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광천녀 27 - 완결
시미즈 레이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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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했던 방향의 해피엔딩이 아니었음에도, 먹먹해지는 쓰린 가슴을 남겨둔 채로, 그래도 작가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지나치게 탐미적인 그림체이지만 결코 스토리가 먹혀들어가지 않는 시미즈 레이꼬는, 매번 '달'에 대한 집착을 광적으로 보여주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깊은 공감 혹은 '동화'의 수준으로 빨려 들어가니, 그녀의 세계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앞서 달의 아이나 단편 모음집 등등의 작품보다 훨씬 많은 준비를 거친 게 눈에 띈 월광천녀는, 그럼에도 작품 후반에선 조금 서두른 느낌이 나서 아쉬움이 전혀 없지는 않다.  이를테면 충성바쳐 헌신한 보디가드 고력사의 죽음이 그랬다.  좀 어이 없다는 느낌. 그가 유이에게 전해 준 집안 대대로 내려온 무기(침처럼 생긴...)의 역할도 상징성 없이 끝난 것 같아서 응? 이런 반응을 자아냈다.  그렇지만 이런 비교적 사소한 문제들을 버려둔다면 작품의 완성도는 매우 높다.

반전의 반전이랄까. 신화와 전설, 그리고 과학적 요소가 모두 결합된, 그러면서도 그 중심에선 '인간'이 있는 따뜻한 작품이었다.  '악'을 '선'이라고 바꿔 부를 수는 없지만,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옹호할 마음은 없지만, 적어도 아주 조금만큼의 '이해'는 가능하게 했던 입장 설명들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아키라가 살인마가 되어버린 자신이 부끄러워 유이의 손을 거부했던 것을 사실은 후회한 것, 그래서 어떠한 이유에라도 손 내밀어주기를 바랬던 것. (그녀가 결국 그대로 해내는....)

카에데가 자신만 악마가 되면 카츠라가 살 수 있다면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는 모습 등은 충격적일 만큼 심장에 강하게 와 부딪쳤다. 

옳다고 말할 수 없지만, 쉽게 손가락질 할 수 없는 모습들이, 우리 사는 사회의, 사람 사는 모습이 거기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미도리와 유이의 애틋한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미도리의 당부 혹은 유언은 도식화된 명제이긴 하지만, 그것을 마음으로 인정하게, 깊이 공감하게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가 유이에게 가진 사랑과 콤플렉스, 자격지심 등이 올곧이 독자에게도 이해되고 그래서 더 아프고 더 예쁜 그들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다.

마유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작품 초반 그녀의 집착과 막무가내 등은 안하무인 격이어서 화딱지가 많이 났지만, 그녀를 통해서 아키라가 구원받았던, 또 안식하게 했던 관계를 인정하게 되었을 때, 누군가 자신을 필요로 해준다는 사실에 살 수 있었다는 고백에 크게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시미즈 레이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고개 끄덕이는 것들을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다시 또 왜 예스가 되는 지를 리얼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 솜씨에, 탁월함에 반하지 않을 도리가 내게는 없었다.

친한 지인에게 이 책을 빌려주었더니 자신도 한 호흡에 읽지 못하고 조금씩 숨 골랐다는 이야기를 한다.  충분히 공감한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현재 연재 중인 '비밀'이 언제 끝날 지, 장기 연재가 될 것 같지만 차분하게 기다려보련다.  기다리면 명작이 나올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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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읽기의 혁명 - 개정판
손석춘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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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매체를 통해서 전달되어지는 '사실'들이 이미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영향을 받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알고서 걸러지는 것들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지만 모르고 지나치는 것들의 무비판적 영합을 어떻게 감당해낼 것인가. 

또 혼자서만 알고 있다고 큰소리칠 일도 아니다. 대중이라는 존재의 바보같은 순진함이 주는 무서운 힘은 또 어떻게 하라고.  가장 위험하고 가장 사심이 많은 신문이 우리 땅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힘센 신문으로 여전히 살아있는데 말이다.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과거만큼의 영화(?)는 못 누릴지라도, 그들 거대 부자 신문도 인터넷을 역습하여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고 미화하고 왜곡하는 현실을 우리는 보고 있다.  무분별한 욕설이 난무하고 익명 뒤에 숨어 비겁한 플레이를 하는 네티즌을 경계해야함은 마땅하지만 동시에 살아있는 '필력'이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음은 또 다행이다.

사회의 숨은 이면을, 거짓된, 더러운 부분을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의 지적 능력과 판단 능력을 갖추어 가면, 그 뒤엔 또 다시 그것들에 익수해져서 똑같이 수구편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기를 바란다.  우리에게는 정말로 '혁명'이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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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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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루투갈 작가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고 하는군요. 이름만 보고 일본인인 줄 알았어요^^;;
제법 두꺼운데, 문장 부호가 하나도 없어서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챕터 끝날 때까지 놓기가 아주 망합니다..;;;;
그러나 재밌어서 또 손을 놓기가 어렵습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민망할 만큼 파고들어간 작품이에요.
그렇지만 그 시선이 늘 어둡지만은 않습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 매우 독특한 유형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네요.
마지막 대사가 너무 섬짓했던....(스릴러 같았어요~)
읽고,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이랍니다~

만약 정말로 온 세상이 다 눈멀어서, 사회의 모든 것이 정지되고 무법천지가 되고 생존만을 위한 싸움만 허용된다면,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심, 그리고 자부심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생각했습니다.  나 자신 결코 추하지 않게 살아남을 수 있을 지도 솔직히 자신이 없구요.  그래서 주인공 의사의 아내의 '현명함'에 반했습니다.  온 세상이 다 눈 멀고 혼자만 눈뜨고 있는 자의 고독과 불안을 과연 우리는 견디어 낼 수 있을까요.  또 온 세상이 다 눈을 떴는데, 나 혼자 눈 감을 시간이 왔다는 것을 어떻게 감당해낼까요.

질문은, 각자 스스로에게 해보고 답해야겠지요.  저는 부끄럽고 자신이 없어 고개만 돌리다가, 아직 밝은 내 눈에 안도합니다.  그런데, 육신의 눈이 아닌 마음의, 그리고 정신의 눈이라고 가정을 하면 또 얼마나 섬찟하고 무서운 지...

정직하게, 착하게 살아 '버릇'해야겠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순간에 '판단'을 해야할 때가 오면,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게, '습관'처럼 제대로 살아야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운 내가 되기를 원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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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양장)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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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라고만 정의하기에는 몹시 깊고 심오했다.  어린 아이에게는 아이 나름의 교훈과 감동을, 어른에게는 또 그만큼의 몫을 내어주고 있다.  연령대별로 모두가 같고도 다른, 또 처한 입장에 따라 역시 같고도 다른 느낌과 생각을 전달해 줄 것이다.

암탉에게는 마당이라는 '세상'은 동경이었다.  그 마당을 나왔을 때 그것을 '성취'라고 불렀다.  그러나 세상은 짐작하고 바랬던 것과 너무 달랐다. 질시와 반목, 배척, 위험이 도사린 그곳은 유혹이 많고 아름다웠던 것 이상으로 무섭고 추한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돌아갈 길은 없다. 전진만이 허용될 뿐이다.

암탉은 여전히 용감했다.  알을 품으며 그 알이 깨어나길 기다리며 깨어난 새끼가 자라도록 헌신하는 모습은 우리의 어머니들의 꼭같은 자화상을 보여주었다.  엔딩의 자신을 희생하여 생명을 살려낸 모습은 웬만한 다큐멘터리 이상의 감동도 우리에게 선사한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여러 화자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이 사회의 소외된 여러 사람들.  약자, 병자,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비정규직... 어느 사회나 존재하는 어두운 그림자일 테지만 유독 아프게 아프게 밟힌 것은 나 자신도 사회의 '주류'가 아닌 '비주류'라는 판단 때문일 것인가.  사람은 자신이 약자의 입장에 서보지 않으면 그 아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혹은 이해는 해도 올곧이 가슴으로 인정하지 못한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하고, 백조가 될 미운 오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콩쥐를 구박하는 새언니마냥 우리가 혹 그렇게 살지는 않았는지, 잠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우리 앞에 언제나 마당이 펼쳐져 있다.  위험하지만 매력적인, 동경했지만 결코 꿈의 세상이 아닌 그곳이 우리에게도 있다.  용기를 가지자고, 물러서지 말자고, 전진하자고... 우리가 아팠던 시간을 되물려주지 않는 마음을 갖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 좋은 책 읽고, 우리 같은 꿈 꾸자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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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일기 - 인조, 청 황제에게 세 번 절하다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6
작자미상 지음, 김광순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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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를 접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알려져 있지만 척화파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니 그가 기울었을 마음은 대강 짐작이 간다.  그런 전제조건으로 책을 읽었음에도 쉽게 페이지를 넘기기 어려울 만큼 마음이 불편했다.  당시의 답답했던 국제 정세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의 현주소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침략해보지 않은('못한'이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얘기하곤 했다.  잦은 침략을 당했지만 그때마다 민족이 뭉쳐서 이겨내었다고 역시 자랑하며 떠든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무조건 맞지도 않다.) 그러나 침략당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침략 당한 사실에 대한 반성은 잘 보이지 않는다.  반성하지 않으니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고 극복해내지 못한다는 한계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병자호란은 우리가 불러낸 전쟁이다.  광해군의 대북외교는 당시로서는 최선이었고 적절한 판단이었다.  그가 내치에서 어떤 잘못을 저질렀건 간에(솔직히 유교적 질서를 빼면 크게 잘못한 것도 별로 없다.ㅡㅡ;;;;) 임진왜란을 온 몸으로 겪으면서 외교와 국방의 문제를 뼈속 깊이 깨우친 그의 이성과 판단을 능가하는 신하가 당시에는 없었다.  현실적 대안은 아무 것도 없는 채 오로지 명나라에 대한 의리 하나로 나라를 무너지게 한 이들이, 청나라의 말발굽 앞에 무릎 꿇은 것은 국가적 치욕 이상으로 개별적 어리석음의 소치였다.  더군다나 이후 인조가 보여준 행보를 생각해 볼 때, 그들을 동정하고픈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다(ㅡㅡ;;)

이미 지나온 역사를 지금에서 돌이킬 수 없으니, 답답하고 화딱지 나지만 그래도 이런 부분들은 심호흡으로 넘어간다고 치자.  나를 더 황당하게 만든 것은 이 책을 만든 필자의 설명들이다.  광해군을 묘사한 부분도 인조 때의 탁상공론을 좇아가더니, 인조 손에 억울하게 죽은 소현세자와 그 가족들을 폄훼한 표현들 앞에서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설마 연구가 부족해서?  이건 부지런하지 못한 까닭 아닐까?  정말로 그렇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 싫고 무섭다.  당시 정황을 잘 모르는 독자가 이 책을 무비판으로 읽었을 때 입을 영향력이 두렵다는 얘기다.  (물론, 평범한 독자들은 이런 책에 별 관심 없다.  전공공부나 숙제가 아닌 한..;;;;)

그리고 더 씁쓸한 것은, 오늘의 우리 국제 형세도 당시의 조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현실 때문이다.  미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저자세 외교, 바른 말 쓴 소리 한 번 제대로 못하고 그들이 어떤 폭력을 휘두르건 지당하다는 듯 순종하는 모습들에 투영된 자화상들.  야구 경기 하나에도 우리는 강대국의 논리가 바로 들어가지 않던가.  현재 FTA협정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한숨과 뜨거운 눈물을 쏟고 있다.  우리가 이 현실을 극복해내지 않는 한, 과거의 조선이 현재의 대한민국이, 미래의 우리가 바라볼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숨만 쉬고 있을 수 없지만 기운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진정한 자유, 진정한 자립, 진정한 의미의 '독립'을 오늘도 목메어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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