 것이 가장 현명했을지도 모르겠다. 다음 잔치엔 좀 먹을 것이 풍성한 잔치이길 바랄 뿐이다. 그동안 난 위장이나 늘려놔야 겠다. 누구 말처럼 내 위장은 우주다! 를 외칠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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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2-12-20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박시후가 더 돋보여서 문근영이 이뻐요. 박시후는 사랑을 믿는 재벌이잖아요. 문근영은 본인이 속물이라는 걸 인정하는 가난한 여자구요. 그런 역을 기꺼이 맡은 문근영이 참 기특하달까.

Mephistopheles 2012-12-21 09:07   좋아요 0 | URL
근영씨도 나름 고민했을꺼에요. 전작(메리는 외박중)이 아주 제대로 말아 먹어버렸으니까요. 걍 해품달이나 찍지 그걸 왜 해가지고서리..쩝쩝.

무해한모리군 2012-12-20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1월에 작은(?)수술을 하나 예약해 두어 그런지 아프지 않는게 제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가적 대사는 강이나 산을 파헤치지만 말고 5년하다 내려갔으면 합니다.

Mephistopheles 2012-12-21 09:08   좋아요 0 | URL
엥..작은 수술..? 그래도 수술은 수술인데 암튼 무사히 치루시길 바랍니다.(작년 척수마취의 그 불쾌한 아른함이 기억나는군요.) 유전자의 내림이 심하다면 5년으로 끝날까도 사실 걱정입니다.

2012-12-20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패배가 좌절이 아니지만 승자독식 사회구조 상 패배는 쓰고 처참할 것이다."...ㅠ.ㅜ
내년 목표 이루시길. 올해 처절한 경험이 뭔가 밑거름이 되신 듯한...

Mephistopheles 2012-12-21 09:09   좋아요 0 | URL
어쩌면 지독하게 사는 분들에게는 뭐 그런 걸로?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전 "사기"의 그 술수를 너무나 많이 경험했어요. 다행히 걸려들진 않았지만요..^^

moonnight 2012-12-20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정말 수고많으셨어요.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실 듯 ㅠ_ㅠ 내년엔 더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들 되실 거에요. (삼재도 메피님 앞에서는 기가 죽을 듯 ^^;)

Mephistopheles 2012-12-21 09:11   좋아요 0 | URL
저에게 있어서 올 한해는 참 다사다난이란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별별 일이 많이도 일어났었습니다. 새옹지마라는 사자성어를 많이 믿고 싶네요..^^

야클 2012-12-21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물지만 운수대통하는 '복삼재'도 있으니 너무 쫄지 마시길! ^^

Mephistopheles 2012-12-21 23:55   좋아요 0 | URL
"드물지만"이 도드라져 보입니다.^^

카스피 2012-12-21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보는 문근영 넘 이뻐용^^
 

누군가 나에게 “진보” 냐 물어보면 선뜻 “그렇다.” 답을 말하기 주저스럽다. 그 흔하다는 공식적인 진보적 행동을 했던 적이 한 차례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진보가 가끔 보여 주는 거침없는 질주본능에 브레이크에 살짝 발을 얹고 싶었던 적도 종종 있었다.

 

그렇다면 난 보수인가? 라고 생각해보면 역시 그건 아닌 것 같다. 보수가 진짜보수가 아닌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이 한계라면 한계일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보수는 대부분 태생 자체가 뱀의 부정적 습성을 타고 난 모습을 자주 보여주곤 했었으니까. 기회주의, 수구의 모습과 습성을 너무나 많이 노출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우리나라 보수의 핸디캡이라고 보고 싶다.

 

딱 부러지게 말은 못하겠으나, 단지 진보보단 보수를 더 싫어하는 위치에 존재한다고 해야 할까. 이런 기본적인 생각은 정체성이 생겨난 시점에서부터 크게 변하진 않았다. 근 20여년을 이런 생각이 내 언행의 기본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도 가끔 선진국이라 칭해지는 다른 나라의 보수는 나름 감동을 주곤 했었다.

 

영화배우, 감독 그 이상으로 좋아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알다시피 열성 공화당지지 보수 인물이지만, 그는 흔히 말하는 바른 보수는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잘못된 보수에 거침없는 일침을 가하며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성까지 종종 보여주곤 했었다.

 

난 이런 사람이 적어도 이 땅에 존재하는가. 의문을 가지곤 했다. 기회주의자와 수구로 얼룩지지 않은, 사상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더라도 인정과 더불어 존경의 범위까지 갈 수 있는 보수.

 

 

 

몇 분짜리 연설만 가지고 단언을 할 순 없겠으나, 그래도 진정한 보수의 가능성에 조금은 희망을 걸어본다.

 

뱀꼬리 : 역대 정권 고직을 두루 걸치고 온갖 이득과 기득권층에 안주해왔던 과거를 돌이켜 보면 깜짝 변신일수도 있을 것이다. 이 찬조 연설이 되어서는 안되는 인물에게 갈 표를 조금이라도 감소시키는 힘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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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12-14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념과 가치를 지키는 보수가 아니라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는데 급급하다면 조만간 역사의 복수를 당하겠죠. 이번 선거가 그런 선거가 되지 않을까요?

Mephistopheles 2012-12-16 22:06   좋아요 0 | URL
그런데요? 우리나라 역사상. 그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한 보수가 아닌 기회주의자들이 복수를 당한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일제시대 후, 해방 후, 분단 후, 6.25 후, 군사정권 후, 민주화 후....이렇게 수많은 기회가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난 눈이 싫다. 늙기도 늙었지만 비와 달리 눈이 내린 후 지저분한 마무리를 싫어한다. 한바탕 쏟아지는 소나기가 목욕탕 이태리 타월 같은 느낌이라면 펑펑 내리는 눈은 기름때 덕지덕지 낀 냄비를 설거지 한 후 손에 남아있는 불쾌한 미끈거림과 비슷하다. 더불어 눈에 대한 트라우마도 제법 있다 보니 요즘처럼 하루 멀다하고 펑펑 내리는 눈은 전혀 반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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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1

지금보다 조금 젊었을 때 예비군 훈련을 받기 위해 아침부터 유난을 떨었었다. 통지서를 한 손에 들고 룰루랄라 집을 나서서 저 밑에 있는 초등학교로 내리막길을 달려가고 있을 때. 난 떴다. 마이클 조단이 부럽지 않아요. 아 빌리브 아 캔 플라이 해요. 하는 느낌이 대략 4~5초간 지속되더니 무지막지한 충격음과 더불어 눈 덮인 내리막길에 사정없이 파워 밤이 작렬되었다. (주) 파워밤-프로레슬링 기술로 상대방을 들어 링에 매다 꽂는 기술. 충격도 충격이지만 비주얼과 효과음이 기가 막혀 파워풀한 기술로 통함)

 

30여초 어버버 벙어리 삼룡이 모습으로 말도 못하고 얼음판에 자빠져 있었고 상태를 지켜보던 지나가던 사람들이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모습까지 연출된다. 어디 크게 다친 건 없었으나 사람이 의식을 놓친다. 란 의미를 몸소 체험했던 첫 번째 경험이었다.

 

트라우마 #2

눈 온 다음날 운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무모한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역시나 내리막길에서 만화 속 이니셜 D의 장면을 연출하며 그대로 앞차를 추돌. 다행히(?)바른 생활 부부를 만나 별 문제없이 보험처리로 사건은 마무리되었지만 눈 깔린 날 도로상황은 마복림 할머니의 신당동 떡볶이의 비결만큼이나 며느리도 모를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트라우마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오는 날 운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승용차가 아니라 트럭이라는 사실과 이건 미끄러지면 그걸로 끝이 아니라 전복까지 갈 수 있는 상황. 더불어 고속도로라는 상황에서 어중간한 부상이 아닌 사망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사실. 무슨 무슨 재난영화처럼 눈 덮인 산꼭대기 고속도로에 무릎 밑까지 내린 눈에 차가 파묻혀 4시간을 넘게 갇혀 있었던 이야기. 아주 잠깐 베어 그릴스는 이 눈으로 둘러싸인 척박한 환경에서 뭘 잡아먹었더라?를 생각했더랬다. (눈을 퍼 먹는 건 기억나는데 나머진 도통...)

 

이제 나도 호호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정강이와 팔뚝의 상처를 보여주며 손자에게 들려 줄 “무용담” 정도는 하나 생겼다고 애써 해석하고 싶었단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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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난 정말 눈이 싫다..우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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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2-12-08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워밤.. 챙피한데 벌떡 일어 날 수도 없는 데미지.. 크..

Mephistopheles 2012-12-10 13:35   좋아요 0 | URL
파일 드라이버가 아닌게 천만다행이랍니다.

moonnight 2012-12-08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 ㅠ_ㅠ;;;;; 눈 싫어하실 만 하네요. ㅠ_ㅠ;;;;;;;;;;;;;;;;;;
전 그다지 트라우마가 없으면서도 눈은 어렸을 적부터 싫어했어요. 어릴 때부터 이미 동심이나 낭만 같은 거랑은 거리가 먼 인간이었나봐요. 운전하기 힘들고. 투덜투덜;

Mephistopheles 2012-12-10 13:36   좋아요 0 | URL
음.....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애늙은이"혹은 영감(남자의 경우)의 범주에 속하셨단 말이었군요...(저도 그런 류에 속하는 편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