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SION 과학

제 2419 호/201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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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가 우리에게 준 교훈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이 진정세로 접어들었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19일)와 달리 지난 21일(일) 3명의 추가 확진자와 2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총 감염자 172명, 사망자 27명(22일 기준)을 기록하면서 국내 메르스 치사율은 15.7%로 올라섰다.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은 95명이고 14명은 불안정한 상태다. 또 메르스 발병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격리 중인 인원은 약 4천 명에 달한다. 사람들이 메르스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일부는 메르스를 독감과 비교하며 두려움이 과장됐다고 우려하고, 혹자는 메르스를 과소평가 한 탓에 메르스 발병국 2위라는 오명을 안았다며 안전 불감증인 대한민국을 질타하고 있다.

■ 백신없는 메르스, 괜찮을까 

메르스를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백신이 없다는 것이다. 다수의 사망자가 70~80대로 천식이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치사율이 15.7%로 높고, 특별한 질환이 없었던 40~60대 환자가 사망하기도 했다. 또 평소 건강했던 30대 의사와 경찰관이 위독한 상태에 이르는 것을 봤다. 그리고 어떤 확진자도 내가 메르스에 걸릴 것이라 예상했던 사람은 없었다. 즉, 어느 날 갑자기 백신이 없는 병에 ‘내’가 걸릴 수도 있다는 공포감은 당연하다. 

안타깝게도 메르스는 아직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메르스는 RNA 바이러스 계열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메르스 바이러스를 현미경으로 관찰했을 때 태양의 표면의 코로나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일 뿐 큰 의미는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스(SARS)도 코로나바이러스다. 

문제는 메르스가 RNA 바이러스라는 점이다. 바이러스는 정보를 저장한 위치에 따라 DNA 바이러스와 RNA 바이러스로 나누는데 RNA 바이러스는 구조상 불안정해 변이가 쉽게 일어난다. 우리나라에서 발병한 메르스 바이러스가 중동에서 발견한 메르스 바이러스와 100% 일치하진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백신 개발 자체가 쉽지 않다. 게다가 백신 개발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데 반해 백신 개발 성공률은 10% 미만이어서 경제적인 이유로 개발이 활발하지 않다는 의견도 많다.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현재 그레펙스, 이노비오, 노바박스와 같은 중소 바이오 기술업체들이 메르스 백신을 개발 중이나, 아직 임상실험 이전의 초기 단계고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같은 대형 제약사들은 상황을 관망만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누가 백신을 사용하고 누가 비용을 부담하며 상업적 시장이 존재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인데 이 부분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상황에서는 백신을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백신이 없다고 메르스를 치료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치료도 가능하다. 메르스 같은 바이러스성 질환 치료에 가장 많이 쓰는 치료법은 대증요법이다. 열이 나면 해열제를 쓰고, 기침이 나면 멎는 약을 쓰는 것처럼 나타난 증상에 맞춰 이를 완화시키는 방법이다. 여기에 메르스는 항바이러스제인 리바비린과 면역증강제인 인터페론을 활용해 바이러스에 맞설 힘을 키우는 치료를 추가한다. 

특히 메르스는 폐를 공격해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기 때문에 호흡기 치료가 주가 된다. 메르스는 고열과 기침, 가래, 후두염 등을 시작으로 폐포의 상피세포에 침범해 호흡 곤란을 일으키는데 이 때 인공호흡기를 사용해 호흡을 돕는다. 최근 언론에 많이 소개된 에크모(ECMO)는 환자의 몸에서 혈액을 빼내 산소를 공급한 뒤 다시 넣어주는 장치로 체내에 충분한 산소를 공급할 수 없을 때 사용한다. 

지난 주 삼성서울병원 의사인 35번 환자와 평택 경찰관인 119번 환자에게 시행했던 혈장치료는 백신이 없는 바이러스성 질환에 사용하는 고전적인 방법이다. 메르스 완치자의 혈액을 이용한 치료법으로 혈액 중 액체 성분인 혈장을 환자의 몸속에 투여한다. 혈장에는 바이러스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생긴 단백질, 항체가 있는데 이를 환자 몸에 넣어 바이러스와 싸우게 하는 것이다. 혈장치료는 에볼라가 유행했던 콩고 등지에서 사용해 일부 효과를 본 적은 있지만 아직 효과에 대해서는 임상적 근거가 부족한 상태로 대안치료로 시행되고 있다. 

■ 공기감염, 가능할까 

메르스를 두려워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나도 모르는 새 감염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메르스 감염의 97%는 병원에서 일어났다. 삼성서울병원에서는 80명이 넘는 감염자가 나왔고 지금도 계속 나오는 중이다.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병원의 응급실과 다인병실의 공간적 특성 탓이 크다. 메르스는 환자가 위중한 상태에서 바이러스가 가장 활성화되고, 이 때 밀폐된 공간에서 접촉한 경우 전염력이 굉장히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응급실은 환자가 위급할 때 찾는 곳이고 공간이 좁은데다가 인원이 밀집돼 있다. 게다가 모여 있는 사람들의 다수가 바이러스가 숙주로 삼기 좋은 고령자, 면역저하자, 당뇨병과 같은 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이다. 또 환자를 가족이 직접 간병하고 환자 외에도 많은 수의 외부인이 문병을 오는 등 자유롭게 병실을 드나드는 의료 환경, 부실한 병원의 감염관리도 원인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응급실과 병실은 공기감염 우려가 있는 장소라는 점이 크다. 응급실에서는 인공호흡을 위해 기관삽관을 시도하거나 기관삽관 전 가래를 빼기 위해 석션(빨아들이는 장치)을 사용하다보면 다량의 바이러스를 함유한 에어로졸(수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작은 고체 입자나 액체 방울, 1㎛ = 1m의 100만분의 1)이 생길 수 있다. 에어로졸은 공기를 통해 이동하기 때문에 보통 기침을 통해 감염이 이뤄지는 범위인 2m보다 더 넓고 멀리 퍼질 수 있다. 

실제 평택성모병원에서는 같은 병동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염이 된 환자가 있는데, 역학 조사 결과 병실의 에어컨 중 3곳의 필터에서 메르스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확진자의 기침으로 공기 중에 나온 침과 바이러스로 오염된 손으로 접촉한 환자복에서 나온 먼지를 에어컨이 빨아들였고, 에어컨이 찬공기를 배출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를 에어로졸 상태로 공기 중에 뿜으면서 바이러스가 번져나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WHO(세계보건기구)도 한국의 메르스 확산에 대해 공기전파 가능성을 제기하며 대비를 강조했다. 병원같이 에어로졸이 발생할 수 있는 특수한 환경에서는 에어컨을 통한 바이러스의 감염 확산, 먼지를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병원 밖 공기전염에 대해서는 우려할 단계가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만약 공기로 전염이 가능하다면 지하철이나 버스 등을 통해 전염된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 아직까지 대중교통이나 지역사회 전파 사례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를 해결하는데 지나친 공포가 도움이 되지 않는 건 맞다. 하지만 한 달 만에 메르스로 27명이 사망하고 격리를 경험하거나 격리 중인 사람이 1만 명을 넘어선 상황에 이르게 한 건 메르스를 ‘독감’ 정도로 여기고 과소평가한 정부 탓이 크다는 걸 부인할 순 없다. 이럴 땐 믿을 건 안타깝게도 스스로밖에 없다. 사람이 많은 곳, 병원에 갈 때는 마스크를 꼭 하고 다녀온 뒤에는 손을 꼭 씻자. 예방수칙을 잘 지키는 것. 지금으로선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글 :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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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06-24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도대체 왜 이재용이 대국민 사과를?
삼성이 국가고 이재용이 대통령?


마노아 2015-06-24 10:32   좋아요 0 | URL
삼성 차원에서는 더 여론이 나빠지기 전에 수습하는 거겠지만, 정작 마땅히 해야 할 대통령은 암것도 안 하니 모양새가 웃겨요. 달리 삼성공화국인가 싶네요.
어제 운동하면서 그장면 봤는데, 이재용은 목소리는 별로더라구요. 인물은 괜찮은 편인데.
다 갖추진 못했구나.. 라며 쓸데없는 위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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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14 호/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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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이 사랑한 커피의 모든 것

6세기경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지역에 살던 ‘칼디’라는 양치기는 가뭄이 계속되자 평소 가지 않던 먼 곳까지 염소 떼를 몰고 갔다. 그런데 얼마 후 칼디는 한 무리의 염소들이 평소와는 달리 비정상적으로 흥분하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염소들을 자세히 관찰한 결과, 입 속에 빨간색 열매를 넣고 아작아작 씹는 것을 발견했다. 궁금해진 칼디는 염소들이 먹는 열매를 직접 따먹어 보았다. 잠시 후 칼디는 자신도 마구 춤출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바로 인류가 처음으로 커피의 효능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커피는 아랍으로 전파되면서 본격적인 음료로 개발됐다. 아랍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먹기 시작한 사람은 이슬람교의 신비주의자인 수피교도들이었다. 그들은 긴 밤 기도 시간 동안 졸지 않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이후 커피는 십자군전쟁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됐다. 특히 르네상스시대 유럽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커피의 효과에 열광했다고 전해진다. 즉, 커피의 부흥은 문예 부흥과 함께 시작된 셈이다. 

커피를 마시면 졸지 않고 정신이 또렷해지는 이유는 카페인이란 성분 덕분이다. 카페인은 뇌에서 피곤한 신경을 쉬게 하는 아데노신의 작용을 방해하여 이 같은 각성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커피나무와 같은 식물이 카페인 성분을 만들어내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이 곤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카페인을 만든다는 학설이 바로 그것. 즉, 카페인은 박테리아나 곰팡이를 죽이고 몇몇 해충을 불임이 되게 만들며, 곤충과 유충의 행동 및 성장에 장애를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 

미항공우주국(NASA)의 실험에 의하면 카페인을 먹은 거미는 모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할 만큼 거미줄을 엉터리로 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아름답고, 사랑처럼 달콤하다.” 18세기 프랑스의 정치가 탈레랑이 한 이 말은 커피의 속성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오늘날 상업적으로 재배되는 커피의 품종은 크게 아라비카종과 로부스타종의 두 가지로 분류된다. 그중 카페인 함량이 낮은 편인 아라비카종이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약 70%를 차지한다. 향미가 우수하고 신맛이 좋아 고급스런 커피로 대접받는데, 열대의 고지대에서 재배된다. 
아라비카보다 카페인 함량이 약 2배 정도 높아 거친 맛이 특징인 로부스타종은 주로 700m 이하의 고온다습한 지역에서 재배된다. 그런데 알고 보면 사실은 로부스타가 아라비카의 아버지뻘이 된다. 로부스타종과 또 다른 종의 커피나무 사이에서 ‘종의 합성’이란 육종 기술을 통해 탄생한 것이 아라비카종이기 때문이다. 

한 잔의 커피가 소비자에게 전해지기 위해선 여러 차례의 공정을 거쳐야 한다. 커피 열매인 체리에는 두 개의 씨앗이 있는데, 불필요한 과육을 제거해서 말린 씨앗을 생두라고 한다. 과육을 제거하는 방법에는 건식법과 습식법이 있다. 

건식법은 커피나무에서 열매가 검은색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확한 다음 야외에서 약 2주간 햇볕에서 말린 뒤 껍질을 벗겨 씨앗을 발라내는 방식이다. 그 후 다시 건조하면 생두가 얻어진다. 이물질이 섞일 염려는 있지만 맛과 향이 좋은 제품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에 비해 습식법은 익은 열매를 물에 담가 세척하면서 껍질을 벗겨낸 다음 발라낸 생두를 다시 씻고 말리는 방식이다. 건식법에 비해 손이 많이 가고 여러 차례 선별과정을 거치므로 이물질이 별로 없다. 그러나 햇볕에 직접 노출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어 커피의 품질이 건식법에 비해 떨어질 수 있다는 단점을 지닌다. 

이 같은 방식으로 생산된 생두는 ‘로스팅’이라는 2차 가공을 거쳐 원두로 만들어진다. 로스팅이란 간단히 말해 생두에 열을 가해서 볶는 공정이다.적게 볶으면 신맛이 강하고 많이 볶으면 쓴맛이 증가하는데, 볶음 정도는 커피 품종에 따라 다르다. 또한 지역별로 로스팅의 강약에 따른 선호도가 다르다. 흔히 유럽인은 강하게 볶은 것을 선호하며, 한국인은 엷게 볶은 것은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커피의 향미는 로스팅을 한 지 2주일이 되면 거의 사라지므로 소량으로 볶아서 그때그때 마시는 것이 좋다. 

마지막 가공 공정은 잘게 분쇄된 원두에서 다양한 향미 성분을 뽑아내는 ‘추출’이다. 추출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보통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에서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이용해 추출한다. 이를 ‘가압여과 추출’ 방식이라고 하는데, 간편하고 신속히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에스프레소(Espresso)는 빠르다는 의미의 영어 ‘express’의 이탈리아식 표기이다. 

아라비카종 중에서도 최고급인 스페셜티 커피를 파는 커피 전문점의 경우 주로 종이필터를 이용한 ‘드립 추출’ 방식으로 커피를 뽑는다. 드립 추출은 에스프레소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더욱 부드럽고 깔끔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추출 방식이 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가공 공정은 바로 자연 속에 숨어 있다. 인도네시아에 서식하는 긴꼬리 사향고양이는 곤충이나 작은 동물, 열매 등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잡식성 동물이다. 그런데 잘 익은 커피 열매도 매우 좋아한다. 

사향고양이가 먹은 커피 열매는 위와 장을 거치면서 과육과 과피는 소화되고 커피 씨 부분만 남아 배출된다. 이 과정에서 적정한 수분과 적당한 온도로 인해 생두가 고르게 숙성된다. 사향고양이의 침과 위액 등이 섞여서 발효과정을 거치며 생두에 특별한 맛과 향이 더해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로 알려진 ‘코피 루왁’이다. 코피는 인도네시아어로 커피를 뜻하며, 루왁은 긴꼬리 사향고양이를 일컫는 인도네시아 방언이다. 사향고양이 외에 베트남의 열대다람쥐와 예멘의 원숭이 등도 그 같은 천연 커피가공시설을 갖추고 있다. 

글 : 이성규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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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09 호/201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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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레벌떡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태연, 가방을 집어 던지고 아빠를 불러댄다. 

“아빠, 아빠!! 헥헥, 제 친구 유정이 있잖아요, 유정이가, 학교에 못 와요!” 

“엥? 그게 무슨 소리냐. 유학이라도 간다던?” 

“그게 아니라요, 처음에는 열나고 머리 아프대서 감기에 걸린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다음날에는 드라마 임신장면처럼 막 구역질까지 하는 거예요!” 

“그래서 A형 간염이라고? 다른 애들한테 옮길 수 있으니까 당분간 등교하지 말라고 선생님이 그러셨구나?” 

“헐, 대박! 어떻게 한번에 그걸 아세요?” 

“그야, 지금이 6월이니까 그렇지. 원래 A형 간염이 겨울에는 별로 안 생기다가 5월이 지나 6월에 가장 많이 발병하거든. 하지만 아직 어리니까 금방 지나갈 거야. 원래 A형 간염은 성인이 걸렸을 때 훨씬 심각하거든. 열나고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할 정도로 피곤하고, 온몸 마디마디가 쑤시니까 처음엔 감기로 오해하기가 쉽지. 하지만 밥맛이 딱 떨어지고 구역질까지 한다면 A형 간염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뜻이고, 거기다 소변이 콜라색처럼 진해졌다면 그건 병세가 심각한 수준이 됐다는 거야. A형 간염은 대부분 저절로 낫지만, 요즘엔 한 달 이상 심하게 앓는 경우도 적지 않고, 아주 드물게는 간부전이나 신부전 등의 합병증을 일으켜서 사망에 이를 수도 있으니까 무시할 수 있는 병은 아니란다.” 

“그럼 어릴 때 걸리는 게 차라리 나은 거네요?” 

“그렇지. 사실 20~30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이 어릴 때 감기처럼 대수롭지 않게 A형 간염을 앓았단다. 그래서 성인의 90% 이상이 A형 간염 항체를 갖고 있었지. 그런데 세상이 너무 깨끗해져서 어릴 때 걸리지를 않으니까 성인이 돼서 발병하는 사례가 오히려 많이 늘어나고 있는 거란다.실제로 요즘에는 A형 간염의 80%가 20~30대에서 발생하고 있고, 40대 이상에서 발병하는 경우도 10%가 넘어요.” 

“대체 어떻게 걸리는 건데요?” 

A형 간염 바이러스(Hepatitis A Virus, HAV)에 감염된 음식을 먹으면 걸리는데, 이 바이러스는 주로 감염자의 대변을 통해 이동을 한단다. 예를 들자면, 감염자가 대변을 누고 손을 깨끗이 닦지 않은 상태에서 만든 음식을 먹는다거나, 또 옛날에는 대변을 정화하지 않고 하천에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으니까 감염된 대변으로 오염된 물을 마시거나 해서 걸리는 거지. 이렇게 위생상태가 좋지 않은 곳에서 퍼지기 때문에 일명 ‘후진국병’으로도 불리고, 또 감염력이 높아서 ‘유행성 간염’으로 불렸단다.” 

“또, 똥이라고요? 똥으로 옮아요? 그럼 유정이도 똥을 먹어서?!! 문득 ‘자나 깨나 똥 조심 꺼진 똥도 다시 보자’라는 표어가 생각나요.” 

“자나 깨나 불조심이겠지! 암튼, 비위생적인 식당에 갔거나 뭐 그래서 걸렸을 거야. 그렇지만 아까 말했듯이 어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아니 그게 아니라, 저도 옮았을까 봐 그러죠. 똥 병에 걸리긴 진짜 싫단 말이에요.” 

“똥 병은 좀 오버다, 대변으로 옮긴 하지만. 암튼, A형 간염에 걸리지 않는 제일 좋은 방법은 백신을 접종하는 거란다. 보통 접종 후 6~12개월 뒤에 추가 접종을 하면 95% 이상 항체가 생기거든.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A형 간염 항체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고, 심지어는 예방접종을 했었는지조차 잘 모른다는 거야.” 

“그럼 아빠는 백신 맞았어요?” 

“아니, 어릴 때 틀림없이 앓고 지나갔다고 봐. 너도 알다시피 할머니가 좀 지저분하시거든.” 

“그럼 저는요?” 

“너는 이제 맞히려고 생각 중이었어. 어릴 땐 걸린다 해도 별거 아니라서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생각난 김에 오늘 백신 접종하러 갈까?” 

“네에?! 오늘이요? 지금 당장?!” 

“말나온 김에 오늘 가지 뭐, 5월부터는 A형 간염 예방 주사도 공짜로 맞을 수 있단다. 어서 준비해!” 

“엉, 엉~ 난 끝장났어요. 지난번에 유정이가 학교에서 똥 누고 손도 안 닦고선 소시지를 손으로 뚝뚝 잘라서 나눠줬단 말이에요. 저는 날름날름 맛있게 받아먹었고요. 엉~” 

“손을 닦았는지 안 닦았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같이 싸고 같이 안 닦았으니까 알죠. 엉엉~, 나 똥 병 걸렸어!”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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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90 호/2015-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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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인 저녁형 vs 공부 잘하는 아침형, 당신은?


아침잠이 많은 사람은 게으르다? 지난 몇 년간 저녁형 인간’에 대해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발표되면서 ‘저녁형 인간=게으르다’는 통념이 깨지고 있다. 오히려 ‘아침형 인간’보다 영리하고 창의적이지만 아침형 생활 리듬에 맞춰진 사회 구조 탓에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창의적이고 영리한 저녁형의 기질, 충분한 아침잠이 만든다 

지난 2009년 영국 런던정경대 사토시 가나자와 교수팀은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제목은 ‘왜 저녁형 인간이 더 영리한가’로 미국의 청소년 20,745명을 대상으로 수면패턴과 IQ와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집단의 IQ가 더 높게 나왔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를 ‘사바나 IQ 상호작용 가설’에 적용해 인간은 낮에는 생활을 위한 일을, 밤에는 독창적인 일을 하며 진화했기 때문에 똑똑한 사람일수록 더 늦게까지 깨어있도록 발달했다고 분석했다. 사바나 IQ 상호작용 가설은 인류의 진화에 있어 지능이 높은 개인이 지능이 낮은 개인보다 새로운 상황을 이해하고 처리하는 데 더 능숙했기 때문에 지능이 높은 인류가 진화를 이끈다는 내용이다. 

스페인의 마드리드대학 심리학과 연구팀도 지난 2013년, 12~16세 청소년 887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저녁형이 창의력이 높고 귀납추리능력과 문제해결능력이 우수하다고 발표했다. 귀납추리능력은 개별 사실에서 보편적 법칙을 추리해내는 능력이다. 혁신적인 사고와 고소득 직업군과의 연관성이 높다. 실제 저녁형 중에는 작가, 예술가, 프로그래머 등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직군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학업성적은 아침형이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연구팀은 학교 수업이 이른 아침에 시작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네덜란드 레이던대학의 케르크 호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저녁형은 아침형과 수면패턴이 반대다. 아침형은 초저녁에 깊은 잠을 자고 새벽으로 갈수록 얕은 잠을 잔다. 반면 저녁형은 새벽부터 아침까지 깊은 잠을 잔다. 저녁형은 매일 아침 꿀잠을 잘 시간에 억지로 눈을 뜨고 등교 준비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생리학적으로도 저녁형은 아침형보다 잠이 오게 하게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분비가 평균 3시간 느리기 때문에 수면 시작 시간도 늦다. 결국 저녁형은 수면의 질도 충분한 수면시간도 누리지 못하고 학교로 가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루기 때문에 제 실력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것. 

집중력이 높아지는 시기도 다르다. 아침형은 오전에 집중력이 가장 좋고 오후 6시부터 급격히 주의력이 분산된다. 반면 저녁형은 오후부터 집중력이 높아져 저녁 6시에 정점을 찍는다. 2012년 학술지 ‘국제 시간생물학’에 게재된 다른 논문을 살펴봐도 아침형은 오전에 성과가 좋은 반면, 저녁형은 저녁에 가까워질수록 업무 결과가 더 좋았다. 두 유형 모두 오후에는 정신이 맑고 인지능력도 좋았는데 연속적인 흐름을 살펴보면 아침형은 오전 이후 하락세를, 저녁형은 저녁에 가까워질수록 인지 능력이 향상됐다. 

벨기에 리에주 대학의 필리프 레이그눅스 박사 연구팀(2009년)도 비슷한 내용을 논문에 담았다. 아침형과 저녁형을 대상으로 각각 잠에서 깬지 1시간 반 뒤와 10시간 반 뒤 집중력이 필요한 과제를 주고,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로 뇌를 촬영했다. 그 결과, 일어난 지 한 시간 반 정도 지나 진행한 오전 작업에서는 아침형과 저녁형의 뇌 활성화 정도가 비슷했다. 하지만 일어 난지 10시간 반 뒤에 진행된 저녁 과제에서는 아침형과 비교해 저녁형의 뇌 활성화 정도가 눈에 띄게 활발했으며, 문제 해결 속도도 더 빨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뿐만 아니라 이후 지속된 과제에서도 저녁형은 아침형보다 졸음을 이겨내며 늦은 시간까지 뇌를 활성화해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아침형 중심으로 맞춰진 하루 일과를 1~2시간만 뒤로 미뤄 진행한다면, 저녁형의 경우 오전부터 늦은 밤까지 높은 집중력으로 일과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세계적인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도 게재돼 화제를 모았다. 

■ 기상 시간 강요에 잠이 늘 부족한 저녁형, 비만과 우울증 발병률 높아 

하지만 건강면에서는 저녁형을 우려하는 연구결과가 많다. 얼마 전 고려대안산병원 김난희 교수팀은 47~59세 성인 남녀 1,620명을 대상으로 혈액검사와 CT 촬영, 생활 습관에 대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학술지 ‘임상 내분비학 신진대사’에 게재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저녁형은 전체 6%(95명)로 아침형보다(30%, 480명) 적게 나타났다. 질병별로는 남성의 경우 저녁형이 아침형보다 비만인 확률이 3배, 노화에 따른 근육 감소증에 걸릴 위험은 4배 컸고 당뇨에 걸릴 가능성도 높았다. 여성 역시 저녁형이 아침형보다 심장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키는 대사증후군의 위험이 두 배 높았다. 연구팀은 정확한 원인을 알 순 없지만 저녁형은 늦게까지 깨어있는 경우가 많아 야식을 먹는 경우가 잦고 늦은 밤, 가로등이나 TV와 같은 인공 빛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그래서 인슐린 작용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질병 발병 위험이 높아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침형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건강하고 날씬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연구도 있다. 영국 로햄턴 대학교 연구팀에 따르면 성인 1,06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중 평균 기상시간이 오전 6시 58분인 아침형이 저녁형에 비해 평균 체중이 더 낮고 평소 느끼는 행복감도 더 큰 것으로 분석됐다. 

세브란스병원 김세주 교수팀도 얼마 전 아침형 인간(116명)이 저녁형 인간(123명)의 정신적인 안정성을 분석해 외국 학술지 ‘기분장애’ 4월호에 공개했다. 논문에 따르면 우울증과 조울증은 저녁형에게서 더 높은 경향을 보였고 명랑하고 쾌활한 기질은 아침형에서 더 높게 나왔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대, 영국 서레이대, 호주 퀸즈랜드대 등으로 이뤄진 공동연구팀은 지난 2012년, 사람의 생체리듬 유형에 대한 리뷰 논문을 학술지 ‘국제 시간생물학’에 개재했다. 이 논문 역시 저녁형이 우울증이나 알코올 중독과 같은 질환에 걸릴 확률이 더 높게 나타났다. 낮 시간 햇빛은 적게 받고 밤에 조명을 많이 받는 저녁형의 생활 패턴이 생체시계와 환경 사이에 불균형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분석이다. 

■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수면 주기, 존중이 필요하다 

문제는 아침형과 저녁형을 결정하는 수명과 생활패턴은 유전적인 영향이 크다는 것. 지난 2003년 사이먼 아처 영국 서레이 대학 교수팀은 수백 명을 대상으로 아침형과 저녁형을 나눈 뒤 유전자를 분석, 저녁형이 아침형에 비해 PER3 유전자가 짧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영국 노섬브리아 대학의 바크레이 박사팀도 63쌍의 일란성 쌍둥이와 674쌍의 이란성 쌍둥이를 대상으로 아침형과 저녁형을 결정짓는 요인들을 연구했다. 그 결과 유전적 영향이 수면 패턴의 52%를 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최근에는 똑같은 출근시간을 강요하기보다 각 유형에 맞게 근무 시간을 조율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독일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의 틸 뢴넨버그 교수는 아침형과 저녁형에 따라 근무 시간을 배치하면 사람들이 충분히 숙면을 취하고 일의 만족도도 높으며 휴일에도 잠을 더 적게 잔다는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소개했다. 

연구팀은 독일 철강회사인 티센크루프스틸 공장에서 직원들의 잠과 근무 일정 간에 관계를 연구했다. 회사들 직원들의 수면 습관에 따라 아침형, 저녁형, 중간형으로 분류하고 아침형 직원들은 야근에 배치하지 않고 저녁형 직원들은 이른 아침 근무에서 배제하는 등 개인에 맞는 시간대에 근무하도록 했다.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나 공장 직원들은 수면이 개선됐으며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고, 휴일에도 예전보다 한 시간 정도 잠을 덜 자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주말 수면시간이 줄어든 이유는 부족한 잠을 보충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며 “수면 주기에 맞춘 근무 일정으로 업무 효율성과 만족도 뿐 아니라 휴일에 적게 자는 효과까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오스트리아의 천재 작곡가인 모차르트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을 승리로 이끈 정치가 처칠, 현재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는 대표적인 저녁형 인간으로 알려졌다. 모차르트는 떠오르는 악상을 정리하기 전에는 잠을 자지 않아 새벽까지 작곡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처칠은 새벽 4시에 잠들어 오후에 일어났던 생활로 유명하다. 연구 결과처럼 저녁형의 기질인 높은 창의력과 혁신을 추구하는 성향이 잘 드러난 사례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인재들이 숨어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조차 모두에게 똑같이 강요하는 사회에 살다보니 자신의 기량을 최대로 발휘해 볼 기회조차 없이 살아오고 있을 뿐일지도. 

글 :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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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89 호/2015-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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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취, 에에에에~ 취취!!” 

늘 그렇듯, 봄날 태연의 아침은 끊임없는 재채기와 함께 시작된다. 그리고 아침밥상에 앉은 태연의 콧구멍에는 언제나 작게 돌돌 말아 꽂은 휴지가 꽂혀있다. 전날 밤에 흡입한 라면의 흔적으로 퉁퉁 부어오른 눈두덩과 콧구멍 아래로 분필같이 길게 빠져나온 허연 휴지는, 치열한 권투시합에서 막 지고 내려온 복서의 얼굴을 연상케 한다. 

“태연아, 제발 밥 먹을 땐 그 콧구멍 휴지 좀 빼면 안 될까? 아빠가 비위가 좀 약해서 말이야.” 

“뺄까요?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인해 끈적거리는 무언가가 폭포수처럼 코에서 흘러내릴 텐데, 식사하실 수 있겠어요?” 

“아, 아니다. 잘 봉합해 두렴. 그러게 꽃가루 날릴 땐 그만 좀 싸돌아다니라고 그랬잖니. 꽃가루 알레르기 있는 거 뻔히 알면서.” 

“아빠, 저도 엄청나게 신경을 써요. 솜털처럼 하얗게 뭉쳐 날아다니는 꽃가루가 있는 곳이나 화려한 꽃이 활짝 펴 있는 곳은 가지 않는다고요.” 

“태연아,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신경을 썼었구나. 우선, 그 솜털은 버드나무나 포플러의 씨털이지 꽃가루가 아니에요. 당연히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지. 또 개나리, 벚꽃, 철쭉같이 화려한 꽃에서 나오는 꽃가루들은 알레르기의 원인이 아니란다.” 

“예에? 그런 게 아니면 대체 뭐가 원인이라는 거예욧?” 

“화려한 꽃들은 벌레를 유혹해서 수정을 돕게 하는 충매화야. 이런 꽃들은 이미 충분히 아름답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벌레가 알아서 꼬이고 수정도 도와주지. 하지만 참나무, 자작나무, 소나무의 꽃은 작고 예쁘지도 않은 데다 잎과 구분도 잘 되지 않는단다. 그러니 벌레가 찾아와 줄 리 없겠지. 그래서 이런 꽃들은 머리카락 굵기 절반 정도(평균 30㎛)의 매우 작은 꽃가루를 많이 만들어서 최고 800km 떨어진 곳까지 멀리 날려 최대한 수정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사용한단다. 이런 꽃들을 풍매화라고 부르지. 이렇게 작은 꽃가루들은 호흡기에서 걸러지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인체로 들어와서 알레르기성 비염, 결막염, 피부염, 기관지 천식 등을 일으키게 된단다.” 

“흑, 안쓰러워요. 예쁜 꽃들은 얼굴만 디밀어도 수정을 할 수 있는데, 못생긴 꽃들은 한반도 끝에서 끝까지 꽃가루를 날릴 정도의 노력을 들여야만 수정을 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로군요. 어쩜 자연의 세계는 인간의 세계와 그리도 닮아있는 걸까요.” 

“왠지 모를 동병상련을 느끼는 네 마음은 어렴풋이 알겠지만, 그렇다고 꽃가루 알레르기를 방치하면 안 되겠지? 지금부터 아빠가 하는 말 잘 새겨듣고 꼭 지키도록 하렴, 알겠니?” 

“콧물 폭포를 멈출 수만 있다면 한번 노력해 볼게요.” 

꽃가루는 주로 새벽에 방출돼서 오전 10시 정도까지 공기 중에 가장 많이 떠 있단다. 그러니까 3월부터 5월까지 특히 4월에는 아침 외출을 하지 않는 게 좋아. 꼭 나가야 할 때, 그러니까 학교에 갈 때에는 반드시 마스크를 챙겨 쓰고 말이야. 특히 기온이 높고 날이 맑으며 살랑살랑 바람이 불 때 가장 잘 퍼지니까, 그런 날씨다 싶으면 절대 아침외출은 삼가야 한단다.” 

“살랑살랑 봄바람 부는 청명한 아침이라…. 제일 좋을 때 못 나가는 거네요.” 

“그리고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꽃가루농도위험지수’를 꼼꼼히 챙겨보는 것도 중요해요. 위험지수가 높은 날에는 가급적 창문을 열지 않고 외출할 때도 마스크를 꼼꼼히 챙겨야 한단다. 또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는 현관문 들어서기 전에 옷을 툭툭 털어서 꽃가루를 떼어낸 뒤, 집에 들어가서 곧바로 깨끗하게 샤워를 해야 하지.” 

“엄청 귀찮기는 하겠지만, 일단 봄에만 좀 신경 쓰고 살아볼게요.” 

“아, 하나 빼먹고 얘기했구나. 꽃가루는 봄에만 있는 게 아니란다. 참나무, 자작나무 등이 꽃가루를 뿜어내는 3월부터 5월까지가 가장 꽃가루 알레르기가 심할 때지만, 여름과 가을에도 잡초(돼지풀, 쑥 등)와 잔디에서 나오는 꽃가루가 알레르기를 일으키니까 조심해야 해.” 

“그런데요 아빠, 생각해보니 꽃가루를 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아요. 차라리 온몸으로 꽃가루를 맞으며 그들의 지혜를 배우는 게 낫지 않을까요?” 

“엥? 그건 또 무슨 말이냐?” 

“눈에 띄지도 않는 보잘것없는 외모지만, 종족번식이라는 위대한 목적을 위해 온몸을 쥐어짜며 노력하는 그 아이들의 투지를 배우는 거예요. 가만히 있어도 잘생긴 남자애들이 알아서 찾아오는 그런 계집애들을 이길 수 있는, 나만의 종족번식 비법을 찾아내는 거죠오오…, 에에~ 에취이!!” 

“헐, 태연아. 넌 꽃이 아니잖니. 동병상련 놀이는 그만두라고!”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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