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과학

제 2350 호/20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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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 김점동


1887년 몹시 추운 어느 겨울날, 이화학당의 당장실로 열 살짜리 여자 아이가 부모의 손을 잡고 들어섰다. 그곳엔 아이가 생전 처음 보는 파란색 눈의 서양인 부인이 앉아 있었다. 부인은 아이를 반갑게 맞으며 난로 가까이 다가오라고 잡아당겼다. 

그 순간 아이는 두려움을 느꼈다. 부인이 자신을 난로 속에 잡아넣어 태워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 부인의 친절한 미소를 보며 아이는 이내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 서양인 부인은 바로 이화학당의 설립자인 미국인 선교사 스크랜턴 부인이었으며, 여자 아이는 이화학당 부근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김점동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여학교인 이화학당이 개설된 시기는 1885년 8월이다. 그러나 첫 학생이 들어온 것은 그 이듬해인 1886년 5월이었다. 여성의 신교육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던 때라 양반집 자녀들이 오지 않았던 탓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의도와는 달리 이화학당에는 주로 가난한 집 아이들이 입학했으며 김점동도 바로 그런 경우였다. 

이화학당의 네 번째 학생으로 입학한 김점동은 특히 영어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그래서 1890년 이화학당을 졸업한 후, 김점동은 보구여관에서 일하고 있던 여의사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의 통역을 맡게 됐다. 보구여관(保救女館, 여성을 보호하고 구한다)은 병에 걸려도 아픈 부위를 의사에게 보이는 것을 꺼려하던 여성들을 위해 이화학당 구내에 개설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전문병원이었다. 

그곳에서 김점동이 로제타 셔우드 홀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된 의사의 모습은 늘 칼을 들고 수술하는 것이었다. 당시 의사라는 직업이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은 이유였다. 그런데 어느 날 구순구개열 환자, 속칭 언청이라 불리던 10대 소녀가 로제타의 수술을 받고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 후 김점동은 자신도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김점동은 남편 박유산과 함께 1895년 2월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리버티공립학교에 입학했다. 자신에게 의사의 꿈을 심어줬던 로제타 셔우드 홀의 친정이 바로 그 부근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도움으로 미국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한 그해 9월부터 김점동은 병원에 취직해 생활비를 벌면서 라틴어와 물리학, 수학 등을 공부했다. 

1896년 10월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에 입학한 김점동은 각고의 노력 끝에 4년 만에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한국 최초의 여성 의사가 됐다. 당시만 해도 서양의학을 공부해 의사가 된 이는 미국에서 최초로 의사 자격증을 딴 서재필과 일본에서 의학교를 졸업한 김익남 뿐이었다. 김점동은 그들에 이어 한국인으로서는 세 번째 의사가 된 것이다. 




김점동이 미국에서 어려운 유학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남편 박유산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큰 역할을 했다. 생활비와 아내의 학비를 대기 위해 박유산은 농장에서의 막노동과 험한 식당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아내의 졸업을 2개월 앞두고는 폐결핵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미국에서 남편의 장례를 치른 김점동은 1900년 10월 귀국했다. 그해 12월에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잡지인 <신학월보> 창간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부인 의학박사 환국하심. 박유신 씨 부인은 6년 전 이화학당을 졸업한 사람인데, 내외가 부인 의사 로제타 셔우드 홀 씨를 모시고 미국까지 가셨더니 공부를 잘하시고 영어를 족히 배울뿐더러 그 부인이 의학교에서 공부하여 의학사 졸업장을 받고 지난 10월에 대한에 환국하였다. (중략) 미국에 가셔서 견문과 학식이 넉넉하심에 우리 대한의 부녀들을 많이 건져내시기를 바라오며 또 대한에 이러한 부인이 처음 있게 됨을 치하하노라.” 

뜨거운 환영을 받으며 귀국한 그는 소녀 시절 의료보조로 일했던 보구여관의 책임의사로 의료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먼저 한국에 들어와 있던 로제타 셔우드 홀 여사가 죽은 남편을 기념해 평양에 기홀병원(起忽病院)을 세우자,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평양에 부임한 지 10개월 만에 300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또한 평양의 여성치료소인 광혜여원(廣惠女院)에서도 진료했으며, 황해도와 평안도 등을 순회하면서 무료진료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로제타 셔우드 홀 여사가 만든 기홀병원 부속 맹아학교와 간호학교에서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 같은 공로로 그는 고종 황제로부터 은메달을 받았다. 

김점동은 엄동설한에도 당나귀가 끄는 썰매를 타고 환자를 찾아갈 만큼 열성적이었다. 당시만 해도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 여성 의사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었으나, 그의 인술(仁術)은 서서히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김점동이 수술로 환자를 간단히 낫게 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귀신이 재주를 피운다’라는 말이 나돌 만큼 명의로 알려졌다. 

진료 활동 외에도 그는 근대적 위생 관념을 보급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또 인공관을 이용해 방광질 누관 폐쇄수술을 집도하는 등 의미 있는 의료적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바쁜 의료 활동을 벌이던 김점동은 자신의 몸에 질병이 서서히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질병은 바로 남편을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죽게 한 폐결핵이었다. 

김점동은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뒤늦게 베이징으로 요양을 떠나기도 했으나, 1910년 4월 13일 서울의 둘째 언니 집에서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아무런 소생을 남기지 않은 35세의 짧은 생이었다. 

그로부터 16년 후인 1926년 7월 로제타 셔우드 홀 여사의 아들인 셔우드 홀(Sherwood Hall, 1893~1991)이 한국으로 건너와 해주구세병원의 원장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그는 1928년 결핵환자를 퇴치한다는 명분하에 우리나라 최초의 결핵 요양원인 해주구세요양원을 세웠으며, 1932년에는 해주구세요양원 이름으로 크리스마스 실을 발행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셔우드 홀은 늘 어머니와 함께 일을 했던 김점동을 이모처럼 따랐다. 그가 이처럼 우리나라의 결핵환자들을 위해 노력한 이유 중 하나는 김점동의 죽음 이후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 실은 김점동 덕분에 발행된 셈이다.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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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5-03-24 0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점동, 셔우드 홀.... 크리스마스 씰...
그 시대의 결핵은 지금의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이었던 듯...
기억해야 될 이름... 이런 분들이 있기에 의학도 사회도 점점 좋아지는 것이겠죠,
오늘의 대한민국 생각하면 기막힌 것도 많지만...ㅠ

마노아 2015-03-24 23:18   좋아요 0 | URL
학교 문턱이 그리도 높던 시절에 이리 힘들게 공부를 마쳤는데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졌네요.
그 헌신이 놀랍고 고맙습니다.
해마다 사던 크리스마스 씰인데, 이번 해에도 잊지 말아야겠어요.
이분들의이름을 기억하면서요...

무해한모리군 2015-03-25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5해를 살아도 저렇게 열정적으로 사신분이 있네요... 나는 뭐했나 ^^;;

마노아 2015-03-25 11:27   좋아요 0 | URL
숙연해지면서 부끄럽게 만드는 열정의 주인공이었어요.^^;;;
 

새학기가 시작됐다. 숨가쁜 한주일을 보냈고, 앞으로는 더 바빠질 게 분명한 스케줄이 놓여 있다.

같은 날 같이 면접 보고 같이 근무하게 된 한 청년!

음 뭔가 반듯반듯해 보이고 정중한 것이 매력적이군!

앞으로 잘 지내야지... 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확인이 필요해서 오늘 지나가는 말투로 슬쩍 물었다.


"혹시 결혼했어요?"


난 당연히 아니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이죠. 샘도 했잖아요."


헐, 완전 벙찜... 물먹은 것도 모자라 졸지에 유부녀 됐음.


하아, 이번 생은 힘든 것 같아... 연애 따위...(ㅡㅡ;;;;)


토마스 하디를 좋아한다고 하자 18세기 말에 출간된 초판본을 구해주는 남자, 컴퓨터가 고장 났다고 하자 이메일 보내라며 맥북을 사주는 남자, 직접 헬기를 몰고 시애틀로 날아가는 남자, 졸업선물로 빨간 스포츠카를 선물해주는 스물 일곱의 억만장자를 원한 것도 아닌데 말이지. 흥흥흥!!!










수요일이나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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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3-03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응? 마노아님도 그레이 읽었어요? ㅋㅋㅋㅋㅋ

마노아 2015-03-03 09:05   좋아요 0 | URL
영화를 봤습니다.ㅎㅎㅎ

다락방 2015-03-03 09:05   좋아요 0 | URL
어땠어요? 울 회사 여자동료는 책 안읽고 영화만 봤는데 잼났다고 하더라고요. ㅋㅋㅋㅋㅋ

마노아 2015-03-03 13:21   좋아요 0 | URL
별점 10점 만점 중에 1개 줄 정도로 형편없지 않았어요.
생각보다 볼 만했고, 생각보다 많이 덜 야했어요. ㅋㅋㅋ
그렇지만 초반 그레이 씨의 대사는 아주 오글거려 혼이 났답니다. ㅎㅎㅎ

아무개 2015-03-03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봤군요 ㅎㅎ

그나저나 우리 포기하지 맙시다
언제가되든
뭐 일생에 꼭 한번쯤은
만나게될꺼에요.
포기하지 맙시다 응?^^

마노아 2015-03-03 13:22   좋아요 0 | URL
책 제목이 심연에서 해방으로 끝나는 걸 보니 왠지 안 보고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암튼 책도 궁금해지긴 했습니다.^^ㅎㅎㅎ

아아, 포기는 이른 건가요?
이번 생에 누군가 있긴 할까요?
크흑, 괜찮아 보이는 사람은 다 임자가 있더란 말입니다.
갓지성군이 이보영의 남자인 것처럼 말입지요.ㅋㅋ

뷰리풀말미잘 2015-03-03 20:34   좋아요 2 | URL
남자들이 마노아님을 내버려 두다니 미친게 아닐까요?

마노아 2015-03-03 20:55   좋아요 0 | URL
오, 이 댓글 미치도록 좋은데요? +_+

다락방 2015-03-04 09:07   좋아요 0 | URL
말미잘님 댓글좀 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치겠다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자마음 후려쳤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노아 2015-03-04 09:45   좋아요 0 | URL
나 이 댓글에 다락방님이 대댓글 달 줄 알았음. 여자 마음 후려쳤으니까. ㅋㅋㅋㅋ

아무개 2015-03-04 13:17   좋아요 0 | URL
나는 말미잘 님의 댓글에 좋아요를 눌렀어요 ㅎㅎㅎ

마노아 2015-03-04 15:11   좋아요 0 | URL
실속은 없지만 기분 좋은 댓글들입니다. ㅎㅎㅎ

무스탕 2015-03-03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심다, 마노아님.
또 한 학기가 시작됐네요. 정성이도 어제부터 고딩생활 시작했어요.
중학교에서 절반 이상이 같은 고등학교로 갔는데 정성이네 반엔 아는 친구가 한 명도 없대요 -_-
곧 평생 갈 좋은 친구가 생기겠죠.
건강합시다~~ 건강해야 연애도 잘 할 수 있슴다. ㅎㅎ

마노아 2015-03-03 21:52   좋아요 0 | URL
꼬꼬마 정성이가 이젠 고등학생이 되었네요. 어휴, 시간 참 빨라요.(>_<)
제 조카는 한반에 30명인데 그중 19명이 동창이래요. 고만고만한 동네 친구들의 몰빵이에요.^^
날이 스산해요. 내일은 더 춥다고 하네요.
우리 찬바람 안 들게 내일도 건강히 지내도록 해요.
건강한 연애, 해야죠. 암요.^^ㅎㅎㅎ

2015-03-06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08 0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1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2 15: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2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3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5-03-16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 아깝네요. 저 며칠 전에서야 승환님의 화양연화 듣고 반해버려 몇 번이나 듣고 감격하고 있어요. 왠지 이승환의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 같은 마노아임이 부러웠다는^^;;

마노아 2015-03-16 23:38   좋아요 0 | URL
우헤헤헷, 뒤늦게 울 환님의 매력에 풍덩! 빠지셨군요.^^
지난 금요일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와서 유희열과 환상 궁합 유머를 구사했어요.
지난 설 연휴 때의 방송도 90분이나 공연실황을 보여주어서 좋았답니다.
화양연화는 뮤직비디오가 두개인데 어쿠스틱한 버전을 좋아해요.
우동집의 갖가지 재료들을 이용한 연주가 일품이에요.
저 이번 주말에 승환옹 공연 갑니다.
컨디션 조절해야 하는데 지금 피곤이 몰려서 상태가 메롱인 것이 걱정이에요.
토요일을 기다리며 버텨야겠어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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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쿼바디스(김재환, 2014)


교회 다닌다고 말하기 부끄러워진지 한참이나 된 대한민국의 세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야말로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고 다리 붙잡고 묻고 싶은 심정이다.

출연 배우들이 얼마나 능청스럽게 연기를 잘하는지...

영화 속에서 부끄러운 성직자들로 등장하는 그들에게, 이런 영화도 기꺼이 출연해 주셔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다. 

사랑의 교회 새 성전이 아주 거대하다는 건 알았는데 영화에서 풀샷을 처음 봤다. 헉 소리 나올 정도였다.

그걸 지난 주에 버스 타고 지나가다가 실물을 봤다. 입이 쩍 벌어지더라.

낮은 곳에 임하소서.... 가 절로 튀어나온다.










★☆



2. 민우씨 오는 날(강제규, 2014)


쿼바디스 보러 간 극장에서 같이 상영하고 있던 30분짜리 단편영화였다. 고수 주연 포스터가 마음에 들었고, 고작 30분만 투자하면 되는 거여서 같이 보았다. 


문채원이 연기하는 역할이 이미 손숙의 나이가 된 여인이, 민우씨가 떠났던 그 시간에 머물러 있음은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여전히 소원하고 멀기만 한 통일의 문제가, 이산가족의 현실을 짧은 분량 안에 애잔하게 담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 외교통일위원장에 임명된 사람 기사를 보고 있자니 흐음... 


강제규 감독의 전작들을 생각해 보면 감독이 통일과 민족, 애국.. 뭐 이런 것에 굉장히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마음이 앞서 촌스러울 때가 많긴 하지만... 아무렴 곽경택만큼 촌스러울라고... ㅎㅎ









★☆



3.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올리비에 아사야스, 2014)


연상의 상사인 ‘헬레나’를 유혹해 자살로 몰고 가는 젊고 매력적인 캐릭터 ‘시그리드’ 역으로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가 된 마리아 엔더스(줄리엣 비노쉬). 그로부터 20년 후 마리아는 자신을 톱 배우로 만들어 준 연극의 리메이크에 출연 제안을 받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역할은 주인공이 아닌 나이 든 상사 ‘헬레나’다. 리허설을 위해 알프스의 외딴 지역인 실스마리아를 찾은 마리아는 관객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시그리드’로 남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고, 잔인하고 이기적인 ‘시그리드’보다 솔직하고 인간적인 ‘헬레나’가 더 매력적이라 주장하는 매니저 발렌틴(크리스틴 스튜어트)과 끊임없이 충돌하는데... 
 급기야 ‘시그리드’ 역을 맡게 된 할리우드의 스캔들 메이커 조앤(클로이 모레츠)의 젊음을 동반한 아름다움마저 질투하기 시작한 마리아. 과연 그녀의 무대는 무사히 막을 올릴 수 있을까?


네이버에서 긁어온 줄거리이다. 시그리드 역으로 스타가 되었지만 이제 20년의 세월이 흘러 헬레나 역할을 맡게 된 배우가 겪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세월과 노화, 그리고 젊은 배우를 향한 질투를 줄리엣 비노쉬가 아주 노련하게 연기했다. 무대 위에서 뿐아니라 이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의 비서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충돌하게 되는 부분에서도 이미 그녀는 헬레나가 되어 있었다. 시큰둥한 얼굴로 전문 배우가 아닌 비서의 포지션으로 연기하는 스튜어트도 적당히 좋았고, 톡톡 튀는 매력과 싸가지 없음을 동시에 보여주는 클로이 모레츠의 연기도 마음에 들었다. 물론 줄리엣 비노쉬의 관록은 따라올 수 없었지만... 


보고 난 직후에는 대체 뭔 소리래? 하고 물음표를 띄우게 되지만, 찬찬히 되짚어 보면 잔잔한 은유들이 보이는 영화였다. 굿!












4. 테이큰3(올리비에 메가턴, 2015)


병원 진료 때문에 수영장을 갈 수 없던 날, 붕 떠버린 시간에 볼 수 있는 유일한 영화여서 보게 되었다. 원래 시리즈는 끝까지보는 편이기도 했는데, 앞으로는 시리즈라고 꼭 끝까지 보려고 애쓰지 말라는 교훈을 남기고 극장을 나왔다. 리암 아저씨, 이제 액션은 좀 무리이지 싶어요. 보는 제가 다 숨이 찼어요.ㅜ.ㅜ 그리고 이 시리즈 각본도 별로예요...;;;;









★☆


5.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김성호, 2014)


역시 병원 진료를 마치고 붕 떠버린 시간에 보게 된 영화다. 무척 착한 영화였고 메시지도 분명한 영화였지만 그렇다고 꼭 좋지도 않았다. 저 형편에 사립 초등학교를 고수한다는 게 아무리 아빠를 기다리기 위함이었다고 해도 납득이 되지 않는 설정이었다. 김혜자가 개를 훔쳐서 이사갈 집을 마련하려고 했던 아이가 이실직고 했을 때, 그래도 잘못한 건 잘못한 거라고 말해주는 게 좋았지만, 그의 선의로 500만원 짜리 집을 얻는 건 역시 판타지 같아서 좀 씁쓸했다. 대만힌국에서 멀쩡한 집을 구하는 일이란...ㅜ.ㅜ


영화 중간중간 애니메이션 같은 귀여운 설정들이 반짝반짝 빛났다. 김혜자와 최민수의 연기도 빛났다. 강혜정은... 생각 외로 별로... 











6. 마미(자비에 돌란, 2014)


정사각형 크기의 화면 비율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중증 주의력결핍장애를 갖고 있는 아들 스티브는 시설에서도 사고를 쳐서 결국 엄마가 집으로 데리고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말썽 많은 아들 덕분에 직장마저 잃어야 했고, 아들의 돌출행동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 마음의 상처로 언어 장애를 앓고 있는 이웃집 여인 카일라와 친해진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아들의 상태가 호전되어 갔고, 엄마도 일을 찾고, 카일라도 좀 더 자연스러운 언어구사가 가능해질 만큼 모든 게 아름다워지고 있었다. 바로 그 상태를 화면비율로 이야기한다.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신나게 달리던 스티브가 화면을 향해 손을 내밀더니 양 옆으로 밀어내듯이 창을 연다. 그러자 갑자기 일반 영화 비율로 넓어지는 화면. 그 순간의 음악과 어우러져서 특수효과 없이도 판타지스런 연출이 가능했다. 그러나 행복했던 순간 현실의 문제가 닥쳐오면서 바로 화면은 다시 1:1 비율로 돌아간다. 


이후 딱 한 번 더 넓은 화면 비율이 나오지만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꿈이었고 소망이었다. 현실은 더 치열하고 처절하며 서러웠다. 영화 말미에 엄마가 내려야 했던 결단은 부추길 수도, 말릴 수도 없는 그런 선택이었다. 비난은 쉽지만 책임은 쉽게 질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가장 마음이 찢어질 때 엄마는 울지 않았다. 솟구쳐 오르는 서러움을 억지로 삼키며,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씹으며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에서 관객은 더 아프게 울어야 했다. 이 배우, 보통 연기 잘하는 게 아니구나!


그리고 영화의 엔딩. 닫힌 문을 열고 뛰쳐나오는 소년. 하지만 화면은 넓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환상도 아니고 꿈도 아니고 현실 그 자체니까.


아주 인상 깊은 영화였다.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 영화의 감독이다.



자비에 돌란. 이름도 예술가처럼 보이는 이 잘생긴 감독이 무려 1989년생이란다. 헐! 이십 대에 이런 영화를 만들었단 말이야? 천재감독이라 불리는 게 전혀 과하지 않다. 이 무슨 유전자 몰빵이란 말인가...;;;;











7. 아메리칸 스나이퍼(클린트 이스트우드, 2014)


믿고 보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였다. 실화를 옮긴 것을 모르고 보다가 마지막에 자막 보고서 조금 얼떨떨했다.

워낙에 보수적인 색채가 짙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였지만 이 영화는 그 부분이 더 짙어졌다. 

국가에 대한 충성과 전우애로 똘똘 뭉친 주인공이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 클린트 감독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일지 좀 혼란스러웠다. 미국의 전략을 옹호한다고 보기도, 비판한다고 보기도 무척 애매한 어정쩡함이 있었다. 꼭 그 둘 중의 하나를 고르란 법은 없으니 그 중간 어디쯤일 수도 물론 있겠지만... 뭐랄까. 이 비극적인 결말 이후의 뭔가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을 하다가 만 느낌이었다. 전작들에 비해 만족도는 다소 떨어졌지만 그렇다고 클린트 감독에 대한 애정을 거둘 정도는 아니었다. 










★☆


8. 아메리칸 셰프


즐거운 영화였다. 눈과 귀와 심지어 혀까지 만족시키는 영화였다. 자기 일에 대한 열정과 프라이드가 높았던 게 근사했고, 공짜로 샌드위치를 먹게 된 노동자들에게 타버린 요리를 줘버리려고 하는 아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장면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스칼렛 요한슨의 우정 출연도 반가웠다. 


그렇지만 너무 지나치게 해피엔딩이라서 부자연스러웠다. 평론가의 제안도, 이혼한 부부의 재결합도 모두모두 말이다.


행복한 결말은 바람직하지만, 너무 비약적이라 설득력이 떨어졌다. 그래도 유쾌하고 즐거운 관람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식욕도 마구 돋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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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년 4월에 TV겸용 23인치 모니터를 구입했다. 그 전에 쓰던 17인치 모니터는 듀얼로 사용했는데 해상도랑 크기 차이가 많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한쪽에 뉴스 틀어놓고 웹서핑 하기 좋았다. 그렇게 나름 요긴하게 쓰던 녀석이 2주 전에 망가졌다. 모니터 하나에 창 두개 띄워놓고 쓰자니, 많이 불편했다. 방 두칸 쓰다가 단칸방 쓰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모니터 새로 구입했다.



작년에 듀얼 모니터 설치해 주었던 녀석의 추천으로 '잘만' 모니터를 샀는데, 사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쓰던 모니터(오른쪽)는 LED고 새로 산 모니터(왼쪽)은 LCD라는 걸.


땟깔이 다르다. 아무래도 더 비싼 오른쪽 화질이 난 마음에 드는데 이 녀석은 왼쪽이 더 사실적이지 않냐고 한다. 그런가? 


암튼, 듀얼 모니터 바탕화면에 서로 다른 사진 까는 방법을, 검색해봐야겠다. 그럼 짝짝이가 덜 신경 쓰이겠지. 


2. 킬미힐미 보는 재미로 일주일을 버티는 것 같다. 좀 전에 13회 방송 끝났다. 초반에 많이 지루했는데 막판에 요나가 살려주었다. 16부작 정도여야 하는 드라마를 20부작으로 만든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드라마니까 길면 좋긴 하지만 최근 긴장도가 많이 떨어진다. 10회까지 정점을 찍었는데 그후 3회 방송은 많이 늘인 느낌. 게다가 급하게 촬영한 티도 난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는데 추진력 떨어질라...;;;


3. 그 덕분에, 요새 '비밀'을 다시보기로 챙겨보고 있다. 이건 일년 반 전 드라마인데 16부작이다. 똑같이 지성과 황정음 주연이다. 황정음은 비밀 때가 훨씬 예뻤고, 지성은 킬미힐미 때 미모가 포텐 터졌다. 불과 한달 전까지 예뻐라 하던 종석군은 굿바이. 넌 너무 어렸어.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 지성 오라버니가 내 품속에.... 그러나 그는 이보영의 남자. 복받은 것!









4. 나는 가수다 시즌3가 금요일 밤마다 진행되고 있다. 양파가 노래 잘하는 건 알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잘하고 있어서 박수 쳐주고 싶다. 요즘엔 원숙미가 보인달까... 하동균도 초반 2곡은 참 좋았다. 스윗소로우도 좋았고, 세번째 방송에서 소찬휘의 '님은 먼 곳에'도 참 좋았다. 음원 다운 받고 싶었는데 막혀 있다. 원곡자 허락이 없나보다. 아쉽네...



5. 오늘 저녁 먹으면서 시청한 복면가왕에서는 케이윌과 김구라 때문에 많이 웃었다. 너무 잘 부르는 바람에 오히려 우승을 못한 경우랄까. 예능은 살렸지만 우승은 아깝네. ㅋㅋㅋ


6. 며칠 전 불후의 명곡에서는 고 이영훈이 전설로 등장했다. 최근 진행자가 된 윤민수가 모처럼 보컬로 나섰고 우승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옛사랑'을 불렀다.



난 이 노래를 아주 오래전 내 절친이 노래방에서 부르면서 알게 되었는데, 그때 몹시 감동을 받아서 그 첫 기억을 최고로 치지만 윤민수의 노래도 좋다. 내 스타일의 노래다~


7. 큰조카가 졸업했다. 조카는 내가 졸업한 중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 중학교는 나의 큰언니가 졸업한 곳이기도 하다. 

큰시스터가 18회 졸업생이고, 내가 24회 졸업생이다. 그리고 3년 뒤 조카는 48회 졸업생이 된다. 세월이, 시간이 참으로 무상하구나...


8. 어제는 멘붕이 있었다. 삶이 내게 후하거나 호의적이었던 편이 아닌데, 난 왜 대책없이 낙관적이었을까 스스로를 반성하며 송곳으로 허벅지를 찔러야 했다. 바부팅이...


9. 그래서 친구 덕분에 보게 된 연극이 끝나고 맥주 일잔을 마셨다. 나처럼 같이 멘붕이 온 친구와 함께...



주문한 건 떡꼬치였는데 치킨이 나왔다. 응? 저게 떡꼬치란다. 헐.... 어쩐지 비싸다 했다. ㅎㅎㅎ


10. 새벽 한시가 넘어서 귀가했는데, 버스에서 내리자 한 남자가 말을 붙여왔다. 이어폰을 뽑고 들어보니 대충 이런 말이었다.


-저는 연기하는 사람인데, 아 저 이상한 사람은 아닌데, 너무 예뻐서 그러는데, 전화번호 좀???


하하핫, 잠시 소박한 멘붕이... 새벽 한시에 그리 말하시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여요.ㅡ.ㅡ;;;;

그리고 그렇게 물으면 전화번호 보통 줍니까? 난 대낮에도 안 줄 것 같은데... 


근데 정말 인상은 낯이 익었다. 설마 TV에도 나오는 사람은 아니겠지? 내가 눈썰미가 없어서 그건 자신 없음.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돌아섰다. 하루종일 우울했는데 블랙 코미디 같아서 웃었다.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지만, 지나친 비관도 권할 수 없으므로, 우울함은 섣달 그믐날로 끝내야지.

내일은, 새해 복 많이 빚고 나눠야겠다. 




덧글) 내일도 킬미힐미 한다. 만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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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02-19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1시의 그분 이야기를 읽고 아래의 사진을 보고서, 그럼 그 사람이 이 사람?? 했었어요, ^^
명절 연휴 잘 보내시고,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마노아 2015-02-19 01:02   좋아요 1 | URL
그 사람이 이 사람이었으면 당장 전화번호를!!!ㅎㅎㅎ
서니데이님도 연휴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

라로 2015-02-19 0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같이 맥주 일잔 할 친구가 있다는 데 전 방점을 찍고 싶어요. 저도 바부팅인데 전 그런 친구도 없거든요~~~.^^;;;;
설날이고 한데 선물처럼 너무 이쁜 마노아님 사진 올려주시지~~~.^^
그 사람이 사람 볼 줄은 아네요,,,접근 방식이 그래서 그렇지;;;;
저라면 마노아님의 동선을 파악했다가 자주 부딪히는 작전을;;;그러면 또 더 무서울까요???? 스토커 같아서???ㅋㅎㅎㅎㅎ
어쨋든 2015년은 즐거운 일로 친구와 일잔 하는 일이 많은 한 해이기 바랍니다.

마노아 2015-02-19 20:26   좋아요 0 | URL
동병상련을 앓는 친구와 일잔해서 좀 더 위로가 되었어요.^^
일년째 사진 안 올리기 운동을 자체적으로 하고 있어요.
신비로운 여자가 되고 싶어서 자제하고 있답니다.ㅎㅎㅎ
2015년이 정말로 시작되었다는 실감이 팍팍 드네요.
비비아롬나비모리 님도 2015년 건강하게, 도전하는 많은 것들을 성취하며 지내셔요.
우리 같이 복 많이 빚어요.^^

2015-02-19 0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19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5-02-19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어어 저는 아직도 길에서 남자가 전번 물어본 적이 없는데!!! 마노아님 미모가 진짜 빛을 발하는군요!! 그 미모로 올해 복터질지어니!!!

마노아 2015-02-19 20:27   좋아요 0 | URL
헌팅 경험은 있어도 그게 연애로 이어져 본 적이 한번도 없네요.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하면 되는지, 다락방님께 개인 레슨을 좀...;;;;;

마녀고양이 2015-02-21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킬미힐미에 미쳐있는뎅
설에 못봐서 돈 주고라도 보려구여 히히

마노아님 미모가 포텐 터지는군여~
밤이라 무섭긴 하지만 새해부터 기분 좋은 일이겠네요~ 새해 좋은 출바알~♥

마노아 2015-02-23 12:46   좋아요 0 | URL
어제 제 친구가 그럴 때 전화번호를 줘야 다음이 생기는 거라고 타박을 주네요.
연애지수가 역시 부족한 걸까요.ㅜ.ㅜ

암튼, 이틀만 지나면 지성 오라버니를 영접할 수 있습니다. 유후~
비밀을 다 봤는데 킬미힐미에 못 미치더라구요. 역시 킬미가 진리!
 

FOCUS 과학

제 2325 호/201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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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다리가 붓고 저린다?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

5일간 휴일인 이번 설 연휴를 앞두고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많다. 즐거운 여행의 기본은 건강. 출발 전에는 비상약을 챙기고 여행지의 유행 질병을 확인해 미리 예방접종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 다음은 비행기 안에서의 건강관리다. 좁은 공간에 장시간 있다 보면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으로 피로감이 극에 달할 뿐 아니라 심한 경우 호흡곤란이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비행기에서부터 관리하는 여행 전 건강관리, 어떻게 해야 할까.

■ 다리가 붓고 저리다면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

여행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도 잠시 좁은 좌석에 앉는 순간 불편함이 밀려온다. 어깨와 다리를 구부린 채 꼼짝도 못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가 붓고 저리면서 통증이 느껴지는데 이를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이라 한다. 일등석이나 비즈니스 석과 달리 공간이 좁은 이코노미 클래스 석에서 발생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병명은 심부정맥 혈전증으로 다리 부위 혈관에서 생긴 혈전이 혈관을 타고 이동하다가 정맥을 막아 생기는 질환이다. 혈전은 혈액의 일부가 굳어 뭉쳐진 덩어리다.

혈전은 장시간 앉아있을 때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의자에 앉으면 자연히 골반의 정맥이 눌리게 된다. 눌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다리의 피는 심장 쪽으로 가지 못하고 정체되는데, 이때 피가 응고되면서 혈전이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기내의 습도는 5~15%로 낮고 기압과 산소의 농도도 지상의 80% 수준으로 피의 흐름이 둔해지기 때문에 더 혈전이 생기기 쉽다.

영국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90분 동안 앉아있을 경우, 무릎 뒤의 혈류가 반으로 줄고, 혈전 생성 위험은 2배로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연구 결과를 보면 비행시간이 두 시간 길어질 때마다 혈액 응고 위험은 26%씩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6시간 이상 비행하거나 60세 이상의 고령자나 임산부, 흡연자, 동맥경화나 비만, 고혈압이나 고지혈증이 있는 경우, 여성 호르몬 제제를 복용한 경우 위험이 더 커진다.”라고 전했다.

■ 정맥혈전, 치료 늦으면 사망에 이르기도

혈전이 생기더라도 다리가 붓고 저리는 데 그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호흡곤란이나 가슴 통증, 정맥성 고혈압이나 궤양 등의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 혈전이 우심방과 우심실을 거쳐 폐동맥을 막으면 폐색전증이 일어나면서 사망할 수 있다.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은 매년 약 200만 명이 앓는 흔한 질환으로, 그 중 60만 명이 폐색전증으로 발전하고 약 10만 명이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도 폐동맥 색전증으로 매년 약 5만 명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들의 90%가 다리에서 발생한 심부정맥 혈전증이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은 1980년 경 영국의 한 의사가 기내 돌연사의 18%가 심부정맥 혈전 때문이라고 보고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영국 항공보건협회(AHI)는 영국에서 매년 3만 명이 심부정맥혈전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중 6천 명은 생명을 위협받는다며 항공기 좌석 확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영국 상원 과학기술특별위원회 역시 정부와 항공 회사에 대책 강구를 촉구한 바 있다. 2003년에는 심부정맥 혈전으로 사망한 항공기 탑승객의 가족이 항공사가 혈전증에 대한 위험을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보상금을 위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사실 심부정맥 혈전은 다리가 붓거나 숨이 막히는 증상이 나타났을 때 초음파나 혈액검사로 쉽게 진단할 수 있다. 치료도 항응고제를 투여하거나 정맥 내 카테터(관모양의 의료 기구)를 삽입해 직접 혈전을 용해시키는 주사를 주입해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진단과 치료가 늦어질 경우, 사망할 수도 있으며 치료하더라도 정맥이 손상돼 평생 다리가 붓고 불편한 ‘정맥염후 증후군’과 같은 합병증을 얻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항공사에서 승객에게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의 심각성을 알리고 기내에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아직까진 특별한 대책이 없는 상황으로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 물을 많이 마시고 자주 걷기

예방법은 간단하다. 한 시간에 한 번은 일어나 복도를 걷고 다리를 주무르면 다리 정맥의 탄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간단하게는 자리에 앉아있을 때 발뒤꿈치를 들었다 내렸다 하는 동작을 반복하거나 발목을 움직여 종아리 근육을 자극하는 운동을 하면 정체된 혈류를 풀어줄 수 있다. 정맥류 치료를 받았던 환자의 경우 의료용 압박 스타킹을 신는 것도 도움이 된다.

물은 자주 마시되 가급적 커피나 술은 피하는 것이 좋다. 물은 혈액순환을 활발하게 하고 탈수로 혈전이 생기는 것을 막는다. 반면 알코올과 커피는 소변을 자주 배출하게 해 수분을 빠져나가게 한다.

여행 중 몸이 아픈 것만큼 속상한 것이 없다. 건강한 여행의 시작, 간단한 예방법으로 기내에서부터 준비해보자.

글 :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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