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시집 문예 세계 시 선집
헤르만 헤세 지음, 송영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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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책을 본 지 한참 지났는데 사진만 찍어두고 방치해 두었음을 깨달은 리뷰이다. 

2년 전에 헤르만 헤세전을 다녀왔는데 지금은 꽤 일반화된 디지털 전시였다.

헤세의 그림들을 영상으로 펼쳐 보여주었는데 제법 예쁘장한 그림들이 몽롱하게 펼쳐진 게 보기 좋았다.



전반적으로 색감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원단으로 치마 만들면 예쁘겠단 생각을 했다.

특히 여름에 어울리는 색감들이다. 저런 그림의 모델이 된 곳들은 공기도 맑았을 것 같다.



애석하게도 시들은 그렇게 기억에 남지 않았다. 웬만하면 밑줄긋기라도 했을 텐데 없네... 하다가 폴더를 뒤져 보니 밑줄긋기 써놓은 문서 발견! 아아 나는 이렇게까지 해놓고 왜 리뷰는 쓰지 못했던가..;;;;;





37쪽

밤에

 

습하고 미지근한 바람이 흐른다.

밤새들이 푸덕거리며

갈대를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먼 마을에서 어부의 노래가.

 

있지도 아니한 시대부터

서러운 전설이

가시지 않는 괴로움의 탄식이 비롯되었다.

밤늦게 이를 듣는 사람은 서러우리라.

 

얼마든지 탄식하고 나달거려라.

곳곳마다 세상은 괴로움에 무겁다.

우리들은 조용히 새소리나 듣자

마음에서 흘러오는 노랫소리도.

 

38

취소

 

너를 사랑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손을 잡아 달라고

용서해 달라고만 했을 뿐.

 

나와 비슷하다고

나처럼 젊고 선량하다고, 너를 그렇게 여겼다.

너를 사랑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63

 

깊은 밤거리에서

 

어둠을 헤치고, 젖은 포석 위에

가로등이 비치고 있다.

이 늦은 시간에도 잠들지 않은 것은

가난과 악덕뿐이다.

 

잠들지 않은 너희들에게 나는 인사를 보낸다.

가난과 고뇌 속에 누워 있는 너희들에게

어런더런 웃고 있는 너희들에게

모두 나의 형제인 너희들에게.

 

108

둘 다 같다

 

젊은 날에는 하루같이

쾌락을 쫓아다녔다.

그 후에는 몹시 우울해서

괴로움과 쓰라림에 잠겨 있었다.

 

지금 나에겐 쾌락과 쓰라림이

형제가 되어 배어 있다.

기쁘게 하든 슬프게 하든

둘은 하나가 되어 있다.

 

하느님이 나를 지옥으로든

태양의 하늘로든 인도한다면

나에게는 둘 다 같은 곳이다,

하느님의 손을 느낄 수만 있다면.

 

131

만발한 꽃

 

복숭아나무에 꽃이 만발했지만

하나하나가 다 열매가 되지는 않는다.

푸른 하늘과 흐르는 구름 속에서

꽃은 장밋빛 거품처럼 밝게 반짝인다.

 

하루에도 백 번이나

꽃처럼 많은 생각이 피어난다-

피는 대로 두어라. 되는 대로 되라지.

수익은 묻지 마라.

 

놀이도, 순결도,

꽃이 만발하는 일도 있어야 한다.

그렇잖으면, 세상이 살기에 너무 좁아지고

사는 데에 재미가 없어질 것이다.

 

138

이 세상의 어떠한 책도

너에게 행복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살며시 너를

네 자신 속으로 돌아가게 한다.

 

네가 필요한 모든 것은 네 자신 속에 있다,

해와 별과 달이.

네가 찾던 빛은

네 자신 속에 있기 때문에.

 

오랜 세월을 네가

갖가지 책에서 찾던 지혜가

책장 하나하나에서 지금 빛을 띤다,

이제는 지혜가 네 것이기 때문에.

 

162

눈 속의 나그네

 

한밤이 골짜기에서 한 시를 울린다.

벌거숭이 추운 달이 하늘을 헤매고 있다.

 

눈과 달빛에 싸인 길을

그림자와 함께 나는 걸어간다.

 

봄풀이 파릇한 길을 많이 걸었다.

따갑게 내리쬐는 여름 해를 많이 보았다.

 

걸음은 피로에 지치고 머리칼은 하얗다.

아무도 이전의 나를 몰라본다.

 

야윈 나의 그림자가 피로하여 머물러 선다.

그러나 기어코 이 길을 다 가고 말 것이다.

 

홍성한 세계로 나를 끌고 다니던 꿈이

나에게서 손을 뗀다. 이제야 나는 안다, 꿈이 나를 속인 것을.

 

골짜기에서 한밤이 한 시를 울린다.

, 저 높이에서 달이 아주 쌀쌀하게 웃는다.

 

눈이 아주 차갑게 이마와 가슴을 안아 준다.

내가 생각던 것보다도 죽음은 상냥하다.

 

173

교훈

 

사랑하는 아들아,

사람들의 말에는

많든 적든

결국은 조금씩 거짓말이 섞여 있다.

비교해서 말하자면

기저귀에 싸였을 때와

후에 무덤 속에 있을 때

우리는 가장 정직한 것이다.

그럴 때에 우리는 조상 옆에 누워

드디어 현명해지고

서늘한 청명에 싸여

백골로 진리를 깨우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거짓말을 하며

다시 살아나고 싶어 한다.

 

203

봄의 말씀

 

아이들은 모두 봄이 소곤거리는 것을 알아듣는다.

살아라, 자라나라, 피어나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기뻐하라, 그리고 새 움을 트라.

몸을 내던지고 삶을 겁내지 마라.

늙은이들은 모두 봄이 소곤거리는 것을 알아듣는다.

늙은이여, 땅속에 묻혀라.

씩씩한 애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몸을 내던지고, 죽음을 겁내지 마라.

 

210

회상

 

비탈에는 히드가 피어 있다.

금작화는 갈색 빗자루 모양 꿈쩍 않는다.

보송보송한 5월의 숲이 얼마나 푸르던가를

오늘도 누가 알고 있을까.

 

지빠귀의 노래와 뻐꾸기의 울음이 어떻게 울리던가를

오늘도 누가 알고 있을까.

그렇게 황홀하게 울리던 것이

이제는 잊히고 노래 속에 사라졌다.

 

숲 속의 여름 저녁 향연을

산 위에 높이 걸린 둥근 달을

누가 적어 두고, 기억하고 있을까.

이제는 모두가 흩어지고 없다.

 

머지않아 너를, 나를

아는 사람도 이야기할 사람도 없어질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여기에서 살며

우리를 애석하게 여기지도 않으리라.

 

우리는, 저녁 별과

처음 끼는 안개를 기다리기로 하자.

우리는 하느님의 위대한 정원에서

기꺼이 피었다가 시드는 것이다.

 

234

(해설. 송영택)

그의 그림에는 사람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인물화를 그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풍경화에도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모두가 수채화이며, 구름과 산과 물과 수목 등이 단순화된 선과 색채로 표현되어 있다. 투명한 순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그림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시작詩作 행위로서 그려진 것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마지막으로 헤르만 헤세전 갔을 때 찍은 사진 하나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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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Kitchien 7 - 완결
조주희 글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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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읽고 사진도 찍어뒀는데 정작 리뷰는 쓰지 않은 걸 알아차렸다. 하아, 밀린 게 너무 많아...;;;;



한옥 풍경이 마음에 들어서 찍어 보았다. 생활에 불편함만 없다면 한옥에서 사는 것도 운치 있다고 여기지만, 한옥에서 편리하게 사는 게 가능한가?? 뭐 집이 한옥이라도 침대 쓰고 입식 생활하면 편리할 수도 있는 거지. 근데 한옥이 더 비싸지 않나?


암튼, 할머니의 입장에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전달하는 내용이 참 좋았다. 작가님도 한참 젊으신데 이런 눈높이 참 잘 맞추신다. 그러니까 작가겠지?



비숍 여사 에피소드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백년 전에 조선을 둘러본 이 배짱 있는 여인의 눈에 조선 남자들은 얼마나 갑갑했을까. 만화 속에서는 그래도 좀 생각이 깨어 있는 양반으로 묘사되었지만 백년 전에 그랬을 리가 없다규! 백년 후는 좀 다른가??


그나저나 저거 도담삼봉인가? 작년 여름에 영월에서 1박하고 단양쪽으로 돌아서 집에 왔는데 그때 도담삼봉을 보았다. 일박 이일 중에 저기서 탄 모터 보트가 제일 재밌었다고 엄니가 그러셨다. 엄니도 익사이팅한 게 더 재밌구나!



소년원 들어간 제자를 위해 넣을 수 있는 사식은 다 넣어준 선생님 마음. 그 안에서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새출발을 결심했기를!



축제의 신! 지극히 만화적인 설정, 만화이기에 표현 가능한 영역으로 보였다. 신나게, 즐겁게 감상했다. 저런 축제의 추억은 애석하게도 없지만....ㅜ.ㅜ



삼계탕! 그러고 보니 말복이 다가오는구나. 이번 주 금요일이네! 초복 때는 토속촌에 다녀왔는데 말복에는 치킨이라도....



이 사진을 왜 찍었는지 지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암튼 그림만 봐도 맵구나!

낮에 언니가 떡볶이를 해줬는데 엄청 매웠더랬다. 이마트 고춧가루가 주범이라고.... 아, 떠올리기만 했는데도 속이 쓰려..;;;



엇그제 언니는 인덕션을 주문했다(내가 사줬다). 이 더운 날 전기렌지가 왜 필요한지 떡볶이 끓는 동안 새삼 공감했다. 하루 세끼를 다 집에서 먹는 남편을 삼식이 세끼라고 부른다는 걸 본적이 있다. 슬프도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적당히 외식하고 배달도 하고 그리 삽시다. 우리집 저녁은 보쌈 배달이었다. 막국수는 매웠고 보쌈은 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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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쇳물 쓰지 마라
제페토 지음 / 수오서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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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염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그 쇳물 쓰지 마라> - 25쪽


이 책의 표제작이다. 스물 아홉 청년이 섭씨 1600도가 넘는 쇳물 용광로에 빠져 숨졌다. 당연히 시신은 찾지 못했다. 2010년의 일이다.


어찌 됐건

생을 마친 종이를 부활의 초입까지 나르는 일은

늙은이들의 몫이 되었다


언덕을 오르던 정오

말보로 상자는 납작해진 주둥이로

브라질 숲에서 왔노라 자랑을 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작에 고향을 잊은 노인은

의심스러운 저울에 무거운 시선을 보태느라

눈이 시렸다

영락없는 푼돈이지만

당분간 목숨은 그럭저럭 붙은 셈이다


장차 자신의 장례비를 외투에 넣고 돌아선 그는

곤궁한 처지를 푸념하는 대신

그깟 외로움 하나 견디지 못한

아들놈의 죽음을 나무랐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어째서 사람은 부활하지 않는가, 하고


<부활>  - 27쪽


밀린 집세를 남겨놓은 채 생을 마감한 송파 세모녀도 함께 떠올랐다. 여름은 더 더워지고 겨울은 더 추워지는데 곤궁한 살림의 가난한 이들은 한숨이 더 깊어진다. 


높은 양반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산업역군이란다

나의 일터는 경제의 최전선이고

전선에서는 다들 죽는 거란다

일 년에 이천 명씩

다치기도 부지기수


그런 거란다

원래 그런 거라는데

억울하다

석연치 않다


나는 역군 아닌데

종현이 아버지인데

지수 씨 남편인데

썩 괜찮은 아들인데


나는 사람인데


<나는>  - 33쪽

아들 같아서 그랬다고.. 공관 사병을 종 부리듯 했던 별 네개 장군 부부가 생각난다. 누가 당신 아들 취급을 원했다고. 걸핏하면 자식 같아서 그랬다고 핑계를 대나. 그건 성추행범들이 주로 하는 변명들이지.


고통에 절규하는 새끼 곰을 죽이고 자살한 어미 곰


최근 영국의 '데일리메일'은 중국의 한 농가에서 산 채로 쓸개즙을 채취 당했던 곰 모녀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고 보도했다. 어미 곰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새끼 곰을 죽이고, 벽에 스스로 머리를 들이받다 죽었다.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문제가 된 중국 북서부의 한 농장에서는 곰의 쓸개즙을 채취하려고 살아 있는 곰의 쓸개에 호수를 꽂아 수시로 쓸개즙을 뽑고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날에는 농장 일꾼이 한 새끼 곰을 쇠사슬로 묶어놓은 채 쓸개즙을 뽑아내고 있었다. 이날 새끼 곰의 절규에, 어미 곰은 더 이상 견디지 못했다. 곰은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발휘해 철창을 부수고 탈출했고 새끼 곰에게 뛰어갔다. 한 목격자에 따르면 달려온 어미 곰은 새끼 곰의 쇠사슬을 끊으려 했다. 하지만 쇠사슬을 끊을 수 없었던 어미 곰은 새끼 곰을 끌어안고, 질식시켜 죽였다. 자신의 새끼 곰을 죽인 뒤, 이 어미 곰은 스스로 벽으로 돌진했고 머리를 부딪쳐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2011.09.02  - 48쪽


축생문으로 들어가 산 채로 쓸개즙을 죽을 때까지 착취 당하는 곰으로 다시 태어나야 마땅한 사람들. 어미 곰의 절규가 절절히 들린다.


고향 떠나온 지 반백 년

시멘트 독에 잘린 발가락

휘청이는 몸으로

사랑도 힘에 부치어

자식 하나 남김 없음이 서러운데

본전 생각에 박제라니,

하지 말아라

그만하면 됐다

아프게 가죽 벗겨

목마르게 말리지 말아라

먼지 앉고 곰팡이 필

구경거리로 세워놓고

애도니 넋이니

그거 말장난이다

사라 바트만처럼

사무치게 그리웠을 

아프리카

흙으로


<고리롱 >  - 51쪽

서울동물원 인기 스타 고릴라가 숨졌다. 사람 수명 80~90세에 해당하는 49년을 살았으나 노환으로 새끼 고릴라 하나 없이 숨을 거뒀다. 의료팀은 숨진 고리롱에게서 인공수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게다가 표피와 골격은 박제 처리를 해서 일반에 공개한다고... 그래서 동물사랑에 대한 경각심도 일깨워줄 계획이라고... 뚫린 입이라고 말도 잘하는구나. 욕심이 배를 뚫고 나오는구나. 참으로 독하다. 


우리 반 십육 번

박정호가 죽었네

영어학원 건너려다

뺑소니를 당했네


레커차 달려오고

경찰차 달려오고

사이렌 요란한데

그 애의 텅 빈 눈은

먼 하늘만 보았네


박정호가 죽었어요

훌쩍대는 전화에

울 엄마는 그 아이

몇 등이냐 물었네


<학원 가는 길>  - 87쪽


한참 전 일이다. 조카가 백점 맞았다고 얼굴이 잔뜩 상기된 책 집까지 뛰어왔다. 잘했다고 축하부터 해줬으면 좋겠는데 언니는 제일 먼저 이렇게 물었다. 너네 반에 백점 몇 명이야? 


친구 동생이 죽었다는 말에 엄마는 아들이냐 딸이냐고 먼저 물었다. 그 다음엔 교회 다니냐고 물었다.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내린다는 말보다

온다는 말이 좋다


너도 눈처럼 

마냥 오기만 하여라


<눈이 오네>  - 131쪽

서럽고 서러운 글들 속에서 모처럼 방긋 웃게 해주는 싯귀였다. 눈처럼 너도 마냥 오라니... 


봄날에는 떠나지 말자

어린 순경 코 찌르지 않게

동짓날 새벽에 떠나자

더웠던 양

홑이불 제쳐놓고

창문 활짝 열어놓고

보일러에는 열흘 치 기름을 남겨놓자

노인데, 돈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 듯하게


머리맡 일기장에는

살 만큼 살았다는 양

복에 겨운 푸념을,

제일 뒷장에는

복지사 미안해하지 않게

천상병의 귀천을

그러나 쓰다 말자

꼭 떠나려던 것은 아닌 듯하게


그런대로 세상 살 만했던 양

새끼들 욕먹지 않게


<벼랑에서>  -133쪽

강풀 작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떠오른다. 치매 걸린 아내 병수발 하다가 함께 먼길 떠나기로 결심한 노인이 자식들 욕먹지 않게 밀봉했던 테이프 미리 치워달라고 부탁했던 것... 씁쓸하다.


62세 치매 아내 10년째 웃음으로 돌보는 박종팔 씨


(전략) "처음엔 잘못한 학생 혼내듯 했는데, 하루는 아내가 '당신 말을 이해했으면 내가 왜 그렇게 했겠느냐. 모르니까 다른 걸 따지'라고 하면서 서럽게 울더라고... 마음이 철렁했지. 그다음부턴 칭찬만 했어."

박씨는 아내를 보살피면서 터득한 '치매 환자와 함께 잘 사는 법'의 핵심이 바로 '칭찬'이라고 했다. 박씨는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를수록 나는 지치고 아내는 위축됐다"며 "'잘한다', '예쁘다' 같은 칭찬을 많이 해주면서 서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웃는 일도 많아졌다"고 했다. 


조선일보 2013.03.10  -140쪽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세상도 맴맴 돌아

제자리로 와버렸다

진화한 것은 욕망뿐


십칠 년 매미 같은 아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매미, 너도 알 필요가 있다


아직도 뭍을 밟지 못한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양보해다오

사람이 울 차례다


<매미에게>  - 189쪽


댓글 시인 제페토를 내가 알게 된 게 이 시 때문이다. 양보해다오 사람이 울 차례다....ㅠ.ㅠ

선플달기 운동 요란하게 하던 때가 있었는데, 인터넷 댓글을 예술로 승화한 사람도 나왔다.

그의 시가 마음에 닿는 것은 그 속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착취당하고 서러움 가득한 사람과 생명들...

양보해다오. 사람이 울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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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태어나는 성지
필레몬 스터지스 지음, 김연수 옮김, 자일스 라로슈 그림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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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세계 곳곳에 예배를 드리고 명상을 하거나 소원을 비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공간을 성스럽게 여기지요. 

성지는 우리 영혼의 안식처가 됩니다. 

짓는 데만 수백 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정말 가기 힘든 곳도 있지요. 

복잡한 거리 한복판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꼭 건물의 형태가 아니어도 됩니다.

새 생명을 축복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찾아갑니다.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고딕양식. 스테인드 글라스


인도 타밀나두 슈리 미나크시 암만 사원. 시바 신의 아내 파르바티를 모시는 거대한 사원. 신과 악마, 온갖 생물 등 3천 3백만여 개의 형상으로 장식됨


프랑스 아브랑슈 부근 몽생미셸 대수도원. 예전에는 배를 타거나 썰물 때를 기다려야 했지만 지금은 뭍과 섬을 잇는 둑길이 놓여 있음


인도 바라나시 갠지스 강으로 이어진 계단. 25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날마다 갠지스 강을 찾는다. 사람들이 쉽게 강물에 이를 수 있도록 만든 이 계단을 '가트'라고 함



이스라엘 예루살렘은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에서 성지로 받드는 곳. 기원전 1,000년 경 솔로몬 왕은 모리아 산에 예루살렘 성전을 지었는데 500년 뒤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회당을 파괴함. 기원전 538년에 제2성전이 다시 지어짐. 기원전 20년 헤롯 왕의 지시로 제2성전은 여러 채의 웅장한 건물로 태어났다가 70년에 이르러 로마 인들의 손에 다시 파괴되고 만다.


대한민국 경주 석굴암. 실물보다 좀 크게 묘사된 듯!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카바. 마호메트는 카바를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지었다고 믿었다. 카바는 모스크 안에 세운 단순한 걱조 건물인데 금실과 은실로 코란 구절을 수놓은 검은 천으로 덮여 있다. 이 천은 해마다 새 것으로 바뀐다. 이슬람교도들은 카바 쪽을 향해 기도를 올리고 평생에 한 번은 카바를 찾아가고자 한다. 해마다 수많은 압사자를 낳기도..ㅜ.ㅜ


터키 이스탄불 술탄 아메트 모스크. 푸른색 타일 장식으로 꾸며져서 '푸른 모스크'라는 별명이 붙었다.


굵은 글씨로 표현한 큰 글자는 '성지'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그림들 안쪽으로 각 성지와 종교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글밥이 많은 편이고 백과사전 느낌이 난다. 어린이들로서는 다소 지루할 수 있겠는데, 그래도 각 종교의 특징을 잘 설명해 주었다. 특히 '여행을 떠나기 전에'라는 이름으로 서두에 장식한 각 종교의 배경 설명이 유익했다. (극히) 일부만 옮겨 본다.


* 인도를 중심으로 2500년에 걸쳐 발달한 힌두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입니다. 힌두교도들은 세계를 만든 하나의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 힘을 가리켜 브라만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힌두교에서 찬양하는 수많은 신을 비롯해 세상 모든존재가 브라만에서 시작되었다고 믿습니다. 특히 창조하는 신 브라마와 지키는 신 비슈누, 파괴하는 신 시바를 으뜸으로 여깁니다. 힌두교에서 갈라져 나온 종교도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불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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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 글, 이담 그림 / 휴먼어린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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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탉은 할머니를 깨웠어. 할머니 이름은 저녁놀. 할머니는 오늘도 불씨를 지키신다.

돼지는 엄마를 깨웠어. 엄마의 이름은 고운놀. 엄마는 오늘도 밭을 매실 거야.

송아지는 아빠를 깨웠지. 아빠 이름은 타는놀이야. 오늘도 아빠는 사냥을 하실 거야.

강아지가 깨운 내 이름은 아침놀! 우리는 노을 가족이야.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숲에 가아 하지만 짐승을 쫓아 다니는 게 싫다는 게 문제야. 창이나 활을 들고 짐승을 잡는 게 싫은 걸.

그보다는 다친 짐승이나 새들을 돌보는 게 훨씬 좋지만 그런 나를 아빠는 걱정하신다. 

마을에서 가장 힘이 센 작은곰과도 씨름해서 이기는 나인 걸, 마을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쌩쌩이와도 나란히 달릴 수 있는 걸.



그렇지만 그 재주들을 짐승을 해치는 데 쓰고 싶진 않아. 

그런 내게 아빠는 실망하시고, 마을의 어른들은 혀를 차셨지.

친구들도 나와는 놀려고 하질 않아. 

할아버지 붉은 놀이 그리워진다. 숲에 사는 짐승들, 새들, 나무들, 풀들... 온갖 것들을 가르쳐 주시던 할아버지.

노루도 토끼도, 새끼 늑대도 모두 잡을 수가 없어. 

보름달은 밝게 떠올랐건만 집에 가서 혼날 생각에 발이 떨어지질 않아.



그러다가 발견한 동무 하나. 아마도 독초를 잘못 먹은 듯해.

다행히 해독초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이 모두가 할아버지 붉은 놀이 가르쳐주셨던 것들. 

이제 동무들은 나를 놀리지 않아. 사냥을 하지 않는 나같은 아이도 사냥꾼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아버지도 인정해 주셨어.

다친 사람이 있으면 치료해 주는 사람도 필요한 법!



숲에서 사냥 하는 대신 나는 발자국을 살필 거야. 오소리 똥도 살피고 반달곰 똥도 살필 거야.

산새들 소리도 귀담아 듣고, 풀뿌리 맛도 보고, 나무 열매도 따 모을 거야.


숲은 나의 선생님, 아직도 배울 것이 너무 많아. 모르는 게 잔뜩이거든. 

그렇게 숲이라는 자연을 정복하는 게 아니라, 극복만 하는 게 아니라 '공존'하면서 살아갈 거야.

나의 이웃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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