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58 그래서 그러한 전후 상황을 아는 나로서는 번역을 탓하며 읽지는 않는다.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그냥 넘어간다. 그래도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게다가 많은 부분에서는 번역도 그런대로 좋다. 살다 보면 부딪히게 될 수많은 삶의 모습과 우리가 처한 환경을 이토록 줄기차고 극단적으로 묘사하는 책도 드물 텐데, 번역자는탁월한 추진력으로 그 끝없는 작업을 해내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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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5 그러나 학문이란 그런 것이다. 시간, 공간, 적의, 우호, 효율, 성과, 인정 같은 단어는 뒤로 넘기고 오직 지성의 세계를 확장시키기 위해 삶을 투여하는 작업, 그리하여 인류가 우리에게 전해 준 온갖 자취를 온전히 우리의 것으로 삼아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문명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면 어떤 희생과 비난도 감수할 수 있는 게 학문의 세계요, 학자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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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3 《산성일기》를 기록한 이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을 통해 분명 관용없는 역사의 심판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남한산성 안에서 일어난 일을 오직 손으로 기록하였다.
이름도, 감정도, 판단도 남기지 않은 채. 그리고 그 기록은 400년가까이 전해져 오늘, 우리에게 말한다.
"역사를 두려워하라! 너희들의 탐욕과 무지를 결코 잊지 않을 테니, 너희 두 손에 움켜쥔 권력과 왜곡이 잊힐 거라 오해 마라. 역사는 반드시! 반드시 기억한 후 너희에게, 아니 너희 후손에게 되돌려 줄 것이다."
 2015년이 끝을 향해 달리는 오늘, 그 역사는 다시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 그러나 귀가 없는 자들은 듣지 않을 것이니, 내가 두려운 것은 오직 역사의 차가운 피다. 감정의 조각 하나 없이 심판을 내릴 바로 그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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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2 소설은 뜨거운 감정 속에 이 엄청난 물건들을 묻어 버릴 수 있으나, 역사는 눈 부릅뜨고 사실을 기록한다. 나는이 물건들 목록에서 지도층 잘못 만나 헛되이 죽어 간 조선 백성들의 흔적을 확인한다.
역사는 두려운 존재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금언은 결코 위인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는 악인의 이름을 더욱 깊이, 그리고 멀리 기억한다. 예수는 "그들은 그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고 용서해 줄 것을 기도했으나, 역사는 무지한 자들조차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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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1 그러나 역사는 뜨거운 피를 용납하지 않는다. 소설이 살아남은 자의 감정을 기록한다면, 역사는 죽은 자의 행적을 기록한다. 그러하기에 역사에 흐르는 피는 차갑디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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