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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5-12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원했던 것은 땅과 평화라는 잦아들어가는 외침이 공허하게 아픕니다. 이땅의 인디언들이라는 비교가 섬뜩합니다. 광주의 기억이 남아있는 이 땅에서 참여정부의 손으로 벌어진 일이기에 다 서럽습니다. 참 자유와 참 평화를, 어느 때에 만나게 될까요.
 

봄 기온치고는 무리하게 더웠던 오늘, 아니 어제...  정릉에서 사생대회 겸 백일장이 있었다.

유치원 시절 소풍 장소였고, 교회에서 나온 그림대회도 여기였고,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줄기차게 다녔던 그곳.  아마 이사 가느라 고등학교를 멀리 가지 않았더라면 고등학교도 이곳에 왔을 지도 모른다.(고등학교는 은평구에서 다녔는데 서오능에 갔었다.ㅡ.ㅡ;;;;)

십수년 만에 다시 찾은 그곳은 별로 변한 게 없건만, 나의 키가 자라고 내 눈의 느낌이 달라져 있었기 때문에 같으면서도 참 달라보였다.

일단, 너무 작고 초라해 보였다.

정릉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이다.  드라마 '용의 눈물'로 익히 기억되는 바 있지만, 태종 이방원은 두차례의 왕자의 난을 겪으며 왕이 된 인물이고, 그 과정에서 이복동생들과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한다. 뭐, 일방적으로 이긴 셈이지만....

아무튼, 그런 일련의 고난을 겪은 그는 새어머니 신덕왕후 강씨를 몹시 미워했고, 그 바람에 정동에 있었던 묘를 이곳 정릉으로 옮겨 온 것이다. 게다가 오랫동안 방치해두었던 이 무덤은 현종 때에야 보수가 되니, 몇 백년을 내버려진 채 보호받지 못한 셈.

왕비의 능이라는 위엄이나 격식, 심지어 자존심도 세울 수 없을 만큼 작고 초라했었다.

그때는 보이지 않던, 모를 수밖에 없던 부분들이 이제는 보여지니 느낌이 다를 수밖에...

뭐, 신덕왕후 강씨가 불쌍하다거나 그런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이방원이 잘했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왕후장상 다 무슨 소용이던가... 싶은 기분. 살아 왕비로서 국모의 자리에 있었건만, 자식 모두 죽고 죽어 편히 눕지 못한 그 인생이 과연 행복했을까 싶어서...

그나저나, 오늘... 아니 어제... 정말 더웠다. 끝나고 들를 데가 있었지만 정말 못 가겠더라... 오로지 집에 가고픈 생각에 골몰...

게다가 감기 때문에 몸도 너무 안 좋아서 시사회 양도 받은 것도 표만 찾아오고 영화는 보지 못했다.

세일즈 우먼.. 과연 어떤 영화였을 지...  친구의 양도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입장이어서 표를 무시하지 못하고 결국 명동에 다녀왔는데, 확실히 안 좋은 몸에 사람 많은 데를 누비고 다녀왔더니 목 상태가 더 안 좋다. 어흑, 내일은 우째... 목 아파...ㅠ.ㅠ

침 삼키기도 어려워서 저녁은 죽으로 때웠는데, 이 시간 배고프다. 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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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그들이 문 밖에 있습니다.



1박2일간. 340여명 정도 되는 지역의 인사들을 인솔하고, 외부 시찰을 다녀오는 행사를 치렀습니다. 말은 인솔이지만 실제로는 거의 상전 받들듯 모시고 다녀온 셈이죠. 고백건대 이런 일을 한 차례 치를 때마다 인간에 대한 회의를 느끼곤 합니다. 반(反)도스토예프스키적인 딜레마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여러 사람들을 인솔하는 행사를 치르다보면 인간의 맨얼굴이 드러나는 기분이 듭니다. 인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한 개인을 사랑하고 이해하기는 어렵다는데, 저는 도리어 그 반대란 생각을 종종 합니다. 한 개인을 사랑하고 이해하기 보다는 집단의 맨얼굴이 더욱 이기적이고 야만적이란 느낌말입니다.

이번 시찰단엔 고급 행정공무원부터 국회의원, 지역의 시민운동가들까지 두루 포함된 대규모 인원이 움직이는 일이다보니 뭐랄까요? 한 지역 사회의 내부가 실제로는 어떤 먹이사슬을 가지고 있고, 그네들이 어떤 의도와 구성을 통해 움직여지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C.W. 밀즈의 "파워엘리트"를 책이 아닌 경험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계기라고 해야겠지요. 행정공무원은 국회의원이나 시의회 의원에게, 의원들은 시민운동가들에게, 운동가들은 언론인들에게, 또 언론인들은 자신들의 직장상사들이나 자본가들에게 자본가들은 다시 행정공무원들에게 돌고 돌아가는 먹이사슬의 연쇄 속에 놓여 있음을 봅니다. 그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사슬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존공생하는 사슬 속에 놓여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시민운동가들은 행정관료, 정치인들과 적대적 공존관계를 친밀하게 유지합니다. 입으로는 다들 시민을 말하지만 구체적인 한 개인으로서의 시민에 대해서 그들이 과연 얼마만큼의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입니다. 애초에 좋은 의도로 시작된 일도 한 번 먹이의 연쇄 고리에 오른 뒤에는 처음의 의도는 간 곳이 없어지고 여기저기 자신들의 입장이 추가되고, 삭제되는 과정을 통해 마치 원래 이 고기가 어떤 부위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스팸처럼 뭉그러져 있기 십상입니다. 왜 80년 5월 광주가 있었고, 왜 87년 6.10항쟁이 있었는데 정권이 바뀌고, 새 세상이 되었는데도 정작 세상은 변하지 않은 걸까요? 왜? 그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구조 자체는 변화되지 않았으며 과거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이들조차 그 구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민운동가들은 시민운동을 하기 위해 언론을 향해 해바라기하고, 언론은 그들의 주인인 자본가들의 지시에 따라 주목해줄 운동과 그렇지 않은 운동을 구분해줍니다.

뉴스와 잠시 떨어져 있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더군요. 박계동 의원의 몰카 사건도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중요한 판단과 결정은 개방된 공식 행사가 아니라 그들만의 리그인 폐쇄된 밤의 문화에 의해 결정됩니다. 밤의 문화에 한 패거리로 합류하지 못하면 낮에 일어나는 사건의 진실을 영구히 알 수 없게 되지요. 그래서 기자들의 중요한 취재의 대부분은 술자리에서 오고가는 이야기들을 듣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낙종하지 않으려면 술자리를 피하지 말아야하고, 시민운동가들, 정치인들, 자본가들이 낮에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것은 대외적으로 보이기 위한 것이고, 밤의 술자리에선 이구동성으로 형님, 아우님 하면서 서로 어울립니다. 좋게 말하면 타협이고, 나쁘게 말하면 야합과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도 실제로는 이 때인 것이겠지요. 서로가 적절한 수위와 명분을 찾아 조율합니다.

이른바 직업적 NGO들이 체제의 내성을 강화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 민주주의라는 절차를 통해 획득한 정치적 정당성을 통해 4년 혹은 5년의 임기 동안 이루어지는 민주독재의 반복은 기존 체제에 늘 도덕성과 권위를 부여합니다. 대외적인 형식은 민주주의이나 내용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민주주의, 그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이며 세계의 대부분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다는 대의 민주주의가 처해있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정부의 주인이 국민일 때, 민주주의가 집행된다고 하는 것이지 그것이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한 것이고, 실질적인 내용은 자본의,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민주주의에 불과하다면 민주주의는 다만 지배를 위한 명분 제공용에 불과한 것입니다.

광양에서 올라오는 길에 평택의 넓은 벌판을 보면서 실시간으로 날아오는 평택 대추리의 소식을 들으며 가슴이 뭉개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땅에서 반미 구호가 나온 지도 어느 새(1980년 12월 광주미문화원 방화사건) 30년이 되어갑니다만, 지역유지들 틈바구니에서 듣는 미국에 대한 이미지는 별반 바뀐 것이 없더군요. 미국은 여전히 세계의 경찰이고, 불량국가들의 핵개발을 미국이 막아주지 않는다면 세계의 평화는 지켜질 수 없다는 인식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 그 앞에 썩 나서서 그 개소리를 집어치우라고 외치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그렇게 외치면 도리어 분위기 깨는 사람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우리 시대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죠.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하지만 제 느낌에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은 그 어느 경우에나 비극인 것 같습니다.

군이 투입될 것 같다는 전갈을 듣고, 저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습니다. 불행히도 저는 현실적인 인간인지라 군 투입도 가능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곽 경비 정도의 일이겠지, 실제로 진압 수준으로 강행 처리할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정신이 있는 정권이라면, 아니 어떤 정신 나간 정권이 광주항쟁이 있었던 5월에, 그것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런 미친 짓을 하겠냐는 현실적인 판단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밤사이 군이 투입되고 26년 전 광주도청에서도 있어선 안 될 일이 2006년 5월에 보란 듯 똑같이 자행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나의 현실 감각을 교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1987년의 경험은 도대체 무엇이냐? 87년의 경험을 통해 이 땅에서 두 번 다시는 국가에 의해 시민이 학살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는, 군이 정치 일선에 나설 수 없으며, 나서는 일은 두 번 다시없을 것이라던 우리들의 정치적 믿음은 다 무엇이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이 미친 것이 아니라면 나의 현실 감각이 미칠 지경입니다. 분명 정부도, 정권도 이런 생각을 했을 텐데 저들이 겁도 없이 저런 일을 손쉽게 해치울 수 있는 만용을 부릴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인기가 바닥을 치고, 도통 인기가 상승할 조짐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평택 대추리 들판에 철조망을 쳐야할 만큼 절박한 다른 무엇인가가 있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국민보다 더 무서운 상전이 저들에게 있지 않고서야 그런 무리수를 둘 필요가 있을까?

그들이 문 밖에 있습니다.

갈리아를 정복한 로마인들이 가져온 평화와 문명 속에는, 그들이 세운 대규모 공중목욕탕과 수로 밑으로 흐르는 학살당한 아이들과 여성들의 피가 묻어 있습니다. 그 자리에 세워진 거대한 공중목욕탕을 드나들던 이들은 학살당한 아이의 아버지, 능욕당한 여성의 남편이 아니라 로마인들과 손잡고 흐뭇한 미소를 짓던 갈리아의 유지들이었습니다. 그렇듯, 짓밟힌 땅 한반도에 골프장이 건설되고, 갈리아의 유지들이 로마식 공중목욕탕을 출입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듯, 이 땅의 총리와 국회의원들이 골짜기마다 학살 장소였던 한반도 곳곳에 미국식 골프장을 짓고 회원권을 나눠가지며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갈리아의 유지들이 로마식 목욕탕에 몸을 적시며 그들의 골수까지 로마인이 되었을 때, 이 땅의 지배자들은 한 번씩 라운딩할 때마다 마치 저 멀리 피켓을 들고 골프장 건설 반대 시위하는 이들을 게르만의 어두운 숲에서 반란의 깃발을 들어올린 야만인(바바리안)들처럼 쳐다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갈리아의 족장들이 부족의 젊은이들을 동원해 게르만의 반란을 진압하러 달려가듯, 이 땅의 지배자들은 용역 깡패를 동원해서, 전경을 동원해서, 끝끝내는 군대를 대동해서 대추리 벌판의 농민들을 진압하러 달려갑니다. 이 땅의 지배자들은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 중국 포위 전략의 일환으로 재배치되고 있는 한반도 미군기지 확장 이전 작업을 돕기 위해 대추리에 우리의 젊은 군인들을 동원합니다.

갈리아의 족장들이 비록 몸은 갈리아인의 것이나 마음과 정신은 로마인이었듯, 대추리 작은 분교에 헬기와 군대를 동원하는 그들은 비록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의 국민의 선택으로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었으나 갈리아의 족장들이 그러했듯 그들을 속속들이 지배하는 주인은 로마 아니 미국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조국의 실체는, TV에서 상업자본이 외쳐대는 "오!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이 아니라 미국입니다. 아니면 미국과 한몸이 되어 뒹구는 한국을 상상하는지도 모릅니다.

26년 전 광주의 피가 우리에게 알려준 교훈, 저들은 죽지도 않으며, 잠들지도 않으며 언제라도 기회만 있다면 우리의 목덜미를 물어뜯어줄 자세가 되어 있음을 잊은 것은 아닌지요. 87년의 패배로, 정권 교체로, 입으로만 진행되는 민주화로, 이제 그때 87년 항쟁의 주역들이 정권의 핵심이 되었으니까 라며 안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한 줌도 안 되는 기득권을 상실한 것에 분노하여 사학법은 전교조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빨갱이 칠을 하기 위해, 학교를 장악하기 위한 술수라고 주장하는 그들이 있고,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동유연성을 강화해야 하고, 그것을 실시간으로 생방송해주는 그들이 있습니다. 마치 200여 년 전 산업혁명이 극성에 달했을 때, 농부들을 농촌에서 몰아내 도시의 프롤레타리아로 전락시켰듯 지금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하자 다시 노동자들을 공장에서 몰아내 실업자로 내몰고 있습니다. 기술혁명은 산업생산력의 자리에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노동자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우리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습니다.

나의 이 현실감각이 버르장머리없는 것이라면,
당신들의 그 현실감각은 도대체 어딜 향하고 있는 것인지 내게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문 밖에 있습니다.

국민과의 합의 절차도 없이, 국민의 정당한 우려와 항의를 국가공권력을 동원해 자국민을 방패로 찍고, 군대를 동원해 진압하는데, 국회에서는 한 목소리로 이를 한미안보동맹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행위로 추어올리는 이 현실, 나는 자칭 참여정부의 이 놀랍고도 용감한 행동이 그들의 진정한 주인이자 진실로 잘 보이고 싶은 주인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의 발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나의 현실감각을 교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당신! 당신의 주인은 국민이 아니라 미국이 아니냐고, 국민의 참여를 진실로 원한다면 이제 국민의 참여로 당신을 적으로 규정해주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직면해 있는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지배하는 지배자들의 지배자가 누구인지 그것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들이 우리들 자신의 주인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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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5-06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믿음이... 자꾸 깨져갑니다. 실망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다른 대안도 없는데, 무너져 가고 무뎌져 가는 희망에 가슴이 쓰립니다. 대한민국은 어느 때에 진정한 봄을 맞을까요.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인데, 우울한 내용의 글을 쓰려니 죄송함이 앞섭니다. 곧 어린이날입니다. 우리 어린이들이 어린이날만이라도 마냥 행복했으면 합니다. 집안 어린이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셨나요? 아직 준비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지구본’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작아도 괜찮습니다. 둥글고 23.5도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돌아가면 됩니다. 어린이들이 방에서 지구본과 함께 노는 일상 속에서 지구가 평평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며 세계 속의 한국과 한국 속의 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초중고의 각 학급에도 지구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흔히 ‘인문지리’라고 말하지만, 저는 ‘인문’보다 ‘지리’가 먼저라고 봅니다. 도시에 강이 흐르는 게 아니라 강이 있어서 도시가 선 것이듯 말입니다.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는 때에 어린이들에게 지구본을 선물하기를 주문하는 일이 황당하지 않다는 점을 그대는 알리라 믿습니다.

***

홍세화의 수요 편지 중, 정치 이야기 뺀 그 아래 이야기만 옮겨 왔습니다. 정치 이야기도 크게 고개 끄덕일 내용이었지만 오늘은 어쩐지 무거운 내용은 빼고 싶었습니다.

지난 겨울 제 생일 선물로 지인에게 지구본을 부탁했습니다. 자그마한 지구본인데 스위치를 켜면 야광불이 들어오면서 별자리도 함께 뜹니다. 가끔 궁금한 지명이 생길 때 돌려보며 많이 흐뭇해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지구본을 가까이 하며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인식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습니다.  도시가 먼저가 아니라 강이 있기에 도시가 생겼다는 얘기... 짧은 문장에서 긴 여운을 느낍니다. 우리는 본말이 전도된 경우를 너무 많이 보며 살고 있으니까요.

불현듯 영화 한편이 떠오릅니다. 최근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쥔 "크래쉬"

나라와 나라, 인종과 인종, 사람과 사람의 충돌... 그러나 화합과 화해를 향해 달려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오늘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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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8살 고등학교 국어교사입니다.
곧 중간고사가 시작됩니다. 이제 제가 낸 국어 중간고사 문제도 곧 인터넷에 오를 겁니다.

인터넷에 시험 출제지를 공개하라...
간단한 문제입니다. 저 또한 문제지를 공개한다고 전혀 꺼림칙할 것도 없습니다.
저 뿐만 아니겠지만..
시험 전에는 문제를 출제하는 시간보다 검토하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문제를 출제하고 그 다음에 검토를 합니다. 시중에 나도는 문제집, 학습지.. 수십 개를 펴 들고 비슷한 문제가 있으면 죄다 삭제합니다.
적어도 중간, 기말 .. 내신 성적만큼은 사교육을 안 받아도 수업에 충실했던 학생이 성적이 좋을 수 있도록 만들자... 그 하나의 이유 때문입니다.
시험지 공개... 많은 학부모님들이 찬성하고 사회적으로 찬성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봅시다. 인터넷에 공개 안 해도... 문제지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작년 낸 시험 문제지. 저희 학교가 있는 지역 어느 학원을 가도 다 있습니다. 중간, 기말 시험 후 문제지 회수하는 학교 없습니다. 시험 본 학생들을 통해.. 집에서 부모님이 보고 싶으시면 보고, 학원 선생님이 보고 싶으면 보고... 확인하려면 누구나 다 확인 가능했었습니다. 인터넷에 공개 안한다고 확인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공개하면 달라지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교육이 당당해집니다. 현재도 학교 시험 기간이 되면 어느 학원에서나 "해당 선생님"의 기출문제.. 학생들에게 복사해 주고 풀어줍니다. 그래도 적어도 학원에서는 그 사실을 공공연히 떠들지는 못 했습니다. 학원에서 학교 문제 빼돌려 학생들에게 주입이나 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라고 생각하지만 제 생각이니 확실한 이유는 말씀드리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학원에서 당당해질 겁니다. 인터넷에서 공개된 것 풀어준 것입니다.!! 하면 됩니다.

지켜 보십시요.. 2006년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학원 전단지에는 이런 문구가 분명이 나올 것입니다.
"A고 기출문제 보유, B고 내신 쪽집게 강사" 100% 확신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대로 된 교육은커녕, 이해도 못하는 내용을 줄줄 외우고 있는 학생들... 이제는 학원에서 뽑아주는 쪽집게 문제만 풀어주면 됩니다.
사교육이 너무 활성화되었다고, 공교육은 뭐하냐고..
TV에, 신문에... 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나는 용은 없다.. 라고 떠들면 뭐합니까?
사교육을 활성화할게 뻔한 제도가 나와도 앞뒤 가리지 못하고 무조건 찬성하는 그런 대중심리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내신은 수능이 아닙니다. 수 만 가지의 지문을 가지고 문제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국어 시험 지문 뻔합니다. 교과서 지문이니까요... 몇 년 시험 봐보면 뻔한 지문에 뻔한 문제 되는 거죠...
학원에서, 과외중에... 학교 기출문제만 연구해서 풀어주면 됩니다.
그러면 어느 학부모가 학원 안 보내고, 과외 안 시키겠습니까?
적어도 내신만큼은 사교육 없이 성실하게 수업 받은 학생이 좋은 결과를 얻어야 하는게 아닐까요??

사교육은 지금의 어떤 제도로도 약화되지 않습니다.
지금 말하는
"공교육을 강화해서, 사교육을 약화하겠다."
그럴 듯한 구호로 들리지만 실제로 그렇게 될까요? 절대로 안 됩니다. 물론 우리 교사가 맡은 역할을 다하지 못해 공교육이 붕괴되어 사교육이 활성화된다. 교사로서 이 말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더 커다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요즈음 공교육이 원하는대로, 토론식 수업을 한다고 가정합니다. 이 문제가 수능에 나와!.. 라고 수업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생각해서 의견을 조율하는 토론식 수업을 했다고 합시다. 제가 공교육을 약화시켰습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사교육이 강화됩니다. 저 선생님의 수업은 생각을 하게는 해 주지만 대입문제를 찍어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공교육을 강화하면 사교육이 약화된다! 이치에 맞는 말이 아닙니다. 공교육을 살리는 방법... 다시말해 교육평등을 이루는 방법.. 더 정확히 말하면 돈 없어도 바른 인성과 능력을 가진 학생이 사회의 주역을 클 수 있는 방법...

그것은 "대입제도" 전환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당신... 변호사가 되고 싶으면 법대를 꼭 졸업해야되. 법대에서는 공무만 하지 말고 법조인읜 자세를 꼭 배워나오도록 해. 결석도 하지 말고. 인성이 중요한거야. 그런데 미안하지만 나중에 변호사 시험을 볼때는 법률지식과, 영어, 논술을 평가할꺼야. 그건 어디서 배우냐고? 그거야 알아서 하는거지. 학원을 다니던.. 무엇을 하던!!"
이렇게 말했다고 칩시다.. 그 사람 변호사가 되고 싶으면 분명 과외를 하던지, 사교육을 받던지.. 의대는 다니면서 따로 법률 공부를 할 겁니다.

지금 현 체제가 그렇습니다.
학생들, 대학 갈려면 고등학교 나와!!
고등학교, 너희는 학원이 아니야.. 애들 인성교육도 시키고, 올바른 사람으로 키워야지!!
그런데, 대학 갈때는 지식만 평가하자...
공교육에 원하는 것과 대입에 평가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사교육이 활성화 되는 겁니다

첫째. 현 대입제도가 원하는 것과 현 공교육이 맡은 역할이 상이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공교육에게 A, B를 하라고 했으면 대입시에서 A, B를 평가해야 합니다.
셋째, 공교육에게는 A, B를 하라고 하고 대입시에서는 B, C를 평가한다면 당연히 A는 무시하게 되고 B만 집중해주고, C를 보충해 주는 곳을 찾아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넷째,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은 어찌보면 당연한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면 능력이 되어 뒷받침을 잘 해주는 부모의 자식이 우위에 서는 것은 당연해 진다고 봅니다.

공교육의 붕괴와 사교육의 성행.. 이러한 교육의 문제점 앞에서 교사로서 당당해지기 힘들다는 것, 그 문제의 근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집이 가난해서 선행학습도 없고, 성실함과 올바른 인격을 가지고 있는 학생"
"스승에게 인사도 없이, 집단보다는 개인이 우선, 콧물만 흘러도 20,000원짜리 진단서 한 장으로 병결로 때우고, 100만원짜리 과외로 성적을 유지하는 학생"
우리 사회와 학부모가 언제 한번 우리 교사에게 전자의 학생에게 많은 기회를 열어주고 좋은 대학에 보낸 수 있는 권한을 안겨 준 적이 있었습니까?

얼마전 고등학교 1학년 국어(상) 5단원..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수업 했습니다. 수업에 앞서 4. 2일 방송된 TV쇼 진품명품을 보여주었습니다. 교과서의 내용이 나온 정약용의 하피첩의 원본이 발견되는 과정이 TV에 반영되었기 때문입니다. 교과적 내용도, 교과적 지식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이 문화의 중요성도 알고, 정약용 선생님의 친필을 보며 마음으로 그 내용을 깨닫길 원했고, 혹시 모를 학생 주변의 작은 문화 유산이라도 소중히 다루는 마음을 갖게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또한 그것이 공교육의 진짜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였습니다.
그 시간.. 눈을 반짝이며, 입으로는 탄성을 내고, 마음을 열고 화면을 바라보는 학생!
선생의 눈을 피해 학원에서 외우라고 한 유인물을 몰래 들여다보는 학생!
저는 어떤 학생이 더 올바르게 성장할 것이지, 진정한 사회의 일꾼으로 성장할 것이지 알 수 있었지만 저에게는 그 학생의 앞날과 기회의 확대에 있어서 많은 것을 해 줄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왜냐? 대학에선. 그 학생이 어떠한 열정과 인성과 정신을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단지 점수로만 주어지는 성적만 압니다.

감히 제 생각에는 시험으로써의 내신비중이 아니라 학생의 사람됨과 인성, 능력 모든 것을 종합한 평가로써의 내신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정도의 권한을 지금의 교사에게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만이 현재의 교육 불평등을 해소할 유일한 대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때, 단 하나의 문제.. 그리고 가장 큰 문제.. 가 평가의 공정성일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겠지요? 선생을 어떻게 믿나? 또 돈 받아 먹고 점수 잘 줄려고?

지금 교원평가 문제로, 부적격 교사 퇴출문제로 교사의 집단과 학부모의 집단과의 갈등이 있습니다. 권한이 있으면 책임이 따르는 법입니다. 지금의 교원 평가는 권한도 주지 않고 책임만 지우려하니 "왜 우리만?"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봅니다.
앞에서 말한 권한을 주고 그 다음에 책임을 지우면 됩니다.
"단 돈 십원이라도 받으면 퇴출!"
"퇴출 된 선생님이 한 학생 평가는 폐기!"
이런 식으로 "이만한 권한이 있으니 그만한 책임을 져라!"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올바른 학생이 올바른 사회의 일꾼으로 커 나가야 하는 것.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교사와 학교의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가 함게 져 나가야 할 문제입니다.

모든 것을 제쳐두고라도
돈이 없어도
가정이 어려워도
올바른 인성과 능력을 가진 학생이 있다면
진정한 사회의 주역으로 커 나가게 해 주고 싶습니다.
저는 아직 교육 경력이 짧아 교육의 현실보다 이상이 클 수도 있습니다. 또한 방향만 말했을뿐 구체적 계획이나 제도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학생들이 바르게 커 나가지 못하는 것.
올곧은 아이들의 새싹을 틔우기도 전에 좌절하는 것.
을 멀쩡히 바라만 볼 수 없어 이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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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5-03 0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안은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문제제기가 리얼해서 옮겨 봅니다. 아직 갈길이 너무 멉니다. 멈춰서는 안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